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말을 내가 많이 들었나니 너희는 다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이로구나”(욥 16:2)

  “이런 말을 내가 많이 들었나니 너희는 다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이로구나”(욥 16:2) 욥은 엘리바스의 두 번째 말을 듣고 반박을 한다. 그는 친구들에게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이라 일갈한다. 즉 너희들의 위로는 위로가 아니라 고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친구라면 입술의 위로가 아니라 근심을 풀어 주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므로 땅에서의 친구들을 포기하고 하늘에 계신 증인을 찾기 시작하였다.  이제 욥은 사람과 하나님 사이를 판결해 줄 하늘의 중보자를 의지하며 눈물을 흘린다.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시니라”(욥 16:19) 그는 하늘을 보며 탄원한다. 자신의 처지와 고통을 토로한다. 아무리 아픔을 이야기 해도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말하여도 내 근심이 풀리지 아니하고 잠잠하여도 내 아픔이 줄어들지 않으리라”(욥 16:6) 하나님께서 자신을 향하여 화살을 쏘시고, 용사처럼 달려들어 치신다고 묘사하고 있다. “그가 나를 치고 다시 치며 용사같이 내게 달려드시니”(욥 16:14) 그렇지만 자신의 손에는 포학이 없고, 무죄를 호소하며, 기도가 정결함을 주장한다. “그러나 내 손에는 포학이 없고 나의 기도는 정결하니라”(욥 16:17) 그러면서 땅에게 소리를 치며 내 피를 가리지 말고, 내 억울함을 덮지 말라고 한다. 친구들은 조롱하지만 나와 하나님 사이에서 판결해 줄 중보자를 의지하고 있다. 즉 욥은 땅에 있는 친구들이 자신을 변호해 주지 않자, 하늘에 있는 중재자를 구하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그분은 하나님 우편에 계신 분이시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가기 위해서는 중보자(변호자)를 찾아야 한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욥은 자신의 기도가 정결하다고 한 것은, 자신의 전적 부패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행 15: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행 15:20) 믿음의 공동체 사람들과 음식점을 가서 주문을 하다가 보면 보이지 않게 경계심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선지 해장국을 시킬 때에 어떤 이들은 선지를 넣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서 성경에서 피를 먹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금령으로 정하였지만 본래의 뜻을 잘 알아야 한다. 먼저는 구원을 얻는데 있어서 고기를 피와 함께 먹는다고 해서 불가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구원을 얻은 자는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며 실족시키지 말아야 하기에 믿음이 약한 자들 앞에서는 먹지 말라고 한 것이다. 이 문제가 고린도교회에서 문제가 되었다. 바울은 이것에 대한 답으로 먹을 수 있으나 형제가 실족하면 먹지 말라고 하였다.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고전 8:8) 바울은 이 문제를 이웃 사랑으로 풀으라 한다. 내가 우상에게 바쳐졌던 고기를 먹어서 이웃이 실족을 하면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 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고전 8:13)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성경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고집과 의로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미안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자가 되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구원의 본질을 알아야 하고, 자신의 믿음의 상태를 점검하여야 한다. ‘주여 주여’하는 자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라! 구원은 그리스도와의 영적인 연합으로 절대 취소 되지 않는다. 예수 안에 거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어, 아버지를 사랑하게 된다. 아버지를 사랑한...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행 15: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행 15:19) 수리아 안디옥 교회에 예루살렘으로부터 내려온 자들이 온전한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형제 몇 명을 예루살렘으로 보냈다.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자신이 복음을 전할 때에 있었던 일을 소개한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이 하나님이 동일하게 구원을 주신다는 것이다.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행 15:8) 또한 바울과 바나바도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행하신 표적과 기사와 구원을 주신 것에 대하여 증언하였다.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듣더니”(행 15:12) 사도들이 말을 마치매 예수님의 형제인 야고보가 일어나 정리를 한다.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행 15:13) 즉 사도들이 한 말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한 증언과 같다는 것이다. 다윗이 지은 장막이 무너지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전이 되셔서 모든 이방인들에게 구원을 주시기로 했음을 말한다.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행 15:17) 하나님의 구원을 얻는데 있어서 오직 성령과 십자가의 복음으로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방인들이 전통적인 풍습을 절제하라 한다.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행 15:20) 이것은 구원받은 신자가 이방인 이웃과 연약한 형제를 배려하기 위해 세운 사랑의 규칙이다. 즉 공의회에서 정한 3가지 금령은 우상의 제물, 음행, 피와 목매어 죽인 것을 멀리 하라는 것은 성도를 거룩하게 분리하기 위함을 말한다. 금령을 정한 경건의 의미를 살펴야 한다.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다. “사랑은 이...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골 4:3)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골 4:3) 십자가의 복음을 맡은 성도들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소통하며,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연합해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죽 하나님의 주권 하에 성도의 교제를 하여야 함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전도의 주체가 인간의 설득력이 아닌 하나님이 하셔야 하심을 말한다.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골 4:3)   사람의 마음을 여시는 분은 오직 성령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라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는 하나님의 주권적 일하심을 요청하는 성도의 가장 강력한 도구이다. 성도는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 대해서도 지혜롭게 행해야 한다.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세상 속에서 부패를 방지하고 복음의 풍미를 드러내는 삶을 사는 것이다. 공동체 안에서는 차별이 없다, 종이었던 오네시모가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로 불린다.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골 4:9) 성도들은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 이것을 예수님께서는 문을 두드리는 것으로 비유하셨다. 즉 기도의 응답에 관계없이 하나님과의 관계자체를 즐거워하며 끈질기게 매달리라는 가르침이다. 또한 가르침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말씀하셨다.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내는 말은 복음의 말씀에 관심을 갖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믿음의 동역자요 형제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맺어진 인류의 공동체가 바로 교회임을 주님의 사역을 통해 몸소 보여 주셨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에게 부탁하십니다. 기도는 네 사역의 호흡이므로,...

“왕후 에스더가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으며 왕이 좋게 여기시면 내 소청대로 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 내 요구대로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에 7:3)

  “왕후 에스더가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으며 왕이 좋게 여기시면 내 소청대로 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 내 요구대로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에 7:3) 에스더가 준비한 두 번째 잔치에서 하만의 음모가 폭로되고, 결국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려 세웠던 나무에 자신이 매달리는 ‘인과응보‘의 절정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도적적인 통치자이시다. 그래서 악은 결코 승리할 수 없으며, 하나님은 반드시 공의를 바로 세우시는 분임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에스더는 자신의 생명과 민족의 생명을 왕에게 구한다. “왕후 에스더가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으며 왕이 좋게 여기시면 내 소청대로 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 내 요구대로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에 7:3) 예수님의 기도와 마찬가지이다. 아들을 사랑하시면 나와 함께 있는 자들을 사랑하여 주시고 지켜 달라는 것이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요 17:9) 하만의 음모가 드러나자 에스더 앞에 엎드린다. 비굴하게 구걸하는 모습은, 감추어졌던 죄가 백일하에 드러날 때 죄인이 겪게 될 근원적인 수치와 두려움을 상징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남을 정죄하고 해치려 하는 자가 결국 그 기준에 의해 심판받을 것을 경고하셨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 7:1-2) 하나님 앞으로 나갈 일이 있으면 내게 구하라 하셨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 14:14) 하만의 은밀한 음모와 탐욕은 화려한 잔치 석상에서 에스더의 입술을 통해 모두 드러났다. 예수님은 마지막 날에 모든 은밀한 죄가 빛 가운데에 드러날 것임을 말씀하셨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마 10:26) 성도는 사람을 속일 수는 있으나 하나님을 속일 수 없음을 기억하며 정직하게 행해야 ...

“그 속에 기록하기를 문을 지키던 왕의 두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아하수에로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모르드개가 고발하였다 하였는지라”(에 6:2)

  “그 속에 기록하기를 문을 지키던 왕의 두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아하수에로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모르드개가 고발하였다 하였는지라”(에 6:2) 인간의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타이밍이 어떻게 역사를 뒤바꾸는지 보여주는 전환점이 된다. 이 일이 왕의 불면증으로 인하여 극적인 반전이 일어난다. 아하수에로 왕이 잠이 오지 않았던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신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불면증까지도 주관하셔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신다. 왕이 궁중 일기를 일게 되고, 잊혔던 모르드개의 공적을 발견한다. 인간은 잊을지라도 하나님은 성도의 눈물과 헌신을 결코 잊지 않으시며, 가장 적절할 때에 드러내신다.  하만은 자기를 위해 준비했던 영광의 제안을 모르드개에게 고스란히 돌려주게 된다. 이는 하나님께서 악인의 꾀를 그 머리 위로 돌리시는 공의로운 심판의 전조이다. 이 상황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눅 18:7) 모르드개는 하만의 위협 속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예수님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 하만은 교만을 심어 수치를 거두었고, 모르드개는 충성을 심아 영관을 거두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다신 한 번 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억하여야 한다. 하만은 모르드개를 죽일 나무 장대를 세웠고, 하나님은 같은 시간에 왕의 ‘잠’을 깨우셨다. 성도가 당하는 고난이 극에 달할 때,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미 역전의 드라마를 준비하신다. 이는 예수님이 무덤 속에 계실 때에 모든 것이 끝이 난 줄로 알았다. 심지어 제자들도 자신의 본업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끝 난 것이 아니다. ‘그 밤’ 뒤...

“왕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 하니”(에 5:3)

  “왕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 하니”(에 5:3) 에스더는 삼일 금식을 한 후에 죽음을 무릎쓰고 왕 앞에 나아가는 장면과, 그를 기쁘게 맞이하는 왕, 그리고 여전히 교만함에 빠져 모르드개를 죽일 음모를 구체화하는 하만의 모습을 대조하여 보여 준다.   왕후가 왕 앞에 섰을 때 왕이 금 규를 내어 미는 장면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마음의 통치인 것이다. 즉 에스더의 용기 있는 행동은 하나님의 은혜가 선행되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왕이 손에 든 금 규 는 황금 지팡이는 심판과 동시에 자비를 베푼다. 즉 그 끝을 만지는 것을 허용하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에스더는 왕의 금 규 를 만지므로 인하여 자비를 얻게 되어 생명을 구하였다. 그리고 소원을 말한다. “에스더가 이르되 오늘 내가 왕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사오니 왕이 좋게 여기시거든 하만과 함께 오소서 하니”(에 5:4) 그러자 그녀는 당장 하만을 고발하지 않고 두 번에 걸친 잔치를 제안한다. 이것은 인간의 정욕이 아닌, 하나님의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리는 신중한 섭리적 지혜이다. 하만은 왕후의 잔치에 초대받은 것을 자랑하며 50 규빗 높이의 나무를 세운다. 이것은 전적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영광에 취해 스스로 파멸의 도구를 준비하는 비극적인 역설이 된다. 에스더는 왕에게 나아가는 은혜가 허락되었고, 그리고 마음의 소원을 아뢰어 얻게 되었다. 아하수에로 왕보다 더 크신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는 권세와 은혜가 허락되었음 알아야 한다(히 4:16).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히 10:19) 나아 갈 수 있는 권세를 얻었지만 구하여야 한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마 7:7) 그리고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