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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나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셀라)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나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셀라)”(시 32:5) 시편 32편은 다윗의 마스길이라 한다. 마스길이란 뜻은 고통의 대가를 치루고 얻은 교훈이다. 그리고 분문에서의 특징은 다윗이 성도들에게 직접 교훈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무엇을 교훈하려 하는가? 하나님 앞에 범죄하였으면 즉시 회개하라는 것이다. 자신이 범죄하고도 입을 다물고 있었을 때에 심한 고통을 겪었는데 죄를 자복하므로 죄사함을 받았고 환난 가운데서도 인도와 보호하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다윗은 원죄를 사함 받는 것과 허물을 용서 받는 문제를 전하고 있다. 이 말씀은 로마서에서도 인용이 된다.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롬 4:6-8) 다윗은 죄사함을 받기 위하여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셀라)”(시 32:5).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사함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우리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는가? 우리들의 원죄는 그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사함을 받았다. 그리고 구원 이후에 범하는 죄는 하늘 지성소에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용서받게 하여 주신다. 레위의 후손이 아닌 영원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의 직무를 담당하신다. 그리고 땅의 지성소가 아니라 하늘 보좌의 지성소이다. 제물도 동물의 피가 아니라 썩지 않는 영원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드린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리는 제사는 완전한 것이다.   이제는 죄용서를 받으러 나가는 우리들은 그분에게 모든 죄를 자복하여야 한다. 그리고 죄사함을 받는데 의심이 없어야 한다. 의심이 없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넘쳐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베풀어주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히 4:2) 히브리서는 유대인 공동체에게 보내는 서신이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여야 한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그러하다. 유대인들은 안식에 대하여 종말론적인 관점으로 믿고 있다. 종말론적인 관점이란 끝에 일어날 일이라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안식은 이 세상 끝날에나 이루어질 것이라 믿고 있는 것이다.   구약성경에는 창세기에서 육일동안 창조하시고 제 칠일에 안식하시고 안식일을 제정하셨다. 그리고 여호수아서에 가나안 땅,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을 안식이라 하였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가나안 땅에서 쫓겨남으로 인하여 안식에 대한 믿음을 잘못 알고 있다. 오늘본문에서 전하고자 하는 것은 유대교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된 신자들 가운데도 이와 같이 믿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전한 것을 듣고도 자기의 믿음에 결부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안식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리다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히 4:3).   성경에서 안식은 하나님 자신이 즐기시는 안식이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안식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앞에서 불순종하여 안식을 누릴 수 없었다. 하나님의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자는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에게만 있음을 말한다. 성령이 말씀하시기를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히 3:8-9).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그분께서 안식하지 못한다. 그분이 안식할 수 있도록 그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가 하나님의 안식에 함께 하는 것이다. 이 영원한 안식에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삼 16:7) 삼상 16장에서는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고 사울에게는 여호와의 악 영이 임하는 내용이다. 기름 부음을 받는 다는 것은 여호와의 영이 함께하여 쓰임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울은 이미 두 번의 실수 때문에 폐위를 당하였다. 블레셋과 전쟁을 치루어야 할 때에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스스로 제사를 드린 것과 아말렉과 전쟁에서는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한 것 때문이다.   ‘다윗’ 이름의 뜻은 ‘사랑 받는 자’이다.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십오 세쯤으로 추측을 한다. 그는 세 번의 기름 부음을 받는다. 본문에서 가족들이 모여 있는데서, 유다 지파의 왕으로 세움을 받을 때에 그리고 이스라엘 전체의 왕으로 세움을 받을 때이다. 기름 부음을 받은 다윗은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을 받는다.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삼상 16:13).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었다는 것은 정치적, 도덕적, 영적인 지도자로서 자격을 갖추게 하셨다는 것이다. 사울 왕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떠났지만 아직도 정치와 군사력을 갖고 있기에 새로운 왕을 세우는 일은 조심스럽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소년 다윗이 수금을 잘 타므로 사울의 악 영을 떠나게 하는 일을 하게 하신다. 다윗은 사울의 무기든 자로서 왕 옆에서 나라의 법과 국사를 익히게 하여 장차 이스라엘의 왕 위에 오를 수 있도록 하는 하나님의 지혜를 볼 수 있다.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사람의 생각과 다릅니다. 다윗이 왕 위에 오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아버지도 그를 왕으로 추천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외모보다 진실한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삼 15:9) 하나님께서 기억 가운데 아말렉에 괘씸한 것이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하여 가나안으로 가는 길을 방해한 것이다. 즉 하나님의 일에 대적한 범죄이다. 하나님은 아말렉을 진멸하는 일을 사무엘을 통하여 사울 왕에게 명령하셨다.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였나이다 하니”(삼상 15:3)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라는 의미는, 하나님의 공의와 영광을 위하여 부정한 것들을 말한다. 살아 있는 것은 반드시 죽여야 하고 그렇지 않은 것들을 불에 태워야 한다. “너는 마땅히 그 성읍 주민을 칼날로 죽이고 그 성읍과 그 가운데에 거주하는 모든 것과 그 가축을 칼날로 진멸하고 또 그 속에서 빼앗아 차지한 물건을 다 거리에 모아 놓고 그 성읍과 그 탈취물 전부를 불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지니 그 성읍은 영구히 폐허가 되어 다시는 건축되지 아니할 것이라”(신 13:14-15). 그렇다면 사울은 하나님의 공의와 영광을 위하여 마땅히 저들의 모든 소유를 진멸하여야 한다. 그러나 사울은 좋은 것들은 남기고 하찮은 것들은 진멸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은 사무엘을 사울에게 보내어 어찌된 일인가를 묻는다. 사울이 말하기를 나는 아멜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멜렉 사람들은 진멸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백성들이 그렇게 하였다는 것이다. 사울이 이렇게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백성들의 소리를 더 무서워했던 것이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삼상 15:24). 이 일로 인하여 사울은 왕의 의복을 벗을 말씀하고 있다. “사무엘이

백성이 사울에게 말하되 이스라엘에 이 큰 구원을 이룬 요나단이 죽겠나이까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 하옵나니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은 그가 오늘 하나님과 동역하셨음이니이다 하여 백성이 요나단을 구원하여 죽지 않게 하니라

  “백성이 사울에게 말하되 이스라엘에 이 큰 구원을 이룬 요나단이 죽겠나이까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 하옵나니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은 그가 오늘 하나님과 동역하셨음이니이다 하여 백성이 요나단을 구원하여 죽지 않게 하니라”(삼상 14:45) 삼상 14장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사울 왕의 천박한 인격과 믿음이 작은 자인 것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왕의 제도를 택하였지만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신다. 본문에서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사울의 아들인 요나단을 사용하셔서 승리하게 한다.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전쟁의 승리에서 사울의 어리석음이 드러난다. 요나단과 무기를 든 소년이 블레셋 진영으로 들어갈 때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적군을 이십 명 가량 쳐 죽인다. 이 모습을 기브아에서 사울의 파수꾼들이 보았다.   그래서 사울은 백성들을 점호하여 보니 요나단과 무기든 자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제사장 아히야에게 하나님의 궤를 가져오게 하여 그의 아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 보라 한다. 그 때에 요나단과 함께 하는 자들이 승리를 거두는 모습을 보고 제사장에게 손을 멈추라 한다. “사울이 제사장에게 말할 때에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 소동이 점점 더한 지라 사울이 제사장에게 이르되 네 손을 거두라 하고”(삼상 14:19). 사울의 믿음은 자신이 곤란에 빠지면 하나님을 찾는다. 그날에 블레셋에게 대승을 거두는데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인한 결과이다. “여호와께서 그 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므로 전쟁이 벧아웬을 지나니라”(삼상 14:23). 승기를 잡은 사울은 자기의 명예를 위하여 전쟁에 참여한 백성들에게 그의 원수들을 보복하는 때까지 음식물을 먹지 말라고 명령을 내린다. 그 명령으로 인하여 요나단을 죽음의 자리에 이르게 하고, 그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범죄하게 하였다. 요나단은 수풀 속을 지나다가 손에 가진 지팡이로 꿀을 입에 대었다. 그리고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였다. “백성이 이에 탈취한 물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렀나이다 하니라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렀나이다 하니라”(삼상 13:12) 본문에서는 사울 왕이 부득이 하게 번제를 드릴 수밖에 없음을 변명하고 있다. 그러나 결론은 어떠한 이유를 막론하고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것이 되었다. 사울 왕은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서 군사로 삼천 명을 뽑아 천 명은 요나단과 함께 하게 하고, 이천 명은 자신과 함께 하였다. 요나단이 군사 천명과 함께 블레셋 수비대를 친 것으로 사건이 시작이 된다. 그래서 사울 왕은 온 이스라엘 부르고 블레셋은 병거가 삼 만이요 마병 육천 명과 모래같이 많은 백성들이 전쟁을 하러 나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 군대의 숫자를 보고 겁먹어서 수풀과 바위틈에 숨었고 요단 동편에서 온 사람들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전쟁에 나가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한다. 그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사무엘을 기다려야 하는데 칠 일째가 되어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사울 왕은 급한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지 않고 형식적인 제사를 드린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범죄함이 되어 버림을 받는 시작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의 정치를 시작하려 할 때에 경고를 하셨다. 누구보다도 왕이 하나님의 명령과 율법을 잘 지켜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사울 왕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고 형식적인 제사를 드렸을 뿐만 아니라 제사장으로서 자격이 없음에도 드린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까지 오래참고 인내하여야 함을 잊으므로 생긴 결과이다.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지 않는 예배는 헛된 것입니다. 만일 은혜를 구하지 않는 예배를 드리면 종교의식이 됩니다. 종교의식의 행위는 신의 심술과 저주를 피하기 위한 사람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식을 따라 예배를 드리며 은혜를 구하면 그분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이 함께 합니다. 이것을 정확하고 분명하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3)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 자신의 영광이다. 죄인들을 구원하여 영생을 주어서 그들로부터 영원토록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목자와 양으로 비유하였다. 목자는 양 무리를 인도한다. 그 때에 평탄한 길, 생명의 길로 인도함으로 좋은 목자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물이 없고 풀이 없는 사망의 곳으로 데리고 간다면 나쁜 목자가 되는 것이다. 오늘 본문 말씀 속에 그것에 대한 것이 분명하게 있다. 죽은 자는 살리셔서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데 그것은 자신의 이름을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은혜와 사랑이 풍성한 하나님이라 믿음의 시인을 하면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 주신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출애굽의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며 구하는 자에게는 그 때의 능력을 주시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능력을 찬양하는 자에게도 동일한 하나님의 능력을 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원의 은혜를 감사와 찬양을 하여 영광을 돌리면 더 풍성한 은혜를 주신다. 그것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식을 주심을 기억하여야 한다.   그리스도의 모든 성도들은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9).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성경적인 믿음은 머리로 이해가 되어 가슴이 뜨거워져 행함이 있는 것입니다. 이성적으로 올바른 믿음을 갖고 있으면 감정적인 것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을 구원하시고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는 은혜를 늘 주셔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방편이 예배와 성례(세례와 성찬) 그리고 권징입니다. 권징이 무엇인지를 말씀드리면

주는 나의 산성과 반석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주는 나의 산성과 반석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시 31:3) 시편 가운데 다윗의 시가 73편이나 있다. 다윗은 많은 고난과 시련 속에서 하나님의 계시대로 은혜를 체험하였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지난 설교를 통하여 확인한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하나님의 것으로 다시 돌리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려면 먼저 택한 백성들에게 약속하신대로 은혜를 베푸셔야 한다. 오늘 본문에서는 다윗이 신뢰의 기도를 하고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주는 나의 산성과 반석이시니’ 그 이름대로 나에게 은혜를 베푸셔야 한다는 것이다. 즉 나에게 구원과 섭리에서 산성이 되셔야 하고 반석이 되셔야 함을 말한다. 이후에 이어지는 기도에서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자세히 아뢰고 있다. 그런 후에 또 다시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나를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악인들을 부끄럽게 하사 스올에서 잠잠하게 하소서”(시 31:17). 내가 주의 이름을 불렀는데 나에게 도움을 주시지 않으면 주님이 부끄러움을 당하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자비로우신 하나님’이라 고백을 하면 하나님께서는 자비로움을 베풀어 주심을 말한다. 즉 하나님 앞에 자비를 구하러 나온 자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신 다음에 그를 통하여 자비로우신 하나님이라 찬양과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이다. 다윗은 그와 같은 기도를 드리고 응답을 받아서 이제 다시 찬양을 하고 있다.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견고한 성에서 그의 놀라운 사랑을 내게 보이셨음이로다”(시 31:21)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산다고 함은 그분의 계명을 지키며 살고 있음을 말한다. 그러한 자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하심이 함께 한다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강하고 담대하게 서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알아야 하고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시 31:24)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기도 응답을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히 3:6) 히브리서 3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모세를 비교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소개하고 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유대인들의 신앙과 그리스도인의 믿음에서 어느 것이 더 탁월한가를 알게 하는데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여야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 3:1) 먼저 모세의 영광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비교하고 있다. 모세 얼굴에 나타났던 하나님의 영광은 사라졌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고 계신다(히 2:9). 이번에는 신분으로 비교를 한다. 모세는 하나님의 집의 사환인데, 예수 그리스도는 그 집을 지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망과 확신과 자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아여 한다. 이제는 구원의 궁극적인 목적을 소개하고 있다. 모세를 따라 가나안에 들어감은 안식을 얻기 위함이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백성들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죽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주의 성령이 함께 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게 하셨다. 그렇다면 어떻게 순종하여야 하는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든 즉시 순종하라는 것이다. 만일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안식을 하시지 못함으로 인하여 진노의 심판을 하신다. 그래서 오늘을 사는데 있어서 순종으로 살아야 한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히 3:13)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이란? 하나님 안에서 인도와 보호하심으로 인한 평강과 쉼이다.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생명을 위협하는 모든 적과 사탄의 간계로부터 승리케 하여 주시는 은혜이다.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으로부터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받기 원하십니

모든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가 죽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

  “모든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가 죽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삼상 12:19) 삼상 12장은 사무엘의 마지막 말이다. 이제 사사로서의 책임을 왕에게 이임을 하면서 온 백성들에게 설교를 한다. 이스라엘에 왕정정치가 시작하게 된다는 것은 자신과 아들에게 문제가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제 하나님께 기름을 받은 자로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한다. 애굽 땅에 모세를 보내어 구원하셨고, 가나안으로 인도하였는데 시스라 군대와 블레셋과 모압 왕이 칠 때에 구원하여 주었고 사사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지켜 주셨다. 길르앗 야베스에서 암몬의 침략 때에도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구원해 주었는데도 우리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고 고집을 피웠음으로 “이제 너희가 구한 왕, 너희가 택한 왕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 위에 왕을 세우셨느니라”(삼상 12:13)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정한 왕정제도가 하나님 앞에서 범죄가 됨을 밝히고 있다. 그것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라 “너희는 이제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희 목전에서 행하시는 이 큰 일을 보라”(삼상 12:16) “이에 사무엘이 여호와께 아뢰매 여호와께서 그날에 우레와 비를 보내시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와 사무엘을 크게 두려워하니라”(삼상 12:18) 곡식을 추수할 때에 우레와 비가 내리므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심을 알게 된 것이다. 이제 와서 후회를 하고 있다. 사무엘은 두려워 떨고 있는 백성들에게 오직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만을 섬기라 한다. 그리고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으므로 여호와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삼상 12:22).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그리고 사무엘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암몬 사람 나하스가 올라와서 길르앗 야베스에 맞서 진 치매 야베스 모든 사람들이 나하스에게 이르되 우리와 언약하자 그리하면 우리가 너를 섬기리라 하니

  “암몬 사람 나하스가 올라와서 길르앗 야베스에 맞서 진 치매 야베스 모든 사람들이 나하스에게 이르되 우리와 언약하자 그리하면 우리가 너를 섬기리라 하니”(삼상 11:1) 삼상 11장에서는 사울이 암몬과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는 장면과 여호와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삼는 내용이다. 암몬은 늘 길르앗 땅을 자기들의 땅이라 고집을 하였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땅을 암몬에게 주신 적이 없다. 암몬이 길르앗 땅을 공격하였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사사 입다가 활동하던 시기에도 전쟁을 하였다. “이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의 손에 넘겨주시매”(삿 11:32) 이스라엘 주변에 있는 나라들이 침략을 할 때에는 방어력이 약한 지역으로 들어온다. 길르앗 야베스 지역이 약하게 된 것은 이스라엘에 내전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베냐민 기브아 사람들을 치기 위하여 이스라엘 총회가 열리고 다음과 같이 결정을 하였다. “이스라엘 자손이 이르되 이스라엘 온 지파 중에 총회와 함께 하여 여호와 앞에 올라오지 아니한 자가 누구냐 하니 이는 그들이 크게 맹세하기를 미스바에 와서 여호와 앞에 이르지 아나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라 하였음이라”(삿 21:4) 살펴본즉 야베스 길르앗에서는 한 사람도 총회에 참석하지 아니한 것이다. 그래서 “회중이 큰 용사 만 이천 명을 그리로 보내며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가서 야베스 길르앗 주민과 부녀와 어린 아이를 칼날로 치라”(삿 21:10) 이스라엘 군대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칼로 치므로 인하여 그곳에는 전쟁에 나갈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먼저 암몬 사람 나아스에게 화친을 요구하였다. 이 소식을 사울이 들었다.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의 노가 크게 일어나”(삼상 11:6)므로 백성을 소집하여 암몬과 전쟁에서 진멸하여 승리를 하였다.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세균은 우리들의 가장 약한 부분을 공격하여

너희는 너희를 모든 재난과 고통 중에서 친히 구원하여 내신 너희의 하나님을 오늘 버리고 이르기를 우리 위에 왕을 세우라 하는도다 그런즉 이제 너희의 지파대로 천 명씩 여호와 앞에 나아오라 하고

  “너희는 너희를 모든 재난과 고통 중에서 친히 구원하여 내신 너희의 하나님을 오늘 버리고 이르기를 우리 위에 왕을 세우라 하는도다 그런즉 이제 너희의 지파대로 천 명씩 여호와 앞에 나아오라 하고”(삼상 10:19) 삼상 10장에서는 사울이 기름부음을 받는 장면과 그가 소명을 받은 것에 대한 징조를 보여 주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로 불러 모아 사울을 왕으로 세우는 내용이다. 사울이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왕으로 세움을 받기 전에 먼저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는다. 그 이유는 그에게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울 것에 대한 소명을 인식함으로 마음의 준비를 하게 한 것이다. 이것에 대한 증거로 징조를 보여 준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찬양을 드리는 선지자들 무리에서 예언을 한 것이다. “네게는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삼상 10:6) 사울이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을 함으로 그를 알던 사람들도 “그 곳의 어떤 사람은 말하여 이르되 그들의 아버지가 누구냐 한지라 그러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되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하더라”(삼상 10:12).   이제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로 불러 나오게 하여 사울을 왕으로 세운다. 그런데 미스바라 하는 곳은 기념비적인 사건이 있는 곳이다. 온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며 기도하며 제사를 드렸을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던 곳이다. 블레셋 군대가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 왔지만 하나님께서 우레로 싸우셔서 승리를 안겨져 준 곳이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버리고 이웃나라처럼 왕으로 세워야 하겠다고 한다. 그래서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장차 너희가 세울 왕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할 것을 이미 알렸다. 모든 백성은 사울에게 왕의 만세를 외쳐 불렀다. 그리고 사무엘은 사울에게 왕으로서 지켜야 할 것을 책에 기록하여 주었다.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자신을 나타내는데 사건과 사람들을 쓰십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확인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