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믿음(욥 35:8)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믿음(욥 35:8) "그대의 악은 그대와 같은 사람에게나 있는 것이요 그대의 공의는 어떤 인생에게도 있느니라" (욥 35:8) 욥은 자신의 도덕적인 의를 들고 하나님 앞에 섰다. 그런데 하나님이 만나 주시지 않자 '내가 죄를 짓지 않고 의롭게 사는 것이 하나님께 무슨 유익이 되며, 나에게 무슨 유익이 있는가' 하며 불만을 터뜨린다. 하나님의 자족하심 이것에 대하여 엘리후가 대답을 한다. 하나님의 초월성을 말하면서 하늘과 구름을 바라보라 하며, 사람이 범죄한다 해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손상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사람이 아무리 의롭다고 한들 자족하신 하나님께 무언가를 보태어 드릴 수 없다. 인간의 의와 악은 오직 동료 인간에게 미칠 뿐이다. 달리 말하면 자족하시는 하나님께 인간의 의로움을 조건으로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거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대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그대의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욥 35:7) 참된 기도의 본질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과 학대로 부르짖으나, 정작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를 묻는 자는 없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고 하며 밤에 노래를 주시는 자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자가 없구나"(욥 35:10) 참된 기도의 본질과 중요성은 하나님 자신을 갈망하며 겸손히 구하는 인격적 기도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을 면해 달라는 육신적 부르짖음에 머무는 잘못을 범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침묵하며 기다리는 믿음 욥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하나님이 재판을 미루신다고 원망하는 것에 대해서, 침묵하며 기다리는 믿음을 가지라고 권면한다. "하물며 말하기를 하나님은 뵈올 수 없고 일의 판단하심은 그 앞에 있으니 나는 그를 기다릴 뿐이라 말하는 그대일까보냐"(욥 35:14) 믿음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내 생각대로 응답이 오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을 비난할 것이 아...

성령의 임재로 세워지는 교회(행 20:32)

  성령의 임재로 세워지는 교회(행 20: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행 20:32)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르시기를 믿음의 고백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하셨다. 사도들을 통하여 교회가 세워졌다. 그런데 주님이 세우신 교회라는 증거는 성령의 임재가 있는 성령 공동체라는 것이다. 베드로를 통한 성령 강림 예루살렘에 성령이 강림하여 교회가 시작되어, 사마리아의 성령 강림, 고넬료 가정의 성령 강림이 베드로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여기서 확인하는 것은 베드로가 와서 설교하기 전까지 성령이 임하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행 10:44)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할 때 임하신 성령 베드로가 무슨 설교를 하였는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할 때에 성령이 임하셨다.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행 10:39-40)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은혜란 무엇인가. 복음을 통한 죄의 각성과 자기 자신에 대한 절망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그분의 은총인 죄사함, 자비, 긍휼에 대한 각성이다. 말씀으로 뿌리내리는 교회 그래서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양육을 받아야 한다. 만일 말씀을 배우지 않는 교회는 뿌리 없는 나무와 같은 것이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눅 24:44) 나눔과 긍휼로 나타나는 변화 그리고...

주와 주의 말씀이 세우고 지키시는 교회(행 20:28)

  주와 주의 말씀이 세우고 지키시는 교회(행 20: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행 20:28)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에게 마지막 설교를 전한다. 교회에 어려움이 닥칠 것을 예고하며, 결국 교회를 세우고 지키는 이는 사람이 아니라 주와 주의 말씀임을 선포한다. 즉 교회는 어떻게 세워지는가, 사람인가 주님이신가를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교회는 누가 지키는가, 사람인가 주와 주의 말씀인가를 깨닫게 한다. 반석 위에 세우신 주님의 교회 이것에 대한 분명한 답이 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교회는 인간의 소유나 조직이 아니라, 주님이 친히 주인이 되셔서 세우시는 주님의 기관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교회는 사람의 수단이나 열심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과 주님의 은혜의 말씀이 든든히 세우고 지키심을 말한다. 사도들을 통해 세워진 교회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집중적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을 하셨다. "그가 고난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서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행 1:3) 그리고 베드로와 사도들이 찾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칠 때 성령이 임하셨다.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행 8:17) 즉 베드로가 와서 설교하기 전까지 성령이 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은 사도들을 통하여 세워진 것이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가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돌이 되셨느니라"(...

진리 위에 뿌리내린 신앙(살후 2:4)

  진리 위에 뿌리내린 신앙(살후 2:4)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니라" (살후 2:4) 그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에는 주의 날이 이미 이르렀다고 주장하며 성도들을 흔드는 거짓 가르침과 시한부 종말론적 미혹이 팽배해 있었다. 이 문제는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해석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마 24장(감람산 강설)에서 제자들에게 친히 주셨던 종말론 가르침을 기억하여야 한다.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경계하라 종말의 때에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 24:24)고 하셨다. 즉 신비한 현상이나 자극적인 음모론, 시한부 종말론에 휘둘리지 말고, 오직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진리) 위에 신앙의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 24:12) 하셨다. 세상이 불법으로 가득 차고 진리를 거스르는 문화가 거세질지라도, 성도는 좌로나 우로나 흔들리지 않고 날마다 주님의 말씀을 붙들며 인내로 신앙의 정절을 지켜내야 한다. 빼앗길 수 없는 구원의 확신 그리고 약속을 하셨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8) 아무리 불법이 기승을 부릴지라도, 예수님의 손에 붙들린 택하신 백성은 결코 빼앗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종말시대에 두려움이 아닌 구원의 확신과 평안을 누리는 것이 주님의 가르침이다. 악의 세력이 아무리 날뛰어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 아래 있으며, 주님의 재림으로 단번에 멸망할 것임을 보여 준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불법한 자 요즘 시대에 자칭 하나님이라 하는 자들이 너무 많다. 이 자의 죄는 신성 모독죄에 해당된다. 하지만 이러한 자들이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절대적 공의 앞에서(욥 34:5)

  하나님의 절대적 공의 앞에서(욥 34:5) "욥이 말하기를 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부인하셨고" (욥 34:5) 엘리후는 욥이 가진 신학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은 절대적 공의와 불의하실 수 없는 성품을 소개한다. 욥은 자신의 억울함을 항변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내 의를 부인하셨다고 함으로 악인들과 같은 말을 토해냈다. 즉 자신의 의로움을 증명하기 위해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훼손하거나 폄하해서는 안 됨을 경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적 공의와 불의의 불가능성 그러면서 하나님의 절대적 공의와 불의의 불가능성을 말한다. 하나님은 우주의 창조주이시자 통치자이시므로,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는 분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구조적으로나 성품상으로나 결코 악이나 불의를 행하실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판결의 기준은 하나님의 공의가 된다. 피조물이 자신의 이성으로 하나님의 판결을 불의하다고 할 수 없음을 말한다. 공평하심과 전지성 그분의 판결에는 하나님의 공평하심과 전지성이 있다. 고위를 막론하고 은밀한 어둠 속에서 지은 악행도 다 감찰하신다. 그리고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과 억눌린 자의 소리를 들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 앞에서 바른 태도는 회개와 겸손이다. 즉 통회하는 심령이 필요하다. 자신의 무지함과 한계를 인정하며 엎드리는 겸손한 태도를 말한다. 욥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실수를 범한 것이다. 공의를 만족시키신 그리스도 인간의 율법적 행위로만 보응하신다면, 거룩하신 하나님의 법정 앞에서 살아남을 죄인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즉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켰다고 함은 죄인은 죄값을 치루어야 한다. 그 죄값을 만족하심으로 인하여 부활의 은혜를 주셨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귀인이나 부자라고 대우하지 않으시고 가난한 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