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14의 게시물 표시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이대로는 아닌 것 같다 . 단순한 생각의 범위를 넘어서 고뇌의 수준까지 이르러야 한다 . 대한민국이 아니라 대강민국으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정치는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국민 모두를 잘살게 하는 것이라 한다 . 그런데 국민의 의견을 어디까지 수용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   나라의 국방을 지키기 위하여 차세대 전투기 결정에 역대 공군 참모총장들과 조종사들이 선정한 전투기가 국민의 의견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결정이 취소되었다 . 일반적인 상식으로도 전투기에 대해서는 전투기 조종사 출신들이 더 잘 알 것이고 주무부서인 공군이 전문가이다 .   또한 이번 참사에도 마찬가지이다 . 전문가들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의견에 눈치를 살피는 정국이 되었다 . 참으로 대단한 일은 지금 대한민국 국민 전부가 해상 전문가이며 선박 전문가가 되었다 . 그래서 저마다 한마디씩 외치고 있다 .   TV 에서 방송한 해상전문가의 몇 십분 밖에 안 되는 분량의 지식을 듣고는 다들 전문가가 된 것이다 . 그 얇고 좁은 지식으로 소위 전문가처럼 난리를 치고 있다 . 어찌하면 좋겠는가 ? 전문적인 일은 그것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 . 이것이 불신사회이다 .   이번 참사로 인하여 누구도 밑을 수 없는 대한민국이 되었다 . 뜨거운 눈물과 감정으로 바다 속에 갇혀 있는 우리의 아이들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 냉철하고 정확한 이성적인 판단과 모든 지혜를 동원하여 구조작업을 하여야 한다 .   아이들의 생명이 귀하고 소중하다면 다른 이유와 조건이 없다 . 이웃 나라에서 구조작업에 도움을 준다고 하면 역사의 감정을 내세워 거부도 하지 않는가 ? 가만히 따져보면 생각과 결정이 전혀 다른 것이다 . 우선으로 하여야 할 일은 배 안에 갇혀 있는 생명을 먼저 살리는 일에 총력을 기울여야한다 .   그런데 어린 학생들의 생사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실무담당자들을 질책하는 것은 더 혼란스럽게 하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피하리라

  사람은 인격체로서 지적 , 감성 , 의지적인 면을 갖고 있다 . 그래서 어떤 사물에 대하여 지식으로 인지하면 그것이 근거하여 감정이 생기고 또한 의지적인 자리로 나아가게 된다 . 그래서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라 한다 . 이러한 부분 , 부분들이 잘 발달된 사람을 훌륭한 인격체라고 한다 .   대한민국 진도 앞 바다에서 생긴 배의 침몰로 인하여 나라 사람들 전체가 슬픔에 잠겨 있고 또한 전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미 전에도 몇 차례 해상사고가 있어서 아픈 기억이 있었지만 사고 재발방지에까지 이르지 못한 것이다 .   자연재해라는 것은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른다 . 그 때가 오면 슬기롭게 대처하고 피할 수 있는 훈련은 미리 준비하여야 한다 . 그러나 대한민국 사람들은 정이 많고 감정이 발달한 민족이다 . 그래서 그 어려운 시기가 지나가면 그 아픔을 망각한다는 것이다 . 이번 사고에도 안전사고에 대한 불감증이 사고를 크게 키웠다고 한다 .   언제나  다가올 수 있는 큰 재앙이 신자들에게도 믿음의 생활에 나타난다 . 오늘날 교회에도 큰 시험이 닥치면 수습 후에 후유증은 만만치 않다 . 다시 말하면 믿음을 버리고 교회를 떠난다는 것이다 . 그러나 성경의 말씀을 살펴보면 신자들에게는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다가온다고 한다 .   그래서 그날이 오면 믿음으로 대적을 하고 물리친 후에 설 수 있도록 평상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깨우치라고 한다 . 먼저는 지식으로 알아야 한다 . 그런데 믿음의 생활을 감성적으로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 또는 체험적인 믿음을 자랑하는 자들도 있다 .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 . 즉 하나님의 의가 그리스도 안에 나타나서 죄인들이 의롭게 된다는 것이다 . 이것을 칭의라고 한다 . 즉 하나님이 죄인을 구원하시는 방법은 오직 한 방법 밖에는 없다 .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꿈에서 직접 하나님을 만나서 구원을 받았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 이러한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세상은 점점 악해지고 있다 . 마지막 때가 다가오면서 마귀가 더 극성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 요즈음 한국에서 일어나고 사태를 볼 때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 . 이 엄청난 사건에 대하여 올바르게 전하는 매체가 없다는 것이다 . 말 그대로 거짓이 횡포를 부리고 있다 .   같은 사건을 바라보며 수많은 언론사들이 각각 다르게 소식을 전하고 있다 . 거짓 증인이 전하는 말로 실종자의 가족들을 농락하였고, 전화기로 주고받는 문자에도 근거없는 말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 그 결과 이제는 누구의 말도 신뢰할 수 없게 만들었다 .   마귀는 거짓의 아비이다 . 마귀가 거짓의 아비가 되는 이유는 이러하다 . 하나님의 말씀이나 하시려는 일들을 거짓으로 바꾸거나 방해하기 때문이다 . 그러니 마귀와 함께 하는 자들은 거짓말과 속임수에 능한 자들이다 . 그리하여 분쟁과 시기와 질투를 일으키게 하여 살인의 자리까지 이르게 하는 것이다 .   마지막 때에 거짓 교사들이 활개를 친다 . 그들이 주로 하는 일들은 교회를 파괴하려는 것이다 . 파괴한다고 하여 어떤 무기와 폭력을 동원한다는 것은 아니다 . 그들이 사용하는 것이 거짓이라는 것이다 . 즉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하게 변질을 시킴을 말하는 것이다 .   마귀가 에덴동산에서 하와에게 다가와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하게 거짓으로 만들었다 . 마귀가 그녀에게 다가올 때의 모습은 스스로 광명한 천사의 모습으로 다가온 것이다 . 하와가 마귀의 말을 듣고 보니 선악과가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럽게 보였다 . 그리하여 먹었더니 결과는 너무나 비참하게 된 것이다 . 이것이 마귀의 수법이다 . 이 수법은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쓰는 방법이다 .   마귀는 지금 교회를 분열시키려한다 . 지금도 그들이 쓰는 방법은 거짓 가르침이다 . 하나님의 말씀과 계획을 거짓으로 교묘하게 바꾸는 것이다 . 교회는 성령하나님의 역사로 세워져 가고 있다 .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교회가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대형 인명 참사가 터지면 한국교회와 목사들은 할 말을 잃는다 . 그동안 전해왔던 하나님의 능력 , 사랑과 자비와 긍휼함에 대하여 적용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 이 순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가슴에 바닷물이 출렁이고 있는 차디찬 고통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   지금 우리는 고난 주간에 있으며 부활절을 앞두고 있다 . 부활의 영광의 아침에 어떤 말씀으로 희생자들의 슬픔을 위로할 수 있을까 ? 목회자라면 고민 가운데 있을 것이다 .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분별하고 해석하여 교인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은 하는 자이다 . 그러니 말씀의 본래 의미와 목적을 잘 알아야 한다 . 그런데 만일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면 마귀의 거짓으로 변하게 된다 .   목사는 모두가 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아니다 . 그중에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뜻과 일하심을 온전히 전하는 자가 있고 , 다른 이들은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르게 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우리의 생각에는 거짓교사나 거짓 선지자는 교회 밖에 있다고 생각을 한다 . 그러나 그렇지 않다 . 거짓교사와 거짓 목사는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이다 .   그래서 야고보에서는 선생 된 자들이 말하는 것을 조심하라는 경고가 있다 . 목사가 말씀을 전하는 일은 자칫 마귀의 거짓교사의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이다 . 약속하신 범위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   거짓교사가 하는 일은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게 하는 것과 그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지 못하게 하는 일이다 . 거짓교사의 가르침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낙심하고 있다 . 그들은 하나님을 의심하고 있다 . 그리고 하나님을 부인 하고 있다 . 대형 참사가 터질 때마다 기독교는 늘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다 .   평상시에 능력있다고 자랑하던 목사들이 있다 . 무엇이든지 다 해결할 수 있다고 하던 목사들은 지금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자연의 이치는 때가 이르면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 만일 이른 봄에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진다면 미쳤다는 표현을 쓰게 된다 . 모든 이치가 과정 속에 결과가 나타나야 아름답다는 찬사를 듣게 된다 . 가을에 나타나는 단풍과 낙엽이 아름다운 충분한 이유가 있다 .   봄이 되면 나무에 꽃이 핀다 . 그리고 나뭇잎이 나올 때가 되면 바람이 세차게 분다 . 세찬 바람은 꽃잎을 떨어지게 하고 잎이 나오게 하기 위함이다 . 나뭇잎이 펼쳐지게 되면 이제 열매를 맺는데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하거나 협력을 하게 된다 . 또한 열매가 강렬한 태양을 피할 수 있도록 가려 주기도 한다 .   마침내 열매를 결실하고 농부가 수확을 하면 나뭇잎은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몸의 색깔을 변화시키고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 이것이 낙엽이 아름답고 멋진 이유이다 . 긴 세월 속에 자신의 맡은 바 임무와 책임을 다하고 다시 본향으로 되돌아가는 아름다움이다 .   인생의 연륜도 마찬가지이다 . 시절을 따라 꽃을 피우고 잎을 내며 열매를 맺어야 한다 . 그런데 그렇지 못하면 나이 값도 못한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 사람들마다 이것에 대한 가치의 기준을 달리 정한다 . 어떤 이들은 성공을 기준으로 심기도하고 , 다른 이들은 인격이라 하기도 한다 .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선한 일을 하게 하기 위함이다 . 여기에서 선한 것이란 도덕 윤리적인 것이 기준이 아니다 . 성경에서의 선이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라 한다 . 그러기에 선이란 하나님의 것들을 말하는 것이다 . 그러니깐 사람이 선한 일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닮아서 같은 생각과 뜻으로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그런데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깨닫고 사는 사람들이 별로 많지 않다 . 그 이유는 선과 악에 대한 진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 믿는 자들이 흔히 하는 말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회개의 기도를 드리는데 이 , 삼분만 지나면 고백할 것이 없다고 한다 .   그 이유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지구촌 이곳저곳에서 지진이 발생하고 화산 폭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 겉으로는 태연한 척들 하지만 속내는 겉과는 다른 것 같다 . 그리스도인들은 기근과 지진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떠올린다 . 하나님은 지금도 재림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하기 위하여 약속하신 대로 자연을 사용하신다 .   비그리스도인들은 재림의 심판이 다가오는 날을 알지도 못할뿐더러 만약에 그런 일이 있다면 운명에 맡긴다고 한다 . 즉 죽지 않으면 살 수 있다는 요행을 바랜다 .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은 반드시 불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약속하셨다 .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이 문제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하다 . 어떤 이들은 모든 것을 정리하고 그날을 맞을 준비하였다가 망신만 당한 자들도 있다 . 또 어떤 이들은 몇 번에 걸쳐 예언을 하였지만 번번이 빚나간 일들도 있다 . 그러나 성경의 말씀은 아버지 이외에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였다 . 그래서 깨어서 있으라고 하셨다 . 그리고 오시는 날에 더디므로 인하여 졸다가 주님이 오시는 소리에 놀라서 허겁지겁한다는 말씀도 하였다 . 주님이 영광으로 다시 오시는 날에 주님을 맞이하는 자는 영광에 함께 참예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마지막 날에 그 자리에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다 . 그러다보니 그 날에 알고 싶고 궁금한 것이다 . 그러나 재림을 기다리는 자들은 오늘 지금을 준비하여야 한다 . 왜냐하면 오늘 저녁에도 오실 수 있기 때문이다 .   재림의 신앙은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 오늘이라는 시간을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믿고 전파하여야 하고 , 서로 사랑을 하면 된다 . 이와 같이 하는 자에는 주님 안에 있는 것이고 , 주님이 그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다 .   주님은 제자들에게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하여 예수님의 재림을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이미 우리 몸에 베여 있는 “ 약육강식 “ 의 법칙이 있다 . 강한 자를 만나면 스스로 알아서 처신을 하고 나보다 못하다 싶으면 깔보고 무시를 한다 . 이와 같은 현상이 잘 나타나는 곳이 차 안이며 , 운전할 때에 반사적으로 나타난다 . 현대인들은 많은 스트레스와 분노를 앉고 살아가고 있다 .   운전의 보편적인 습관이 비싼 차는 가까이 하지 않고 , 정지 신호 후에 출발을 할 때에 조금 늦게 출발을 하여도 감정적으로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 그러나 반대로 작은 차일 경우에는 다르다 . 조금만 잘못하면 심한 욕설과 함께 일부러 주행을 방해하기도 한다 .   점잖아 보이던 그리스도인들도 이 부분에서는 예외일 수가 없다 . 습관적으로 욕설이 튀어나온다 . 그래서 동승한 자들이 오히려 더 당황해 경우도 있다 .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다 .   성령이 충만한 삶은 사랑 안에서 절제이다 . 부패한 성품을 억제하고 절제하지 못하면 육의 사람이 된다 . 육의 사람들은 어두워진 마음을 가진 자들이다 . 자기의 뜻과 생각으로 하는 사람들이다 . 그러다보니 자기의 생각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된다 .   우리가 쉽게 분노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 특히 운전 중에는 더욱 심하다 . 그 이유는 가고자 하는 방향과 목적지가 있고 , 혼란과 위험 속에서 안전과 평화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 그래서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서 방해하는 자가 대상이 되고 , 나의 평화를 깨고 위협하는 자가 그 대상이 된다 .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상황을 이기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 . 마귀의 간계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거룩하게 살지 못하게 유혹을 한다 . 더러운 것을 입에 담지도 말라는 말씀을 무색하게 하려 함이다 .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믿는 자들을 통하여 부인하게 하려는 의도이다 .   그리스도인에게는 지혜가 필요하다 . 도로를 운전할 때에는 당연히 마귀의 유혹이 다가온다는 것을 미리 생각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