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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슬에 매인 자의 당당함과 꺾이지 않는 부활의 생명(행 25:19)

  사슬에 매인 자의 당당함과 꺾이지 않는 부활의 생명(행 25:19)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가 죽은 것을 살아 있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고발하는 것뿐이라”(행 25:19) 바울은 죽음과 권력자들 앞에서 부활의 은혜로 살았다. 오히려 부활의 삶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즉 부활의 기쁨은 세상이 말하는 가벼운 유쾌함이 아니라, 고난의 한복판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만남으로써 어떤 환난과 슬픔 앞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는 믿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죄수의 몸으로 사슬이 묶여 있으면서도, 화려한 왕관을 쓴 아그립바 왕을 오히려 불쌍히 여기며 영혼 구원을 염려하는 당당함이다.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행 26:29) 부활의 은혜로 산다는 것은, 죽음과 고난을 통과하는 생명의 능력이다. 부활의 기쁨과 영생은 십자가의 고난과 자아의 죽음을 통과할 때 비로소 주어진다.  부활의 능력은 죄와 어둠, 사망의 결박을 완전히 깨뜨리고 영원한 생명으로 살아나는 하나님의 권능이라는 것이다. 즉 죽은 자가 살아난 기쁨으로, 더 이상 죽음과 어두움과 상관이 없음을 말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권능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기준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 5:9) 그러므로 부활의 은혜로 산다는 것은 죽음과 고난을 통과하여야 한다. 그 때에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기쁨을 누리며 사는 것이다. 오늘날도 그때와 마찬가지이다. 부활에 대하여 관심이 없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신의 배를 채우려 하는 자들이 더 많아 졌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과 핍박하는 자들이 우리들의 주변에 있습니다. 이 ...

부활에 무관심한 세상과 온몸으로 드리는 거룩한 산 제사(행 25:14)

  부활에 무관심한 세상과 온몸으로 드리는 거룩한 산 제사(행 25:14) “여러 날을 있더니 베스도가 바울의 일로 왕에게 고하여 이르되 벨릭스가 한 사람을 구류하여 두었는데”(행 25:14) 바울이 가이사야에 도착한 지 이 년이 지났다. 그래서 총독이 벨릭스에서 베스도로 바뀌었고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등장한다. 하지만 백성들은 아직도 바울을 죽이려 하고, 권력자들은 바울에게는 잘못이 없는 것을 알지만 자기와는 상관이 없다는 주장이다. 즉 바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전부이고, 세상은 권력자가 바뀌어도 부활에는 관심이 없고, 반대하는 자들은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가 죽은 것을 살아 있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고발하는 것뿐이라”(행 25:19) 저들에게는 예수가 죽고 부활하는 문제보다 세상에서 권력과 돈에 더 관심이 있음을 보여 준다.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행 26:8) 바울이 이 년 동안 가이사랴에 있었지만, 세상은 변한 것이 없고 바울은 여전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 바울은 벨릭스, 베스도처럼 살지 말라고 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대로 사는 것이 산 제사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그런데 부활의 열매가 있어야 산 제사를 드릴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거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을 나타내셨기 때문이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 5:9)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착함은, 모든 관대한 정신으로 온유한 성품이다. 그리고 의로움은 ...

두려움을 이기는 성령의 권능과 사망을 폐하신 복음의 승리(딤후 1:7)

  두려움을 이기는 성령의 권능과 사망을 폐하신 복음의 승리(딤후 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딤후 1:7) 바울이 디모데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계획하신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신 것인데, 사망을 폐하시고 생명을 드러내신 그리스도의 승리이다. 고난 속에서도 복음의 사명과 책임을 지켜내기 위한 성도의 견인의 교리를 전하고 있다.  로마 제국의 네로 박해와 교회의 배교 속에서 연약한 본성을 지닌 디모데에게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영이 두려워하는 영이 아님을 상기시킨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딤후 1:7) 성령은 십자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역사하시는 권능과 사랑과 절제의 영이시다. 그러므로 어떤 박해와 고난이 있더라도 실망하지 말라는 것이다. 즉 바울은 지금 로마 감옥에 있는데, 그것을 부끄러워 하지 말라 한다. 왜 그런가 하면 그리스도의 구속에 참여한 자는 필연적으로 십자가의 고난에도 동참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 8:17) 그리고 구권은 우리들의 행위로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이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십자가 대속과 부활로 죄의 삯인 사망의 권세를 완전히 무력화 하였고, 복음으로써 영원히 썩지 아니할 부활의 생명을 환희 드러냄으로 성도의 육신의 죽음이나 로마 감옥의 위협은 더 이상 패배가 아니다. 그래서 바울은 쇠사슬에 묶인 채 죽음을 알고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이 신뢰하는 대상이신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신실하심을 알았기 때문인 것이다. 그것은 성도의 구원과 사역을 끝까지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손길이기...
  응답된 입술의 간구와 영원한 승리의 관을 쓰신 만왕의 왕(시 21:2) “그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 주셨으며 그의 입술의 요구를 거절하지 아니하셨나이다(셀라)”(시 21:2) 시편 21편은 20편에서 백성들이 간구하였던 기도가 마침내 완전히 응답되었음을 선포한다. 역사적으로는 다윗 왕의 승리를 찬양하지만, 긍극적으로는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 승천하사 영원한 영광의 관을 쓰신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승리를 찬양하는 것이다. 왕이 여호와의 힘과 구원으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나아가시며 품으셨던 유일한 소원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것’이었다. 이 땅에서 조롱과 가시관을 쓰셨던 주님은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영화와 존귀의 영원한 면류관을 쓰시고 만유의 주가 되셨다.  왕이 생명을 구하며 하나님이 영원무궁한 장수를 주셨다. 그런데 인간 다윗은 죽어 무덤에 묻혔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망의 권세를 완전히 정복하시고 다시는 죽지 아니하시는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가 된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은혜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을 성취시킨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갈 3:14) 메시아의 승리는 자신의 군사력이나 업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불변하시는 언약적 사랑(헤세드)에 대한 적적인 신뢰였다. 즉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고난과 무덤 속에 계실 때에도 아버지의 신실하신 언약을 온전히 지키심으로 인하여 부활하시고 영원한 왕국을 세우게 된 것이다. 십자가에서 사탄의 권세를 꺾으신 그리스도께서는 장차 재림의 날에 복음에 불순종하고 끝까지 대적하는 원수들을 향해 공의로운 심판을 행하신다.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살후 1:9) 예수 ...

병거와 말을 꺾으신 십자가의 승리와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시 20:7)

  병거와 말을 꺾으신 십자가의 승리와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시 20:7)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시 20:7) 시편 20편은 이스라엘이 전쟁에 나가기 전에, 왕을 위해 백성과 제사장이 성소에서 함께 드리는 시이다. 즉 출전 전의 왕을 위한 기도시라는 것이다.  이 시는 궁극적으로 군사적 승리를 넘어, 죄와 사망의 세력을 멸하기 위해 영적 전쟁터인 골고다 언덕으로 나아가시는 참된 기름 부음 받은 왕인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백성들은 전쟁이라는 환난 날에 직면한 왕을 향해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성소에서 너를 도와주시고,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아주시기를 원하노라”하며 축복을 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처절한 ‘환난 날’은 온 세상의 죄를 짊어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 날이었다.  그리스도는 짐승의 피가 아니라, 겟세마네의 눈물의 기도와 십자가 위에서 자기 자신을 흠 없이 온전한 영원한 번제물로 하나님께 올려 드렸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히 10:12) 예수님의 유일한 마음의 소원과 영원한 계획은 택하신 자기 백성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구원해 내시는 아버지의 뜻이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 6:39)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고 선언하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아버지의 구속 계획은 온전히 성취되었다. 그 구원을 받은 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승리를 찬양하며 믿음의 승전 깃발을 높이 들게 된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승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오른 손의 권능으로 사흘만에 살리사 하늘 보좌 우편에 높이 올리셨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행 2:32) 부활은 아들의 순종에 대한 아버지의 공식적인 구원 응답...

의로운 해로 떠오르신 말씀과 영원한 구속자 그리스도(시 19:14)

  의로운 해로 떠오르신 말씀과 영원한 구속자 그리스도(시 19:14)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시 19:14) 시편 19편은 우주 만물에 깃들인 일반계시에서 시작하여 영혼을 소생시키는 기록된 말씀인 특별계시를 거쳐, 구속주를 향한 참회와 신앙고백으로 나아가는 구조로 되어 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낸다. 소리도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한다. 하나님이 태양을 위하여 장막을 베푸셨으며, 해는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용사와 같다고 한다.  바울은 이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한다.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펴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롬 10:18) 즉 어둠을 뚫고 떠오르는 태양은 자기 신부(교회)를 맞이하러 오시는 참된 신랑이자 어둠을 물리치는 의로운 해(의의 태양)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말 4:2) 인간은 율법의 요구를 지켜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없다. 율법의 참된 마침이자 목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니라”(롬 10:4) 친히 살아 숨 쉬는 말씀(로고스)이 되사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 죄로 죽었던 우리 영혼을 진정으로 소생시키셨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다윗은 스스로 죄를 깨달을 수 없고, 스스로 용서의 자리에 이를 수 없음을 고백한다. 이것은 죄로 타락한 인간의 전적 무능함을 말한다. 그러므로 율법의 빛이 강하게 비출수록 드러나는 것은 인간의 전적 부패와 무능력뿐이다. 오직 십자가에서 흘리신 ...

사망의 결박을 찢으신 부르짖음과 부활로 완성하신 구원의 승전가(시 18:3)

  사망의 결박을 찢으신 부르짖음과 부활로 완성하신 구원의 승전가(시 18:3)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시 18:3) 시편 18편은 장엄한 구원과 승리의 승전가이다. 여호와께서 다윗을 사울의 손과 모든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신 날에 부른 노래로 기록되어 있다. 다윗은 자신의 힘은 여호와로부터 오는 것이며, 사랑한다고 고백을 한다. 믿음의 고백에는 긍휼과 애정이 담겨 있는 것으로 여호와를 반석, 요새, 건지시는 이, 하나님, 피할 바위, 방패, 구원의 뿔, 높은 산성으로 찬양을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사시면서 전적으로 성부 하나님만을 힘과 피난처로 삼아 순종하셨다. 그리고 십자가의 극심한 고통 앞에서도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하나님만 의지하며 기도하셨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 5:7) 다윗이 사망의 줄이 두르고 불의의 창수가 덮치며 스올의 줄과 사망의 올무가 엄습할 때에 여호와께 아뢰고 성전에 들리게 하였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온 인류의 죄와 저주를 짊어지시고 사망 앞에 있을 때에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하였고,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기 전에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하셨다. 주님의 부르짖음은 하늘의 참 성전에 상달되었다. 기도를 들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진노로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드리워지며, 빽빽한 구름과 흑암, 번개와 우박 가운데 하나님이 강림하신다. 즉 높은 곳에서 손을 펴사 다윗을 건져내시고 넓은 곳으로 인도하셨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실 때 온 땅에 어둠이 임하고 지진이 일어나며 바위가 터졌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마 27:51-52) 그리고 사흘 만에 성부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