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023의 게시물 표시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 문은 닫고 다시 열지 못할지니 아무도 그리로 들어오지 못할 것은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그리로 들어왔음이라 그러므로 닫아 둘지니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 문은 닫고 다시 열지 못할지니 아무도 그리로 들어오지 못할 것은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그리로 들어왔음이라 그러므로 닫아 둘지니라”(겔 44:2) 솔로몬 성전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었다. 그런데 에스겔을 통하여 이스라엘 땅에 다시 성전을 세우실 것을 약속하신다. 여호와의 영광이 새 성전 동쪽으로 들어와서 떠나지 않는다고 약속하셨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 문은 닫고 다시 열지 못할지니 아무도 그리로 들어오지 못할 것은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그리로 들어왔음이라 그러므로 닫아 둘지니라”(겔 44:2) 그리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함을 보여 주고 있다.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을 통하여 성전 앞에 이르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한지라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   여호와의 영광이란 여호와의 말씀을 말한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진심으로 주목하여 내가 네게 말하는 바 여호와의 성전의 모든 규례와 모든 율례를 귀로 듣고 또 성전의 입구와 성소의 출구를 전심으로 주목하고”(겔 44:5) 이제 새 성전에는 마음에 할례를 받은 자들이 들어온다. 또한 이방인들도 마음에 할례를 받아야 하며 몸을 정결하게 하여야 한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이스라엘 족속 중에 있는 이방인 중에 마음과 몸에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인은 내 성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겔 44:9) 마음에 할례를 받은 자들은 세상에 것들을 잘라내고 하나님의 것을 붙잡는다. 이것을 신약에서는 세례를 통하여 확인한다. 즉 세상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하나님 앞에서는 산 자로서 율법을 지키는 믿음으로 증거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호와는 성전 안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거하시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실 때에 계시를 하셨습니다. 자신의 계시를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으로 나타내셨습니다. 마지막 때에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전하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시 137:6) 성경의 인물 가운데에 하나님을 떠나 수치와 고난을 당한 사람들이 있다. 삼손이나 요나가 해당이 된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욘 2:4)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니느웨로 가는 배를 탔다. 여호와께서 큰 물고기를 준비하시고 뱃사람들은 요나를 바다에 던졌다.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한다.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사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욘 2:9) 회개의 기도를 한다. 오직 나를 구원하실 분은 여호와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기도를 하자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에 토하였다.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욘 2:10) 삼손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블레셋 사람들이 잡혀서 머리가 잘리고 눈이 뽑히고 놋 줄에 매여 멧돌을 돌리게 되었다. 그 상황에서 다시 여호와를 의지하였다.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삿 16:22)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의 재주를 보기 위하여 삼천 명이나 모였다. 삼손은 마지막까지 여호와를 의지하였다.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녀 구하옵나니 니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삿 16:28) 그리하여 지붕이 무너져 죽은 수가 삼천 명이나 되었다. 이 수는 삼손이 살아 있을 때에 죽인 수보다 더 많았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본문의 말씀이나 요나와 삼손을 통하여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어떠한 고난과 상황이 오더라도 여호와 하나님을 끝까지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능력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에게만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시 137:1) 시편 137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을 때의 상황이다. 왜 우리가 포로로 잡혀오게 되었는가를 생각하며 슬픔에 잠겨 있다. 그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찬양할 때에 쓰던 수금으로 마음을 위로하고 있을 때에 남에게 고통을 주는 자들이 조롱을 한다. 고통을 주는 자들이 조롱하기를 불멸의 예루살렘과 전능한 하나님을 노래해 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시편의 기자는 악기 연주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즉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고 다른 나라의 통치를 받는 포로 생활의 상황에서 기쁘게 노래하는 행위는 예루살렘을 잊은 행위라는 것이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시 137:6) 그리고 이스라엘을 조롱하고 해악을 가하였던 나라들을 저주로 심판하여 달라 한다. 에돔과 바벨론을 그들이 행한 대로 갚아 달라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대적들을 복수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본국으로 귀환하게 해 주실 것을 소망하고 있다. “멸망할 딸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시 137:8)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 않으므로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바벨론 강가에서 예루살렘을 생각하며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정의의 심판 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택한 백성들을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슬플 때에 기도하고 즐거울 때에 찬양하여야 합니다. 이것을 구별하지 못하여 조롱을 당한 시편 기자의 고백입니다.

수일 후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와서

  “수일 후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와서”(행 25:13) 사도행전 25장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세상이 바뀌어도 진리는 변하지 않음을 말한다. 총독이 바뀌고 왕이 바뀌어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벨릭스가 총독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베스도가 부임하였다. “베스도가 부임한 지 삼 일후에 가이사라에서 예루살렘에서 올라 가니”(행 25:1) 백성들은 사도 바울을 또 고소한다. 고발한 내용은 부활에 대한 증거이다.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가 죽은 것을 살아 있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고발하는 것뿐이라”(행 25:19) 이 일로 인하여 유대인들은 바울은 죽어야 할 사람이라는 분위기이다. 그리고 베스도는 바울에게서 잘못한 것을 찾지 못하였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심을 증거하고 있다. 벨릭스나 아그립바 왕은 진리에 대하여 관심이 없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신 것에 대하여 관심이 없음을 말한다. 오직 백성들의 소리를 들어주고 자기의 자리를 지키는 것과 부정축재와 뇌물을 받는 일에 관심이 있다. 그러므로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는 관심이 없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시고 살아계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   1)우리가 믿는 것은 헛것이 되고   2)하나님은 거짓말하시는 분이고,   3)우리는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고전 15:14) 그리고 지금 살아계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바울은 총독과 왕들 앞에서 진리를 선택하지 못하는 불쌍한

이 모든 날이 찬 후에 제팔일과 그 다음에는 제사장이 제단 위에서 너희 번제와 감사제를 드릴 것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즐겁게 받으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모든 날이 찬 후에 제팔일과 그 다음에는 제사장이 제단 위에서 너희 번제와 감사제를 드릴 것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즐겁게 받으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43:27) 에스겔 43장에서는 여호와의 영광이 다시 성전에 임함을 말하고 있다. 이 성전은 솔로몬 성전과는 달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의 완성으로 보아야 한다.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한 안뜰로 들어가서 그 영광의 현현을 보는 데는 성령의 인도가 필요하다 “영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더라”(겔 43:5) 이 성전은 하나님의 뜻이 계시되어 있고 영적 윤리적 규범들의 제시하므로 여호와의 거룩한 백성의 성결한 삶이란 원리를 갖고 있다. “또 그 모든 규례와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율례를 알게 하고 그 목적에 그것을 써서 그들로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라”(겔 43:11하) 새 성전이 있고 메시야를 통한 새 법이 선포된다. 그 법의 사상은 하나님의 영원한 임재의 새 성전의 제일 원리는 거룩이다. “성전의 법은 이러하니라 산 꼭대기 지점의 주위는 지극히 거룩하리라 성전의 법은 이러하니라”(겔 43:12) 새 성전에서 드려질 거룩한 예배의 새로운 규범을 소개 된다. 이 성전은 하나님의 처소이면서 그 백성들과의 관계가 새롭게 회복되고 갱신이 된다. 그러면서 번제단의 규모와 봉헌 규례를 말씀하신다. 번제단 봉헌식을 드리면서 번제물에 소금을 쳐야 한다. 그 이유는 모든 부정을 제거하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다. “나 여호와 앞에 받들어다가 제사장은 그 위에 소금을 쳐서 나 여호와께 번제로 드릴 것이며”(겔 43:24)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자들은 번제와 감사제를 드려야 한다. 번제는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유지와 백성들의 온전한 헌신이며, 감사제는 하나님의 축복과 구원에 대한 감사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려지는 제사

제사장의 의복은 거룩하므로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에 바로 바깥뜰로 가지 못하고 수종드는 그 의복을 그 방에 두고 다른 옷을 입고 백성의 뜰로 나갈 것이니라 하더라

  “제사장의 의복은 거룩하므로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에 바로 바깥뜰로 가지 못하고 수종드는 그 의복을 그 방에 두고 다른 옷을 입고 백성의 뜰로 나갈 것이니라 하더라”(겔 42:14) 에스겔 42장에서는 거룩한 곳과 거룩한 것을 구별하는 내용이다.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는 제사 음식은 북쪽과 남쪽에 있는 거룩한 방에서 먹게 하였다. 또한 제사를 드릴 때에 입었던 의복을 입고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바깥으로 나갈 때에는 평상복으로 바꾸어 입고 나가야 한다. 그리고 성전 사면 담을 측량하였다. “그가 이같이 그 사방을 측량하니 그 사방 담 안 마당의 길이가 오백 척이며 너비가 오백척이라 그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더라”(겔 42:20) 성전이라 말할 때에는 성벽까지 말한다. 성벽의 의미는 성역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렇게 함은 보편적으로 타락한 세속으로부터 구분을 한다. 성전 건물 자체가 거룩한 것이 아니다. 성전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가 있을 때에 거룩한 것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거룩함을 말한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사도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별 설교를 한 때에도 진리의 말씀에 교회를 부탁한다.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에 있게 하시리라”(행 20:32)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들의 거룩함은 우리를 부르신 이처럼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 1:15) 거룩하신 이가 거룩함으로 택함을 받은 백성들에게 주신 것이 율법입니다. 그 율법에 순종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벧전 1:22) 여러분! 하나님 나라와

그가 내전을 측량하니 길이는 스무 척이요 너비는 스무 척이라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지성소니라 하고

  “그가 내전을 측량하니 길이는 스무 척이요 너비는 스무 척이라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지성소니라 하고”(겔 41:4) 에스겔 41장에서는 성전의 성소와 지성소 그리고 골방과 성전의 넓이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성소는 거룩한 곳이며 지성소는 하나님이 계신 곳이다. 여호와께서 에스겔에게 성전의 계시를 보여 주시는데 솔로몬의 성전과 같이 웅장하며 모세의 회막처럼 백성을 떠나지 않으시겠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이다. 골방은 3층으로 90개의 방이 있으며 성전의 비품과 제사시의 성구와 십일조와 각종 예물들을 위한 장소이며 제사장과 레위인의 숙소이다. 그리고 성전의 규모 및 장식과 기구들을 보여 주신다. 이와 같은 성전은 이미 성취되어 에스겔에게 보여 주시는 것이다. 이 땅에 세워졌던 솔로몬의 성전은 바벨론 침략으로 불에 타 없어졌고, 학개와 스룹바벨을 통하여 재건된 성전이 헐어서 헤롯대왕이 재건을 하였다. 그런데 로마의 침공으로 무너져 성전 왼쪽 벽만 남았다. 이 벽을 오늘날 통곡의 벽이라 불리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성전을 헐고 삼일 만에 다시 세운다고 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 이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성취되었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마 27:50)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 본문에서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있는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마 27:51) 이로 인하여 예루살렘 성전 시대는 막을 내렸다. 오순절 성령 강림 날에 성령이 임하여서 예루살렘 교회가 생겼다. 예루살렘 교회에 성삼위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나타남으로 이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확인된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들이 모이는 교회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크고 놀라운 비밀이 있습니다. 성령이 역사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시고,

우리가 사로잡힌 지 스물다섯째 해, 성이 함락된 후 열넷째 해 첫째 달 열째 날에 곧 그 날에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시되

“우리가 사로잡힌 지 스물다섯째 해, 성이 함락된 후 열넷째 해 첫째 달 열째 날에 곧 그 날에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시되”(겔 40:1) 에스겔 40장부터는 이스라엘 땅에 성전이 다시 회복할 것을 보여 주신다. 말씀하시는 날이 첫째 달 열째 날이라는 것이다. 이 날은 성경으로 해석을 하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함축하고 있으며 궁극적인 자유와 회복을 의미를 내포한 특별한 날이다. 첫째는 출애굽이 시작되는 날이다. “너희는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각자가 어린 양을 잡을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출 12:3) 둘째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향하여 요단강을 건너던 날이다. “첫째 달 십일에 백성이 요단에서 올라와 여리고 동쪽 경계 길갈에 진치매”(수 4:19) 셋째는 종교력상의 첫 달로 희년이 시작되는 해의 첫째 달 열째 날인 대속죄일이다.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는 뿔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뿔나팔을 크게 불지며”(레 25:9) 즉 그 날은 사람들에게는 보편적으로 알려진 날이지만 하나님 은혜의 구원이 임하여 회개를 통하여 마음을 돌이킨 백성들이 여호와 앞에 나오는 것임을 함축하고 있다. 그리고 에스겔에게 보여 주시는 새 성전은 역사적으로 세워지지는 않았으나 이미 완성된 것으로 성취의 확실성을 강조한다. “그 사람이 내게 이르되 인자야 내가 네게 보이는 그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네 마음으로 생각할지어다 내가 이것을 네게 보이려고 이리로 데리고 왔나니 너는 본 것을 다 이스라엘 족속에게 전할지어다 하더라”(겔 40:4) 예수 그리스도가 성전이 되심을 친히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 죄를 범한 자는 회개를 하여야 구원의 은혜를 받습니다. 회개는 죄인들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야 회개의 자리로 갈 수 있습니다. 성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골 1:12) 시편 136편에서 구원에 대한 감사, 비천할 때, 강한 대적에서 건져내 주신 은혜를 찬양하였다. 그런데 그 모든 은혜가 골로새 교회와 주님께서 피값을 치루시고 세우신 교회에 임한 것이다. 그래서 교회 안에 있는 자들이여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하나님 아버지에게 감사 찬양하라 한다. 감사의 내용은 우리들이 흑암의 권세에 잡혀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강한 팔을 펴서 구원하여 주셨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 1:13) 이 말씀은 시편 136편으로 해석을 하면 바벨론에서 노예로 붙잡혀 있는 이스라엘을 건지시고 새 가나안 땅에 입성하게 하신 것이다. ”우리를 우리의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 136:24) 구약에서는 모세의 인도를 받았다면 신약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았다.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 1:14) 시편 136편의 기자나 사도 바울이 전하고자 하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그것은 구원을 받은 백성들의 필연적인 것이 감사 찬양이다. 왜 그런가?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이루시고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 값없이 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입은 자들에게 주 업무는 찬양이다. 이것은 천국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죄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계 7:11-12)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도 도와주십니다. ”우리를 지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 136:1) 여호와께 찬양하며 감사하는 이유가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이다. 선하심이란 그분이 택한 백성들에게 행하신 것들이 도덕적, 영적, 삶의 영역에서 표준이 됨을 말한다. 인자하심이란 택한 백성들에게 약속한 대로 영원히 성실히 이행하심을 말한다. 시편 126편에서 여호와께 감사 찬양하는 제목들을 소개하고 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지혜와 능력을 찬양한다. 그리고 구원에 대한 감사로 출애굽과 가나안 입국과 지금까지 인도와 보호해 주심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천할 때도 함께 하여 주시고 대적에게서 건져 주심에 대한 감사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사시대 때에 삶은 비참하였다. 그리고 강대국 바벨론에게 포로로 잡혀 갔지만 건져주셨다. 시편의 기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 그것은 이 모든 은혜를 하나님이 이루시고 택한 백성들에게 주셨다는 것이다. 즉 무조건적인 은혜를 말한다. 성경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하나님이 이루시고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 대가없이 선물로 주시는 구원이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1)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입은 자들은 감사와 찬양을 하여야 합니다. 만일 감사와 찬양에 없으면 하나님을 헛되이 믿는 바리새인들이 되는 것입니다. 즉 구원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절대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감사와 찬양의 내용은 성삼위 하나님께서 이루신 은혜를 우리들에게 주신 내용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골 1:12)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행 24:25) 사도행전 24장에는 법정 서있는 여러 사람의 이름이 등장을 한다. 대제사장 아나니아, 변호사 더둘로, 벨릭스 각하, 벨릭스의 아내인 유대인 여자 드루실라 이다.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교활하고 교만한 자이다. 전임 대제사장 요나단을 죽인 자로서 바울을 고발하는 검사의 자리에 있다. 그리고 변호사 더둘로를 데리고 와서 거짓 증언을 하게 한다. 벨릭스는 로마 역사상 가장 타락한 자로서 돈을 좋아 하는 자이다.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행 24:26) 드루실라는 아그립바 1세의 막내딸로 벨릭스의 아내이다. 그녀는 당시 가장 예쁜 여자로서 자신의 미모로 돈과 권력을 쥐고 있는 벨릭스와 재혼을 하였다.   더둘로는 벨릭스에게 아부를 함으로 권력의 그늘에서 살았던 자이다. “빌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 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나이다”(행 24:3) 이런 사람들 앞에 바울이 서 있는 것이다. 즉 바울이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였는지를 살펴야 하고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바울은 그들 앞에서 “의와 절제와 장차오는 심판에 대하여” 강론한 것이다. 그렇게 행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칼을 주시지 않았고 오히려 겸손와 온유함으로 대하며 정죄하지 아니하며 판단하지 말라 하셨다. 즉 이러한 자들은 진리에 대하여 알 수 없고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진리에 대하여 관심이 없고 자신의 출세와 욕망과 부를 사는 자들이다.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행 25:22) 이 사람들은 사람들 가운데 가장 악한 사람들임을 증거 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이제 내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열심을 내어 야곱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하며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사랑을 베풀지라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이제 내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열심을 내어 야곱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하며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사랑을 베풀지라”(겔 39:25) 에스겔 39장에서는 곡과 마곡이 불에 타 멸망할 것을 계시하였고,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셨다. 즉 여호와와 언약을 맺은 백성들은 구원을 받고 할례가 없는 백성은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회복하는데 여호와께서 자신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열심을 다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속성에는 불변성(Immutability)이 있다. 한 번 약속하신 것은 변치 않고 지키신다는 것을 말한다. 여호와와 이스라엘은 언약을 맺었다. 그 언약의 형식이 결혼의 성결 예식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남편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신부가 된다. 그런데 신부인 이스라엘이 간음을 하였다. 그것은 이방 나라의 우상을 섬겼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신랑되시는 하나님은 간음한 여인인 이스라엘과 언약을 파기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부정한 이스라엘을 새롭게 하여 다시 아내로 맞이하시겠다는 의지이다.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계 19:9)   그러므로 인하여 하나님은 변치 않으시는 분이 되시고 언약을 맺지 않은 백성들은 죄 가운데 거하게 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이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으로 인한 은혜를 성령이 주시기 때문이다. “내가 다시는 내 얼굴을 그들에게 가리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내 영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쏟았음이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39:29)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의 새 언약의 은혜가 성령을 통하여 임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 알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여호와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자칭 그리스도라는 이단들이 많기 때문입니

구름이 땅을 덮음같이 내 백성 이스라엘을 치러 오리라 곡아 끝 날에 내가 너를 이끌어다가 내 땅을 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말미암아 이방 사람의 눈 앞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그들이 다 나를 알게 하려 함이라

  “구름이 땅을 덮음같이 내 백성 이스라엘을 치러 오리라 곡아 끝 날에 내가 너를 이끌어다가 내 땅을 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말미암아 이방 사람의 눈 앞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그들이 다 나를 알게 하려 함이라”(겔 38:16)   에스겔 37장에서 이스라엘의 회복과 번성을 맞이할 것을 말씀하셨다. 그런데 38장에서는 번성항 다윗의 나라를 대적하는 연합군 즉 사탄의 세력을 소개하고 있다. 평화의 고을을 동서 사방에서 세력을 모아 겁탁하며 노략을 한다. “말하기를 내가 평원의 고을들로 올라가리라 성벽도 없고 문이나 빗장이 없어도 염려 없이 다 평안히 거주하는 백성에게 나아가서”(겔 38:11) 그런데 이 일을 통하여 마지막 날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의 왕국 즉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는 모든 자들을 심판하심을 미리 보여 주신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알게 하여 구원을 사모하게 하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반 민족에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돌이키게 하기 위함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탄의 세력은 사방에서 우는 사자와 같이 다가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그런데 택함 받는 자들이 당하는 고난은 잠깐이라 합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토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벧전 5:10) 그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되고 강하며 견고한 터 위에 세우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즉 사탄의 세력은 하나님 나라와 백성을 결단코 이길 수 없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겔 37:5)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회복 될 것을 앞 장에서 말씀하셨다. 에스겔 37장에서는 어떻게 회복될 것인지를 밝히시고 있다. 하나님의 영이 에스겔을 사방으로 뼈가 가득한 골짜기로 데리고 간다. 그곳에서 여호와께서 에스겔에게 묻기를 죽은 뼈가 살아날 수 있겠느냐 하신다. 에스겔의 대답은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죽은 자를 살리시는 방식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에스겔이 대언을 한다. 너희가 살아나리라 하니 이뼈 저뼈가 소리를 내며 서로 연결이 되었다. 또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가죽이 덮였으나 생기가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에스겔이 생기에게 명령을 하자 죽은 자들이 살아나서 큰 군대를 이루었다. 즉 죽음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을 거기에서 나오게 하여 그 속에 성령을 두어 살아나게 한다는 것이다.   구원의 날에는 유다와 북이스라엘이 하나가 되어 한 임금의 다스림을 받게 된다. 그 임금은 다윗 왕 곧 예수 그리스도이다.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 모두에게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그들이 내 규례를 준수하고 내 율례를 지켜 행하며”(겔 37:25) 예수 그리스도와 언약을 세워 그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그들의 백성이 된다. “그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 모두에게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그들이 내 규례를 준수하고 내 율례를 지켜 행하며”(겔 37:24)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사망 가운데 있는 자들을 살리시는 것입니다. 살리셔서 하나님 앞에 서게 하여서 언약을 맺는 것이 부활의 은혜입니다.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하게 하며 내 성소를 그 가운데에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겔 37:26) 여호와께서 언약을 맺은 백성들 가운데 처소를 두시고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그들의 고국 땅에 거주할 때에 그들의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나니 나 보기에 그 행위가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의 부정함과 같았느니라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그들의 고국 땅에 거주할 때에 그들의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나니 나 보기에 그 행위가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의 부정함과 같았느니라”(겔 36:17) 이스라엘이 그들의 고국 땅에 거주하면서 범죄한 것을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의 부정함과 같다고 한다. 왜 이런 표현을 쓰는지 궁금하다. 성경에서 피의 유출은 생명의 상실을 의미하는 동시에 죄악으로 여겼다. “어떤 여인이 유출을 하되 그의 몸에 그의 유출이 피이면 이레 동안 불결하니 그를 만지는 자마다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요”(레 15:19) 즉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을 말한다. 월경 중에 있다함은 생명의 결실을 이루지 못함으로 몸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피가 땅위로 흐른다는 것은 열매가 없는 죽음을 말한다. 이스라엘의 행위가 이와 같다고 한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게 되면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보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 15:2) 그래서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것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으라”(요 15:5)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경에서 열매라 함은 결실입니다. 그것은 택함을 받은 자들이 여호와의 계명을 지켰을 때에 나타나는 성품이며 행위입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요 15:8) 계명을 지키게 되면 열매를 먹을 때에 느끼는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 15:11) 이 기쁨을 주시러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입니다.

그가 애굽의 처음 난 자를 사람부터 짐승까지 치셨도다

  “그가 애굽의 처음 난 자를 사람부터 짐승까지 치셨도다”(시 135:8) 여호와 하나님께서 애굽에 압제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실 때에 애굽의 처음 난 자들과 짐승까지도 치셨다. 이것에 의미는 애굽의 왕으로부터 모든 것들에 대가 끊어 졌음을 말한다. 즉 완전한 승리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임하였다. 구원받기 이전에는 마귀의 압제 하에 있었음을 말한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 2:2) 즉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와 함께 주신 은혜가 마귀의 압제 하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 요일 3:9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요일 3:9) 이제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거함이라 함은 말씀이 마음속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죄를 거부하여 마귀에게 순종하는 않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롬 6:12) 오히려 하나님의 의의 병기가 되어 그의 영광을 위하여 말씀을 지키는 자가 된다는 것이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 6:13)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임하였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롬 6:14)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신 은혜 가운데 마귀의 일을 멸하신 것이 있습니다. 마귀는 사망 가운데 있으면 내 뿜는 것이 죄입니다. 그래서 마귀의 지배하에 있는 사람들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은 자들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