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014의 게시물 표시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 . 그런데 조금 아쉬운 것은 일사각오 , 또는 장엄하게 믿음의 생활을 하려 하는데 있다 . 즉 모든 일을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이다 . 그러다보니 소위 “ 인간미 “ 라는 것이 없다 .   그리스도인들은 교리를 배운다 . 그리고 그 교리가 삶에서 나타날 수 있어야 한다 . 그런데 우리가 오해를 하는 것은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성품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 성령의 열매는 권능이 아니다 . 그와 같은 성품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담대함과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   성령의 열매는 일상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낼 수 있는 것들이다 . 이 열매는 아무나 맺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반드시 성령으로 거듭난 자로서 성령과 교제를 통해서만 된다 . 그렇게 함으로 인하여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이 계심을 증거하는 것이다 .   사람이 사는데 있어서 가장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 인간관계이다 . 만만하고 호락호락한 사람이 없다 . 저마다의 성깔과 독성을 가지고 있다 . 그러다보니 혹시라도 잘못하면 되로 주고 말로 되돌려 받게 된다 . 그뿐만 아니라 믿음의 공동체에서도 항상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   그리스도인들이 교리 가운데 가장 오해를 하고 이해를 못하는 부분이 성령론이다 . 많은 사람이 권능으로 역사한다고 생각을 한다 . 그러나 성경의 말씀을 자세히 보면 성령께서 특별히 권능을 베푸시는 부분이 있고 성품으로 나타내는 부분이 있다 .   성령이 충만하여 성품으로 나타내는 자들의 특징은 ,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자들이라 한다 . 우리가 이런 일들을 하는데 있어서 일사각오로 하는 것들이 아니다 . 일상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낼 수 있는 것들이다 .   믿음이 좋은 자들이란 결국에 인격이 좋은 자들이다 . 그 안에 성령과 교제하며 악한 말이나 악한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교회에 첫 발을 들이는 자들은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 그런데 가장 상대하기 힘든 사람들이 있다 . 삶 속에서 불행이 가득하여 낙심하고 슬픔에 빠진 자들이다 . 이러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구원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한 삶이다 .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자들이 교회 안에도 너무나 많이 있다는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함을 받은 자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거룩함이다 . 그리스도와 함께 거룩한 자가 되어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 서는 것이다 . 그러므로 거룩한 자가 되면 행복은 부산물로 받게 된다 . 그러나 이단들은 거룩이 아니라 행복이라고 한다 .   그 옛날 길거리 모퉁이에서 팔던 불량식품이 있었다 . 값이 싸고 손쉽게 구하여 먹을 수 있지만 몸에는 해로운 것들이다 . 시중에 돌고 있는 테이프나 CD 들 가운데 불량한 내용을 담은 것들이 너무 많다 . 그 이는 거룩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   천박한 내용으로 기독교의 복음을 혼란케 한다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된 복은 창세 전에 준비된 신령한 복이다 . 하늘의 신비로운 복이다 . 그런데 저들이 주장하는 것은 이 땅에서의 물질의 복이다 . 그러다보니 성경의 인물들 가운데 소 떼 , 양 떼를 받았던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   구약의 인물들 가운데 아브라함 , 이삭 , 야곱이 있다 .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는 것을 눈으로 확인시키는 방법이 가축의 수가 늘어나는 방법이었다 . 그리고 그들과의 약속을 통하여 이스라엘 나라가 세워지게 된다 . 약속을 통하여 하나님의 복은 점점 더 크고 신비한 것으로 나타난다 . 죄인의 구원을 위하여 메시야를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다 . 그리고 메시야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알게 되었다 . 즉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실체를 알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   길거리에 돌고 있는 테이프나 CD 의 내용들은 물질의 복 받는 비결 , 행복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집을 출발하여 132 시간동안에 한국을 다녀왔다 . 건강검진 받기 전날부터 금식을 하고 당일 날에는 주사 바늘에 찔리고 , 카메라 달린 기구가 몸속을 마구 휘젓고 다녔지만 아무런 감각이 없었고 , 각종 검사를 다 하였지만 몸에 특별한 이상은 없어서 감사와 기쁨으로 마치었다 .   또한 가깝게 지내던 지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 대화중에 단연코 으뜸인 주제는 교회 안에 있는 분쟁의 이야기였다 . 그런데 분쟁의 시작은 인간관계로 시작이 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 사소한 감정으로 시작을 하다가 일이 점점 커지면서 신학적인 문제로 발전하게 된다 .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적인 구조는 강자와 약자로 되어 있다 . 이것을 좀 더 구체적인 관계로 표현을 한다면 ‘ 갑 ’ 과 ‘ 을 ’ 이다 . 그래서 언제나 주도권은 ‘ 갑 ’ 이 쥐고 있고 , ‘ 을 ’ 은 언제나 ‘ 갑 ’ 의 지시를 받아야 한다 . 그러다보니 사람이 모인 곳이라면 은연중에 이런 관계가 형성이 된다 .   교회 안에서의 문제도 이러한 ‘ 갑 ’ 과 ‘ 을 ’ 의 관계로 인식하는데 있어서 문제가 된다 . 담임 목회자와 장로들 간에도 , 장로들 간에도 이러한 문제로 얽혀 있다 . 그러나 교회 안에서는 모두가 ‘ 을 ’ 이다 . 우리 주님이 ‘ 갑 ’ 이다 . 목사나 장로들은 ‘ 을 ’ 의 입장에서 ‘ 을 ’ 에 속해 있는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자들이다 .   ‘ 갑 ’ 에 있는 자는 현재의 위치를 지속하려 하고 ‘ 을 ’ 은 기회가 되면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 . 특히 서열을 중요시하는 한국사회에서 이러한 문제가 더 심각하다 .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여야 할 교회에서도 늘 긴장의 관계는 지속된다 .   문제의 발단은 보편적으로 담임목사가 떠나고 새로운 목사를 청빙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 ‘ 을 ’ 의 입장에 있었던 자들이 이제는 ‘ 갑 ’ 이 되었다 . 그런데 새롭게 ‘ 갑 ’ 이 된 그룹 안에서 다시 ‘ 갑 ’ 과 ‘ 을 ’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물구나무서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우리들이 하는 일과 상관이 없이 시간을 흘러간다는 것이다. 낮이 지나면 밤이 오고 밤이 가면 낮이 다시온다. 창조주가 정하신 방법에 따라 인생도 피었다가 지고마는 것이다. 이 짧은 내용속에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며 무능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인간들은 창조주가 이미 만들어 놓은 별 하나를 발견하고 우주 전체를 아는 것처럼 기뻐한다. 그동안 숨겨진 별 하나를 찾았을 때의 기쁨이 그렇게 크다면, 창조주를 만났을 때는 얼마나 기쁜지 상상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는데 있어서 누구나 쉽게 만날 수가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먼저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한다. 세상과 구별된 자이어야 하고, 의로운 자이어야 한다. 그리고 흠이 없고 티가 없는 정결한 자로서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 서서    영광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거룩한 자로서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수 있고 만날 수 있는 지혜가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니 그리스도를 통해서 지혜, 거룩함, 의로움, 구속함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다는 자격이 있다고 함을 말한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 비밀을 깨달은 이사야와 바울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하나님은 자신을 나타내시고 알게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이다. 즉 하늘의 신령한 복을 주시겠다는 의지를 나타내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믿음의 생활을 이 삼십년하였다면 믿음의 자태가 달라져야 한다. 아직도 물고기와 떡만 달라고 한다면 생명의 떡에 관한 말씀이 나오자 어렵다고 하였던 무리들과 다름이 없다. 한 평생 삶속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많이 안다면 그보다 좋은 일에 또 있을까!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에는 하나님이 요구하신 것과 사람의 생각에 의한 것이 있다 . 성경적인 믿음은 “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 라고 진술한다 . 즉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약속하시고 행하시는 것을 믿는 것을 말한다 .   사람의 생각으로 신에게 나아가는 것을 종교심이라 한다 . 자연의 이치나 인간의 생과 운명이 초월자에게 있다는 것을 앎으로 시작이 된다 .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방법이 어떠하냐에 따라 무속신앙과 종교로 나누어진다 .   무속신앙은 정성과 치성으로 빈다면 , 종교는 신에게 나아가는 의식이 있다 . 의식을 통하여 신을 만날 수 있다는 인간의 마음을 종교심이라 한다 . 그러니 우상의 형상을 띠고 있는 종교는 다 인간의 욕심과 종교심에 의하여 생겨난 것이 된다 .   소위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자들에게도 종교심으로 믿는 자들이 있다 . 자기만의 정한 방법이나 욕심과 욕망을 이루려 나오는 자들이다 . 이러한 행위는 결코 하나님에게 인정받을 수가 없다 . 그래서 특히 이방신을 섬기던 자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있다 .   사람은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없고 , 깨달음은 물론이고 , 알 수도 없다 .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하여 화목할 수 있고 , 만날 수 있고 , 깨달을 수가 있다 . 그래서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선생이 되는 것이다 . 즉 선생의 가르침을 받아야 만을 강조한다 .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 거룩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도덕과 윤리를 잘 지키는 자들의 고급함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크다 .   하나님의 거룩한 자들은 하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고 실천하는 자들을 말한다 . 즉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어떻게 임하였으며 ,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알고 그 사랑을 그대로 실천하는 자들을 말한다 . 그러니 이 땅에 거룩한 자가 많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흥왕하여 짐으로 인하여 평안이 임하게 되는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한다 . 왜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데 예수님을 알아야 하는가 ? 그 이유는 예수님을 알면 그의 얼굴에 빛의 영광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이다 .   기독교에서는 금욕주의를 배제하고 있다 . 즉 인간의 본능을 억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그러나 타 종교들은 금욕주의를 외치고 있다 . 무소유 , 무상무념을 외치고 있다 . 하지만 기독교는 인간의 본능을 거룩하고 선한 것을 위하여 거듭나게 한다 .   성경 말씀을 보게 되면 분노를 발할 수 있다고 한다 . 그러나 해를 넘기지 말고 마귀가 틈을 타지 못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 기독교는 무소유의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 . 오히려 이마에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하라고 한다 . 그런 다음에 선한 일을 위하여 자비와 긍휼을 베풀라고 한다 .   또한 마음을 비우는 종교가 아니다 . 하나님의 선하심을 깨닫고 채우기를 소원한다 . 즉 하나님의 거룩과 선을 이루기 위한 욕심은 성령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그러나 자기의 욕심을 이루기 위한 악한 욕심은 벗어 버리라 한다 .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성령 하나님이 내재하심으로 인하여 인간의 본능의 성향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 악과 친숙하였던 본능이 이제는 거룩과 선을 향하여 행할 수 있게 되었다 . 이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다 .   타 종교는 악한 것들을 억제함으로 악행을 하지 않기 위한 수행을 한다 . 그러다보니 금욕주의를 주장할 수밖에 없다 . 육체를 학대하고 고행의 길을 감으로 인하여 욕심과 정욕을 지치게 한다 . 그러므로 선하게 살 수 있다고 한다 .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말씀을 전하는 자들 가운데 무소유 , 무상무념을 주제를 택한다 . 그러면서 타종교의 철학으로 긴 시간을 채운다 . 그리고는 또 교인들이 복 많이 받아서 거부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도 한다 . 이것은 누가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 유유상종 ” 이란 말이 있다 . 서로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사귀거나 , 끼리끼리 모인다는 뜻이다 . 새들은 새들끼리 , 동물은 동물들끼리 모인다는 것을 봄으로 인하여 이 낱말의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그래서 사람들도 끼리끼리 논다고 한다 .   성경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빛의 자녀라고 한다 . 왜 그런가 하면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을 나누기 위함이다 . 즉 그리스도인이 비그리스도인들에게 더 강한 영향력을 끼치며 착한 행실에 본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   빛의 자녀가 될 수 있는 능력은 칭의의 은혜로 이미 확정지어졌다 . 중생한 자에게는 빛의 자녀로서 빛을 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 그런데 이것은 신자가 스스로 깨달아서 빛을 비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   그리스도인들은 옛사람과 새사람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 옛사람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의 착한 행실을 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 그것은 심령이 새로워져야 한다 .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 즉 진리의 말씀으로 거룩해져야 함을 말한다 .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빛의 자녀로서 빛을 발할 수 없다는 것이다 . 구원의 궁극적인 목표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까지 도달하여야 한다 . 그분을 알므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 .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진리의 말씀을 살피는 것을 싫어한다 . 심지어 성경책도 없이 예배에 참석하기도 한다 . 설교본문 말씀의 범위 안에서 말씀 전하는 것을 싫어하고 예화나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하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 그러다보니 빛의 자녀로서 빛을 발할 수 없게 되었다 .   하나님을 자기들의 마음대로 믿다가 보니 끼리끼리의 집단이 형성되었다 . 그러다보니 분쟁과 분파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종들이다 . 그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이 되었다 .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인이 믿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리를 알아야 한다 . 교리를 모른다는 것은 마치 몸에 뼈가 없는 것과 같다 . 홀로 서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고 활동도 못하여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기도의 생활은 특권이며 중요한 일이다 . 그런데 간구와 책임의 한계를 모르고 생각없이 기도하는 자들이 너무 많다 . 그리스도인은 구원을 얻으므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여야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   옛사람을 벗어 버리는 일이다 . 악한 욕심으로 인한 추한 것들을 말한다 . 성경의 진술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된 자들에게는 이러한 것들을 버릴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한다 . 예수 그리스도를 알았다는 것은 죄가 무엇인지를 알았다는 것이다 .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깨달았다 . 그렇다면 이제는 죄에 대하여 종노릇하는 것에 대한 무서움을 알게 된 것이다 .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 의의 종으로 나가야 함을 깨달았다 . 이 문제를 알고 깨닫게 하기 위하여 교회에 목사와 교사를 허락하셨다 .   옛사람의 못된 습성을 새롭게 된 자가 버려야 한다 . 그런데 이것을 기도로 해결하려는 자들이 있다 . 자기의 마음을 다스려 달라는 것이다 . 이러한 기도가 아주 고급한 믿음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 만일 그렇다면 사도들은 교회들에게 서신서를 보내지 않았어도 될 일이 된다 .   사도들은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을 기도로 해결하라고 쓰여 보낸 적이 없다 . 사도들은 지속적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와 교회에게 전하고 있다 . 악한 동무를 사귀지 말라 , 악한 욕심으로 생각하지 말라 , 유혹에 흔들리지 말라 ,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 .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라는 것이다 . 그러기 때문에 먼저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 그런데 자칭 기도의 사람이라 하는 자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