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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분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분들은 불탔다 하는지라”(느 1:3) 하나님의 성전이나 주님의 몸된 교회를 핍박하고 대적하는 마귀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마귀의 전략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한다.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곳이며, 복 받은 백성들이 사는 곳이다. 성벽을 허물고 성문이 불타고 망대가 무너졌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망대가 무너졌다고 함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성문이 불탔다고 함은 거룩한 백성들이 아닌 자들이 들어왔음이며, 성벽이 무너졌다고 함은 하나님께 헌신하며 순종하는 자가 없다는 것이다.   마귀는 말씀 전하는 자들에게 쉬지 않고 위협과 거짓으로 교묘하게 다가온다. 느헤미야에게도 같은 방법을 썼으며 심지어 선지자 스마야를 뇌물을 주고 매수하여 활동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성 안에는 약속의 백성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그런데 암몬 사람인 도비야는 제사장 엘리아십과 내통하는 자가 되어 성전 안에 방을 차지하고 있었다. 모세의 율법에는 암몬 사람은 이스라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다. 성벽이 무너졌다 함은 성전에서 봉사하는 자들이 없다는 것이다.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들과 도와주는 레위인들이 없으므로 인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와 제사를 드릴 수 없다. 느헤미야를 통하여 성벽과 성문과 망대가 재건됨으로 인하여 수문 앞에 모여 학사 에스라가 새벽부터 정오까지 모세의 율법을 읽어주었다. 백성들은 모세의 글을 통하여 그들의 조상들이 지켰던 초막절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언약을 세우고 말씀을 지키며 살았다. 주님께서 피값을 주시고 세운 교회가 하나님의 집이 되기 위해서는 망대와 성문과 성벽이 있어야 한다. 망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회 밖의 상황을 영적으로 잘 판단을 하여 진리의 말씀에 보전되며 외쳐야 한다. 성문이라 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받은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면 나를 미워하는 그들이 보고 부끄러워 하오리니 여호와여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시는 이시니이다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면 나를 미워하는 그들이 보고 부끄러워 하오리니 여호와여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시는 이시니이다”(시 86:17) 시편의 기자인 다윗은 악인들의 교만과 핍박으로 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런데 간구하기를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여달라고 한다. 하나님의 은총의 표적으로 무엇을 구할 것인가를 생각하여야 한다. 다윗의 생애에 있어서 놀라운 이적으로 적군을 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고난과 핍박 가운데 있게 하며 무엇을 원하시는가? 악을 선으로 이기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서 승리하여야 함을 말한다. 의인의 착한 행실로 악인의 악함을 부끄럽게 하여야 한다. 그러면 저들의 얼굴은 붉어질 것이고 줄행랑을 칠 것이다. 이제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 자에게 은총의 표적을 내려 보여 달라고 한다.   은총의 표적이라 함은 약속의 말씀처럼 땅의 아름다운 소산물과 평안이다.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사 1:19) 이러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 예루살렘 성이다. 그곳은 하나님이 계셔서 복이 임하는 곳이며 택함을 받은 백성들이 사는 곳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으로 인하여 새 예루살렘으로 거룩한 백성들이 모인다. 그곳은 하나님의 집이며 진리의 기둥과 터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은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설립 34주년 감사주일입니다. 지금까지 지켜 주신 성삼위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립니다. 마지막 때에 쓰임 받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하는지를 살피려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성벽과 성문 그리고 망대가 필요함을 설교를 통하여 전하려 합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는 지도가 있어야 하고, 거룩한 자들이 모여야 하고, 그리스도의 몸인 지체들이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셨사오니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셨사오니”(요 17:4) 하나님 아버지가 그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신 일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대답하시되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하셨다. 어떻게 잃은 자들을 찾으실까?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사람으로 태어나신다. 그 이유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함이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롬 4:4-5) 사람들과 동일시하게 위하여 세례를 받으셨다.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마 3:15) 이것을 교리적인 용어로 신인동형동성론이라 한다.   하나님을 불순종하게 하는 마귀를 이기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히 2:14-15) 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며 죽으셔야 하는가?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율법에는 피로써 정결함을 받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화목제물이 되셔서 제사를 드리셨는데 하나님께서 받으셨다.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후 5:19)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은 율법을 온전히 지킴으로 인하여 된 것이다.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6-57) 사

너희는 함께 계획하라 그러나 끝내 이루지 못하리라 말을 해 보아라 끝내 시행되지 못하리라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라

  “너희는 함께 계획하라 그러나 끝내 이루지 못하리라 말을 해 보아라 끝내 시행되지 못하리라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라”(사 8:12) 이사야 8장에서는 북이스라엘과 아람 나라가 앗수르에게 망할 것임을 계시하셨다. 앗수르는 남유다가 돈을 주어서 용병을 구하여 나라를 지키려 의지하였었다. 남 유다의 왕에 눈에는 하나님보다 앗수르의 힘이 더 강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관하셔서 세워지는 임마누엘의 나라가 온 땅 위에 펼쳐질 것이라 하셨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두려워 할 자를 두려워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 한다는 것은 율법을 따름을 말한다.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를지니 그들이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 이 땅으로 헤매며 곤고하며 굶주릴 것이라”(사 8:20)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패망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못함으로 인한 것이다. 이제 임마누엘 하나님으로 세워지는 나라는 그의 의로 통치하는 곳이다. 즉 하나님의 율법으로 정의와 공의가 시행이 된다. 임마누엘의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심이라“이다. 하나님이 택함을 받은 자들과 함께 하셔서 율법의 뜻과 행함을 하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들에게 주신 궁극적인 목적은 율법의 성취이다. 하나님은 율법을 지켜 행하는 자를 기뻐하시며 찾고 계신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임마누엘 하나님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를 깊이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어떤 곳에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우리의 필요한 모든 것을 구할 수 있다고 가르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적인 믿음은 실패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자로 만드셔야 합니다. 그래서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자로 만들기 위하여 하나님이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의 말을 들을 것인지 아니면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들을 것인지를 확인하셔야 합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사 7:7)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였다고 속보로 뜨고 있는데 이제 나토 동맹국과 미국의 대응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본문에서도 북이스라엘과 아람 나라가 연합하여 남유다를 치려 한다. 그러나 그 일을 이루어지지 않는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사 7:7) 왜 그런가 하면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기 때문이다. 나라와 나라가 싸우는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보여 주신다. 그것은 임마누엘 하나님으로 세워지는 하나님 나라이다. 전쟁과 시기와 다툼이 없는 나라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의 애끓는 사랑을 확인하셔야 합니다. 나라와 나라가 전쟁 가운에 있는데 평화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보여 주십니다. 그 나라는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므로 싸움과 전쟁이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하여야 할 것은 세상을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땅에 진정한 평화가 오게 됩니다.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사 6:10)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을 버리고 말씀하신 것을 멸시하므로 인하여 이제 징계의 심판이 있다. 앗수르와 바벨론을 막대기로 사용하셔서 징계하신다.   이 일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선지자 이사야를 보내신다.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의 자리로 돌아오게 하기 위하여 자원하여 나선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가서 외치기만 하라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은 나중에 있을 징계의 심판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하기를 우리는 들은 적이 없다는 핑계를 막기 위함이다.   그래서 듣든지 못 듣든지 외치라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사 6:9) 그러면 징계의 심판을 받는 날에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온다고 한다.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여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데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사 6:10) 앗수르에게 침략을 당하여 예루살렘이 완전히 폐허가 되었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남은 자가 돌아올 것이라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사 6:12)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제 마지막 날에도 불 심판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영벌을 받아 지옥으로 갈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자들에게는 보응의 심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얼마큼 지켰으며 영광을 돌렸는지를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심판의 기준은 하나님의 계명과 명령입니다. 그런데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교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사 5:2) 이사야 5장은 포도원 비유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가나안 땅으로 옮기셨다. 그들을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으로 정의와 공의를 펼치는 나라를 세우려 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우상숭배와 이웃 사랑을 실천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것에 대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드러내신다. 그 땅에 좋은 포도나무를 심어서 극상품의 열매를 바랐는데 들포도를 맺어서 이제 울타리를 걷어내어 들짐승에게 주시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질렀던 악행을 8절 이하에서 자세히 소개를 하고 심판이 있음을 알리고 있다. 택한 백성들에게 공의로운 심판을 하여서 정의로운 하나님이라 높임을 받게 되신다는 것이다.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정의로우시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일컬음을 받으시리니”(사 5:16) 정의로우신 하나님이시기에 택한 백성이라 할지라도 공의의 심판을 하셔야 한다는 것이다. 심판은 하시되 영원한 영벌을 내리시는 것이 아니라 이방나라인 앗수르와 바벨론을 통하여 징계이다. 이방나라가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패망하게 한다. 그러나 완전히 망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구원자를 보내셔서 아브라함과 약속하신 언약을 지키신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관계입니다. 그 약속대로 행하셔야 정의로운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이것을 새언약이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지켜야 됩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의 말씀에 대적을 하고 거부를 하게 되면 본문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되는 것입니다. 언약을 맺은 백성들에게 ‘화 있을진저’ 하시며 분명시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기름 부음을 받으시고 공생애의 삶을 사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이 땅 위에 있는 성전, 제물, 대제사장이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공생애 삶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요구를 충족시키셨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지키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흠이 없으시다. 하나님 아버지는 자신의 영광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내시기 위하여 성육신하셨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성전이 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것이 분명하다.   죄사함을 받기 위한 제물은 흠이나 악질이 있으면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온유한 마음과 율법을 온전히 지키셨기 때문에 죄인들이 죄사함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으시다. 대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셨다. 율법의 규정을 따라 백성들을 판단하셨고, 율법의 규례를 따라 나병 환자와 유출병 환자를 구분하셨고,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모든 요구를 충족하므로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게 하셨다. 그리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신 것이다.   죄에 죽은 자들을 살리기 위하여 성부하나님의 명령에 성자하나님이 죽기까지 순종하였다. 이것이 ‘믿음으로’이다. 이것을 믿어야 의인이 된다는 것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전이 되시고, 제물이 되시며, 대제사장이 되심을 알아야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아는 것입니다. 만일 이것을 모르면 구원의 진리를 모른 것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을 듣고 깨달았다함은 그동안 허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알게 해주신 성삼위하나님께 회개와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성령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예수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시 85:10-11) 본문의 역사적인 배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때이다. 이 백성들이 하나님께 징계는 받았지만 영원한 벌은 받지 않았다.   시편의 기자는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영원한 사랑을 베풀어 주셔서 진리가 펼쳐질 것을 알리고 있다.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시 85:10)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나타낼 것이며 그리고 아버지께서 능력을 나타내시어 죽은 자를 살리신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은 의인들이 이 땅에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택함을 받은 백성들은 땅의 아름다운 것을 얻을 것이라 한다. 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셔야 하고, 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으로 믿어야 하는가? 그래야 믿는 자가 의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믿음의 선조, 의인을 말할 때에 아브라함을 들어서 이해를 시킨다.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릴 때에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 11:19) 아브라함의 믿음은 무엇인가? 만일 이삭을 제단에 드려도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것임을 믿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을 죄인들에게 주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과정이 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셨다는 믿음을 갖게 되면 그것이 내 것이 되고 의인이라 칭함을 받게 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로마서의 말씀이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믿음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요술사가 바로에게 말하되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하였으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게 되어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요술사가 바로에게 말하되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하였으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게 되어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출 8:19)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론에게 이르시기를 네 지팡이를 들어 땅의 티끌을 치라 함으로 애굽 온 땅에 이가 되었다. 애굽의 마술사들도 이와 같이 하려 하였지만 이가 생기지 못하였다. 그래서 마술사들이 바로에게 말하기를 이것은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하였지만 마음이 교만하여 듣지 않았다. 마음에 완악해 지면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도 순종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내리신 열 가지의 재앙을 통하여 악인의 마음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세 번째의 재앙을 당하였을 때는 하나님의 권능임을 알면서도 무시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할 때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내게 의지할 것이 있거나, 하나님을 찾다가 문제가 해결되어 숨을 쉴만하면 다시 원래로 돌아가는 것과 아예 무시하고 자기 고집으로 버틸 때입니다. 이와 같은 현상이 바로에게 내린 재앙에서 세 번째까지입니다. 바로의 완악함은 우리들의 완악함입니다. 이것은 알면서도 죄를 범하는 것이 됩니다.

아론이 애굽 물들 위에 그의 손을 내밀 매 개구리가 올라와서 애굽 땅에 덮이니

  “아론이 애굽 물들 위에 그의 손을 내밀 매 개구리가 올라와서 애굽 땅에 덮이니”(출 8:6) 엎친데 덮친격 이란 말이 있다. 그 뜻은 불행한 일을 당하고 있는데 또 좋지 못한 일이 있음을 말한다. 바로가 하나님께 시험을 당하고 있는 중에 아론의 손이 물이 있는 곳에 내밀 매 개구리가 올라온다. 그래서 바로도 요술사들을 통하여 개구리를 올라오게 한다. 개구리가 올라와 왕 궁과 침실과 침상과 신하들의 집과 백성들의 화덕과 떡 반죽 그릇에도 들어가므로 인하여 난리가 났는데 요술사들의 개구리로 인하여 더 고통에 빠지게 된 것이다. 바로는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 구하여 나와 내 백성에게서 개구리를 떠나게 하라고 기도하라 한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모세의 말대로 하시니 개구리가 집과 마당과 밭에서부터 나와서 죽은지라”(출 8:13) 애굽의 땅 위에는 개구리가 썩어서 나는 악취가 가득하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가 숨을 다시 쉴 수 있게 되자 마음이 완강하게 되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바로가 자랑하는 마술사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였습니다. 아론의 손을 물 위에 내밀 매 개구리가 땅 위에 올라왔습니다. 그러자 바로도 마술사들을 시켜서 개구리를 올라오게 했습니다. 개구리로 인하여 난리가 났는데 다른 개구리들이 덮친 것입니다. 마술로 인하여 악취가 더 심하게 났음을 말합니다.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일들이 있습니다. 나의 꾀로 인하여 더 깊숙이 구렁텅에 빠지는 일을 많이 경험하였습니다. 순종만이 평탄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애굽 요술사들도 자기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므로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애굽 요술사들도 자기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므로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출 7:22)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다. 그런데 바로는 항복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지팡이를 들어 나일 강물을 쳤더니 피로 변하였다. 그런데 애굽의 마술사들도 자기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였다. 바로의 마음에는 애굽의 마술사도 하는데 하는 교만한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건이 점점 횟수가 거듭되면서 애굽의 마술사들이 할 수 없어 항복을 한다. 하나님께서 바로를 완악하는데 애굽의 마술사들을 사용하신 것이다. 바로는 마술사들도 할 수 있는 이적을 행하시는 하나님 정도로 생각을 함으로 항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아도 별 탈이 없습니까? 그러다보니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아도 잘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 형통함이 여러분을 교만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바로를 완악하게 만드셨던 방식입니다. ”바로가 돌이켜 궁으로 들어가고 그 일에 관심을 가지지도 아니하였고“(출 7:23) 애굽의 마술사들도 나일 강물을 피로 변하게 하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관심을 두지 않은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가 없어서 형통의 길을 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 여러분의 마음은 이미 완악해졌음을 확인하셔야 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네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네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받으라 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음과 같이 이제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기 위함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요 17:18)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하여 무엇인가를 주시려 함이다. 그것은 주님께서 이 땅에 성육신하셔서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하셔서 얻으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이다. 그 권세는 이 땅에 왕들과 악한 영들을 이기신 영광이다.   그 권세는 놀라운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하시므로 인한 영광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을 통하여 주신 권세를 받은 자들은 모든 세력을 이길 수 있다. 이 권세를 신자들이 얻기 위해서는 주의 계명을 순종하며 따를 때이다. 그러면 주님께서 모든 권세를 이기신 능력을 주시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들이 권능과 능력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기도와 간구하신대로 몸으로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 5:7) 전도와 선교를 행하는데 있어서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이 먼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만일 말씀에 순종함이 없이 능력만 구한다면 그것은 성경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순종이 없는 말로만 하는 믿음이 근본이 죽은 믿음입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7)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출 3:14)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어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하나님이 보냈다 하라 하셨다. 나는 여호와라 즉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이라 소개 하였다. 여호와란 뜻은 스스로 계신 분이라는 것이다. 즉 애굽의 신 바로와 다름을 나타내려함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애굽의 왕은 신이다. 그런데 그 사람은 사람들이 챙겨주는 음식을 먹어야 하고 그의 신하들이 전쟁에 나가 싸워서 승리를 안겨주어야 승리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으시고 스스로 모든 전쟁을 치루신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다.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여호와 하나님과 다른 신들과 다름을 말하여 하는 것이다. 이방의 신들은 사람들이 챙겨주는 음식을 먹어야 하고, 사람들이 손과 발을 움직이어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상이라 함을 말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 이방신과 다름을 스스로 계시는 분이라 말씀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존재하는 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방신들은 스스로 밥을 먹을 수 없어서 떠서 입에 넣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이 먹여주는 음식을 먹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스스로 필요한 것을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하게 됨으로 이방신을 섬길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차려주는 음식을 먹는 바로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차이를 세상에 알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로를 세웠음은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네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출 9:16) 하나님이 여호와 되심을 세상을 알리려는데 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시 84:11 ) 여호와 하나님이 찾으며 좋아 하시는 사람은 정직한 자이다. 대표적인 사람으로 다윗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을 해도 다윗은 삶에서 흠이 많은 자이었다. 그렇다면 정직함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의 법으로 아는 것이다. 그래서 범죄를 하면 말씀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서 죄와 허물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이것을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 한다.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삼상 13:14하) 여호와께서 사울 왕을 이어 왕으로 다윗을 세우시면서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에 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드린다. 그것은 하나님은 겉모습을 보시지 아니하고 속마음을 보시기 때문이다. ”그는 또 그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레 1:6)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외식하는 자들을 경계하셨다. 속마음은 썩어서 거짓과 술수를 남발하면서도 알맹이가 작은 씨의 숫자를 세어서 십일조를 드렸던 사람들이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정직함이란 하나님 앞에서 죄와 허물을 용서받기를 구하는 예배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하나님 앞에 죄로부터 은혜를 받기 위하여 나와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죄 용서를 구하는 은혜를 구하지 아니하였고 오히려 자신의 의를 자랑하였습니다. 이것은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믿음과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죄가 있는 것을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지 않으면 구원의 하나님을 기만하는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속마음을 드리셔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나 이웃을 속이려 하지 마십시오. 만일 그렇게 되면 관계 사이에 죄가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그러면 관계가 점점 멀어집니다. 거짓말하고 범죄한 자의 마음에는 늘 두려움이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시 84:1) 시편의 기자는 하나님을 만군의 여호와라 찬양을 한다. 그 이유는 모든 대적을 물리치고 승리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이미 이스라엘은 전쟁을 통하여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대하 20:15하) 만군의 여호와이심을 확인하였다. 그 만군의 여호와가 거처하시는 곳이 장막 곧 성전이다. 그래서 그곳에 가면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넘친다는 것이다. 기자는 지금 간절한 마음이다. 모든 환란에서 헤쳐 나오기 위해서는 만군의 여호와를 의지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시 84:11)이라 고백을 하고 있다. 방패는 우리를 보호하여 주는 것이고, 해는 우리에게 활력을 주시고 생기를 주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즉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들을 보호하여 주시고 인도하여 주심을 말함이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교회에 나아가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다른가?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의 은혜를 같은데 주시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무엇이 다른가 하면 더 완전하게 더 큰 사랑을 베풀어 주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로 삼아 사랑을 주신다. 정직한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하늘의 좋은 것으로 흔들어서 가득 채워 주신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교회에 모인 사람들은 특정한 목적과 역할을 위함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함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만일 이와 같은 믿음을 알지도 못하고 기다리지도 않는다면 이것은 심각한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대로 믿고 있는 이단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다 쓸데없는 짓입니다. 진정한 교회는 영원한 신랑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정결한 신부로 있습니다. 그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