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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되고 온전한 복음의 말과 쇠사슬을 뛰어넘는 구원의 여유(행 26:25)

  참되고 온전한 복음의 말과 쇠사슬을 뛰어넘는 구원의 여유(행 26:25)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행 26:25) 바울이 전한 십자가의 복음을 들은 총독 베스도의 반응이다. 그가 미친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행 26:25) 그는 감옥에 쇠사슬에 묶여 있다. 그런 와중에도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행 26:28) 그가 이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진노의 심판을 면할 수 있게 하셨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2)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게 되면 죄와 사망 가운데서 생명으로 옮겨지게 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을 얻은 자들에게 주어지는 기쁨이 있다. 구원을 얻었다고 함은 의를 전가받은 자가 되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영생의 복이란, 하나님과 함께 사는 운명이라 함을 말하고, 화목이란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된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구원을 얻은 기쁨으로 인하여 우리가 당당히 누릴 수 있는 것이 있다. 즉 죄와 사망의 자리를 벗어나게 됨을 인하여 하나님의 불의의 심판에 자리를 피하게 되므로 인한 기쁨이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로서의 관용이 있다. 지금 바울이 아그립바 왕에서 ...

세상의 조롱을 넘어선 십자가의 광채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행 26:24)

  세상의 조롱을 넘어선 십자가의 광채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행 26:24)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행 26:24)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신이 유대인들에게 고발 당한 이유와 가이사랴에 온 것을 자세히 변명하고 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과 자신이 회개를 하고, 사도 택함을 받아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행 26:20) 전하는 내용은 모세와 선지자들이 전한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계시가 이루어짐을 말하였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행 26:22) 그 내용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이방인에게도 전하여져야 한다는 것이다.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행26:23) 즉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아야 함을 전하고 있다. 그러자 베스도와 아그립바 왕의 반응이다.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행 26:24) 지금도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면 그것은 미친 짓이라 하는 자들이 있다. 왜 그와 같은 대답이 나오는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불의에 대한 진노의 심판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롬 3:19)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작정...

쇠사슬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알곡과 타작마당의 거룩한 연단(딤후 1:15)

  쇠사슬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알곡과 타작마당의 거룩한 연단(딤후 1:15)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느니라”(딤후 1:15) 구속사 전체에서 드러나듯, 위기의 순간마다 가라지와 알곡이 분리되는 배교의 아픔이 교회 안에 늘 있어 왔다. 본문에 등장하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히게 되고, 교회에 어려움이 닥쳐 오자 교회를 버리고 떠났다. 반면 오네시보로는 로마에 이르러 감옥에 갇힌 바울을 부지런히 찾아 위로했고, 사도의 쇠사슬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원하건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 주고 내가 사슬에 메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딤후 1:16)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실 때에 수난과 고난을 당하셨고,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셨다. 이 일에 골고다 언덕 위에 있었던 제자들은 다 도망을 갔다.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을 이루시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딤후 1:11) 사도 바울이 예수님이 당하셨던 십자가의 수치와 고난에 동참하고 있다. 그런데 이 일을 부끄러워하여 떠난 자들이 있었던 것이다.“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느니라”(딤후 1:15) 십자가의 수치와 고난을 통하여 알곡과 가라지가 구별이 된다. 그리스도의 고난의 흔적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섬긴 오네시보로처럼, 진리 때문에 고난을 받는 형제와 교회를 긍휼로 돌아보고 복음과 함께 기꺼이 좁은 길을 걸어야 한다. 바울은 주께서 그 날(최후 심판의 날)에 그 집안과 오네시보로에게 긍휼을 베푸시기를 간구하였다. “원하건대 주께서 그로 하여금 그날에 주의 긍휼을 입게 하여 주옵소서 또 그가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딤후 1:1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

부끄러움을 씻어내신 십자가의 길과 영원히 기억지 않으시는 은혜(시 25:4)

  부끄러움을 씻어내신 십자가의 길과 영원히 기억지 않으시는 은혜(시 25:4)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시 25:4) 시편 25편은 다윗의 시로서, 대적의 조롱과 젊은 시절의 죄책 그리고 외로움과 환난이라는 수치 속에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적 자비와 긍휼을 구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극심한 모욕과 멸시 앞에서도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온 영혼을 성부 하나님께 올려드렸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세상은 거짓으로 예수님을 모욕을 주고 벌거벗겨 나무에 달아 죽였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을 무덤에서 일으키사 결코 영원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시고 만유의 주가 되게 하셨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빌 2:9) 다윗은 주의 길을 가르쳐 달라고 한다.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므로 죄인들에게 길을 교훈하시며 온유한 자를 공의로 지도한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시 25:4) 그리스도는 단순한 도덕적 스승이 아니라 친히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 14:6) 이라고 선언하셨다.  이것을 십자가에서 성취하셨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적 사랑(헤세드)과 진리가 십자가에서 완전히 입 맞추고 성취되었다.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 맞추었으며”(시 85:10) 이와 같은 은혜를 성령을 통하여 죄인들에게 주심으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도를 순종하게 하는 것이다.  다윗은 과거에 수치스러운 죄를 범하였다. 그래서 주의 긍휼과 인자하심으로 젊은 날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말 것을 기도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자들은 과거의 수치를 묻지 않는다고 약속하셨다.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히 10:17) 왜 그런가 하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

영원한 문을 여신 개선 용사와 하늘 보좌로 입성하신 영광의 왕(시 24:9)

  영원한 문을 여신 개선 용사와 하늘 보좌로 입성하신 영광의 왕(시 24:9)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시 24:9) 시편 24편은 역사적으로 다윗이 오벧에돔의 집에서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 시온산 장막으로 메어 올릴 때에 불린 찬송이지만, 구속사적으로는 십자가에서 죄와 사망 권세를 꺾으신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사 영원한 하늘 성소로 입성하시는 대관식을 계시한다.  만유의 주권자이신 창조주가 예수 그리스도가 되신다. 만물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골 1:16) 예수님은 혼돈과 흑암의 바다를 밟으시고 잠잠케 하신 분이시다.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막 4:39) 또한 십자가 승리를 통해 타락으로 훼손된 만유의 주재권과 소유권을 확증하신 만물의 참된 통치자이시다.  누가 주의 성산에 설 것인가? 타락한 아담의 후손 중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기준을 통과하여 하늘 성산에 오를 자가 전무하다. 오직 죄가 전혀 없으시고 흠 없는 순종을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이 홀로 주의 성산에 오르실 자격을 갖춘 참된 의인이시다. 주님이 하늘 성소에 들어가심으로 그분을 믿는 자들, 곧 의롭다 함을 얻은 하나님의 참된 백성으로 세워진다. 성문의 문지기들은 묻는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시인은 외친다.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오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시 24:8)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개선 입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이다. 십자가에서 사탄과 사망의 권세를 무장 해제시키고 승리하신 전쟁에 능하신 용사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사 하...

십자가 수난과 영광의 보좌 사이에 선 참된 목자 예수 그리스도(시 23:1)

  십자가 수난과 영광의 보좌 사이에 선 참된 목자 예수 그리스도(시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시편 23편은 성도들에게 가장 친숙하고 사랑받는 시이다. 올바른 묵상을 하기 위해서는 앞에 22편(십자가 수난의 목자)과 24편(영광의 왕으로 입성하시는 목자)의 말씀 사이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신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부활의 생명 잔치를 계시하는 구속사의 핵심 본문이다. 양들은 스스로 맹수를 피할 능력이나 풀밭을 찾을 수 없는 전적 무능한 존재이다. 그런데 목자가 있으므로 인하여 결핍과 부족함이 사라진다. 즉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고 영혼을 소생시키며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누리며 영적 굶주림이 영원히 해결된다. 그리고 목자의 언약과 명예를 걸고 자기 백성을 결코 멸망하지 않는 의의 길로 끝까지 인도하신다. 성도의 견인이 약속된 것이다.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가 걸어야 할 가장 깊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친히 먼저 통과하셨다. 그분은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이 되셨기에, 이제 양 된 성도가 사망의 그늘을 지날 때도 고아가 아니라는 것이다.  목자의 막대기는 사탄과 사망의 권세를 결박하고, 지팡이는 실족하는 성도를 붙들어 영원한 구원으로 인도한다. 목자는 대적들이 보는 가운데 식탁을 차려주시고 머리에 기름을 부으시고 잔이 넘치게 하는 은혜를 주신다. 그리스도의 승리는 사탄과 세상 권세가 보는 앞에서 공개적 승리의 축복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살과 피로 새 언약의 성찬(생명의 떡과 잔)을 제정하시고, 성령 기름 부으심을 우리에게 부어주셨다.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요일 2:20) 예수님의 대속 사역의 최종 완성은 성도를 영원한 하...

골고다의 흑암을 뚫은 부르짖음과 부활로 세우신 거룩한 교회(시 22:1)

  골고다의 흑암을 뚫은 부르짖음과 부활로 세우신 거룩한 교회(시 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시 22:1)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께 밤낮 부르짖어도 응답이 없는 완전한 단절을 겪는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거룩하신 분으로 인정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골고다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시기 전 외치시던 제4언(가상칠언)의 직접적인 성취이다. “제 구 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 27:46) 예수님은 벌레 취급을 받으며 비방과 멸시를 당한다. 대적들은 입술을 삐죽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것’이라 조롱을 한다. 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 허리에 창에 찔린다. 뼈가 다 어그러지며, 겉옷을 나누고 속옷을 제비 뽑는다. 그리고 겉옷을 나누고 속옷을 제비 뽑아 나눈다. 이와 같은 고통 속에 간절히 기도하시며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긴다. 그러자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임하였다.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시 22:21) 성부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대속 제사를 받으시고 무덤에서 예수님을 일으키시는 부활의 승리를 주신다. 즉 사망의 세력들이 그리스도를 영원히 가둘 수 없었으며, 십자가의 참혹한 죽음은 부활의 영광스러운 생명으로 응답이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승리하신 기쁨을 성령을 통하여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를 세우셨다. 그리고 자기 백성을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셨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히 2:11) 교회를 통하여 유대인을 넘어 온 열방의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세계 복음화가 열렸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