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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요 6:26) 예수 그리스도께서 광야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다. 그리고 물 위를 걸으시고 호수 건너편에 이르셨다. 그때에 무리들이 다시 찾아 왔다. 지금 모인 무리들은 광야에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먹은 사건을 보았고 떡을 먹었던 사람들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표적을 알지 못하고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나를 찾았노라고 한다.   그렇다면 표적은 무엇인가? 하늘 아버지가 아들을 통하여 이르려 하시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기적에는 초인간적인 것이 있고 초자연적인 것이다. 인간의 능력과 한계를 넘어서 행하셨던 일이 물 위를 걸으신 것이며, 오병이어의 기적은 자연의 현상을 넘은 사건이다. 사건들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보여 준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믿게 하고 그런 다음에 하나님의 일을 이루러 오셨음을 알리는 것이 요한복음의 내용 전개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하시려하는 일은 무엇인가? 영원한 나라를 세우러 오신 것이다. 영원한 나라의 백성들은 영생을 얻어야 한다. 그래야 영원토록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언약을 맺으셨다.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견고하게 하리라”(삼하 7:13). 그 일을 이루시러 이 땅에 성육신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요 17:2) 하셨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영생을 어떻게 얻는가에 대한 교훈이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온 이스라엘이 그 계보대로 계수되어 그들은 이스라엘 왕조실록에 기록되니라 유다가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 계보대로 계수되어 그들은 이스라엘 왕조실록에 기록되니라 유다가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더니”(대상 9:1) 대상 9장에서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족장들을 소개하고 있다. 예루살렘은 유다지파의 땅이었지만 이제는 남왕조로 분위기가 바뀌면서 유실된 성전 회복에 대한 관심이다.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과 에브라임과 므낫세 자손 중에서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각 지파에 속한 각 종족들은 “또 그의 형제들이라 그들의 계보대로 계수하면 구백오십육 명이니 다 종족의 가문의 우두머리들이더라”(대상 9:9) 또한 레위인들의 우두머리는 “또 그의 형제들이니 종족의 가문의 우두머리라 하나님의 성전의 임무를 수행할 힘있는 자는 모두 천칠백육십 명이더라”(대상 9:13), 천칠백육십 명이다. 다시 성전이 세워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회막 문지기가 있고(17-27), 성전 안에서 기구를 맡은 자들 그리고 음식을 맡은 자들을 소개하고 있다(28-34). 즉 성전 중심의 역사임을 말한다. 그리고 또 다시 사울 왕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다. 왜 그런가 하면 왕의 비극적인 종말을 교훈하는 것이다. 불순종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과거의 역사를 통하여 죄가 어떤 것이며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불순종하였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오늘에 이르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성경 속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알게 되면 사람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확인하게 되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 이민을 와서 먼저 하였던 것이 교회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교회를 세우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오히려 교회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중심으로 다시 모입니다. 이제 이후에 소개되는 말씀은 성전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즉 어떤

울람의 아들은 다 용감한 장사요 활을 잘 쏘는 자라 아들과 손자가 많아 모두 백오십 명이었더라 베냐민의 자손들은 이러하였더라

  “울람의 아들은 다 용감한 장사요 활을 잘 쏘는 자라 아들과 손자가 많아 모두 백오십 명이었더라 베냐민의 자손들은 이러하였더라”(대상 8:40) 대상 8장에서는 베냐민 지파에 대하여 보충하여 기록하였다. 이미 7장에서 베냐민 지파를 소개하였지만 더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있다.   베냐민 지파에서는 사사 에훗이 있었고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이 있었다. 그러나 사울 왕에 대하여 더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전하고자 하는 것은 다윗 왕국의 은혜이다. 사울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는데, 세 아들은 전쟁에서 아버지와 함께 전사하였다. 그리고 넷 째 아들은 신하들의 칼에 죽었다. 그런데 사울 왕의 맏아들인 요나단에게 다리를 저는 아들이 있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에게 다리 저는 아들 하나가 있었으니 이름은 므비보셋이라 전에 사울과 요나단이 죽은 소식이 이스르엘에서 올 때에 그의 나이가 다섯 살이었는데 그 유모가 안고 도망할 때 급히 도망하다가 아이가 떨어져 절게 되었더라”(삼하 4:4) 다윗은 다리를 저는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은 왕의 상에서 함께 식사를 하면 대우를 하였다. “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에 사니라 그는 두 발을 다 절더라”(삼하 9:13) 다윗이 이렇게 므비보셋에게 하는 이유는 요나단과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였기 때문이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하니 다윗은 일어나 떠나고 요나단은 성읍으로 들어가니라”(삼상 20:42) 다윗 왕국의 은혜로 말미암아 므비보셋의 자손들이 이렇게 번성을 하여 예루살렘에 거주하게 된 것이다. “요나단의 아들은 므립바알(므비보셋)이라 므립바알은 미가를 낳았고, 미가의 아들들은 비돈과 멜렉과 다레아와 아하스이며”(대상 8:34-35) 하나님의 은혜로 번성한 베냐민 지파를 소개하는 것이다. “울람의 아들은 다 용감한 장사요 활을 잘 쏘는

그들과 함께 있는 자는 그 계보와 종족대로 능히 출전할 만한 군대가 삼만 육천 명이니 이는 그 처자가 많기 때문이라

  “그들과 함께 있는 자는 그 계보와 종족대로 능히 출전할 만한 군대가 삼만 육천 명이니 이는 그 처자가 많기 때문이라”(대상 7:4) 대상 7장에서는 잇사갈의 자손, 베냐민의 자손, 납달리의 자손, 므낫세의 자손, 에브라임의 자손, 아셀의 자손에 대하여 기록을 하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각 지파의 종족들이 야곱이 열 두 아들에게 축복을 하여 주면서 계시한 대로 되었다는 것이다. 잇사갈은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에 섬기리로다”(창 49:14-15) 과묵하며 형제들을 위하여 무거운 짐을 지었다.   베냐민 자손은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차임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창 49:27), 이스라엘 백성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 민족 공동체를 파괴하려 했다. “베냐민 자손이 기브아에서 나와서 당일에 이스라엘 사람 이만 이천 명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나”(삿 20:21) 납달리에 대해서는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창 49:21)라고 하였다. 암사슴처럼 이러 저리 돌아다님으로 인하여 하나님 나라의 예표인 다윗 왕국에 공헌하는 자가 없었다. 므낫세과 에브라임인 요셉 지파에 대해서는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창 49:24) 하였으므로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에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완고한 백성들을 하나님 앞에 복종시켰다. 아셀 지파에 대해서는 “아셀에게서 나는 먹을 것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수라상을 차리리로다”(창 49:20)라 하였는데 실제로 지중해 지름진 땅인 해변을 기업으로 받았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에브라임 지파 눈의 아들인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입니다. 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보여준 리더십이 있습니다. 영적 전투를 선포하고 무엇보다도 자신을 쳐서 하나님 앞에 복종하였던 것입니다. “만일

레위의 아들들은 게르손과 그핫과 므라리요

  “레위의 아들들은 게르손과 그핫과 므라리요”(대상 6:1) 대상 6장에서는 레위 자손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다. 레위 지파에서 성전과 제사를 관리하고 제사장이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므온과 레위는 세겜 족속을 칼로 죽임으로 인하여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창 49:5) 아버지 야곱의 계시에 의하면 흩어질 것이라 하였다.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창 49:7)) 그래서 시므온 지파는 옮겨 다니다가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레위지파는 시내산 앞 금송아지 숭배 사건 때에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 줌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가 된다.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출 32:26)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레위 지파를 위하여 이렇게 축복을 하였다. “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 주 앞에 분향하고 온전한 번제를 주의 제단 위에 드리리로다”(신 33:10). 그래서 성전 봉사와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게 된 것이다.   레위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다. “레위의 아들들은 게르손과 그핫과 므라리요”(대상 6:1) 게르손 자손들은 성막과 장막과 부속물들을 관리하는 직무를 맡았다(민 3:25-26). 그리고 그핫 자손은 성막의 신성한 기구와 운반하는 일을 맡았으며(민 3:31), 아론의 후손들은 제사장의 직무를 담당하였다(민 3:2-4). 므라리 자손은 성막의 널판과 부속물들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민 3:36).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시므온 지파와 레위 지파는 이스라엘 가운데 흩어질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 범죄를 하였을 때에 하나님의 편에 선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레위 지파가 하나님께 쓰임을 받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 10:39) 히브리서는 고난과 핍박을 당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위로의 서신이다. 서신의 말씀을 살피면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교훈을 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완전함으로 결단코 실패가 없다. 그 완전함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확인시켜 주셨다. 죽기까지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 순종할 때이다. 그 길은 십자가의 길인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본을 보여 주셨다. 신자들도 십자가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영혼으로 찬양을 하여야 한다. 영혼이라는 것은 사람 안에 있는 내면에 있는 것으로 그 사람의 존재를 의미한다. 그 사람의 존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변하여 찬양을 하여야 한다. 그래서 ‘찬양하라 내 영혼아“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시 42:1)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는 영혼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여줄 목자가 있다.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벧전 2:25). 구원을 받기 이전에는 영혼을 인도해 줄 목자가 없었지만 이제는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여 하는 목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목자는 이 세상의 고난과 수난을 이기신 분이시다.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며,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길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이기신 분이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제 그분이 구원을 받은 자들에게 들어와 계심으로 인하여 당연히 고난을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분께서 내 안에서 역사하시게 하기 위해서는 그분께서 가르치시고 보여주신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 그래야 그분께서 나타내신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가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여야 한다. 그런데 그분과 함께 하면 뒤로 돌아가는 일이 없습니다. 만일 내가 믿음이 흔들리고 시험이 올 때에는 내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시 57:1)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어 동굴에 피하여 있을 때에 지은 시이다. 그는 지금 몸이 피곤하고 지쳐 있는 상태인데 내 영혼을 주께 의지한다고 기도한다. 다윗은 시편 57편에서 ‘내 영혼’을 네 번이나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먼저 ‘영혼‘이 무엇인지를 살펴야 한다. 이 문제는 생각보다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생기를 코에 불어넣으시므로 사람이 생명이 되었다. 그래서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 된다. 사람 안에 생명이 있는 자리는 ‘피‘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하지 말라 하신 것이다. 생명이 있는 자에게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자기 스스로를 의식하고 자신을 소유하며 자신을 책임지는 삶을 유지한다. 가장 내면적인 자아 곧 ‘나’를 나타내는 것을 영혼이라 한다. 영혼은 생명을 갈망하고 사랑하며 고통과 아픔을 느낀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이 자신의 영혼을 여호와 하나님께 맡긴다고 한다. 그러면 생명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여 주신다는 것이다. 영혼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하고 순종하고 있음을 말한다. 그렇게 되면 영혼의 가치관이 하나님의 것으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이 칼을 들지 않는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기만 하면 원수들에게 보응의 심판을 하여 주신다고 하였다. 시편의 내용은 다윗의 생명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사울을 심판하였다. 그래서 다윗은 찬양을 한다. “내 영광(영혼)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시 57:8). 내 영혼을 구원하여 주심으로 인하여 나의 자아와 모든 것이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있다는 것이다.   사도 베드로가 고난을 당하고 있는 흩어진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로마황제로부터 심한 핍박을 받고 있다. 그러나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요 6:16-17) 오병이어 기적 후에 일어난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산으로 기도를 하러 올라가시고 제자들은 세상으로 향하고 있다. 본문은 제자들의 삶의 현장을 찾아 오셔서 구원을 하여주시는 약속의 은혜를 소개한다. 지금도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 땅에서 살고 있다.   우리들이 풍랑을 만나 고난 가운데 있을 때에 속히 오셔서 구원을 하여 주신다. 그런데 필요한 구원의 믿음이 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사건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확인시켜 주시려 하는 것이 있다.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마 14:33). 성령께서 요한복음을 통하여 깨닫게 하시는 것이 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야 한다. 또한 그 믿음을 삶의 현장에서 고백을 하여야 한다. 그래야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요 6:21)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제자들에게 시험이 왔는데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고 계십니까? “이는 그들이 그 떡 때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막 6:52) 고난과 풍랑이 왔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왜 시험을 주실까요?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기 위함입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4) 이 사건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의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서 족보에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되지 못하였느니라)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의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서 족보에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되지 못하였느니라)”(대상 5:1) 대상 5장에서는 야곱의 맏아들 르우벤이 장자권을 상실하게 된 이유와 요단 동쪽의 세 지파 자손들의 족보에 대하여 기록을 하였다. 르우벤은 야곱의 열두 아들 가운에 장자이다. 그런데 그가 서모 빌하와 동침을 하므로 자격을 상실하였다. “이스라엘이 그 땅에 거주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창 35:22) 그래서 장자의 주권은 유다 자손이 차지하게 되었고,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에게서 났으나”(대상 2상), 장자의 몫은 요셉 자손이 차지하게 된 것이다.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대상 5:2하)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은 유다 지파를 통하여 이어져 오고, 장자의 몫은 다른 아들과 달리 두 배를 받게 됨으로 인하여 요셉의 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받은 것이다. 요단 동편의 세 지파(므낫세, 갓, 르우벤)는 전쟁에 능한 용사들이 많았다. “르우벤 자손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에서 나가 싸울 만한 용사 곧 능히 방패와 칼을 들며 활을 당겨 싸움에 익숙한 자는 사만 사천 칠백육십 명이라”(대상 5:18) 그들이 전쟁에 나가면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이는 그들이 싸울 때에 하나님께 의뢰하고 부르짖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응답하셨음이라”(대상 5:20하),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이 우상을 섬김으로 인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께 범죄하여 하나님이 그들 앞에서 멸하신 그 땅 백성의 신들을 간음하듯 섬긴지라”(대상 5:25) 징계하시는데 앗수르를 사용하셨다. 그래서 차지하였던 땅을 빼앗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나라의 우상숭배를 한다고 함은 그들의 마음과 생각과 행실이 하나님 앞에서 떠난 상태를 말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대상 4:10) 대상 4장에서는 유다의 자손 야베스에 대하여 소개를 하고 있다. 야베스 이름의 뜻은 ‘고통의 아들’이다.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대상 4:9) 야베스의 기도를 정리하면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환난을 벗게 하여 근심이 없게 해 달라는 것이다.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을 하셨다. 본문은 기도와 응답을 소개할 때에 많이 인용을 한다. 성경 여러 군데에서 기도에 대하여 말씀하지만 기도하는 자에게는 본문의 말씀이 마음에 와 닿는다. 그러다보니 이 말씀이 널리 알려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실 때에는 조건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약속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는 고난을 마치 아이를 밴 임산부의 모습으로 비유를 하였다. 엄마가 아이를 출산할 때에 살이 찢어지는 고통이 있다. 그러나 몸 밖으로 나온 아이를 안을 때는 그 아픔을 기억하지 않는다.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 하느니라”(요 16:21)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수난과 고통이다. 즉 고난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고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한다. 그 길을 가면 아버지께 구하는 모든 것을 받게 해 주신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사로잡혀 간 여고냐의 아들들은 그의 아들 스알디엘과 말기람과 브다야와 세낫실과 여가마와 호사마와 느다뱌요

  “사로잡혀 간 여고냐의 아들들은 그의 아들 스알디엘과 말기람과 브다야와 세낫실과 여가마와 호사마와 느다뱌요”(대상 3:17-18) 대상 3장에서는 다윗의 아들들과 솔로몬 왕으로 시작하여 시드기야까지 역대 유다 왕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여고냐(여호야긴)의 아들들을 본문에서 소개하고 있다. 그러므로 다윗 왕조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져서 약속한 메시야가 등장을 한다.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엘리야김은 아소르를 낳고”(마 1:12),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마 1:16)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은 언약이 이루어져 영원한 나라인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이다.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삼하 7:12)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벨론으로 잡혀간 여고냐(여호야긴)의 아들들이 있지만 왕위에 오르지 못할 것을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이미 말씀을 하셨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이 사람이 자식이 없겠고 그의 평생 동안 형통하지 못할 자라 기록하라 이는 그의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라 하시니라”(렘 22:30) 본문을 통하여 다윗의 족보가 이어져 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다. 빌라도가 묻는다.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마 27:11)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람은 아는 만큼 배운 만큼 말합니다. 특히 신자들은 더 조심해야 합니다. 성경말씀 전체를 살피면 우리들의 궁금한 것들이 다 풀리게 됩니다. 혹시 몰라서 하는 말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합니다. 아닙니다. 모르는 것도 죄가 됩니다.   즉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 죄입니다. 모르는

유다의 며느리 다말이 유다에게 베레스와 세라를 낳아 주었으니 유다의 아들이 모두 다섯이라

  “유다의 며느리 다말이 유다에게 베레스와 세라를 낳아 주었으니 유다의 아들이 모두 다섯이라”(대상 2:4) 대상 2장에서는 유다의 족보를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유다 족보의 시작이 좀 애매하다. 유다에게는 아들이 세 명이 있었다. 맏아들 엘은 다말과 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엘은 악한 자였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죽였다.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창 38:8) 엘과 다말 사이에 자식이 없으므로 계대법에 따라 다말을 둘째 아들인 오난에게 주었다. 오난은 그의 형에게 씨를 주지 않으려는 악한 마음을 가졌다. “그 일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창 38:10) 그래서 둘째인 오난도 죽는다. 시아버지인 유다가 다말에게 친정에 가 있으라 한다. 그런데 유다에게는 셋째인 셀라가 있다. 그렇다면 셀라를 다말에게 장가를 보내야 한다. 다말은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마침 다말이 살고 있는 동네에 유다가 온 것이다. 그래서 다말은 길거리의 창기로 위장을 하고 유다와 동침을 한다. 이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가 있다. 베레스와 세라이다. “유다의 며느리 다말이 유다에게 베레스와 세라를 낳아 주었으니 유다의 아들이 모두 다섯이라”(대상 2:4) 베레스가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아서 유다의 족보가 이러져서 다윗을 낳게 되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이 족보를 통하여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유다의 족보는 유다의 의로움이나 선을 통하여 대를 이은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에서 시작이 되었고, 유다의 족보에서 메시야인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을 한다. 왜 이러한 족보를 통하여 구원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여야 한다. 그분은 죄인의 친구가 되시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마 11:19)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유다 지파 다윗의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니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니”(요일 3:21-22)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함이다. 이제는 그 다음 단계에 있는 믿음으로 성장을 하여야 한다. 구원받은 자들을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인도하게 하신다. 그래서 아버지에게로 가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루어짐을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아버지에게로 가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행함을 본받아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 아버지 앞에 담대히 서게 된다. 그러면 약속하신 복을 주시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을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본문의 말씀에 그것에 대한 증거이다. 성경의 말씀을 자세히 살피면 무엇을 약속하셨는지를 알 수 있다. 이제 믿음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아직도 젖병을 물고 있는 어린아이의 믿음을 갖고 있다면 심히 곤란한 일이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그러하였다. 단단한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지각을 사용하여야 한다. 그러하듯이 성경의 말씀도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은혜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을 마음에 두라고 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제는 성경의 말씀을 깊이 묵상을 하시면서 믿음생활을 하셔야 합니다. 아직도 성경을 찾지 못하고, 스스로 말씀을 읽을 수 없다면 젖병을 물고 있는 수준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밥을 먹일 수 없어서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고전 3:2). 밥을 먹어야 힘을 씁니다. 젖은 겨우 생명만 간신히 유지하는 것입니다. 밥을 먹기 위해서는 수저나 포크 나이프를 사용하는 지혜와 힘이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