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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 천민자본주의 ” 란 단어를 위키 백과사전에서 ‘ 천민자본주의 는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처음으로 사용한 전근대사회에 있었던 비합리적이고 비인간적인 폐쇄적 자본주의 또는 그 소비 및 생산 문화를 뜻한다 .’ 라고 한다 .   요즘 한 TV 방송에서 인문학에 대한 강의를 소개하고 있다 . 그 이유는 인간의 존엄성 , 탁월성을 잊고 사는 세대들에게 깨우침을 주기 위함이다 . 천민자본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사회에서는 인간마저도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 돈을 잘 주고 많이 주는 기업에 입사하게 위해서는 그 기업에서 요구하는 상품이 되어야 한다 . 그래서 좋은 대학 , 성적 , 영어실력 , 해외연수 , 봉사활동 등 다양한 조건을 채워야 면접에 임할 수 있다 . 그리고 마음에도 없는 말로 면접관을 감동시켜야 한다 .   그러다보니 나 이외에는 모두가 적이다 . 심지어 친구의 부정행위마저 고발하는 상황이다 . 돈벌이를 위한 일이라면 비인간적인 행동을 서슴없이 한다 . 그래서 취업을 앞둔 학생들은 친구들끼리도 어울리지 않고 식사도 혼자서 하는 것이 일상이라 한다 .   자본주의로 인하여 인간성까지 후퇴가 되고 비인간적인 문화가 팽배하여지자 이것에 대하여 경각심을 주고자 하여 인문학계의 유명 인사들을 초청하여 강의를 하고 있다 .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사람을 창조하셨다 . 그렇지만 모두를 똑 같게 만드시지는 않았다 . 즉 닮은꼴이지만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 책에서 읽었던 이야기이다 . 상업광고를 찍기 위하여 같은 모양의 무늬를 갖은 개구리 두 마리를 찾았는데 , 수백 마리 개구리 가운데서도 찾지 못하였다고 한다 .   인간이라는 닮은꼴이지만 같지는 않다 . 같지 않다는 것은 다양함이 있다 . 피부의 색이 다르고 , 인종과 언어가 다르다 . 그리고 각 자의 성격과 생김이 다르다 . 이렇게 하나님은 인간들을 각각 모양대로 창조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사탄을 '거짓의 아비'라고 한다 . 그러니 사탄의 졸개들은 거짓말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한다 . 그런데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 거짓말을 아무런 죄의 감각이 하는 사람들이 있다 . 그로인한 파장은 크고 , 그리고 결과는 거짓이 드러남으로 인하여 형벌을 받게 된다 .   성경 말씀에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씀하셨다 . 그렇게 비유를 하신 것은 생명체라는 것이다 . 그래서 생명체는 유기적인 관계 속에 살아서 움직이고 성장을 하게끔 되어 있다 . 솔로몬의 재판을 통하여 생명체는 반으로 가를 수 없다는 교훈을 배웠다 . 진짜 엄마는 생명체를 가를 수 없어서 아이를 넘겨주는 것이다 .   오늘날 교회 안에 분쟁이 결국에는 분당으로 이어지고 결국에는 갈라서고 만다 . 그러나 분명하게 알아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둘로 나눈다면 둘 다 온전하지 못한 것이 교회사의 역사이다 . 즉 생명체를 반으로 나눌 수 없다는 원리가 적용된다 .   이 생명의 원리를 사탄은 거짓으로 말한다 . 갈라지고 떨어져 나와도 건강하게 잘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거짓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생각과 방식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가 자기의 뜻을 펼치는 것을 말한다 . 그런데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 거짓을 주장하는 자들은 자기의 생각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다 . 이 말은 자기가 하나님의 높은 자리에 앉아 있다는 표현이 된다 .   성경의 말씀 속에서 신비를 깨닫는다고 한다 . 그 말은 우주만물 속에는 물론 모든 것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다는 것이다 . 교회 안에서 역시 마찬가지이다 . 주님의 친히 세우셨다 . 그리고 교회가 어떻게 세워져야 하는지를 세밀하게 말씀하셨다 .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공부하는 것이다 .   교회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성경의 말씀을 왜곡하고 있다 . 성경 안에도 마귀가 등장을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인 구약에 나타난 말씀으로 예수님으로 시험을 하는 장면이 나타난다 . 여기에서 확인할 수 없는 것은 성경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도다

  지도자란 ? 백성들의 목적을 달성하고 백성들을 목적한 방향으로 이끌어 성과를 창출하는 사람이다 .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천개의 얼굴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 악에 대한 징벌을 하여야 하고 , 선에 대하여는 상을 주어야 하고 , 자비를 베풀어야 하고 , 정의를 위해서는 강한 의지를 나타내야 하는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   우리가 한 지도자에 대하여 평가를 할 때에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평가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 그러나 개인의 관심과 성향에 따라 평가를 하는 것이 사실이다 .   “ 목사가 변하여야 교회가 산다 .” 라고 한다 . 이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교회의 문제점이 무엇이며 , 목사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제기하여야 한다 . 그리고 성경 말씀에서는 무엇이라고 하는지 대안을 주장하여야 한다 .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교회 안에 오랫동안 교회의 발전을 막고 있는 무엇이 있는데 , 그 문제가 목사 때문이라는 것이다 . 그런데 그들의 주장을 보면 참으로 황당하다 . 목사의 설교 가운데 죄의 심판과 지옥에 대하여 외치지 말라는 것이다 . 그와 같은 설교를 하기 때문에 교인들이 떠나고 있다는 주장이다 .   이런 글들이 SNS 를 통하여 신자들 사이에서 흥미있게 전하여 지고 있다 . 소위 사람들의 인기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의 글이다 . 지도자라 자칭하는 자들이다 . 이와 같은 자들에게 우리 주님께서는 “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도다 ” 라고 하셨다 .   지도자라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교회를 세우신 이유를 알아야 한다 . 즉 피로 세우신 교회라는 것이다 . 그의 피로 구원을 받았고 , 그의 피로 구원이 필요한 자들이 모이는 곳이다 . 그래서 교회는 예수님의 피 값으로 속량을 받은 의로운 자들이 함께 한다 .   그러므로 의로운 자들은 그리스도의 보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자신이 자신을 사랑받을 만한 존재이고 , 어떤 일을 이룰 수 있다고 하는 자기를 위한 긍정을 자존감이라 한다 . 유럽나라들 가운데 어떤 나라들은 교육정책이 학생들의 자존감을 키우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 그러다보니 학생들의 나라별 수학과 과학 평가에서 상위권에 들지 못한다고 한다 .   반면에 아시아에 속한 나라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 그 이유를 경쟁을 통하여 발전한 나라들이기 때문이라 한다 . 아시아에 속한 나라들이 급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값싼 노동력에다 치열한 경쟁이었다는 것이다 . 그러나 이제는 치열한 경쟁을 통하여 상위권에 도달하여도 성공과 안정을 보장할 수 없다고 한다 .   치열한 경쟁의 교육과정을 이수하다가 보니 정작 개인에게 필요한 자존감이 없다 . 학업성적은 좋지만 자신을 믿을 수 있는 신뢰가 없다 . 지식의 습득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 진정한 지식을 깨우치게 되면 이전에 느끼지 못하였던 희열과 기쁨을 느끼게 된다 .   이러한 현상에 신자들에게도 나타난다 . 성경의 약속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우치게 되면 이전에 알지 못하였던 기쁨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 서신서의 주제는 “ 주 안에서 기뻐하라 ” 이다 . 이 기쁨은 피상적인 상태에서의 기쁨이 아니다 . 그리스도를 앎으로 생겨나는 것을 말한다 .   신자들에게 “ 감사 ” 와 “ 찬양 ” 이 없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다 . 여호와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시다 .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약속과 풍성함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진리를 습득할 때마다 이전에 알지 못하던 것들을 깨달으므로 인한 기쁨이 넘친다 .   성경공부 강사나 설교자가 기뻐하라고 한다든지 , 어떤 행위를 보고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다 . 진리의 말씀이 내 마음에 들어와 진리의 비밀을 알았을 때에 기쁨이 주안에서의 기쁨이다 . 그동안 우리들은 개그맨처럼 웃기는 목사를 기쁨을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우리의 자녀들이 학교를 가야 하는 이유는 한 인간을 고급스러운 인격체로 만들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채우고 훈련을 받기 위함이다 . 그러나 지금 학교 공부를 하는 이유는 분명히 다르다 . 왜냐하면 철밥통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기 때문이다 . 그래서 옆에 있는 짝은 친구가 아니다 . 같은 또래들은 전부 경쟁자이며 적군이 된다 .   어떤 것에 대한 본질을 지킨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 그런데 더 어려운 문제는 본질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오는 혼란이다 . 그것이 바로 공교육은 더 이상 교육이 아니라며 사교육을 주장하는 자들이다 . 본질이 무너짐으로 인하여 사교육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과 부모의 개인의 삶마저 포기하여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   교회 역시도 치열한 경쟁의 사회 속에서 세속적인 것들이 들어 와서 일부의 교회는 변질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이런 교회의 특징이 설교의 변질이다 . 설교의 시간이 짧고 형식이 알맹이 보다 더 중요하게 된 것이다 . 그리고 설교의 내용도 목사가 추진하는 사업에 대한 설명회 시간으로 변하였거나 변명의 기회로 삼고 있다 .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죄인들을 향하여 거룩함을 전하는 것이다 . 설교가 변질이 되다가 보니 교회가 이상하게 되어 버렸다 . 그래서 양복 입은 무당처럼 행하는 자가 있고 , 복채를 받고 예언기도를 하는 자도 있고 , 교인의 약점을 잡고 공갈협박을 하는 악한 교주들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자들이다 . 즉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자들이다 . 이제는 회개와 깨달음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 교회의 본질이 무엇이며 어디로 향하여야 하는지를 말이다 .   사람에게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다 . 그리고 두 번째 사망이 있다는 것이다 . 두 번째 사망을 피할 수 있는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자들이다 . 이것은 하나님께 정하시고 약속하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에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세상의 학부모들은 자식들에게 공부하라고 달달 볶는다 . 그렇게 하는 이유를 물으면 당연하게 자식을 위한 것이라 한다 . 그러나 그렇지 않다 . 거기에는 부모의 욕심과 욕망이 담겨져 있다 . 부모에게는 자신이 정한 때가 있는데 , 그 때가 되면 자식에게 더 이상 신경쓰지 않고 나만의 나대로의 삶을 살기 위한 욕심이다 . 더 쉽게 말하면 캥거루족이나 빨대족의 자식을 두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   그와 같은 욕심을 가진 부모들의 자녀들은 행복하지 않다 . 이미 지난 세월을 살아온 부모들로서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를 잘 알고 있다 . 오로지 성공만이 출세만이 생존경쟁에서 살길이라는 것이다 . 이 경쟁의 시작이 출신대학의 졸업장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그러니 명문대학에 입학은 경쟁사회를 향한 첫발을 내딛는 걸음이 된다 . 그래서 공부를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 그런데 자녀들이 부모의 생각이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다가 보니 청소년을 둔 가정에서는 늘 긴장과 갈등의 연속선상에 있다 . 그러나 부모들의 생각처럼 공부를 잘 했던 사람만이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은 아니다 .   사람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 . 그것은 사람을 만드신 창조주가 어떤 생각과 목적으로 사람을 만들었는가를 깨달으면 된다 . 처음 창조되었던 사람은 선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선하게 창조되었다 . 그래서 선한 일을 하도록 만들어졌다 .   선한 것이란 ,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으로 이웃에게 선행을 하라는 것이다 . 즉 나로 인하여 이웃이 복을 받는 것을 말한다 . 그러나 죄로 타락한 세상은 경쟁의 사회가 되었다 . 경쟁이라는 의미를 살펴보면 상대를 죽여야 내가 승리하는 구조이다 .   그리스도인의 부모는 자녀들에게 십자가의 도를 가르쳐야 한다 .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잘 할 수 있는 재능을 주셨다 . 이것을 달란트라고 한다 . 사람은 각 자가 갖고 있는 재능을 나타낼 때는 기쁨과 즐거움을 느낀다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 성전을 세우신 이유는 , 이 땅 위에도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 하나님이 계신 곳은 거룩한 곳이기에 제사장을 세워 거룩함을 지키고 세우게 하셨다 .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룩한 백성들이 되기 위하여 정결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성전에 나아가 제사를 드려야만 했다 .   그러나 택함을 받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룩함의 열매를 맺지 못함으로 인하여 성전이 파괴되고 민족이 흩어져야 하는 벌을 받았다 .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꺼내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다 . 그 이유는 이방나라들로 둘러싸인 곳에서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삶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저주를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하여 말씀하셨다 . 무화과나무는 꽃이 없이 열매만을 맺는 과실나무이다 . 즉 꽃을 보려하는 관상나무가 아니라는 것이다 . 오직 열매만을 맺기 위한 것인데 , 열매가 없다면 필요가 없게 되므로 도끼에 찍혀 불에 던져지게 된다 .   이스라엘 백성의 실수는 그들이 왜 가나안 땅에 들어왔으며 제사장의 나라가 되었는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 즉 나라와 백성들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몰랐던 것이다 .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은 자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을 택하신 이유는 왕같은 제사장이 되어서 거룩한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세상에 전하게 하기 위함이다 .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거룩한 나라의 백성답게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한다 .   그래서 세우신 것이 교회이다 . 우리를 말씀을 씻어 거룩하게 하기 위함인 것이다 .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어야 하고 ,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기억하여야 하며 , 죄가 머무르지 못하도록 정결을 유지하여야 한다 . 만일 교회 안에 이러한 것들이 시행되지 않고 있다면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2014 년 새해 아침이 밝았다 . 지난밤에는 각 자마다 가장 의미있는 것에 뜻을 두고 보냈을 것이다 . 지구촌이 한 바탕 열광의 분위기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 그러나 진정 무엇에 의미를 두고 난리를 쳤던 것인가 ?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허무하고 쓸쓸할 것이다 .   왜 그런가 하면 누군가에 의해 잘 짜이진 각본 속에서 그저 나는 흘러갔기 때문이다 . 왜 열광을 하는가 ? 모든 사람들에게 새 해가 밝으면 좋은 일들만으로 채워지는 것이 보장되어 있는가 ? 아니다 . 내일은 오늘의 끝을 붙잡고 시작을 한다 . 즉 오늘이 없이는 내일로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   세상은 그래서 우리를 속이고 있다 . 오늘을 흥분하여야 하고 설레야 희망찬 내일을 맞아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그러므로 밤문화가 활기를 띠고 있다 . 술에 취하고 음악에 취하면 오늘을 잊고 내일이 즐거울 것이라는 사탄의 속삭임에 넘어간 것이다 .   부지런한 농부는 씨앗을 준비하고 새벽에 동이 트기를 기다린다 . 부지런히 빨리 뿌려야 일찍 열매를 수확하고 맛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 내일에 무엇을 하여야 하는지를 아는 자는 오늘을 헛되이 보낼 수가 없다 .   그리스도인들은 송구영신 예배를 드린다 . 하나님의 교회는 축복과 풍요로움을 약속한 곳이다 . 그래서 믿는 자들은 악인의 장막에 거하는 것보다 성전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더 좋다는 고백을 한다 . 또한 말씀의 약속을 근거로 하여 감사 , 회개 , 결단의 시간을 갖는다 .   그리고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시고 시공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이 손길에 도움을 한다 .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다가올 두려움의 세계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는 결단을 한다 . 동일한 2014 년을 맞이하지만 어떤 사람은 누군가가 짜놓은 각본대로 삶을 살고 , 다른 어떤 사람들은 황홀한 감격의 시간을 맞이하는 삶을 살기도 한다 .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디로 가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