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한 전도와 오래 참음으로 세워지는 주권적 교회(행17:3)
미련한 전도와 오래 참음으로 세워지는 주권적 교회 본문: 사도행전 17장 3절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1. 전도의 미련한 것과 성령의 효과적인 부르심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세 안식일(3주) 동안 성경을 강론하며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고 선포했을 때, 수많은 경건한 헬라인과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이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놀라운 회심의 역사는 결코 바울과 실라의 탁월한 수사학이나 인간적인 설득력의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택하신 백성을 유기적으로 부르시는 성령의 역사, 곧 ‘효과적인 부르심(Effectual Calling)’이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복음을 역사하게 하시는 성령의 성격입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은 비인격적인 어떤 거대한 파워나 에너지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깊은 ‘인격과 성품’이 죄인의 심령에 부딪쳐오는 사건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천군천사를 보내어 단 한 순간에 온 세상을 무릎 꿇릴 수도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칠고 투박한 인간의 입술을 통한 ‘전도’라는 방식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 1:21) 이 미련해 보이는 전도를 통해 하나님의 인격이 전달되고, 죄인이 변화되는 것—이것이 바로 복음이 가진 신비이자 능력입니다. 2. 환난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이 말씀의 살아서 역사하는 능력은 역설적이게도 극심한 핍박의 현장에서 증명됩니다. 바울의 선포로 교회가 세워지자, 시기가 가득한 유대인들이 불량배들을 동원하여 야손의 집을 습격하고 거센 박해를 가했습니다. 인간의 눈과 효율성의 잣대로 볼 때는 사역의 실패처럼 보이며, 지극히 비효율적인 상황으로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개혁주의적인 믿음은 고난의 한복판에서도 여전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