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20의 게시물 표시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이 명령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이 명령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잠 8:29) 지구 저쪽 편에서 쓰나미(Tsunami)가 발생했다. 평상시에는 바다 물이 육지를 넘어 오지 못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바다에게 명령을 하사 경계를 지키라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주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경고를 하신다. 하나님의 이 세상을 통치하시고 지배하신 것은 알게 하기 위함이다. 무엇을 원하시는가?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라 하신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있다는 깨닫게 하신다.   언제 바닷물이 육지의 경계선을 넘어 오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 또한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이다. 이 일을 통해서 우리가 교훈을 받아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도 하나님만이 아신다는 것이다.   인간의 지혜로 쓰나미가 오는 것을 알 수 없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알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야 한다. 사람은 언제인가는 반드시 죽는다. 사람의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그래서 사람이 생각하는 만큼 살다가 죽는다는 것이 과연 행복한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자연 재해로 죽은 것에 대하여 성경적인 해석은 이러하다. 두어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와 질문을 한다.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을 일에 대하여 왜 이 사람들이 해를 받았는가 묻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답하신다.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 13:4) 하셨다. 죽은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은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은 자들의 죽음이 이와 같음으로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이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지 않는 자들의 죽음이 이와 같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쓰나미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사 43:11) 사람이 신을 의지하는 것은 개인의 안녕(걱정거리 없고 탈도 없는 상태)과 번영(물질의 축복)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자기의 취향에 맞는 신을 골라서 믿는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람들 가운데서 택하여 믿게 한다. 이것이 세상의 종교와 다른 점이다. 하나님은 택한 자들을 존귀하게 여기신다. 독생자 아들을 이 땅에 보내 주시어 하나님의 아들로 사는 방식을 보여 주셨다. 그래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사랑을 받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 땅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고급스러운 인격과 성품을 지닌 자가 된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교제하며 사는 신자의 자태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소금과 빛의 존재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으로 그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다. 어떤 신은 자신을 거부하는 자를 칼로 죽이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다.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죄악이 관영하는 세상은 분노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실수를 하여도 죽여 버린다고 욕을 합니다. 그런데 그 분노가 자신의 것이 아닌 외부에 어떤 것에 핑계를 댑니다. 누구누구 때문이라 합니다. 세상은 그런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그분이 주시는 은혜가 오래 참음과 절제입니다. 그래야 내가 흔들리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요즘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어느 것 하나도 마음에 드는 것이 없습니다.   이때에 하나님이 왜 나를 택하셨는지를 묵상해 보시면 마음이 편해 질 것입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딤후 4:3-4) COVID-19 사건으로 모든 분야에서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기독교 인사들 가운데도 각자의 소견을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밝히고 있다. 그 가운데는 이번 기회에 한 번 떠서 인기를 한 몸에 받자고 하는 계획적인 거짓도 있다. 성경적인 목회자는 자기의 생각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성경의 말씀을 근거로 말을 하여야 한다. Text(원문)를 잘 이해하여서 Context(상황)에 적용을 하여야 한다. 하루하루가 변하는 세상에서 언제든지 진리의 말씀을 붙잡아야 한다.   성경적인 믿음은 진리의 말씀을 지키면 언제 어느 곳에서든지 이길 수 있다는 약속이다. 만일 상황에 따라 진리의 말씀이 변한다면 그것은 거짓이다. 본문의 말씀은 사도바울이 그의 영적 아들인 디모데에게 보내 서신이다. 마지막 때에 있을 상황에 대하여 말씀한 것이다.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허탄한 이야기에 유혹받지 말고 진리의 바른 교훈을 따르고 지키라 함이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목회자는 성경의 말씀이 근거가 되어 삶을 살아야 한다. 만일 기록되어 있지 아니한 것들을 전하면 어떠한 일들이 준비되어 있는지를 안다면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신 4:2)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들 마음대로 더하고 빼다가 망한 사람들이 바리세인들이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이 명령하신 말씀도 자기들 생각으로 바꾼 것이다. 오늘날에도 자기의 생각으로 지껄이며 양 떼들을 혼란케 하는 사람들이 많다. 성경의 말씀과 찬양의 고백 속에는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여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한다. 그렇다면 목회자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은혜와 평강의 말씀을 전하여야 한다. 목사의 설교를 들었는데 하나님의 은혜와 평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히 3:15)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모든 사람을 창조하셨고 또한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며 살게 하셨다. 그런데 불순종하는 자들 때문에 하나님은 격노하시며 안식을 취하실 수가 없다. 그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화목제물을 삼으셨다. 택한 백성들과 화목의 관계를 갖기 위함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은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데 있다. 만일 택함을 받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을 하면 하늘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하나님은 격노하시며 쉬시지를 못 한다는 것이다. 자녀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부모의 마음은 속이 썩는 듯한 고통이 있다. 하나님도 그와 같은 아픔을 느끼신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순종하는 신자를 보시면 기뻐하십니다. 여러분들도 여러분의 자식들이 말을 잘 들으면 기쁨이 있고 자랑거리가 되지요. 만일 부모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 걱정과 근심이 마음에 가득 찹니다. 그러면 잠을 잘 수 없고 음식도 맛이 없습니다. 즉 편안과 안식을 누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이해하신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불순종할 때에도 하나님도 안식을 취하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영 밖에서 살지니라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영 밖에서 살지니라”(레 13:46) 죄나 코로나 바이러스의 공통점은 전염을 시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따로 격리를 하여 혼자 살게 한다. 성경에서는 피부에 나타나는 증상이나 몸에 흘러나오는 병은 부정한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사람들은 부정한 사람들이라 하여 정결법을 지키게 하였다. 이렇게 따로 격리를 시키는 것은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병에 걸린 한 사람으로 인하여 전체를 전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죄도 마찬가지이다. 공동체에 하나님을 거역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들어오면 심각한 현상이 나타난다. 나병 환자의 특징은 피부가 썩어서 고름이 나오는데도 아프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서도 나는 괜찮다고 한다. 지금 즉각적인 심판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괜찮은 것이 아니다. 심판은 하나님의 작정하심 속에 반드시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사태도 나는 아무런 증상이 없으므로 괜찮다고 하면 곤란하다. 나로 인한 이웃의 피해를 생각하여야 한다. 나만 잘 살고, 나만 괜찮으면 되지 하는 생각은 자기중심적이 사고이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사상과 정반대가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이웃을 중심으로 생각을 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괜찮은데 이웃을 위하여 혼자 격리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사도바울은 믿음이 약한 형제가 자신이 먹는 고기로 인하여 만일 실족을 한다면 영원토록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고전 8:13)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인들이 정결법을 지키는 이유가 있습니다. 정결한 자가 되어 하나님 앞에 서야 하고 또한 이웃을 위하여 정결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건강이나 공동체 전부가 건강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지금의 상황은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 이웃에 대한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웃에게 전염을 시킬까봐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시 15:4)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원하시는 도덕 윤리의 기준은 십계명이다. 십계명은 모든 사람들이 지켜야할 보편적인 도덕법이다. 만일 십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부정하는 것이고, 이웃과의 관계에서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된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는 나 중심적인 것이 아니라 이웃이 중심이 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이방인들도 자기들의 형제를 사랑한다고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 백성은 강도 당한 자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약속한 것은 손해를 보더라도 지키라 한다.   이웃과의 약속을 나 중심적으로 함부로 어겨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언제나 이웃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것에 대한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찾아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심 같이 도움이 필요한 자를 찾아서 섬겨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은 이미 한 해 동안 만나기로 한 약속 날짜가 잡혀있다. 예배 시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약속이다.   하나님과의 약속도 내가 바쁘다고 내가 중심이 되어 취소해서는 안 되며,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손해를 보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함을 반드시 기억하여야 한다.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정하신 약속의 법칙은 내가 손해를 당하더라도 지켜야 함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사람을 창조하시고 서로 도우며 살게 하셨는데 그것에 기준은 나의 상황을 따라서 결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웃이 중심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서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눅 10:36-37) 강도 당한 자의 이웃은 선한 사마리아 인이며 자비를 베푼 사람이라 하였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내가 기준이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시 15:1) 다윗이 시편 15편을 기록하였는데 의인은 악인을 멀리 하라는 것이다. 악인으로부터 더러운 것에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삶 속에서 거룩함을 지켜야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예배하는 자가 성전에 들어갈 때에 제사장에게 묻는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시 15:1). 이에 제사장이 대답을 한다. 정직하여야 하고, 공의를 행하여야 하고, 진실한 자가 들어올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예배를 드리는 방법론이 아니고 예배드리는 자가 삶에서 드러내야할 덕목들이다. 다시 말하면 일상의 삶 속에서 믿음생활을 한 자들이 성전에 들어와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반석에 거한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함을 말한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떼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 하셨다. 소금은 그 자체 전부가 짠 맛을 낸다. 빛은 어디를 가나 밝음을 드러낸다. 소금과 빛은 변할 수 없는 존재 그 자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이와 같다. 그래서 먼저 정직하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 사람으로 지켜야할 도덕적인 수준까지 이르는 것을 말한다. 공의는 하나님 앞에서는 그분과 약속한 언약을 충실히 지키며 이웃에게는 도덕적 기준을 넘어서 해를 가하지 않는 것이며, 진실은 하나님 앞에서나 이웃 앞에서 거짓이 없음을 말한다. 이것인 신자들의 기본적인 덕목이다. 이와 같은 성품을 가진 자를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   하며, 쓰임을 받게 된다. 달리 말하면 성령의 열매는 신자의 기본적인 성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령의 열매가 믿음에 기본이 되어 성장한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택함을 받은 자들의 마음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나 신자들이 비난을 받는 이유가 여

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

  “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계 16:1)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시려는 일들을 보여 주는 말씀이다. 지금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일어날 일들에 대하여 그리고 일곱째 천사가 일곱 대접을 쏟을 때에 재앙의 심판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은 죄로부터 구원이다. 하나님을 모르고, 그의 말씀을 거역하는 자들을 위하여 진노의 심판이 예비되어 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롬 2:2) 그런데 심판의 날은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하시며,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마 24:25)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려주시고, 보여 주심으로 인하여 재림 신앙에 대한 확신을 주시는 것이다. 이제 보았음으로 인하여 날마다 회개하며 깨어 근신하는 신앙생활을 하게 하는데 서신서를 전하는 목적이 있다. 일곱 대접의 재앙은 이미 애굽 땅에 내려졌던 재앙과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서 드보라와 바락이 가나안 군대와 싸워 이겼던 하나님의 능력을 기억하게 한다. 사탄이 모든 무기와 거짓 선지자, 음녀, 짐승들을 동원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핍박하지만 결단코 이길 수 없음을 확인하여 주신다. “일곱째 천사가 그 대접을 공중에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이르되 되었다 하시니”(계 16:17)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가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얼마나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온 이래로 이같은 큰 지진이 없었더라 그리고 각 성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16:19-20). 신자들은 영적 전쟁에서 반드시 이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이스라엘이 가나안 군대와 싸웠던 므깃도 전투처럼 승리를 주시기 때문이다. 그때에 별들이 싸우고 구름이 비를 내리고 기손 강이 범람

그 날에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백성과 더불어 언약을 맺고 그들을 위하여 율례와 법도를 제정하였더라

  “그 날에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백성과 더불어 언약을 맺고 그들을 위하여 율례와 법도를 제정하였더라”(수 24:25) 여호수아가 모든 지파의 장로들과 수령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방신을 섬기던 아브라함이 택함을 받았고, 모세를 통하여 애굽 땅에서 구원을 받았던 것과 광야 길에서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점령하였던 것과 가나안 땅에 들어와 일곱 부족과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셨던 일들을 전하고 있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임하여서 “내가 또 너희가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너희가 건설하지 아니한 성읍들을 너희에게 주었더니 너희가 그 가운데에 거주하며 너희는 또 너희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열매를 먹는다 하셨느니라”(수 24:13), 가나안 땅에서 평안과 안식을 누리고 있다. 이제 여호수아는 그 백성들에게 마음의 결정을 하라 한다. 강 건너에서 그들의 조상들이 섬기던 달 신을 택하든지, 아모리 신을 택하든지 하라 한다. 그러나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외쳤다. 그러자 그 백성들도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한다. 그러자 여호수아는 “그 날에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백성과 더불어 언약을 맺고 그들을 위하여 율례와 법도를 제정하였더라”(수 24:25). 무슨 말씀인가 하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갱신하였다는 것이다. 세겜이라는 곳은 역사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아브라함이 지시한 땅에 들어와 세겜 땅에서 제단을 쌓았고, 야곱과 그의 식구들은 우상의 장신구들을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새로운 각오로 벧엘을 향하였고,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을 사이에 두고 축복과 저주의 말씀이 선포하였던 곳이다. 이제 이 백성들은 그들의 조상들과 약속한 복을 듣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있는 상태에 있다. 이와 같은 축복이 떠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언약을 갱신한 것이다.   신자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를 드리는 것이 언약 재갱신이다. 죄를 들고 나아가 용서함을 받고 새로운 말씀으로 약속함을 받는 것이다. 즉

보라 나는 오늘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가려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모든 선한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아니하고 다 너희에게 응하여 그 중에 하나도 어김이 없음을 너희 모든 사람은 마음과 뜻으로 아는 바라

  “보라 나는 오늘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가려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모든 선한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아니하고 다 너희에게 응하여 그 중에 하나도 어김이 없음을 너희 모든 사람은 마음과 뜻으로 아는 바라”(수 23:14) 여호수아가 죽음을 앞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부하는 말씀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믿음의 선조들에게 약속하신 말씀대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였던 인물이다. 요단 강을 건너면서부터 서쪽 바다까지 가나안 부족들과 싸움에서 하나님이 직접 행하심을 보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고 설교를 하고 있다. 그가 전하는 내용은 약속의 말씀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것에 대하여 이스라엘 백성들도 눈으로 보았기에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 그가 전하려고 하는 중요한 말씀은 불길한 말씀이다. 신명기에서는 축복과 저주로 약속이 되었다. 본문에서는 이것을 선한 말씀과 불길한 말씀이라 한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모든 선한 말씀이 너희에게 임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모든 불길한 말씀도 너희에게 임하게 하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를 멸절하기까지 하실 것이라”(수 23:15)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 가운데 저주의 약속이 있음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훗날 이 백성들은 약속대로 저주의 복을 받았다. 다른 신을 섬기었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새롭게 태어났다고 합니다. 왜 새로운 것인가 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영적인 양식을 먹어야만 합니다. 만일 양식을 먹지 못하게 되면 영혼이 기진하여 혼미해 지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의 양식을 먹어야만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두 마음을 품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갈 수 없

이스라엘 자손이 들은즉 이르기를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의 맨 앞쪽 요단 언덕 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쪽에 제단을 쌓았다 하는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들은즉 이르기를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의 맨 앞쪽 요단 언덕 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쪽에 제단을 쌓았다 하는지라”(수 22:11)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가나안 정복을 마치게 되었다. 여호수아가 요단 동편에 있는 지파 사람들에게 자기의 기업으로 돌아가라 한다.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을 건너와서 강 가에 큰 제단을 쌓았다. 이것이 서편에 있는 사람들과 오해가 생긴다. 요단 동편의 사람들이 제단을 쌓은 것은 서편에 있는 이스라엘에 속하였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서편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궤가 있는 실로 이외에 다른 곳에 제단을 쌓은 것이라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 서편에 있는 지파 사람들이 군대를 모아 동편 사람들을 치러 가려 하였다. 동족 간에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와 각 지파의 열두 지도자를 보낸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 올바른 결정을 하여야 하기에 제사장이 필요한 것이다. 비느하스가 요단 동편에 있는 지파의 의견을 들어 보니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오히려 이 일로 이스라엘 자손을 즐겁게 하였다. 자기중심적인 생각으로 하나님을 섬기다가 보면 타인의 행동이 몹시 눈에 거슬릴 때가 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나만 옳다고 생각할 때이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우리들 사이에 중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는 것이다. 사람의 생각으로 급히 말하지 말고 그분에게 모든 것을 아뢰어야 한다. 그 기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각과 합당하다면 이루어질 것이고 부당하다면 아니요가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사람을 의지하거나 사람의 생각을 따르는 것을 우상숭배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하는 자를 저주하시고 심판하십니다. 오직 선하신 분은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있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하나가 됩니다

그 때에 레위 사람의 족장들이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 족장들에게 나아와

  “그 때에 레위 사람의 족장들이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 족장들에게 나아와”(수 21:1) 여호수아 21장에서는 레위 지파가 거주할 성읍들과 가축을 위해 목초지를 분배받는다. 그들은 다른 지파들처럼 넓은 땅을 받은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땅의 사십 이 개의 성읍과 여섯 개의 도피성이 있는 곳을 제비 뽑아 나누었다. 제사장 아론 자손들이 열세 성읍을 받았고, 그핫 자손 중에 남은 자가 열 성읍을, 게르손 자손이 열세 성읍을, 므라리 자손이 열두 성읍을 받았다.   레위 지파는 사십 팔 개의 성읍에서 거주지와 가축을 키우기 위한 목초지를 이스라엘 자손의 기업 중에서 받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선조들에게 약속한 땅을 다 주셨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리는 것은 안식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땅에서 그분의 보호를 받으며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평안이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주위에 안식을 주셨으되 그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하셨으므로 그들의 모든 원수들 중에 그들과 맞선 자가 하나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의 모든 원수들을 그들의 손에 넘겨 주셨음이라”(수 21:44).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야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다. 즉 가나안 땅은 하나님과 함께 누리는 기쁨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깨달아 스스로 순종할 때에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천국은 하나님 보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품에 안기어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곳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고난과 걱정과 근심으로 인하여 평안을 얻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마음을 내려놓을 곳이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시는 교회에 오면 평안과 안식을 얻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는 다툼이나 시기와 질투가 있으면 안 됩니다. 평안과 안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주실 수 있는 은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 가는 자들은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 28:15) 야곱은 에서를 피하여 삼촌에게로 피난길을 떠난다. 루스 땅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는데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라 하신다. 그는 선조들의 하나님을 만나서 그곳을 벧엘이라 하였지만 아직은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을 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야곱의 입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부자가 되었음을 고백하자 벧엘로 올라가라 하신다.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창 31:13) 벧엘로 돌아와야 야곱은 여호와가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라 하였다.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28:20) 하나님은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라 고백하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 벧엘로 돌아온 야곱에게는 놀라운 복이 임하였다. 약탈자라는 이름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 변한다. 그것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을 통하여 한 나라가 세워지고 영원한 왕이 나올 것과 선조들에게 약속한 땅을 받을 것이라 약속을 받은 것이다. 야곱은 자신의 욕심을 따라서 살았던 자이었다. 그는 엄마의 태중에서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다. 남의 것을 거짓으로 속여서 빼앗은 자이다. 이러한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야곱에게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셨다. 약탈자가 변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나누는 자로 변할 때까지 훈련을 시키신 것이다.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약탈자나 폭력자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쓰시지 않으십니다. 이웃을 배려하고 긍휼을 베푸는 자를 사랑하시고 귀하게 여기십니다. 교회 일에 헌신하시고 봉사하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을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을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 14:1) 시편 14편은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기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은 택한 자들을 통하여 역사하신다는 것이다. 야곱은 이름대로 남의 것을 빼앗는 자이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께 붙들리어 새 사람이 된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뀌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조상과 약속을 하셨고 야곱을 통하여 이루려 하신다. 그런데 그가 약탈자이다. 남의 것을 빼앗는 자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 없다. 하나님 나라는 그와 반대로 나누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피난길로 떠나게 하여 합당한 자로 만드신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 28:15). 하나님의 뜻하심이 있어서 야곱이 이십 년 동안을 삼촌 라반의 집에서 훈련을 받게 하신다. 고난과 고통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확인하게 하신다. 무슨 말씀인가하면 무시무시한 라반을 만났는데 야곱의 생각으로는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야곱이 부자가 되었다. 마침내 그의 입에서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창 31:9)고 믿음의 고백을 하였을 때에 약속의 땅인 벧엘로 다시 올라가라 하신다. 벧엘로 올라가는 길에 에서를 만나야 하며, 세겜 땅에서는 외동딸 디나가 세겜 추장에게 수치스러운 일을 당한다. 이러한 일들은 벧엘 땅으로 올라가는 일에 불순종할 때에 일어났었다. 야곱은 마침내 벧엘로 돌아와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다. 그러므로 이름이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뀐다. 조상들에게 약속한 복을 받게 된다. 후손을 통하여 영원한 나라가 세워지며 왕이 나올 것이라는 약속을 받게 된다. 이제 야곱의 삶이 바뀌었다. 모든 일을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