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서서 헤아릴 수 없는 구원의 큰일을 보라(욥 37:5)

  가만히 서서 헤아릴 수 없는 구원의 큰일을 보라(욥 37:5) “하나님은 놀라운 음성을 내시며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큰일을 행하시느니라”(욥 37:5) 엘리후는 자연 세계의 장엄한 현상인 우렛소리, 번개, 눈, 비, 폭풍, 서리, 구름)을 더욱 생생하게 묘사하며, 피조 세계를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압도적인 위엄과 지혜를 선포한다. 번개와 우렛소리는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온 땅 끝까지 뻗어나가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음성이자 피조물이 다 헤아릴 수 없는 위대한 행사이다. 자연 만물이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증언하는 거대한 무대이면서, 우렛 소리와 번개는 피조물로 하여금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능 앞에 두려움과 경외심을 갖게 만든다. 하나님은 눈과 폭우를 내리셔서 인간의 손으로 하던 일을 멈추게 하시고, 짐승들을 굴속으로 들어가게 하신다.  남방의 밀실에서 나오는 폭풍과 북방의 찬바람, 물을 얼게 하는 하나님의 입김(서리와 얼음)은 모두 그분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 하나님은 때로는 징벌(심판)을 위해, 때로는 땅(자연의 유지)을 위해, 긍휼(은혜)을 위해 날씨와 환경을 주관하신다. 이렇게 자연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인간은 스스로 설명할 수가 없다. 인간의 지식의 전적 한계와 피조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닥친 고난의 섭리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을 다 이해하려 드는 교만을 내려놓아야 한다. 즉 인간이 취할 마땅한 본분은 그분을 경외하는 것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이시다. 그것에 대한 증거가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 창조주 하나님이 되신다.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에서 광풍이 일어났을 때, 잠에서 깨어나 바람과 바다를 향해 ‘잠잠하라 고요하라’ 꾸짖으셨고 바람과 바다는 즉시 순종하여 아주 잔잔해졌다.(막 4:39:41) 욥기 37장에서 노래한 피조 세계의 절대 통치자가 바로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밝히 드러낸 사건이다. 구속사에서 가장 짙은 영적 어둠과 먹구름은 바로 십자가...

곤고의 줄 속에서 열리는 영적 귀와 그리스도의 교훈(욥 36:4)

  곤고의 줄 속에서 열리는 영적 귀와 그리스도의 교훈(욥 36:4) “진실로 내 말은 거짓이 아니라 온전한 지식을 가진 이가 그대와 함께 있느니라”(욥 36:4) 엘리후는 자신이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하나님을 위하여 할 말이 아직 남아 있다’며, 하나님의 관대하신 권능과 의로우신 통치를 한층 더 깊게 선포한다. 그는 고난을 죄에 대한 단순한 형벌로 보는 친구들의 좁은 시각을 넘어, 의인을 교정하시고 영적으로 교육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도구로 해석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의인을 결코 방치하지 않으신다고 강조한다. “그의 눈을 의인에게서 떼지 아니하시고 그를 왕들과 함께 왕좌에 앉히사 영원토록 존귀하게 하시며”(욥 36:8) 즉 의인에게 고난의 줄을 얽히게 하시는 이유는 그들을 멸망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의 은밀한 교만과 허물을 깨닫게 하고 귀를 열어 영적 교훈을 듣게 하시기 위함이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보호적인 섭리로서 ‘고난의 은혜로운 연단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고난보다 위로가 더 크다고 한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 1:4) 반면에 마음이 부패한 자들은 고난을 만날 때, 하나님께 겸손히 부르짖지 않고 분노와 불평을 쌓아 스스로 망하는 길을 간다.  그러므로 고난을 당할 때에 고난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은 고난 앞에서 성도가 보이는 태도이다. 은혜를 입은 자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행해 귀를 열지만, 불경건한 자는 끝까지 마음을 완악하게 한다.  그래서 엘리후는 욥에게 고난의 아픔 때문에 격분하여 하나님을 향한 악한 비방이나 불신앙의 길에 들어서지 않도록 엄히 경고한다. 즉 피조물은 하나님의 통치를 지판하거나 가르치려 해서는 안 되며, 그분의 오묘한 교훈 앞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고난의 줄로 의인의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신다고 한다. “그들의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명하...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믿음(욥 35:8)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믿음(욥 35:8) "그대의 악은 그대와 같은 사람에게나 있는 것이요 그대의 공의는 어떤 인생에게도 있느니라" (욥 35:8) 욥은 자신의 도덕적인 의를 들고 하나님 앞에 섰다. 그런데 하나님이 만나 주시지 않자 '내가 죄를 짓지 않고 의롭게 사는 것이 하나님께 무슨 유익이 되며, 나에게 무슨 유익이 있는가' 하며 불만을 터뜨린다. 하나님의 자족하심 이것에 대하여 엘리후가 대답을 한다. 하나님의 초월성을 말하면서 하늘과 구름을 바라보라 하며, 사람이 범죄한다 해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손상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사람이 아무리 의롭다고 한들 자족하신 하나님께 무언가를 보태어 드릴 수 없다. 인간의 의와 악은 오직 동료 인간에게 미칠 뿐이다. 달리 말하면 자족하시는 하나님께 인간의 의로움을 조건으로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거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대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그대의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욥 35:7) 참된 기도의 본질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과 학대로 부르짖으나, 정작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를 묻는 자는 없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고 하며 밤에 노래를 주시는 자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자가 없구나"(욥 35:10) 참된 기도의 본질과 중요성은 하나님 자신을 갈망하며 겸손히 구하는 인격적 기도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을 면해 달라는 육신적 부르짖음에 머무는 잘못을 범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침묵하며 기다리는 믿음 욥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하나님이 재판을 미루신다고 원망하는 것에 대해서, 침묵하며 기다리는 믿음을 가지라고 권면한다. "하물며 말하기를 하나님은 뵈올 수 없고 일의 판단하심은 그 앞에 있으니 나는 그를 기다릴 뿐이라 말하는 그대일까보냐"(욥 35:14) 믿음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내 생각대로 응답이 오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을 비난할 것이 아...

성령의 임재로 세워지는 교회(행 20:32)

  성령의 임재로 세워지는 교회(행 20: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행 20:32)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르시기를 믿음의 고백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하셨다. 사도들을 통하여 교회가 세워졌다. 그런데 주님이 세우신 교회라는 증거는 성령의 임재가 있는 성령 공동체라는 것이다. 베드로를 통한 성령 강림 예루살렘에 성령이 강림하여 교회가 시작되어, 사마리아의 성령 강림, 고넬료 가정의 성령 강림이 베드로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여기서 확인하는 것은 베드로가 와서 설교하기 전까지 성령이 임하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행 10:44)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할 때 임하신 성령 베드로가 무슨 설교를 하였는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할 때에 성령이 임하셨다.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행 10:39-40)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은혜란 무엇인가. 복음을 통한 죄의 각성과 자기 자신에 대한 절망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그분의 은총인 죄사함, 자비, 긍휼에 대한 각성이다. 말씀으로 뿌리내리는 교회 그래서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양육을 받아야 한다. 만일 말씀을 배우지 않는 교회는 뿌리 없는 나무와 같은 것이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눅 24:44) 나눔과 긍휼로 나타나는 변화 그리고...

주와 주의 말씀이 세우고 지키시는 교회(행 20:28)

  주와 주의 말씀이 세우고 지키시는 교회(행 20: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행 20:28)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에게 마지막 설교를 전한다. 교회에 어려움이 닥칠 것을 예고하며, 결국 교회를 세우고 지키는 이는 사람이 아니라 주와 주의 말씀임을 선포한다. 즉 교회는 어떻게 세워지는가, 사람인가 주님이신가를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교회는 누가 지키는가, 사람인가 주와 주의 말씀인가를 깨닫게 한다. 반석 위에 세우신 주님의 교회 이것에 대한 분명한 답이 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교회는 인간의 소유나 조직이 아니라, 주님이 친히 주인이 되셔서 세우시는 주님의 기관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교회는 사람의 수단이나 열심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과 주님의 은혜의 말씀이 든든히 세우고 지키심을 말한다. 사도들을 통해 세워진 교회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집중적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을 하셨다. "그가 고난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서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행 1:3) 그리고 베드로와 사도들이 찾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칠 때 성령이 임하셨다.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행 8:17) 즉 베드로가 와서 설교하기 전까지 성령이 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은 사도들을 통하여 세워진 것이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가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돌이 되셨느니라"(...

진리 위에 뿌리내린 신앙(살후 2:4)

  진리 위에 뿌리내린 신앙(살후 2:4)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니라" (살후 2:4) 그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에는 주의 날이 이미 이르렀다고 주장하며 성도들을 흔드는 거짓 가르침과 시한부 종말론적 미혹이 팽배해 있었다. 이 문제는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해석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마 24장(감람산 강설)에서 제자들에게 친히 주셨던 종말론 가르침을 기억하여야 한다.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경계하라 종말의 때에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 24:24)고 하셨다. 즉 신비한 현상이나 자극적인 음모론, 시한부 종말론에 휘둘리지 말고, 오직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진리) 위에 신앙의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 24:12) 하셨다. 세상이 불법으로 가득 차고 진리를 거스르는 문화가 거세질지라도, 성도는 좌로나 우로나 흔들리지 않고 날마다 주님의 말씀을 붙들며 인내로 신앙의 정절을 지켜내야 한다. 빼앗길 수 없는 구원의 확신 그리고 약속을 하셨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8) 아무리 불법이 기승을 부릴지라도, 예수님의 손에 붙들린 택하신 백성은 결코 빼앗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종말시대에 두려움이 아닌 구원의 확신과 평안을 누리는 것이 주님의 가르침이다. 악의 세력이 아무리 날뛰어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 아래 있으며, 주님의 재림으로 단번에 멸망할 것임을 보여 준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불법한 자 요즘 시대에 자칭 하나님이라 하는 자들이 너무 많다. 이 자의 죄는 신성 모독죄에 해당된다. 하지만 이러한 자들이 하나님의 주권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