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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인하고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인하고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행 20;26)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고별 설교를 하였다. 설교의 내용은 하나님에게로 돌아와 회개를 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에 대한 증언이다.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행 20;21) 이 말씀을 교인들에게 유익함이 되면 거침없이 전하였다는 것이다.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행 20;20) 사도는 하나님의 구원을 전하기 위한 도구로 쓰임을 받는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들을 전하여야 한다. 본문의 말씀은 여호와께서 에스겔을 불러 사명을 맡길 때에 말씀하셨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게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주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겔 3:18) 즉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말씀을 전하여 회개의 자리로 오게 하라는 것이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아서 죄인이 심판을 받을 때에 그 죄인의 피 값을 에스겔의 손에서 찾으신다고 하셨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 앞에서 당당히 사도의 사명을 하였음을 밝히는 것이다.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행 20:27)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도 바울은 영적인 아들인 디모데에게도 똑 같이 말하였습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 이와 같은 책임과 사명이 목사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가 전하는 설교에는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행 20;21) 회개와 구원에 대한

불이 그 가지 중 하나에서부터 나와 그 열매를 태우나 권세 잡은 자가 규가 될 만한 강한 가지가 없도다 하라 이것이 애가라 후에도 애가가 되리라

  “불이 그 가지 중 하나에서부터 나와 그 열매를 태우나 권세 잡은 자가 규가 될 만한 강한 가지가 없도다 하라 이것이 애가라 후에도 애가가 되리라”(겔 19:14) ‘애가’란 슬픈 심정을 담은 시에다 곡조를 붙인 것이다. 내용은 범죄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교훈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노래를 지어 고관들에게 부르게 하라는 것이다. “너는 이스라엘 고관들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겔 19:1) 고관들은 고귀한 신분으로 백성들을 인도하고 목양을 하여야 한다. 가사의 내용은 요시야의 왕 이후에 왕들에 대한 것이다. 본문에서 젊은 사자가 나오는 것은 유다의 왕권을 말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창 49:8) 맏아들 여호아하스는 애굽으로 끌려갔고, 여호야김을 세웠더니 하나님을 거역하고 백성들을 압제하고, 여호야긴은 바벨론에 잡혀가고, 시드기야는 눈이 뽑히고 아들들이 죽임을 당하였다. 이 사건으로 유다 왕국이 망하므로 더 이상 육신적으로는 다윗 왕가의 후손 중에는 왕위에 오를 자가 없음을 말한다. “불이 그 가지 중 하나에서부터 나와 그 열매를 태우나 권세 잡은 자가 규가 될 만한 강한 가지가 없도다 하라 이것이 애가라 후에도 애가가 되리라”(겔 19:14) 다만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하신 왕으로서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신다.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눅 1:32)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육신적인 왕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가 없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사람이 이루지 못한 것을 하나님이 성육신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이루시는 것입니다. 구약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이 얼마나 큰 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확인하는 것입니까? 사람에게서는 선한 것이 없다는 것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아버지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 의인의 공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아버지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 의인의 공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겔 18:20) 에스겔 18장에서는 자신들의 죄를 조상들에게 돌리는 이스라엘을 나무라는 내용이다. 그들이 바벨론의 칼과 포로로 잡혀가는 것은 아버지가 잘못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의 말씀은 너희가 내 말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한다. 모든 영혼이 여호와의 정의와 공의로 심판을 받는다.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버지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그의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겔 18:4) 이스라엘 백성들은 징계를 당하면서도 회개하지 않으며 오히려 조상 탓을 하고 있다. 그러한 백성들에게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여호와의 심판은 각 사람이 행한 대로 보응의 심판을 받는다 함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돌아와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 행하라 한다.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겔 18:21)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속담에도 잘못되면 조상 탓, 잘되면 내 탓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영혼을 관장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에는 각 사람의 공로에 따른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믿음이 좋다고 하여 자식에게 심판이 미치지 않고, 나쁘다고 할지라도 자식에게는 미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 때에는 각 자의 것을 들고 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심판의 거룩한 뜻을 나타내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도덕과 윤리를 행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너희도 거룩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가 네 맹세를 업신여기고 내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내가 그 죄를 그 머리에 돌리되

  “그러므로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가 내 맹세를 업신여기고 내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내가 그 죄를 그 머리에 돌리되”(겔 17:19) 에스겔 17장에서는 언약을 맺으면 반드시 지켜야 함을 교훈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셨다. 언약을 지킴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침략으로 인하여 포로로 잡혀가고 종주국과 속국으로 언약을 맺는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바벨론과 맺은 언약을 어기고 애굽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가 사절은 애굽에 보내 말과 군대를 구함으로 바벨론 왕을 배반하였으니 형통하겠느냐 이런 일을 행한 자가 피하겠느냐 언약을 배반하고야 피하겠느냐”(겔 17:15) 그러나 이 일로 인하여 이스라엘에게는 더 큰 고통을 당하게 되고 왕은 포로로 잡혀가 바벨론에서 죽는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언약을 지키지 않아도 큰 고통을 당하거늘 하물며 여호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 않을 때에는 더 큰 고난을 당할 것이라 한다.   그 큰 고난을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그곳에서 행하신다는 것이다. “그 위에 내 그물을 치며 내 올무에 걸리게 하여 끌고 바벨론으로 가서 나를 반역한 그 반역을 거기에서 심판할지며”(겔 17:20)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세상을 주관하시고 우리들을 돌보고 계십니다. 본문에서 이스라엘과 바벨론의 언약을 여호와께서 주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바벨론을 배반하고 애굽으로 행하였습니다. 그리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결단코 애굽이 바벨론을 이길 수 없다고 하십니다. “대적이 토성을 쌓고 사다리를 세우고 많은 사람을 멸절하려 할 때에 바로가 그 큰 군대와 많은 무리로도 그 전쟁에 그를 도와 주지 못하리라”(겔 17:17)

이는 내가 네 모든 행한 일을 용서한 후에 네가 기억하고 놀라고 부끄러워서 다시는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내가 네 모든 행한 일을 용서한 후에 네가 기억하고 놀라고 부끄러워서 다시는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16:63) 에스겔서 16장의 말씀은 점잖은 사람에게는 읽기가 거북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도 예스겔서를 청장년이 되어서야 읽도록 권장을 한다고 한다. 본문의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나라와 화친을 하며 우상을 들여와 섬긴 것에 대한 강한 비유와 질책이다. 즉 여호와 하나님을 외면하고 애굽, 앗수르, 바벨론 나라와 주변 나라를 의지하였음을 말한다. 이것에 대한 비유로 신랑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뒤로하고 이방남자들과 간음을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심판을 통하여 수치를 당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조상들에 대해서도 강하게 질책을 하신다. 즉 어머니가 그러하면 딸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속담을 말하는 자마다 네게 대하여 속담을 말하기를 어머니가 그러하면 딸도 그러하다 하리라”(겔 16:44) 무슨 말인가 하면 그들의 아버지는 아모리 사람이며, 어머니는 헷 사람이고, 형들은 사마리아 사람이고, 아우는 소돔 사람이라 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여호와와 상관이 없는 것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스라엘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행한 대로 보응의 심판을 한다. “나 주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네가 맹세를 멸시하여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내가 네 행한 대로 네게 행하리라”(겔 16:59)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를 생각하여 다시 영원한 언약을 세워서 돌아오게 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너의 어렸을 때에 너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겔 16:60) 이 말씀 속에는 이방 나라들이 이스라엘과 형제가 될 것이라 합니다. 이와 같은 일을 여호와 하나님이 언약을 세워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네게 내 언약을 세워 내가 여호와인 줄 네게 알게 하리니”(겔 16:62) 여러분 구원은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 4:6) 예수 그리스도가 빛으로 오셔서 그의 이름으로 구원 받은 자들을 빛의 자녀라 하셨다. 빛의 자녀들에게는 빛의 열매가 나타나야 한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 5:9)   빛의 자녀가 되어 어둠 가운데 서 있는 바울과 실라가 있다. 그들은 빌립보에서 귀신들린 여종을 고쳤다가 감옥에 갇힌다. 감옥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어두움과 죽음이다. 그곳에 바울과 실라가 빛과 소금으로 서 있다. 갑자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열리게 되었다.   이에 놀란 간수가 죄수들이 도망간 줄로 알고 자결을 하려 하였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그곳에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즉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으로 어둠 속에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정직과 진실함에 간수가 놀랐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당신들처럼 빛의 자녀가 될 수 있냐고 질문을 하였다. 그러자 바울이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행 16:31) 세례를 베풀어 주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바울과 실라가 어두움 가운데 빛으로 진실함을 나타냈습니다. 이것을 우리들에게 주시려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야 약속한 복을 받으며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신라의 착한 행실로 간수가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이 구원을 이루시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은혜의 도구로 쓰임을 받고 있다는 것이 성탄의 은혜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시 128:1) 복의 근원은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그 복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이다. 즉 새 언약을 통하여 주시기로 하셨는데 그 약속을 이루시기 위하여 성육신 하셨다.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셔서 약속한 구원을 시작하시는 것이 성탄절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주시는 복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게 하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을 수확하고 형통의 길을 가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정에 자녀 많이 얻는 다산의 복이 있으며, 자녀들은 아버지의 대를 잇는 믿음을 주신다. 이와 같은 복을 얻기 위해서는 여호와를 경외하여야 한다. 경외 한다는 것은 여호와의 말씀을 온 마음을 다하여 공경하며 뜻을 받드는 것을 말한다. 즉 생명과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여야 한다.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내셨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 4:6) 성탄절이 되면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한다. 그 이유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알 수 있는 빛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으면 영광과 빛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너희가 이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8) 이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된다. 이제 빛의 자녀가 되었다면 착한 행실을 하여야 한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 5:9) 그러면 복을 주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복을 받는 방식이 된다. 그러므로 복을 주시는지 아니 주시는지 시험하여 보라 한다.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엡 5:10)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한 복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는 것입니다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행 20:10) 바울이 드로아에서 설교를 할 때에 청년이 창에 걸터앉아 졸다가 삼 층에서 떨어졌다. 그 청년의 이름은 유두고 있다. 유두고의 이름은 ‘행복, 다행’이란 뜻이다. 그런데 그 청년이 삼 층에서 떨어졌을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였다. 바울이 설교를 하는 중에 청년이 떨어져 죽은 것이다.   그 청년이 떨어졌을 때에 사람들의 반응은 떠들고 있다. 그런데 바울이 외치기를 떠들지 말라 한다. 즉 죽은 청년을 보고 절망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향한 외침이다.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어찌하여 바울의 설교를 듣는데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냐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 홍해 바다에 이르렀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모세는 떠들고 있는 백성들에게 너희는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희를 구원하는 것을 보라 한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출 14:1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을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행 14:16) 하여 그대로 행하였더니 홍해가 갈라진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교회에 오면 하나님의 구원을 볼 수 있습니다. 죽은 자가 새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으로 확인하여야 하는 것은 설교 가운에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와 영혼을 살리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도 하나님의 능력을 간절히 구하였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 5:7) 설교나 기도를 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을 구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수풀 가운데에 있는 포도나무를 불에 던질 땔감이 되게 한 것 같이 내가 예루살렘 주민도 그같이 할지라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수풀 가운데에 있는 포도나무를 불에 던질 땔감이 되게 한 것 같이 내가 예루살렘 주민도 그같이 할지라”(겔 15:6) 이스라엘을 포도나무라 비유하였다. 포도나무의 특징은 건축 자재로 사용할 수 없고, 스스로 세울 수 없어 막대기에 붙잡아 매어야 성장할 수 있다. 오로지 열매를 맺기 위한 것으로, 열매를 많이 맺으면 농부가 기뻐하고 사람들에게 상큼한 즐거움을 준다. 즉 여호와께서는 이러한 목적을 갖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이다. 볼품이 없다고 함은 민족 가운데 가장 작은 민족이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신 7:7) 포도나무가 극상품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면 결국에는 불에 던질 땔감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에 불에 탈 것이라는 말씀이다. 이스라엘의 실패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하신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자신의 영광을 받으시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찌 됨이냐”(렘 2:21) 그런데 영광을 돌리지 못하게 되면 불에 던져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그의 계명을 지킴을 말합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 15:10)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막 9:41)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에 있을 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도 자녀는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에 있을 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도 자녀는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14:20)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내릴 것과 이방나라로 잡혀갈 것을 말씀하셨다. 그러시면서 피하는 자가 남아 돌아올 것이라 하셨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구원은 개인 구원이라는 것이다. 의인의 자식이라 할지라도 행한 대로 보응의 심판을 받아야 함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 택함을 받아 크게 쓰임을 받았던 노아, 다니엘, 욥의 자녀라 할지라도 자녀들이 구원을 받을 때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메시지를 전함으로 인하여 심판의 자리에는 누구도 피할 수 없음을 백성에게 전하려는 의도이다.   그리고 살아서 남아 돌아온 자를 봄으로 인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공의의 심판을 하심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너희가 그 행동과 소행을 볼 때에 그들에 의해 위로를 받고 내가 예루살렘에서 행한 모든 일이 이유 없이 한 것이 아닌 줄을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14:23)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구약의 역사를 통하여 배우는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좋아하시고 어떻게 심판을 하시며 어떠한 자들이 사랑하시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언제나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인자야 어는 이스라엘의 예언하는 선지자들에게 경고하여 예언하되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인자야 어는 이스라엘의 예언하는 선지자들에게 경고하여 예언하되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겔 13:2) 거짓 선지자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것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한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어리석은 선지자들에게 화가 있을진저”(겔 13;3) 그리고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은 없고 예루살렘은 평강할 것이라는 거짓이다. “이렇게 칠 것은 그들이 내 백성을 유혹하여 평강이 없으니 평강이 있다 함이라 어떤 사람이 담을 쌓을 때에 그들이 회칠을 하는도다”(겔 13:10) 회칠을 한다는 것은 질이 낮은 재료를 써서 고급스럽게 보이게 하기 위함이다. 즉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는 하나님 앞에 회개를 하여야 하는데 오히려 믿음이 좋다라고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거짓 선지자들이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함이다. “너희가 두어 움큼 보리와 두어 조각 떡을 위하여 나를 내 백성 가운데에서 욕되게 하여 거짓말을 곧이 듣는 내 백성에게 너희가 거짓말을 지어내어 죽지 아니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 못할 영혼을 살리는도다”(겔 13:19) 거짓 선지자들은 제3계명인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하는 말씀에 위배가 된다. 즉 여호와의 말씀을 거짓으로 드높이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거짓으로 전하는 것은 계명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은 거짓이 됨을 말합니다. 그래서 신자들에게 권고하기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하라 하십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벧전 4:11상)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생각이 아닌 자신의 생각으로 말하는 것은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어리석은 선지자들에게 화가 있을진저”(겔 13;3) 그리고 그러한 자는 반드시 저주의 심판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말이 하나도 다시 더디지 아니할지니 내가 한 말이 이루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말이 하나도 다시 더디지 아니할지니 내가 한 말이 이루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겔 12;28) 에스겔 12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 갈 것을 예고하는 말씀이다. 여호와께서 에스겔에게 포로의 행장을 꾸려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백성들에게 보이라 하신다. 낮에 행장을 꾸려 밤에 성벽을 뚫고 어둠 가운데로 가라는 것이다. 이것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 대한 묵시라 하셨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가 하나님이 여호와인 줄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내가 그들을 이방인 가운데로 흩으며 여러 나라 가운데에 헤친 후에야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겔 12:15)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어서 이루시고자 하는 계획이 있다. 그것은 모든 이방인들에게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이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 19:6) 그런데 언약을 맺은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지 않는다. 순종하지 않는 백성들에게 고난을 통하여 깨닫게 하여 여호와인줄 알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회개하지 않는 백성에게 주는 징계가 포로로 잡혀가는 것입니다. 포로로 잡혀가게 하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의지하였던 우상의 나라로 보냅니다. 그곳에서 고통을 당할 때에 우상에게 빌고 제사를 드려 구원을 얻어 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칠십 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지만 이방신들의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약속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사 포로에서 돌아오게 됩니다. 포로에서 돌아올 때에 이스라엘이 한 것이 없습니다. 전적인 여호와의 은혜로 말미암아 돌아왔습니다. 이것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포로로 보내는 하나님의 애끓는 사랑입니다. 여호와께서 마음이 아프시지만 택한 백성들을 회개케 하기 위해서 이 방식을 결정하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시 127:1) 시편 127편은 솔로몬의 시이다. 솔로몬은 자신을 전도자하며 전도서를 기록하였다. 그 책의 말씀은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되도다‘로 시작을 한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도 ’헛되며 헛되도다 헛되도다’가 등장을 한다. 즉 하늘 아래의 것들에 욕심과 소유하여 만족과 기쁨을 얻으려는 어리석음을 대하여 말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이나 지금의 사람이나 재물, 장수, 자녀에 대한 욕망이 이루어지는 것을 복이라 한다. 그 부분에 대하여 솔로몬이 그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를 증거하고 있다. 솔로몬은 지성의 욕구, 쾌락의 욕구, 물질의 욕구에 대하여 최고의 정점을 찍은 사람이다. 그는 잠언은 삼천 가지이고 노래를 천다섯 편이나 지었고, 자연에 있는 식물 동물 물고기에 대하여 박식하였고, 육체의 쾌락을 위하여 각종 산해진미와 많은 처첩을 두었고, 무역업을 하며 많은 금은을 벌었다. 그런데 그러한 것들이 헛되다는 것이다. 헛되다고 함은 바람을 잡으려 하는 것과 같음을 말한다. 즉 잡을 수도 없으며 채울 수 없는 허망한 것이라 한다. 그가 그렇게 많은 재물을 모았지만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기에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장수의 복을 누리며 살지만 늙으면 입맛이 없고 눈도 어두워지고 허리도 굽어져 인생을 사는 것이 고통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자식을 두었지만 형제들끼리 죽이고 못된 짓만 하며 심지어 아들이 백 명이나 되지만 정작 장례를 치루어 주지도 않음을 보았다. “사람이 비록 백 명의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그의 영혼은 그러한 행복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또 그가 안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그보다는 낫다 하나니”(전 6:3)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솔로몬의 믿음의 간증은 해 아래와 해 위로 나뉘는 것입니다.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시 127:2)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지 아니하면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이다. 헛되다는 것은 만족함이 없고 기쁨이 없음을 말한다. 시편의 기자인 솔로몬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지혜를 사용하였다. “은 금과 왕들이 소유한 보배와 여러 지방의 보배를 나를 위하여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들과 인생들이 기뻐하는 처첩들을 많이 두었노라”(전 2:8) 그 결과 모든 것이 헛됨을 알게 되었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 헛된 것이라 함은 해 아래에 있는 것으로 만족과 기쁨을 얻으려 하는 것이다.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전 1:14) 그렇다면 해 아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무엇으로 기쁨을 누려야 하는가? 즉 솔로몬이 증거하는 땅 위에서의 기쁨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음식물을 나누고 함께 사는 것이다.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전 9:9) 여호와께서 이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그래서 아버지가 되셔서 자녀에게 생명을 위하여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신다. 그리고 몸을 위하여 입을 옷을 주신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마 6:25) 그런데 이러한 복을 받을 수 있는 자들은 여호와께서 사랑하는 자들에게 주신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행 19:26) 우상의 도시 에베소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전해 졌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복음이 전해진 후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즉 아데미 신전을 다니던 자들이 에베소 교회에 출석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은장색 우상 장수들의 영업에 큰 타격을 입었다. 그래서 동종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궐기 대회를 연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얻은 사람은 하나님의 영생을 얻은 자가 되었다. 그래서 세상이 썩어 없어질 허무한 것으로부터 멀리 떠나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엡 4:17) 하나님의 생명을 얻은 자들은 인생의 무지함과 허무함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그것에 대표적인 것이 우상을 섬기는 것이다. 우상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다. 우상을 섬기는 무지와 허무함이란? 입모양을 갖고 있지만 말을 못하고, 손이 있어도 움직이지 못함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왜 우상 앞에서 절을 하는가? 내 마음에 욕심을 이루기 위함이다. 이러한 행위는 우상 앞에 있는 자의 수준이라는 것이다.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시 115:8) 듣지 못하는 돌 앞에서 소원을 빌고 있는 어리석음이다. 이러한 일이 에베소에서 일어나 궐기모임을 갖고 서기장에게 고발을 한다. 그러나 책망 받을 일이 없다하여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야 인생의 허무함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자가 됩니다. 그래서 진리를 따르고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는 것은 우주만물의 지혜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썩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가치를 추구합니다. 구원을 얻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겔 11:19)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시는 이유를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너희가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며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 사방에 있는 이방인의 규례대로 행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라”(겔 11:12) 즉 여호와와 맺은 언약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심판을 하시고 이방 나라로 흩어지게 한 후에 다시 돌아오게 한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이방신들 앞에서 너희의 처지를 아뢰어 해결하여 보라는 것이다. 포로 생활을 통하여 깨닫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언약을 맺은 백성들을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고치어서 새롭게 하여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게 한다.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들에게 복을 주신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겔 11:19)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주신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기 위한 목적이다.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겔 11:20)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불 태우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성전을 건축하기 위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전이 되시는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의 몸된 교회로 들어오게 되면 성령이 임하여 돌 같은 마음이 제거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며 순종하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가 그분의 백성이 되며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