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우상숭배는 탐심이라 한다. 탐심이라 함은 육신의 정욕을 말한다.
우리들은 갖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다. 그런데 그것들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과학문명의 결과물들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끊임없이 흔드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자동차, 핸드폰이라 할 수 있다.
탐심은 우상숭배라 하였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마음에 두어야 하는가?
자동차는 운송수단으로 이동거리를 편안하게 시간을 단축하는 편리함을 준다. 전화기 역시 시공간을 넘어서 통신 수단으로 사용을 하면 된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이 신자들의 마음에 깊숙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다보니 물질에 대한 소유욕을 만족시키려는 갈망이 기도 시간에 나타난다.
세상의 철학과 종교에서는 절제와 통제를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오히려 새로운 물질문명의 것을 받아들이고 자랑을 하는 시대가 되었다.
교회에서도 사람에 대한 평가를 돈이나 물질로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사람을 돈이나 물질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분량으로 판단을 하여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물질의 욕망을 채워주는 곳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성품을 가르치는 곳이다. 이것에 대한 본질을 모르면 무속신앙을 숭배하는 곳이 되며 또한 목사는 양복입은 무당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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