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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예레미야가 다른 두루마리를 가져다가 네리야의 아들 서기관 바룩에게 주매 그가 유다의 여호야김 왕이 불사른 책의 모든 말을 예레미야가 전하는 대로 기록하고 그 외에도 그 말을 많이 더 하였더다

  “이에 예레미야가 다른 두루마리를 가져다가 네리야의 아들 서기관 바룩에게 주매 그가 유다의 여호야김 왕이 불사른 책의 모든 말을 예레미야가 전하는 대로 기록하고 그 외에도 그 말을 많이 더 하였더다”(렘 36:32) 예레미야 36장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여호와의 말씀은 결코 사라지지 않음을 전하는데 있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을 친히 보존하시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에게 말한 모든 말씀을 기록하라 하셨다. 그래서 서기관인 바룩을 불러 기록하였다.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서기관인 바룩은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 낭독을 하였고 또한 모든 백성들에게도 낭독을 하였다. 여호야김 왕은 두루마리에 기록된 말씀이 낭독되는 것을 싫어하여 여후디를 보내어 두루마리를 가져오게 한다. 여후디가 기록된 말씀을 낭독하면 왕은 면도칼로 그것을 베어 화로 불에 던져서 모두 태웠다. “여후디가 서너 쪽을 낭독하면 왕이 면도칼로 그것을 연하여 베어 화로 불에 던져서 두루마리를 모두 태웠더라”(렘 36:23) 그리고 왕이 명령을 하여 바룩과 선지자 예레미야를 잡으라 하였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숨겼다. “서기관 바룩과 선지자 예레미야를 잡으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그들을 숨기셨더라”(렘 36:26하) 여호야김 왕이 두루마리를 불태웠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예레미야에게 이르러 불사른 책의 모든 말씀을 다시 기록하게 하고 그 외에도 다른 말씀을 더 하였다. “이에 예레미야가 다른 두루마리를 가져다가 네리야의 아들 서기관 바룩에게 주매 그가 유다의 여호야김 왕이 불사른 책의 모든 말을 예레미야가 전하는 대로 기록하고 그 외에도 그 말을 많이 더 하였더라”(렘 36:32)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찢고 불사른다고 하여도 결단코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당시 백성들의 가증스러운 범죄로 말미암아 십계명을 깨뜨렸을 때에도 하나님은 다시금 십계명을 새겨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능히 낮에 대한 나의 언약과 밤에 대한 나의 언약을 깨뜨려 주야로 그 때를 잃게 할 수 있을진대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능히 낮에 대한 나의 언약과 밤에 대한 나의 언약을 깨뜨려 주야로 그 때를 잃게 할 수 있을진대”(렘 33:20)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 1:2)를 기억하게 한다. 율법에는 낮에 지켜야할 법이 있고 밤에 지켜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야(낮과 밤)로 여호와의 율법을 묵상하지 않으므로 인하여 악인들의 심판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시 1:5) 여호와의 언약을 주야로 지키게 되면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의 은혜를 받는다. 낮에 해 있을 때에도 밤에 달이 떠 있을 때에도 은혜를 주신다는 것이다.   낮에는 햇볕을 주셔야 하고 밤에는 원수들과 짐승들의 공격으로부터 생명과 재산을 주신다. 그래서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감사와 보호하심의 기도를 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아침 시작을 기도로 하시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감사함으로 기도를 하셔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천지를 지으시고 우리들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그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아버지께 행하고 구하면 되는 겁니다.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시 115:8) 왜 우상을 섬기는가?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말씀도 하시고 편 팔과 손을 움직이셔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을 하셨다. 그러나 돌이나 금속으로 만든 우상은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한다.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시 115:7) 살아 있는 작은 생물도 소리를 내는데 우상은 소리를 내지 못한다. 즉 우상은 작은 생물보다도 못한 것이라는 것이다. 생명도 없는 돌 앞에서 정성을 비는 자들의 수준 또한 어리석다함을 말한다. 우상이나 우상에게 절하는 자의 수순이 같다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말씀도 하시고 기도하는 자들의 소리를 들으시고 고난을 당하는 자를 찾아 가시며 죄악에 빠진 자를 구원하여 주신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왜 우상숭배를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내 욕심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무속 신앙은 지역신이라 합니다. 바닷가에는 용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다를 다스리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우주만물과 천지를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될 때에 우상숭배에서 자유로워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얻은 자들은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믿게 됩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송축하리로다 할렐루야

  “우리는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송축하리로다 할렐루야”(시 115:18) 여호와를 영원까지 송축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영원히 건재하다는 것을 말한다. 송축한다는 것은 살아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다. 죄와 사망의 심판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없었으면 이 세상은 완전히 멸망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홍수 가운데서도 노아를 구원하셔서 인류의 보존과 생육과 번성을 주셨다.   또한 하나님을 반역하는 니므롯이 사는 시날 땅에서 아브라함을 구원하셔서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다. 이와 같이 세상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다.   하나님의 구원을 얻은 자들에게는 영생이 있어서 어떠한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고후 4:8) 총과 칼이 협박을 한다고 할지라도 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 4:9) 왜 그런가 하면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결론적으로 말하면 모든 구원의 영광은 하나님께 있으므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비밀과 영광을 알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자랑은 예수 그리스도만 있게 됨을 알게 됩니다.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고전 1:31) 이와 같은 믿음을 가져야 여호와 하나님을 영원토록 찬양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곧 너희와 너희의 자손을 더욱 번창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곧 너희와 너희의 자손을 더욱 번창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시 115:14))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에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을 만나서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말씀하셨다. 모세 오경이나 선지자들이 기록한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해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7)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약속한 자손이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 3:16)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으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9) 또한 이삭에게 약속한 안식할 수 있는 땅을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곳은 아버지의 집이다. 아버지의 집에 가는 것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통하여 갈 수 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야곱에게도 약속을 하셨다 어디로 가든지 함께 하면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는 것이다. “내가 너화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게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 28:15)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자들이 고난과 환난을 당할지라도 결단코 혼자가 아님을 말한다.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구원의 영광이 얼마나 큰지를 확인하였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므로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므로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시 115:1) 시편의 기자는 여호와 하나님 구원의 은혜를 찬양하고 있다. 그런데 그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이었음을 증거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섬기다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가 있다. 이방 신의 본산으로 가서 우상 숭배를 하여 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바벨론으로 잡혀가서 우상을 섬기다 보니 깨달은 것이 있다. 입이 있어도 말도 못하고 팔이 있어도 움직이지 못하더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방의 신들은 사람의 생각으로 만들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방신에게 구원을 청하였지만 오히려 고통이 가중되었다. 그런데 약속의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음을 확인하고 찬양한다. 그 구원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이었다. 자손들을 하늘에 별과 같이 많게 하고 약속한 땅을 후손들에게 주시겠다는 것과 어디로 가든지 함께 하며 반드시 돌아오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구원의 은혜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았지만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시고 값없이 선물로 주신 것이다. 그래서 시편의 기자는 이렇게 찬양을 한다.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므로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시 115:1)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전한 구원이 이루어졌음을 찬양하는 것이다.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져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6)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에 와서 온전히 이루어집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 3:16)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약속의 가나안인 천국을 즉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행 12:5) 본문의 상황은 긴박한 상황이다. 헤롯 왕이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하여 요한의 형제인 야고보를 칼로 죽이고 베드로를 잡아 옥에 가두었다. 그 때에 교회는 무엇을 하였는가? 베드로를 위하여 기도를 하였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행 12:5)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를 했는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이해를 위하여 여호수아서의 말씀을 살피려 한다. 가나안 정복을 위한 전쟁에 나가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수 1:7) 즉 주야로 여호와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라는 것이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 1:8) 그리하면 여호수아가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신다고 명령하셨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수 1:9) 이와 같은 약속이 여호와의 율법책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너를 대적하기 위해 일어난 적군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라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신 28:7)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초대교회가 옥에 갇힌 베드로를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습니다. 기도의 내용은 율법책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록된 대로 지켜 행하면 여호와께서 함께하셔서 승리를 주십니다. 오늘 본문의 교훈은 교회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에 대

레갑의 아들 요나답의 자손은 그의 선조가 그들에게 명령한 그 명령을 지켜 행하나 이 백성은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도다

  “레갑의 아들 요나답의 자손은 그의 선조가 그들에게 명령한 그 명령을 지켜 행하나 이 백성은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도다”(렘 35:16) 예레미야 34장에서는 예루살렘에 있는 고관들과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 않음으로 인하여 칼과 전염병과 기근에 죽임을 당할 것이라 하였다. 죽음의 저주를 받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음을 말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레갑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을 예루살렘으로 이주하게 하여 고관들 앞에서 살게 한다. 즉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자들에게 부끄러움을 주기 위함이다. “레갑의 아들 요나답의 자손은 그의 선조가 그들에게 명령한 그 명령을 지켜 행하나 이 백성은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도다”(렘 35:16) 약속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렘 35:19)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전하는 말씀은 우상의 자리에서 돌이켜 약속의 말씀을 지키라는 것이다. 그러면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지 않을 것이라 한다. 그것에 대한 증거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잘 지키는 자가 저 멀리 살다가 예루살렘으로 이주하게 된다. 이렇게까지 말씀에 순종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고 언약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이 가는 곳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심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포로로 잡혀 이방 나라로 가지만 언약의 말씀을 잘 지키던 자들은 나그네로 살다가 예루살렘 성전 안에 들어와 삽니다. 이제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누가 들어옵니까?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는 자들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 계약은 사람마다 각기 히브리 남녀 노비를 놓아 자유롭게 하고 그의 동족 유다인을 종으로 삼지 못하게 한 것이라

  “그 계약은 사람마다 각기 히브리 남녀 노비를 놓아 자유롭게 하고 그의 동족 유다인을 종으로 삼지 못하게 한 것이라”(렘 34:9)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에 맺은 언약에는 히브리 동족이 종으로 오면 칠년 되는 해에는 자유롭게 하여야 한다. 이 언약을 지키기로 히드기야 왕과 백성들이 계약을 맺었다. 그리하여 노비들에게 자유를 주었으나 시간이 지나자 다시 끌어다가 노비로 삼았다. “후에 그들이 뜻이 변하여 자유를 주었던 노비를 끌어다가 복종시켜 다시 노비로 삼았더라”(렘 34:11) 언약을 맺은 백성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자 여호와 하나님께서 진노하셨다. 즉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것이다. “너희가 돌이켜 내 이름을 더럽히고 각기 놓아 그들의 마음대로 자유롭게 하였던 노비를 끌어다가 다시 너희에게 복종시켜 너희의 노비로 삼았도다”(렘 34:16) 시내산 앞에서 언약을 맺을 때에 하나님과 백성들이 송아지를 둘로 쪼개고 그 두 조각 사이를 지났다. “송아지를 둘로 쪼개고 그 두 조각 사이로 지나매 내 앞에 언약을 맺었으니 그 말을 실행하지 아니하여 내 계약을 어긴 그들을”(렘 34:18) 그러므로 이제 언약을 기키지 않은 고관들과 백성들은 죽임을 당하여 새들의 먹이가 된다. “내가 그들의 원수의 손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먹이가 될 것이며”(렘 34:20)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대적하거나 거역을 하면 진노의 심판을 받습니다. 진노의 심판을 피하게 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으면 언약의 백성이 되어서 계명을 지킬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과 대적의 관계가 아니라 화목한 관계를 이루게 됩니다. 또한 사랑하는 관계가 되어 순종하는 자리로 나아가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구약의 말씀을 통하여 실패한 이스라엘을 통하여 교훈을 얻게 됩니다. 그 백성들을 고치시기 위하여 애끓는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본문의 말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 장의 말씀이나 뒤에 말씀을 살피어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며 다시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도록 경외하는 마음을 주실 것이라 약속하셨다. 그러면서 본문의 말씀이 등장을 한다. 그리고 영원한 약속을 어떻게 이루실 것인지를 예레미야 33장에서 자세히 소개를 하고 있다.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그 모든 죄악을 정하게 하시며, 다시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게 한다는 것이다. 그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다윗의 집에서 의로운 가지가 날 것이라 한다.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렘 33:15)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겠고 백성으로 택함을 받으며 하나님의 의를 전가 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원한 제사장이 되셔서 우리들의 죄를 사하여 준다.   이렇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면서까지 이스라엘의 구원과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하는 것은 믿음의 선조들과 맺은 약속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본문의 말씀인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하신 말씀을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이루려 하시는 일에 대하여 부르짖으며 지혜를 구하면 알려 주고 가르쳐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말씀을 인용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된다하여 자기의 욕심을 구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믿기 위해서는 예레미야서를 묵상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은혜가 더 풍성하기 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렘 3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렘 32:40) 예레미야 32장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 칠십 년을 마치고 돌아올 것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신다. 그것은 예레미야가 사촌의 땅을 사는 것이다. “내 숙부의 아들 하나멜의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는데 은 십칠 세겔을 달아 주되”(렘 32:9) 그리고 증서를 항아리에 담아 보존하게 한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 증서 곧 봉인하고 봉인하지 않은 매매 증서를 가지고 토기에 담아 오랫동안 보존하게 하라”(렘 32:14)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는 이유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선지자를 통한 가르침을 거역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등을 내게로 돌리고 얼굴을 내게로 향하지 아니하며 내가 그들을 가르치되 끊임없이 가르쳤는데도 그들이 교훈을 듣지 아니하며 받지 아니하고”(렘 32:33) 이제 새 언약을 통하여 흩어진 백성들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을 약속하신다. 새 언약으로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두어 다시는 떠나지 않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렘 32:40)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을 하시는 것 같지만 설득하고 납득을 하십니다. 말씀을 하셨는데 이해가 되도록 행위를 통하여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올 것에 대한 약속을 말씀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밭을 사는 것으로 믿게 합니다. 본문의 상황은 이미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였고 땅은 황폐되었습니다. 누가 그 땅을 사겠습니까? 오히려 예루살렘 주민들은 밭을 팔고 떠나는 것이 유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눅 16:29) 누가복음 16장에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가 나온다. 부자는 날마다 호화로운 생황을 하였고 거지 나사로는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음식과 몸에 헌데 투성이로 대문 앞에서 살았다. 그런데 부자는 지옥에 나사로는 천국에 올라가 있다. 이 이유가 무엇인가하면 하나님의 율법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되어 있다. 이 이야기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양과 염소의 비유이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예비한 나라를 상속받는 자들과 영벌을 받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배고프고, 목마르고, 헐벗고, 지나가는 나그네를, 병든 자를 싸매주며, 옥에 갖힌 자를 돌보았는가 아니면 외면했는가이다. 부자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라 하면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지옥을 갔더니 불 가운데에 고통이 심하였다. 그가 원하는 것은 나사로가 손 끝에 물 한방울을 입에 주는 것이었다.   이 고통을 아버지 집에 있는 오형제들에게 알려 줌으로 지옥을 오지 않게 하려 한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 나사로를 아버지의 집으로 보내달라는 것이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이르기를 죽은 자가 살아나서 형제들에게 전한다고 할지라도 듣지 않을 것이라 한다. 왜 그런가 하면 죄와 사망에서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임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부자가 말하는 것처럼 사기를 치는 자들이 있다. 천국을 갔다가 왔느니 지옥을 갔다가 왔다느니 한다. 그런 말을 할지라도 깨달음이 없다는 것이다. 오직 성령하나님의 역사로만 구원이 이루어진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죄와 사망에서는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은혜로 이루어집니다. 그 구원의 은혜를 성령을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입은 자는 부자가 당하고 있는 지옥의 불 속으로는 가지 않으며 죄와 사망의 고통도 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긍휼하신 분이신데

그가 반석을 쳐서 못물이 되게 하시며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셨도다

  “그가 반석을 쳐서 못물이 되게 하시며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셨도다”(시 114:8) 출애굽기는 구원의 책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원을 이루실지를 계시한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인방과 문설주에 바르면 하나님의 진노가 지나갔다. 또한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며 대적하는 자들에게 반석을 터트려 생수를 주셨다. 출애굽 사건과 바벨론에서의 귀환은 중요한 사건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전인류의 구속을 예표한다. 두 사건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포로에서 돌아오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에서 돌아 왔고 노예의 상태에서는 벗어났지만 아직도 죄의 고통의 상태에 있다. 잡힌 자에서 벗어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전적인 하나님의 능력으로 풀려나게 된 것이다. 죄의 고통과 사망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알게 하였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구원자이심을 깨닫게 한 것이다.   이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성육신을 하신다. 즉 하나님이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신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것이다. 그것을 본문에서 “그가 반석을 쳐서 못물이 되게 하시며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셨도다”(시 114:8) 하셨다. 죄에서 구원을 받는 기쁨을 생수를 마시는 비유로 하셨다. 목이 말라 고통하는 자들의 절규와 고통을 기쁨과 생명의 충족함으로 상징하는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하여 잘 알 수 있다.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눅 16:24)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구원자이심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고통과 억눌려 압제 당하는 상황에서 구원하여 주시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고통당하는 자들에게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행 11:15) 베드로가 욥바에서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비난을 했다. 그 이유는 이방인 집에 들어가 유숙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베드로가 할례자들에게 말하기를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이 임하였다고 한다.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행 11:15) 성령이 베드로를 통하여 이방인들에게도 전해진 것을 통하여 전하려는 것이 있다. 그것은 진리이며 교리이다. 무슨 말씀이가 하면 성령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적용을 시킨다는 것이다. 그 은혜는 택함을 받은 자 안에서 믿음을 일으키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을 하게 한다. 이것을 유효한 부르심이라 한다. 유효한 부르심의 은혜는 성령의 역사이다. 우리의 죄와 비참을 깨닫게 하시고 또 마음에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마음에 주인으로 모시는 믿음이 생기기 시작된다. 그래서 성령을 받은 자들은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행 2:37) 회개의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면 믿음의 고백으로 세례를 받게 된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 2:38) 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가 성령을 통하여 이방 땅에 전해진 것을 베드로가 보고 예루살렘에 올라와 전하는 것이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행 11:18)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유효적인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복이 있습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하나님의 의를 전가 받아서 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종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종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렘 31:1)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계시하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이 하나님의 안식을 위한 것이라 한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입었나니 곧 내가 이스라엘로 안식을 얻게 하러 갈 때에라”(렘 31:2) 그리고 이스라엘의 회복은 여호와 하나님의 인자하심의 사랑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렘 31:3) 옛적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을 하셨듯이 이번에도 사랑으로 구원하시겠음을 말씀하신다. 모세를 통하여 구원하셨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약속하셨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든 계획을 세우시고 이루시지만 구원을 달라고 기도를 하여야 한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여러 민족의 앞에 서서 야곱을 위하여 기뻐 외치라 너희는 전파하며 찬양하며 말하라 여호와여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소서 하라”(렘 31:7)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을 송아지가 멍에를 맨 것으로 표현한다. 그 고통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자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것이라 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하나님께서 선물로 은혜를 준다고 할지라도 구하여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여러 민족의 앞에 서서 야곱을 위하여 기뻐 외치라 너희는 전파하며 찬양하며 말하라 여호와여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소서 하라”(렘 31:7)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이와 같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가 누구리요 높은 곳에 앉으셨으나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가 누구리요 높은 곳에 앉으셨으나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시 113:5-6) 여호와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며 주관자이시기에 영광과 권세가 무한하다. 무한한 영광을 갖고 계시는 하나님이 이 땅에 내려 오셔서 천지를 살피심을 찬양하고 있다. 왜 그런가 하면 연약하고 미천한 인간들을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아버지 같은 관심으로 돌보고 계심을 말한다. 죄악과 혼란과 무질서가 관영하는 곳에 질서와 평화가 주시기 위함이다. 낮고 천한 자였던 한나를 찾아 오셔서 복을 주심으로 인하여 선지자 사무엘이 나온 것이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삼상 2:8) 여호와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자를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세우신다. “지도자들 곧 그의 백성의 지도자들과 함께 세우시며”(시 113:8)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 계명을 지키며 사시면 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기둥으로 세우시는 이유는 이 땅에 질서와 화평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이러한 방식으로 뜻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라”(고전 1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