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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로에 관한 경고라 다시스의 배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을지어다 두로가 황무하여 집이 없고 들어갈 곳도 없음이요 이 소식이 깃딤 땅에서부터 그들에게 전파되었음이라

  “두로에 관한 경고라 다시스의 배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을지어다 두로가 황무하여 집이 없고 들어갈 곳도 없음이요 이 소식이 깃딤 땅에서부터 그들에게 전파되었음이라”(사 23:1) 열방에 대한 경고가 이사야 13장에서 시작하여 23장에서 끝난다. 즉 바벨론으로 시작하여 두로로 끝난다. 바벨론은 권력을 두로는 재물을 대표한다. 요한계시록 18장에서는 이 두 나라가 영적으로 결합한다.   재물로 인하여 거만한 두로가 멸망을 한다. 무역항으로서 애굽의 곡물을 또 유럽으로부터 각 종류의 무역물건을 들여오고 내보낸 곳이다. 두로가 파괴됨으로 인하여 중개상들도 또한 재난을 당한다. 두로 사람들은 모험성과 진취성으로 상업적인 활동을 함으로 부를 얻어서 사치와 교만을 대표한다. 이렇게 개척정신이 뛰어난 해상 사람들인 두로 사람들이 속국을 많이 두었다. 교만한 두로 사람들을 흔들므로 인하여 속국들이 자유를 얻어 독립할 것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선언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권력이나 재물이 풍성하였던 곳이 황무하게 된다. 즉 하나님 앞이 아닌 곳에서의 것들은 다 썩어짐을 당한다함을 말한다. “그 무역한 것과 이익을 거룩히 여호와께 돌리고 간직하거나 쌓아 두지 아니하리니 그 무역한 것이 여호와 앞에 사는 자가 배불리 먹을 양식, 잘 입을 옷감이 되리라”(사 23:18)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경에서는 증거하는 것은 권력이나 재물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말하려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 앞을 떠날 때는 썩어짐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있는 사람들도 권력과 재물을 충만히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에 대하여 조금도 분명하게 말하면 권력이나 재물을 어떻게 쓰는가로 판명이 납니다.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하여 쓰는 자는 교만한 자가 되고 이웃을 위하여 쓰는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너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소를 죽이고 양을 잡아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는도다

  “너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소를 죽이고 양을 잡아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는도다”(사 22:13)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고 깨달으라고 이방 나라에 심판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백성들은 전혀 관심이 없어서 먹고 즐기며 자신의 부귀를 위한 것에만 관심이 있다. 이스라엘의 죄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약속하셨다.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신 11:14)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저수지를 파서 비가 오면 물을 가두었다. 그런 다음부터는 하늘을 향하여 기도를 하지 않았다. “너희가 또 옛 못의 물을 위하여 두 성벽 사이에 저수지를 만들었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이를 행하신 이를 앙망하지 아니하였고 이 일을 옛적부터 경영하신 이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사 22:11). 이것이 이스라엘의 교만의 죄이다. 그리고 왕궁의 국고를 맡았지만 자신의 영달과 배를 불렸던 셉나는 관직에서 쫓겨나고 엘리야김이 새로이 관직에 오른다. 이 영광은 그의 아버지의 집에 영광의 보좌가 될 것이라 하셨다. 즉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쓰임을 받는 자들의 영광을 말한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흔들리지 않음을 이와 같은 비유이다. “못이 단단한 곳에 박힘 같이 그를 견고하게 하리니 그가 그의 아버지 집에 영광의 보좌가 될 것이요”(사 22:23)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교만은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내 손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입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신의 생각으로 판단합니다. 그러나 이사야서에서 전하는 말씀은 우주만물의 주권이 하나님에게 있음을 밝힙니다. 지금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강대국이라 할지라도 언제 어떻게 될지를 알 수 없습니다.

해변 광야에 관한 경고라 적병이 광야에서 두려운 땅에서 네겝 회오리바람 같이 몰려왔도다

  “해변 광야에 관한 경고라 적병이 광야에서 두려운 땅에서 네겝 회오리바람 같이 몰려왔도다”(사 21:1) 이사야 21장에서는 바벨론이 멸망하는 상황을 계시한 것이다. 바벨론을 해변 광야라 상징적인 이름이다. 해변 광야라 함은 물에 잠겨 있는 바벨론의 멸망을 말하는 것이다. 적병이 남방에서 급속도로 불어오는 회오리바람인 태풍에 비유가 된다. 즉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의해서 망하는 것과 같이 멸망한다는 것이다. 갑자기 메대와 바사 군대가 쳐 들어오게 된다. “보소서 마병대가 쌍쌍이 오나이다 하니 그가 대답하여 이르시되 함락되었도다 바벨론이여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이 다 부서져 땅에 떨어졌도다 하시도다”(사 21:9)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바벨론 왕인 벨사살이 잔치를 벌이다가 메대와 바사 왕에게 나라를 빼앗긴다. “그 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그 때에 다리오는 육십이 세였더라”(단 5:30-31) 초 강대국이었던 바벨론과 로마 제국이 갑자기 망하였다. 저들 나라가 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인 사탄의 세력이 갑자기 망한다는 것이다.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계 18:2)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사야서에서 전하고자 하는 핵심 주제는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나라를 주관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이 어떻게 망할 것인지를 성경에서 계시하였고 로마가 어떻게 망할 것인지를 계시하였는데 말씀하신 그대로 성취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주관하고 계십니다. 우리들이 생각한 것처럼 되지 않고 있음을 일상의 삶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하나님의 구원은 죄와 사망으로부터이다. 그래서 죄에서 영생을 사망에서 부활로 옮겨 주시는 것이다. 죄라 함은 하나님을 모르며 단절된 상태를 말하고, 사망은 썩어 없어지는 것인데 부활의 은혜로 영원토록 하나님 앞에서 살게 하는 은혜이다. 이와 같은 은혜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내셨다. 그 능력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 앞에 살 수 있게 되어 하나님의 지혜를 배우게 된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지혜를 소유한 자들은 마음에 새롭게 된 자들이다. 그래서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영광을 돌리는 참 신자가 된다. 본문의 말씀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구원받기 전과 후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이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면 깊이 자신을 성찰하여야 한다.   성경에서는 이것에 대하여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번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벧전 2:10)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하나님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받은 자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자들이라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한 행실을 하며 기쁘시게 합니다.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시 90:17) 시편 90편은 인생의 시이다.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인생은 유한적인 존재인데 하는 짓이라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서도 대적하며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이다. 모세의 기도는 이스라엘 백성의 중보자로서 기도를 하고 있다. 이 백성을 구원하여 주시고, 이 백성을 통하여 약속한 것을 이루어 달라고 한다. 그 기도의 근거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미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속자로 계획을 하셨다. 그렇다면 왜 일찍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지 않았는가에 의문이 든다. 그것은 인간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하시고 죄인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필요할 수밖에 없음을 알게 하여 전인격적으로 항복을 하게 하기 위함이다. 인간은 죄와 사망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나올 수 없음을 깨닫게 하여 전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의지하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속자로 보내 주셔서 죄인들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주셨다. 그리고 영생과 부활의 은혜를 주신 것이다.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라 한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받은 사람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그렇다면 이제는 마귀가 관영하고 있는 세상과 구별이 된다. 그래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지혜로 판단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싫어하시고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요 17:10) 그리스도인의 영광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서 사람으로 사셨고 그 사명을 완수하셨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로부터 영광을 받았다고 한다.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무엇으로 영광을 받았는가 하면 아버지의 것으로 받았다는 것이다. 이 말씀에 대한 이해를 서신서로 할 수 있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었으니”(고전 1:30)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라 한다.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받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구별이 되어 영적으로 사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그렇다면 이제 영적인 사람은 마귀와 대적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것인데, 그리스도인과 좋은 사귐으로 교제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의에 주리고 목마르고,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그러면 일상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   성령의 열매가 있는 자들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게 된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이것을 나타내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되돌려서 받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아버지의 것은 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을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받은 그것을 세상에서 나타낸 것입니다. 그래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갈지어다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니라 하시매 그가 그대로 하여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니라

  “그 때에 여호와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갈지어다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니라 하시매 그가 그대로 하여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니라”(사 20:2) 이사야 20장은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징조와 예표를 나타낸다. 이것은 상징행동이라 하는데 상징적인 행동을 통하여 메시지를 더 드라마틱하고 인상적으로 전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나타내셨는데 예레미야서, 에스겔서에서도 볼 수 있다. 이사야 선지자의 상징적인 행동은 삼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게 한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종 이사야가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며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징조와 예표가 되었느니라”(사 20:3) 이와 같은 행위는 백성들에게 전달되어야 할 표적과 기적이 중대한 것이기에 계속 반복적으로 할 중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닌다는 것은 전쟁 포로의 비참한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다. 즉 애굽과 구스의 불행을 미리 보여주기 위함이다. 이것은 포로들의 복장으로 하부를 드러내는 치욕과 수치이다(겔 16:37).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심판을 알리기 위하여 상징행동을 통하여 전하셨습니다. 여러분 지옥에서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이를 낳은 여인의 고통보다 더 크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아이를 낳아본 사람에게 고통을 들으시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상징행동으로 전하시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향한 애끓는 사랑입니다. 죄인들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 지어다 하실 것임이라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 지어다 하실 것임이라”(사 19:25) 본문에서는 애굽과 앗수르와 이스라엘이 복을 받을 것이라 말씀하신다. 그것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하나님 나라의 은혜가 임하는 복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는 애굽 사람도 내 백성이라 칭함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내 백성이라 함은 하나님과 언약 관계가 됨을 말한다.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라 함은 이전에는 진노의 막대기로 쓰임을 받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로 쓰인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에 대하여는 나의 산업이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만방에 선포되어 성취가 이루어질 것이라 함을 말한다. 이스라엘은 온 세상을 대표하는 두 개의 초강대국인 애굽과 앗수르 사이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중재하는 나라로 변모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 날에는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사 19:24)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것이 성취됩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 12:3) 만일 세상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를 저주하면 하나님께서 저주를 내리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백성이기에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그 때에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의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이 만군의 여호와께 드릴 예물을 가지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곳 시온 산에 이르리라

  “그 때에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의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이 만군의 여호와께 드릴 예물을 가지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곳 시온 산에 이르리라”(사 18:7) 본문의 말씀은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시작은 구스를 두고 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내용은 앗수르의 심판을 담고 있다. 구스 사람들이 앗수르를 치기 위하여 이스라엘에 올라왔다. 그런데 선지자를 통하여 하시는 말씀은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한다. 그러나 다시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곳 시온 산에 이를 것을 말씀하고 있다. 그 때가 언제인가 하면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받은 백성들이 모이는 시온 산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앗수르의 심판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앗수르를 과일 열매로 비유하여 말씀한다. 과일이 다 익어가기 전에 멸망한다는 것이다. “추수하기 전에 꽃이 떨어지고 포도가 맺혀 익어갈 때에 내가 낫으로 그 연한 가지를 베며 퍼진 가지를 찍어 버려서”(사 11:5)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본문에서 깨닫는 것은 세상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정의감으로 세상을 바꾸고 질서를 세우겠다는 교만함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구스의 힘으로는 앗수르를 압제할 수 없습니다. 그렇듯이 나라의 왕이나 개인의 정의감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알게 합니다.

에브라임의 요새와 다메섹 나라와 아람의 남은 자가 멸절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영광 같이 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에브라임의 요새와 다메섹 나라와 아람의 남은 자가 멸절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영광 같이 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 17:3) 이스라엘의 북쪽에 다메섹과 아람이 있다. 이 지역은 애굽의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연결하는 곳이며, 헤르몬 산에서 내려오는 눈이 녹아 물이 흐른다.   이들 나라가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것은 무엇인가? 자기 손으로 만든 우상을 섬겼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을 하나님 대신에 섬긴 죄이다. 태양신을 섬기고 아세라 신을 섬겼다.   하나님께서 손으로 만든 피조물을 섬기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하는 행위이다. 우상을 섬기는 공통점은 눈에 보이는 물체를 섬기는데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다. 그래서 어떠한 형상으로도 만들 수가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사람을 지으신 신‘과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신’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환난을 당하고 난 후에야 하나님을 찾아 부르짖는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무속 신앙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에 ’님‘ 자를 붙였습니다. 그래서 달님, 햇님, 돌님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부르는 노래 가운데 피조물을 찬양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중가요나 복음 송에 노랫말을 잘 살피어서 부르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올바른 신앙은 무엇입니까? 나를 지으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 날에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이를 바라보겠으며 그의 눈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뵙겠고”(사 17:7) 내가 피조물이라는 것을 알 때에야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피조물인 내가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요 신앙입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행 2:44-45) 본문의 말씀은 초대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러한 일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일어난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은 율법을 성취하려 오셨다. 즉 율법을 온전히 지키시고 그것을 은혜로 주시기 위함이다. 이스라엘백성들의 패망은 율법을 지키지 않음이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 언약을 약속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하신다. 그것은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백성들에게 지켜 행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야 약속하신 복을 받을 수 있다.   오순절 날에 성령이 강림하셔서 교회가 세워졌다. 이것을 예루살렘 교회라 하기도 하고 초대교회라고도 한다. 그곳에 모인들에게 구약의 백성들이 지키지 못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제 초대교회를 시작하여 지금의 교회에서도 이와 같은 믿음과 행함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고 교회가 부흥할 수 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구약의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에 와서 성취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게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입니다. 설교말씀을 들으시고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간구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보내셔서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 자만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살게 되면 그것은 탕자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탕자의 삶은 아버지를 떠난 방탕한 것이 됩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내가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여 네 왕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셨나이다 (셀라)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내가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여 네 왕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셨나이다 (셀라)”(시 89:3-4) 시편의 기자의 간절한 호소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으로 진행이 된다. 그래서 약속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을 때는 이방나라의 침입이 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과 언약하시기를 만일 너희가 내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면 네 민족이 흩어질 것이라 하셨다. “여호와께서 네 적군 앞에서 너를 패하게 하시리니 네가 그들을 치러 한 길로 나가서 그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할 것이며 네가 또 땅의 모든 나라 중에 흩어지고”(신 28:25) 이스라엘은 주변에 있는 여러 나라로부터 공격을 당하였다. 그래서 영원한 다윗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속히 행하실 것을 기도한다.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내가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여 네 왕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셨나이다 (셀라)”(시 89:3-4) 다윗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워지는 영원한 나라이다. 그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자들이다. 구원을 받은 자들에게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킬 수 있는 은혜도 주신다. 주시는 방식이 이러하다.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키실 수 있다. 참 인간이시며 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실 수 있다. 그래서 율법을 온전히 지키심으로 인하여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게 하셨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율법을 지키셨던 능력을 구원받은 자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주신다.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요일 3:24)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구하는 것이 기도이다. 그 능력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요 17:9)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 사역을 마치시고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셔야 한다. 본문의 말씀을 이 땅에 남겨 두고 가는 제자들을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를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에는 제자들이 당연히 아버지께 사랑과 인도를 받아야 함을 밝히고 있다.   제자들로 말하면 아버지의 영광을 세상에 알리던 자들이었다는 것이다.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마 10:7),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마 10:32) 제자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세상에 알리게 하기 위해서는 악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진리로 보존해 달라고 기도하신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셨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요 17:14) 세상에 보내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해 달라는 것이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거룩하여 지신 방법으로 지켜 주실 것을 기도하신다.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19)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가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늘 아버지를 세상에 알리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 아들이 하늘 아버지의 집으로 가게 되면 그 영광을 제자들이 감당하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제자들을 지키시고 인도하셔야 함이 당연한 것입니다. 지금도 이 땅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자들을 인

너희는 이 땅 통치자에게 어린 양들을 드리되 셀라에서부터 광야를 지나 딸 시온 산으로 보낼지니라

  “너희는 이 땅 통치자에게 어린 양들을 드리되 셀라에서부터 광야를 지나 딸 시온 산으로 보낼지니라”(사 16:1) 이사야 16장에서는 모압이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지시하고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과 화친하여 조공을 바치는 것이다. 조공을 바친다고 함은 종주국에게 속국의 관계가 된다. 즉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이스라엘과 연합을 말하는 것이다. 이방신들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에게로 오라함을 말한다. 그렇게 할 때만이 진노의 심판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데 하지 않게 되면 떠돌아다니는 철새처럼 될 것이다.   그러니 다윗의 장막같이 정의와 공의를 시행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다윗의 장막에 인자함으로 왕위가 굳게 설 것이요 그 위에 앉을 자는 충실함으로 판결하며 정의를 구하며 공의를 신속히 행하리라”(사 16:5) 구체적으로 지시를 하신다. 모압으로 피난민들을 보호해 주라는 것이다. 한낮에 뜨거움을 당하는 자들에게 그늘이 되어 주라 한다. “나의 쫓겨난 자들이 너와 함께 있게 하되 너 모압은 멸절하는 자 앞에서 그들에게 피할 곳이 되라 대저 토색하는 자가 망하였고 멸절하는 자가 그쳤고 압제하는 자가 이 땅에서 멸절하였으며”(사 16:4) 만일 이렇게 하지 않았을 때는 심판이 있을 것인데 기한을 명시하고 있다.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품꾼의 정한 해와 같이 삼 년 내에 모압의 영화와 그 큰 무리가 능욕을 당할지라 그 남은 수가 심히 적어 보잘것없이 되리라 하시도다”(사 16:14)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모압 나라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잘 못한 자가 용서받을 수 있는 속건제사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과 이웃에게 용서를 받고 피해에 대한 보상을 해주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나가는 방식은 같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입니다. 죄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이

모압에 관한 경고라 하룻밤에 모압 알이 망하여 황폐할 것이며 하룻밤에 모압 기르가 황폐할 것이라

  “모압에 관한 경고라 하룻밤에 모압 알이 망하여 황폐할 것이며 하룻밤에 모압 기르가 황폐할 것이라”(사 15:1) 모압이 황폐하여지고 멸절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였기 때문이다. 저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저주를 선포하기 위하여 동방의 발람 선지자를 불렀다. 그 일을 이루지 못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압 여인들과 행음하게 하였다. “그 여자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민 25:2) 그리고 우상을 섬기는데 자기 아들을 불로 태워드리는 그모스 신을 섬겼다. “너는 결단코 자녀를 몰렉에게 주어 불로 통과하게 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 18:21)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앞에서 심판을 받을 때에 무엇이 기준이 될까요? 그것인 십계명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십계명을 읽으면서도 무든 의미인지도 모르고 지키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십계명을 지킬 수 있습니다. 이사야의 글에서 이방 나라의 심판이 있음을 계시하고 있고 예레미야서에서는 계시된 대로 심판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완성이 되어 구원받은 백성들은 기쁨의 날이지만 반면에 강포하고 교만한 자들에게는 저주의 심판의 날입니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긍휼히 여기시며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여 그들의 땅에 두시리니 나그네 된 자가 야곱 족속과 연합하여 그들에게 예속될 것이며

  “여호와께서 야곱을 긍휼히 여기시며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여 그들의 땅에 두시리니 나그네 된 자가 야곱 족속과 연합하여 그들에게 예속될 것이며”(사 14:1) 바벨론이 망하는 날 야곱 족속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에서 돌아온다. 즉 바벨론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구원이 함께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구원하셨던 하나님이 이제는 바벨론에서 구원을 하셔서 그 백성이 돌아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시는 것을 세 가지로 말씀하신다.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고, 이방인들이 이스라엘과 연합을 하고, 이제는 압제하였던 자들을 주관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 약속은 오순절 날에 예루살렘에서 성령 강림이 있은 후에 교회를 통하여 이루셨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 한다. 그리고 약속하신 것을 계승하여 지킨다. 하나님 앞에 교만하였던 바벨론이 망할 때에 온 땅에 조용하고 평온하여 무리가 소리 높여 노래를 한다. 그리고 바벨론은 스올 구덩이에 떨어진다. 그러므로 바벨론의 아들과 후손은 끊어지게 된다. 즉 멸망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멍에가 되었던 앗수르가 망하고, 이스라엘에게 옆구리에 가시 같은 존재였던 블레셋도 소멸을 당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구약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과 역사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을 통하여 확인하는 것은 바벨론이 망하는 날 이스라엘의 구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도 강포한 나라와 사람들은 멸망을 당하고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새 예루살렘에 이르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은 이러합니다. 약속한 땅에 돌아오게 하시고,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하나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로 인하여 천사들까지고 다스리는 권세를 얻는 것입니다. 이 약속한 말씀을 깨닫고 확인하게 되면 감사와 기쁨이 넘치므로 인하여 구원의 은혜를 찬양하게 됩니다.

열국의 영광이요 갈대아 사람의 자랑하는 노리개가 된 바벨론이 하나님께 멸망 당한 소돔과 고모라 같이 되리니

  “열국의 영광이요 갈대아 사람의 자랑하는 노리개가 된 바벨론이 하나님께 멸망 당한 소돔과 고모라 같이 되리니”(사 13:19) 이사야서 7장~12장까지 메시야의 통치가 이루어질 것을 계시하였다. 이제 전우주적인 평화의 왕국이 건설되기 위해서는 열국에 대한 심판이 있게 된다. 열국에 대한 심판에 바벨론이 제일 먼저 거론이 된다. 그 당시에는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부상할 것을 미리 내다보았기 때문이다.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할 당시에는 앗수르가 강대국이었다. 바벨론의 멸망은 내적인 교만 때문이다. 바벨론은 인간의 영광과 교만을 대변하는 상징적 존재이다. 교만이라 함은 무엇인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를 내리시는데 바벨론을 막대기로 사용하셨다. 그런데 바벨론은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자기에 생각으로 바꾸어 온 땅을 멸하려 하였던 것이다. “무리가 먼 나라에서, 하늘 끝에서 왔음이여 곧 여호와와 그의 진노의 병기라 온 땅을 멸하려 함이로다”(사 13:5)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 심판에서 교만한 자와 강포한 자들이 먼저 심판을 당함을 계시하는 것이다. 저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하늘이 떨리며 땅이 흔들리는 격변이 일어날 최후의 심판의 날을 연상시킨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 교만과 강포입니다. 바벨론의 죄가 그러합니다. 하나님께서 막대기로 사명을 주었는데 그 범위를 넘어서 온 땅을 진멸하려했던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맡은 직분과 사명의 범위 안에서 생각하고 판단하여야 합니다. 그 범위를 넘어서면 교만이 되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