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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거짓과 음모가 판을 치고 있는 세상을 바라보면 깊은 한숨만 나온다 . 깊은 한숨이 잦아지다가 보면 낙심이 되어 사기가 떨어지게 된다 .   세상을 올바로 바라볼 수 있는 시기는 삶의 육십 줄이 넘어야 된다고 생각된다 . 노동력에서 제외되고 , 몸도 쇠퇴해지고 ,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떠나가는 시기이다 .   자신을 돌아봐도 그렇고 세상을 바라봐도 그렇다는 생각이다 . 외로움과 쓸쓸함이다 .   이러한 문제가 당면하였을 때에 해결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 술이나 약물을 통하여 고통을 잊으려 하기 보다는 내면의 외로움을 새로운 기쁨으로 채워야 한다 .   내 마음의 눈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 죽음과 고통이라는 가치관으로 바라보면 절망만이 보인다 . 그러나 고난과 고통을 넘으면 새로운 세계가 있음을 깨닫게 되면 소망이 생기게 된다 .   가치관의 차이는 누구나 절망과 고통 속에 살지만 그 속에서 무엇을 바라보며 사는가에 대한 차이이다 . 고통과 죽음을 넘으면 영생의 세계가 있는데 그것을 지금부터 누리며 사는 것이 소망의 믿음이다 .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 생명수 ’ 라 한다 . 천국에도 길 가운데로 생명수의 강이 흐르고 생명나무의 열매가 풍성하다 . 즉 , 영생의 기쁨이 충만한 곳이란 말이다 .   생명수의 기쁨을 누리고 싶다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살면 된다 . 그러면 이전에 느끼지 못하였던 기쁨과 희열을 느낄 것이다 .   하나님의 말씀은 암기를 하거나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 행하여야 구원의 기쁨을 얻는다 .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한다 .   “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 요 7:38)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니라

’ 영적전쟁 ‘ 은 참 신자들만 이해할 수 있는 단어이다 . 영적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 하나님 말씀의 전신갑주 ‘ 를 입어야 한다 .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 교회 안에는 하나님의 의가 아닌 인간의 생각을 가진 자들과 싸움을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   하나님의 전심갑주는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다 . 여섯 가지의 전투장비가 인간의 것이 아니다 . 즉 , 하나님의 선하심을 입어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인간의 생각과 싸워야함을 말하는 것이다 .   그래서 영적전쟁을 선과 악의 싸움이요 , 진실과 거짓의 싸움이라 한다 . 오직 선한 것은 하나님에게만 있다 . 타락한 인간들로부터 나오는 것은 거짓이다 .   독수리가 떠 있는 곳에는 썩은 시체가 있다 . 세상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는 거짓과 살인을 위한 음모가 있다 .   오늘도 우리들은 입으로 여러 인간을 죽였다 . 내 썩은 마음에 여러 인간을 말로 죽이지 않고는 내가 죽을 것은 같은 심정이었다 . 그 인간들을 말로 살인을 한 후에야 내 마음이 편하여졌다 .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음으로 악함과 부패한 마음을 다스릴 수 있고 죄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다 .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에서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 모든 죄는 거짓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   교회 안에서 거짓말하는 자는 누구인가 ? 하나님의 생각이 아닌 인간의 생각으로 말하고 주장하는 자이다 . 이러한 자들은 결국에는 교회 안에 거짓말을 잔뜩 퍼트려 놓고 급히 떠나며 이 교회 저 교회로 옮겨 다니는 특징이 있다 .   “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니라 ”( 마 24:28)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참된 신자가 되면 거룩한 인격체가 된다 . 생각하는 것이나 감정을 억제하는 자제력이 뛰어나며 의로운 행동을 하는 자가 된다 .   교회 안에는 이러한 사람들이 있고 이것을 훈련하는 곳이다 . 그런데 신자라고하면서 교회 안에서 상처를 너무나 많이 받았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하고 받기도 하는 곳이다 . 그런데 이기적인 사람들은 자기가 상처받은 것만을 기억하지 남에게 상처를 준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   이기적인 사람들의 특징은 본인 스스로가 의롭다고 생각을 하는 자들이다 . 자기 말이 법이고 의롭다고 생각을 한다 . 그래서 자기의 말에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자기를 공격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   그런데 이렇게 약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 안에 많이 있다는 것이다 . 성경의 가르침은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여 타인이 주는 상처를 오히려 이기는 힘을 배우는 곳이다 .   성경의 가르침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가르치는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이 주는 고난을 어떻게 이겼는지를 증언하고 있다 . 항상 성령께서 함께 하심으로 인한 승리이다 .   아버지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가시는 곳마다 함께 하셨고 , 성령도 함께 하셨다 . 이것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장면이 성경에 있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영광을 우리에게도 주셨다 . 우리들의 일상의 삶에서도 삼위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 그러므로 교회의 가르침은 삼위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확신을 전하여야 한다 . 이것이 성경적인 교회임을 생각하여야 한다 .   “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 요 17:23)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할까 생각하지 말라 너희를 고발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가 바라는 자 모세니라

하나님께서 택함을 받은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셨다 . 하나님의 은혜에는 언약은혜와 행위언약이 함께하고 있다 .   쉽게 말하면 애굽 땅에서 그들을 구원하고 행위언약인 율법을 주셨다는 것이다 .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은 ’ 믿으면 살고 , 행하면 사는 ‘ 은혜이다 .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으로는 “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이다 . 야고보서 기자의 주장으로는 ’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 ‘ 이라 하였다 .   천박한 복음주의자들의 주장은 은혜와 율법을 대립시켜서 설명을 해왔다 . 그러나 그렇지 않다 . 은혜로 구원함을 받은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   사도요한은 요한 1 서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는다고 선포를 하였다 .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는 모세가 고발을 한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 그의 계명을 지키지 못한 자들은 언제든지 우리의 중보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나가면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은혜의 보호 약속을 갖고 있다 .   하나님은 율법의 근본정신과 제도를 세상에 펼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이다 . 그의 나라는 정의로운 시민들을 세우고 사회 정의를 실천함으로 인하여 평강과 긍휼이 넘치는 곳이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흘려 세우신 몸된 교회는 율법을 배우고 순종을 배워서 사회정의를 위하여 힘써야 한다 .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 하나님의 열심이다 .   ”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할까 생각하지 말라 너희를 고발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가 바라는 자 모세니라 “( 요 5:45)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참 신자들의 소망은 ‘ 하나님의 안식 ’ 에 참여하는 것이다 . 하나님의 안식이란 ?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 . 그리고 더 나아가 불신을 하고 하나님께 대항을 하였다 .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마음이 편치 않으셨다 . 그래서 하나님이 안식을 취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이다 .   구속의 은혜는 죄에서 방황하고 고통받고 있는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해 주시기 위함이다 . 또한 하나님은 스스로 안식을 위하시는 방식이다 .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과 더불어 평안을 누리는 자가 된 것이다 .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근심케 하는 자들이다 . 누가복음 15 장에서 등장하는 탕자와 같다 . 아버지는 방황하고 고생하는 아들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다 .   그 아들이 돌아오기를 날마다 상거 밖에서 기다린다 . 탕자가 집에 돌아온 후에 아버지는 기쁘고 즐거워서 잔치를 베푼다 .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마음을 근심하신다 . 또한 성령은 탄식을 하신다 . 계명을 지키지 못함을 보고 성령께서 안타까워하신다는 것이다 .   ‘ 하나님의 안식 ’ 에 참여한 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므로 인하여 성부 , 성자 , 성령하나님을 기쁘게 한다 . 그러므로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복이 임하는 것이다 .   성읍에서도 들에서도 복을 받고 , 너와 자손들과 종들과 집에서 기르는 가축들에게도 복이 임하고 , 광주리도 떡반죽 그릇도 복을 받고 ,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는 것이다 . 이것이 ‘ 하나님의 안식 ’ 에 참여한 자들의 복이다 .   “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신자들이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 이것은 우리가 구원의 은혜에 대하여 아무런 공로가 없음을 인정하는 고백이다 .   ‘ 이신칭의 ’ 하나님의 의를 전가 받아 의롭게 되었다함을 말한다 . 이 은혜 속에는 은혜언약과 행위언약이 함께 있음을 기억하여야 한다 .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구원되어 시내산 앞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는다 . 구원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야 언약백성이 된다는 것이다 .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 성령을 통하여 역사하신다 . 성령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신다 . 우리 육체의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는 것이다 . 부드러운 마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마음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 안에 있는 자들은 성령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다 . 그러므로 하나님을 말씀을 깨닫고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리로 나아가게 된다 .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하나님의 약속인 “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 는 은혜를 받게 되는 것이다 . 이 말씀을 요한계시록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   “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 계 21:7)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 동상이몽 ’ 같은 행동을 하면서 속생각은 다른 것을 말한다 . 요즘 TV 대담 프로를 보면 같은 시대에 살고 있지만 속생각은 너무나 다름을 느끼게 된다 .   교회 안에도 같은 현상이다 . 같은 성경을 보면서도 , 한 주님을 믿으면서도 너무도 생각과 행동이 다르다 .   교회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 부자가 되기 위해서 , 성공을 위하여 , 사회적 지위를 위하여 또는 마음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 그런데 주님께 의지하고 있다는 것은 공통점이다 .   이러한 형상은 초대교회 안에도 있었던 현상이다 . 교회 안에서 저마다 큰 소리를 치고 있다 . 그래서 사도들은 서신서를 보냈다 .   교회 안에 참신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이다 . 만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았으면 우리의 중보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나가면 된다고 하였다 .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명으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더 나아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구원을 받지 못한 자라고 하였다 . 얼마나 무섭고 떨리는 말씀인가 ?   지금의 신자들 가운데 하나님의 계명과 상관이 없이 믿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 교회 안에 있지만 주님을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다른 것이 지상의 교회의 모습이다 .   “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 요일 3:24)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무속신앙 특징 가운데 하나가 , 신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즉 복채를 많이 내면 신들이 춤을 춘다는 생각이다 .   교회 안에도 무속신앙을 소유한 자가 있다 . 그래서 하나님을 자기의 마음대로 움직이려 하고 목사를 가르치려 한다 .   이러한 사람들은 목사를 찾아오지 않는다 . 자기 사업터나 집으로 오게 한다 . 그리고 자기의 생각으로 질책과 훈계를 한다 . 그리고는 봉투를 내민다 .   봉투 받는 것에 재미가 든 자들은 오히려 때를 기다린다 . 무슨 소리인들 어떠하랴 돈이 최고라는 본심을 드러낸다 .   무속신앙을 가진 자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 . 저들은 자신을 신이라 생각을 하는 아주 교만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   교회와 목사들은 이러한 자들에게 길들여져 왔다 . 이제는 정신을 차리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쳐야 한다 .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죄를 속량하여 주시고 성령을 주셔서 우리의 속사람을 새롭게 하여 주셨다 .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자는 새로운 사람이며 새로운 존재이다 .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함은 옛날 구습을 쫓아 섬기던 신들을 다 쓰레기통에 버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옴을 말하는 것이다 . 그런데 아직도 무속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긴다면 심각하게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   “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 고후 5:17)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신자들이여 !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고 난 후에 죄를 지으면 징계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시다 . 하나님의 약속은 “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라 ” 는 것이다 .   이 언약의 1 차적 당사자는 이스라엘백성이다 .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우상숭배를 하고 사회정의를 세우지 않아서 징계의 벌을 받았다 . 징계의 벌도 신명기 28 장의 저주의 약속의 내용으로 받았다 .   하나님의 약속은 지금도 동일하시다 . 하나님의 계명에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똑같이 징계의 매가 임하는 것이다 .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 우편에 계시게 하셨다 . 그 이유는 죄지은 자들의 대제사장이 되셔서 언제나 하나님께로부터 죄의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은혜의 제도를 주신 것이다 .   또한 죄에 대한 심판을 유보하시는 이유는 죄인들이 회개하고 용서받을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주시기 때문이다 .   죄인들이여 ! 용서의 은혜의 자리로 나오라 . 그렇지 아니하면 언약의 약속인 저주의 심판의 내용대로 징계가 임할 것이다 .   한국교회나 이민교회 교인들은 죄에 대하여 무서워하지 않는다 . 그 이유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내용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 즉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모른다는 것이다 .   “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 신 28:15)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신자들 가운데 참으로 웃기는 사람들이 있다 . 무속신앙이 마음 속 깊이 뿌리를 박고 있어서 오로지 물질에만 관심이 있는 자들이다 .   그 사람들의 복의 기준은 돈이다 . 돈이 모이면 복이고 , 돈벌이가 안 되면 기도와 정성이 필요하단다 . 헌금을 무당 앞에 드리는 복채로 생각을 한다 .   이러한 사람들의 탐심이 얼마나 웃기는지 말하려 한다 . 자기는 부자가 되게 해 달란다 . 그러면서 목사는 금식도 자주하고 청렴하게 살아야 하기 때문에 적은 돈으로도 살 수 있다고 한다 .   왜 그들은 돈을 모으려 하는가 ? 신이 되려함이다 . 자신이 신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듯이 사람들이 자신 앞에서 조아리길 원하는 것이다 . 목사도 자기 앞에 머리를 숙이라는 못된 심보이다 .   그리고 스스로 신이 되어서 사람들에게 명령을 하고 , 심지어는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를 대적하는 자가 된다 .   서신서에서는 돈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말씀하셨고 , 돈을 좋아하는 자에 대한 경계가 있다 . 결론적으로 돈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   그런데도 돈돈하며 교회에서 믿음의 생활을 하려 한다면 심각한 현상이 초래할 것이다 .   “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 딤전 6:17)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I

필자는 목회 사역을 통하여 한국교회와 이민교회에 깊이 박혀 있는 고질병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 그것은 바로 무속신앙이다 .   하나님을 섬기는데 무속신을 섬기던 습관으로 나아온다 . 특히 새벽예배에는 말씀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신의 탐심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한다 .   믿음이 성장하는 신자들의 특징은 감사와 찬양의 자리로 날마다 나아간다는 것이다 . 자기의 탐심이나 욕구를 위한 것이 아니다 .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는 나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임한 것을 깨닫는 것이다 . 그분께서 나를 향한 애끓는 사랑과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을 아는 것이 믿음이다 .   마치 부모가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걸음마를 훈련시키면서 갖는 마음이다 . 빨리 걸음마를 배워서 걷고 뛰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그리고 아이가 빨리 성장을 하도록 모든 것으로 희생하는 것처럼 말이다 .   성숙한 사람은 부모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고 , 성숙한 신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다 . 그런데 하나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달라고 징징거린다 . 감사와 찬양은 찾을 수가 없다 .   얼마만큼 소유해야 행복한가 ? 인간의 욕심을 채울 수가 없다 . 그래서 행복을 위하여 청렴을 강조하는 현인들도 있다 . 새벽예배에 나오는 사람치고 청렴하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이 과연있을까 질문을 한다면 글쎄요 할 수밖에 없다 .   영혼이 죄로 인하여 끙끙 앓고 있는데 돈돈하고 있다 . 그래서 돈이 생기면 술집으로 카지노로 향하여 스트레스를 푼다고 한다 . 돈 주시면 스트레스를 범죄의 소굴에 가서 해결하겠다는 심보이다 .   신자들이여 !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영혼을 구원하러 오심을 바로 인식하여야 한다 . 영혼이 구원을 받아야 건전한 정신과 육체로 살아갈 수 있다 .   당신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 . 그리고 예수 그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는 언제든지 문제가 생긴다 . 당연한 일이다 . 왜냐하면 인간은 죄성의 분노와 감정이 풍만하기 때문이다 .   특히 한국 사람들은 모든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는 특성을 갖고 있다 . 그래서 어디든지 집단을 형성하여 세력의 힘으로 작용한다 .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 교회의 분쟁은 정치적으로 해결을 하면 반드시 갈라서게 되어 있다 . 정치적 해결이라는 것은 권력 , 돈 , 거짓선동이 동원되는 것을 말한다 .   신자들은 서로 시기하고 분노하는 갈라진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에 맞추어야 한다 . 해결을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각과 마음에 맞추는 길이 유일한 방법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한 마음을 본받지 아니하고 오만하고 교만한 자에게는 징계의 벌이 임한다 . 왜냐하면 신자들의 믿음은 약속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   축복과 저주도 약속 안에 포함되어 있다 .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분열시키거나 대적하는 자는 약속의 내용대로 징계의 벌을 받음을 기억하여야 한다 .   어떻게 언약을 맺었냐구요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피를 뿌리고 약속을 하셨고 , 신자들은 세례를 통하여 언약을 맺은 것이다 .   세례를 받았다고 모두 구원을 받은 것은 아니다 . 왜냐하면 거짓 신앙고백으로 세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은 확실한 증거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리로 나간다는 것이다 . 만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않은 자라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   “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 요일 2:3-4)   교회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는 관심조차도 없는 가라지들이 너무나 많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셔서 언약을 맺으셨다 . ‘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 는 약속이었다 .   이 약속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야만 약속의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다 .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언약을 파기하였다 . 파기하셨다함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   이것이 하나님에게는 한 ( 恨 ) 이 맺힌 것이다 . 그래서 하나님의 율법을 반드시 지키기 위하여 새 언약을 주신 것이다 . 새 언약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이다 .   하나님의 새 언약을 이루시는 방식은 이러한다 . 죄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이 씻으신 다음에 새 영을 넣어 주시는 것이다 .   새 언약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새 사람이며 새 마음으로 바뀐 존재가 된다 . 죄인을 새로운 존재로 만들어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자로 만드신 것이다 .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야 한다 . 그런데 우리 주변을 돌아볼 때에 새 언약과 상관이 없는 다른 복음을 따르는 자들이 너무나 많다 .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자 , 품안에 있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언약을 파괴한 자들을 위하고 이방인들을 위하여 보내신 것이다 .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   하나님의 사랑은 죄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하셔서 말씀에 순종하게 하여 복을 주시려는 것이다 .   “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렘 31:33)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I)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이시다 . 또한 의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 의를 요구하신다는 것은 의로운 자와 교제를 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   의로우신 하나님이 의로움을 받으시기 위해서는 먼저 죄인들을 의롭게 하셔야 한다 . 그래서 의롭다 하심을 찬양 받으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신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의 속량의 은혜를 받은 자들은 의로운 자가 되었다 . 이 의로움의 은혜를 받은 자만이 의로우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 .   의로우신 하나님은 의롭게 됨을 받은 자들만 상대하신다 . 하나님의 의로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전가하여 주신다 .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를 받은 자는 그의 의를 구하는 자리로 나가게 된다 .   의롭게 된 자가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를 할 수 있다 . 교제의 관계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 그의 계명을 지키므로 하나님의 의를 세상에 드러낸다 . 그래서 우리를 “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 라고 말씀하셨다 .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찬양하는 것이 되며 , 빛으로 세상을 밝히는 것이 된다 .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하나님께서 이루시려는 구원의 궁극적인 목적은 의로운 나라를 완성하는 것이다 . 의로운 나라는 모든 불의가 심판을 받고 새롭게 창조되는 하나님의 나라인 것이다 .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세상을 의로 다스리고 계신다 . 하나님의 의는 자비하심으로 나타난다 . 하나님의 자비하심이란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자에게 베풀어 주시는 긍휼이다 .   즉 , 소외되고 버림받은 자들에게 다가오셔서 동정을 베푸시는 것이다 . 이와 같은 측면에서 사회의 공의를 실천하라고 하셨다 .   사회의 관리들은 지위와 권력을 이용하여 부를 축척하고 임금을 착취하는 악한 행위를 하였다 .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로운 세상은 관리들이 자기의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사회를 원하시는 것이다 .   이것에 대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이러한 곳이라고 은유로 말씀하신다 . “ 그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 끌리며 ”( 사 11:6)   이 말씀을 생각하면 , 힘이 있는 자와 약한 자가 함께 먹고 마시며 뒹굴고 있다는 것이다 . 권세 가진 자나 약한 자나 서로 공격하며 물고 뜯고 하는 사회가 아니라 서로서로를 함께 하는 사회가 됨을 말한다 .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이 땅에서 이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 이러한 삶을 사는 공동체가 사랑의 공동체인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인 것이다 .   하나님의 의가 실현되는 교회가 되어야 하는데 자기의 탐욕의 욕심을 이루려는 사람들도 있다 . 자기의 욕심을 이루려는 사람들은 바알 신을 찾아가야 한다 .   그러나 의로운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여야 한다 .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 사 11:5) 고 하셨다 .   공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