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013의 게시물 표시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오색의 색깔과 높고 푸른 하늘이 지나가면 잿빛 하늘이 온다 . 풍요로움과 풍성함이 있던 자리는 허전하고 쓸쓸함이 찾아온다 . 그리고 쓸쓸함이 변하여 내일에 대한 염려와 근심으로 변한다 . 이때가 되면 흔히 가을을 타는 남자들의 증상이 나타난다 . 그래서 떠나가는 시간을 잡으려고 무드를 잡지만 매서운 바람을 앞세우고 찾아오는 초겨울은 어김없이 온다 .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있는 성품이 있다 . 각각 사람의 성품이 다르다 . 그래서 어떤 사람은 낙천적인 성품으로 또 어떤 사람은 소심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 그러나 알 수 없는 미래에 앞에서는 동일하게 근심하며 염려를 할 수밖에 없다 .   그런데 내일에 대한 염려와 근심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 그런 사람들은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이다 . 더 이상 자신의 성품에 지배를 받지 않는다 . 거듭나지 아니한 자들은 내일의 염려를 생각하니 괴로운 것이다 . 내일의 염려가 오늘을 두렵게 한다 . 그래서 머리를 마취시키기 위해서 알코올을 부어서 채운다 .   세상이 나를 막아도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의 능력은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 세상의 관원들이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살리셨고 , 유대인이 돌로 치고 태장으로 몽둥이로 내리쳤지만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겨냈던 바울이 있다 .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자라면 그의 성령을 받았다 .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자가 되었다 . 그러면 주님이 함께 하여 주심을 믿을 수 있고 능력을 나타낼 수 있다 . 그래서 우리는 내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   그러나 생각없이 이리저리 널뛰는 자가 아니다 . 근신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 주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을 생각하여 판단하고 절제하는 마음이다 . 하나님을 사랑하고 ,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 교회의 일을 사랑하지만 세상의 썩어 없어질 것들은 사랑하지 않는다 .   차디찬 겨울바람보다 먼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한 동안 언론 지상에 ‘ 슈퍼 갑 ‘ 이라는 단어가 유행을 했었다 . 계약문서를 작성할 때에 ’ 갑 ’ 이 제시 하는 조건에 ‘ 을 ‘ 을 따라야 하는 것이 관례이었다 . 그런데 ’ 을 ‘ 이 ’ 갑 ‘ 이 제시하는 조건에 따를 수 없다고 하여 대항한 것이다 . 그런데 세상이 변하여 ’ 갑 ’ 이 ‘ 을 ’ 의 요구 조건을 들어 주게 되었다 .   그러나 세상을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것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인과의 관계이다 . 이것은 변할 수가 없다 . 교회 안에 모인 그리스도인들은 ‘ 을 ’ 의 관계를 갖고 모여 있다 .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의 모임 속에서도 ‘ 갑 ’ 과 ‘ 을 ’ 의 관계가 성립이 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   성경 말씀 가운데 죄를 범한 자를 용서하는 문제가 나온다 . 처음에는 죄를 범한 사람과 일대 일로 만나고 , 그래도 회개하지 않으면 두세 사람을 데리고 가고 , 그래도 듣지 아니하면 교회 앞에 알리어 교회가 묻고 , 그래도 회개치 않으면 출교를 시키라는 것이다 .   범죄한 자에게 세 번의 기회를 준다 . 이것은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권리가 된다 . 비록 죄를 범하였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이다 . 그러니 교회 안에 모인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도 ‘ 갑 ’ 의 위치에 있지 않다 .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가 범죄를 하면 나는 ‘ 갑 ’ 의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잘못을 생각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 그리고 죄의 무서움과 결과가 무엇인지를 관찰하라는 것이다 . 또한 범죄한 자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어 함께 아파해야 한다 . 이것이 형제 사랑이다 .   그리고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를 안다면 ‘ 갑 ’ 의 위치에 설 수 없다 . 내가 죄사함을 받은 가치는 금 일만 달란트이다 . 그러나 형제의 잘못은 백 데나리온이다 .   하나님의 명령 속에 범죄한 자가 용서를 구하면 용서를 받는 자는 반드시 용서를 해 주어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월 달에 비가 내리면 왠지 쓸쓸하고 울적한 마음이 든다 . 지금 이곳은 비가 자주 내리고 있다 . 그래도 향내 나는 따스한 커피가 있고 , 정다운 사람이 옆에 있으면 푸근한 마음이 든다 . 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이렇다 . 비가 내리는 가운데도 하늘 높이 바삐 날아가는 새들도 있고 ,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새는 슬피 지적이고 있다 . 그리고 아직 떨어지지 않은 나뭇잎들은 빗줄기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 .   이 비가 지나가면 낙엽이 쌓일 것이고 차가운 겨울이 성큼 다가올 것이다 . 가을을 서둘러 정리하기 위하여 비가 내리고 있다 . 그래야 겨울이 시작되고 또 다시 봄이 온다 .   혹독한 겨울이 다가오면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며 반성과 깨달음과 감사를 생각나게 한다 . 그리고 깨달은 새로운 마음으로 봄을 기다린다 . 올 해보다는 내년에는 더 많은 풍성함을 위하여 다짐을 하게 된다 . 가을 추수로 곡간 안에 비어있을 수도 있고 , 꽉 차 있을 수도 있다 . 그 결과에 따라서 겨울의 삶이 고통이냐 아니면 기쁨인가가 결정된다 .   신자들의 믿음의 생활도 마찬가지이다 . 영적인 열매를 많이 거둔 사람들은 차디찬 혹독한 고난과 시험이 와도 이겨낼 수 있는 여유가 있다 . 이 땅 위에 있는 것들은 안전하지 않다 . 땅이 갈라지고 산이 흔들리고 정권이 바뀌면 법도 바뀌는 세상이다 .   이러한 세상에서 살다가 보면 흐름에 따라 살 수밖에 없다 .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흐름에 거슬러 사는 사람들이다 . 즉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으로 사는 것이다 . 세상의 정책은 빚을 지며 살라고 하여 크레디 카드를 아무에게나 내어 준다 .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사람들은 곳간에서 열매를 채워 놓고 사는 사람들이다 .   미리 준비하며 사는 자들이다 . 육일 동안 벌어서 칠일을 살고 , 육년 동안 농사를 지어서 칠년을 살아야 한다 . 그러니 그리스도인들은 부지런하여야 한다 . 그래서 오늘을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다 . 오늘은 어제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II

  이 땅위에 밝혀진 것 가운데 너무나 선명하게 밝혀졌지만 , 왜곡되어 많은 오해를 받고 있는 곳이 교회이다 . 즉 교회는 어떤 곳이며 무엇을 하는 곳이냐는 것이다 . 이것을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대로 알아야 한다 . 사람의 생각으로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 왜냐하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피를 흘리시고 세우신 곳이기 때문이다 .   좀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지금은 교회가 위기를 맞이하여 계속 존재하느냐 아니면 없어지느냐 하는 문제로 자유자제로 말들을 하고 있다 . 그러나 다 틀린 말이다 . 교회는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에 결코 망하거나 문을 닫는 일은 없다 .   그것을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이 택함을 받았지만 죄의 본성으로 인하여 진실하지 못하고 정직함에서 실족한 것이다 .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못함에 있다 . 그렇다고 해서 교회가 망하는 것은 아니다 .   교회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롭게 된 자들이 모이는 곳이다 .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주만물을 창조하셨다 . 그리고 인간을 창조하셨다 . 그리고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다 . 그러나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인간과 만물이 진노의 저주를 받게 되었다 .   그래서 지금 이 땅에 있는 모든 만물은 죄의 고통을 받고 있다 . 그 가운데 있는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이다 . 죄로 타락한 인간을 새롭게 하고 또한 죄로 저주를 받은 우주만물을 회복시키기 위함이다 . 즉 새로운 세상을 만드시기 위함이다 .   이 새로운 세상을 만드시는 일을 교회를 통하여 하시려 하는 것이다 . 즉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시키시려 하신다 . 그러기 위해서는 죄로 타락한 인간을 새롭게 하기 위하여 다시 태어나게 해야 한다 . 이것이 중생의 역사이다 . 영어로 Born Again 이라 한다 .   새롭게 태어난 자들이 모이는 곳이 교회이다 . 그래서 교회에 모인 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법과 규례를 배워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의 생활을 하면서 알아두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다 . 그래서 우리들에게도 거룩할 것을 요구하신다 . 즉 거룩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내용이다 .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다 .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주시고 시내산 앞으로 인도하였다 . 그리고 하나님이 누구인지 자신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개하셨다 . 그리고 그들에게 법을 주셨다 . 그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기 위함이다 .   모든 나라는 법이 있다 . 그 나라의 법을 보게 되면 어떤 가치관으로 지향하려 하는지를 알 수가 있다 . 그러니 그 나라의 백성이라 하면서 그 법을 모른다면 수준이 낮은 백성이 되는 것이다 . 하나님이 정하신 법은 의식법과 사회법이다 . 즉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제사를 드리며 교제하는 법이며 ,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는 법이다 .   법의 모든 내용에 하나님의 뜻 , 사랑 , 성품 , 자비 , 긍휼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 하나님은 거룩한 것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하여 레위인을 구별하셨다 . 그들을 택하여 회막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하여 봉사를 하게 하였고 , 또한 이스라엘 자손이 성소에 가까이 할 때에 그들 중에 재앙이 없게 하려 하심이다 .   왜냐하면 성소 안에 있는 기물들을 거룩하게 다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 만일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이 아니면 벌을 받는다 . 그래서 레위인을 택하여 훈련을 시키고 책임과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다 . 레위인들이 이렇게 할 수 있는 데에는 분명한 것이 있다 . 하나님의 뜻과 정하신 것을 이스라엘 백성보다는 더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을 교회라고 한다 . 그런데 성경에서는 교회를 다른 단어들을 사용하여 부르기도 한다 . 하나님의 나라 , 하나님의 권속 , 아버지의 집 , 천국의 모형이라 한다 . 그런데 이렇게 다양하게 부르는 데는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지난 주중에 가을 부흥 성회를 하였다 . 한국교회는 전통적으로 봄과 가을에 부흥회를 한다 . 그런데 요즘은 부흥회를 잘 안 한다고 한다 . 그 이유는 득보다는 실이 많기 때문이라 한다 . 그리고 인터넷에 넘쳐나는 설교 동영상으로 인하여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기도를 할 때에 영육간에 강건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다 . 농부는 육의 양식을 위하여 밭에 씨를 뿌린다 . 봄철에 씨를 뿌리고 나면 농부는 잠시 한가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 . 그 때에 영의 양식을 위한 씨를 뿌린다 . 그것이 봄 부흥회이다 .   성경을 보면 농부와 씨 뿌리는 비유가 많이 나온다 . 그것은 우리들의 삶 속에서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 농부는 씨를 뿌릴 때에 얻을 열매를 생각한다 . 생각 없이 아무 씨나 뿌리는 농부는 없다 .   부흥회를 하고도 열매가 없다는 것은 생각을 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 담임목사는 일 년 동안 양 떼들을 위하여 어떻게 목양을 할지를 미리 생각한다 . 어떤 말씀을 전할 것인지 , 어떤 열매를 맺게 할지를 미리 준비해 둔다는 것이다 .   그런데 부흥 강사를 초청하였는데 이미 뿌린 씨와 다른 열매를 이야기하면 효과가 없게 된다 . 대게 부흥 강사를 섭외할 때에 유명 인사를 초청하는 경우가 많다 . 그 이유는 담임하고 있는 교회를 크게 성장시켰다는 공적 때문이다 . 그러나 토양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내 밭의 특성을 잘 아는 강사를 초청하여야 한다 .   그리고 가을 부흥회도 한다 . 농부가 가을 추수를 마치고 이제는 영적 추수를 하기 위함이다 . 봄에 씨뿌린 것의 결과를 확인하고 열매로 인한 기쁨을 얻는 것이다 . 담임목사가 씨를 뿌리면 부흥 강사는 비료를 주고 농약을 쳐서 병충에 피해를 당하지 않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 .   그러니 부흥강사는 초청한 교회의 담임목사가 목회를 하는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 . 그런데 많은 부흥강사들이 자기 자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