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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레위인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맡기라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아론에게 맡겨진 자들이니라”(민 3:9)

  “너는 레위인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맡기라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아론에게 맡겨진 자들이니라”(민 3:9)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구조사를 하라 하셨다. 그런데 레위 지파의 수는 세지 말라 하셨다. “너는 레위 지파만은 계수하지 말며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계수 중에 넣지 말라”(민 2:49) 그러시면서 그들에게는 성막에 관한 일을 맡기게 하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증거의 성막과 그 모든 기구와 그 모든 부속품을 관리하게 하라 그들은 그 성막과 그 모든 기구를 운반하며 거기서 봉사하며 성막 주위에 진을 칠지며”(민 2:50) 또 말씀하시기를 레위인은 이스라엘의 모든 맏이를 대신하여 내것이라 하셨다.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 태를 열어 태어난 모든 맏이를 대신하게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민 3:12)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열두 지파 가운데 무엇 때문에 레위 지파를 택하셨을까? 그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을 가진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모세가 하나님께 두 돌판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 갔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보이지 않자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리의 하나님이라 하며 예배를 드리고 뛰어 놀았다. 이 광경을 보았던 모세는 성질에 두 돌판을 던져 깨트렸다. 그리고 하나님의 편에 있는 자들은 나아오라 한다.  그때에 레위 자손이 다 모여 모세에게로 나갔다. 모세가 명령하기를 우상숭배를 한 자들은 그 형제와 친구를 막론하고 죽이라 한다.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 하셨느니라”(출 32:27) 레위 사람들은 모세의 지시를 따라 삼천 명가량을 죽였다.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가량이 죽임을 당하니라”(출 32:28) 즉 여호와 하나님의 분노와 심판에 레위

이상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조상의 가문을 따라 계수된 자니 모든 진영의 군인 곧 계수된 자의 총계는 육십만삼천오백오십 명이며”(민 2:32)

  “이상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조상의 가문을 따라 계수된 자니 모든 진영의 군인 곧 계수된 자의 총계는 육십만삼천오백오십 명이며”(민 2:32) 민수기를 통하여 확인하는 것은 광야에서 훈련과 시험을 거쳐야 가나안에 들어간다. 즉 하나님이 인도하셔야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심성이 부패한 존재이므로 여호와 하나님께 반역하는 것이 있다. 이것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민수기의 말씀이 존재한다. 칼빈의 교리 가운데 전적인 부패가 있다. 무슨 말인가하면 사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도가 필요함을 깨닫게 한다. 바른 믿음은 인간의 무능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야함을 배운다. 왜 그런가 하면 구원의 시작과 끝이 하나님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택함을 받은 백성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 감사하고 인내하며 용기를 갖아야 한다. 시련과 훈련을 하시는 이유는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하기 위함이다.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히 12:5) 민수기의 말씀을 통하여 확인하여야 할 것은 우리 안에 반역의 기질이 있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 가장 안전하다는 것이다. 가나안과 천국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함을 깨달아서 말씀에 순종하여야 한다. 즉 인간의 반역의 기질이 순종으로 바뀌게 끔 훈련과 인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광야 1세대가 가나안 입성에 실패를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광야 2세대를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신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택함을 받은 백성이라면 훈련과 징계를 받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인내와 오래참음으로 견뎌야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이 우리들에게 교훈의 거울입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같이 즐겨 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민 1: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민 1:1) 민수기의 내용은 인구 조사와 반역의 내용이다. 애굽을 나와 시내산에 머물고 있었던 백성들은 가나안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각 지파별로 인구조사를 하였다. 인구 조사는 출애굽한지 둘째해 둘째달 첫째 날에 실시하였다. 그 결과 레위 지파의 이십세 이상 된 자의 수를 빼고 총계는 육십만삼천오백오십명이었다. “계수된 자의 총계는 육십만삼천오백오십 명이었더라”(민 1:46) 이스라엘의 수는 가나안을 정복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고 있었지만 여호와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실패하였다. 즉 출애굽 1세대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 불순종뿐만 아니라 반역을 하였기 때문이다. 저들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를 먹으면서 메추라기 고기를 씹으면서도 불평이 가득하였다. 또한 아론과 모세의 리더쉽에 도전을 하기도 했다. 그 결과 불에 타 죽고 땅이 갈라져 죽어야 하는 하나님의 진노를 보았다. 광야 1세대가 여호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실패한 모습은 처절하다. 이 모습을 광야 2세대와 신자들에게 보여주며 교훈하는데 목적이 있다. 즉 순종을 할 때는 하나님의 복이 임하지만 불순종할 때에는 저주와 심판이 있다는 것이다. 불순종한 광야 1세대는 갈렙과 여호수아를 빼고는 다 광야에서 죽음을 당하였다. 광야에서 죽은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보면서도 회개하지 않았다. 반면에 불순종하는 백성들에게 원망을 들으면서도 반석에서 생수를 터트려 주신다. 이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인들을 구원하여 주실 계시이다.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민 20:11) 여호와께 반역을 하며 악하고 악한 죄를 범하는 백성들에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구원을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또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십일조를 무르려면 그것에 오분의 일을 더할 것이요”(레 27:31)

  “또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십일조를 무르려면 그것에 오분의 일을 더할 것이요”(레 27:31) 십일조는 여호와 하나님의 몫이다. 그러므로 서원하여 드릴 수 있는 예물이 아니다. 그런데 규례를 정하심은 세상의 모든 것이 여호와의 것임을 인식시키기 위함이다. 땅에서 나는 모든 것은 여호와의 것이다. “그리고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레 27:31) 모든 소나 양의 십일조는 목자의 지팡이 아래로 지나 가는 열 번 째의 것마다 여호와께 드려야 했다. “모든 소나 양의 십일조는 목자의 지팡이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 번째의 것마다 여호와의 성물이 되리라”(레 27:32) 만일 열 번째의 것이 다리를 저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대로 드리면 된다. 그러나 드리는 자가 온전한 것으로 드리기를 원하면 바꿀 수 있다. “그 우열을 가리거나 바꾸거나 하지 말라 바꾸면 둘 다 거룩하리니 무르지 못하리라”(레 27:33) 온전한 것을 여호와께 드리게 되면 다리를 저는 짐승은 제사장에게 드리게 된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주신 계명이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이니라”(레 27:34) 여호와께 바친 것은 온전한 것이 됨으로 무르지 못함을 각성시키는 것이다. 이 땅의 모든 것이 여호와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믿음이 없는 자들은 자기 생각대로 문제를 일으킨다. 서원하여 약속한 것도, 첫 태생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도, 십일조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서 어떤 사람들은 즉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없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여호와의 명령과 상관없이 자기의 목소리를 높인다. 그 목소리란 세상의 잣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려 하는 것이다. 교회가 자기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떠나면서 요구하는 것이 그동안 헌금한 것을 돌려달라는 것이다. 또는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마 8: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마 8:17) 예수 그리스도가 병을 고치시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피려 한다. 사람마다 육체에 병이 있듯이 영혼이 병들어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에게는 육체를 고치시는 능력이 영혼을 고칠 수 있음을 말한다. 즉 영혼의 고침을 받아야 사람이 온전하여 질 수 있다.  사람은 죄로 말미암아 생각하는 것마다 허망한 것을 따른다. 이것을 미련한 마음이라 한다. 사람이 미련한 마음대로 살다가 보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롬 1:18) 사람들은 지옥이 있음을 알면서도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자신이 만든 우상숭배를 하고 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23) 이렇게 자기의 고집으로 사는 자들에게 준비된 것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롬 2:5) 그런데 이러한 자들에게 좋은 소식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피하며 화목할 수 있는 복음이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롬 1:16) 복음은 죄인을 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분의 능력이 이렇게 우리들에게 임하였다. 죄인들이 받아야할 죄값을 대신 치루어 주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에는 죄사함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은혜도 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누운 것을 보시고”(마 8:14)

  “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누운 것을 보시고”(마 8:14) 예수 그리스도께서 산에서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시고 내려오셨다. 그리고 병자들을 고치기 시작하셨다. 나병환자, 중풍병자,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치시고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시고 모든 병자를 고치셨다.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니”(마 8:16) 이어서 뒤에 나오는 말씀에도 이적을 행하시며 병자들을 또 고치신다. 이 병고침에 관심과 집중을 하다가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본질이 무엇인지를 헷갈리게 한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이 땅에 온 목적은 죄인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이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마 20:28) 그리고 바리새인의 서기관에게도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셨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막 2:17) 그렇다면 예수님은 많은 이적과 표적을 행하셨는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기 위함이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여 아버지의 영생을 주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그렇다면 믿음의 초점을 어디에다가 맞추어야 하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고 마지막 날에 부활에 이르는 은혜에 맞추어야 한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4) 야고보서를 묵상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시대의 배경을 이해하여야 한다. 스데반이 돌로 맞아 죽은 사건이후에 예루살렘에 핍박이 시작됐다. 흩어진 유대인이며 그리스도인들에게 격려와 위로의 편지를 보낸 것이다. 각 지방에서 모여 믿음의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일어나는 일들속에 믿음의 교리를 지킬 것을 권면한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약 1:1) 오늘날도 이민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는 궁핍한 상태에서 시작을 하였지만 시간이 흐르면 빈부의 격차도 벌어지고 형식적인 믿음을 붙잡고 있다. 갑자기 졸부가 되어 자랑하기 시작하여 공동체에 모일 때에 금덩이를 몸에 걸치고 등장을 하였다.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납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약 2:2) 또 졸지에 무역상이 되어서 이 도시 저 도시를 떠도는 사람도 있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악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약 4:13) 시험을 당하는데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당하는 것에 마음에 상처가 더 크다. 그래서 시험을 이기는 방법이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것이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 가난한 자들은 고난과 서러움이 있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하나님의 의를 전가받은 자로서 여호와의 율법을 잘 지키라 한다. 그리고 부자가 된 교만한 자들에게는 계명을 지키지 않아서 하나님 앞에 범죄함을 깨닫게 한다.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약 4:11) 사랑하는 성도여

내가 너희에게 철따라 비를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나무는 열매를 맺으리라”(레 26:4)

  “내가 너희에게 철따라 비를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나무는 열매를 맺으리라”(레 26:4)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는 상과 벌이 있다. 순종하는 자에게는 상이 있고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벌이 있음을 말한다. “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레 26:3) 하나님의 은혜가 하늘에서 내려옴으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 주신다. 그런데 그 복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첫째는 풍성한 은혜이다. 밀 수확은 3월 한 달동안 타작을 한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포도를 수확할 때까지 타작을 하게 하신다. “너희의 타작은 포도 딸 때까지 미치며 너희의 포도 따는 것은 파종할 때까지 미치리니 너희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너희의 땅에 안전하게 거주하리라”(레 26:5) 포도열매 수확도 가을 곡식을 파종할 때까지 따게 한다는 것이다. 7월에서 11월까지 포도열매를 주심을 말한다. 즉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생하게 표현한다. 오늘날에도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지속적으로 영적인 생명의 단비를 내려 풍성한 삶의 열매를 맺도록 하시는 표현이다. 둘째는 평화 보장의 약속이다. 살롬은 번영 가운데 평안하고도 안전하며 완벽한 조화를 이룬 상태를 말한다.  평화의 보장은 모든 위협적인 요소 곧 악한 자나 사나운 짐승 그리고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는 것이다.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너희가 누울 때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사나운 짐승을 그 땅에서 제할 것이요 칼이 너희의 땅에 두루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레 26:6)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십세 이상 되면 일년에 세 번을 예루살렘에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면 국경을 지켜야 할 사람들이 없으므로 그 땅에 외침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 땅을 지켜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이방 나라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 번씩 여호와 네 하나님을 뵈려고 올 때에 아무도 네 땅을 탐내지 못하리라”(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