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와 침묵을 넘어 십자가의 위로와 안식으로(욥 30:9)
수치와 침묵을 넘어 십자가의 위로와 안식으로(욥 30:9) “이제는 그들이 나를 노래로 조롱하며 내가 그들의 놀림거리가 되었으며”(욥 30:9) 욥은 과거의 찬란한 영광과 복락을 누렸던 것을 회상했고, 한 순간에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처한 이들에게 조롱을 당하는 형편에 처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냉정함 침묵과 무자비해 보이는 손길 속에서 육체적, 영적 절망의 극치를 통과하여야 한다. 그의 명예와 존엄성은 완전히 바닥에 추락하였는데, 이것은 인간 타락의 비참함과 세상 영광의 가변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인간이 누리는 세상의 지위, 명예, 존경은 하나님의 은혜가 거두어지면 한순간에 수치와 모욕으로 변할 수 있음을 말한다. 그러나 욥을 가장 괴롭게 한 것은 육신의 고통이나 사람들의 조롱보다 하나님의 가혹함과 침묵에 있었다. 부르짖어도 대답이 없고 가혹하게 치시는 하나님 앞에 욥은 죽음을 예감하게 된다.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하나님의 주권적 침묵과 고난의 신비를 믿는다. 이는 하나님이 욥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그분의 깊은 구속적 작정 속에서 믿음을 연단하시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타락한 세상 속에서 성도가 경험할 수 있는 영혼의 어두운 밤의 절정이다. 왜 그런가 하면 이 땅에서는 소망이 끊어진 것 같은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를 통과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욥이 당한 고난과 수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치와 조롱을 예표한다. 욥은 억울하게 수치를 당했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당해야 할 영원한 수치와 모욕을 당하신 것이다. 하나님을 부르짖어도 대답하지 않으신다고 한다. “내가 주께 부르짖으나 주께서 대답하지 아니하시오며 내가 섰사오나 주께서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다”(욥 30:20) 욥이 탄식했던 하나님의 가혹한 침묵은,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의 겪으신 단절의 고통에 극치에 달한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신 아들에게 철저히 침묵하시고 진노의 잔을 쏟으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