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 구속자, 살아 계신 고엘을 바라보라(욥 19:6)
나의 산 구속자, 살아 계신 고엘을 바라보라(욥 19:6) “하나님이 나를 억울하게 하시고 자기 그물로 나를 에워싸신 줄을 알아야 할지니라”(욥 19:6) 욥은 극심한 육체적 고통과 사회적 고립, 그리고 친구들의 무자비한 정죄 속에서 신앙의 가장 깊은 어둠을 통과하고 있다. 이 절망 가운데 구속사적 빛이 비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을 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즉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도 모든 상황의 배후에 하나님의 주권이 있음을 고백한다. 그래서 개혁주의는 고난을 우연이나 사탄의 일방적인 승리로 보지 않는다. 하나님의 허락과 섭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다 이해하지 못하여 억울하다고 토로하고 있지만, 이것은 불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로서 그대로의 기도이다. 인간의 전적 타락과 비참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구절은 이러하다. “내 피부와 살이 뼈에 붙었고 남은 것은 겨우 잇몸뿐이로구나”(욥 19:20) 철저한 영적, 육적 파산 상채를 말하는 것이다. 율법의 사상은 고엘이다. 고엘은 친족을 대신해 빚을 갚아주거나, 기업을 물러주거나, 억울함을 풀어주는 가까운 친족을 뜻한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욥 19:25) 설령 자신의 가죽이 벗겨지고 육체가 썩어 없어질지라도, 육체 밖에서(새 몸을 입고), 자신을 변호하시고 신원해 주실 구속자를 보게 될 것을 확신하고 있다. 이것은 구약 시대에 이미 희미하지만 선명하게 계시된 부활 신앙이자, 언약적 신실함에 대한 확신이다. 즉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변호해 줄 또 다른 신적 중보자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 역시 제자들에게 버림받으셨고, 종교 지도자들과 군병들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내려오라’는 조롱을 당하셨다. 욥은 고난은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비로운 구속적 작정 속에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의 고난 역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