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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기름이 향기로워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아 1:3)

  “네 기름이 향기로워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아 1:3) 아가서는 솔로몬의 시이다. 시 가운데에 가장 아름다운 노래이어서 ‘아가’이다. 그리고 아가서에는 성적인 관능적인 표현이 많이 있다. 그래서 읽기를 꺼려하는 책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책이라 하였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그러므로 아가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교훈으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말씀으로 받아들어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7) 하나님의 구원은 전인격적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예배와 기도, 가정과 삶에서와 결혼과 연애와 성적인 것 까지도 구원을 받았다. 아가서에서는 연인들이 만나서 사랑을 이야기하고, 성적인 갈등, 사랑싸움, 그리고 마침내 결혼을 하고 첫날밤에 사랑을 탐닉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아가서를 통해서 사랑의 시를 보면서 결혼, 성, 데이트, 사랑에 대한 전반적인 지혜와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과 쾌락은 하나님이 만드시고 사람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은 자들은 올바로 알아서 누리고 즐길 수 있습니다. 연애와 결혼은 구원을 받은 자들의 마땅한 삶입니다. 죄로 오염이 되고 타락한 성에서도 구원을 받아 사랑을 누리는 것이 결국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지혜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말 4: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말 4:1) 말라기는 구약 성경의 마지막 말씀이다. 선지자 말라기가 전하는 하나님의 계시는 이러하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불의 심판을 할 것이며, 그로 인하여 죽은 자가 살아날 것이며, 구원의 즐거움과 승리를 누릴 것이다. 그러니 회개와 순종하는 마음으로 모세가 명령한 율법을 지키라 한다.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령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말 4:4) 그리고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올 것을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세례요한이 등장함으로 성취되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말 4:5) 엘리야가 와서 메시아가 오시는 길을 평탄케 한다. 그가 하는 사역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여호와께로 돌리고, 여호와의 마음을 백성들에게 돌이키게 함이다.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고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견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 4:6)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과 택함을 받은 백성들 사이에는 언약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 언약 말씀의 은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중보자와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함은 우리의 부족함과 죄인임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얻은 백성은 약속의 말씀을 지킬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기쁨이요, 승리입니다. 이 말씀을 깨달아야 구약과 신약을 말씀을 연결하여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는도다(말 3: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는도다”(말 3:7) 말라기 3장에서는 언약의 사자가 임하여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소멸되지 않을 것을 말씀하셨고 십일조에 대한 올바른 정의를 교훈 한다.   언약의 사자, 즉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죄사함을 받고 여호와 앞에 나올 것이라 하였다.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말 3:3)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앞으로 나오지 않는 것에 경고를 하고 있다. 즉 십일조와 봉헌물을 드리지 않는다고 함은 절기를 지키지 않음과 같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할 3대 절기가 있다. 유월절은 밀을 추수한 후에, 맥추절은 보리를 수확한 후에, 장막절은 과일을 거둔 후에 십일조와 봉헌물을 들고 성전으로 올라간다. 달리 말하면 여호와께서는 풍성하게 주신 것을 되돌려 받으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백성들이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하여 도둑질한 자라 한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말 3:8) 백성들의 죄악은 더 심하여져서 여호와를 섬기지 않는 것이 더 복되다 외치고 있다.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라”(말 3:15) 이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여호와의 이름을 경외하며 존중하는 자에게는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여호와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을 특별한 소유로, 아들로 여기리라 약속하셨다. 또한 마지막 날에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사랑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눅 13: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눅 13:24) 좁은 문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른 믿음 생활이다. 즉 하늘 아버지의 뜻대도 행한 자만이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이것을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라 한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른다는 것은 자신을 죽이러 가는 행위이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도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기도를 하신다. 나는 이 고통을 피하기를 원하지만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셨다.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눅 22:42)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배우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순종이다. 그 길을 따를 때에 영광과 복을 보여 주셨다. 그래서 천국을 가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가셨던 길을 따라야 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무엇을 약속하시고 주시는지를 확인하여야 한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 6:40)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생을 얻었다고 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심판 날에 어떻게 살았는지를 자기 입으로 고백하여야 합니다.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롬 14:11)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12) 여러분! 신자들이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눅 13:23)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눅 13:23)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실 때에 일어난 일이다. 어떤 사람이 나와 묻기를 어찌하여 구원받는 자의 수가 적습니까 하였다.   달리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던 자들이 많았는데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 질문에 대답하시기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한다. 좁은 문으로 가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눅 13:14) 이제 개인의 종말이나 세상의 종말이 임할 때에 심판을 받는다. 그때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지 못한 자들이 예수님께 말하기를 오병이어의 떡도 먹고 길에서 가르침도 받았다고 한다.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눅 13:26)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를 모른다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눅 13:27) 무슨 말인가 하면 예수님께서 들판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다. 그때에 남자만 오천 명이 먹고 가르침을 받았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는 진리의 말씀을 전하자 저들은 다 떠났다.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요 6:66)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님 때에도 그리하였고 지금도 똑 같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보다는 육신의 빵과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라고 합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 이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딤전 1:5)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딤전 1:5) 사도바울은 에베소에서 목회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목회 서신을 보내고 있다. 에베소라는 도시의 특성이 있는 곳에서 어떻게 목회를 하여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에베소에는 그리스 철학자들과 다양한 이단들이 싹이 나고 있었으며, 아데미라는 불리는 여신을 수호하는 지역이다. 그 지역 사람들 또한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들이어서 아데미 하며 두 시간이나 외쳤다. “그들은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간이나 하더니”(행 19:34) 이러한 곳에서 디모데가 믿음에 굳게 서서 ‘선한 싸움을 싸울 것을’ 지시한다. 진리의 내용이외에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고 신앙의 정당성을 주장하라는 것이다. 다른 교훈을 가르치게 되면 싸움이 일어난다.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딤전 1:4) 그러면 신앙의 정당성은 무엇인가? 진리의 말씀을 전하면 무엇이 드러나는가? 사랑의 열매이다.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딤전 1:5) 즉 사랑의 열매가 없는 믿음은 다른 교훈이라는 것이다. 사랑이 없는 지식은 싸움과 다툼으로 간다.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고전 8:1)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들의 믿음의 열매는 사랑입니다. 사랑이 있어야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온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예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 4:20)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결론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라(말 2: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라”(말 2:2)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음에는 제사장들의 잘못이 있다.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거늘”(말 2:7) 제사장들이 율법의 말씀을 가르치지 않고 옳은 길을 행하지 않으므로 인한 결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경고를 한다. 그것은 얼굴에 짐승의 똥을 바르게 되며 결국에는 버림을 당할 것이라 한다. “보라 내가 너희의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말 1:3)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불순종하는 것은 처음 맞이한 아내를 버리고 이방 여인과 결혼을 하는 것이다. 이방 여인과 결혼을 반대하는 이유는 경건한 자손을 얻기 위함이다. “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맞이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말 2:15) 하나님의 율법을 모르는 제사장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책망에 놀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뻔뻔함으로 응한다.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말 2:17) 저들이 정의의 하나님을 찾는 이유는 우리를 알아주는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과 우리들 사이에는 언약이 있습니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말 1:9)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말 1:9) 말라기의 내용은 하나님의 마지막 경고이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긴 침묵에 들어가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 이후에 성전을 건축하고 제사를 드렸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되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말 1:2)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이전에 야곱을 사랑하셨던 것을 증거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고 있음을 말씀하신다. 즉 믿음의 조상들에게 약속한 것을 야곱의 후손들을 통하여 이루시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여 제사를 드리지만 흠있는 제물을 드린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말 1:8) 이것은 여호와의 율법에서 엄히 금하는 것이다. “너희는 눈 먼 것이나 상한 것이나 지체에 베임을 당한 것이나 종기 있는 것이나 습진 있는 것이나 비루먹은 것을 여호와께 드리지 말며 이런 것들을 제단 위에 화제물로 여호와께 드리지 말라”(레 22:22)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일하심이 늦어지자 반항을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제사를 드리지만 사랑과 진실함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은 마지막 경고를 하시고 오랜 시간을 침묵하십니다. 여호와의 뜻을 따르지 않는 자들에게 얼굴을 가리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이스라엘에게도 그리 하셨습니다. 이럴 때에 하여야 할 일이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한 분이실 것이요 그의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라(슥 14:9)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한 분이실 것이요 그의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라”(슥 14:9) 여호와 하나님께서 홀로 한분이시며 홀로 하나이신 것을 깨닫게 한다. 그래서 앗수르와 바벨론을 들어서 이스라엘을 치고 흩어지게 하신 것이다. 이제 남은 백성들을 통하여 여호와의 섭리를 이루어간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백성들을 모아서 교회로 역사하시겠다는 것이다.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만 유일하신 신이라는 것을 증거하신다.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한 분이실 것이요 그의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라”(슥 14:9) 그래서 우리들이 하나님이라 부르는 데는 이와 같은 고백이 있다. 즉 신은 여호와 한 분 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방의 나라들도 여호와 앞에 나아와 예배를 드리게 된다.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슥 9: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피값을 치루시고 세운 교회에는 남은 자들이 모인다. 즉 여호와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자들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것은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구약의 역사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가 임하였습니다. 구원을 받은 자들이 할 일은 무엇입니까? 나를 구원하신 이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 이라는 고백을 하여야 합니다. 이와 같은 영광을 받으시기 위하여 나를 구원하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그 구원의 은혜를 받은 자들은 구원의 찬양의 자리로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슥 13:7) 스가랴 13장에서는 메시야 오면 일어날 일들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메시야가 오시므로 이스라엘 땅에 우상 숭배하는 자들이 없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생긴다. 거짓 선지자들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므로 정리가 된다. 세례요한은 선지자 가운데 마지막 선지자가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메시야가 오시므로 더 이상 선지자는 필요가 없다. 만군의 여호와가 예수를 십자가에서 치실 것을 계시한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예루살렘 주민과 이방인들이 죄사함을 받는다.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슥 13:1) 또한 그의 십자가의 은혜를 입은 자들에게는 고난이 함께 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믿음을 은과 정금 같이 순수하게 단련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자들에게 응답을 하시므로, 그들이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라 고백하는 자가 될 것이라 하셨다. “내가 그 삼분의 일을 불 가운데에게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슥 13:9)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께서 택함을 받은 자들을 정결하게 하기 위하여 고난이라는 방식을 사용하십니다. 왜 그런가 하면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되면 간절히 기도를 하게 되며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을 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고난 받은 자의 마음과 입술로 여호와가 나의 하나님이시다 라고 고백을 받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가 하나님의 백성이며 자녀가 됩니다. 그래서 시험과 고난을 기뻐하라 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 1:2)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1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한다.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 22:39) 성경에서는 네 이웃을 어떻게 사랑하여야 하는지를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나라의 통치자들에게 순복하라 한다. “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롬 13:1) 그 이유는 하나님이 저들에게 악이 팽창되지 못하게 하는 권세를 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인한 자를 중형에 처하고 사형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웃에 대해서는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고 겸손하게 대하라 한다. 더 나아가 악을 악으로 갚지 말로, 욕을 욕으로 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3:9) 그러므로 날마다 생명의 풍성함을 얻고 좋은 날을 원하는 자는 이렇게 하라 한다. “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벧전 3:10),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11절) 왜 그런가 하면 주의 눈과 귀는 의인을 향하여 있고,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에게 심판으로 나타나시기 때문이다. “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벧전 3:12)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의 계명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면 반드시 지켜야할 명령입니다. 만일 믿음에 대하여 사람의 생각으로 주관적인 해적을 한다면 큰일 납니다. 주의 명령을 불순종하는 것이 죄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의 가르침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으로 신 앞에 나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