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행 11:18) #영생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행 11:18) 예수 그리스도와 생명적인 연합이 된 자들이 누리는 은혜는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약속하신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세상에서 버려진 고아처럼 살지 않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 14:18) 성령 세례를 받음으로 인하여 주님이 내 안에 계신다.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 이제 예수 안에 거하는 자는 충만한 은혜를 받아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야 한다. 그 이유는 예수님 안에 하나님이 계셔서 하신 일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욕심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거룩과 순종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 1:16)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나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하나가 되게 하시는 것이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 이제 하나 된 것을 세상이 알게 하여야 한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그들로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 17:23) 즉 아들이 되어 아버지의 뜻을 세상에 전하게 하기 위함이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6) 세상에 하나 됨을 증거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도 간의 연합으로 증명이 되어야 한다. 베드...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리라”(행 11:17) #생명 얻는 회개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리라”(행 11:17) https://youtu.be/JZOWP8tkhqw?si=kShbb-j2wJYcK_kN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 세례를 베풀고 유숙한 것에 대해서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행 11:3) 그러자 베드로는 자신의 논리나 감정이 아니 성령의 간섭하심으로 증거를 세운다.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행 11:15) 즉 고넬료 가정에 성령이 임한 사건은 십자가의 복음이 유대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확장되었다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 세례를 통해 우리는 전혀 다른 출신임에도 하나님의 몸으로 연합된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 그리고 본문에서는 성령 세례의 진짜 목적인 생명적 연합을 증거하고 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행 11:18)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단지 죄사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 있는 영생을 받아 하나님과 함께 되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요 5:26) 이것이 성령 세례의 목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듯, 주님과 유기적이고 생명적인 관계로 묶이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은혜를 받은 자가 세례 예식을 하여야 한다. 예식을 통하여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주인의 말을 들으며 살 것을 선포하는 것이다. 세례 받는 자의 믿음의 고백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 나도 함께 죽었고, ...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빌 3:21) #천국시민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빌 3:21)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두 종류로 나뉜다. 십자가의 원수와 하늘의 시민권자로서 삶과 운명이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신자가 바라보아야 할 종말론적 소망은 하늘나라의 소망이다. 소망이라 함은 하나님께서 그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는 것을 말한다. 먼저 십자가의 원수의 삶은 이러하다. 자신의 육신적 탐욕과 정욕을 우상으로 삼는 것이다. 그리고 철저한 자기 부인과 희생이 없는 것을 말한다. 즉 오직 세속적인 성공과 땅의 일만 생각한다. 그렇다면 소망을 가진 자의 삶과 믿음은 무엇인가? 그 당시 빌립보 사람들은 로마의 식민지로 살면서 로마 시민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았다. 그 자부심은 로마의 법과 문화를 따르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그래서 신자들은 이 땅에 살고 있지만 하늘나라의 법과 통치를 따르는 것을 자랑하며 기뻐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 땅의 가치관에 동화되지 않고 천국 시민다운 거룩한 구별됨을 말한다. 믿는 자들의 소망은 예수님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이다. 그날에는 우리의 육신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완벽하게 변화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빌 3:21) 그러므로 배를 신으로 삼는 삶에서 자기를 부인하는 제자도의 삶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또한 땅의 일에서 하늘의 보물로 시선이 이동한다.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 그리고 세상에서는 나그네로 살아가는 삶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요 17:1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을 이길 힘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

“왕이 자기 처소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이루리라 하고”(대하 34:31) #율법책, #회개

  “왕이 자기 처소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이루리라 하고”(대하 34:31) https://youtu.be/v3_qOxoYGoI?si=eaNVrKvpXtTVSHO7 구약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개혁을 단행한 요시야 왕의 이야기이다. 앞선 왕들은 개혁이 주로 성전 청소나 우상 타파에 머물렀다면, 요시야는 그 모든 것의 뿌리가 되는 율법책의 발견과 회복에 중요함이 있다. 즉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 어떻게 한 사람의 영혼과 국가의 운명을 뒤바꿔 놓는지를 생생하고 보여준다. 8세에 왕 위에 오른 요시야는 16세가 되던 해에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20세가 되던 해에는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하게 하여, 바알의 제단을 헐고 아세라 목상과 아로새긴 우상들을 빻아 가루로 만들어 묘지에 버린다. 26세가 되던 해에 성전 수리를 하게 된다. 성전을 보수하던 중, 대제사장 힐기야가 전한 여호와의 율법책을 발견한다. 서기관 사반이 율법책을 낭독하자 요시야가 그 말씀을 듣고 자기 옷을 찢는다. 여 선지자인 훌다에게 여호와의 뜻을 묻는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이곳과 주민들에게 저주와 심판이 임할 것이라 확언을 한다. 요시야의 믿음은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여 바벨론에게 망하고 포로로 잡혀가지만, 오늘을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듣고 회개하였던 것이다.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은 요시야만큼은 평안을 약속하시고 죽은 후에는 조상의 묘실에 들어갈 것을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네게 너의 조상들에게 돌아가서 편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내가 이곳과 그 주민에게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가 눈으로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이에 사신들이 왕에게 복명하니라”(대하 34:2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회개의 은혜가 동반이 됩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 말씀에는 살아 있는 운동력이 있어서 마음과 골수까지 들어가 ...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며 바알들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모든 일월성신을 경배하여 섬기며”(대하 33:3) 구약의 탕자-므낫세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며 바알들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모든 일월성신을 경배하여 섬기며”(대하 33:3) 히스기야가 죽은 후에 므낫세가 왕 위에 오른다. 무려 55년 동안 남 유다는 통치하며 가장 충격적인 타락을 한다.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개혁을 통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보고 경험한 자로서 정반대의 길을 갔다. 그래서 왕들 가운데 가장 악한 왕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장 악한 왕에게 파격적인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즉 구약의 탕자가 므낫세가 되는 것이다. 그의 악한 행위는 이러하다. 성전 두 마당에 일월성신을 위한 제단을 쌓고,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자기 아들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인신 제사를 드린 자이다. 또한 점치고 사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를 신임하여, 유다 백성이 범한 악이 가나안 원주민들보다 더 심하였다.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이 므낫세의 꾀임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모든 나라보다 더욱 심하였더라”(대하 33:9) 므낫세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자, 앗수르 군대 지휘관을 보내어 므낫세를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가게 하였다. 그가 환난을 당하자 하나님 여호와께 겸손하여 간구하였다.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대하 33:12)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포로에서 벗어나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기도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시며 그의 간구를 들으시사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앉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 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대하 33:13) 돌아온 므낫세는 성벽을 쌓고 군대를 정비하고, 성전 안의 이방 신들과 우상들을 내어 버린다. 그리고 여호와의 제단을 보수하고 화목제와 감사제를 드리며 유다 백성들에게 여호와를 섬기라고 명령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과 신...

“이 모든 충성된 일을 한 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에 들어와서 견고한 성읍들을 향하여 진을 치고 쳐서 점령하고자 한지라”(대하 32:1) #왜 히스기야 왕은 병에 결렸을까?

  “이 모든 충성된 일을 한 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에 들어와서 견고한 성읍들을 향하여 진을 치고 쳐서 점령하고자 한지라”(대하 32:1) https://youtu.be/VZpEzPoL_EU?si=tIREJSMgaf52Y6Zf 히스기야가 주도한 종교개혁과 유월절의 은혜를 보았다. 그런데 본문의 첫 구절이 우리를 당혹하게 한다. 이 모든 충성된 일을 한 후에 앗수르 왕인 산헤립이 유다를 침공한 것이다. 이것은 위기 앞에서 참된 신앙은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대한 것이 된다. 즉 성도에게 왜 고난이 오는가에 대한 답을 주는 것이다. 종교 개혁을 한 후에 당대 최강대국인 앗수르의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포위한다. 왕은 지혜롭게 물의 기원인 기혼 샘을 지하로 연결하고 성벽을 보수하며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히스기야의 신앙 고백은 여호와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전쟁을 하신다는 것이다. “그와 함께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말미암아 안심하니라”(대하 32:8) 반면에 산헤립과 신하들은 히스기야의 믿음을 조롱하며 백성들을 협박한다. 즉 예루살렘의 하나님을 사람들의 손으로 세운 신들과 똑같이 취급하며 훼방하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히스기야는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는다. “이러므로 히스기야 왕이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와 더불어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대하 32:20) 여호와께서 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왕의 진영에서 모든 튼 용사와 대장과 지휘관들을 멸하셨다. 그리고 산헤립이 고국 땅으로 돌아가 그의 아들들의 칼에 맞아 비참하게 죽는다.  이후에 히스기야가 모든 나라의 눈에 존귀하게 되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물과 보물을 왕에게 드렸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은혜를 받은 히스기야 왕이 교만하여 병에 걸렸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보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히스기야가 마음...

“그가 행하는 모든 일 곧 하나님의 전에 수종 드는 일에나 율법에나 계명에나 그의 하나님을 찾고 한마음으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대하 31:21) "왜 신앙생활이 힘들고 무거울까요? '억지'를 '자발'로 바꾸는 은혜의 비밀"

  “그가 행하는 모든 일 곧 하나님의 전에 수종 드는 일에나 율법에나 계명에나 그의 하나님을 찾고 한마음으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대하 31:21) https://youtu.be/Frl-5PVYaXc?si=sL8hZl_Qi2UJjdOU 대하 30장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율법의 조문을 넘어 부정한 자들까지 품어 주신 은혜의 유월절을 보았다. 본 장에서는 그 엄청난 은혜를 체험한 자들이 일상으로 돌아가 어떻게 변화된 삶을 살았는가를 볼 수 있다. 참된 부흥은 교회당 안에서 눈물로 끝나지 않는다. 반드시 삶의 개혁과 헌신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먼저 아세라 목상과 산당과 제단을 철저히 부셔 버린다. 히스기야 왕은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의 반열을 회복시키고, 왕의 재산으로 먼저 번제물을 바쳐 모범을 보인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명령한다. 제사장과 레위인의 몫을 주라 명하자 산더미처럼 많은 예물을 가져온다. 그렇게 순종을 하자 여호와께서 백성들에게 복을 주었다는 것이다. “사독의 족속 대제사장 아사랴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백성이 예물을 여호와의 전에 드리기 시작함으로부터 우리가 만족하게 먹었으니 남은 것이 많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에게 복을 주셨음이라 그 남은 것이 이렇게 많이 쌓였나이다”(대하 31:10) 성전 안에 들어온 예물들을 방에 넣고 고나냐와 시므이 등 진실한 자들을 세워 헌물을 투명하게 관리하고 분배하였다. 백성들과 관리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한 것이다.  값없이 죄사함을 받은 것을 칭의라고 한다. 칭의를 통하여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들은 성화의 과정을 가게 된다. 그래서 곧바로 망치를 들고 고향으로 돌아가 산당과 우상을 박살 낸다.  즉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은 죄와 동거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구원받은 자들의 내면에 성령께서 거룩한 분노이자 필연적인 열매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강압적이지 않다. 은혜에 대한 감사로 인하여 자발적인 충성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그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