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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성전에 가득하니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성전에 가득하니”(대하 7:1) 솔로몬이 봉헌 기도를 마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살렸다. 이것은 하나님께 봉헌한 성전을 열납하시고 솔로몬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이다. 다윗이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제단을 쌓았을 때에도 “여호와께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시고”(대상 21:26하) 하늘에서부터 불을 내려 응답하셨다. 불로 임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으로 임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곳은 여호와의 거룩한 이름을 두신 곳이라는 증거가 된다. “이는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대하 7:16) 이러한 현상은 신약에 와서도 계속되었다. 오순절 성령강림일은 성전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교회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 때에도 하늘에서 불이 내림으로 인하여 교회에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두신 것을 증거하셨다. 오순절 날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한 곳으로 모였다. 그곳은 예루살렘의 초대교회인 마가의 다락방이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행 2:2-3) 이 사건은 교회에 하나님의 임재를 알리는 것이다. 불을 받은 사람들은 성령의 지배를 받아 그 말씀대로 행하였음을 말한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4)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고 함은 성령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받은 자 안에 임재하시고 역사하심을 말한다. 즉 성령이 역사하신다고 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한다 함이다. 본문에서 전하고하는 메시지가 있다. 그것은 솔로몬 성전을 금과 은으로 놋으로 백향목으로 지어서 하나님께 바쳤다 할지라도 하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고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고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대하 6:21) 대하 6장은 솔로몬 왕의 기도이다. 솔로몬 왕이 성전봉헌식을 하면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이다. 솔로몬의 기도를 통하여 참 회개와 만민이 기도하는 집임을 확인하게 된다.   성전은 하나님의 이름을 두신 곳이다. 이것에 대한 증거로 “주의 능력의 궤”가 있다. 즉 언약궤라 하는데 그 안에는 두 돌 판이 있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의 관계임을 증거 한다. 구약의 백성들에게는 성전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중보의 장소이다. 그분과 약속한 말씀을 지키지 못하였을 때에 기도를 드린다. 그래서 죄인들은 성전에 나와서 기도를 드려야 했다. 기도는 주님의 이름을 인정하는 자가 드릴 수 있으며, 앞으로 나아와, 빌며 간구하는 것이다. 참 회개 기도란 말씀 앞에서 철저한 자기 인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주님을 올바로 인정하는 것이다. 약속의 말씀을 떠나 살 때에 임하는 죄가 자기 마음에 재앙과 고통임을 깨닫고 나와야 한다. 그런 다음에 죄를 사하여 주시고, 마땅히 행할 선한 길을 가르쳐 달라고 하면, 주님께서 마땅히 가야할 길을 가르쳐 주시고 보여 주신다. 구약의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에 와서 완전하게 되었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성전이 되고, 죄 사함과 기도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고, 진리의 말씀을 듣는 것, 영생의 구원을 얻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들의 기도에 중보자가 되십니다. 즉 우리들의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 그런데 우리 주변을 보면 성

제사장들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제사장들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대하 5:14)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완공하고 다윗 성으로부터 언약궤를 옮겨 왔다. 그때에 제사를 드리며 레위 지파 사람들이 찬양을 할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안에 가득하였다.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선하시도다 그의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며” 그분의 선하심을 찬양하여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반역을 하고 죄를 범하여 징계를 받지만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언약의 백성으로 삼아주셔서 자비와 선함으로 끝까지 지키신다. 선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니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대하 5:13하) 성전 안에 영광이 가득하였다. 그런데 제사장들이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예식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 “제사장들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대하 5:14) 구름으로 나타난 이 영광은 인간이 직접 대면할 수 없이 때문이다.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라”(출 33:20) 그러니 하나님이 나타나시되 구름 뒤에 숨어서 나타나시는 것이다. 그 영광은 이 땅에 있는 모든 왕들이 무릎을 꿇어야 하는 권세이다. 만왕의 왕으로 오시는 메시야의 권세임을 나타내시는 것이다. 성경의 말씀으로 하나님을 알고 믿어야 한다. 그런데 말씀에 대하여 무지한 자들이 주장하는 것이 있다. 날마다 하나님을 만나고 음성을 듣는다고 하는 것이다.   만일 이 주장을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로 이 땅에 오신 것을 부인하는 것이 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성육신하셨고, 하나님의 음성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전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들의 공통점은 성경의 말씀을 부인하는데 있다. 그리고 성경을 하나님의 언약과 구속사적 관점으로 이해를 하지 못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이 영광으로 나타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네가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네가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 14:13-14)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 죄 용서를 구한다. 그러면 그분께서는 용서를 해 주셔야 한다. 왜 그런가 하면 그분께서는 죄인들의 죄를 용서하여 줌으로 인하여 성부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때문이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용서를 받은 자들은 거룩한 자가 되어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이것 또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죄인을 용서하여 주시는 것이 성부하나님의 뜻이다. 이것에 대한 증거의 말씀이 본문에 있다.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죄 용서를 구하러 오는 죄인들을 용서해주어야 한다. 이것이 십자가의 구속사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성자하나님이 이루시고, 성령하나님은 아버지의 뜻과 성자하나님이 이루신 영광을 은혜로 임하시는 사역을 하신다. 그러므로 죄인들이 죄짐을 들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가는 것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들의 죄를 용서하심으로 영광을 받으시며 하나님 아버지에게도 영광을 돌리시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믿음은 성삼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알고 믿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알면 믿음생활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사랑을 지식으로 먼저 이해하셔야 합니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엡 3:18) 냉철한 머리로 묵상하셔서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9)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가면 죄 용서를 받을 수밖에 없음을 지식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약속의

그러나 하나님이 실로 들으셨음이여 내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셨도다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그의 인자하심을 내게서 거두지도 아니하셨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실로 들으셨음이여 내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셨도다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그의 인자하심을 내게서 거두지도 아니하셨도다”(시 66:19-20) 시편의 저자는 하나님의 구원의 영광을 온 세상에 전하고 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적으로부터 구원에 대한 감사와 찬양을 하고 있다. 이방 나라들과 환난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애굽에서 노예로서 종살이 할 때에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으로 홍해를 건너던 때를 생각하며 기뻐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때의 능력으로 지금도 역사하신다는 것이다. 즉 이 사건은 일회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속사가 완성될 때까지 지속된다 함을 말한다. 이와 같은 믿음을 확인하다면 환난을 당하더라도 낙심하지 않는다. 환난 속에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물을 통과하고 불을 통과하였더니 가나안에 이르게 된 것으로 확인이 된다. “사람들이 우리 머리를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 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시 66:12) 왜 고난을 통과하게 하시는가? 그것은 늘 보호해 주면 이방나라의 침입에 대하여 의구심을 갖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들에게 일시적인 고통을 당한 것이 영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그들의 마음을 보다 더 순수하게 하여 하나님만을 의지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니”(시 66:10) 그 다음에는 반전이 있다. 이스라엘이 이방나라에 머리를 밟혔지만 결국에는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갔으니 환난 날의 서원을 드려야 한다. 고난 가운데서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께 헌신과 희생의 제물을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숫양의 향기와 함께 살진 것으로 주께 번제를 드리며 수소와 염소를 드리리이다(셀라)”(시 66:15) 그리고 환난 날에 구원을 베풀어주신 여호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요 9:39) 예수 그리스도께서 맹인을 고치심을 통하여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에게 교훈을 주신다. 본문에 등장하는 맹인은 나면서부터 보지 못한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영적으로 맹인이다. 그런데 이 맹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앞을 보게 된다. 고치시는 방법이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요 9:6) 죄를 저주하시고 진흙을 이겨 눈에 바르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신다. 실로암 못은 보냄을 받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예루살렘 성 밖에 실로아 못이 있다. 실로아 못은 하나님의 은혜로 물이 채워지는 곳이다. 그 못으로부터 지하로 연결하여 성 안으로 물을 흐르게 하여 만든 못이 실로암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았다는 증거를 하시는 것이다. 이 땅에 보냄을 받으셔서 무슨 일을 하시는가? 영혼의 맹인들을 눈뜨게 한다.   맹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을 하여 보게 되었다. 이제 본문에서 전하고자 하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증언하는 자로서 삶이다. 사람들이 묻는다.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는 자가 아니냐”(요 9:8) 그의 대답은 내가 전에 걸인이며 맹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앞을 본다. 이제 맹인되었던 사람이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 앞에 불려간다. 바리새인이 질문을 하기를 너는 너를 고쳐준 사람을 누구라 생각하느냐? 이에 대답하기를 “이에 맹인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이다 하니”(요 9:17), 당당하게 선지자라 한다. 이번에는 맹인되었던 사람의 부모가 바리새인들에게 불려가 증언을 한다. “그 부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아들인 것과 맹인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요 9:20) 그리고 내 아들이 성인이

또 놋을 부어 바다를 만들었으니 지름이 십 규빗이요 그 모양이 둥글며 그 높이는 다섯 규빗이요 주위는 삼십 규빗 길이의 줄을 두를 만하며

  “또 놋을 부어 바다를 만들었으니 지름이 십 규빗이요 그 모양이 둥글며 그 높이는 다섯 규빗이요 주위는 삼십 규빗 길이의 줄을 두를 만하며”(대하 4:2) 대하 4장에서는 성전 안에 있는 물건들을 소개하고 있다. 놋 제단과 바다와 물 두멍 그리고 성전의 두 기둥과 기물들이다. 놋 제단은 희생 제물을 드리는 곳으로 성전 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길이가 이십 규빗이요, 너비가 이십 규빗이요, 높이가 십 규빗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모든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높이 달리심으로 이것을 바라보며 자신의 죄에 대하여 애통해 하며 구원에 이를 것을 보여 준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 9:14) 또 바다는 놋으로 만들었다. “그 바다는 제사장들이 씻기 위한 것이더라“(대하 4:6하), 즉 제사장들이 성소 안으로 들어갈 때에 몸과 손에 붙은 것들을 씻기 위함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자들도 날마다 하나님께 나가기 위하여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씻어야 한다. 물로 깨끗이 씻음과 같이 성경의 말씀으로 마음의 죄를 씻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3:6-7)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 아버지께 나가기 위하여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하나님의 도움이 있어야 합니다.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요일 5:6) 성경의 말씀을 따르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르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물과 피로 씻음으로 인하여 날마다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생활은 날마다 더러운 죄를 씻으며 새로운 말씀을 채우게 됩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전한 곳이라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전한 곳이라”(대하 3:1) 솔로몬이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한 장소이다. 이곳은 믿음의 선조들이 이미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장소이기도 하다. 모리아 산이라기도 하고,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이라 하기도 한다. 아브라함이 온전한 순종으로 아들인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려 했던 모리아 산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 그리고 다윗에게는 교만해 져서 인구조사를 하여 하나님께 징벌을 받을 때에 하나님 진노의 심판이 멈춘 장소이자 번제단을 쌓았던 장소이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멸하러 천사를 보내셨더니 천사가 멸하려 할 때에 여호와께서 보시고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그 때에 여호와의 천사가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 곁에 선지라”(대상 21:15) 이것은 장차 진정한 성전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사함을 받으며 예배를 드려야 함을 계시하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마 12:6)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다. 즉 예수 그리스도에게 죄사함의 권세를 주셨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막 2:5)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성령이 강림하셔서 교회가 세워졌다. 그러므로 이제는 성전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광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

이제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여 구별하여 드리고 주 앞에서 향 재료를 사르며 항상 떡을 차려 놓으며 안식일과 초하루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절기에 아침 저녁으로 번제를 드리려 하오니 이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규례니이다

  “이제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여 구별하여 드리고 주 앞에서 향 재료를 사르며 항상 떡을 차려 놓으며 안식일과 초하루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절기에 아침 저녁으로 번제를 드리려 하오니 이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규례니이다”(대하 2:4) 솔로몬 왕이 성전건축에 필요한 백향목을 구하려 두로 왕 후람에게 사절을 보낸다. 이전에 다윗 성을 지을 때에도 두로 왕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 성전을 건축하는 이유와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제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여 구별하여 드리고 주 앞에서 향 재료를 사르며 항상 떡을 차려 놓으며 안식일과 초하루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절기에 아침 저녁으로 번제를 드리려 하오니 이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규례니이다”(대하 2:4)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것이고, 향 재료를 사르며, 항상 떡을 차려 놓으며, 여호와의 절기에 아침과 저녁으로 번제를 드리기 위함인데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에게 지켜야할 영원한 약속인 것이다. 향 재로를 사르는 일은 하나님께 기도드림을 말한다. “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 등불을 손질할 때에 사를지며”(출 30:7). 항상 떡을 차려 놓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곡식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상 위에 진설병을 두어 항상 내 앞에 있게 할지니라”(출 25:30) 여호와 하나님을 제사를 통하여 만날 수 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내 헌물, 내 음식인 화제물 내 향기로운 것은 너희가 그 정한 시간에 삼가 내게 바칠지니라”(민 28:2) 성전은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곳이며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오늘날 교회도 하나님의 교회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다.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는가 하면 말씀을 통하여 만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드립니다. 그 가운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봉독과 설교시간입니다. 성경 봉독한 말씀이 성령하나님께서 역사하셔야 성부하나님의 뜻과

주는 이제 내게 지혜와 지식을 주사 이 백성 앞에서 출입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많은 주의 백성을 누가 능히 재판하리이까 하니

  “주는 이제 내게 지혜와 지식을 주사 이 백성 앞에서 출입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많은 주의 백성을 누가 능히 재판하리이까 하니”(대하 1:10) 솔로몬 왕이 온 회중과 함께 기브온 산당으로 나아가 일천 마리의 희생제물로 제사를 드렸다. 그리하였더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이르셨다.   말씀하시기를 “그 날 밤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주랴 너는 구하라 하시니”(대하 1:7) 내게 구하라 하신다. 그리하여 솔로몬은 하나님께 구하기를 이 많은 백성을 하나님의 율법으로 판단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들는 마음을 달라고 하였다. 즉 하나님의 율법을 잘 들을 수 있는 지식을 달라고 한 것이다. 그리하였더니 하나님께 솔로몬의 마음을 귀히 보사 구하지 않은 것 까지도 주셨다. “그러므로 내가 네게 제혜와 지식을 주고 부와 재물과 영광도 주리니 네 전의 왕들도 이런 일이 없었거니와 네 후에도 이런 일이 없으리라 하시니라”(대하 1:12)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말씀을 받아 그 말씀으로 백성들을 통치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즉 지식을 얻게 되면 그것이 지혜로 나타난다는 것을 말함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할 수 있는 자로 목사를 세웠다. 즉 교회 당회 통제 안에서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강도권을 준 것이다. 달리 말하면 교회 안에서는 강도권을 가진 자만이 말씀을 전할 수 있다. 강도권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께 받은 은사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할 수 있는 소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교회가 속한 교단 신학교에 입학을 한다.   그러면 교회가 속한 노회에서 전도사고시, 목사후보생고시, 총회에서 목사 자격고시, 노회에서 목사고시를 통하여 실력을 확인 한 후에 안수를 통하여 직분자로 세운다. 왜 이렇게 하는가 하면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예배 가운데 가장 중요한 순서는 말씀봉독과 설교이다. 설교

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내가 너희에게 철따라 비를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나무는 열매를 맺으리라

  “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내가 너희에게 철따라 비를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나무는 열매를 맺으리라”(레 26:3-4) 하나님의 계명을 듣고 그대로 순종을 하면 철따라 비를 주시고 땅의 소산물과 나무의 열매를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을 하면 된다고 하는데 어떻게 순종을 하여야 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말씀을 따라 행함을 하는데 하나님을 기쁘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는 그분의 성품이 담겨 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이다. 즉 그의 말씀을 들을 때나 행할 때에 그와 같은 성품으로 행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순종하신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의 아들이 하늘 아버지께 순종할 때에 성령의 열매의 성품으로 하셨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으라 하는 것이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만일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순종할 때에 화를 내거나 가식으로 하게 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약속의 복을 받지 못한다. 신자들의 믿음 생활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그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된다. 왜 그런가 약속한 복이 그대로 나에게 임하였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찬송가 가사들을 보면 하나님의 뜻이 나의 뜻이 되고, 예수님의 성품이 나의 성품이 되고, 성령님의 권능이 나의 능력이 되게 해 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예수님의 성품으로 행하는데 성경 말씀의 인도를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셔야 하늘 아버지가 원하는 영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주먹 자랑을 하고 큰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면 실패하는 것이 됩니다. 하늘 아버지께 구하는데 아버지의 영광을 위한 것인지 나의 정욕을 위한 것인지를 분별하셔야 합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약 4:3) 나의 자랑과 나의 욕심을 위하여 구하면,

주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방울이 떨어지며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

  “주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방울이 떨어지며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시 65:11-12) 시편 65편은 다윗의 감사시이다.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 베푸시는 특별 은총과 세계 만민에게 베푸시는 일반은총을 감사하는 내용이다.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사람들은 성전으로 나아가 예배를 드린다. 그러면 죄를 사하여 주시고 함께 하여 주신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시 65:4) 주의 성전에서 함께 동거한다는 것은 체험적인 영적 교제를 나누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주님과 함께 사는 것만으로 만족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의 주님의 권능으로 창조되고 다스려짐을 찬양한다. “주는 주의 힘으로 산을 세우시며 권능으로 띠를 띠시며”(시 65:6) 신실하신 주님께서 우주만물을 주관하시기 때문에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달이 떠오르는 것이다. 모든 만물이 창조된 이후에 해가 서쪽에서 솟아오른 적이 없다. 이것만 보아도 변치 않으심이 보이고 행하시는 모든 일에 권위가 나타난다. 일반은총에는 의인이나 악인을 구분하시지 않고 해와 비를 내려주신다.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마 5:45하) 그래서 악인들도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 택함을 받아 구원을 얻은 신자들의 특별 은총과 일반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먹을 것을 구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택함을 받은 사람들은 하늘 아버지가 주신다는 겁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구약에서는 “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내가 너희에게 철따라 비를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나무는 열매를 맺으리라”(레 26:3-4) 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부요한 삶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마 6:1)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교만을 적으로 생각하여야 한다. 왜 그런가 하면 교만은 세상에 나타난 최초의 악이기 때문이다. 교만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자랑인데 강한 자의 마음에 교만이고, 약한 자에게는 약함을 드러내는 자기 연민의 교만이다. 자랑은 스스로 만족한 듯 보이고, 자기 연민은 스스로 희생함을 전하려는데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성경적인 것이 아니다. 올바른 성경적인 이해는 고난이나 핍박 가운데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가 더 크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의 위로 때문에 고난이나 희생을 내밀 수 없음을 말한다. 신자들이 선한 일을 할 때에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자기 자랑을 위하여 선행을 하는 것과 하나님의 기쁨을 위하여 선행을 하는 것이 있는데 만일 자기 자랑을 위하여 선행을 한다면 그것은 교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람들 앞에서 선행을 하며 자랑을 하게 되면 하나님 앞에 상급이 없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마 6:1) 내가 선행을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선행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한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의 제 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가 됩니다. 즉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 기쁨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랑이나 자기 연민은 하나님 앞에서 교만이 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요일 3:10) 성경은 너무도 분명하게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을 구분하고 있다. 본문에서 두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먼저는 하나님의 의를 행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려 하지 않고 알고 있는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이고, 두 번째는 공동체 안에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만일 이 두 가지를 행하지 아니하면 마귀의 자녀들이라 한다. 마귀는 거짓의 아비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짓으로 바꾼다. 그리하여 말씀에 불순종하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생각으로 이렇게 저렇게 판단을 하는 것이 마귀가 하는 짓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피조물들이 모여서 의논을 하거나 토의를 할 수 없다. 즉 하나님은 토론의 대상이 아니시라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는 순종만을 요구한다. 그런데 교묘하게 요렇게 저렇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시키려 하면 마귀의 자녀임이 분명하다. 정리를 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은 토의를 하여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순종할 때만 이해가 되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와서 시험을 하던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들의 특징은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들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질문하는 자의 악한 마음을 질책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처음부터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질문은 하나님 앞에 범죄가 됩니다. 왜 범죄가 되냐구요,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라 불순종하는 마음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