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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이지 않는 복음의 말씀과 주인이 귀히 쓰시는 거룩한 그릇(딤후 2:8)

  매이지 않는 복음의 말씀과 주인이 귀히 쓰시는 거룩한 그릇(딤후 2:8)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딤후 2:8) 딤후 2장은 옥중에 갇힌 바울이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강해지는 법과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는 거룩한 그릇의 본질을 선포한다. 복음의 사역자가 강해질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미 확보된 은혜를 믿음으로 공급받을 때만 가능하다.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딤후 2:1) 교회는 새로운 사상이나 인간적 기법을 개발하는 곳이 아니라, 사도들로부터 전달받은 순전한 복음의 진리를 다음 세대에서 온전히 위탁하고 보존하는 구속사의 언약적 기관이다. 좋은 일꾼의 정체성은 군사, 경기자, 농부의 비유로 설명한다. 병사는 군사를 모집한 주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자기 생활의 얽매임을 내려놓고 고난을 함께 받는다. 승리자의 관을 얻으려면 법대로 경기해야 한다. 이는 자기의 열심 이나 주관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의 원리를 따라 신앙과 사역을 완주해야 하고, 곡식 받는 농부처럼은 구속사의 추수는 땀 흘리는 수고와 인내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망 권세를 깨뜨린 십자가의 복음은 매이지 않고, 택함을 받은 자들은 정직과 진실한 자가 쓰임을 받게 된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딤후 2:9) 바울의 선교와 고난은 헛된 모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들을 창세 전에 정하신 그리스도의 구속사로 찾아내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믿음이 흔들릴지라도 주님은 언제나 비쁘시니 자기를 부인할 수 없다. 즉 우리의 구원은 인간의 연약한 결단이 아니라 삼위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을 근거로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분변함은, 자의적이고 인간적인 해석이나 말다툼을 버리고, 구속사의 맥락 속에서 계시...

심판의 홍수 위에 좌정하신 권능과 영원한 평강의 왕 그리스도(시 29:10)

  심판의 홍수 위에 좌정하신 권능과 영원한 평강의 왕 그리스도(시 29:10)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원하도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시 29:10) 여호와 하나님의 위엄을 노래하는 장엄한 찬양의 시이다. 그 당시 가나안 족속들은 폭풍과 비의 신으로 숭배하던 바알의 거짓 신화를 믿고 있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비를 주관하셔서 노아의 홍수를 주관하시므로 바알의 신은 거짓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를 내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시 29:3) 여호와의 소리와 홍수 위의 좌정은 궁극적으로 십자가의 큰 소리로 사망 권세를 꺾으시고 부활 승천하사 영원한 평강의 왕으로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계시한다. 십자가에서 모든 권세를 다 이기시므로 하늘의 모든 천사들에게 찬양을 받으신다. “또 그가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은 그에게 경배할지어다 말씀하시며”(히 1:6)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은 사망의 무덤을 가르고 죽은 자를 살려내는 창조와 구속의 영원한 말씀이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 5:25) 온 세상을 삼켰던 노아의 심판의 물 위에서도 하나님이 방주를 지키시고 홀로 절대 주권의 왕으로 보좌에 앉아 계셨듯, 예수 그리스도는 죄와 사망과 지옥의 심판의 파도를 십자가로 온몸에 받아내시고 그 모든 심판을 잠재우신 영원한 왕이시다.  부활하신 주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영원히 통치하시는 만왕의 왕으로 보좌에 좌정해 계신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 28:18) 모든 천둥과 번개, 폭풍우의 결론은 뜻밖에도 고요하고 장엄한 축복으로 끝이 난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시 30:11) ...

무덤의 흑암을 뚫은 부르짖음과 영원한 목자장의 구원(시 28:1)

  무덤의 흑암을 뚫은 부르짖음과 영원한 목자장의 구원(시 28:1)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시 28:1) 다윗은 죽음의 구덩이에 빠질 것 같은 절대적 위기 속에서 손을 들고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신실하신 응답으로 인해 찬양과 축복으로 나아가는 개인 탄원시와 감사의 시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침묵 속에서 인류를 대신하여 십자가의 참혹한 죽음의 구덩이로 내려가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지성소의 휘장을 자신의 육체로 찢으셨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 10:20) 그리고 겟세마네와 골고다에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하심으로 하늘의 지성소에 단번에 들어가셨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 5:7) 시인은 입으로는 평화를 말하면서 마음에는 악독을 품은 악인들과 함께 자신을 끌어내지 마실 것을 구한다. 겉으로는 율법의 거룩함을 자랑하며 뒤로는 메시아를 죽이려 모의했던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적인 모습이었다. 그리스도는 이 악한 자들의 불의 한 손에 넘겨지셨으나, 하나님의 구속 경륜을 멸시한 그 악의 세력은 허물어지고 결코 다시 세워지지 못하는 심판을 받았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십자가 대속과 기도를 외면치 않으시고 무덤에서 그를 일으키시는 부활로 응답하여 주셨다.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행 2:24) 메시아이신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은 그분 자신만의 승리가 아니라 그분께 속한 언약 백성 전체를 위한 구원의 요새가 된 것이다.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그들의 목자가 되시어 영원토록 그들을 인도하소서”(시 28:9) 예...

흑암을 꺾으신 참 빛과 주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영원한 반석(시 27:1)

  흑암을 꺾으신 참 빛과 주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영원한 반석(시 27: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 27:1) 시편 27편은 다윗의 시로서 군대가 진을 치고 전쟁이 일어나는 극한의 위기 속에서도 오직 한 가지 일(주의 장막과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만 구하는 영성을 볼 수 있다. 이 시는 궁극적으로 인류의 흑암을 몰아내신 참 빛이시며 사망의 포위 속에서도 십자가를 통과하여 영원한 승리의 반석에 오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계시한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을 의지하심으로 인하여, 죄와 사망의 짙은 어둠에 갇힌 세상을 향해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라 하셨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대제사장의 군대와 무리가 주님을 잡으러 왔을 때, 주님의 한 말씀 앞에 그들이 물러가 땅에 엎드러졌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니라 하실 때에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요 18:6)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하실 때에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의 충만함을 자기 육체 안에 담아 오셨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그래서 십자가에 찢기신 그리스도의 몸은 우리를 삼위 하나님의 은혜로운 성전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이 된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제자들에게 배신당하고 버림을 받으셨고, 심지어 성부 하나님에게도 버림을 당하셨다. 즉 완전한 버림을 짊어지심으로 인하여 이제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언약 백성들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구원은 세상의 모든 관계와 가장 가까운 혈육조차 인간을 온전히 지켜줄 수 없음을 말한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 27:10)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수난과 고난 앞에서도 아버지의 부활의 약속을 바라보며...

흠 없는 순종으로 세우신 온전한 의와 십자가 보혈의 참된 예배(시 26:1)

  흠 없는 순종으로 세우신 온전한 의와 십자가 보혈의 참된 예배(시 26:1)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흔들리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시 26:1) 시편 26편은 다윗의 시로 기록되어 있다. 대적들의 불의한 비난과 모함 속에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나아가 결백을 탄원하는 시이다. 그가 “내가 나의 온전함을 행하였사오며”라고 고백하는 호소는, 인간의 자기 의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흠 없는 순종으로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신 참된 의인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하심과 그 보혈 안에서 정결함을 얻은 성도의 참된 예배를 계시한다. 하나님 앞과 원수들의 온갖 거짓 증언 앞에서도 흠이 없으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주님은 겟세마네와 십자가의 극심한 시험 속에서도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셨고, 성부 하나님은 아들의 흠 없는 순종을 온전히 열납하셨다. 즉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그래서 예배, 기도, 찬양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릴 때에 아버지께서 받으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셔서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으나, 죄와는 결코 타협하지 않으시고 구별되신 거룩하심을 보여 준다. “내가 행악자와 집회를 미워하오니 악한 자와 같이 앉지 아니하리이다”(시 26:5) 구약의 제사장이 물두멍에서 손을 씻고 제단으로 나아가듯,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흠 없는 무죄한 몸으로 십자가에 친히 희생제물이 되셨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 9:14)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에 친히 성전이 되시고, 영원한 제사장과 영원한 보혈의 피가 제물이 되어 온전한 제사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십자가의 은혜는 자기 백성을 악인의 운명에서 영원히 속량을 치루시고 구원하여 주신다. 그리므로 성도들은 흔들리지 않는 반석 ...

참되고 온전한 복음의 말과 쇠사슬을 뛰어넘는 구원의 여유(행 26:25)

  참되고 온전한 복음의 말과 쇠사슬을 뛰어넘는 구원의 여유(행 26:25)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행 26:25) 바울이 전한 십자가의 복음을 들은 총독 베스도의 반응이다. 그가 미친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행 26:25) 그는 감옥에 쇠사슬에 묶여 있다. 그런 와중에도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행 26:28) 그가 이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진노의 심판을 면할 수 있게 하셨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2)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게 되면 죄와 사망 가운데서 생명으로 옮겨지게 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을 얻은 자들에게 주어지는 기쁨이 있다. 구원을 얻었다고 함은 의를 전가받은 자가 되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영생의 복이란, 하나님과 함께 사는 운명이라 함을 말하고, 화목이란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된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구원을 얻은 기쁨으로 인하여 우리가 당당히 누릴 수 있는 것이 있다. 즉 죄와 사망의 자리를 벗어나게 됨을 인하여 하나님의 불의의 심판에 자리를 피하게 되므로 인한 기쁨이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로서의 관용이 있다. 지금 바울이 아그립바 왕에서 ...

세상의 조롱을 넘어선 십자가의 광채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행 26:24)

  세상의 조롱을 넘어선 십자가의 광채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행 26:24)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행 26:24)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신이 유대인들에게 고발 당한 이유와 가이사랴에 온 것을 자세히 변명하고 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과 자신이 회개를 하고, 사도 택함을 받아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행 26:20) 전하는 내용은 모세와 선지자들이 전한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계시가 이루어짐을 말하였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행 26:22) 그 내용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이방인에게도 전하여져야 한다는 것이다.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행26:23) 즉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아야 함을 전하고 있다. 그러자 베스도와 아그립바 왕의 반응이다.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행 26:24) 지금도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면 그것은 미친 짓이라 하는 자들이 있다. 왜 그와 같은 대답이 나오는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불의에 대한 진노의 심판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롬 3:19)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작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