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충성된 일을 한 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에 들어와서 견고한 성읍들을 향하여 진을 치고 쳐서 점령하고자 한지라”(대하 32:1) #왜 히스기야 왕은 병에 결렸을까?

  “이 모든 충성된 일을 한 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에 들어와서 견고한 성읍들을 향하여 진을 치고 쳐서 점령하고자 한지라”(대하 32:1) https://youtu.be/VZpEzPoL_EU?si=tIREJSMgaf52Y6Zf 히스기야가 주도한 종교개혁과 유월절의 은혜를 보았다. 그런데 본문의 첫 구절이 우리를 당혹하게 한다. 이 모든 충성된 일을 한 후에 앗수르 왕인 산헤립이 유다를 침공한 것이다. 이것은 위기 앞에서 참된 신앙은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대한 것이 된다. 즉 성도에게 왜 고난이 오는가에 대한 답을 주는 것이다. 종교 개혁을 한 후에 당대 최강대국인 앗수르의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포위한다. 왕은 지혜롭게 물의 기원인 기혼 샘을 지하로 연결하고 성벽을 보수하며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히스기야의 신앙 고백은 여호와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전쟁을 하신다는 것이다. “그와 함께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말미암아 안심하니라”(대하 32:8) 반면에 산헤립과 신하들은 히스기야의 믿음을 조롱하며 백성들을 협박한다. 즉 예루살렘의 하나님을 사람들의 손으로 세운 신들과 똑같이 취급하며 훼방하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히스기야는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는다. “이러므로 히스기야 왕이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와 더불어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대하 32:20) 여호와께서 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왕의 진영에서 모든 튼 용사와 대장과 지휘관들을 멸하셨다. 그리고 산헤립이 고국 땅으로 돌아가 그의 아들들의 칼에 맞아 비참하게 죽는다.  이후에 히스기야가 모든 나라의 눈에 존귀하게 되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물과 보물을 왕에게 드렸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은혜를 받은 히스기야 왕이 교만하여 병에 걸렸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보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히스기야가 마음...

“그가 행하는 모든 일 곧 하나님의 전에 수종 드는 일에나 율법에나 계명에나 그의 하나님을 찾고 한마음으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대하 31:21) "왜 신앙생활이 힘들고 무거울까요? '억지'를 '자발'로 바꾸는 은혜의 비밀"

  “그가 행하는 모든 일 곧 하나님의 전에 수종 드는 일에나 율법에나 계명에나 그의 하나님을 찾고 한마음으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대하 31:21) https://youtu.be/Frl-5PVYaXc?si=sL8hZl_Qi2UJjdOU 대하 30장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율법의 조문을 넘어 부정한 자들까지 품어 주신 은혜의 유월절을 보았다. 본 장에서는 그 엄청난 은혜를 체험한 자들이 일상으로 돌아가 어떻게 변화된 삶을 살았는가를 볼 수 있다. 참된 부흥은 교회당 안에서 눈물로 끝나지 않는다. 반드시 삶의 개혁과 헌신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먼저 아세라 목상과 산당과 제단을 철저히 부셔 버린다. 히스기야 왕은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의 반열을 회복시키고, 왕의 재산으로 먼저 번제물을 바쳐 모범을 보인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명령한다. 제사장과 레위인의 몫을 주라 명하자 산더미처럼 많은 예물을 가져온다. 그렇게 순종을 하자 여호와께서 백성들에게 복을 주었다는 것이다. “사독의 족속 대제사장 아사랴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백성이 예물을 여호와의 전에 드리기 시작함으로부터 우리가 만족하게 먹었으니 남은 것이 많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에게 복을 주셨음이라 그 남은 것이 이렇게 많이 쌓였나이다”(대하 31:10) 성전 안에 들어온 예물들을 방에 넣고 고나냐와 시므이 등 진실한 자들을 세워 헌물을 투명하게 관리하고 분배하였다. 백성들과 관리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한 것이다.  값없이 죄사함을 받은 것을 칭의라고 한다. 칭의를 통하여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들은 성화의 과정을 가게 된다. 그래서 곧바로 망치를 들고 고향으로 돌아가 산당과 우상을 박살 낸다.  즉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은 죄와 동거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구원받은 자들의 내면에 성령께서 거룩한 분노이자 필연적인 열매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강압적이지 않다. 은혜에 대한 감사로 인하여 자발적인 충성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행 10:48) 왜 세례를 받으셨나요?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행 10:48) 세례는 신앙 고백 위에 세워 져야 한다. 그리고 세례 예식을 통하여 어떠한 은혜가 있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만일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한다면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즉 세례는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라고 고백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성령이 임한 자들은 세례를 받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영광을 얻은 자가 되었다. 그래서 세례를 받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가 되었다고 한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롬 6:3) 그러므로 이제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연합된 자로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내가 육체 가운데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죽은 자를 살리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연합은 그의 몸의 지체가 되었다. 몸의 머리가 예수 그리스도가 되셔서 명령을 따라 살아야 한다. 달리 말하면 떨어 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운명적인 관계가 된 것이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알고 믿음 생활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가를 생각할 때에는 회의가 든다.  세례를 받았다고 함은 주님의 몸으로 지체가 되었음을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이 없이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 많다. 특히 고린도교회가 그러했다. 참 교인이라면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 순종하는 자로 증명을 하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믿고 계신가요? 그것에 시금석이 되는 것이 자신이 세례를 받은 근거와 은혜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고 약속하신 것들을 믿고...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 오시니”(행 10:44) 세례의 의미를 아시나요?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 오시니”(행 10:44) 고넬료는 베드로를 불러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구원)에 대하여 듣고 싶었다.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행 10:33)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행하신 일을 증언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하여 주신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말한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하셨음이라”(행 10:38) 즉 마귀에게 눌린 자들을 구원하셨다는 것이다. 마귀의 종이 되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썩어 없어질 욕망을 위하여 살다가 죄로 인하여 사망에 이르는 자들에게 자유를 주셨다. 이것은 기독교 안에 있는 여러 종파들이 있는데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시금석이 된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 1:13) 이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영광을 가지고 오신 성령님을 통하여 임한다. 그렇게 되면 구원을 받은 자들은 더 이상 마귀의 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된다는 진리의 말씀이다. 그래서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안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자들에게 임한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 오시니”(행 10:44) 이제 중요한 것은 세례가 된다. 즉 세례를 받는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행위 구원을 강조함으로 율법주의가 되어 이단이 된다. 그래서 세례를 받는 순간 구원이 임한다고 해서 세례를 강조하는 교단이 있다. 이제 정리를 하면 세례는 성령이 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라고 믿고 고백하는 자들에게 베푸는 예식이 된다.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 3:8) 사도 바울은 개인적인 간증을 통해 개혁주의의 핵심인 이신칭의와 성화의 과정을 역동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는 율법주의에 대한 엄중한 경고로 시작하여, 바울 자신의 가치관의 대전환 그리고 끊임없이 달여가는 신앙의 경주를 묘사한다. 육체적 할례와 율법 준수를 구원의 조건으로 삼는 교사들을 개들과 행악하는 자로 경계한다. 오직 성령으로 봉사하며 예수만 자랑하는 자들이 참된 하나님의 백성(할례당)임을 말한다. 자신의 화려한 과거와 육체의 자랑으로 당대 최고의 엘리트로서의 스펙을 열거하였다. 그런데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자신의 모든 과거의 자랑을 배설물로 여긴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를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그가 이전에는 율법에서 난 의를 신뢰하였었다. 그것은 인간의 행위와 노력으로 율법을 지켜서 얻어내는 자력 구원이다. 이것은 겉보기에는 흠이 없어 보이나, 전적으로 부패한 인간의 본성 안에서 나온 것으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공의를 만족 시킬 수 없는 배설물과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의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데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알게 되었다.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볍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 3:9) 그것은 바울 자신의 어떠함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법정에서 그리스도로 옷 입고 무죄와 의로움을 선언 받는 것을 말한다. 그는 이신칭의를 가장 큰 자랑과 기쁨으로 삼았다. 이제 의롭게 된 것만으로 구원이 완성되었거나 온전해졌다고 하지 않고, 부활의 영광을 잡으려고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푯대를 행하여 달려가는 순례자의 삶을 살았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얻을 수 있...

“히스기야가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사람을 보내고 또 에브라임과 므낫세에 편지를 보내어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에 와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니라”(대하 30:1) #여호와께돌아오라

  “히스기야가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사람을 보내고 또 에브라임과 므낫세에 편지를 보내어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에 와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니라”(대하 30:1) 히스기야 왕은 닫힌 성전 문을 열고 예배를 회복하였다. 그는 이스라엘 지파 사람들까지 초청하여 역사적인 유월절을 지킨다. 이것은 종교적인 행위를 넘어서 하나님의 압도적인 은혜를 가장 아름답게 보여 준다. 왕은 보발꾼(전령)들을 온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에게 보내어 함께 유월절을 지키자고 초청한다. 에브라임 사람들과 므낫세 사람들은 전령들을 조롱하고 비웃었지만 아셀과 므낫세와 스불론 중에서 몇 사람은 겸손한 마음으로 예루살렘에 이른다. 그런데 하나님의 손이 유다 사람들을 감동시키사 한 마음을 주어 왕의 명령을 따르게 한다. “하나님의 손이 또한 유다 사람들을 감동시키사 그들에게 왕과 방백들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전한 명령을 한 마음으로 준행하게 하셨더라”(대하 30:12) 유월절은 1월 14일로 정해졌다. “그들이 첫째 달 열넷째 날 해 질 때에 시내 광야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되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을 다 따라 행하였더라”(민 9:5) 그런데 예외 규정이 있다. 그때에 부정한 것들을 접촉한 자들은 한 달 뒤인 2월 14일에 절기를 지키라는 것이다. “둘째 달 열넷째 날 해 질 때에 그것을 지켜서 어린 양에 무교병과 쓴 나물을 아울러 먹을 것이요”(민 9:11) 그래서 둘째달 열넷째 날에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모였다. “둘째 달에 백성이 무교절을 지키려 하여 예루살렘에 많이 모이니 매우 큰 모임이라”(대하 30:13) 그때에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기도를 한다. 절기를 지키러 나왔는데 혹시 스스로 깨끗하게 하는 결례를 하지 못하였더라도 용서하여 달라는 것이다. “결심하고 하나님 곧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비록 성소의 결례대로 스스로 깨끗하게 못하였을지라도 사하옵소서 하였더니”(대하 30:19)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왕의...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실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대하 29:2)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실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대하 29:2) 히스기야 왕은 유다의 가장 위대한 개혁 군주 중에 한 사람이다. 그는 성전 정화와 예배를 회복한다. 그의 아버지가 굳게 닫아버린 성전 문을 즉위하자마자 열어 놓는다. “첫째 해 첫째 달에 여호와의 전 문들을 열고 수리하고”(대하 29:3)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죄 사함의 속죄 제사와 예배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우리 조상들이 범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얼굴을 돌려 여호와의 성소를 등지고”(대하 29:6) 레위인들은 16일 동안 성전 정화를 한다. 성전 안팎의 모든 더러운 것들, 우상의 제단들을 기드론 시내에 버린다. 그리고 아하스 왕이 버린 모든 기구들을 다시 정돈하여 제단 앞에 둔다. 왕은 일찍이 일어나 성전에 올라가서 수송아지, 숫양, 어린 양, 숫염소를 각각 7마리씩 가져다가 나라와 성소와 유다를 위하여 속죄제물로 삼는다. 그리고 제사장들이 그 피를 제단에 뿌려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속죄한다. 번제가 시작되는 순간 여호와의 노래와 나팔 소리도 함께 시작이 된다. 이는 다윗에 정한 예배제도이다. 백성들은 자원하여 엄청난 양의 제물을 가져와 기쁨이 넘치므로 히스기야와 백성들이 함께 기뻐하였다. “이 일이 갑자기 되었으나 하나님께서 백성을 위하여 예비하셨으므로 히스기야가 백성과 더불어 기뻐하였더라”(대하 29:36) 여기에서 히스기야의 놀라운 믿음을 기억하여야 한다. 그는 왕 위에 오르자 군사력을 정비한 것이 아니라 모든 문제의 근원인 하나님과의 단절을 복원하는데 힘을 다 하였다.  개인이나 국가적으로 오직 예배가 최우선적으로 회복될 때에 복이 임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배의 주도권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예배는 성경에서 규정한 대로 드려야 한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은 정하신 방법대로만 받으시기 때문이다.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