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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

나는 지난 나흘 동안 고열과 통증으로 인하여 고생을 했다. 오한과 식은땀이 계속 진행되었다. 추워서 몸이 부들부들 떨리다가 또 식은땀이 나고 온몸이 다 쑤시고 아팠다. 나흘이 지난 지금 느낄 수 있는 것은 편도선에 염증으로 인한 고통이다. 말을 할 수도 없고 음식물을 삼키는데 아주 고통스럽다. 새벽예배는 희한한 변조된 목소리로 인도를 하였지만, 오전 성경공부는 취소를 하였다. 오한이 일어나는 것과 식은땀은 반드시 따라오는 수반현상이라 한다. 내장의 장기가 갑자기 높은 온도로 올게 가게 되면 피부에서 느끼는 현상은 추위이며 온몸이 떨리게 된다. 그러면 피부의 온도를 장기의 온도에 맞추게 되면 온몸에서 심한 열이 나며, 몸은 다시 체온을 정상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식은땀이 난다고 한다. 그래서 옛날 어른들이 감기몸살이 나면 콩나물국에 고춧가루를 듬뿍 넣어 얼큰하게 먹고 땀을 흘리며 한숨 자고나면 난다고 한 말이 생각이 난다. 이러한 현상이 내 몸에서 일어났었지만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고통이 찾아오기에 인터넷을 찾아보니 열이 나면 빨리 의사를 찾아가야 한다는 답변이 제일 많았었다. 세균이 내 몸에 침투를 하면 전쟁이 시작되는 현상으로 열과 고통이 나타나는 것이다. 즉 세균이 침임을 하면 잠복기를 거쳐서 반응과 현상이 나타난다. 그런데 묘한 것이 바로 이단들이 이와 같은 전법을 쓴다는 것이다. 이단이 교회에 침입을 하면 바로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잠복기간을 가지면서 눈치를 살피고 있다. 그들의 목적은 교회를 접수하고 파멸의 길로 가는 것이다. 제가 아는 목사님은 이미 이단의 침투로 인하여 심한 고생을 하신 것 같다. 그래서 기도 중에 문뜩 생각이 난 것이 주일 예배 때에 옆 사람과 인사를 하게 되는데, 서로를 향하여 '당신은 신천지나 이단은 아니십니까?' 라고 인사를 하면, 대답은 '절대 아닙니다'라고 하면 어떻겠느냐고 페이스 북에 글을 올린 것을 보았다. 이단들은 얼마 전까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나라가 잘 살기 위하여 입법부에서는 법을 제정한다. 이곳이 국회이다. 그런데 국회의원의 사상과 이념에 따라 진보와 보수로 구분을 한다. 그런데 각 정당들의 요즘에 주요 정책 사안이 복지에 관한 것들이다. 즉 나라의 살림을 맡겨 주면 끝내주게 잘 살게 해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당 몇 백 만원을 주겠다는 공약에서부터, 무상교육에 무상 급식에, 노인 우대 정책을 펴겠다는 약속들이 공약되어 있다. 이 이치는 참으로 간단하다. 나라는 국민의 세금을 거두어 살림을 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무상으로 시행되는 정책이 많을수록 백성들은 세금을 많이 내야한다. 그러니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은 별로 손해 볼 것이 없으니 무조건 찬성이고, 반대로 가진 것이 많은 자들은 두손두발을 들고 반대를 하는 것이다. 올 겨울에 대선을 치룰 후보들은 두 부류 사람들의 마음을 다 빼앗을 수는 없다. 그러니 표심의 눈치를 보다가 많은 쪽으로 관심을 표명하게 된다. 교회에서도 새 해 예산을 세우다 보면 의견이 분분한 항목이 구제 사업이다. 교회 전체 예산에 비해 너무 적다는 여론과 그만하면 됐다는 여론이다. 그런데 대립된 의견을 자세히 들어보면 구제 사업의 대상의 범위 때문이다. 즉 이것을 하고자 하니 저것이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다. 부모를 공양하는 일이 가족이 책임을 져야 하는가, 아니면 나라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에 문제이듯이, 교회에도 가정이 책임이 져야 할일이 있고 교회가 책임을 질 일이 있는 것이다. 세상이 변하여 자기를 낳아준 부모를 나라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오늘도 핏대를 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무능한 젊은이들도 나라가 취직을 시켜 주어야 한다고 한다. 성경에서는 가정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성령 충만을 받은 자는 먼저 가정에서 아내의 자리에서 순종을 하고 남편은 자기 몸을 사랑하듯 아내의 몸을 사랑하라고 한다. 그리고 자식은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는 자식을 노엽게 하지 말고, 상전은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몇 일 전에 스승의 날이 있었고 내일은 스승의 주일이다. 노랫말에도 있듯이 '스승의 은혜는 하는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라고 불렀었다. 그런데 교사의 권위가 실추가 되어 말이 아니다. 세상이 많이 바뀌면서 변한 것이 많다. 그렇다할지라도 교사들이 그 자리를 본연의 자세로 지키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일부의 교사들은 학문의 내용을 가르치고 전수하여야 하는데, 돈벌이로 생각을 하여 돈에 양심을 팔아 모든 교사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 잘못된 교사들의 부정적인 면만을 보고 자란 어린이들은 또 다시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성경 말씀에 심은 대로 거둔다는 법칙이 있다. 이것이 농부에게만 적용되는 법칙이 아니라, 모든 이치에 적용이 된다고 한다. 참된 스승 밑에서 훌륭한 제자들이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학교는 참된 선생이 많은 곳이다. 학문을 가르쳐 깨우치게 하는 것이다. 지상의 교회들은 교회 학교 또는 주일학교가 있다. 주일학교와 세상의 학교와는 교육의 내용이 다르다. 교회학교는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로 만들어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 즉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곳이다. 지금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출세와 성공가도를 달리기 위한 교육이다. 주변에 있는 급우와 친구들이 모두 경쟁자들이다. 이러한 구도 속에 친구의 관계가 형성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늘 이기적이다. 나만 잘되면 된다. 이기적인 분위기에서 공부한 사람이 출세를 하면 금방 이웃에 선을 행하는 자로 바뀌냐는 것이다. 나의 출세를 위하고 나의 돈벌이에 목적을 두고 의사가 된 자들이 많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의 생명을 담보로 잡고 파업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의사가 되면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자들이다. 1948년 제네바 선언이다.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음에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나의 은사에게 대하여 존경과 감사를 드리겠노라. 나의 양심과 품위를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교인들 가운데 주일날 교회에 나오는 것이 하나님에게나 목사에게 큰 선심을 쓰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본인은 교회에 나와야할 이유가 없는데 하나님을 위하여 목사를 위하여 온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왔으니 오히려 하나님이나 목사님이 나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도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패망을 하였는데, 그들이 그와 같은 생각을 하였었다. 그들은 하나님은 성전에만 계시기 때문에 성전만 짓고 제사만 드리면 택한 백성으로서 할 의무를 다하였다고 한다. 그들의 이와 같은 생각은 하나님의 뜻과는 다르다. 하나님이 그들의 선조를 택하여 가나안에 들어가게 한 것은 번제나 제사제물을 받기 위함이 아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택한 이유는 거룩한 백성이 되고 제사장의 나라가 되어서 이방나라에 하나님을 알리고 전하기 위함이다. 거룩한 자가 되어 거룩하신 하나님을 알리는 일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사람들과 다름이 없었다. 성전 밖에서의 삶은 이방신을 섬기다가 성전에 올라오면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자들이라 하며 제사를 드린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행위를 가증한 것이라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된 생각은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만 크게 웅장하게 멋있게 지어드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들은 법궤가 광야에 그리고 성막에 있었던 것을 생각하며 하나님을 잘 모시지 못하였다고 생각을 하여, 비바람이 불어도 안전한 성전 안으로 모시면 그들이 할 일을 다 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니 하나님은 성전 안에만 계시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의 생각과 뜻대로 살기로 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방사람보다 더 악을 행하며 부정을 저질렀다. 그리고는 제물을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제사를 드렸지만 하나님은 제사를 받지 않으셨다. 심지어는 제사 제물로 드린 것을 너희끼리 나누어 먹으라고 까지 하였다. 하나님이 안타까워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 오늘날에도 주일날 교회만 나오면 신자로서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

수십 년 전만 해도 선진국에 도움을 받아야 했던 대한민국이 지금은 모든 면에서 뛰어난 민족으로 변했다. 거기에는 지칠 줄 모르는 도전 정신과 개척의 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사람은 지구촌 모든 곳에 살고 있다. 정착한 땅에서 한국의 문화와 풍습의 전통을 잘 지키고 있다. 한국 사람들의 먹거리 가운데 산나물을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 봄철이 되면 고사리를 꺾으러 산으로 간다. 그런데 이 일로 인하여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고 때로는 불법을 행하는 상식이 없는 민족으로 인식이 되기도 한다. 한국 사람들은 고사리로 반찬을 만들기도 하고 또 육계장을 끓일 때에 함께 넣으면 고기와 어울러져 맛을 더한다. 그런데 고사리가 산에 습한 곳에서만 자라고 봄철에 꺾어야 부드럽다. 그리고 2~3주 동안에 채취를 하여야 한다. 그래서 이 시기가 되면 난리가 아니다. 이미 미국에서 문제가 되어서 아예 채취를 못하는 지역이 있고, 채취를 하더라도 일정량으로 제한을 하는데도 있고, 마음껏 꺾을 수 있는 곳도 있다. 그리스도인은 고사리를 꺾으러 가서도 고급한 인격이 나타나야 한다. 우선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불편이나 혐오감을 주어서는 아니 된다. 음식물 찌꺼기는 물론이고 용변을 본 후에도 깨끗하게 처리를 하여야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산 속에 차를 몰고 가서 숙식을 하며 그곳에 솥단지를 걸어 놓고, 삶아서 말리는 작업도 한다. 우리의 먹거리 문화로 볼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미국인이나 외국인의 눈에는 낮이 설을 장면이 될 수도 있다. 고사리의 새순은 초식동물을 위한 것이다. 동물의 먹을 것을 싹쓸이를 하면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동물들이 사람이 사는 마을로 내려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려오는 동물들을 행하여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이것은 이기적인 인간의 마음이다.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한 것들을 다스리고 번성하며 생육하는 책임을 부여 받았다. 그렇다면 초식동물은 산에서 풀을 먹고 살 수 있게끔 하여야 한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오늘은 어버이 주일이다. 그래서 양 동주 작사, 이 홍렬 작곡. 어머니 마음(은혜) 노래도 불렀다. 부르면서 코끝이 찡했었다. 어머니는 자식을 위하여 애쓰시고 희생하시는 삶은 늘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모든 종교가 부모에게 효도를 가르치고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부모를 공경하라 한 것도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유교의 효의 사상은 먼저 자기의 몸을 잘 다스릴 것을 요구한다. 몸이 성하여야 큰 일을 한다는 것이고, 자식의 몸이 상하게 되면 부모의 마음에 걱정과 근심을 끼치게 됨으로 인하여 불효가 되고, 그리고 사회에서 출세를 하여 높은 자리에 오를 때에 부모의 이름도 함께 유명하게 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어떤 내용을 가지고 있는가? 십계명을 보면 제 5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이며 말씀이다. 제 1계명에서 제 4계명 까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제 5계명에서 제 10계명 까지는 이웃과의 관계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에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이 나온다. 이것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데 기본이 되며,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시작이 되는 것이다. 공경이라는 단어는 경외하며 섬기는 것을 말한다. 부모의 권위에 복종을 하고 경외하고 섬김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권위를 기초로 하여 이웃과의 관계도 시작이 된다. 부모를 잘 공경하는 자는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 장수의 복이다. 율법에서는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 돌로 쳐 죽이라고 하였다. 나의 육체의 생명을 주신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을 하고 섬길 수 있다. 부모의 말씀에 순종을 함으로서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다. 즉 내 위에서 나에게 명령하고 지시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겸손을 배울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먼저 겸손이 필요하다. 인간은 반드시 하나님의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오늘은 어린이 주일이다. 어린이는 보배이며, 희망이며, 미래의 기둥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수고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앞날을 그냥 구호만 외치면 되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세대가 책임을 지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것이 성경의 지적이다. 인간은 지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다른 피조물과 달리 공구나 기계를 다룰 줄 안다. 그래서 배움과 깨우침을 통하여 인격을 형성한다. 그리고 배움에는 시기가 있다. 산업혁명으로 인하여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그 시대의 부모들이 아이들을 노동력으로 이용을 하여 나라가 아이들을 교육하는 일을 부모로부터 빼앗은 것이다. 이것이 나라가 시행하는 의무교육이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자녀의 교육을 부모가 책임지라고 한다. 하나님을 알게 하는 일에 전심전력을 다하라고 한다.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해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가르치라고 한다. 즉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보여주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이방신을 섬겼다. 이것에 대한 책임을 부모의 세대에게 묻고 있다. 여호수아와 그 시대의 장로들이 죽자 그 다음 세대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다고 한다. 즉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전하거나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통적으로 율법과 규례를 지키고 있다. 그들은 분명히 전하고 가르쳤지만 다음의 세대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외침은 있었지만 자녀들은 중요함과 필요함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자녀의 세대들은 그들이 좋아서 이방의 신들을 택하고 섬긴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보다 이방의 신들의 능력을 더 믿은 것이다. 이것은 부모의 세대에게 책임이 있다. 부모의 세대가 이방의 신을 섬기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며 자라난 자녀의 세대들은 자연히 이방의 신과 가까워진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의 결과를 봐서 알 수 있듯이, 다음 세대의 운명은 지금 부모의 세대에게 달려 있다. 지금의 부모의

그는 어느 민족에게도 이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셨나니 그들은 그의 법도를 알지 못하였도다

신자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내게 임한 은혜로부터의 감사의 찬양이다. 그냥 하나님이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어서 찬양을 하는 것이 아니다. 억압이 아닌 인격적인 찬양이다. 그러니 하나님을 힘을 가지고 인간들에게 위협을 하며 심술을 부리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말한다. 나에게 어떻게 다가오시고 나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를 알 때만이 찬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이 약속을 하셨는데 그 약속을 신실하게 이행하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또한 그 약속을 지키시는데 한 치의 오차나 거짓이 없이 사랑과 자비로 베풀어 주신다. 이와 같은 내용을 아는 자만이 하나님의 찬양을 당연히 여기고, 찬양하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라 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자만이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그 크기가 더 커져서 창조주로서 지존자로서 주관자이신 분으로 고백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역사의 아픔을 가지고 있다. 이방나라에 의하여 침략을 당하고 포로로 잡혀 갔던 일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이 이미 일어날 것을 선지자를 통하여 선포가 되었다는데 있다. 이미 들었는데 어리석게도 깨닫지 못함이다. 포로 잡혀가서 마음이 상하였고 온 몸은 상처투성이지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돌아오게 하여 그 상한 마음을 위로하여 주시고 상처를 감싸주시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말씀으로 계시가 되었다는데 있어서 그 백성들의 마음에는 안타까움이 더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계시하신대로 모든 일이 진행되었고 이루어졌다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또 놀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자들의 찬양이 성경에 기록이 된 것이다.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대로이다. 그래서 시편의 저자는 더 감사의 찬양을 한다. 다른 민족에게는 알리지도 않고 행하지도 않았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알리고 행하였다는데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이번 겨울에 있을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고 있는 대권주자들이 있다. 그들이 요즘 민심을 살핀다며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다. 즉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일은 적게 하면서 돈은 많이 달라는 것이고, 나라의 정책으로 먹고 사는 것을 책임져 달라는 것이다. 대권 주자마다 자기만의 독특한 해법이 있다는 것이다. 민생의 현안을 자기가 제일 잘 안다고 외친다. 이 시대에 적임자라고 한다. 이러한 연설이나 강연을 듣다가 보면 기분이 우울하여 지기도 하고 흥분이 되기도 한다. 또한 깊이 빠지다가 보면 우리들의 문제를 그들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신자들은 선거철에 누구의 말을 들으며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려 한다. 신자들 가운데도 하나님은 교회에만 계시고 세상에는 아니 계신 줄로 믿는 사람들이 있다. 즉 선거는 세상의 방법으로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내어 놓는 공약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호흡이 끊어지고 흙으로 돌아가면 그들의 생각은 소멸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약속하는 것들은 육체에는 도움을 주겠지만 우리의 영혼이나 생명을 살리는 일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이 공기와 물이다. 바다 물이 넘치지 않도록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여야 한다. 바람을 불게 하여 구름을 몰고 다니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여야 한다. 선거 때가 되면 정치에 푹 빠지는 신자들이 있다. 마치 우리들의 소망이 특정 정치인에게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자들이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나라의 권력자가 인간의 죄를 씻어 줄 수 없다. 또한 인간의 영혼을 만족시켜 주지도 못한다. 세상의 역사는 정의 평등 자유라는 외침 아래에서 서로 속고 속이는 것이다. 즉 정의를 만들기 위해서 정의와 정의가 싸우는 곳이고, 평등을 세우기 위하여 높이 서 있는 사람을 깎아야 하며, 자유를 유지하기 위하여 탄압이 있는 곳이다. 신자들

그들이 주의 나라의 영광을 말하며 주의 업적을 일러서 주의 업적과 주의 나라의 위엄있는 영광을 인생들에게 알게 하리이다

‘파란만장‘이라 함은 물결의 기복이 몹시 심한 것처럼 생활이나 일의 진행에도 변화가 심한 것을 말한다. 인생의 삶에 있어서도 이런 표현을 쓴다. 같은 상황과 처지에 있더라도 어떤 사람은 비관적인 생각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위기를 극복하고 후대에게 교훈을 전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있다.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이다. 다윗이 찬양을 하였던 상황은 왕궁에서 좋은 음식을 먹거나 권세를 누리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는 삶에서 고난과 환난 가운데 있을 때에 하나님의 도움과 구원을 호소하였다. 그리고 지난날들을 회상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우주만물을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이 나를 찾아 오셨고, 애굽에게 기이한 일을 행하시고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이 자기를 찾아온 것에 경의와 감사함을 찬양하고 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을 소개하고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찾아오신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 간구하고 있는 모든 자에게, 진실을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신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이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신다고 한다. 그리고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고 한다. 다윗은 시를 쓰면서 이것을 후대에게 알리고 싶고, 세상에 전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다윗은 삶에서 입으로 몸짓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전하겠다는 것이다. 하늘나라에서 있는 다윗은 지금도 세상을 향하여 이러한 진심을 전하고 싶을 것이다. 다윗이 전하고 싶은 것은 구원의 은혜를 직접 맛을 보고 체험하여 보라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은혜를 내가 직접 체험하여 보고 맛을 보아야 한다. 우리의 믿음의 현실은 다른 사람이 맛보고 체험한 것을 듣고 그리워하는 수준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간증 듣는 것을 좋아 한다. 이제는 내가 입과 몸짓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구원의 은혜를 맛보고 찬양을 하여야 한다. 이미 우리는 얼마나 큰 사랑을 맛보고 큰 구원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고 있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함을 호소하

그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전쟁하게 하시는도다

구약의 말씀을 읽다가 보면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전쟁을 하였다. 가나안에 들어가면 젖과 꿀이 흐른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곳에 들어가 가만히 앉아서 젖과 꿀을 먹은 것이 아니라, 먼저 그 땅에 살고 있는 일곱 부족을 쫓아내는 일을 하였고, 이방민족의 침략을 방어하는 전쟁을 수없이 하였다. 이것은 우리가 단순히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역사적인 사실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나안과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가나안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또한 구원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면 천국이 보장되어 있다. 그래서 신자들은 모두 천국에 갈 것을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천국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다윗은 수 없이 많은 전쟁을 치루었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바울도 엄청난 고생을 하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면 모든 것이 만사형통하고 매일 기쁨의 생수가 흘러나온다고 한다. 또한 기도를 열심히 하면 다 이루어진다고 한다. 다윗과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기도를 안 해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다. 그들은 분명히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자들이다. 또한 기도도 열심히 하였다. 그런데 그들에게 왜 고통과 근심의 나날이 지속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가나안은 전쟁이 없고 만일 전쟁이 나면 하나님이 다 막아주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다윗은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있다. 분명히 위험이 있고 적군의 화살이 날아오고 있다. 또한 이방나라와 전쟁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많이 죽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으면 고난과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실은 신자들의 삶이 더 피곤하고 고단하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전쟁과 환난 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보호하심과 인도하심과 구원하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