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죄의 교리를 넘어, 십자가의 전가된 의로 서라(욥 25:4)
정죄의 교리를 넘어, 십자가의 전가된 의로 서라(욥 25:4) “그런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여자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 (욥 25:4) 본문은 욥을 향한 친구 빌닷의 마지막 변론입니다. 단 여섯 구절밖에 되지 않는 짧은 분량이지만, 기독교 신학의 가장 핵심적인 과제인 '인간은 어떻게 하나님 앞에 의로워질 수 있는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빌닷은 하나님의 압도적인 위엄과 거룩하심을 찬양하는 동시에, 그 절대적인 기준 앞에 선 인간의 비천함을 극단적으로 대조하여 보여줍니다. 빌닷이 바라본 하나님은 높은 곳에서 절대 주권과 위엄을 가지시고 화평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그분의 천상 군대와 별들은 수효를 셀 수 없으며, 그분의 거룩한 빛이 비치지 않는 곳은 온 우주에 단 한 군데도 없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광대하심 앞에서 빌닷은 인간의 실존을 가차 없이 폭로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저 밤하늘의 달빛도 맑지 못하고 별조차 깨끗하지 못한데, 하물며 구더기 같은 사람, 벌레 같은 인생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의롭다 명함을 얻겠느냐는 것입니다. 율법주의의 비극: 긍휼을 잃어버린 전적 타락론 사실 빌닷의 말은 개혁주의 신학이 고백하는 인간의 '전적 타락(Total Depravity)'을 매우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신학에는 치명적인 공백이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와 '언약적 긍휼'을 전혀 몰랐다는 점입니다. 빌닷은 인간이 비록 타락했을지라도 본래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창조된 존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간과했습니다. 그는 차가운 교리의 잣대로 고난당하는 형제를 위로하기는커녕, 죄인을 더 깊은 절망의 구덩이로 밀어 넣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높은 곳에 계시는 하나님만 보았을 뿐, 낮고 낮은 세상으로 찾아오시는 '성육신의 은혜'를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