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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의 열심을 넘어 성령으로 고백하는 참된 신앙(행 23:1)

  육신의 열심을 넘어 성령으로 고백하는 참된 신앙(행 23:1)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행 23:1)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을 향하여 증언을 하고 있다. 자신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었노라고 한다. 그러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치라 명령을 한다. 여기서 생각하여야 할 것은, 유대인들이나 바울이나 하나님을 믿고 있는데 갈등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즉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은혜를 받은 자들만이, 문제의 답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이성이나 육신적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진리와 율법의 참뜻을 결코 판단할 수 없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해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벡했을 때, 주님께서는 “바요나 시문에 이를 에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7)고 선언하셨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사람의 지혜의 말로 알 수 없다. ‘육에 속한 사람’은 성령의 일들을 어리석게 보지만, 성경이 말하는 ‘신령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이 뛰어난 자가 아니라 오직 성령님의 은혜로 십자가의 비밀을 깨닫고 믿는 자이다. ‘오직 성령님의 은혜’로 십자가의 비밀을 깨닫고 믿는“자가 ‘참된 믿음’을 가진 자라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 명확한 답을 주는 곳이 고린도전서의 말씀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눈에 보이는 방언과 신비로운 은사를 소유하면 자기 수준이 높고 영적으로 신령하여 ‘성령의 도장’을 받았다고 착각하였다. 그래서 자기가 본래 종자가 다르고 실력이 뛰어나 은사를 받았다는 교만한 엘리트주의에 빠진 것이다.  그러나 진짜 ‘성령의 도장’을 받은 자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야 한다. 즉 나에게는 자주권이 없고 주님을 주라 시인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

피로 맺어진 언약적 가족과 교회의 거룩한 질서(딤전 5:1)

  피로 맺어진 언약적 가족과 교회의 거룩한 질서(딤전 5:1)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딤전 5:1)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 모이는 곳이다. 즉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언약적 가족이다. 그래서 구속의 은혜로 세워진 질서를 따라야 한다. 그리스도의 속량으로 맺어진 새 언약의 혈육적 친밀함과 거룩한 경계에 기초하는 것이다. 그래서 늙은이에게는 아버지에게 하듯 하고, 젊은이를 형제에게 하듯, 늙은 여자를 어머니에게 하듯, 젊은 여자를 온전한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대하라고 명령한다. 구약의 율법에서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의 하나님으로 계시 되며, 이들을 돌보는 것은 언약의 백성의 표지였다. 그런즉 과부를 돌보는 것에 1차적 책임은 육적 가정의 언약적 의무이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8) 그러나 의지할 친족이 전혀 없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간구와 기도를 드리며, 나그네를 대접하고 성도들의 발을 씻긴 삶의 열매가 입증된 60세 이상 된 ‘참 과부’를 교회의 공적 구제 명부에 올리도록 하였다. 이렇게 하는 것은 단순히 복지 수혜를 넘어, 교회가 그리스도의 제사장직 긍휼을 제도화하여 거룩한 기도와 헌신의 사역자로 품는 언약적 돌봄의 실행이다.  말씀 사역자에 대한 생활 보장은 인간적 고용 계약이 아니라, 구속사의 복음 진리가 오류 없이 선포되고 교회가 생명의 꼴을 풍성히 공급받도록 사역자는 세상 염려로부터 성별하는 언약 공동체의 수호 장치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장로에 대한 고발을 받을 때 두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되, 범죄한 자는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 경각심을 갖게 하라고 명한다.  그리고 경솔히 안수하지 말라고 한다. 그 이유는 안수받은 자가 큰 범죄를 저지르게 되면 안수를 행한 자에게도 시비 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딤전 5장에...

어느 때까지니이까’의 비통한 탄식을 찬양으로 바꾸신 언약적 사랑(시 13:5)

  ‘어느 때까지니이까’의 비통한 탄식을 찬양으로 바꾸신 언약적 사랑(시 13:5)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시 13:5) 시편 13편은 비통한 절규로 시작하여 마지막에는 구원의 감격으로 충만한 찬양으로 끝이 난다. 이는 궁극적으로 십자가의 버림받으심과 사망의 잠에서 부활하사 언약적 사랑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계시한다. 다윗은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숨기시나이까’, ‘영혼이 번민하고 마음에 근심하기를’,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때 까지 하겠느냐며 네 번에 걸쳐 한계에 다다른 고통을 토로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과 완전히 단절되어, 영원한 잊힘과 버림을 겪으셨다. “제구 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 27:46) 죄로 인해 영원히 하나님의 낯을 피래야 했던 인류를 위해, 성자 하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주의 얼굴을 숨기시는’ 지옥의 형벌을 대신 짊어지신 것이다. 그리고 사망의 잠을 통과하여 영원한 생명의 빛으로 깨어나신 분은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 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이러한 기적의 은혜를 베풀어 주심은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헤세드)이다. 이 은혜를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극심한 고통 중에서도 아버지의 신실하신 언약을 의지하셨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눅 23:46) 그리스도의 성취는 십자가의 수치 뒤에 주어진 지극히 높은 승귀와 영광이다. 하나님은 고난받은 아들에게 만유의 이름을 주심으로 넘치도록 갚아 주셨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도 모든 죄책을 넘어서는 측량할 수 없는 ...

거짓된 세상을 이기는 순결한 말씀과 영원히 안전한 지대(시 12:5)

  거짓된 세상을 이기는 순결한 말씀과 영원히 안전한 지대(시 12:5)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시 12:5) 시편 12편은 사람의 거짓과 아첨이 세상을 뒤덮은 영적 파탄의 시대 속에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붙잡은 자의 시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거짓과 속임수가 가득한 세상에 참된 진리와 언약의 성취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한다. 사람들은 이웃에게 거짓을 말하고,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며, 스스로 왕인체 한다.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혀가 이기리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나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시 12:4) 이것은 타락한 세상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주한 적나라한 현실이었다.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거짓 증인을 내세워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저들은 겉으로는 거룩한 척 아첨하고, 뒤로는 속임수를 썼다. 사람의 혀와 권세가 승리한 것처럼 보였으나, 그것은 거짓의 아비인 사탄에게 속한 자들의 헛된 자랑에 불과한 것이다. 하나님은 압제받는 자기 백성의 신음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역사 한가운데로 직접오셨다. 그것이 성육신이며, 부활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마귀의 압제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서, 죄와 사망의 억압 속에 탄식하던 가련한 우리를 결코 빼앗길 수 없는 영원한 안전한 지대(예수 안으로) 옮기셨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 1:13)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완전히 성취된다. 즉 구약의 모든 언약과 약속을 십자가와 부활로 완전히 성취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십자가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에게 영생을 주시고, 어떠한 영적 혼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인도와 보호하심의 은혜를 주신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터가 무너질 때 바라보는 하늘 보좌와 흔들리지 않는 반석(시 11:5)

  터가 무너질 때 바라보는 하늘 보좌와 흔들리지 않는 반석(시 11:5)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시 11:5) 시편 11편은 기초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극한 위기의 속에서도 구원의 확신을 신뢰하는 시이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시 11:4) 다윗이 심한 고난을 당하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새처럼 산으로 멀리 도망가라고 부추킨다.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시 11:1) 하지만 땅의 흔들림을 넘어 하늘 보좌에 여전히 좌정해 계신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바라본다. 이는 세상의 모든 터가 무너질지라도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반석과 구원의 기초를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는 것이다. 악인이 어두운 곳에서 활 시위를 당기며 마음이 바른 자를 쏘려 하고,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하며 의인을 체념과 도피로 몰아 세운다. 이것은 겟세마네 동산과 십자가의 길목에서 예수님께서 직면하셨던 사탄과 세상의 유혹이다. 악인의 소리에 제자들은 칼을 쓰거나 도망을 쳤고, 원수들은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조롱을 하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적으로 산으로 도피하지 않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기꺼이 십자가의 고난 가운데로 걸어 들어가셨다. 산헤드린과 빌라도는 죄가 없으신 예수님을 정죄했으나, 하늘의 참된 지성소와 보좌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의 온전한 순종을 지켜보고 계셨다.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사 죽은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 승천하시고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사 온 세상을 통치하고 계신다.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히 8:1) 오직 완전한 의인이신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의를 만족시키시고 하나님 보...

침묵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십자가에서 꺾으신 악인의 팔(시 10:3)

  침묵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십자가에서 꺾으신 악인의 팔(시 10:3) “악인은 그의 마음의 욕심을 자랑하며 탐욕을 부리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시 10:3) 시편 9편이 보좌에 앉으신 공의로운 승리를 찬양했다면, 10편은 현실 세계에서 악인이 득세하고 마치 하나님이 멀리 숨어 계시는 것 같은 어둠 속의 절교를 다룬다. 이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 십자가의 버림받으심을 겪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을 통해 성취되는 고아와 과부의 참된 신원을 계시한다. 시인은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라며 고통스럽게 묻고 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시 10:1) 이때 악인은 교만하여 가난한 자를 핍박하고, 하나님은 없다, 하나님이 잊으셨고 얼굴을 가리셨으니 영원히 보지 않으신다며 하나님을 멸시한다.  이 하나님의 침묵과 숨어 계심을 골고자 십자가 위에서 절정에 달했다.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침묵하셨다(마 27:46).  악인들은 십자가 아래서 예수를 조롱하며 하나님이 그를 구원하지 않으신다고 비웃었으나, 그 침묵이야말로 우리의 죗값을 온전히 치르시는 구속의 가장 깊은 신비인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단순히 방관하시는 분이 아니라 악행과 원통함을 손수 감찰하시고 친히 갚아주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악인의 팔을 꺾으신다. “악인의 팔을 꺾으소서 악한 자의 악을 더 이상 찾아낼 수 없을 때까지 찾으소서”(시 10:15) 성부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신 그리스도를 무덤에 내버려주지 않으시고, 권능의 손을 펴사 사흘 만에 그분을 다시 살리셨다. 부활은 사탄과 사망의 팔을 영원히 꺾으신 하나님의 공의로운 일이시며 결정적 응답이었다. 십자가와 부활을 거쳐 만유의 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통치를 선언하셨다. 그래서 주님은 스스로를 도울 힘이 없는 영...

사탄의 방해를 이기는 성령의 조명과 그리스도의 참된 신부(행 22:29) 2

  사탄의 방해를 이기는 성령의 조명과 그리스도의 참된 신부(행 22:29) 2 “심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그에게서 물러가고 천부장도 그가 로마 시민인 줄 알고 또 그 결박한 것 때문에 두려워하니라”(행 22:29) 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고 이방 땅으로 가서 내 증인이 되라 하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자가 사탄, 마귀이다. 저들은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을 못하게 한다. 그래서 악한 것들을 기억하고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악한 것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오직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한다. 왜 그런가 하면 성령님만이 유일하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밝혀 주고 깨우쳐 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10) 그래서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고 뜻을 이루는 방법을 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내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꾸어야 함을 말한다. 이와 같은 훈련을 받는 곳이 교회이다. 즉 신랑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고귀하고 정결한 성품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히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고후 11:2) 그러한 이유는 마귀가 늘 유혹과 매력적으로 다가 오기 때문이다.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고후 11:3) 결론적으로 말하면 맹목적인 신비주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거나 경건함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 거짓 교훈에 휘둘리지 않고, 성령이 주시는 지혜로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하여야 한다. 성령께서 하시는 유일한 역할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뜻과 구원 계획을 성도의 심령에 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