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백성들과 통혼하오리이까 그리하면 주께서 어찌 우리를 멸하시고 남아 피할 자가 없도록 진노하시지 아니하시리이까”(스 9:14)

  “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백성들과 통혼하오리이까 그리하면 주께서 어찌 우리를 멸하시고 남아 피할 자가 없도록 진노하시지 아니하시리이까”(스 9:14) 에스라는 예루살렘에 돌아온 기쁨을 잠시 누렸지만, 예루살렘의 영적 타락상을 보고 처절한 회개와 중보기도를 한다.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인간의 전적 타락을 주장한다. 그래서 중보자가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죄인을 스스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방 여인과 통혼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언약의 백성의 정체성을 잃어버렸음을 말하는 것으로 영적 간음을 말한다. 즉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숭배를 하였다는 것이다. 방백들이 에스라에게 보고하기를, 유다 백성과 제사장들, 레위 사람들이 이방 민족들과 섞여 살며 가증한 일을 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방백들과 우두머리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그는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아 있다.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스 9:3)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공분이다.  이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들이 에스라 곁으로 모여 듬으로 인하여 회개의 불씨가 된다. 그는 낯이 뜨거워 감히 얼굴을 들지 못하여 무릎을 꿇고 손을 들어 기도한다. 에스라는 자기의 죄가 아님에도 옷을 찢으며 회개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하나님 앞에 서셨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고후 5:21) 그의 기도는 우리는 범죄하여 주 앞에 한 사람도 서지 못하겠다 하며 철저한 항복의 기도를 드린다. “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백성들과 통혼하오리이까 그리하면 주께서 어찌 우리를 멸하시고 남아 피할 자가 없도록 진노하시지 아니하시리이까”(스 9:1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방 여인과 통혼을 금한 목적은 거룩함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위...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스 8:31)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스 8:31) 예루살렘에 성전이 재건이 되었다. 이제 성전 안에서 여호와의 영광을 위하여 헌신할 자들을 데리고 제2차 포로 귀환의 여정을 소개하고 있다.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100%, 인간의 책임 있는 신앙을 100%를 강조한다. 즉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기 위하여 금식기도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에스라 8장에서는 귀환자의 명단, 금식 기도, 안전하게 도착한 것과 예물 인계로 되어 있다. “아닥사스다 왕이 왕위에 있을 때에 나와 함께 바벨론에서 올라온 족장들과 그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스 8:1) 그런데 그는 그 중에 성전 봉사를 담당할 레위 사람이 없음을 발견하고 즉시 사람을 보내어 명철한 사람들을 데려온다. 이는 공동체의 회복에 있어 예배의 직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험란한 여정 가운데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한다. 그는 이미 왕에게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신다고 하였다.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아뢰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으라”(스 8:22) 그래서 인간의 군대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스 8:23) 그가 올라올 때에 왕과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드린 은과 금을 가져와 제사장들에게 맡긴다. “너희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요 이 그릇들도 거룩하다”(스 8:28) 그가 아하와 강가에서 하나님의 손을 구했듯, 예수님은 우리에게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에스라가 레위 사람들을 끝까지 찾아내 데려온 ...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스 7:10) #율법의말씀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스 7:10) 이제까지 성전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다루었다. 본 장에서는 성전 안에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를 말씀한다. 에스라는 제사장이며 학사로서 하나님의 율법에 능통한 자였다. 즉 이스라엘 공동체의 회복은 외형적인 성전이 아니라 기록된 말씀을 배우고 준행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개혁주의에서는 성경은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법칙임을 강조한다.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올라오게 된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움직이어 보낸 것이다.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스 7:9) 그는 대제사장 아론의 16대손으로 정통성 있는 계보를 가졌다. 그래서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고, 스스로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한 것이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스 7:10)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닥사스다 왕이 에스라에게 전권을 부여한다. 그래서 원하는 모든 물자를 공급하고, 세금을 면제하고, 하나님의 법을 아는 자를 법관으로 세우라고 명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이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한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그가 왕의 마음에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시고”(스 7:27) 그가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쳤다면, 예수님은 율법 그 자체이시며 율법을 온전하게 하로 오신 분이시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려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 5:17) 그래서 예수님은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을 고치셨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행 12: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행 12:23) ‘헤롯이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라고 끝난 직후에,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라고 선포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행 12:24) 즉 세상의 왕인 헤롯은 썩어 벌레의 밥이 되어 사라지지만,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복음)은 결코 멈추지 않고 땅 끝까지 확장이 된다. 세상의 어떤 권력도 교회를 핍박하지만 하나님의 구속사를 막거나 지연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침에서도 ‘누구를 두려워 할 것인가?’를 말씀하셨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 10:28) 또한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질 것이라 하셨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2) 교회 안에서 마찬가지이다. 내 직분, 내 헌신, 내 봉사를 내세우며 ‘나를 알아달라’고 교만하게 목을 세우는 순간,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하는 ‘헤롯의 죄’를 짓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셨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결론적으로 정리를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한 권력자의 가장 끔찍한 최후를 본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교만이다.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행 23:2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만은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평가를 하거나 스스로 판단을 하시면 안 됩니다. 만일 그러한 행위를 하시면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행 12:22) #세상의권력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행 12:22) 헤롯 왕은 야고보를 칼로 죽이고 베드로를 옥게 가두었던 자이다. 그래서 세상의 권력이 교회를 완전히 짓밟고 이긴 것 같았다. 즉 세상의 권력이 얼마나 허망한지와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극명하게 대조하여 보여준다.  사도를 죽이고 감옥에 가두는 권세를 가진 헤롯이 벌레 하나에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이다.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행 12:23) 세상의 권력과 그 밑에서 아부하는 자들의 모습이다. 식량이 부족한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헤롯에게 아부를 하여야 한다.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한마음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행 12:20) 헤롯은 아부하러 온 두로와 시돈 사람들 앞에 선다. 그 날에 왕은 순은으로 된 왕복을 입었다. “헤롯이 날을 액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행 12:21) 햇볕이 비추니 왕이 입은 옷은 은백색으로 빛이 난 것이다. 그러자 아부하는 자들은 신의 목소리라 하며 치켜 세운다.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행 12:22) 즉 헤롯은 교만하여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교만을 떤 것이다. 이것은 마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처럼 되기 위하여 선악과를 따 먹은 것과 같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 그런데 세상의 권력을 쥐고 위엄을 떨던 자가 벌레 하나에게 죽는다.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은 날로 흥왕하여 간다.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행 12:2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당장 먹고살기 위해 권력자에게 영혼을 판 사람들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입니다. 식량을 쥐고 있는 헤롯에게 ‘신의 소리‘라...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골 1:5) #오직 예수 그리스도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골 1:5) 골로새서는 바울의 옥중서신이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골로새 교회에 침투한 이단적 가르침을 경계하기 위하여 쓴 서신이다. 교회 안에 혼합주의, 금욕주의, 천사숭배 등을 들어와 있다. 그래서 만물의 머리가 되시며,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신성과 구속 사역의 완성을 선포한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골 1:18) 머리가 되신다 함은, 지배권과 생명의 원천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몸은 머리로부터 모든 영양분과 지시를 받듯, 교회는 그리스도의 통치 없이는 존재할 수 없음을 말한다. 예수님은 창조의 시작이며 구속의 기초이시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라는 표현은 부활의 첫 열매로서 새로운 창조의 통치자가 되셨음을 말한다. 그분은 타락한 만물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유일한 중보자이다. 그래서 모든 영역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진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롬 8:19) 그래서 교회는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아야 한다.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골 2:19) 사망을 부활로 승리하시고 머리가 되셨다. 그래서 예비하는 길은 진리이며 생명의 길이 되어 하나님 아버지께로 인도하는 길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그래서 신자들은 모든 일과 생각하는 것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하심을 따라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참된 자유와 안식을 누리게 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골로새서가 전하는 말씀의 주제는 ‘그리스도의 절대적 탁월함과 충분성’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면 구원을 얻고 하나님 아버지에게...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를 내려 문서 창고 곧 바벨론의 보물을 쌓아둔 보물 전각에서 조사하게 하여”(스 6:1)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를 내려 문서 창고 곧 바벨론의 보물을 쌓아둔 보물 전각에서 조사하게 하여”(스 6:1) 개혁 신학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성취되는 언약을 강조한다. 예루살렘의 성전 재건이 마침내 완성되어 봉헌식을 하게 된다. 왕들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 대적들이 다리오 왕에게 편지를 올려 성전 건축을 방해하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리오 왕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여 보물 전각에서 고레스의 조사를 살피게 한다.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를 내려 문서 창고 곧 바벨론의 보물을 쌓아둔 보물 전각에서 조사하게 하여”(스 6:1) 왕은 조사를 살핀 후에 자신의 재산으로 비용을 대고 제사에 필요한 제물을 공급하라고 명령한다. 하나님은 대적의 꾀를 역이용하셔서 자신의 일을 이루신다. 성전 완공은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으로 바사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유다 사람의 장로들이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의 권면을 따랐으므로 성전 건축하는 일이 형통한지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과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따라 성전을 건축하며 일을 끝내되”(스 6:14) 백성들은 즐거이 봉헌식을 행하며 속죄제를 드린다. 그리고 유월절 절기를 지키었다. “사로 잡셨던 자의 자손이 첫째 달 십사 일에 유월절을 지키되”(스 6:19) 비록 솔로몬 성전에 비해 외형을 소박했을 지라도 그 안에 담긴 회복의 감사는 뜨거웠다. 이스라엘의 형통과 기쁨은 여호와 하나님과 관계 회복에서 옴을 알 수 있다.  성전의 중요성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에스라의 성전은 다시 무너졌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가리켜 참된 성전이라 하셨다, “이 정전을 허물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 성전 완공 후에 백성들이 유월절을 지켰듯, 신약의 성도들은 우리를 대신해 희생되신 유월절 양 그리스도를 먹고 마심으로 생명을 얻는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