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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수 10:14) 여호수아 10장에서는 아모리 족속 다섯 왕이 기브온 성을 치러 오는 사건이 있다. 기브온 사람들이 배신을 하고 이스라엘과 화친을 맺은 것을 괘씸하게 여겼다. 그러자 기브온 사람들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급히 도움을 청하지 밤새도록 올라간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모리 사람들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넘겨주셨다. 즉 직접 전쟁에 함께 하셔서 이기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날에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수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 많았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기도를 한다.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수 10:12)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었던 것이다. 앞 장에서 여호수아는 기브온과 화친을 맺을 때에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다. 이것이 반면교사(실패를 보고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가 되어 전쟁 중에도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를 한다.   이 때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의 기도 소리를 들으신 것이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수 10:14) 때로는 신자들의 실패가 교훈이 되어 더 좋은 길로 나간다. 여호수아를 통하여 깨닫고 뉘우치고 올바른 믿음생활을 하려 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함께 하심을 보여 주신다.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도 생명이 죽고 사는 급박한 전쟁 가운데서 말입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상황에 있더라도 기도를 하시면 하나님은 들어 주십니다. 본문에서 등장하는 아모리 족속의 다섯 왕이 연합을 하여 이스라엘과 싸웁니다. 저들은 강한 족속이며 싸움에 능하지만 하나님이 직접 싸우심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이겼습니다. 여호수아가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싸우신 것입니다

이 일 후에 요단 서쪽 산지와 평지와 레바논 앞 대해 연안에 있는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모든 왕들이 이 일을 듣고

  “이 일 후에 요단 서쪽 산지와 평지와 레바논 앞 대해 연안에 있는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모든 왕들이 이 일을 듣고”(수 9:1)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를 앞세우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 여리고와 아이성을 무너트렸다. 그 소식을 들은 가나안 일곱 부족이 모여서 일심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을 싸우려 한다. 이들 가운데 히위 족속인 기브온 주민들은 연합군 조직을 물리치고 단독으로 이스라엘과 화친을 맺기 위해 치밀한 꾀를 쓴다. 그러나 신 20:17에서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령하신 대로 하라” 가나안 땅에 사는 모든 족속을 진멸하라 하셨다. 그 이유는 그들의 신들에게 행하는 가증한 일을 따라 할까 함이다. 그런데 기브온 주민들이 간계를 부려 이스라엘 사람들과 여호수아를 속인다. 가나안 사람이 아닌 것처럼 하였다. 여호수아에게 주려고 떡과 포도주를 준비하였는데, 곰팡이가 나고 부대가 찢어 졌고, 옷과 신도 헤어졌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들의 준 양식을 취한 여호수아는 이 일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묻지를 않고 화친을 맺었다.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는 어떻게 할지를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라는 조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수 9:14-15) 그러나 이 거짓은 사흘이 지나자 밝혀졌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종이 되어 살게 된다. “그 날에 여호수아가 그들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회중을 위하여 여호와의 제단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들로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느니라”(수 9:27)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확인하는 것은 모든 일을 하나님께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호수아의 실수는 기브온 주민들과 화친을 맺는 일에 기도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성경적인 신자들은 시작하기 전에 기도하고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지를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가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하고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지를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가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하고”(삼상 22:3) 다윗은 사울 왕에 쫓기다가 모압 땅으로 피신하였다. 청년 때에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았다.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위한 하나님의 선택이었다. 그런데 그의 삶은 핍박과 고난의 연속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땅을 떠나 이방나라로 옮겨간 것이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하실 지를 알기까지 모압 땅에 있겠다고 한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갓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어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라 한다. 이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야 할 사람이 이방 땅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왔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으로 모든 고난을 이기고 결국에는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누구에게나 고난이 온다. 그럴 때에 사람의 생각으로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을 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택하실 때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이렇게 기도하라 한다.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을 무엇이며”(엡 1:18), 무슨 말씀인가 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이 자리로 부르신 소망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 분명한 뜻은 하나님의 것이다. 즉 하나님이 목적하신 것을 이루시기 위하여 나를 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 일을 감당할 때에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의 은혜를 주실 수밖에 없음을 기억하여야 한다.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자들은 모두 동일한 은혜로 이루어 졌지만, 택함을 받은 이후에는 각각 사람에 다른 은사를 주셨다. 그 은사를 통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에 덕을 세우며 이웃들에게는 유익을 전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만일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이웃이 아닌 나를 위하여 사용하는 것은 성경적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시 11:4) 시 11편에서는 사람이 힘든 상황이 오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멀리 떠나고 싶을 때를 배경으로 한다. 이 문제를 사람의 입장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으로 생각하는 시이다. 다윗은 실제로 이스라엘을 떠나 모압 땅으로 피신한 적이 있었다. 사울 왕에게 쫓기어 블레셋 가드 왕인 아기스 앞에서 침을 흘리며 미친 척을 하다가 풀려났다. 아둘람 굴에서 그의 부모와 사백 명의 환난 당하는 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모압 땅으로 옮겨 간다.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 지를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가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하고”(삼상 22:3), 모압 왕과 함께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갓 선지자를 통해서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삼상22:5). 다윗은 악인들을 피하여 멀리 떠났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향한 계획이 있다는 것이다. 그에게 일찍이 기름부음을 부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려는 계획을 갖고 계신다.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라 하셨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악인들이 세상을 장악하고 널뛰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시지만 불꽃같은 눈으로 세상을 살피시고 계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는 지금도 펼쳐지고 있으므로 결단코 악인이 이길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그 일을 담당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택하신 것이다. 택한 백성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존재하고 있음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그것은 악인들 앞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택하실 때는 그분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악인들 앞에서 선을 행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계 12:6) 요한계시록을 보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당하는 장면과 내용이 있다. 그렇다면 저 세상 속에는 핍박과 고난이 없는가? 다시 말하면 비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을 당하지 않는가 이다. 저들도 고난을 당하는데 그것이 저주인 줄을 모르고 있다. 그래서 삶이 그러려니 하고 팔자타령이나 술타령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이 된다. 이 땅의 권세는 하늘에서 타락한 천사장과 천사 1/3에게 있다. 그래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분이 하시는 일을 방해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을 하실 때에 헤롯대왕은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다 죽이었다. 마침내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이 그 십자가에 나타남으로 인하여 부활을 하신다. 부활로 인하여 사탄의 권세를 패배한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을 방해 할 수 없음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리스도인들이 광야에서 핍박을 받아야 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을 받으며 거룩한 백성으로 훈련을 받기 위함이다. 또한 핍박을 받는다함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증거이다. 만일 고난과 핍박이 없다면 사탄의 공격이 없으므로 구원받은 자가 아닌 것이 된다. 성경적인 믿음을 가진 자는 고난과 핍박을 당한 것을 즐거워 할 수밖에 없다. 거룩한 자로 택함을 받아서 훈련을 받아 거룩하신 아버지 앞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거룩한 자를 좋아 하신다. 그래서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5)하며 명령하셨다. 신자들의 고난을 통하여 하늘나라가 있고 천국열쇠를 교회가 갖고 있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고 거룩한 백성들만이 천국에 들어감을 보여주는데 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사탄의 싸움은 이미 승패가 결정이 났다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백성을 점호하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더불어 백성에 앞서 아이로 올라가매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백성을 점호하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더불어 백성에 앞서 아이로 올라가매”(수 8:10) 여호수아 8장에서는 아모리 사람들에게 패한 것과 아간의 범죄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분위기가 쳐져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너는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하되 오직 거기서 탈취한 물건과 가축은 스스로 가지라 너는 아이 성 뒤에 복병을 둘지니라 하시니”(수 8:2) 아이성 정복에 실패한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다시 그 성을 공격한다. 군대 삼만 명을 뽑아서 세 무리로 나눈다. 아이성 북쪽에 한 무리를, 아이성 서쪽과 벧엘 사이에 한 무리를 매복하게 하고, 한 무리는 여호수아가 이끌고 아이성 문을 향하여 공격을 한다. 이스라엘과 전쟁에서 승리한 바가 있는 아모리 사람들이다. 이전 전투도 쉽게 이길 것이라 생각을 하고 임한다. 여호수아와 장로들이 아이성 문으로 공격을 하면 아모리 사람들이 전투를 하러 나올 것이다. 그리하면 여호수아와 함께 하는 군대는 일부러 후퇴를 한다. 그러면 성 북쪽에 매복하여 있던 군대가 성 안으로 들어가 불을 사르면, 아모리 사람들이 성이 불타는 것을 보고 성안으로 돌아가려 할 때에 성과 벧엘 사이에 매복하여 있던 군대가 공격을 하여 아이성 사람들을 진멸을 한다. 이 작전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 내가 이 성읍을 네 손에 넘겨주리라 여호수아가 그의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그 성읍을 가리키니”(8:18). 전쟁을 승리한다. 오늘 본문에서 뿐만 아니라 성경 여러 군데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이 새벽이라는 것이다. 은밀한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세상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에 깨어 있는 자들을 쓰신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새벽예배에는 여러 가지로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세상사람 모두가 잠들어 있는 시간에 깨어 있는 하나님의 사

그 위에 돌 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의 맹렬한 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

  “그 위에 돌 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의 맹렬한 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수 7:26) 본 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께 바친 물건으로 인하여 범죄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여리고 성이 함락되고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진멸하라 명령하셨다. 노획물을 거리에 모아 불사르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된다. 즉 모든 것의 첫 것은 그분의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다 지파에 속한 아간이 불태워야할 물건 가운데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그 무게가 오십 세겔 되는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가졌다”(수 7:21중) 그리고 그것들을 장막 안에 땅 속에 감추었다. 이것이 큰 범죄가 되어 이스라엘이 아이로 올라가 아모리 사람들과의 전쟁에서 패한다. 여호수아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한탄을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에 들어오지 말게 하고 차라리 요단 동편에서 살게 하였으면 좋았을 것이라 말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 백성이 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 한다. 이제 범죄한 사람을 찾아내기 위하여 모든 지파를 나오게 하고 제비뽑기를 하여 찾아낸다. 그래서 유다 지파가 뽑히고, 세라 족속이 뽑혔고,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뽑혔다. 여호수아 앞에 나온 아간은 그가 저지른 범죄를 고백을 한다. 아름다운 외투와 은과 금덩이를 장막 안에 땅속에 감추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큰 범죄가 되어 아이성 전투에서 삽 십육 명이 죽었다. 그리하여 그 죄값으로 아간과 그의 자녀들과 가축들이 돌로 쳐 죽임을 당한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아골 골짜기이다.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한 사람의 범죄가 이스라엘의 패배를 안겼습니다. 오늘의 말씀이 우리들에게 교훈이 되기를 원합니다. 나로 인하여 엘파소열린문공동체가 벌을 받는다면 곤란한 일입니다. 그리고 공동체에 죄가 들어오면 함께 회개하고 슬퍼해야 됩니다. 또한 나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누구든지 일어나서 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그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아들을 잃으리라 하였더라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누구든지 일어나서 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그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아들을 잃으리라 하였더라”(수 6:26) 여리고 성은 가나안 땅에 사람들이 쌓은 견고한 성이다. 성을 쌓는다는 것은 전쟁을 준비하거나 수행을 하는 것을 뜻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에 이르자 그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무너트리는 장면을 보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친히 역사하시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엿새 동안은 성을 한 번씩 돌고 일곱째 날에는 일곱 번을 돌았다. 마지막 열세 번째 성을 돌때에는 백성들이 소리를 외쳤다. 그리하였더니 성벽이 무너졌다. 그 성안에 있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다 멸하였다. 그러나 정탐꾼을 숨겨 주었던 라합의 가정은 진노의 칼날을 피하여 생명을 구원받았다. 또한 성 안에서 탈취한 물건은 다 불살랐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노획물의 첫 것은 다 하나님께 바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것이 아니다. 이 약속은 이미 신명기 13:16절에서 “또 그 속에서 빼앗아 차지한 물건을 다 거리에 모아 놓고 그 성읍과 그 탈취물 전부를 불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지니 그 성읍은 영구히 폐허가 되어 다시는 건축되지 아니할 것이라” 그리고 여리고에 다시 성을 세우는 자는 맏아들과 막내아들을 잃을 것이라 하셨다.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누구든지 일어나서 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그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아들을 잃으리라 하였더라”(수 6:26) 그런데 북이스라엘 아합 왕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는 일이 있었다. 그 결과 약속하신대로 일이 이루어졌다.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그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성

그가 이르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하는지라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그가 이르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하는지라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수 5:14) 여호수아서 5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넌 후에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였다. 먼저 할례를 받는다. 광야 1세대는 애굽에서 나오기 전에 할례를 받았지만, 2세대는 가나안에서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여서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 대를 잇게 하였다. 할례의 기원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데 있다.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창 17:10). 할례를 행하므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 관계가 새로이 회복된 것이다. 다시 하나님의 백성이 됨으로 인하여 그동안의 수치를 물러가게 하였다 하여 그곳을 길갈이라 명령하였다. 애굽에서의 종노릇한 것과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조롱을 받았던 수치가 물러간 것이다. 그 땅의 소산으로 유월절을 지키게 됨으로 인하여 그 다음날부터 하늘에서 내리던 만나가 그쳤다. “또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에 남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수 5:12). 이제 길갈에서 여리고를 향할 때에 여호수아 앞에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나타나신다. 제 2위 이신 하나님이 사람으로 임하신 것이다. 여호수아가 가는 길에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셔서 함께 가신다.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 언약의 맺은 백성들은 할례를 행함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므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 자들만이 행할 수 있는 의식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은혜를 받은 백성들은 유월절 절기를 지킴으로서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찬양을 하게 되면 동일한 은혜를 나타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골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눅 16:31) 한 율법사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와 시험을 하였다.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큽니까? 그분께서 대답하시길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 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40) 라고 대답하셨다. 오늘 본문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가 등장한다. 부자가 지옥을 가서 고통 가운데 있으면서 아브라함에게 부탁을 한다. 나사로를 내 아버지 집에 보내서 다섯 형제에게 천국과 지옥을 알게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대답은 죽은 자가 가서 될 일이 아니다. 오직 모세와 선지자의 글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자를 악인이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멸망을 당하였다. 그 이유는 우상을 섬기고 이웃의 것을 빼앗고 속이며 자신의 것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부자는 대문 앞에 앉아 있는 거지 나사로를 돌보지 않았다.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도 가난한 자를 돌보지 않았기에 영벌에 처한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자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은 사랑이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악인들을 구원하셨다. 악인은 하나님의 율법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악인들을 고쳐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게 하는 것이 구원의 목적이다.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능력을 받아서 자빠트리고 초월적인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은 성경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거역하였던 백성들의 죄값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량하여 주시고, 마음을 새롭게 고치셔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게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도 모르고 이웃을 사랑하지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시 10:4) 시편 10편은 고통의 시이며 애절함이 담겨 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횡포와 포악함을 고발하는 내용이다. 속히 하나님의 심판을 간구할 정도로 고통과 애절함이 있다. 악인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를 말한다. 그러므로 그의 생각이나 행동이나 말하는 것에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없음을 말한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짓까지 한다. 우주만물을 주관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공중에 나는 참새 한 마리도 그분의 허락이 없으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악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힘을 삼는다. 권력을 잡고 있는 자는 칼로 위협을 하고, 돈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배고픔을 이용하여 폭력을 행사한다. 이러한 자들의 특징은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 3:19). 생각이나 행하는 모든 일이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함이라 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자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고 복을 받은 사람들은 다르다. 가진 재물을 가난하고 소외당하는 사람들에게 나누며 산다는 것이다. 이같이 의로운 일은 하나님의 사람들인 의인들만 할 수 있다. 가난한 자를 돌보지 않다가 지옥 불에 간 사람이 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이다. 부자는 그의 대문 앞에 있는 거지를 보살피지 않았다. 배고픈 자에게 따스한 음식을 주지 않았다. 상에서 떨어진 음식을 개들과 함께 먹었다.   그러나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눅 16:19). 부자는 왜 지옥에 갔을까요?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으므로 인하여 공의의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을 악인이라 한다. 악인은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웃을 이용하거나 빼앗는 자이다. 이러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계 11:4-5) 본문의 말씀은 일곱째 나팔을 부는 그 날에 있을 상황을 보여 주시고 있다. 이제 나팔을 불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심판이 있다. 그렇게 되면 의인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가게 되고, 악인은 불 심판을 받게 된다.   마지막 때의 상황은 교회가 핍박을 당하고 있다. 이방인들이 성전 뜰 안까지 들어와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고 한다. 그런데 악한 세력을 물리치기 위하여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셨다. 두 증인은 교회를 말한다.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11:4하), 기름 부음을 받아 빛을 밝히는 자들이다. "이르되 이는 기름 부음 받은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는 자니라 하더라"(슥 4:14) 기름 부음을 받아 세움을 받은 왕, 제사장, 선지자가 있다. 스가랴서에서 성전 재건을 위하여 총독 스룹바벨과 제사장 여호수아가 앞장을 선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은 자들을 "왕 같은 제사장"이라 한다. 즉 악한 세상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택함을 받아 세상을 향하여 빛을 발하는 신자들을 말한다. 교회는 이와 같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세상이 악하고, 세상이 핍박을 하여도 예수 그리스가 함께 함으로 인하여 능히 이길 수 있음을 말한다. 그런데 신자들이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계11:7). 짐승들에게 신자들이 죽임을 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11:11).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함으로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마 13:12) 본문의 말씀에서 있는 자와 없는 자를 말하고 있다. 물질이 있고 없음에 따라서 나타나는 현상을 통하여 진리의 말씀에 대한 중요함을 전하려 하는 것이다. 진리를 깨닫는 자는 더욱 더 진리를 깨닫게 되고, 진리의 말씀을 거부한 자는 더 비참해 진다는 경고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천국의 비밀을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깨달았을 때에는 더 부요하게 되고, 거부할 때에는 비참해 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듣고, 그분이 행한 것을 본 것을 말한다. 가르침과 본 것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야이시고, 하나님 나라가 이미 도래하였음을 알 수 있게 된다.   깨닫고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며 영생이 보장되어 있다. 그러나 깨닫지 못하는 자에게는 그에게 베풀어졌던 천국복음 마저도 악한 자들에게 빼앗기게 됨으로서 영원한 멸망에 처할 수밖에 없다. 이것에 대하여 사도 베드로가 한 구절로 정리를 하였다.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벧후 1:9). 이와 같은 현상은 믿음이 게으른 사람들에게 나타날 수 있으므로 경계를 하여야 한다. 본문의 말씀은 천국의 소망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무엇을 약속하였는지를 깨닫는 것을, 있는 자와 없는 자로 구분이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 듣지 못하고, 아예 알아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면 심각한 것입니다. 들어야 깨달을 수 있고, 보어야 알 수 있습니다. 만일 듣지도 않고, 보지도 않으려 하면, 그것은 영적 귀머거리와 영적 소경이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많이 깨닫고 안다면 더 많은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만 은혜가 임함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설교 말씀을 많이 들으시고, 많이 성경을 읽으셔야 천국의 기쁨을 누리게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마 13:23) 본문은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 비유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잘 듣고 그 대로 행할 때에 성령의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때에 나타나는 능력은 방언이나 신비한 꿈을 꾸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인격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주의 영광을 보면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한다고 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수난을 거쳐야 영광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전하는 말씀은 하나님의 것이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준행하셨다. 그것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열매를 맺는다고 함은, 그분이 가셨던 십자가의 길을 가고 있음을 말한다. 그런데 그 길은 단숨에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믿음의 점진적인 내용이 채워져야 함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으로 비유를 하고 있다. 안개가 자욱한 길에서는 앞이 희미하게 보이지만 그러나 걷다가 보면 자세히 볼 수 있게 된다. 믿음에는 이러한 과정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사도요한은 이것을 한 절로 정리를 하였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 1:1). 믿음이 성숙한 자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소망의 약속을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보았음을 증거하여야 한다.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자세히 들어야 하고, 눈으로 정확하게 살펴야 하고, 행함으로 인하여 그 은혜를 손이 쥐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의 믿음과 교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