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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라”(딤전 5:7)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라”(딤전 5:7)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회에서 성도들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 안에서 세우신 질서와 예의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은 남자 성도에게는 아버지처럼, 나이가 많은 여자 성도에게는 어머니처럼, 젊은이들에게는 형제와 자매에게 하듯 하라 하신다.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딤전 5:2) 과부의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받은 것을 되돌려 주어 보상하라 한다.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딤전 5:4)   참 과부라 함은 나이가 많은 과부들 가운데 자녀들이 없고 친척도 없어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간구와 기도를 하는 여인을 말한다.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딤전 5:5) 성도들의 일상의 삶에서 지켜야 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한 자라야 할 것이요”(딤전 5:10) 이 말씀은 양과 염소를 구별할 때의 기준이 된다. 양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잘 순종한 자로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자들이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 25:40) 과부함은 남편이 없지만 자녀와 손자들이 있음을 말하고, 참 과부라 함은 자녀와 친척이 없어서 오로지 하나님께만 의지하며 소망을 품은 자들을 말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참 과부를 도와주라 한다.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주고 교회가 짐지지 않게 하라 이는 참 과부를 도와 주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창 6: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창 6:7) 여호와께서 아담에게 아벨 대신에 셋을 주셨다. 셋의 족보에는 에녹이 있고 므두셀라가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좋아하여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았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창 6:2) 이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거부하고 사람들의 생각을 따른 것이 된다. 이것을 보신 여호와께서는 그의 영을 저들과 함께 하시지 않기로 하셨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창 6:3) 여호와께서는 저들의 죄악을 심판하시기로 작정을 하셨다. 백이십 년이라는 시간을 주신 것이다. 이제 백이십 년이 지나면 홍수의 심판이 있게 된다. 땅 위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심판이 임한다. 진노의 심판이 진행되는 가운데도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그 은혜를 받은 자가 노아이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 6:8) 하나님의 심판은 이미 므두셀라의 이름으로 이미 계시가 되었었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의 악한 생각과 계획을 돌이키기 위하여 백이십 년이라는 시간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노아는 진노의 심판, 물의 심판을 대비하기 위하여 방주를 짓는다. 노아는 방주를 지으며 하나님의 계획을 전하였고 몸소 행함으로 준비를 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노아의 외침을 외면하고 조롱하였다. 오히려 장가들며 잔치를 즐기었던 것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는 자들의 일상적인 모습에는 심판에 대한 경계나 준비가 없음을 말한다.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 24:39)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진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이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창 5:3)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이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창 5:3)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그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다. “이것을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창 5:1)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하셨다.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창 5:2) 여호와께서 복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의이다. 그리고 거룩함과 선함과 의로움과 도덕과 윤리를 주셨다. 이것을 주시기 위하여 영, 영혼으로 교제하게 하셨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의와 교제를 상실하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들은 범죄로 인한 책임을 져야하며 죄의 오염이 되었다. 이것을 인간의 원죄라고 한다. 아담은 하나님의 명령을 스스로 불순종하여 지은 죄를 후손에게 물려주게 되었다.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이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창 5:3) 그래서 이 땅에 있는 모든 인간들은 원죄를 갖고 태어나게 된다. 왜 그런가하면 하나님을 떠난 상태로서 범죄한 인간의 죄를 지닌 아담의 후손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떠나 사는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함을 볼 수 있다. 창 3장 15절에서 약속하신 원시복음이 점진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알게 된다. 여호와께서는 약속하시고 약속대로 성취된다는 것을 창 5장에서 보여 주신다. 므두셀라가 등장을 한다. 에녹에 낳은 아들이다. 그 이름의 뜻은 ‘그가 죽으면 심판이 임하리라’이다. 그래서 그가 죽던 해가 노아의 홍수이다. 죽음의 심판이 계시된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을 받고 의로운 자는 구원을 받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인류의 조상 아담이 여호와께 무슨 죄를 범하였는지 확인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의로움 거룩함 선함이 없습니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 4: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 4:26)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후손들에게 전해지는 것은 죄의 책임과 죄의 오염이다. 그래서 아담의 후손들이 범죄하며 악한 행동을 하는 것을 창 4장에서 볼 수 있다. 먼저 가인의 죄를 살피면 추수한 곡식을 시간이 지난 후에 하나님께 드렸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창 4:3) 세월이 지난 후에 드린 것이 범죄가 된다는 것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이라 ”(신 23:21) 가인의 자손은 칼과 폭력으로 성을 쌓는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창 4:24) 이것은 하나님과 대적하는 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가인은 살인자로서 살기가 힘들어 하나님께 괴롭다 고백을 한다.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가인을 살인하는 자에게는 벌을 칠 배가 더 받을 것이라 한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창 4:15) 그러나 가인의 자손들은 점점 더 악해져서 여호와 하나님을 따르지 말라 하고 사람을 따르라 한다.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창 4:23) 칼과 폭력을 휘두르는 세상이 되므로 약한 자들을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여호와를 찾기 시작하였다.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 4:26) 아담은 아벨이 죽은 후에 셋을 낳았다. 그리고 셋은 에노스를 낳았는데, ’에노스‘라는 일반명사는 죽을 수 밖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창 3:7)

  “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 창 3:7) 아담과 하와는 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먹었다 .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주신 원의를 읽어버림으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교제를 잃어 버렸다 . 하나님과 교제를 떠난 자들의 현상은 두려움을 느끼고 자신을 숨겼으며 , 부끄러워졌고 나쁜 의미에서는 자신을 의식하게 되었다 .   즉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 그 모양대로 지으셨는데 그것을 상실한 것을 말한다 .   그래서 하나님과 관계를 할 수 있는 영혼을 상실한 자가 되었다 .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로움이나 선함과 거룩함을 알 수도 없고 행할 수 없는 자가 된 것이다 .   하나님과 아담이 맺은 언약을 행위언약이라 한다 . 선악과 먹지 않으면 죽지 않고 영원히 에덴동산에 살게 하신다는 약속이었다 .   그 에덴동산은 부족함이 없었다 . 자연에서 생산되는 각종 과일과 씨 맺는 채소들로 풍성하였다 . 그런데도 죄를 범한 것이다 . 환경이 아니라 아담과 하와의 마음에 하나님을 순종하려는 것이 없었다 .   그래서 뱀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새로운 마음을 창조하여 주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다는 약속을 하신다 . “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 창 3;15) 이것을 원시복음이라 한다 . 최초로 주신 복음이라는 뜻이다 . 하나님은 이 복음을 이루시기 위하여 언약하시고 약속의 자손을 통하여 이루신다는 내용이 구약성경이다 .   하나님의 구원을 통하여 창조의 본래 목적인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 “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 골 3:10)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우리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 그러나 인간의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마 20: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마 20:16)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택함으로 이루어짐을 포도원의 품꾼들 비유를 통하여 확인 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만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베드로의 불만으로 시작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는 하나님의 뜻이 함께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주는 은혜를 말하며,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는 동일한 믿음의 방식으로 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택함을 받은 자들과 한 데나리온을 약속하셨다고 한다. 아브라함도 다윗왕도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신자들도 동일한 방법으로 구원을 받았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의 자비로 구원을 받음을 말하였다. 그런데 본문의 말씀은 구원의 은혜를 받고 난 이후에 믿음의 성장 그리고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것을 말한다. 즉 베드로가 이른 아침에 천국에 들어왔다고 해서 모든 것에서 우선순위를 차지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중에 구원을 받았을지라도 생명의 기쁨을 누리며 감사하는 자를 택하여 쓰신다는 약속이다.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마 20:16) 이 말씀은 앞 장에서도 말씀하셨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마 19:30) 무슨 말씀을 하려하시는가를 자세히 살피어야 한다. 천국에 들어와 있는데 그 기쁨과 감사를 모르는 자들은 결국에는 나중 된 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 말씀을 증명하며 증거하는 자가 사도 바울이다. 그는 사도 가운데 가장 늦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지만 하나님의 구원에 대하여 늘 감사하며 찬양하며 살았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며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니라”(고전 15:10) 그가 고백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며 찬양을 하였더니 하나님께서 함께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마 20: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마 20:1) 본문의 말씀은 ’포도원 품꾼들‘ 비유 가운데 있다. ’비유’라 함은 어떤 현상이나 사물의 특성을 빌려 설명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비유를 통하여 전하시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 이 비유로 말씀을 시작하는 데는 베드로가 불만을 드러냄으로 이다. 그 불만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는데 눈에 보이는 무언가가 없다는 것이다. 즉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다녔지만 기쁨이 없었다. 그 이유는 그가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의 권력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통하여 천국의 실체를 말씀하는 것이다. 천국에 들어 간다함은 전적인 하나님의 택함의 은혜를 받은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마 20:1)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 주어진 약속은 한 데나리온이다. 한 데나리온은 네 식구가 하루 동안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화폐의 단위이다. 오늘 한 데나리온을 얻지 못하면 내일 먹을 양식을 구할 수가 없다. 집 주인의 은혜로 이른 아침, 오전 아홉시, 열두시, 오후 세시, 그리고 오후 다섯 시에 택함을 받은 자들이 있다. 이제 해질 때가 되어 집 주인은 포도원 품꾼들에게 한 데나리온씩 나누어 준다. 그 때에 아침 일찍 들어온 자가 집 주인에게 나와 어찌 오후 다섯 시에 들어온 자와 같이 한 데나리온씩 줄 수 있느냐 하면 따진다.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마 20:12) 그러자 집 주인은 나는 너와 하루 일당으로 한 데나리온을 약속하고 그것을 지키었는데 무엇이 잘못인가 한다.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마 20:13)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포두원이 이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딤전 4:16)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딤전 4:16) 사도 바울은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서신을 보냈다. 보내 이유는 에베소 교회에 담임목사로서 사명과 책임을 잘 감당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바른 복음의 능력이 어떠함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전하였고, 남자는 각 처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맡은 일에 임하고 여자들은 순종하는 마음으로 배우라 하였다. 그리고 바른 교회가 세워지기 위해서는 장로와 집사들 가운데 사람에게 칭찬을 받으며 십자가의 비밀을 가르칠 수 있는 자를 직분자로 세우라 한다. 또한 목사가 교인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를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강단에서 전하는 말씀 가운데 바른 복음에 벗어난 것을 전하여 문제가 생겼다.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건강에 관한 식품을 소개한다든지 또는 육체의 유익한 것을 금하라 한다.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딤전 4:3) 그러면서 바울은 내가 네가 가르쳐준 것을 지킬 것을 권면하고 있다.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딤전 4:6) 가르치는 자가 생각할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소망을 이루셨다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딤전 4:10) 그러므로 약속의 말씀을 읽는 것과 가르치는 일에 전념을 하라 한다.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딤전 4:13) 그리고 목사 안수 받을 때에 배웠던 것을 기억하고 잘 지키라 권면하고 있다. 이 일로서 목사의 직분을 드러내고 성숙한 자가 되어 실족하거나 실수가 없게 하라 한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