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장 아론의 자손 중에 흠이 있눈 자는 나와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지 못할지니 그는 흠이 있은즉 나와서 그의 하나님께 음식을 드리지 못하느니라”(레 21:21)

  “제사장 아론의 자손 중에 흠이 있눈 자는 나와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지 못할지니 그는 흠이 있은즉 나와서 그의 하나님께 음식을 드리지 못하느니라”(레 21:21) 사람의 후손인 아론의 자손들은 혈통에서 오는 감정 때문에 거룩함을 잃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다. 즉 죽은 자에 대하여 말하는 것인데 자신의 직계 가족 이외에는 만지지 말라는 것이다. 심지어 머리는 대머리로 깍지 말아야 하며 수염은 양쪽을 깍지 말며 살을 베지 말라고 한다. 왜 그런가하면 여호와 앞에 제사를 드리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족들의 죄까지도 경계한다. 제사장의 딸이 행음을 하였을 경우에는 가차없이 불에 태워 죽이라 하였다. “어떤 제사장의 딸이든지 행움하여 자신을 속되게 하면 그의 아버지를 속되게 함이니 그를 불사를지니라”(레 21:9) 특별히 대제사장은 어떤 시체에도 가까이 할 수 없으며 심지어 부모가 죽었을 때에도 가까이 할 수 없다. “어떤 시체에든지 가까이 하지 말지니 그의 부모로 말미암아서도 더러워지게 하지 말며”(레 21:11) 아론의 후손 가운데 육체에 흠이 있는 자는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나오지 못하였다. “아론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너의 자손 중 대대로 육체에 흠이 있는 자는 그 하나님의 음식을 드리려고 가까이 오지 못할 것이니라”(레 21:17) 흠이 있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와 제사를 드릴 수 없는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제사장 아론의 자손 중에 흠이 있눈 자는 나와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지 못할지니 그는 흠이 있은즉 나와서 그의 하나님께 음식을 드리지 못하느니라”(레 21:21) 그러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흠이나 죄가 없으신다.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벧전 2:22)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들에게는 아론의 후손의 제사장이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대제사장이 계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게 위해서는 죄에서 구별된 제사장이 필요합니다

너희는 나의 모든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여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거주하게 하는 땅이 너희를 토하지 아니하리라”(레 20:22)

  “너희는 나의 모든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여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거주하게 하는 땅이 너희를 토하지 아니하리라”(레 20:22) 이스라엘 백성이 택함을 받은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너희는 나에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를 나의 소유로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라”(레 20:26) 그래서 지켜야할 규례와 법도를 준 것이다. 규례와 법도에서는 사람이라면 지켜야할 도덕과 윤리에 관한 것들이다. 도덕과 윤리를 지킴으로 인하여 나를 거룩하게 하고 나의 가정과 집 식구들을 지키는 것이 된다.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하여 자식까지도 불에 태워 우상을 섬기는 일이나, 영적으로 음란한 신을 가족에게 소개한다든지, 육체 정욕의 쾌락을 위하여 가족이나 친족들을 대상으로 삼으면 안 된다. 만일 이와 같이 죄를 멀리하지 않으면 가나안 땅에 살았던 사람들처럼 그 땅에서 쫓겨날 것이라 한다. “너희는 나의 모든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여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거주하게 하는 땅이 너희를 토하지 아니하리라”(레 20:22) 즉 가나안에 살았던 부족들이 이와 같은 범죄를 저지름으로 그 땅에서 쫓겨났음을 말한다. “너희는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의 풍속을 따르지 말라 그들이 이 모든 일을 행하므로 내가 그들을 가증히 여기노라“(레 20:23) 이것을 본문에서는 땅이 토하여 냈다고 한다. 또 다른 표현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역겨워서 내 보앴다는 것이다. 결국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으므로 가나안 땅에서 쫓겨났다. 인간들이 죄를 범하면 땅들도 거부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즉 살인자들의 피와 부정한 것들이 땅으로 흐르면 엉겅퀴와 가시나무를 내미심을 말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백성이라면 최고의 운리와 도덕성을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고 오히려 선행과 덕을 세우는 자리로 갑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가 거룩성을 잃었습니다. 거룩한 율법을

너희는 내 모든 규례와 내 모든 법도를 지켜 행하라 나는 여호와이라”(레 19:37)

  “너희는 내 모든 규례와 내 모든 법도를 지켜 행하라 나는 여호와이라”(레 19:37) 여호와 하나님을 거룩하신 하나님이라 한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거룩함을 율법의 말씀으로 나타내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 19:2)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그분의 외형적이고 두려움이라 생각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본 자도 없고 볼 수 도 없으므로 이러한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딤전 6:16) 그렇다면 율법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분의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 된다. 하나님은 우상숭배와 죄악을 싫어하신다. 그래서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마음에 두지 말고, 나무나 돌에다 새기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짓으로 바꾸어 외치지 말고, 온 힘을 다하여 여호와께 예배하라 하셨다. 그뿐만아니라 이웃에게도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사랑으로 대하라는 것이다. 머리가 흰 사람을 보면 자리에서 일어서야 한다.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 19:32) 살인하지 말아야 하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이웃의 여인을 건드리지 말아야 하고, 도둑질하지 말아야 하고, 이웃을 비방하거나 거짓증거를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헛된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탐심이 가득하여 점집이나 박수를 찾아가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마음이며 그분의 특성이다. 이것을 따를 때에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이다. 율법을 지킬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얼마 전에 한국을 다녀왔습니다. 지하철안에 노약자석이 있어서 노인들이나 신체가 약한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지정한 자리였습니다. 노인들은 그곳으로 모여 있었는데 노인들끼리 자리를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마 8: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마 8:3)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권위는 율법을 통하여 확인이 되었다. 즉 그분의 병고침은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며 사랑으로 나타내셨다. 이전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 5:17) 하셨다. 예수님은 능력을 나타내시되 손을 내밀고 말씀하셨다. 율법의 의식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 성전 안에 휘장이 갈라짐으로 인하여 폐지되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존중해야 한다. 나병환자의 병고침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행하셨으며 고침 받은 것을 제사장에게 가서 확인하라 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라”(마 8:4) 병자는 그의 삶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았다. 부정한 자가 되어서 성밖에서 살아야 했고, 백성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행할 수 없었다. 몸을 썩어 살점이 떨어져 나가지만 아픔이 없고 치료 방법이 없다. 이러한 자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온 것이다. 주님의 약속의 말씀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그래서 고침과 안식을 얻었다. 이제 이 사람은 나병환자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피조물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새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 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그리고 하나님의 의를 전가받아서 아버지와 화목한 관계가 되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고후 5:18)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나병환자가 새롭게 되어서 어떻게 살았을까요? 삶의 소망이 없고 버림을

한 나병 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마 8:2)

  “한 나병 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마 8:2)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데 있어서 어떻게 믿는가는 참으로 중요하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그분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구약의 율법에서 나병 환자를 만질 수 있고 죄사함을 받게 하는 사람은 제사장이다. 나병환자를 정결케 하는 예식은 정결한 새 두 마리와 백향복과 홍색실과 우슬초를 준비한다. 새 한 마리를 물이 흐르는 곳에서 질그릇 안에서 잡은 피를 정결함을 받는 자에게 일곱 번 뿌린다. 그리고 새 한 마리는 멀리 날려 보낸다. 즉 죄에서 자유함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곱째 되는 날에 온몸의 털을 밀고 물로 씻어야 한다. 팔일째 되는 날에는 숫양 두 마리와 암양 한 마리를 바쳐야 했다. 속죄제와 속건제를 드려야 한다. 그래야 정결한 자가 되어 진영 안으로 들어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나병 환자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와 절하며 말하기를 주님은 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한다. 즉 주님에게는 나병을 고치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원하는 일이라 하신다.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마 8:3) 병자들은 고침을 받았고 고침받은 것을 제사장에게 가서 확인하고 예물을 드리라 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마 8:4)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나병환자를 고치시면서 어떠한 메시지를 전하려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속시키기 위해 이 따에 오신 영원한 대제사장이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구약에서 제사장이 나병환자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그러하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영적인 나병환자들을 속죄함을 받게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과 징계는 왜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의 자녀들도 거룩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고난을 받을 때에는 고통스럽고 슬퍼보이나 결국에는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된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슬퍼 보이나 후로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 12:11) 무슨 말인가 하면 거룩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의와 평강의 열매는 고난을 통하여 온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과일 나무가 열매를 맺기 위하여는 계절의 변화에 따른 시련과 환난이 있음과 같음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름의 땡볕을 견디어야 하고 장마철의 폭풍우를 견디어야 한다. 그와 같이 신자들도 견디어야 한다. 그래서 지치고 힘이 들지만 다시 무릎을 세우고 앞으로 전진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히 12:12) 이 일에 실패한 믿음의 선조가 에서이다.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여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동생에게 팔았다. 나중에 귀함을 알고 후회하였지만 돌이키지 못하였다.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히 12:16)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음성을 듣는 것이 모세의 때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모세의 율법은 신자들에게 두려움과 심판으로 다 왔지만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심판과 두려움이 아니라 한다. 그러면 왜 경고와 징계를 주시는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더 존귀하고 정결한 자를 만들기 위함이다. 아버지의 소원은 아들도 아버지만큼 거룩하여 지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즉 마지막 날에 하나님 앞에 자랑이 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고난 당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고, 뒤로 후퇴하지 말고 당당히 앞으로 나가라는 권면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너희는 이 모든 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들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더러워 졌고”(레 18:24)

  “너희는 이 모든 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들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더러워 졌고”(레 18:24)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다. 하나님은 그들의 생명을 구원한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생명의 주인이 되시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를 따라야 한다. “너희는 내 법도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레 18:4)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전의 애굽 땅의 풍습이나 이제 차지할 가나안 땅의 사람들의 풍습을 따르지 말라고 하신다. 저들이 행하였던 것은 우상숭배로서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려는데 있다. 육체의 욕망은 성적인 것으로서 타락의 시작이 된다. 이방사람들이 행하는 것처럼 스스로 몸을 더럽히는 자가 된다. “너희는 이 모든 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들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더러워 졌고”(레 18:24)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도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이다. 또한 가난안 족속들이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는 것도 우상숭배와 성적 타락으로 그 땅을 더럽혔기 때문이다.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그 악으로 말미암아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주민을 토하여 내느니라”(레 18:25) 땅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으로 인간의 영원한 삶의 터전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 땅을 기반으로 하여 축복된 삶을 누릴 수 있다. 땅이 토하여 낸다는 것은 의인법적 표현으로 생명이 없는 땅마저도 가증한 성범죄를 증오하여 자기에게서부터 범죄한 거민을 쫓아낸다는 의미이다.  즉 이것은 땅 역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인간을 또한 스스로 저버린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결국에는 우상숭배와 성적인 타락으로 가나안 땅에서 쫓겨났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으로서 이방신들을 따르는 것을 아주 싫어하십니다. 싫어하시는 것을 의인화하여 ‘토하다‘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사람이 싫어하는 음식이나 거부하는 음식을 내뱉듯 강력하게 배척하는 의미입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