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골 4:3)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골 4:3) 십자가의 복음을 맡은 성도들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소통하며,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연합해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죽 하나님의 주권 하에 성도의 교제를 하여야 함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전도의 주체가 인간의 설득력이 아닌 하나님이 하셔야 하심을 말한다.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골 4:3)   사람의 마음을 여시는 분은 오직 성령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라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는 하나님의 주권적 일하심을 요청하는 성도의 가장 강력한 도구이다. 성도는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 대해서도 지혜롭게 행해야 한다.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세상 속에서 부패를 방지하고 복음의 풍미를 드러내는 삶을 사는 것이다. 공동체 안에서는 차별이 없다, 종이었던 오네시모가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로 불린다.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골 4:9) 성도들은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 이것을 예수님께서는 문을 두드리는 것으로 비유하셨다. 즉 기도의 응답에 관계없이 하나님과의 관계자체를 즐거워하며 끈질기게 매달리라는 가르침이다. 또한 가르침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말씀하셨다.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내는 말은 복음의 말씀에 관심을 갖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믿음의 동역자요 형제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맺어진 인류의 공동체가 바로 교회임을 주님의 사역을 통해 몸소 보여 주셨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에게 부탁하십니다. 기도는 네 사역의 호흡이므로,...

“왕후 에스더가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으며 왕이 좋게 여기시면 내 소청대로 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 내 요구대로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에 7:3)

  “왕후 에스더가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으며 왕이 좋게 여기시면 내 소청대로 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 내 요구대로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에 7:3) 에스더가 준비한 두 번째 잔치에서 하만의 음모가 폭로되고, 결국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려 세웠던 나무에 자신이 매달리는 ‘인과응보‘의 절정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도적적인 통치자이시다. 그래서 악은 결코 승리할 수 없으며, 하나님은 반드시 공의를 바로 세우시는 분임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에스더는 자신의 생명과 민족의 생명을 왕에게 구한다. “왕후 에스더가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으며 왕이 좋게 여기시면 내 소청대로 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 내 요구대로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에 7:3) 예수님의 기도와 마찬가지이다. 아들을 사랑하시면 나와 함께 있는 자들을 사랑하여 주시고 지켜 달라는 것이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요 17:9) 하만의 음모가 드러나자 에스더 앞에 엎드린다. 비굴하게 구걸하는 모습은, 감추어졌던 죄가 백일하에 드러날 때 죄인이 겪게 될 근원적인 수치와 두려움을 상징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남을 정죄하고 해치려 하는 자가 결국 그 기준에 의해 심판받을 것을 경고하셨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 7:1-2) 하나님 앞으로 나갈 일이 있으면 내게 구하라 하셨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 14:14) 하만의 은밀한 음모와 탐욕은 화려한 잔치 석상에서 에스더의 입술을 통해 모두 드러났다. 예수님은 마지막 날에 모든 은밀한 죄가 빛 가운데에 드러날 것임을 말씀하셨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마 10:26) 성도는 사람을 속일 수는 있으나 하나님을 속일 수 없음을 기억하며 정직하게 행해야 ...

“그 속에 기록하기를 문을 지키던 왕의 두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아하수에로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모르드개가 고발하였다 하였는지라”(에 6:2)

  “그 속에 기록하기를 문을 지키던 왕의 두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아하수에로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모르드개가 고발하였다 하였는지라”(에 6:2) 인간의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타이밍이 어떻게 역사를 뒤바꾸는지 보여주는 전환점이 된다. 이 일이 왕의 불면증으로 인하여 극적인 반전이 일어난다. 아하수에로 왕이 잠이 오지 않았던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신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불면증까지도 주관하셔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신다. 왕이 궁중 일기를 일게 되고, 잊혔던 모르드개의 공적을 발견한다. 인간은 잊을지라도 하나님은 성도의 눈물과 헌신을 결코 잊지 않으시며, 가장 적절할 때에 드러내신다.  하만은 자기를 위해 준비했던 영광의 제안을 모르드개에게 고스란히 돌려주게 된다. 이는 하나님께서 악인의 꾀를 그 머리 위로 돌리시는 공의로운 심판의 전조이다. 이 상황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눅 18:7) 모르드개는 하만의 위협 속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예수님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 하만은 교만을 심어 수치를 거두었고, 모르드개는 충성을 심아 영관을 거두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다신 한 번 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억하여야 한다. 하만은 모르드개를 죽일 나무 장대를 세웠고, 하나님은 같은 시간에 왕의 ‘잠’을 깨우셨다. 성도가 당하는 고난이 극에 달할 때,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미 역전의 드라마를 준비하신다. 이는 예수님이 무덤 속에 계실 때에 모든 것이 끝이 난 줄로 알았다. 심지어 제자들도 자신의 본업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끝 난 것이 아니다. ‘그 밤’ 뒤...

“왕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 하니”(에 5:3)

  “왕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 하니”(에 5:3) 에스더는 삼일 금식을 한 후에 죽음을 무릎쓰고 왕 앞에 나아가는 장면과, 그를 기쁘게 맞이하는 왕, 그리고 여전히 교만함에 빠져 모르드개를 죽일 음모를 구체화하는 하만의 모습을 대조하여 보여 준다.   왕후가 왕 앞에 섰을 때 왕이 금 규를 내어 미는 장면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마음의 통치인 것이다. 즉 에스더의 용기 있는 행동은 하나님의 은혜가 선행되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왕이 손에 든 금 규 는 황금 지팡이는 심판과 동시에 자비를 베푼다. 즉 그 끝을 만지는 것을 허용하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에스더는 왕의 금 규 를 만지므로 인하여 자비를 얻게 되어 생명을 구하였다. 그리고 소원을 말한다. “에스더가 이르되 오늘 내가 왕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사오니 왕이 좋게 여기시거든 하만과 함께 오소서 하니”(에 5:4) 그러자 그녀는 당장 하만을 고발하지 않고 두 번에 걸친 잔치를 제안한다. 이것은 인간의 정욕이 아닌, 하나님의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리는 신중한 섭리적 지혜이다. 하만은 왕후의 잔치에 초대받은 것을 자랑하며 50 규빗 높이의 나무를 세운다. 이것은 전적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영광에 취해 스스로 파멸의 도구를 준비하는 비극적인 역설이 된다. 에스더는 왕에게 나아가는 은혜가 허락되었고, 그리고 마음의 소원을 아뢰어 얻게 되었다. 아하수에로 왕보다 더 크신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는 권세와 은혜가 허락되었음 알아야 한다(히 4:16).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히 10:19) 나아 갈 수 있는 권세를 얻었지만 구하여야 한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마 7:7) 그리고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뱀 ...

“모르드개가 이 모든 일을 알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배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통곡하며”(에 4:1)

  “모르드개가 이 모든 일을 알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배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통곡하며”(에 4:1) 하만의 조서가 내려지면서 유대인들을 진멸하는 날이 12월 13일로 정하여졌다. 이 소식을 들은 모르드개는 옷을 찢으며 대성통곡을 하고 있다. 그는 단순히 재를 뒤집어쓰고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회개는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언약적 회개이다.  개혁주의는 고난의 때를 하나님께 돌이키는 기회로 보며, 인간의 무능함을 인정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시작됨을 강조한다. 그는 하나님의 역사적 주권을 믿음으로 인하여, 에스더에게 네가 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언약의 약속을 이루신다는 것이다.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에 4:14) 즉 하나님은 절대주권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지만, 동시에 에스더라는 도구의 순종과 인간의 책임을 통해 일하시기를 기뻐하신다,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라는 질문은 성도의 모든 환경과 지위가 하나님의 섭리적 목적을 위해 주어진 것임을 일깨워준다. 에스더는 왕의 부름 없이 나가는 것이 곧 죽음을 의미함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민족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려놓기로 결단한다. 그래서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고백을 통해 진정한 길로 나가는 성도의 자세를 보여 준다.  예수님의 가르침에도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 10:39) 하셨다. 예수님의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깊이 연결된다. 에스더가 삼일 동안 금식하여 준비한 것은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의 기도를 예표 한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마 26:39)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친구라 부르시며 목숨을 내어주셨다. ”...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행 15: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행 15:4)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죄와 사망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셔서 구원을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데 무조건적인 것이다. 즉 인간의 조건이나 공로를 보지 않으신다. 그리고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차별이 없다. 즉 유대인들도 죄인이며, 이방인도 죄인이라는 것이다. 어떠한 육체도 구원에 스스로 이를 수 없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기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으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함을 얻게 된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2) 이와 같은 진리의 말씀을 알게 되면 인간의 공로가 들어갈 수가 없음을 안다. 즉 구원은 하나님이 100% 하신 것이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롬 3:27) 바른 믿음을 가진 자의 구원의 확신은 주관적인 체험이 아니라 객관적인 진리 위에 세워져야 한다.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롬 3:29) 하나님은 인간 조건을 보시지 않는 분이시다.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롬 3:30) 그렇다면 구원을 얻는데 율법의 행위로는 이를 수 없는데, 그러면 율법을 안 지켜도 되냐는 질문이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들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행 15:2)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들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행 15:2) 이방인들이 세운 안디옥 교회에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들이 충격적인 주장을 한다. 그것은 ‘할례를 받지 않으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단순히 전통의 문제가 아니라 진리의 문제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인간의 행위(율법)가 추가 되어야 한다는 율법주의의 공격이었다.  이러한 주장은 교회 안에 분열을 조장하며 복음의 본질을 흐리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가 그들과 심한 다툼과 변론이 있었다.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들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행 15:2)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몇 사람을 예루살렘으로 올려 보낸다.  율법주의는 예수님만으로는 부족하니 우리가 무엇인가를 보태야 한다는 사상이다. 하지만 성경은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분명히 한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만일 구원의 근거를 나에게 두는 순간,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무익하게 된다.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갈 5:2) 율법을 주신 진짜 목적은 그것을 지켜서 구원을 얻으라는 것이 아니다. 율법 앞에 서면 의인은 없으며 하나도 없음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또한 율법은 우리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음을 깨닫고 십자가를 의지하게 만드는 ‘초등교사(몽학선생)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