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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본질을 다시 확인하고 삶으로 증거하고자 하는데 그 의미를 두고 있다 . 그래서 본질을 찾기 위해서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나 교회들이 본질에 근거하여 설교를 하는지 또는 성경공부를 하는지를 생각하여 보아야 한다 .   기독교의 가르침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든 것이 있다 .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났기 때문이다 . 그래서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아버지에게로 갈 수 있다 .   그렇다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무엇을 위하여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는가 하는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을 통하여 거룩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기를 “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 하신 말씀이 있다 .   거룩하신 하나님이 거룩한 백성을 만들기 위하여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이다 . 아버지는 택한 자들을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 죄사함이 필요하다 . 그래서 우리의 죄를 예수님이 속량하신 사건이 십자가의 죽으심이다 .   또한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도 택한 자들을 의롭게 하기 위함이다 . 그리고 하늘에 오르시고 하나님 우편에 낮아 계신다 . 중보자로서 우리를 의롭게 하기 위하여 대언자로 계신 것이다 . 또한 성령을 보내주시고 거룩함으로 나아가게 하신다 . 이 모든 것이 거룩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   거룩함이란 , 택함을 받기 이전의 삶과 다르다 . 즉 새롭게 된 자로서의 삶이 된다 . 하지만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자들은 이전의 삶과 지금의 삶에 구분이 없다 .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 그 이유는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   바리새인들은 잔과 대접과 겉만 번지르르한 자였다 . 하지만 속은 악한 생각으로 가득한 자들이었다 . 그래서 주님이 책망을 하셨다 . 너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자기 잘난 맛에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다 . 이런 자랑하는 사람들이다 . 자기가 다니는 교회가 최고라고 하든지 , 자기의 담임목사 만큼 훌륭한 사람이 없다고 하는 자들이다 . 이 자랑은 결국 자기도 탁월한 식견이 있어서 택하고 섬기고 있다는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다 .   더 나아가서는 ‘ 자아도취 ’ 에 빠진 자들이다 . 성경을 수십 번을 통독하였고 목사보다도 더 많이 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다 . 그래서 목사의 설교를 화답하기 보다는 늘 비판한다 . 그리고 목사를 가르치려 한다 .   그런 사람들은 성경을 읽었지만 성경이 주는 유익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한다 . 성경을 대할 때에 학문을 대하듯이 지식과 열정으로 또는 호기심으로 할 수 있다 . 그래서 누구나 한번 이상은 성경책을 들추어 봤을 것이다 .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읽는 것이 아니다 . 하나님께 대한 의식과 영적인 깨우침에 대한 열망으로 읽어야 한다 . 특히 신약성경의 주제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영생을 얻음으로 인한 기쁨과 소망이다 . 그러니 성경을 많이 읽으면 천국의 신비로움을 더 많이 깨닫게 된다 .   그리스도로 인한 기쁨으로 인하여 늘 감사와 영광의 자리로 나가게 된다 . 이것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신자의 특권이다 .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께 사랑 받는 자가 되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나타내시며 영광을 나타내신다 .   그러니 긴 말이 필요없다 . 하나님이 사랑하는 교회요 , 하나님이 사랑하는 목사라면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이 나타나야 한다 . 생명이 자라나는 기쁨이다 . 이웃을 비판하는 자랑이 아니다 . 참소하는 자의 즐거움이 아니다 . 생명을 얻은 자체로서의 기쁨이다 . 그리고 열매를 맺게 된다 .   좋은 교회 , 훌륭한 목사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 내가 영생을 소유한 자로서 기쁨을 누려야 한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기독교의 교리와 윤리의 실종으로 인하여 이제는 평신도의 도덕적 타락은 더 이상 화제 거리가 아니다 . 지금은 단연코 목사들의 행실이 그 대상이다 . 잊을만하면 한 건씩 터지곤 한다 . 그러다보니 당연히 말도 많음은 물론이고 해악을 끼치고 있다 .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든 문제를 성경적인 방법으로 풀어야 한다 . 격언에 “ 반신반의 “ 라는 말이 있다 . 그 뜻은 한편으로는 믿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불신하는 것을 말한다 . 목사들의 도덕 및 윤리적인 타락이 있으면 두 편으로 갈라선다 . 비방하는 쪽이 있고 , 옹호하는 쪽이 있다 .   그리스도인들은 진리를 지키되 죄를 용서하는 입장을 취하여야 한다 . 즉 하나님의 말씀이 잣대가 되어 진리는 외치되 사랑을 베풀라는 것이다 . 왜냐하면 판단하는 나도 그와 같은 죄를 지을 수 있는 연약한 육체를 가졌기 때문이다 .   신학적인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 서신서를 보면 바른 교훈과 다른 교훈이 있다 . 이미 초대 교회에도 다른 교훈을 들고 가르치고 외치는 자들이 있었다 . 왜 서신서에서 이단에 대한 경계와 부활의 능력을 강조하는가 생각해보아야 한다 .   세상이라는 곳은 사탄이 공중권세를 잡고 있다 . 왜 이곳에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을 하셔야 했는가 , 깊이 생각하여야 한다 . 성경은 끊임없이 사망의 능력을 말하고 있다 , 이것은 어떤 사람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 삼일 만에 부활하시므로 인하여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 사망과 지옥과 사탄을 모두 정복한 것이다 .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과 연합의 교리로 인하여 더 이상 마귀에게 종노릇하지 않게 되었다 . 이것은 좋은 소식 , 복음이다 .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신 것이다 . 생명을 공급하여 주시고 기쁨을 충만케 주시는 은혜이다 . 우리는 사도 바울의 삶을 통하여 복음이 주는 능력과 기쁨을 알 수 있다 . 그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지금 이 땅 위에 천박한 ( 얇고 어설픈 지식 ) 기독교인들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고 있다 . 하나님을 알고 있는 수준이 마귀들이 알고 있는 수준이다 . “ 눈 앞에 계신 하나님 ” 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마귀이다 . 마귀는 하나님이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심과 죄의 책임에 대한 심판이 있음을 모르는 자들이다 .   천박한 자들의 특징이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없이 가볍게 외친다는 것이다 . 성경적인 영광은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과 경건의 두려움이 생긴다는 것이다 . 그리고 영광이 나타나면 본인뿐만 아니라 주위의 모든 사람도 알아 볼 수 있다 .   그런데 천박한 자들은 오히려 교만의 자리로 나아간다 . 정죄와 심판을 한다 . 옳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바른 소리하다가 오히려 상처를 받기도 한다 . 이러한 자들이 교회 안에 가득하니 분쟁이 그칠 날이 없다 .   천박한 자들은 성령충만과 카타르시스 , 자아도취를 구분하지 못한다 . 성령 충만을 받으면 인격이 변한다 . 새로운 찬양의 시를 지어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의 자리로 나아감은 물론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 . 반면에 카타르시스라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위로 또는 안도감을 갖게 하는 것이고 , 속에 있는 응어리 진 것들을 밖으로 토해냄으로 오는 시원한 기분이다 .   또한 자아도취가 있다 . 스스로 자기 잘난 맛에 빠져서 흥에 겨운 것이다 . 소위 믿음이 세다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이다 . 주변에 나 말고 더 믿음이 큰 자가 없다고 할 때에 나타나는 교만이다 . 그렇다면 천박한 기독교인들이 무엇을 들고 자랑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을 가는 야곱이 있다 . 벧엘에서 여호와의 사자들을 만났다 . 그의 고백은 이러했다 . “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 야곱은 하나님의 영광을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II

  누구나 한번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고백을 해보기도 하고 받아보기도 했을 것이다 . 그런데 사랑고백을 할 때에는 , 고백과 함께 기념이 될 만한 선물도 함께 하여야 한다 . 만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진심이 통하지 않는다 . 아니면 멋있는 장소에게 이벤트를 통하여 사랑을 전하기도 한다 .   세상이 그러다보니 생각없는 자들이 세상의 것을 교회 안으로 들고 왔다 . 이것을 세속적인 방법이라 한다 .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 그리고 사랑의 고백은 악기가 동원되어야 하고 신명나는 가운데 드리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을 한다 .   그러다보니 맨 정신으로는 하나님께 사랑의 고백도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 “ 자아도취 ” 되어 스스로 황홀한 상태로 몰입 되어야만 할 수 있다 . “ 도취 ” 란 술이 거나하게 취한 상태를 말한다 . 그러니 기도를 하였지만 어떤 기도를 , 무엇을 위하여 , 왜 하였는지도 모른다 . 그래서 자아도취란 “ 자기 멋에 스스로 빠져서 흥에 겨운 것을 ” 말하는 것이다 .   그런데 우리 주님의 가르침을 보면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는데 ,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 목숨을 다하고 , 뜻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하셨다 . 이 주님의 가르침 속에는 그냥 즉흥적으로 감정이 고조되어서 하는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   마음을 다하여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 몸의 깊고 비밀스러운 곳에서부터 하나님을 생각하고 마음으로 동의하고 예의를 갖추고 겸손한 자세로 섬기는 것을 말한다 . 그리고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하셨다 . 그 하나님의 사랑을 위하여 나의 생명을 바꿀 수 있는가 하는 자리까지 나아가 확인하라는 것이다 . 그리고 하나님이 뜻하시고 원하시는 방법으로 나아가야 한다 .   즉 ,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와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는 먼저 ,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알고 나아가야 한다 . 그리고 그분이 내게 어떤 영광을 나타내셨는지를 살펴보고 그 은혜에 감동이 되어 감사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요즘 교회에서 청년들이 떠나고 있다고 한다 . 그나마 남아있는 청년들도 열정이 식었다 . 우리는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데 있어서 깊은 성찰을 하여야 한다 . 왜냐하면 그들은 인생의 문제에 있어서의 고민을 다른 곳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 그들의 고민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있다 . 취직 , 결혼 , 출산의 문제가 커다란 장벽으로 서 있다 . 부요한 가정에서 태어나든지 아니면 권력을 쥐고 있는 부모의 자녀라면 크게 염려될 것이 없다 .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옛 철학자들에게 찾고 있다는 것이다 . 그들의 주장은 인간은 고통과 근심 속에서 살아야 하는 존재이다 . 그러니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마음을 다스리라는 것이다 . 즉 근본적인 고통의 문제는 해결할 수는 없지만 선각자들의 깨달음을 참고하라는 것이다 . 이제 우리는 삶의 고통의 문제를 어떻게 하였던가를 생각해야 한다 . 청년들이 삶의 고통의 문제로 괴로워하고 고민할 때에 어떠한 치료 방법을 썼는가하는 것이다 . 진통제가 아니면 흥분제를 처방하였다 . 또 아프다고 하면 더 센 항생제를 준 것이다 . 그런데 이러한 치료법에 내성이 생겼다 . 그래서 이제는 동일한 방법은 통하지가 않는다 .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교회가 아닌 곳에 찾아가 감동하며 울고 있다 .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 정작 하나님의 말씀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인가 ? 아니다 해결할 수 있다 .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은 자들도 삶의 문제로 고통을 받으며 고민한다 . 그런데 옛날 역전 앞에서 가짜 약을 팔던 사람들처럼 엉터리 복음을 전한 자들이 있다 . 교회에 오면 모든 일이 다 잘되고 삶의 고통이 없다는 것이다 . 그리고 택한 방법이 긍정적인 사고방식에다 진통제만 주었다 . 성공사례를 들려주며 고민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 . 즉 ,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이 당하는 고통의 근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 삶의 방향과 내용도 다르다 . 비그리스도인들은 고통의 암덩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 사두개인 ” 그러면 무슨 생각이 나는가 ? 모세 오경만 믿으며 , 부활과 천사와 영의 세계가 없다고 믿는다 . 그리고 정치적으로 타협을 잘하고 정권이 바뀌기를 원치 않는 부유층의 사람들이었다 . 그러다보니 부활의 메시지를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많은 백성들이 따르는 것이 싫어하였다 .   그들은 모세 오경의 말씀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여 질문을 하였다 . 부활에 대한 것이었다 . 유대인의 수혼법을 근거로 하여 예수님을 곤경에 빠트리려 하였다 . 예수님의 대답은 너희가 하나님의 능력과 말씀을 알지 못한다고 하셨다 .   모세 오경에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자신을 소개하는 장면이 나온다 .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다 .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 이삭의 하나님이요 ,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셨다 . 즉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   또한 민수기에 보면 발람 선지자와 나귀가 등장을 한다 . 발람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을 볼 수 없지만 나귀는 알아보는 장면이 있다 . 출애굽기와 민수기는 모세의 오경에 속하는 것이다 . 그들이 자랑하고 좋아하는 모세 오경이었지만 정작 그 속에 담겨 있는 말씀의 내용은 알지 못한 것이다 .   부활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이 없으며 , 지옥이 없다고 믿었다 .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내용을 갖고 있는 이단이 있다 . 저들은 먼저 영혼수면설을 주장한다 . 사람이 죽으면 잠을 잔다는 것이다 . 그 가운데서 부활을 하는 자들이 있는데 , 자신들의 교리를 믿고 착한 선행을 많이 한 자들만 부활을 받는다고 한다 .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살피면 죽은 모든 자가 부활을 하고 그리스도 앞에서 심판을 받는다 . 그리고 의인에게는 생명의 부활이 있고 , 악한 자에게는 심판의 부활이 있다 . 사두개인이나 이단들은 성경을 가지고 있으나 성령의 조명을 받지 않고 읽는다 . 오히려 저들은 성경보다 사람이 전하는 예언을 더 좋아 한다 .   성경을 가지고 읽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