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야가 그 모인 모든 이를 위하여 백성들에게 자기의 소유 양 떼 중에서 어린 양과 어린 염소 십만 마리와 수소 삼천 마리를 내어 유월절 제물로 주매”(대하 35:7) #어린양

  “요시야가 그 모인 모든 이를 위하여 백성들에게 자기의 소유 양 떼 중에서 어린 양과 어린 염소 십만 마리와 수소 삼천 마리를 내어 유월절 제물로 주매”(대하 35:7) 요시야 왕은 율법책을 발견하고 옷을 찢으며 회개하였다. 그리고 이스라엘 역사상 전무후무한 최고의 유월절을 지킨다. 그런데 왕이 갑작스럽게 비극적인 죽임을 당한다.  왕은 1월 14일에 유월절 절기를 지키는데 사무엘 이후에 이와 같은 유월절을 지킨 적이 없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직분을 세우고 다윗이 정한 규례를 따라 질서 있게 예배를 드린다. 즉 성경이 명령한 규례대로 예배를 드린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있은 후에 므깃도 전투에 참여하게 된다. 그 이유는 애굽 왕인 느고가 갈그미스 전투를 하러 올라가는데 이를 막고자 하다가 활 쏘는 자의 활에 중상을 당한다. 그런데 느고가 이르기를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셔서 전쟁에 나가는 것이니 막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요시야 왕은 고집을 부리다가 죽게 되는 것이다.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오히려 변장하고 그와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므깃도 골짜기에 이르러 싸울 때에”(대하 35:22) 이 사건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가난한 백성들은 유월절 어린 양을 준비할 능력이 없었다. 그 때에 왕과 지도자들이 자신의 재산(수 만 마리의 양과 소)를 백성에게 거져 주어 값없이 유월절을 지킨 것이다. 이것은 죄인이 구원받는 개혁주의 구원의 은혜이다. 즉 죄인들은 죽음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어린 양을 스스로 준비할 수 없는 전적으로 무능한 임을 나타낸다. 그리고 요시야 왕의 죽음으로 확인하는 것은 인간 영웅을 미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 중에 아무리 훌륭한 왕이라도 흠없는 완전한 구원자가 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왕의 죽음은 율법적인 개혁의 한계를 드러낸다. 오직 죽음을 이기시고 영원히 통치하실 메시아가 필요함을 절실히 알 수 있다. 사랑하는 ...

“진실로 내가 이 일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욥 9:2)

  “진실로 내가 이 일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욥 9:2) 빌닷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말하였다. 그러자 욥은 원론적인 신학에 동의하지만 그 거대한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겪는 실존적인 무력감과 두려움을 토로한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힘을 인정하지만 그것이 자신에게는 공포와 절망으로 다가옴을 고백한다. “그는 마음이 지혜로우시고 힘이 강하시니 그를 거슬러 스스로 완악하게 행하고도 형통할 자가 누구이랴”(욥 9:4) 설령 자신이 의로울지라도 하나님께 대답할 수 없고 오히려 긍휼을 빌어야 할 뿐이라고 한탄을 한다.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 대답하지 못하겠고 나를 심판하실 그에게 간구할 뿐이며”(욥 9:15) 욥의 한탄과 탄식에는 개혁주의 구원론과 기독론의 핵심 주제가 강력하게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어떻게 의롭다 함을 받는 것과 판결자를 구하는 것이다. 인간이 의로워지는데 눈 녹은 물로 씻는다고 해서 정결한 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눈 녹은 물로 몸을 씻고 잿물로 손을 깨끗하게 할지라도”(욥 9:30) 이것은 인간의 전적인 타락을 인정하는 것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전해지는 하나님의 의가 필요함을 말한다. “진실로 내가 이 일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욥 9:2)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한계로 인하여 하나님의 숨겨진 뜻을 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간격을 메워줄 중재자가 있어야 함을 말한다. “우리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도 없구나”(욥 9:30) 이것은 신약에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는 한 분이시니 그리스도 예수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 욥은 깊은 절망에 빠져있다. 하나님의 위대하신 주권을 알기 위해서는 중보자가 필요함을 고백한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두려우십니까? 하나님에 대하여 알고 싶으십니까? 그것에 대한 답은 오직 예...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어느 때까지 이런 말을 하겠으며 어느 때까지 네 입의 말이 거센 바람과 같겠는가”(욥 8:1-2)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어느 때까지 이런 말을 하겠으며 어느 때까지 네 입의 말이 거센 바람과 같겠는가”(욥 8:1-2) 욥의 친구인 엘리바스는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점잖게 말하였다면, 빌닷은 전통과 역사를 근거로 훨씬 더 직설적이고 날카롭게 정죄한다. 빌닷의 주장은 여호와 하나님은 정대로 정의를 굽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욥이 당하는 고난은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한다. 욥의 자녀들이 죄를 범하였기에 그 죄에 버려둔 것이다. “네 자녀들이 주께 죄를 지었음으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버려두셨나니”(욥 8:4) 그러니 다시 정직하고 청결한 생활을 하면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 한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 빌닷의 주장은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옛적부터 내려오는 검증된 지혜라는 것이다. “청하건대 너는 옛 시대 사람에게 물으며 조상들이 터득한 일을 배울지어다”(욥 8:8) 그는 비유를 통하여 말한다. 왕골(갈대)이 물이 없이 자랄 수 없듯이 하나님을 잊은 자는 희망이 없다고 한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자의 길은 다 이와 같고 저속한 자의 희망은 무너지리니”(욥 8:13) 그리고 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니 회개하고 하나님을 따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악한 자를 붙들어 주지 아니하시므로”(욥 8:20) 빌닷의 신앙은 이러하다. 하나님의 공의를 결과적인 인과응보로만 해석을 하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주권적인 자유를 가지신 것을 알지 못한 것이다. 그의 신앙은 율법주의적 신앙으로서 ‘네가 만일 청결하고 정직하면’ 이라는 전제 조건을 단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어느 인간도 완벽하지 않다는 개혁주의 신학과 대치가 된다. 그리고 전통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위에 있지 않다. 즉 그의 전통적인 지혜는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맞지만 욥의 특수한 고난(계시적 사건)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리의 말씀(율법)을 전...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행 11:18) #영생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행 11:18) 예수 그리스도와 생명적인 연합이 된 자들이 누리는 은혜는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약속하신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세상에서 버려진 고아처럼 살지 않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 14:18) 성령 세례를 받음으로 인하여 주님이 내 안에 계신다.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 이제 예수 안에 거하는 자는 충만한 은혜를 받아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야 한다. 그 이유는 예수님 안에 하나님이 계셔서 하신 일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욕심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거룩과 순종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 1:16)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나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하나가 되게 하시는 것이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 이제 하나 된 것을 세상이 알게 하여야 한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그들로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 17:23) 즉 아들이 되어 아버지의 뜻을 세상에 전하게 하기 위함이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6) 세상에 하나 됨을 증거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도 간의 연합으로 증명이 되어야 한다. 베드...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리라”(행 11:17) #생명 얻는 회개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리라”(행 11:17) https://youtu.be/JZOWP8tkhqw?si=kShbb-j2wJYcK_kN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 세례를 베풀고 유숙한 것에 대해서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행 11:3) 그러자 베드로는 자신의 논리나 감정이 아니 성령의 간섭하심으로 증거를 세운다.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행 11:15) 즉 고넬료 가정에 성령이 임한 사건은 십자가의 복음이 유대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확장되었다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 세례를 통해 우리는 전혀 다른 출신임에도 하나님의 몸으로 연합된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 그리고 본문에서는 성령 세례의 진짜 목적인 생명적 연합을 증거하고 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행 11:18)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단지 죄사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 있는 영생을 받아 하나님과 함께 되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요 5:26) 이것이 성령 세례의 목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듯, 주님과 유기적이고 생명적인 관계로 묶이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은혜를 받은 자가 세례 예식을 하여야 한다. 예식을 통하여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주인의 말을 들으며 살 것을 선포하는 것이다. 세례 받는 자의 믿음의 고백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 나도 함께 죽었고, ...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빌 3:21) #천국시민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빌 3:21)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두 종류로 나뉜다. 십자가의 원수와 하늘의 시민권자로서 삶과 운명이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신자가 바라보아야 할 종말론적 소망은 하늘나라의 소망이다. 소망이라 함은 하나님께서 그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는 것을 말한다. 먼저 십자가의 원수의 삶은 이러하다. 자신의 육신적 탐욕과 정욕을 우상으로 삼는 것이다. 그리고 철저한 자기 부인과 희생이 없는 것을 말한다. 즉 오직 세속적인 성공과 땅의 일만 생각한다. 그렇다면 소망을 가진 자의 삶과 믿음은 무엇인가? 그 당시 빌립보 사람들은 로마의 식민지로 살면서 로마 시민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았다. 그 자부심은 로마의 법과 문화를 따르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그래서 신자들은 이 땅에 살고 있지만 하늘나라의 법과 통치를 따르는 것을 자랑하며 기뻐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 땅의 가치관에 동화되지 않고 천국 시민다운 거룩한 구별됨을 말한다. 믿는 자들의 소망은 예수님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이다. 그날에는 우리의 육신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완벽하게 변화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빌 3:21) 그러므로 배를 신으로 삼는 삶에서 자기를 부인하는 제자도의 삶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또한 땅의 일에서 하늘의 보물로 시선이 이동한다.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 그리고 세상에서는 나그네로 살아가는 삶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요 17:1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을 이길 힘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

“왕이 자기 처소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이루리라 하고”(대하 34:31) #율법책, #회개

  “왕이 자기 처소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이루리라 하고”(대하 34:31) https://youtu.be/v3_qOxoYGoI?si=eaNVrKvpXtTVSHO7 구약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개혁을 단행한 요시야 왕의 이야기이다. 앞선 왕들은 개혁이 주로 성전 청소나 우상 타파에 머물렀다면, 요시야는 그 모든 것의 뿌리가 되는 율법책의 발견과 회복에 중요함이 있다. 즉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 어떻게 한 사람의 영혼과 국가의 운명을 뒤바꿔 놓는지를 생생하고 보여준다. 8세에 왕 위에 오른 요시야는 16세가 되던 해에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20세가 되던 해에는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하게 하여, 바알의 제단을 헐고 아세라 목상과 아로새긴 우상들을 빻아 가루로 만들어 묘지에 버린다. 26세가 되던 해에 성전 수리를 하게 된다. 성전을 보수하던 중, 대제사장 힐기야가 전한 여호와의 율법책을 발견한다. 서기관 사반이 율법책을 낭독하자 요시야가 그 말씀을 듣고 자기 옷을 찢는다. 여 선지자인 훌다에게 여호와의 뜻을 묻는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이곳과 주민들에게 저주와 심판이 임할 것이라 확언을 한다. 요시야의 믿음은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여 바벨론에게 망하고 포로로 잡혀가지만, 오늘을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듣고 회개하였던 것이다.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은 요시야만큼은 평안을 약속하시고 죽은 후에는 조상의 묘실에 들어갈 것을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네게 너의 조상들에게 돌아가서 편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내가 이곳과 그 주민에게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가 눈으로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이에 사신들이 왕에게 복명하니라”(대하 34:2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회개의 은혜가 동반이 됩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 말씀에는 살아 있는 운동력이 있어서 마음과 골수까지 들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