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와 주의 말씀이 세우고 지키시는 교회(행 20:28)

  주와 주의 말씀이 세우고 지키시는 교회(행 20: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행 20:28)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에게 마지막 설교를 전한다. 교회에 어려움이 닥칠 것을 예고하며, 결국 교회를 세우고 지키는 이는 사람이 아니라 주와 주의 말씀임을 선포한다. 즉 교회는 어떻게 세워지는가, 사람인가 주님이신가를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교회는 누가 지키는가, 사람인가 주와 주의 말씀인가를 깨닫게 한다. 반석 위에 세우신 주님의 교회 이것에 대한 분명한 답이 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교회는 인간의 소유나 조직이 아니라, 주님이 친히 주인이 되셔서 세우시는 주님의 기관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교회는 사람의 수단이나 열심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과 주님의 은혜의 말씀이 든든히 세우고 지키심을 말한다. 사도들을 통해 세워진 교회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집중적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을 하셨다. "그가 고난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서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행 1:3) 그리고 베드로와 사도들이 찾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칠 때 성령이 임하셨다.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행 8:17) 즉 베드로가 와서 설교하기 전까지 성령이 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은 사도들을 통하여 세워진 것이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가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돌이 되셨느니라"(...

진리 위에 뿌리내린 신앙(살후 2:4)

  진리 위에 뿌리내린 신앙(살후 2:4)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니라" (살후 2:4) 그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에는 주의 날이 이미 이르렀다고 주장하며 성도들을 흔드는 거짓 가르침과 시한부 종말론적 미혹이 팽배해 있었다. 이 문제는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해석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마 24장(감람산 강설)에서 제자들에게 친히 주셨던 종말론 가르침을 기억하여야 한다.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경계하라 종말의 때에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 24:24)고 하셨다. 즉 신비한 현상이나 자극적인 음모론, 시한부 종말론에 휘둘리지 말고, 오직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진리) 위에 신앙의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 24:12) 하셨다. 세상이 불법으로 가득 차고 진리를 거스르는 문화가 거세질지라도, 성도는 좌로나 우로나 흔들리지 않고 날마다 주님의 말씀을 붙들며 인내로 신앙의 정절을 지켜내야 한다. 빼앗길 수 없는 구원의 확신 그리고 약속을 하셨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8) 아무리 불법이 기승을 부릴지라도, 예수님의 손에 붙들린 택하신 백성은 결코 빼앗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종말시대에 두려움이 아닌 구원의 확신과 평안을 누리는 것이 주님의 가르침이다. 악의 세력이 아무리 날뛰어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 아래 있으며, 주님의 재림으로 단번에 멸망할 것임을 보여 준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불법한 자 요즘 시대에 자칭 하나님이라 하는 자들이 너무 많다. 이 자의 죄는 신성 모독죄에 해당된다. 하지만 이러한 자들이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절대적 공의 앞에서(욥 34:5)

  하나님의 절대적 공의 앞에서(욥 34:5) "욥이 말하기를 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부인하셨고" (욥 34:5) 엘리후는 욥이 가진 신학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은 절대적 공의와 불의하실 수 없는 성품을 소개한다. 욥은 자신의 억울함을 항변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내 의를 부인하셨다고 함으로 악인들과 같은 말을 토해냈다. 즉 자신의 의로움을 증명하기 위해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훼손하거나 폄하해서는 안 됨을 경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적 공의와 불의의 불가능성 그러면서 하나님의 절대적 공의와 불의의 불가능성을 말한다. 하나님은 우주의 창조주이시자 통치자이시므로,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는 분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구조적으로나 성품상으로나 결코 악이나 불의를 행하실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판결의 기준은 하나님의 공의가 된다. 피조물이 자신의 이성으로 하나님의 판결을 불의하다고 할 수 없음을 말한다. 공평하심과 전지성 그분의 판결에는 하나님의 공평하심과 전지성이 있다. 고위를 막론하고 은밀한 어둠 속에서 지은 악행도 다 감찰하신다. 그리고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과 억눌린 자의 소리를 들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 앞에서 바른 태도는 회개와 겸손이다. 즉 통회하는 심령이 필요하다. 자신의 무지함과 한계를 인정하며 엎드리는 겸손한 태도를 말한다. 욥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실수를 범한 것이다. 공의를 만족시키신 그리스도 인간의 율법적 행위로만 보응하신다면, 거룩하신 하나님의 법정 앞에서 살아남을 죄인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즉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켰다고 함은 죄인은 죄값을 치루어야 한다. 그 죄값을 만족하심으로 인하여 부활의 은혜를 주셨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귀인이나 부자라고 대우하지 않으시고 가난한 자의...

대속자를 통해 열리는 생명의 빛(욥 33:13)

  대속자를 통해 열리는 생명의 빛(욥 33:13) "하나님께서 사람의 말에 대답하지 않으신다 하여 어찌 하나님과 논쟁하겠느냐" (욥 33:13) 엘리후는 욥이 '나는 깨끗하여 죄가 없는데 하나님이 나를 원수로 여기시고 침묵하신다'는 항변에 반박을 한다. 하나님이 인간보다 크신 분이시며, 결코 무자비하게 침묵하시는 분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분은 오히려 중보자(중재자)의 사역을 통해 인간의 교만을 꺾고 영혼을 구원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 영혼을 건지사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셨으니 내 생명이 빛을 보겠구나 하리라" (욥 33:28) 동일한 피조물이자 죄인이라는 겸손 엘리후는 자신도 흙으로 창조함을 받은 자로서 다른 사람들과 동일하다고 한다. 즉 모든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동일한 피조물이자 죄인임을 인정하는 겸손함 위에 참된 영적 권면이 이루어져야 함을 말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제한된 이성으로 다 이해할 수 없는 초월적인 분이시므로, 하나님이 당장 대답하지 않으신다고 해서 하나님을 불의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은 초월적이시며 주권으로 계획하신 일을 하시기 때문이다.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의 오묘한 작정과 통치를 자기 이성으로 알 수 없다. 고난, 사랑의 징계와 교육 하나님이 고난을 허락하시는 목적은 인간을 멸망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인간의 교만을 꺾고 영혼을 구덩이(스올)에서 건져내기 위함이다. 즉 고난을 통하여 성도를 돌이키시고 거룩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와 교육이라는 것이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히 12:6) 그러나 세 친구들은 고난을 죄에 대한 응보적 형벌로만 알고 있었다. 대속물을 통한 구원 고난을 받고 있는 인생 곁에 대속자가 있으면, 하나님이 그를 구원하여 육신을 청년처럼 회복시키시고 생명의 빛을 보게 하신다는 선언이다. "하나님이 그 사람...

전능자의 숨결, 참된 지혜의 근원(욥 32:8)

  전능자의 숨결, 참된 지혜의 근원(욥 32:8) “그러나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나니”(욥 32:8) 욥은 스스로 의롭다고 항변을 하고, 세 친구들은 그를 더 이상 굴복시키지 못해 말을 잃었다. 그 때에 분노를 발하며 청년 엘리후가 등장한다. 욥과 세 친구들 간의 논쟁은 인간대 인간이었다. 그런데 논쟁의 구도를 인간대 성령의 감동과 하나님의 영감이라는 새로운 영적 차원으로 전환한다. 엘리후는 두 가지로 분노를 한다. 욥이 자신을 의롭게 여기다 못해 은연중에 하나님보다 더 의로운 것처럼 행동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친구들에게는 욥을 제대로 반박도 하지 못하면서도 정죄만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나이가 적어 선배들 앞에서 말을 아껴왔다. 그 이유는 옛 전통과 연륜이 지혜를 보장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지혜의 출처가 세상의 경험이나 나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전능자의 숨결)임을 깨닫고 발언을 시작한다. 즉 인간의 정통, 경험, 연륜, 학문은 영적 진리를 깨닫는데 한계가 있다. 진정한 신학적 지혜는 전능자의 영(성령)께서 인간의 마음을 밝혀주실 때 비로소 주어지는 것이다. 그는 세 친구들의 논리가 헛되었음을 지적한다. 그들의 나이가 많고 인생의 경험이 많은 자들이지만, 오직 하나님 앞에서 참된 진리를 담대히 선포하겠다고 한다. “나는 결코 사람의 낯을 보지 아니하며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리니”(욥 32:21) 욥기의 흐름이 욥의 도덕적 자의성과 세 친구의 율법주의적 지혜가 한계에 다달았을 때에, 엘리후의 입을 통해 전능자의 숨결이 선포되었다.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의 권위가 아닌, 오직 성령의 권능으로 하나님 나라의 참된 지혜와 복음을 선포하셨다. 그리고 사람의 외모나 신분을 보지 않으시고 완벽한 공의와 진리만을 전하셨다. 즉 세속적인 권위나 세상의 평가에 타협하지 않고,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뜻만을 대언하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제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