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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여 함이니라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여 함이니라”(요 21:31) 요한복음이 기록된 이유가 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보다 삼십 년 뒤에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공관복음(마태, 마가, 누가복음)서에서 다시 강조하여야 할 것을 자세히 정리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이단들이 일어났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메시야인 것을 부인한 것이다. 성경적인 증언은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이다. 그런데 이단들은 사람으로서 성자는 인정하지만 신성을 부인하였다. 또 어떤 이단들은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는데 사람처럼 보였지만 사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다 보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었고 로마정권의 박해로 말미암아 기독교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메시야인 것을 자세히 정리하였다. 세상에 빛으로 오셨고, 기쁨을 충만하게 하기 위하여 오셨고, 기쁨은 영생으로 받아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성전이 되시고, 재림주로 다시 오시고, 생명의 떡이시며, 생수의 강물을 주시고, 진리의 말씀이 되시며, 맹인을 고치시며 영적으로 눈이 먼 자는 하나님을 볼 수 없으며, 양의 문이 되시며, 선한 목자가 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며 부활의 신앙을 주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고, 증인으로 세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경은 각 권마다 기록한 목적이 있습니다. 기록한 목적을 생각하며 묵상을 하는 것이 성경적인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을 자세히 살피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구원자이심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복음서 안에는 많은 기적과 병고침의 역사가 있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게 하기 위함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정리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사 40:11) 이사야 40장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후에 다시 회복될 것을 전하는 말씀이다.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 예루살렘에 돌아올 것을 보여 주신다. 이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먼저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을 것이라 한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사 40:3) 이 계시의 말씀이 성취가 되어 세례 요한이 등장을 한다.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마 3:3) 세례요한이 하는 일은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백성들에게 돌리게 하고 백성들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리게 하는 것이다.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 4:6) 이 말씀은 구약 성경 끝에 있는 말라기에서 세례요한이 올 것을 계시하였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말 4:5) 성경의 말씀을 알지 못하고 깨우침이 없었던 이스라엘은 엘리야를 무시하였고 메시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였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구원받은 백성들은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하는 일은 등불을 들고 서 있는 열 처녀와 같은 것입니다. 기름을 채우고 깨어 근신하며 책임과 사명을 담당하여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이 세상 끝 날에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작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자만이 심판을 피할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사자들로 말미암아 기뻐하여 그들에게 보물 창고 곧 은금과 향료와 보배로운 기름과 모든 무기고에 있는 것을 다 보여 주였으니 히스기야가 궁중의 소유와 전 국내의 소유를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는지라

  “히스기야가 사자들로 말미암아 기뻐하여 그들에게 보물 창고 곧 은금과 향료와 보배로운 기름과 모든 무기고에 있는 것을 다 보여 주였으니 히스기야가 궁중의 소유와 전 국내의 소유를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는지라”(사 39:2) 히스기야가 중병에서 고침을 받은 후에 일어난 일이다. 이 일을 축하하러 멀리 바벨론 왕인 므로닥발라단이 편지와 예물을 사절단과 함께 보냈다. 이것은 거짓 속셈으로 남 유다를 정탐하러 온 것이다. 이에 히스기야는 기뻐하며 사절단에게 보물 창고와 무기고를 사절단에게 모든 것을 다 보여 주었다. 그러자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세 가지 질문을 한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 왔습니까’, ‘무엇을 보았나이까’ 히스기야가 기뻐했던 이유는 저 멀리에서 강대국인 바벨론이 찾아왔다는데 있다. 자신의 명성이 먼 곳까지 알려진 것에 기뻐했다. 그래서 창고에 있는 보물을 다 보여 주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히스기야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교만 죄가 된다.   그리하여 그렇게 바벨론이 좋으면 모든 보물과 네게 태어날 자손까지도 보낼 것이라 말씀하셨다.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옳긴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사 39:6)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히스기야가 교만 죄를 범하였습니다. 교만 죄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자신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와 같은 교만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높임을 당하는 것을 늘 조심하여야 합니다.

오직 산 자 곧 산 자는 오늘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진실을 아버지가 그의 자녀에게 알게 하리이다

  “오직 산 자 곧 산 자는 오늘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진실을 아버지가 그의 자녀에게 알게 하리이다”(사 38:19) 히스기야 왕이 중병으로 죽게 되었다. 그때의 나이는 서른아홉이다. 이사야 선지자가 왕에게 나아가 이제 죽게 되었으니 유언을 하라 하였다. 그러나 히스기야 왕은 심한 통곡으로 기도를 하였다. “이르되 여호와야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니”(사 38:3) 그리하였더니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생명을 십오 년을 연장시켜 주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증거로 해 그림자를 십도나 뒤로 물러가게 하였다. “보라 아하스에 해시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뒤로 십 도를 물러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더니 이에 해시계에 나아갔던 해의 그림자가 십도를 물러가니라”(사 38:8) 히스기야는 죽음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대로 성취하신다. 그러므로 히스기야는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죽음에서 살아난 것이다. 이제 죽음에서 살아난 히스기야는 찬양을 한다. 중병에 걸려 고통을 당하였던 것을 고백하고 있다. 그 내용은 부활의 은혜이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부활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찬양을 하고 있다. “오직 산 자 곧 산 자는 오늘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진실을 아버지가 그의 자녀에게 알게 하리이다”(사 38:19) 즉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자는 오직 죽음에서 부활한 자만이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은혜를 주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구약의 성경에서도 부활의 은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직 죽음 가운데서 산 자만이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함은 그분의 뜻을 따라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았을 받았으면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사 천하만국이 주 만이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옵소서 하니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사 천하만국이 주 만이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옵소서 하니라”(사 37:20)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 산헤립의 공격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를 하게 된다. 그 기도의 내용은 무엇인가? 앗수르 왕이 침략하여 황폐하게 된 나라들의 신들은 불에 던져 졌으므로 그것은 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남 유다를 구원하사 천하만국에 여호와 하나님만이 신이신 것을 알게 해 달라는 기도이다. 이 기도를 들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과 약속하신 것을 지키시기 위하여 구원의 손길을 나타내신다. “ 대저 내가 나를 위하며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며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사 37:35) 하나님의 구속 사역은 하나님의 약속하시고 열심히 이루신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히 이를 이루시리라 ”(사 9:7) 기도의 결과는 앗수르 왕 산헤립이 패배한다.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밤새 십팔만 오천 명을 친 것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십팔만 오천 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사 37:36)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믿음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믿는 것입니다. 그분이 계시하시고 성취하십니다. 하나님의 일하심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은 은혜라고 합니다. 그분이 하시는 일에 쓰임을 받는 것이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즉 계획하신 이도 하나님,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 영광을 받으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께 기도를 하면 당연히 들어주실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힘이며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벧후 1:8) 구원에는 수동적인 구원과 능동적인 믿음이 있다. 수동적인 구원의 은혜는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은혜를 말한다. 반면에 능동적인 믿음은 구원받은 자가 하여야 얻을 수 있는 은혜이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 구원을 받은 자에게는 은혜와 평강의 은혜가 임하게 된다. 그래야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믿음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능동적으로 하여야 할 것들이 있다.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람을 더하라“(벧후 1:5-7) 이렇게 하여야 믿음의 열매가 있는 자가 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얻게 되면 하나님과 화목한 자가 된다. 그러면 사랑, 희락, 화평이 임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는데 기초와 기본이 된다.   그 다음은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이 임하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충성과 자비와 절제의 열매를 맺게 된다. 이와 같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므로 지혜를 얻게 되고 성장을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의 양식이라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면 그분의 성품을 닮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의 명령한 선한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성품이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이 택함을 받아 쓰임을 받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에 합한 자가 바로 죽기까지 충성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성령의 아홉 가지의 열매가 있습니다. 그분과 연합한 자에게는 믿음의 열매가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요 15:8)

여호와여 주의 증거들이 매우 확실하고 거룩함이 주의 집에 합당하니 여호와는 영원무궁하시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증거들이 매우 확실하고 거룩함이 주의 집에 합당하니 여호와는 영원무궁하시리이다”(시 93:5) 시편 93편은 신정시이다. 하나님께서 창조주와 구속주가 되셔서 우주와 역사에 대해 경륜과 섭리를 찬양하는 시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실 것을 확증하는 내용이다.   세상의 왕들은 옷으로 권위를 나타낸다. 왕복을 입고 머리에 왕관을 씀으로 권위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은 어떻게 만왕의 왕으로 나타내시는가? 만군의 여호와로서 능력의 옷과 띠로 권위를 나타내신다. 그래서 세상 나라를 이기시고 통치하시는 능력으로 보여 주셨다. 그 능력은 홍해를 바람으로 가르고 물 벽을 세웠고 택한 백성들을 마른 땅을 걷게 하였다. “높이 계신 여호와의 능력은 많은 물 소리와 바다의 큰 파도보다 크니이다”(시 93:4) 만군의 하나님께서 영원한 나라를 세우시겠다는 약속을 하셨다.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삼하 7:12)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세우셨다. 그의 나라는 이미 임하였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다. 그 나라 백성들을 교회를 통하여 확장하여 가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거룩함이 있는 곳이다. 하나님의 교회에는 세 가지 표지가 있다. 즉 말씀, 성례, 권징이다. 말씀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선포함으로 인한 은혜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대가를 받으므로 영생을 받는다. 성례는 신앙고백으로 인하여 생명의 풍성함을 얻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므로 성장을 한다. 새 생명이 형성하여야 할 것들을 채우는 것이다. 믿음에 덕을 더하여야 하고, 덕을 세우기 위해서는 지식이 필요하고, 지식에는 절제가 있어야 하고, 절제에는 인내가 필요하고, 인내는 경건으로, 경건은 형제 우애로, 형제 우애는 사랑으로 하여야 한다.   이와 같이 하여야 그리스도의 성품의 열매를 맺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것이 너희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는 구원 가운데는 여러 가지 은혜가 있다. 죄 사함, 화목과 평강,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등으로 풍성함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이다. 본문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죄사함으로 인하여 오는 하나님과 화목의 은혜이다. 하나님과 화목한 자에게 나타나는 은혜가 평강이다. 이 평강의 은혜는 성령하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임하는 것이다. 이 은혜가 임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는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 4:18) 하나님의 사랑을 얻은 제자들은 세상으로 보냄을 받는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하시던 일을 제자들이 맡게 됨을 말하는 것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요 20:22)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는 성령을 받아야 한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그리고 십자가의 복음을 전함으로 생명과 사망을 전하게 된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에게는 영생의 복이 있지만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진노의 심판이 임하게 된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 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요 20:2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받은 우리들이 전하는 말로 인하여 생명과 사망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즉 생명과 사망의 기준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향기로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후 2:15)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자로서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에게는 사망의 향기를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 앗수르 왕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각각 자기의 포도와 자기의 무화과를 먹을 것이며 각각 각기의 우물 물을 마실 것이요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 앗수르 왕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각각 자기의 포도와 자기의 무화과를 먹을 것이며 각각 각기의 우물 물을 마실 것이요”(사 36:16) 본문의 말씀은 히스기야가 앗수르 왕인 산헤립에게 성전과 왕궁과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준 다음에 일어난 일이다. “히스기야가 이에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었고”(왕하 18:15)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하였다. 즉 앗수르는 새로이 등장하는 강대국이다. 이 강대국이 유다의 견고한 성읍을 쳐서 점령하므로 히스기야는 겁을 먹고 산헤립의 명령을 따랐던 것이다.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말고 산헤립 왕을 따르라는 명령이다. 산헤립의 부하인 랍사게가 외치고 있다. “이에 랍사게가 일어서서 유다 방언으로 그게 외쳐 이르되 너희는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을 들으라”(사36:13) 이사야서에서는 하나님의 주권을 설명하고 있다. 이스라엘이나 남 유다가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멸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관 하에 있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시험(Test) 하신다. 반면에 앗수르는 유혹(Temptation)을 한다.   즉 여호와 하나님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다. 반면에 마귀는 유혹을 통하여 하나님만 경배하지 못하게 한다. 마귀의 속삭임은 내게 절하면 가나안 땅과 같은 곳을 주되 각각 우물과 포도원을 주겠다고 한다.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 앗수르 왕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각각 자기의 포도와 자기의 무화과를 먹을 것이며 각각 자기의 우물 물을 마실 것이요”(사36:1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시험하시는 것과 마귀가 시험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런데 마귀의 시험마저도 하나님의 시험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귀는 여러분의 정욕과 탐심을 이용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것에 넘어지는 것은 마귀의 간계에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여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여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사 35:10) 시온은 하나님의 성이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의 최종적임 목적지는 시온이다. 그 곳은 참된 안식이 있으며 사라지지 않는 기쁨이 있다. 시온에 이르는 사람들은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고엘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 출애굽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의 노예로 학대와 고통을 당할 때에 구속하셨다.   여호와의 속량함에는 고엘과 희년의 제도가 있다. 고엘은 ’친족의 권리를 행사하다‘라는 뜻으로 종교적인 의미를 포함한다.   고엘을 통한 죄에 속량과 희년의 제도를 통하여 본래의 자리로 돌리게 한다. 이와 같은 법칙과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은혜로 임하는 것이다. 그래서 눌릴 자 억압받는 자들이 해방을 받는 다는 것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사 35:5-6)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는 하나님의 변치 않으시는 은혜와 깊은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깊은 뜻은 예수 그리스도에 와서 온전히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이 묵상하기 위해서는 구약 율법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야 합니다. 구약 없이 신약을 해석 할 수 없고, 신약 없이 구약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책에서 찾아 읽어보라 이것들 가운데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고 제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령하셨고 그의 영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너희는 여호와의 책에서 찾아 읽어보라 이것들 가운데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고 제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령하셨고 그의 영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사 34:16) 이사야 34장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열국을 심판하실 것을 경고하고 있다. 그 때에 가서는 암몬과 모압과 에돔도 여호와의 칼에 죽임을 당한다. 암몬이나 모압이나 에돔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향할 때에는 패망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는 심판이 임할 것인데 그 땅에는 사람들은 없으며 동물들이 암수 짝을 이루어 번성하고 가시 풀이 돋아날 것이다. 특히 본문에서 여호와의 책에서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라 한다. 이것은 계시하시면 성취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이고 여기서 짝이라 함은 에돔에게도 여호와의 심판을 말한다.   그런데 이 말씀을 가지고 교묘하게 해석을 한 이단이 있다. 여기에 많은 기존의 교인들이 빠져들어 사회적으로나 교회적으로도 큰 혼란을 겪었었다.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본문의 앞 뒤의 문맥을 잘 살펴야 하고 원어를 살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어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것이 ‘시험’이라는 단어이다. 야고보서에서는 시험을 당하면 기뻐하라 하면서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 1:2), 그런데 하나님은 시험하지 않으신다고 한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약 1:13) 2절에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은(Test, Trial) 이다. 그러나 13절에서의 마귀가 주는 시험(Temptation) 이다. 시험이라는 단어이지만 근원과 결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모든 이단은 성경 해석을 잘 못하는데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으로 시작되는 해석이 있고, 교묘하게 해석을 하여 교주가 되기도 합니다. 교주가 해석하는 방식은 이렇습니다.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시키기 위하여 성경구절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사 33:2) 이사야 33장에서는 이사야가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 것과 대적들을 향한 경고와 여호와 하나님이 지키시는 안전한 도성에 대하여 전하고 있다. 사람들이 하는 일들의 결국은 속이고 속임을 당하는 것이다. 히스기야 왕과 앗수르 산헤립 왕과 언약을 하였지만 예루살렘을 포위당하여 위기를 맞았다. 이사야는 하나님께 이러한 자세로 기도를 하였다. 어린 아이가 부모를 의지하듯이 참으로 무기력한 상태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소망하고 믿음으로 인내해야 한다. 앗수르가 남 유다를 공격한다고 할지라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들에게는 풍족한 사랑과 복된 삶을 영위해 간다.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견고한 바위가 그의 요새가 되며 그의 양식은 공급되고 그의 물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사 33:16) 하나님이 왕이 되시는 나라는 흔들리지 아니하고 견고한 터 위에 세워진다. 이와 같은 은혜는 이스라엘에게는 간절히 바라는 소망이다. 왜냐하면 유목민으로서 이리저리 옮겨 다녀야 하고 이방나라의 침입을 받아야 하고 포로로 잡혀갔던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람들의 생각으로 하는 것이 옳은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유 없이 이웃으로부터 학대를 당하기도 하고, 강한 자는 속이면서도 속임을 당하지 않습니다. 또 선한 일을 하면서도 또 이웃에게 속임을 그치어도 학대와 속임을 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가 관영하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높은데 계셔서 다보고 계셔서 공의로운 재판을 해 주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지극히 존귀하시니 그는 높은 곳에 거하심이요 정의와 공의를 시온에 충만하게 하심이라”(사 33:5) 즉 사람들이 행하였던 대로 보응의 심판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사는 자들에게는 하늘의 위로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마 28:10)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동안 무덤 가운데 계시다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나셨다. 삼일 째 되는 날 아침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찾았다. 하지만 무덤은 비어 있었고 천사가 임하여 전하기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갈릴리로 가셨다고 한다. 그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하러 가는 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인들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이다. 갈릴리로 가라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에 무덤을 막았던 돌 위에 서 계셔서 영광을 받으시면 될 것을 왜 갈릴리로 가셔야 하는가를 생각하여야 한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한 죄사함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더 큰 영광으로 영광을 받으시겠다는 것이다. 갈릴리로 가셨다함은 이제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려 함이다. 즉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모든 지혜를 가르치시고 그것을 깨달은 자들을 통하여 영광을 나타내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와 교회를 통하여 충만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영광을 교회와 우리들을 통하여 나타내시기 위하여 갈릴리로 가신 것입니다. 부활하신 돌 무덤 앞에 계시지 않은 이유입니다. 또한 갈릴리로 가셨다고 함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에게 보여 주시기 위함입니다. 부활의 영광이 나를 통하여 세상에 알려지는 사명과 책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눅 24:32) 본문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에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때에 일이다. 두 제자는 글로바와 다른 제자이다. 그들은 메시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실망하였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로마로부터 해방시켜 주실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갈릴리로 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두 제자는 열심히 토론을 하였고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과 동행을 하게 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을 하여 주셨다. 그 때에 제자들의 마음이 뜨거웠다고 한다. 마음이 뜨겁다 함은 불을 켠다는 의미이다. 즉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마음을 밝혀 주셨음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은혜를 입은 자들에게는 성령이 함께 한다. 성령은 일곱 개의 이름을 갖고 계시다.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 와 총명 의 영이요 모략 과 재능 의 영이요 지식 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려니”(사 11:2) 부활의 은혜를 입은 자는 성령이 역사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가 된 것이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일 수 있는 자가 되었다. 구원받기 이전에는 하나님을 말씀을 들어도 보아도 무슨 말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놀라운 계획까지도 알게 된 것이다. 이것이 부활의 은혜이다. 이 은혜를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주셨다. 그 두 사람은 슬픈 빛을 띠고 있었지만 마음이 변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제자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전하게 되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부활절 주일 아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하여 우리도 부활의 믿음을 얻었습니다. 부활의 은혜는 죽은 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은 즉시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는 자가 되었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사 53:8) 예수 십자가에 죽으심은 성부 하나님의 주권으로 우리의 모든 죄악을 그분에게 담당하셨다. 어리석은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였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부인하고 십자가에 못 박으라 외쳤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외모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할 조건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건축자가 버린 모퉁이 돌이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생각에는 메시야는 고난을 받거나 가나하게 살 수 없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고난을 당하시는 것은 그분이 잘못을 해서 당하는 것이라 판단을 하였다. 이렇게 어리석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주권으로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이 십자가 사건이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심에 대하여 나의 죄 때문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그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있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사 53:8)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을 얻은 사람들은 그분의 승리를 함께 나누는 자들이 되는 겁니다. 십자가의 승리의 탈취물은 부활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증거하라고 교회에 맡기셨습니다. 그 증거를 예배를 통하여 감사와 찬양을 돌려야 하고 삶속에서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사 32:1) 예루살렘의 뜻은 의의 터 위에 평화가 있다는 것이다. 이제 새 예루살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우질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 나라가 세워지면 정의와 공의가 펼쳐지게 된다. “그 때에 정의가 광야에 거하며 공의가 아름다운 밭에 거하리니”(사 32:16) 하나님의 통치가 세워지면 화평의 열매가 맺힌다.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와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사 32:17) 예루살렘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강림하셔서 대적과 싸우시고 백성들을 호위하며 건지며 구원하신다.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가 보호함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그것을 호위하며 건지며 뛰어넘어 구원하리라 하셨느니라”(사 31:5)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예루살렘으로 피하는 자들에게는 평안을 누릴 수 있다.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사 32:2)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눅 2:14)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은 우리들의 죄사함을 위한 것뿐만 아니라 평화의 나라를 세우러 오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평안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들에게 주셨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평안을 얻었다 함은 그분의 인도와 보호하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흔들리고 갈라지는 이 땅에서 견고한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기뻐할 수 있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할 일이 많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