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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수난과 영광의 보좌 사이에 선 참된 목자 예수 그리스도(시 23:1)

  십자가 수난과 영광의 보좌 사이에 선 참된 목자 예수 그리스도(시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시편 23편은 성도들에게 가장 친숙하고 사랑받는 시이다. 올바른 묵상을 하기 위해서는 앞에 22편(십자가 수난의 목자)과 24편(영광의 왕으로 입성하시는 목자)의 말씀 사이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신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부활의 생명 잔치를 계시하는 구속사의 핵심 본문이다. 양들은 스스로 맹수를 피할 능력이나 풀밭을 찾을 수 없는 전적 무능한 존재이다. 그런데 목자가 있으므로 인하여 결핍과 부족함이 사라진다. 즉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고 영혼을 소생시키며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누리며 영적 굶주림이 영원히 해결된다. 그리고 목자의 언약과 명예를 걸고 자기 백성을 결코 멸망하지 않는 의의 길로 끝까지 인도하신다. 성도의 견인이 약속된 것이다.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가 걸어야 할 가장 깊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친히 먼저 통과하셨다. 그분은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이 되셨기에, 이제 양 된 성도가 사망의 그늘을 지날 때도 고아가 아니라는 것이다.  목자의 막대기는 사탄과 사망의 권세를 결박하고, 지팡이는 실족하는 성도를 붙들어 영원한 구원으로 인도한다. 목자는 대적들이 보는 가운데 식탁을 차려주시고 머리에 기름을 부으시고 잔이 넘치게 하는 은혜를 주신다. 그리스도의 승리는 사탄과 세상 권세가 보는 앞에서 공개적 승리의 축복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살과 피로 새 언약의 성찬(생명의 떡과 잔)을 제정하시고, 성령 기름 부으심을 우리에게 부어주셨다.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요일 2:20) 예수님의 대속 사역의 최종 완성은 성도를 영원한 하...

골고다의 흑암을 뚫은 부르짖음과 부활로 세우신 거룩한 교회(시 22:1)

  골고다의 흑암을 뚫은 부르짖음과 부활로 세우신 거룩한 교회(시 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시 22:1)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께 밤낮 부르짖어도 응답이 없는 완전한 단절을 겪는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거룩하신 분으로 인정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골고다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시기 전 외치시던 제4언(가상칠언)의 직접적인 성취이다. “제 구 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 27:46) 예수님은 벌레 취급을 받으며 비방과 멸시를 당한다. 대적들은 입술을 삐죽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것’이라 조롱을 한다. 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 허리에 창에 찔린다. 뼈가 다 어그러지며, 겉옷을 나누고 속옷을 제비 뽑는다. 그리고 겉옷을 나누고 속옷을 제비 뽑아 나눈다. 이와 같은 고통 속에 간절히 기도하시며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긴다. 그러자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임하였다.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시 22:21) 성부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대속 제사를 받으시고 무덤에서 예수님을 일으키시는 부활의 승리를 주신다. 즉 사망의 세력들이 그리스도를 영원히 가둘 수 없었으며, 십자가의 참혹한 죽음은 부활의 영광스러운 생명으로 응답이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승리하신 기쁨을 성령을 통하여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를 세우셨다. 그리고 자기 백성을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셨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히 2:11) 교회를 통하여 유대인을 넘어 온 열방의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세계 복음화가 열렸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선...

사슬에 매인 자의 당당함과 꺾이지 않는 부활의 생명(행 25:19)

  사슬에 매인 자의 당당함과 꺾이지 않는 부활의 생명(행 25:19)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가 죽은 것을 살아 있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고발하는 것뿐이라”(행 25:19) 바울은 죽음과 권력자들 앞에서 부활의 은혜로 살았다. 오히려 부활의 삶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즉 부활의 기쁨은 세상이 말하는 가벼운 유쾌함이 아니라, 고난의 한복판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만남으로써 어떤 환난과 슬픔 앞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는 믿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죄수의 몸으로 사슬이 묶여 있으면서도, 화려한 왕관을 쓴 아그립바 왕을 오히려 불쌍히 여기며 영혼 구원을 염려하는 당당함이다.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행 26:29) 부활의 은혜로 산다는 것은, 죽음과 고난을 통과하는 생명의 능력이다. 부활의 기쁨과 영생은 십자가의 고난과 자아의 죽음을 통과할 때 비로소 주어진다.  부활의 능력은 죄와 어둠, 사망의 결박을 완전히 깨뜨리고 영원한 생명으로 살아나는 하나님의 권능이라는 것이다. 즉 죽은 자가 살아난 기쁨으로, 더 이상 죽음과 어두움과 상관이 없음을 말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권능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기준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 5:9) 그러므로 부활의 은혜로 산다는 것은 죽음과 고난을 통과하여야 한다. 그 때에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기쁨을 누리며 사는 것이다. 오늘날도 그때와 마찬가지이다. 부활에 대하여 관심이 없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신의 배를 채우려 하는 자들이 더 많아 졌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과 핍박하는 자들이 우리들의 주변에 있습니다. 이 ...

부활에 무관심한 세상과 온몸으로 드리는 거룩한 산 제사(행 25:14)

  부활에 무관심한 세상과 온몸으로 드리는 거룩한 산 제사(행 25:14) “여러 날을 있더니 베스도가 바울의 일로 왕에게 고하여 이르되 벨릭스가 한 사람을 구류하여 두었는데”(행 25:14) 바울이 가이사야에 도착한 지 이 년이 지났다. 그래서 총독이 벨릭스에서 베스도로 바뀌었고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등장한다. 하지만 백성들은 아직도 바울을 죽이려 하고, 권력자들은 바울에게는 잘못이 없는 것을 알지만 자기와는 상관이 없다는 주장이다. 즉 바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전부이고, 세상은 권력자가 바뀌어도 부활에는 관심이 없고, 반대하는 자들은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가 죽은 것을 살아 있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고발하는 것뿐이라”(행 25:19) 저들에게는 예수가 죽고 부활하는 문제보다 세상에서 권력과 돈에 더 관심이 있음을 보여 준다.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행 26:8) 바울이 이 년 동안 가이사랴에 있었지만, 세상은 변한 것이 없고 바울은 여전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 바울은 벨릭스, 베스도처럼 살지 말라고 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대로 사는 것이 산 제사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그런데 부활의 열매가 있어야 산 제사를 드릴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거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을 나타내셨기 때문이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 5:9)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착함은, 모든 관대한 정신으로 온유한 성품이다. 그리고 의로움은 ...

두려움을 이기는 성령의 권능과 사망을 폐하신 복음의 승리(딤후 1:7)

  두려움을 이기는 성령의 권능과 사망을 폐하신 복음의 승리(딤후 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딤후 1:7) 바울이 디모데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계획하신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신 것인데, 사망을 폐하시고 생명을 드러내신 그리스도의 승리이다. 고난 속에서도 복음의 사명과 책임을 지켜내기 위한 성도의 견인의 교리를 전하고 있다.  로마 제국의 네로 박해와 교회의 배교 속에서 연약한 본성을 지닌 디모데에게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영이 두려워하는 영이 아님을 상기시킨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딤후 1:7) 성령은 십자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역사하시는 권능과 사랑과 절제의 영이시다. 그러므로 어떤 박해와 고난이 있더라도 실망하지 말라는 것이다. 즉 바울은 지금 로마 감옥에 있는데, 그것을 부끄러워 하지 말라 한다. 왜 그런가 하면 그리스도의 구속에 참여한 자는 필연적으로 십자가의 고난에도 동참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 8:17) 그리고 구권은 우리들의 행위로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이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십자가 대속과 부활로 죄의 삯인 사망의 권세를 완전히 무력화 하였고, 복음으로써 영원히 썩지 아니할 부활의 생명을 환희 드러냄으로 성도의 육신의 죽음이나 로마 감옥의 위협은 더 이상 패배가 아니다. 그래서 바울은 쇠사슬에 묶인 채 죽음을 알고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이 신뢰하는 대상이신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신실하심을 알았기 때문인 것이다. 그것은 성도의 구원과 사역을 끝까지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손길이기...
  응답된 입술의 간구와 영원한 승리의 관을 쓰신 만왕의 왕(시 21:2) “그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 주셨으며 그의 입술의 요구를 거절하지 아니하셨나이다(셀라)”(시 21:2) 시편 21편은 20편에서 백성들이 간구하였던 기도가 마침내 완전히 응답되었음을 선포한다. 역사적으로는 다윗 왕의 승리를 찬양하지만, 긍극적으로는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 승천하사 영원한 영광의 관을 쓰신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승리를 찬양하는 것이다. 왕이 여호와의 힘과 구원으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나아가시며 품으셨던 유일한 소원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것’이었다. 이 땅에서 조롱과 가시관을 쓰셨던 주님은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영화와 존귀의 영원한 면류관을 쓰시고 만유의 주가 되셨다.  왕이 생명을 구하며 하나님이 영원무궁한 장수를 주셨다. 그런데 인간 다윗은 죽어 무덤에 묻혔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망의 권세를 완전히 정복하시고 다시는 죽지 아니하시는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가 된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은혜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을 성취시킨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갈 3:14) 메시아의 승리는 자신의 군사력이나 업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불변하시는 언약적 사랑(헤세드)에 대한 적적인 신뢰였다. 즉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고난과 무덤 속에 계실 때에도 아버지의 신실하신 언약을 온전히 지키심으로 인하여 부활하시고 영원한 왕국을 세우게 된 것이다. 십자가에서 사탄의 권세를 꺾으신 그리스도께서는 장차 재림의 날에 복음에 불순종하고 끝까지 대적하는 원수들을 향해 공의로운 심판을 행하신다.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살후 1:9) 예수 ...

병거와 말을 꺾으신 십자가의 승리와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시 20:7)

  병거와 말을 꺾으신 십자가의 승리와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시 20:7)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시 20:7) 시편 20편은 이스라엘이 전쟁에 나가기 전에, 왕을 위해 백성과 제사장이 성소에서 함께 드리는 시이다. 즉 출전 전의 왕을 위한 기도시라는 것이다.  이 시는 궁극적으로 군사적 승리를 넘어, 죄와 사망의 세력을 멸하기 위해 영적 전쟁터인 골고다 언덕으로 나아가시는 참된 기름 부음 받은 왕인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백성들은 전쟁이라는 환난 날에 직면한 왕을 향해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성소에서 너를 도와주시고,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아주시기를 원하노라”하며 축복을 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처절한 ‘환난 날’은 온 세상의 죄를 짊어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 날이었다.  그리스도는 짐승의 피가 아니라, 겟세마네의 눈물의 기도와 십자가 위에서 자기 자신을 흠 없이 온전한 영원한 번제물로 하나님께 올려 드렸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히 10:12) 예수님의 유일한 마음의 소원과 영원한 계획은 택하신 자기 백성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구원해 내시는 아버지의 뜻이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 6:39)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고 선언하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아버지의 구속 계획은 온전히 성취되었다. 그 구원을 받은 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승리를 찬양하며 믿음의 승전 깃발을 높이 들게 된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승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오른 손의 권능으로 사흘만에 살리사 하늘 보좌 우편에 높이 올리셨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행 2:32) 부활은 아들의 순종에 대한 아버지의 공식적인 구원 응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