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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성경은 하나님의 의지가 담겨있는 말씀이다 . 즉 하나님이 하시려는 마음의 작정이다 . 하나님의 의지는 성경을 해석하거나 설교를 할 때에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이다 .   하나님의 의지가 사람에게 임할 때에 은혜라고 한다 . 하나님의 은혜가 사람에게 임하면 생각이 바뀌고 행동이 변하게 된다 . 성경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은혜가 임하였던 자들이었다 .   사사 드보라는 한 남자의 아내이다 . 지금으로 표현한다면 가정주부였다는 것이다 . 그런데 하나님은 언약을 통하여 역사하신다 . 하나님은 율법의 말씀을 지키고 행하는 자를 통하여 자신의 의지를 나타내신다 .   그 당시 가나안 왕 야빈은 철병거 구백 대가 있어서 이스라엘을 20 년 동안 이스라엘을 심히 괴롭혔다 . 하나님은 드보라에게 다볼 산으로 나아가 전쟁을 하라 하셨다 . 그리하여 바락이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만명을 거느리고 싸움터로 향하였다 .   그런데 싸움은 여호와께서 바락 앞에서 군대장관 시스라와 온 군대와 싸우셨다 . 가나안 군대의 병사가 다 죽었다 . 오직 군대장관 시스라만 살아서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에게로 간다 .   그 당시에는 목축을 하던 자들은 하류층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 유목민들은 가축들의 풀을 위하여 이곳저곳으로 자주 옮겨 다녀야 했다 . 그리고 천막을 세울 때에는 남편이 기둥을 붙잡고 있으면 아내는 말뚝을 박았다 .   야엘은 한 남편의 아내로 평범한 사람이었다 . 남편이 바깥일에 힘들고 지쳐 집에 오면 따듯한 우유를 내어주고 누워있는 남편에게 이불을 덮어주는 일은 습관적인 것들이었다 .   가나안군대 장관 시스라가 야엘의 집에 숨어 있을 때에도 평소에 하던 것처럼 하였다 . 지쳐있는 시스라에게 우유를 주고 이불을 덮어 주고 쉬게 하여주자 잠이 들었다 . 야엘에게 말뚝을 박는 일은 아주 쉬운 일이다 . 천막을 세울 때마다 하는 일이다 .   평범한 여인이 습관처럼 하던 일이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찐빵에 앙꼬가 없다면 찐방이 아니다 . 만일 기독교인에게 사랑이 없다면 구원을 받지 못한 자요 , 그리스도가 함께 하지 않는 자이다 .   신자라면 사랑의 본질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랑없이도 선지자 노릇하고 , 귀신도 쫓아내고 , 많은 권능을 행할 수 있다고 하셨다 .   만일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면 천국에 결단코 들어갈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 하나님은 십자가의 사랑으로 그 사랑을 전하는 자들을 알아주신다 .   그 사랑은 죄로 죽은 자를 위하여 독생자 아들을 주신 사랑이다 . 그 사랑을 받은 자는 그 사랑을 이웃에게 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그 사랑의 특성은 받은대로 전할 수밖에 없고 , 그 사랑의 성품대로 나타낼 수밖에 없다 .   하나님의 사랑은 불의한 자를 용서하고 , 악을 선으로 갚고 , 분을 품지 않고 , 악의를 의도적으로 행하지 않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행하셨다 . 그래서 나도 그렇게 행할 때에야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 “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 고전 13:7)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한 동안 우리들의 잃은 것들을 다시 찾는 열풍이 있었다 . 전통가옥 , 한식 , 문화 등을 뽑을 수 있겠다 . 우리들의 좋은 것들인데 잊고 살았다는 후회와 반성이다 .   하나님께서 사람을 처음 창조하셨을 때는 영혼과 사랑을 갖고 있었다 . 그러나 이것을 사람의 시조가 상실하였다 . 하나님은 사람이 잃어버린 영혼과 사랑을 다시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의 십자가로 시작하신 것이다 .   그 방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성품을 배우게 한다 . 즉 그리스도의 성품을 통하여 사랑을 알게 하는 것이다 .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랑이 있어야 하나님께서도 알아주는 자가 된다 .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 “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 눅 19:10)   주님을 통하여 잃어버린 영혼 , 사랑을 찾으면 더 아름답고 고귀한 인생을 살게 된다 . 주님의 약속은 생명과 장수와 충만한 기쁨을 약속하셨다 .   그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만 얻을 수 있고 , 그분 안에서만 영혼과 사랑을 구할 수 있다 .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왜 악인을 미워하시는가 ? 하나님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 그러나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지금도 역사하시는 것을 사람을 통하여 나타내시기로 작정을 하셨다 .   신자들이 모든 선한 일을 하므로 하나님의 이름이 전해져야 한다 . 이것이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시는 방법이다 .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주셔서 주의 계명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 성령이 함께 하지 않는 자들은 주의 계명을 알지도 못하고 지킬 수 있는 힘도 없다 .   악인은 하나님의 모든 선한 일을 알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한다 . 그러므로 하나님은 저들을 미워하시는 것이다 .   하나님의 모든 선한 일이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 하나님을 사랑하되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자리까지 가야하고 , 내 이웃은 내 몸과 같이 사랑하여야 한다 . 만일 이것을 행하지 못하면 아직도 하나님이 하신 구원의 목적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나를 통하여 나타내시려는 계획이다 . 하나님의 계획과 일하시는 방식을 아는 자들이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이다 . 악인은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거역하는 자이다 .   “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 딛 2:14)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우리가 어떠한 믿음을 가져야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수 있을까 ? 그 사랑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만 나온다 .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과는 확연히 다르다 . 그리고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   마음에 있는 더러운 모든 죄를 제거된 청결한 마음에서 나오는 사랑이다 . 그리고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비양심에서는 나올 수 없는 사랑이다 . 그리고 주님의 계명을 지킴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사랑이다 .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들은 이러한 사랑을 가진 자들이다 . 그러나 이런 사랑이 없이도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내고 ,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할 수도 있다 .   우리 주님은 재림의 날에 결단코 저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다 . 즉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주신 사랑을 모르는 자는 하나님의 뜻이 임하지 아니한 자라는 것이다 . 즉 성품이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   “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 딤전 1:5)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요즘 언론에 목사가 범죄 사고에 피의자로 자주 등장을 한다 . 그 비난은 모두가 예상한 것처럼 대단하다 . 그 이유는 목사에 대한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결과라 할 수 있다 .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목사는 완전한 인간이 아니다 . 목사가 되었지만 성령과 함께하지 아니하면 육신의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   성경 속에 등장하는 인물가운데도 시작은 좋았는데 끝이 좋지 않았던 자들이 있다 . 솔로몬이 왕이 되었을 때는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릴 정도로 순종하였다 .   그러나 영의 생각이 아닌 육신의 생각으로 육신의 길을 간 것이다 . 이방나라들과 화친을 맺었다 . 이방 나라의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면서 이방신도 함께 들여와 산당을 지었다 . 또한 아들교육을 잘 못시켰다 .   그의 아들은 아버지보다 더 모질고 악한 왕이 되었다 . 이렇게 되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이 없었고 생각과 판단이 영의 생각이 아니었고 육신의 생각을 따랐기 때문이다 .   목사가 되었다고 해서 완전한 인간이 된 것은 아니다 . 누구보다도 영의 생각으로 생명과 평안의 길을 가야하는 책임이 있다 . 그러나 목사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성령과 교제와 교통이 없으면 사망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우리들이 오해하는 것이 있다 . 목사 , 장로 , 권사가 되면 완벽한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 그렇지 않다 . 그들이 그 직분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영의 생각을 하지 않으면 육신과 사망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 롬 8:7)

전달자와 약 장사

  목사의 직책에 대하여 다양한 해석이 있다 . 성경적인 목사직은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여 회중에게 전달하는 자가 된다 .   하나님은 자신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계시라는 방법을 택하셨다 . 계시를 전달하는데 언어를 사용하셨다 .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선지자를 사용하신 것이다 . 그리고 택함을 받은 선지자들은 백성들이 들을 수 있는 언어를 말하는 자가 택함을 받았다 .   성경 66 권은 ‘ 구약 ’ 과 ‘ 신약 ’ 으로 구분한다 . 즉 옛약속과 새약속을 말한다 . 하나님이 약속한 말씀이 성경전체의 내용이 된다 . 모세의 율법을 통한 약속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이다 .   설교자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려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전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 그런데 다른 것을 전하는 자들이 있다 . 구약에도 신약에도 없는 만병통치약을 파는 양복걸친 약장사가 있다 .   사람을 현혹시키는 수단과 도구들을 동원하여 만병통치약을 파는 자들이 너무 많다 . 약장사의 화려한 말솜씨에 넘어가 그 약을 먹은 사람들이 있다 . 나타난 증상은 그들의 영혼이 시들시들하여 지고 있다 .   신구약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자들은 영혼이 풍성하여 지지만 , 다른 교훈을 따랐던 자들은 날이 갈수록 점점 영혼이 피폐하여 진다 .   구별법은 아주 간단하다 . 전달자는 설교나 가르침이 신구약의 말씀이 근거가 되고 삼위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을 드러낸다 . 그러나 약장수들은 자기 자랑을 많이 한다 . 신구약말씀이 아닌 세상의 이야기를 많이 한다는 것이다 .   “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 갈 1:7)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말씀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

  ‘ 맹세 ’ 란 자신이 약속한 것을 꼭 지키겠다는 굳센 의지이다 .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을 향하여 그렇게 하셨다는 것이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   구약의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들에게 약속을 하셨다 .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찾아가 땅을 줄 것이고 큰 민족을 이루어 주실 것이라 하셨다 .   그리고 그 땅에서 큰 민족이 무병장수하며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하기 위한 복을 또한 맹세하신다 . 그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것이다 .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복을 주신다 .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지파에게 땅을 분배하였다 . 모든 지파가 땅을 받은 것은 그 조상들에게 맹세하신대로 하셨다고 한다 .   그리고 성경의 기자는 “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말씀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 ”( 수 21:45) 라고 증거하고 있다 .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에게 복을 약속하셨다 . 신자들은 무엇을 약속하시고 맹세하셨는지를 알아야 한다 . 그 약속에 근거한 믿음이요 간구가 되어야 한다 .   그런데 오늘날 신자들은 약속의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악을 쓰고 있다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과 그 생명의 풍성함을 약속하셨다 . 즉 신자들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로 초대를 받은 것이다 .   거룩과 영광에의 초대이다 . 영혼이 건강하여 거룩한 삶을 살아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함의 자리에 초대를 받은 것이다 . 이와 같은 내용을 간단한 단어로 표현을 하면 “ 영생 “ 이 된다 .

여호와께서 또 모든 질병을 네게서 멀리 하사 너희가 아는 애굽의 악질에 걸리지 않게 하시고 너를 미워하는 모든 자에게 걸리게 하실 것이다

  지난 해 , 아니 지금까지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볼 때에 사람들이 예측한대로 맞지 않았다 . 정치적인 상황 , 종교적인 분쟁 , 경제에 대한 낙관적인 예측들이다 .   민주 복지 평등을 외치며 일류국가를 자랑하였던 나라들에게는 정치적 난민문제로 인하여 수렁에 빠져 있고 , 신도의 수가 급등하면서 세력을 과시하였던 이단도 저들가운데 있는 종교분파에 의하여 스스로 무너지고 있다 . 또한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것이 석유값이다 .   그래서 오늘도 두 눈을 크게 뜨고 신앙고백을 한다 . 천지를 주관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라 부른다 .   요즘은 귀로 들어 본적도 없고 눈으로 본적이 없는 지카 (zika) 바이러스가 있다 . 임산부에게 전염이 되면 아주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 그래서 모두들 긴장하고 있다 .   하나님은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신다 . “ 여호와께서 또 모든 질병을 네게서 멀리 하사 너희가 아는 애굽의 악질에 걸리지 않게 하시고 너를 미워하는 모든 자에게 걸리게 하실 것이다 ”( 신 7:15)   사람들이 제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이 생명이다 . 하나님은 계명을 지키고 사는 자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더 풍성히 주신다고 하셨다 . 그러니 신자들이여 두려움을 갖지 말고 말씀대로 살면 이 땅에서의 삶이 장구하고 기쁨이 충만하게 하여주심을 가슴에 새기어 살아야 한다 .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느니라

  오늘 주일 설교로 느헤미야 성벽 재건에 대하여 설교하였다 . 이 땅에 세워진 교회들이 교훈을 삼아야 할 말씀을 소개하려 한다 .   느헤미야가 페르시아 왕국 수산궁에서 신하로 있을 때에 예루살렘에서 온 , 그의 동생 하나니에게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는 소식을 듣는다 . 그래서 그는 아닥사스다 왕에게 유다땅 예루살렘에 다녀오겠다고 청을 하여 허락을 받았다 .   그는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을 독려한다 . 그러나 이방 사람들의 방해공작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 그러자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 있게 하고 남은 백성들은 성벽을 쌓았다 .   느헤미야는 백성들에게 외치고 있다 . 너희가 성벽을 쌓은 것은 “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 하였다 .   성벽재건은 오십이 일 만에 끝났다 .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이자 학사 에스라가 모세의 율법책을 읽으매 모든 사람이 귀를 기울이었다 .   “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 느 8:5)   모세의 율법책을 읽을 때에 백성들은 칠월에 초막절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 그래서 여러 가지의 무성한 나무를 가져다가 초막을 짓고 일주일 동안 절기를 지킨다 .   절기를 지키는 동안 오전 6 시에서 9 시까지는 말씀을 듣고 , 9 시부터 12 시까지는 회개의 기도시간을 가졌다 . 그들의 회개는 이틀이나 지속되었다 . 그리고 돌이킴의 결단이 있었다 .   성벽재건이 완성된 이후에 놀라운 일들이 있었던 것이다 . 이방인의 공격을 차단하니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었다 . 그리고 폐허였던 땅은 거룩한 성 , 예루살렘 성이 되었다 . 더 나아가 예루살렘 성에 살기를 자청하는 자들이 생겨난 것이다 .   느헤미야의 성벽재건의 의미를 기억하여야 한다 . 칼과 창과 활을 쏘는 자를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인간이 감성을 느낄 때는 마음이 동요되기 때문이다 . 즉 같은 경험을 하였거나 생각이 같을 때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 그래서 마음을 잡아라 , 마음을 움직이게 하라고 한다 .   어떤 이는 교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설교를 하라고 한다 . 그리하면 감동이 넘치고 대박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고 한다 . 그러다보니 감성을 자극하는 것은 있지만 진리의 내용이나 교리는 실종하는 결과를 낳았다 .   설교는 하나님의 마음 , 성품 , 인격을 전하는 것이다 . 성경은 하나님의 이 모든 것을 다 밝히고 있다 . 신자들은 하나님의 마음과 성품과 인격을 배우고 닮아가야 한다 .   설교의 말씀을 전하는 자나 듣는 자가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 앞에서의 공감이다 . 그러니 성경공부가 필요한 것이다 . 성경공부는 설교를 은혜롭게 받기 위한 준비 단계이다 .   만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설교자가 아무리 열심히 전하여도 허공에 외치는 소리가 된다 .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에 공감을 하게 되면 ‘ 아멘 “ 이라 화답을 하게 된다 . 그러니 ’ 아멘 ‘ 은 강요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신자들이 더 큰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알아야 한다 .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믿음의 분량만큼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작은 믿음의 분량을 갖고 있는 신자들이 자신들에게 맞는 목사를 찾고 있다 . 그것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 그렇다보니 매년 새로운 목사를 찾아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   나의 믿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지식으로 전할 수 있는 목사를 찾아야 한다 .   “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 엡 3:18)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교회가 동네북이 되었다 . 아무나 두드리고 발로 걷어차는 신세가 되었다 . 그러나 이 땅위에 세워진 모든 교회가 같은 교회는 아니다 . 그리고 세상의 잣대로 교회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   어떤 사람들은 도덕 윤리적인 관점에서 교회의 정의를 내리려 할 것이고 , 또 어떤 이들은 교회사적 역사의 전통으로 바라볼 것이고 ,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세속적인 관점에서 친목단체나 봉사단체로 바라보는 경우가 있다 .   그러나 교회를 올바로 생각하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선지자와 사도의 가르침 위에 서 있어야 한다 . 즉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은 자들이 모인 곳이 주님의 교회가 되는 것이다 .   사도들은 주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자들이다 . 그리고 주님은 아버지께 보고 들은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것이다 . 그래서 하나님의 교회가 된다 .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곳이 아니다 .   저들은 십일조를 하나의 제도라고 생각을 한다 .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십일조의 정신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 제도는 강제력이 함께 하지만 십일조의 정신은 감사에 의한 자발적인 의지적인 행위이다 .   지금도 선지자와 사도의 터 위에 세워진 교회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 신자들은 정신 차려야 한다 . 선지자와 사도들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 그러한 가르침을 전하는 교회가 이 땅위에 진정한 교회가 된다 .   “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 엡 2:20)

제비 뽑는 것은 다툼을 그치게 하여 강한 자 사이에 해결하게 하느니라

  ‘ 공평하다 ’ 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고르다 . 또는 이기적인 세상에서 정의를 구하는 필수적인 조건으로 사용한다 .   신자들도 공평하신 하나님이라 찬양한다 . 그런데 하나님은 공평하게 하기 위한 방법이 제비뽑기라는 것이다 . 기업분배시 , 범죄자 색출시 , 성전직무 분담시 , 사도 선택시에 사용하셨다 .   그러나 제비뽑기는 행운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다 . 제비뽑기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 지파의 수에 따라서 땅을 분배하였고 , 믿음의 분량에 따라 복을 주셨다 .   믿음의 분량에 따라 복을 준다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분량만큼을 말한다 . 하나님의 말씀에는 살아 움직이는 운동력이 있다 . 즉 말씀에 순종을 하면 능력을 나타내신다는 것이다 .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만큼이 나의 믿음이 되는 것이다 . 이것이 하나님의 공평이다 . 믿음의 분량만큼 복을 주심을 명심하여야 한다 .   “ 제비 뽑는 것은 다툼을 그치게 하여 강한 자 사이에 해결하게 하느니라 ”( 잠 18:18)

게으른 자는 가을에 밭을 갈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거둘 때에는 구걸할지라도 얻지 못하리라

  ‘ 습관 ’ 은 일상의 반복되는 행위라 한다 . 습관은 행동뿐만 아니라 생각과 정신과 심리에도 영향을 주고 있고 잘못된 습관 가운데는 ‘ 게으름 ’, ‘ 변명 ’ 이 있다 .   성경에서는 ‘ 게으름 ’ 에 대하여 경고한다 . “ 게으른 자는 가을에 밭을 갈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거둘 때에는 구걸할지라도 얻지 못하리라 ”( 잠 20:4)   게으른 자에게는 가을철에 곡식을 거둘 때에 거둘 것이 없다는 것이다 . 왜냐하면 씨를 뿌리지 않았거나 늦게 씨를 뿌려 아직 낱알이 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   가나안 땅을 정복한 이스라엘 지파들 가운데 땅을 분배받지 못한 일곱 지파가 있었다 .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가만히 있지 말고 땅을 정복하라고 명한다 .   믿음의 생활도 마찬가지이다 . ‘ 부지런함과 정직함 ’ 으로 습관을 들여야 한다 . 다섯 달란트를 남긴 자나 열 므나를 남긴 자의 칭찬이 작은 일에 충성된 자라하며 상을 주셨다 . 즉 습관적이며 반복되는 것이 작은 일이 되는 것이다 .   그러나 우리들의 믿음의 생활은 ‘ 게으름과 변명 ’ 이다 . 그 증거로 거둘 낱알이 없다는 것이다 . 그리고 변명을 잘한다 . 교회가 어떻고 목사가 어떠하다며 길게 수다를 떨고 있다 . 이것은 한 달란트를 땅에 묻은 자나 , 한 므나를 수건에 감추인 자가 된다 .   그들에게는 ‘ 게으르고 악한 종 ’ 이라 하였다 . 그들은 상급을 받은 것이 없다 . 오히려 어두운 바깥으로 쫓겨나 이를 갈며 지난날을 후회하며 울고 있다 .   믿음의 생활은 누구를 탓이나 하는 게으름이 아니다 . 나의 생활습관으로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한다 . 우리 주님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를 기뻐하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