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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창 30:2) 야곱의 아내인 레아가 아들 여섯을 낳았다. 그러나 라헬이 야곱에게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한다. 그러자 야곱은 당신에게 아들을 주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시라 한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라헬에게서 요셉이 출생을 한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인물은 출생에서부터 간섭을 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려 한다. 왜 이렇게 하려 하시는가? 사람에게 자격 조건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불러 내셔서 쓰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은 죽음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찾아 오셔서 역사하신다. 라헬은 야곱에게 사랑을 받고 있지만 아이를 낳지 못하는 가운데 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은 동일하시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그래서 깨닫는 것은 성경적인 신앙은 나로부터 시작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죽음 가운데 있는 자에게 찾아 오심으로 시작이 됨을 이미 창세기를 통하여 전하고 있다. 영적인 아들 이삭을 통하여, 엄마의 태중에서 야곱이 선택을 받았고, 야곱과 라헬이 아들을 낳으려고 노력을 하였지만 사람의 힘으로는 안 되는 상황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일일이 간섭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우리들이 얻은 구원도 나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시작이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2019년 12월 31일, 올 한 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우리들의 믿음을 지켜 주신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은혜가 우리들이 죽음 가운데 있을 때에 찾아 오셨습니다. 이것이 참으로 놀라운 일이고, 기가 막힐 일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에 감격과 깨달음이 있어야 믿음이 성장을 합니다. 새벽 예배를 통하여 은혜와 깨달음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

여호와께서 자기를 애굽에 알게 하시리니 그날에 애굽이 여호와를 알고 제물과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경배할 것이요 여호와께 서원하고 그대로 행하리라

“여호와께서 자기를 애굽에 알게 하시리니 그날에 애굽이 여호와를 알고 제물과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경배할 것이요 여호와께 서원하고 그대로 행하리라”(사 19:21) 우리들은 이스라엘과 애굽 이야기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이스라엘 편에 서게 된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 편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애굽이 멸망한다는 이야기에 그리 싫지만은 않다. 그러나 성경에서의 심판은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근거가 된다. 결국에는 이스라엘도 심판을 받았고 멸망을 하였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애굽 땅에도 구원자를 보내시겠다는 약속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와 밖에 있는 자로 나뉘게 된다. 애굽 땅에서 구원을 받은 자들도 교회로 모이게 된다. 그런데 교회는 아무나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도들이 세웠고 선지자의 글을 가르치는 곳이어야 한다. 또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던 자만이 세울 수 있었다. 그 당시에도 이단이 난리를 쳐서 교회를 세울 수 있는 기준을 정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자들이 모인다. 교회 안에는 민족, 인종, 신분의 차별이 없다. 오직 조건은 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았고 그분을 나의 구세주라고 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것이다. 그리고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고 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 땅위의 사람들은 두 종류로 나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교회와 세상으로 구분이 됩니다. 세상의 사고와 가치는 자기중심적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사고와 가치는 하나님 말씀이 중심입니다. 모든 생각과 판단을 하나님의 생각으로 해석을 합니다.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면 말씀을 기준하여 따르게 됩니다. 지금은 애굽 땅만이 아니라 지구촌 모든 곳에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 모든 곳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능력에 영광과 감사의 찬양을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구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 요 13:35)   2019 년도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게 되었다 . 올 한해에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가 너무 많았다 . 한 해를 보내면서 어떻게 살았는가를 생각하려 한다 .   신자의 삶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다 . 본문의 말씀은 그분께서 아버지께로 올라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당부하였던 말씀이다 .   이것을 지상 최대명령이라 한다 . 첫째는 서로 사랑하라 , 둘째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 이다 .   오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과 지상 최대의 명령은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 이 문제의 중요성을 살피지 못하면 십자가의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   이 두 가지의 문제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진노의 심판을 받았다 .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시면서 그들에게 율법을 주셨다 . 율법의 내용에는 이웃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식을 주셨다 . 곡식을 거둘 때에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고 포도원의 열매도 다 따지 말며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고 하셨다 . 또한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고 속이지 말고 , 도둑질하지 말라 하셨다 . 그런데 그들은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사랑하지 않았다 .   그리고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는 일에 순종하지 않았다 . 약속의 땅은 이방나라들로 둘러싸인 땅이다 . 그곳에서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잘 지키게 되면 이방의 나라들도 샘을 내어 하나님을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 그러나 그들은 이방나라들 보다도 더 악을 행하였다 . 오히려 이방신을 섬겼다 .   그래서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지 않은 이스라엘에게 사랑의 징계로 때리시고 새언약을 통하여 회복시키기로 하신 것이다 . 이 약속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야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야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 4:19) 연말연시를 맞이하여 신자들의 믿음이 흔들지 않고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영적인 것을 생각하여야 한다. 신앙은 감정의 변화로 인한 결단이나 열정적인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외적으로 예배에 열심히 참석을 하고 가난한 자에게 구제를 하지만 그것도 올바른 것이라 할 수 없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지역에 있는 교회들에게 서신을 보내고 있다. 그 지역에 있는 신자들이 자신의 열정적인 결단으로 금욕적인 생활을 함으로 인하여 믿음이 좋은 줄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교회 안에 있는 신자들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자로서의 삶이 무엇인지를 전하고 있다.올바른 신앙은 신자의 영혼이 하나님의 영혼과 연합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생각이 신자의 생각이 되어야 한다. 이것을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라고 한다. 갈라디아지역 교회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을 때까지 다시 아이를 해산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는 것이 하나님의 영혼에 연합된 자가 됨을 말한다. 성탄절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연말연시에 바삐 지내다 보면 자칫 믿음을 일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왜 오셨는가를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이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내면의 변화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으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는다고 하는 것은 신자의 내면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외적인 것으로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은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 1:2) 믿음을 단순히 죄 사함을 받아 구원을 받는 것이라면 교회도 필요없고 각 교들에게 보낸 서신서도 필요없게 된다. 그리고 만일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면서 고난을 겪어보지 않고 고난을 부끄러워한다면 자신의 믿음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고난과 함께 하였었다. 그 사람들로 인하여 우리들이 당하는 고난을 이길 수 있는 믿음과 위로를 받게 된다. 그래서 성경의 말씀은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 1:2) 한다. 시험을 당하지 않는 자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귀는 신자들이 갖고 있는 구원을 빼앗아 갈 수는 없으나 기쁨은 빼앗아 갈 수 있다. 그것은 신자들의 모습을 초라하게 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부인하게 한다.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 장로교회 교우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마음의 상태가 불안하여 여러 가지 모임을 만듭니다. 소속감을 통하여 안정적인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려 합니다. 그래서 동창회, 향우회, 전우회, 한인회 등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만일 내게 어려움을 겪게 되면 그 단체에서 도와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연말이 되면 각 단체마다 결속력을 다지기 위하여 모임을 갖습니다. 그리고는 술잔을 높이 들고 결속력을 높이는 구호를 외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세운 단체는 늘 불안합니다. 술이 들어가야 한 마음과 한 뜻이 되는 곳입니다. 반면 신자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이 있습니다. 그 위에 올라서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은 늘 평안과 안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불안함과 두려움이 없습니다. 이 유혹의 계절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눅 1:77-79)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태어나신 성탄절이다. 신자들이 성탄절을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분은 이천년 전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이 은혜가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심으로 인하여 그분이 내 안에 오셨다는 것이다. 이 은혜를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먼저 찾아 오셨음을 알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하심을 찬양하여야 한다. 그것에 대한 시작이 아기 예수로 오시는 것이다. 성탄절의 기쁨은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데 그 시작이 성탄절이다. 우리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고백의 시작이다. 성탄의 기쁨은 구약 성경의 계시가 성취됨을 확인하는 것이고, 그 은혜가 성령하나님에 의하여 나에게도 임한 것을 확인하는 것에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이 나에게도 임하였음을 기뻐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능력을 확인하게 되면 약속의 말씀을 더 굳건히 믿을 수 있게 된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은 성탄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날입니다. 온 가족이 함께 모여서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가 모두에게 임한 것을 확인하며 즐기는 절기가 되어야 합니다. 만일 집식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받지 못한 자가 있는지를 확인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감사가 넘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온 교우들 가정 위에 성탄의 감사가 넘치길 간절히 간구합니다.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있도다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있도다"(엡 4:18) 사탄이 원하는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무너뜨리고 파괴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사탄의 표적이 된다. 그래서 사탄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동원하여 신자를 공격한다. 광명한 천사로 변신을 하여 다가오는 것이다. 광명한 천사로 온다는 것은 빛처럼 화려하고,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속삭이며, 기쁨과 평강을 주는 것처럼 보인지만 결국에는 파멸과 사망으로 빠지게 하는 짓을 한다. 연말과 연시가 우리 앞이 와 있다. 이러한 때에 감정의 변화를 조심하여야 한다. 왜 그런가 하면 사람들이 자기의 자랑을 대놓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없는 자나 누리지 못하는 자는 상대적으로 허무함과 낙심을 하게 된다. 이러한 때에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세상의 것들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멀어지게 하는 짓을 한다. TV에 등장하는 사람마다 사치스럽고 화려한 드레스와 멋진 양복을 입고 등장한다. 한마디로 폼생폼사의 인생을 살아보자는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내 마음 안에 들어오면 나는 갑자기 초라해진다. 저러한 멋진 옷에 화려한 파티 장소에 한 번 가보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그렇게 되면 스스로 무너지게 된다. 사탄은 신자들에게 매력적으로 유혹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그것은 신자의 감정적인 요소를 건드리어 실족하게 한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성탄절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태어나신 날입니다. 그런데 요즘의 세상이 더 날뛰고 있습니다. 먹고 놀며 광적으로 즐기는 계절이라 호도(본질을 흐지부지 하게)합니다. 사탄과 마귀가 날뛰는 계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리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신자들의 마음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분주한 것입니다.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 고전 3:13)   본문의 말씀은 불로 심판을 할 때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에게는 어떠한 일이 있는가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은 곧바로 불 속으로 직행을 한다 . 신자들도 불 시험을 받아야 한다 .   새 하늘과 새 하늘로 시작되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것들을 불로 태우는 것이다 . 그곳에는 영원한 것들만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   어떠한 것들이 영원한 것인가 ? 하나님의 말씀과 감사의 찬양이다 . 그래서 변치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몸에 지녀야 하고 감사로 드리는 구원의 찬양을 드리는 것이다 .   그래서 찬양의 내용은 이러한다 . "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 계 7:10) "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 계 4:10) 영광을 되돌려 드리는 것이다 .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교우 여러분 ! 불 시험을 통과하시고 상급을 많이 받기 위해서는 성경의 말씀을 깨닫고 순종하셔야 합니다 . 성경을 묵상하게 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며 선한 행실을 많이 하게 됩니다 . 그러한 것들은 불에 타지 않는 것이며 마치 불에 타지 않는 보석과 금과 은으로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 성탄의 구원의 은혜가 이미 이 땅에 충만하게 임하였지만 오직 구원을 받은 자들만이 주릴 수 있는 것입니다 . 지금 열린문장로교회 교인들은 누리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 전 교인이 함께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과 착한 선행을 하는데 한 마음과 한 뜻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 요 12:49-50)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 그래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 요 12:44-45)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하늘 아버지를 믿는 것이고 , 그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라는 것이다 .   그렇다면 하나님 아버지는 왜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는가 ? 어둠에 대한 심판이 있기 때문이다 . 그래서 빛으로 오셔서 어둠 가운데 있는 자들을 빛으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냐구요 ? 어둠에 대한 심판 즉 , 죄에 대한 심판이 있기 때문이다 . 만일 빛의 아들이 되지 않으면 영원한 사망에 거할 것이다 .   그분이 이렇게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은 아버지께서 무엇을 말하여야 하는지 할 말과 명령을 주셨다 . 그것은 영생이라는 것이다 . "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 요 12:50)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교우 여러분 ! 오늘은 성탄감사 주일입니다 .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들에게 선물을 주셨습니다 .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생의 구원을 주셨습니다 . 오늘 우리들의 기쁨은 영생을 선물로 받은 기쁨입니다 . 이것은 우리들에게 최고의 선물입니다 . 선물의 내용물은 이러합니다 . 마지막 날에 불의 심판이 있다고 합니다 . 그래서 구원을 받은 우리들은 불의 심판을 면하게 되지만 , 우리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 골 2:22)   골로새 교회 안에 이단이 들어와 있는데 그것들은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 그래서 이러한 것들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진다고 한다 .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다 . 그것에 대한 판단의 기준은 영원한 것이냐는 것이다 . 사람들이 하였던 유익한 말이 있다 . 그러나 사람이 죽으므로 인하여 그의 말도 영원하지 한다는 것이다 .   그래서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들인 소크라테스 , 플라톤 ,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영원하신 하나님을 알고자 함에는 조금도 유익이 없다 . 그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 또한 철학자들의 말을 따르는 사람들도 죽는다 .   그런데 성경에서의 주장은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찾으라는 것이다 . 그곳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시기 때문이다 .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으로 계신다 .   지금 성경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초등학문을 주장하였던 사람과 영원토록 살아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하는 것이다 . 그렇다면 누구의 말이 영원한 것인가 ? 영원토록 살아계시는 분의 말이다 .   아무리 좋은 말을 한다고 할지라도 말한 사람이 죽으면 그 말은 영원한 것이 아닌 것이다 . 지금도 이단을 구분하는 정확한 근거와 판단이 되는 것이다 .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여러분 ! 사람의 말은 울리는 꽹과리와 같습니다 . 요란한 소리를 내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라집니다 . 그래서 영원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 그러나 죽지도 아니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가 되며 영원한 말씀이 됩니다 . 사람의 말은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하므로 우리의 생명을 영원하게 하는 것입니다 .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죽기까지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

"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 "( 창 29:25)   야곱은 삼촌 집에 도착을 하였다 . 삼촌을 만나기 전에 우물가에서 라헬을 보고 마음을 빼앗겼다 . 그래서 품삯을 채결할 때에 아내로 맞이하는 조건으로 칠년을 일하기로 한다 .   마침내 약속한 기일이 되어 혼인 잔치를 벌이게 된다 . 그 다음 날에 눈을 떠보니 라헬이 아닌 언니 레아였던 것이다 . 삼촌에게 속았던 것이다 .   이 일을 통하여 야곱에게 깨달음을 주신다 . 속임을 당한 자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괴로운가를 알게 하는 것이다 . 본문의 말씀에는 야곱의 마음이 분하고 섭섭함이 표현하고 있다 .   그리고 또 깨닫는 것이 있다 . 야곱의 생각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 그의 삶을 하나님이 주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   그것에 대한 증거는 힘을 다하여 속이고 있는 라반을 통하여 야곱이 복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 속이는 라반에게 야곱이 갖고 있었던 것 마저 빼앗겨야 하는데 , 오히려 야곱이 부자가 된다 .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이 택한 자의 삶을 주관하고 계심을 볼 수 있는 것이다 .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교우여러분 ! 십자가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끝을 내십니다 . 나의 열심히 이루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 야곱이 삼촌 라반의 집에서 겪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는데 , 야곱의 생각대로 되는 것이 없습니다 . 오히려 당하고 있습니다 . 우리 속담에 뛰는 놈 위에 날아다니는 놈이 있다고 합니다 . 야곱이 뛰는 놈이라면 라반은 날아다니는 놈입니다 . 그런데 뛰는 놈이 날아다니는 놈을 만나서 복을 받고 있습니다 . 무슨 뜻입니까 ? 하나님이 야곱과 함께 함으로 인하여 라반의 속임수도 헛된 것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 창 28:15)   야곱이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삼촌으로 가는 길 위에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 돌 베개로 삼고 누워 자는 그곳에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셨다 . 그곳은 하나님의 집이요 , 하늘의 문이었던 벧엘이다 .   그리고 말씀하셨다 . "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 창 28:15)   하나님은 야곱을 찾아오셔서 꾸중을 하거나 잘못을 지적하지 않으시고 너를 끝까지 지키시겠다고 한다 . 그리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한다고 하였다 .   그리하였더니 야곱은 서원기도를 한다 . ‘ 내가 가는 길을 지켜주시고 아비의 집으로 돌아오게 하면 ’ , 하나님은 나의 신이 되고 , 하나님의 전을 세우고 , 십일조를 드린다고 하였다 ( 창 28:21-22).   이제 야곱은 훈련의 길을 떠나게 된다 .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위하여 고난의 훈련을 받는다 . 그를 통하여 깨닫게 되는 것은 뿌린 대로 거둔다는 사실이다 .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은 끝까지 함께 하심을 야곱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듬고 고쳐가는 과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 그리고 약속대로 다시 약속의 장소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 그 과정 속에서 뿌린대로 거둔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 아버지를 염소로 속였더니 자신도 염소로 속임을 당하고 , 자신을 장자라고 속였더니 언니 레아를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 야곱의 사람은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모습입니다 . 야곱의 삶을 살피면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이르되 그러면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네가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

"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이르되 그러면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네가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 "( 창 27:33)   야곱이 에서로 분장을 하여 고기 요리를 들고 가서 아버지 이삭을 속여서 축복을 받았다 . 그러데 본문의 말씀은 화가 난 이삭이 억울해하는 에서에게 하는 말이다 . "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 " 무슨 말인가 하면 야곱이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   에서는 남자답게 성장하였고 야곱은 엄마 치마폭에서 자라났다 . 또한 인간미에서도 에서가 야곱보다 훨씬 낫다 . 배고픈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을 주면서 장자권을 샀던 야곱이었다 .   그런데 본문에서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이삭이 말한다 . 그러면 야곱이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라 한 것은 무엇을 말하려 하는 것인가 ? 하나님의 주권을 말하는 것이다 .   야곱과 에서는 쌍둥이인데 그들이 엄마 배속에 있을 때에 이미 하나님께서 야곱을 선택하였다 . 창세기를 통해서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하나님이 이루어 가신다는 것이다 . 이삭이 야곱을 이삭으로 알고 축복기도를 해 주었다 .   "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 창 27:29)   본문에서 이삭은 인간적으로 야곱에게 속은 것에 몹시 화가 났지만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시는 것을 알았기에 결국에는 길을 떠나는 야곱을 불러 축복을 해 준다 . "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당부하여 이르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 창 28:1)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여러분 ! 하나님께서 죄인들

이삭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 이삭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 창 26:25)   창세기 26 장은 이삭의 생애를 기록하였다 . 그런데 머물고 있는 장소가 다를 뿐이지 아브라함의 삶과 다를 바가 없다 .   그랄 땅에서 블레셋 아비멜렉 왕에게 아내를 빼앗길 것을 두려워하여 거짓말한 것이나 주변의 부족들이 먼저 다가와서 화친의 손을 내미는 상황은 같다 .   왜 그런가 하면 택함을 받은 자들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같다는 것이다 . 하나님이 세우시려는 나라에서는 정의와 공의와 사랑이 시행되어야 한다 . 그래서 하나님의 의와 진리와 거룩함을 깨달아야함을 말하는 것이다 .   어느 곳을 가든지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시고 선한 길로 번성의 길로 인도하여 주신다 .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먼저 이삭을 하나님의 사람이라 인정을 한다 . 그래서 두려워한다 . 감히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것이다 .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여러분 !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로 시험도 하시고 고난도 주십니다 .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의와 진리와 거룩함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 고난이 와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알 수 있고 , 고통 속에 기쁨과 평안을 보여 주어야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아브라함이 그러하고 이삭이 그러하였습니다 . 그들도 고난과 고통 속에서 믿음이 성장하고 하나님과 가까워졌던 것입니다 . 맛있고 시원한 배나무가 똥밭에서 자라는 것과 같습니다 . 여러분 !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셔야 합니다 . 어두움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 그래서 우리들은 범사에 감사하며 기도할 수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 

에브라임의 요새와 다메섹 나라와 아람의 남은 자가 멸절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영광같이 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에브라임의 요새와 다메섹 나라와 아람의 남은 자가 멸절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영광같이 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사 17:3)   본문의 말씀은 에브라임의 요새와 아람의 남은 자가 멸절을 당하지만 이스라엘의 영광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을 것을 계시하고 있다 .   왜 그들은 멸절을 당하는가 ? 하나님께 영광을 드렸지만 문제가 있었다 . 그것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닌 왕의 마음대로 하였기 때문이다 .   첫째로는 예배의 장소이다 . "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 신 12:5) 드려야 한다 . 그러나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우고 예배를 드렸다 .   두 번째는 제사장은 레위지파 중에서 세워야 하는데 아무나 세웠다 . 세 번째는 절기의 날짜를 변경한 것이다 . 초막절을 7 월 15 일에서 8 월 15 일로 정하였다 .   저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는 하였지만 하나님이 정한 방식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대로 하였다 . 결국에는 헛된 제사를 드리므로 하나님께서 외면한 것이다 .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여러분 ! 하나님께 순종하는 길만이 살길이요 복받는 길입니다 . 순종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말씀을 들으셔야 합니다 . 내 방식이나 사람의 생각으로 드리는 예배는 받지 않으십니다 . 그러기 위해서는 많이 알아야 합니다 . 지금까지 성경공부에 함께하시고 열심을 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우리가 순종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 이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 요 11:25-26)   본문의 말씀은 죽은 나사로가 부활하는 내용이다 . 그런데 이 사건은 "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 요 11:4) 하셨다 .   본문에는 마르다 , 마리아 , 유대인이 등장을 한다 . 그들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어디까지 믿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 그분께서 강조하시는 것은 ' 내 말을 듣고 순종하라 ' 는 것이다 .   먼저 유대인의 믿음을 소개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을 보고 하는 말이 "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 요 11:37) 고 하였고 , 마리아의 믿음은 "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 요 11:32) 고 하였고 , 마르다의 믿음은 부활의 믿음을 갖고 있었는데 "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때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 요 11:24) 고 하였다 .   마르다는 부활의 믿음을 갖고 있었다 . 이 사건을 통하여 그녀의 믿음을 더 보강을 시켜주려 한다 . 즉 , 그녀는 마지막 때에 부활을 믿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동안에도 부활의 은혜를 누릴 수 있음을 가르치려 하신다 .   그래서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 요 11:25-26) 그러자 그녀는 " 주여 그러하외다 " 하며 믿는다고 하였다 .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