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모함 속에서 바라보는 하늘 법정과 십자가의 공의(시 7:1)

  억울한 모함 속에서 바라보는 하늘 법정과 십자가의 공의(시 7:1)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내소서”(시 7:1) 다윗은 근거 없는 모함과 억울한 공격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대 앞에 자신을 세우며 호소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아무런 죄 없이 억울하게 고난 받으셨으나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의탁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예표한다. 그는 영혼을 찢으려는 원수들 앞에서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서 까닭 없이 빼앗았거든“(시 7:4) 원수가 내 생명을 짓밟아도 좋다고 하나님 앞에 결백을 토로한다. 인류 역사상 하나님과 사람 앞에 티나 흠이 없이 완전히 결백하셨던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시다.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벧전 2:22) 다윗은 인간 재판정이 아닌, 하늘의 최고 법정이신 하나님의 법정에서 판결해 주실 것을 간구한다.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시 7:8)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십자가의 억울한 모욕과 불법 재판 앞에서도 욕으로 갚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부탁하셨다.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벧전 2:23)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아들을 부활시키심으로 그분이 참된 의인이시자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온 우주 앞에 공의로 선언하셨다. 회개하지 않는 자를 향해 하나님은 칼을 가시고 불화살을 메우신다. 악인은 죄악을 낳고 재난을 잉태하여 결국 자신이 판 웅덩이에 스스로 빠지는 자멸의 심판을 맞이한다.  사탄은 죄와 사망의 덫을 놓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임으로써 승리했다고 생각했으나, 바로 그 십자가가 사탄 자신의 머리를 깨뜨리고 죄의 권세를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지혜이자 심판의 덫이 되었다. 다윗의 극심한 억울함과 고통...

층대 위에 선 온유함과 성령 안에서 세워지는 하나님 나라(행 21:40)

  층대 위에 선 온유함과 성령 안에서 세워지는 하나님 나라(행 21:40)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매우 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 말로 말하니라”(행 21:40) 바울이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설교자로 섰다. 무엇을 들고 섰을까? 복음을 맡은 전도자의 거룩한 신앙 인격으로 선 것이다. 자신을 죽이려 돌을 던지고 폭력을 행하였던 자들을 용서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저들을 마주한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고난과 수난을 당하실 때에 악행하는 자들을 용서하여 주셨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24) 또한 스데반 집사도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죽으면서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 7:60) 하였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저들이 하나님의 일을 알지 못해 저지르는 무지임을 알기에,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않고 구원의 기회를 전하는 것이다.“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 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행 17:30) 그러나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도 고의적으로 반항하는 자들이 있다. 이러한 자들에게는 마지막 날에 심판의 자리에 서게 된다.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에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행 17:31) 신자들은 하나님을 아는 인격자들이다. 인격이신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인격적인 순종과 사랑을 이루어 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의 공격 앞에서도 원한을 품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품은 성숙한 인격으로 복음의 선한 영향력을 흘려보내는 것이 참된 전도이자 선교이다. 그래서 주님의 교회가 드러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성령 안에 있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외적인 것에 이유와 조건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영내 문턱에서 전한 복음과 거룩한 신앙 인격(행 21:37)

  영내 문턱에서 전한 복음과 거룩한 신앙 인격(행 21:37) “바울을 데리고 영내로 들어가려 할 그때에 바울이 천부장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냐 이르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행 21:37) 하나님께서 이루시려 하시는 십자가의 복음이 어떻게 전해지고 있는지, 그리고 말씀 전하는 자를 어떻게 보호하시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즉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시고, 안전하게 지켜 주심을 확인할 있다는 것이다. 바울이 유대인들 앞에서 설교를 하게 되면 저들은 돌을 들고 치려 하였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도착해서는 천부장과 군인들의 보호 하에 안전하게 말씀을 다섯 번이나 전하게 된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개인의 억울함에 대한 변명이 아니라, 주님께 받았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즉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이 전하고자 하는 말은? 유대인들아 선민 사상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받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유대인들의 생각은, 메시아가 오면 이스라엘의 회복이요 다윗과 솔로몬의 영광의 재현이 있을 것이라는 믿었던 것이다. 또한 이방인들은 두려움과 종교심이 가득하여 사람의 손으로 만든 신들을 섬겼다. 그래서 신이라면 창조주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고 한 것이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행 17:24) 그래서 바울이 전하고자 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과 그 분의 계획을 알아야 함을 말한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도 구원하심이다. 그뿐 아니라 죄로 인해 피조물들이 고통을 받고 탄식하므로 창조 질서 회복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롬 8:18) 예수님의 초림은 영원한 생명을 주시러 오셨지만, 재림의 주님은 만물을 새롭게 하시고 공의로 심판하시는 완성자로 오신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직분의 거룩한 청지기직과 진리의 기둥 된 교회의 비밀(딤전 3:16)

  직분의 거룩한 청지기직과 진리의 기둥 된 교회의 비밀(딤전 3: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딤전 3:16) 딤전 3장은 주님의 몸된 교회에 장로와 권사 그리고 집사를 세우는데 기준점을 정해 주고 있다. 그런데 단순히 도덕적 체크 리스트가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론에서 직분은 인간의 권력이나 계급이 아닌,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 된 교회를 다스리시기 위해 주신 은사적 섬김이다. 감독과 장로는 선지자적 왕적 사역의 반영이다. 그래서 책망할 것이 없고, 가르치기를 잘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를 택하여야 한다.  왜 그래야 하는가? 말씀을 선포하여야 한다. 그런데 평소에 거짓말을 잘하는 자이면 전하는 말씀에 신뢰를 더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성도들을 바른 진리로 먹이고 이단적 오류로부터 교회를 지키는 사명을 감당하여야 한다. 집사들은 제사장적 긍휼 사역이다. 그래서 단정하고 일구이언하지 아니하며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로서 물질적 구제와 성도들의 실제적 필요를 돌보는 직무를 위한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기를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섬김과 긍휼(제사장직)을 교회의 삶 속에서 구체적인 순종으로 나타나야 한다. 장로와 집사는 교회에서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언약의 백성으로 살아야 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의 백성으로서 그 약속의 말씀대로 양육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택함을 받은 백성들이 어떻게 책임과 사명을 다 하여야 하는지를 말씀 하였다면, 이제는 교회의 정체성을 드러내야 한다.  교회의 정체성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속의 진리를 세우고 수호하는 언약적 기관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직분자의 세움의 목표는 바로 이 진리의 기둥을 견고히 ...

눈물의 탄식 속에서 만나는 그리스도의 대속과 부활의 확신(시 6:4)

  눈물의 탄식 속에서 만나는 그리스도의 대속과 부활의 확신(시 6:4)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시 6:4) 참회의 시이다. 극심한 육에적 질병과 영혼의 고통 속에서 우리의 질고를 짊어지시고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신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계시한다. 시인은 하나님의 거룩한 공의와 분노 앞에서 뼈가 떨리고(육체의 쇠약) 영혼이 심히 떨리는 (영적 절망) 극심한 고통 중에 은혜를 간구한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 동산과 골고다 십자가 위에서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 하시며 인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진노 잔을 온몸으로 받아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예표하는 것이다. 타락한 인간은 죄의 삯인 영원한 사망(스올)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으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사망의 깊은 곳까지 내려가심으로 우리를 건져내셨다.  예수님의 부활은 음부의 침묵을 깨뜨리고 영원한 찬양과 감사를 회복하신 구속사건이다.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시 6:4) 밤마다 눈물로 요를 적시고 침상을 띄우며, 대적의 핍박과 죄책감으로 인해 눈이 쇠하여졌음을 고백한다.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 6:6) 죄 없으신 우리 주님께서 우리 죄인들의 자리에서 쏟으신 그 대속의 눈물과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온전한 사죄의 은총을 입은 것이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신 이에게 심한 통록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 5:7) 탄식의 기도가 확신으로 변한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간구를 들으셨기에 모든 행악자는 물러가고 수치를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선언과 부활의 승리를 주신다. 사탄의 모든 대적의 정죄는 무력화 되었다. 아버지께서 아들의 기도를 들으심으로 그 안에 있는 모든 성도의...

아침 예배에 올리는 기도와 언약적 자비의 성소(시 5:3)

  아침 예배에 올리는 기도와 언약적 자비의 성소(시 5:3)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시 5:3) 다윗의 아침기도로서, 거짓과 악이 판치는 세상의 아침을 맞이하며 오직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헤세드)과 그리스도의 대속적 의를 의지하여 성전에 나아가는 참된 예배자의 길을 보여준다. 아침마다 아버지의 뜻을 구하며 자신을 온전한 번제물로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과 기도 사역을 통하여 매일 아침 단번에 영원한 제물이 되신 어린 양 그리스도를 힘입어 담대히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죄악을 기뻐하지 않으시며, 거짓과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들을 멸망시킨다. 저들의 입에는 신실함이 없고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아 혀로 아첨한다. 이것은 첫째 아담 이후에 전 인류의 철저한 부패와 죄성인 것이다. 즉 우리 모두가 열린 무덤 같은 악인이었으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율법의 진노와 심판을 대신 받으심으로 우리를 그 정죄에서 건져내셨다. 죄인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갈 수 있는 자가 아니다. 들어갈 수 있는 근거는 자신의 의가 아니라 언약적 자비이다.  즉 용서 받을 수 없는 자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인자하심이다. 그 인자하심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내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휘장)을 찢으심으로, 우리는 새롭고 살아있는 길을 통해 하나님의 보좌(성전)로 당당히 나아가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힙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히 10:19) 의인에게 베푸시는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주신다. 그래서 그 안에서 영원히 기뻐하며 친히 방패가 되어 주시어 호위하신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8)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완벽한 구원의 보증이다. 어떠한 환경과 조건에서도 우리의 기쁨...

영적 반역의 비극과 원시 복음으로 비춘 대속의 은혜(창 3:15)

  영적 반역의 비극과 원시 복음으로 비춘 대속의 은혜(창 3:15) “내가 너로 여자의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 창세기 3장의 타락 사건은 단순한 한 인간의 도덕적 실수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영적 파산과 언약적 반역,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 언약의 역사 속으로 개입하게 되는 구속사의 결정적 분기점이다. 사탄의 유혹과 아담 하와의 범죄 과정은 죄가 작동하는 본질적 구조를 보여 준다. 사탄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말씀의 절대적 권위를 의심하게 만들고, 하와는 말씀을 임의로 감하여 ‘죽을까 하노라’ 하며 언약적 경계를 약화 시킨다. 즉 사탄은 하나님을 악한 분으로 인식을 시키고, 하와는 자신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판단한 것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7) 죄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자율적으로 판단하게 하고 하나님과 같아 지려는 습성이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 그러므로 죄의 핵심은 피조물의 한계를 벗어나 스스로 선악의 입법자, 심판관이 되려는 교만이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을 인간 중심의 세계관으로 전복시킨 영적 반역이다. 그 결과로 인하여 관계가 파탄이 나고 책임을 전가하게 된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언약적 교제가 깨져서 나무 뒤에 숨고, 부부간의 관계도 금이 가서 책임을 전가하고, 뱀에게 책임을 돌리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뱀(사탄)에게 심판을 선고하시며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임을 약속하셨다. 즉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나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부활로 사탄의 권세(죄와 사망)를 완전히 짓밟으실 것을 예고한 최초의 복음이다. 인간이 스스로 만든 무화과나무 잎 치마로는 수치를 가릴 수 없다. 그래서 무죄한 짐승을 잡아 피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