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이 이긴다는 자랑도 잠시 요 경건하지 못한 자의 즐거움도 잠깐이니라”(욥 20:5)

  “악인이 이긴다는 자랑도 잠시 요 경건하지 못한 자의 즐거움도 잠깐이니라”(욥 20:5) 소발은 욥의 신앙 고백을 듣고 끔찍한 저주를 쏟아낸다. 욥은 나의 대속자가 있으며 부활 신앙을 고백하였다. 그러자 소발은 감동은커녕 오히려 모욕을 느꼈다고 한다. “내가 나를 부끄럽게 하는 책망을 들었으므로 나의 슬기로운 마음이 나로 하여금 대답하게 하는구나”(욥 20:3) 그러면서 악인의 번영은 일장춘몽이라 하며, 자기 똥처럼 망할 것이며, 꿈처럼 날아가고 환상처럼 살아질 것이라 말한다. “그는 꿈같이 지나가니 다시 찾을 수 없을 것이요 밤에 보이는 환상처럼 사라지리라”(욥 20:6) 그리고 악인은 악을 혀 밑에 감추어 뱃속에서 변하여 독사의 쓸개가 된다고 경고한다. 또한 하나님은 뱃속에 있는 것을 다 토하게 할 것이며, 가난한 자를 억압하여 빼앗은 집에서 결코 평안을 누리지 못할 것이라고 저주하고 있다. 악인 배를 불리려 할 때에 하나님께서 명렬한 진노의 비를 내리게 하실 것이며,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쓸지라도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것이 하나님이 악인에게 정하신 분깃이라는 것이다. 소발이 하고 있는 말은 성경이 지지하고 있는 진리이다. 그러나 이러한 보편적인 진리를 무죄한 자인 욥에게 억지로 끼워 맞추었다. 하지만 구속의 은혜와 긍휼이 결여된 교리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난도질하는 무기가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은 마지막 날에 있다. 그런데 소발은 마지막 때의 심판을 지금으로 끌고 와서 욥을 정죄하는 조급함을 보였다. 그리고 자신도 죄인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재판관처럼 정죄하고 있다. 소발은 악인이 독사의 쓸개를 먹고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심판을 당할 것이라 했다. 이것은 율법 앞에 선 우리가 당할 것임을 정확히 고백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쓸개 탄 포도주를 마시고 저주를 당하신다.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시더라”(마 27:...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욥 19: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욥 19:25) 욥은 가족들의 외면과 친구들의 저주와 하나님의 공격 속에서도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다는 위대한 신앙고백을 한다.  빌닷의 잔인한 저주가 있었다. 너는 악인이라서 이름도 기억되지 않을 것이라 했다. “그를 기념함이 땅에서 사라지고 거리에서는 그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을 것이며”(욥 18:17) 이것에 대해서 욥은 부활 신앙을 언급한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욥 19:25) 욥은 아내와 어린아이들까지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한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이 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의 친구들아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욥 19:21) 그는 자신의 결백과 억울함이 영원히 기억되기 위하여 바위에 철필로 새겼으면 좋겠다고 한다. “철필과 납으로 영원히 돌에 새겨졌으면 좋겠노라”(욥 19:24) 이 억울함을 갚아 줄 자가 있다는 것이다. 즉 고엘의 사상을 갖고 있다. 비록 이 땅에 없을지라도 하늘에는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설령 죽는다고 할지라도 몸 밖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리라는 고백이다.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욥 19:26) 마지막 날에, 즉 최후의 심판 때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억울한 자들을 신원하여 주신다는 것이다. 즉 사망 권세를 가지고 승리자로 설 것을 믿고 있다.  욥은 주변의 상황이 바뀌었다고 해서 변한 것이 없다. 즉 모든 것이 무너진 폐허 속에서도 주님은 살아 계십니다 라는 믿음이 있다. 그의 이러한 위대한 신앙을 고백하였지만 친구들의 공격은 멈추지 않는다. 왜야하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이 나를 오해하고 비난하더라도 사람을 붙잡고 해명하지 마십시오. 어리석고 알지 못하...

“너희가 어느 때에 가서 말의 끝을 맺겠느냐 깨달으라 그 후에야 우리가 말하리라”(욥 18:2)

  “너희가 어느 때에 가서 말의 끝을 맺겠느냐 깨달으라 그 후에야 우리가 말하리라”(욥 18:2) 욥의 친구 빌닷의 두 번째 변론이다. 그는 욥이 저항하는 것에 격분하여 점잖은 충고를 버리고 악인의 운명은 파멸뿐이라 하며 저주를 퍼붓는다. 그는 욥의 현재 상태(질병, 자녀의 죽음, 재산 몰수)를 악인의 최후와 빗대어 묘사한다. “참으로 불의한 자의 집이 이러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처소도 이러하니라”(욥 18:21) 욥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우긴다고 해서 세상은 바뀌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울분을 터뜨리며 자기 자신을 찢는 사람아 너 때문에 땅이 버림을 받겠느냐 바위가 그 자리에서 옮겨지겠느냐”(욥 18:4) 그는 원인이 있기에 결과가 있는 것이라 한다. 그래서 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의 장막의 빛도 사라져 어두움 속으로 간다는 것이다. “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의 불꽃은 빛나지 않을 것이요”(욥 18:5) 악인의 최후를 끔찍하게 표현한다. 사망의 장자가 그의 피부를 먹는다며 노골적인 잔인한 말을 쏟아낸다. “질병이 그의 피부를 삼키리니 곧 사망의 장자가 그의 지체를 먹을 것이며”(욥 18:13) 악인은 의지하던 장막에서 뽑혀나와 죽음에게 끌려 가고, 그의 자손은 땅에서 끊어지고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 저주한다. “그가 의지하던 것들이 장막에서 뽑히며 그는 공포의 왕에게로 잡혀가고”(욥 18:14) 빌닷의 신학은 잘못된 종말론을 기초로 하고 있다. 성경은 의인도 고난을 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최후에 있을 심판을 지금 적용하며 선과 악의 개념으로 천국과 지옥을 나누고 있다. 질병은 죄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맞지만, 개별적인 질병이 개별적인 죄의 형벌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랑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 9:3) 성도에게는 죽음이 더 이상 공포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부활로 사망의 권세를 깨트렸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

“나의 기운이 쇠하였으므로 나의 날이 다하였고 무덤이 나를 위하여 준비되었구나”(욥 17:1)

  “나의 기운이 쇠하였으므로 나의 날이 다하였고 무덤이 나를 위하여 준비되었구나”(욥 17:1) 욥은 이제 인간적인 기대를 완전히 접고 오직 무덤만이 안식처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친구들의 공격에 하나님이 친히 자신의 보증이 되어 달라고 간구하고 있다. 그는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더 깊은 고통을 받고 있는데 오직 하나님만이 내 편이 되어줄 것을 청한다. “나를 조롱하는 자들이 나와 함께 있으므로 내 눈이 그들의 충동함을 항상 보는구나”(대하 17:1) 그는 악인들에게 조롱을 당하여 비참한 가운데 있지만, 정직한 자는 이러한 상황에 놀라기는 하지만 믿음의 길을 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인은 그 길을 꾸준히 가고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느니라”(욥 17:9) 즉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않고 의인의 길을 가겠다는 의연함을 보여 준다. “정직한 자는 이로 말미암아 놀라고 죄 없는 자는 경건하지 못한 자 때문에 분을 내나니”(욥 17:8) 자신이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고 친구들에게는 무시를 당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증인이 되어 달라는 한다. 즉 보증인이 되어 달라는 것이다. 이 말은 인간은 스스로 죄값을 치를 능력이 없으므로 친히 값을 치르시고 보증이 되셔야만 구원이 임함을 말한다.  인간의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킬 수 없으므로 죄를 대속할 구원자가 있어야 한다. “청하건대 나에게 담보물을 주소서 나의 손을 잡아 줄 자가 누구리이까”(욥 17:3) 그는 고난이 닥치면 잠시 넘어질 수는 있지만, 결국 믿음은 포기하지 않고 의인의 길을 꾸준히 가고 있다. 즉 육체는 쇠하여 가지만 영적으로는 점점 더 힘을 얻는 것이다. 이것이 성도의 견인이다. 하나님의 지혜와 믿음의 비밀은 인간의 지혜로는 깨달을 수가 없다. 그는 친구들의 어리석음을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지 않음으로 인한 것이라 한다. “주께서 그들의 마음을 가리어 깨닫지 못하게 하셨사오니 그들을 높이지 마소서”(욥 17: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은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생각이...

“이런 말을 내가 많이 들었나니 너희는 다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이로구나”(욥 16:2)

  “이런 말을 내가 많이 들었나니 너희는 다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이로구나”(욥 16:2) 욥은 엘리바스의 두 번째 말을 듣고 반박을 한다. 그는 친구들에게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이라 일갈한다. 즉 너희들의 위로는 위로가 아니라 고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친구라면 입술의 위로가 아니라 근심을 풀어 주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므로 땅에서의 친구들을 포기하고 하늘에 계신 증인을 찾기 시작하였다.  이제 욥은 사람과 하나님 사이를 판결해 줄 하늘의 중보자를 의지하며 눈물을 흘린다.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시니라”(욥 16:19) 그는 하늘을 보며 탄원한다. 자신의 처지와 고통을 토로한다. 아무리 아픔을 이야기 해도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말하여도 내 근심이 풀리지 아니하고 잠잠하여도 내 아픔이 줄어들지 않으리라”(욥 16:6) 하나님께서 자신을 향하여 화살을 쏘시고, 용사처럼 달려들어 치신다고 묘사하고 있다. “그가 나를 치고 다시 치며 용사같이 내게 달려드시니”(욥 16:14) 그렇지만 자신의 손에는 포학이 없고, 무죄를 호소하며, 기도가 정결함을 주장한다. “그러나 내 손에는 포학이 없고 나의 기도는 정결하니라”(욥 16:17) 그러면서 땅에게 소리를 치며 내 피를 가리지 말고, 내 억울함을 덮지 말라고 한다. 친구들은 조롱하지만 나와 하나님 사이에서 판결해 줄 중보자를 의지하고 있다. 즉 욥은 땅에 있는 친구들이 자신을 변호해 주지 않자, 하늘에 있는 중재자를 구하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그분은 하나님 우편에 계신 분이시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가기 위해서는 중보자(변호자)를 찾아야 한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욥은 자신의 기도가 정결하다고 한 것은, 자신의 전적 부패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행 15: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행 15:20) 믿음의 공동체 사람들과 음식점을 가서 주문을 하다가 보면 보이지 않게 경계심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선지 해장국을 시킬 때에 어떤 이들은 선지를 넣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서 성경에서 피를 먹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금령으로 정하였지만 본래의 뜻을 잘 알아야 한다. 먼저는 구원을 얻는데 있어서 고기를 피와 함께 먹는다고 해서 불가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구원을 얻은 자는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며 실족시키지 말아야 하기에 믿음이 약한 자들 앞에서는 먹지 말라고 한 것이다. 이 문제가 고린도교회에서 문제가 되었다. 바울은 이것에 대한 답으로 먹을 수 있으나 형제가 실족하면 먹지 말라고 하였다.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고전 8:8) 바울은 이 문제를 이웃 사랑으로 풀으라 한다. 내가 우상에게 바쳐졌던 고기를 먹어서 이웃이 실족을 하면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 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고전 8:13)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성경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고집과 의로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미안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자가 되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구원의 본질을 알아야 하고, 자신의 믿음의 상태를 점검하여야 한다. ‘주여 주여’하는 자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라! 구원은 그리스도와의 영적인 연합으로 절대 취소 되지 않는다. 예수 안에 거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어, 아버지를 사랑하게 된다. 아버지를 사랑한...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행 15: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행 15:19) 수리아 안디옥 교회에 예루살렘으로부터 내려온 자들이 온전한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형제 몇 명을 예루살렘으로 보냈다.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자신이 복음을 전할 때에 있었던 일을 소개한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이 하나님이 동일하게 구원을 주신다는 것이다.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행 15:8) 또한 바울과 바나바도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행하신 표적과 기사와 구원을 주신 것에 대하여 증언하였다.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듣더니”(행 15:12) 사도들이 말을 마치매 예수님의 형제인 야고보가 일어나 정리를 한다.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행 15:13) 즉 사도들이 한 말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한 증언과 같다는 것이다. 다윗이 지은 장막이 무너지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전이 되셔서 모든 이방인들에게 구원을 주시기로 했음을 말한다.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행 15:17) 하나님의 구원을 얻는데 있어서 오직 성령과 십자가의 복음으로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방인들이 전통적인 풍습을 절제하라 한다.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행 15:20) 이것은 구원받은 신자가 이방인 이웃과 연약한 형제를 배려하기 위해 세운 사랑의 규칙이다. 즉 공의회에서 정한 3가지 금령은 우상의 제물, 음행, 피와 목매어 죽인 것을 멀리 하라는 것은 성도를 거룩하게 분리하기 위함을 말한다. 금령을 정한 경건의 의미를 살펴야 한다.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다. “사랑은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