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다 귀한 사명과 의의 종 된 삶(행 21:11)
생명보다 귀한 사명과 의의 종 된 삶(행 21: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늘”(행 21:11) 사도바울은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에 하나인 빌립 집사의 집에 들어간다. 그곳에 유대로부터 내려온 선지자 아가보가 온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 간다고 하니 적극적으로 반대를 한다. 선지자는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신의 수족을 묶으며 말하기를 이와 같은 모습으로 결박을 당하여 로마 정권에 넘겨질 것이라 하였다. 그곳에 모인 모든 자들이 적극적으로 만류를 하고 있다.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행 21:12) 그러자 바울은 예루살렘에 올라가 결박을 당하는 것도 주의 일이라 한다. 즉 바울에게 있어서는 그의 생명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주님의 사명이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사도의 본질은 ‘보냄을 받은 자’로서 자신의 뜻이 아닌 오직 보내신 주인의 뜻과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 존재의 목적이다. 그래서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것보다 우선시 하였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만류를 하는데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것이다. 공동체는 바울의 확고한 뜻을 꺾지 못하고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하며 하나님의 주권에 순복을 한다.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함으로 우리가 주의 뜻 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행 21:14) 이와 같은 믿음의 고백을 하는데는 바울의 확고한 복음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라 하였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은 이전에는 두려움의 종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