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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딤전 6:3)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증상이 나타난다. 그것은 교만해져서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든 것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살인하고 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딤전 6:4). 또한 마음이 썩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진리가 마음에 없게 되면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난다.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딤전 6:5). 하나님의 교회에는 하나님과 관계, 즉 언약을 맺은 사람들이 모인다. 그런데 약속의 말씀을 알지 못하면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곳으로 생각하여 직분과 직책에 연연한다. 자리와 권세를 주지 않으면 협박을 하거나 교회를 떠난다. 신자들이 교회에 모이는 것은 진리의 말씀을 들으며 배우기 위함이다. 우리들의 죄악을 용서받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는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의 약속이 내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영원한 가치가 있다. 변하지 않고 항상 풍성하고 평강과 기쁨이 이다. 그중에서도 안식의 은혜가 크다. 아버지가 자녀들을 위하여 역사하시기 때문에 안식할 수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죄값을 치루기 위해서는 이 땅에 있는 것으로 안 됩니다. 반드시 십자가의 구원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을 영생이라 하는데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입니다.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요 5:26) 영생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셔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들의 생명을 속량하는 값이 너무 엄청나서 영원히 마련하지 못할 것임이니라

  “그들의 생명을 속량하는 값이 너무 엄청나서 영원히 마련하지 못할 것임이니라”(시 49:8) 성경 말씀에서 돈이 나쁘다고 하지 않는다. 현대인들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돈은 양면성을 띄고 있어서 배고픈 자에게는 도움이 되고 도박하는 자에게는 악이 된다. 본문에서도 돈이 좋은 것, 나쁜 것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돈의 가치를 말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돈으로는 하나님의 구원을 살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천국은 돈으로 가는 곳도 아니고 잘생겨서 가는 곳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가는 곳이다. 즉 하나님께 선물로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받음으로 갈 수 있다.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깨닫게 한다. “그들의 생명을 속량하는 값이 너무 엄청나서 영원히 마련하지 못할 것임이니라”(시 49:8). 사람은 태어났다가 죽는데 평생을 모은 돈으로 자신의 죄값을 갚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옥을 가게 된다.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게 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길이 열린다.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받은 자만이 갈 수 있고, 그곳에는 생명이 있는데 하나님 앞에서 사는 기쁨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기쁨은 하나님과 화목이다. 이 땅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마다 악하여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서 떠나 가셨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창 6:3). 그래서 하나님을 모르는 죄인이 된 것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시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인하여 평강을 누린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만나서 하시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요 20:22). 떠나셨던 하나님이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 육년 동안에 지었거늘 내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켔느냐 하더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 육년 동안에 지었거늘 내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켔느냐 하더라”(요 2:20) 성전은 어떤 곳인가? 죄사함을 받아 거룩한 자가 되어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다. 그런데 만일 죄가 있으면 하나님을 만난 수 없다. 그런데 성전이 장사꾼의 터가 되었다. 그래서 성전 청소를 하시면서 이 성전을 허물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죄를 사해주시는 권세가 있음을 보여 주셨다.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마 9:2).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요소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거하셔야 하고, 죄사함을 받은 제사장이 있어야 하고, 흠이 없는 제물을 드려야 한다. 그런데 지금 성전 안에는 자격이 없는 제사장도 있다. 이제 성전 시대는 막을 내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시대가 시작됨을 알린다. 하늘 보좌 우편에서 영원한 제사장이 되시며 흠이 없으며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성전이 된다.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 육년 동안에 지었거늘 내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요 2:20) 제자들도 이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믿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요 2:20)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본문의 저자인 사도 요한이 그 시대에 성전 안에 있던 제사장들과 섬기는 사람들의 무식함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요 2:17) 하나님을 믿는다고 함은 그분의 말씀과 뜻하심을 따르는 것입니다. 성전 안에는 하나님이 임재하고 계심을 나타냅니다. 무엇으로 그것을 나타내느냐 하면 그분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어느 곳보다도 더 말씀을 살피고 순종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성전 안에는 장사꾼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가 왕께 아뢰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성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하셨나이다

  “그가 왕께 아뢰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성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하셨나이다”(왕상 20:42) 왕상 20장에서는 아람 벤하닷 왕이 그의 군대를 다 모으고 사마리아를 치러 온다. 이에 아합 왕도 전쟁을 준비한다.   그런데 한 선지자가 아합 왕에게 이르러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람의 군대를 왕에게 넘기겠다고 하셨음을 전한다. “한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아합 왕에게 나아가서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큰 무리를 보느냐 내가 오늘 그들을 네 손에 넘기리니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왕상 20:13)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스라엘 왕이 나가서 말과 병거를 치고 또 아람 사람을 쳐서 크게 이겼더라”(왕상 20:21) 아람 군대를 물리쳤다. 그 다음 해에 아람 군대가 다시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다. 이 번에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람 군대를 아합의 손에 넘기신다. “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와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아람 사람이 말하기를 여호와는 산의 신이요 골짜기의 신은 아니라 하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 큰 군대를 다 네 손에 넘기리니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왕상 20:28) 아람 군대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은 산 위에서만 힘을 쓰시지 골짜기에서는 맥을 못추는 신이라 조롱을 하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호와인 것을 알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아합 왕이 아람 군대와 벤하닷을 죽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아합 왕이 자기 마음대로 벤하닷을 살려주고 조약을 맺는다. 이와 같은 행위는 아합 왕에게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는데도 의도적으로 대적하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벤하닷을 치라 명령하셨는데 아합 왕은 자기 마음대로 벤하닷을 살려 줌으로 인하여 “그가 왕께 아뢰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성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그의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왕상 19:15) 아합 왕이 갈멜산에서 있었던 일을 이세벨에게 말한다.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기를 네 생명도 반드시 내일 오늘 죽은 바알 선지자들 같이 되리라 한다. 이 말을 들은 엘리야는 도망을 하여 유다에 속한 광야로 들어가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 죽기를 원한다. 그 때에 천사들이 이르러 엘리야를 어루만져 주며 구운 떡과 물을 준다. 엘리야는 천사가 주는 음식물에 힘을 얻어 사십 주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 산에 이른다.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왕상 19:8) 여호와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부르신 것이다. 지금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계획이 없으신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가서 아람 사람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라 한다. 하사엘은 아람 왕 벤하닷의 군대장관이다. 하사엘이 벤하닷을 죽이고 왕 위에 올라 이스라엘을 지속적으로 괴롭힌다. 즉 하나님께서 하사엘을 막대기로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치시는 것이다. 또 예후에게 기름을 부으라 한다. 왜 그런가 하면 예후를 통하여 아합 왕이 속한 오므리 왕조를 멸절시킨다. 엘리야가 말한 것처럼 아합의 자손들이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으라 한다. 예후의 칼을 피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으로 인하여 그것이 이스라엘에게 더 많은 심판을 받게 하기 위함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에서 엘리야는 오늘에 처한 문제를 놓고 낙담을 하였습니다. 그런 엘리야를 호렙 산으로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의인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미래의 일을 다 준비하고 계십니다. 엘리야의 심정은 무엇입니다. 어찌하여 아합 왕이 멀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소서 내게 응답하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소서 내게 응답하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왕상 18:37) 아합 왕은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고 있다. 엘리야가 아합 왕을 만났을 때에 어느 신이 하나님이신지 확인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가 대결을 한다. 제단을 쌓고 섬기는 신의 이름을 부르면 제단에서 불이 나오는 것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을 행하는데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 앞에서 행하자고 한다. “아합이 이에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로 사람을 보내 선지자들을 갈멜 산으로 모으니라”(왕상 18:25) 그래서 바알 선지자 사백 오십 명이 먼저 아침부터 점심이 지난 시간까지 외쳤지만 제단에 불이 붙지 않는다. 심지어 몸에 칼과 창으로 자해를 하며 부르지만 대답이 없다. 이번에는 엘리야의 차례가 되었다. 엘리야가 기도하기를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과, 자신은 단지 여호와 하나님의 종인 것과, 내가 행하는 모든 것은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라 한다. 그러면서 제단에서 불이 나옴으로 인하여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소서 내게 응답하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왕상 18:28)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제단에 불을 내리셨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때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왕상 18:38) 본문의 말씀은 엘리야와 아합 왕 사이에서 눈치를 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택하든지 바알을 택하라는 강력한 메시지가 된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 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왕상 18:21)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엘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왕상 17:1)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기를 내 명령과 율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지 않으면 저주가 임한다고 하셨다. 본문의 말씀에 하나님의 말씀에 없으므로 인하여 이스라엘 땅에 기근이 내렸다. 이 재앙을 하나님이 주관하심을 알게 하기 위하여 선지자 엘리야에게는 까마귀를 통하여 떡과 고기를 먹는다. 그릿 시냇가에서 물을 마셨지만 얼마 후에는 그 시내가 말랐다. 아합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엘리야가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인 것을 알게 하기 위하여 이방 여인들 통하여 증거하신다. 시돈에 속한 사르닷 과부는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에게 마지막 남은 음식을 대접한다. 그러자 가뭄이 지나 갈 때까지 여인의 집에는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았다. 또한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이심을 여인의 아들의 죽음을 통하여 보여 주신다. 엘리야의 간절한 기도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응답을 하신다.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왕상 17:22) 이 일을 통하여 이방 여인은 엘리야가 전하는 말씀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알게 된다.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오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왕상 17:24)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아합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지자 엘리야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자 이방 여인을 통하여 엘리야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임을 알게 하려 합니다. 이스라엘 땅에 기근이 들어서 먹을 양식이 없는데 이방 여인에게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누가 받아야 합니까? 택함을 받은 약속의 백성이 받아야 됩니다. 그러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인하여 복은 받지 못하고 저주의 징계를 받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없으면

주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시온 산은 기뻐하고 유다의 딸들은 즐거워할지어다

  “주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시온 산은 기뻐하고 유다의 딸들은 즐거워할지어다”(시 48:11) 시편의 저자는 위대한 하나님이 거룩한 산 성안에 계심을 찬양하고 있다. 높고 높은 거룩한 하늘 보좌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도 높은 곳에 세워졌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군대 십팔만 오천 명을 이끌고 왔지만 간밤에 하나님의 사자가 저들을 물리쳤고 산헤립은 고향으로 돌아가 그의 두 아들에게 칼에 맞아 죽는다. 그래서 이방나라 왕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다. 하나님의 능력이 폭풍우로 나타나 바다에 큰 배로 깨트린다. “주께서 동풍으로 다시스의 배를 깨트리시도다”(시 48:7) 즉 어떠한 강한 나라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는 어느 것도 무용지물이 된다. 그런데 시편의 저자가 찬양하는 내용을 살피면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과 같이 찬송도 땅 끝까지 미쳤으며 주의 오른손에는 정의가 충만하였나이다”(시 48:10) 한다. 왜 그런가 세상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공의가 시행됨으로 인하여 악인이 심판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온 산은 기뻐하고 유다의 딸들은 즐거워한다고 한다. 왜 그럴까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저주가 아니라 오히려 복이 임하기 때문이다. 악인에 대한 심관과 마지막 날에 심판은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게 하기 위하여 여러 선지자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방 사람들은 거절하고 대적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품안에 계시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실 새언약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를 속량하시고 또 성령을 우리들의 마음에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거듭나면 새롭게 태어난 피조물이 됩니다. 새롭게 태어난 새사람이 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람입니다. 왜 그렇게 하느냐 하면 그분과 함께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과 같이 찬송도 땅 끝까지 미쳤으며 주의 오른손에는 정의가 충만하였나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과 같이 찬송도 땅 끝까지 미쳤으며 주의 오른손에는 정의가 충만하였나이다”(시 48:10) 시편 48편에서는 높은 산성에서 공의를 행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공의 심판에 의해서 이 세상의 왕들도 심판을 받는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군대 십팔만 오천 명을 이끌고 왔지만 간밤에 하나님의 사자에 의해서 다 송장이 되었고, 산헤립은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의 두 아들들에게 칼로 죽음을 당한다. 하나님의 능력에는 아무리 강한 것이라도 당할 수가 없다. 마치 바다 풍랑에 침몰하는 배와 같다는 것이다. “주께서 돌풍으로 다시스의 배를 깨트리시도다”(시 48:7).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가? 하나님은 정의와 공의로 세상을 주관하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방의 왕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을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에 불순종을 하면 공의로운 심판을 받게 된다.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면 “여호와께서 너를 대적하기 위해 일어난 적군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라,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신 28:7). 즉 적군이 쳐들어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을 가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순종을 할 때에는 “여호와께서 네 적군 앞에서 너를 패하게 하시리니, 네가 그들을 치러 한 길로 나가서, 그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할 것이며, 네가 또 땅의 모든 나라 중에 흩어지고“(신 28:25), 적군에게 패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축복과 저주를 약속하셨다. 저주의 약속은 그 땅에 가뭄이 내리고, 이방나라가 침략을 하고, 포로로 잡혀가고 민족이 흩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이 불순종을 하자 그 땅에 기근을 내리신다.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왕상 17:1) 즉 하나님의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요 2:11)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나에 혼인 잔치에 참여하셨다가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이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조심하여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이 사건을 통하여 무엇을 말씀하려하시는가에 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네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게 하는데 있다. 그래야 아버지의 뜻과 영광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혼인 잔치를 통하여 하늘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자와 기쁨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다. 발을 씻는 물을 담는 항아리에 물을 채우니 포도주가 된다. 유대인의 정결법에 의하면 물로 손과 발을 씻으면 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야 정결하게 됨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으면 이제껏 맛보지 못하였던 기쁨이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탕자였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아버지의 것이 내 것이 되는 기쁨이다. 그래서 항상 기뻐할 수밖에 없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있었던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을 표적이라 한다. 즉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심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시므로 믿음이 생긴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경에서 비유, 표적, 기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을 설명하는데 비유와 표적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본문의 물로 포도주를 만든 표적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시기 위함입니다. 제자들이 이와 같은 표적을 보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심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성경에서 선지자와 사도들의 증거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심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는데 이미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

또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니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또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니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왕상 16:33) 본문은 북이스라엘 아합 왕 때의 일이다. 그는 아주 악한 왕이어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옛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왕상 16:31) 하였다. 그에 악함은 여로보암의 길을 따랐을 뿐만 아니라 사마리아에 바알을 위하여 신당을 건축하고 제단까지 쌓았다.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왕상 16:32) 또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니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33). 그뿐만 아니라 여리고 성읍을 재건하므로 요단을 건너지르는 길을 장악하려 하였다. 그런데 그 건축을 담당하던 히엘이 두 아들을 잃는다.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그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성문을 세울 때에 막내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34)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약속의 말씀이다. 이미 여호수아를 통해서 여리고를 재건하는 자에게 내리는 벌을 말씀하셨다.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누구든지 일어나서 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그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 아들을 잃으리라 하였더라”(수 6:26) 여호수아를 통하여 약속하신 말씀이 오백 년이 지난 후에도 그대로임을 보여주고 있다. 북이스라엘의 죄는 우상 숭배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이다. 즉 하나님을 버리는 행위를 하고 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 약속의 말씀이 유효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았던 다윗의 길을 가야 합니다. 다윗은 완전한 자가 아니었

유다의 아사 왕 셋째 해에 바아사가 나답을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고 왕이 될 때에 여로보암의 온 집을 쳐서 생명 있는 자를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다 멸하였는데 여호와께서 그의 종 실로 사람 아히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으니

  “유다의 아사 왕 셋째 해에 바아사가 나답을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고 왕이 될 때에 여로보암의 온 집을 쳐서 생명 있는 자를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다 멸하였는데 여호와께서 그의 종 실로 사람 아히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으니”(왕상 15:28-29)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 왕의 역성혁명(세습왕조가 다른 가문으로 바뀌는 것)을 말하고 있다. 바아사가 나답을 죽인다. 나답의 아버지가 여로보암이다.   여로보암의 모든 남자를 다 죽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이미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한 왕을 일으키신즉 그가 그 날에 여로보암의 집을 끊어 버리리라 언제냐 하니 곧 이제라”(왕상 14:14)고 말씀하신 것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집안의 모든 남자를 죽이는 이유가 있다. 만일 한 사람이라도 남기면 나중에 피의 보복이 있기 때문이다. “피를 보복하는 자는 그 살인한 자를 자신이 죽일 것이니 그를 만나면 죽일 것이요”(민 35:19). 그런데 이스라엘의 왕에 자리에 오를 때마다 역성혁명이 일어나서 바아사의 왕조도 시므리에게 한사람도 남지 않고 죽임을 당한다. 왜 이러한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가? 그 이유는 이스라엘 왕과 백성들이 여로보암의 길을 가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우상숭배를 하고 말씀에 대적한 범죄를 한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우상 숭배하는 자들의 결과가 어떠한지를 확인할 수 있고, 율법을 따라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언제든지 칼을 뽑아 살인할 수 있음입니다. 또 하나 확인을 더 하는 것은 악인은 악인의 손에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방식입니다. 어떤 사람은 의인이 악인을 심판한다고 하는데 잘못된 것입니다. 의인이 칼을 들고 사람을 죽이면 결과적으로 의인이 아닙니다. 의인은 악인의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사용하셔서 심판합니다. 결론적으로 교회 안에서 이웃을 정죄하고 심판하는 사람은 의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의인을 그렇게 쓰시지

여호와께서 아히야에게 이르시되 여로보암의 아내가 자기 아들이 병 들었으므로 네게 물으러 오나니 너는 이러이러하게 대답하라 그가 돌아올 때에 다른 사람인 체함이니라

  “여호와께서 아히야에게 이르시되 여로보암의 아내가 자기 아들이 병 들었으므로 네게 물으러 오나니 너는 이러이러하게 대답하라 그가 돌아올 때에 다른 사람인 체함이니라”(왕상 14:5) 여로보암 왕의 아들인 아비야가 병이 들었다. 그 아이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려고 꾀를 쓴다. 왕은 아내에게 변장하게 하여 자신이 왕이 될 것이라 하였던 선지자 아히야를 찾아가도록 한다. 그러나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진 선지자 아히야에게 하나님이 말씀으로 함께 하신다.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선지자 아히야를 속이려 하였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속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대적함이 된다. 여로보암의 범죄는 자신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숭상숭배를 하게 하였다. “여호와께서 여로보암의 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을 버리시리니 이는 그도 범죄하고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하였음이니라 하니라”(왕상 14:16) 여로보암의 범죄로 인하여 그의 아들이 병들어 죽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율법의 말씀 가운데 내가 불순종하면 자녀에게 저주가 임할 것을 약속하셨다.   그런데 여로보암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용서받으려는 마음이 없다. 선지자 아히야를 이용하여 아들의 병을 고치려하였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거나 순종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능력만을 구하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마리아에 사는 시몬이라 하는 자가 있다. 사도들이 안수하며 성령을 받는 모습을 보고 제자들에게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행 8:19), 베드로가 너희 사악한 마음을 회개하여 주께 기도하라 했다. 오히려 사도들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모습이 본문의 여로보암의 모습과 같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로보암 왕은 선지자 아히야를 이용하려 하였던 사람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직분을 맡았습니다. 그러면 그 말씀을 듣고 옳고 그름은 여호와 하나니 앞에서 판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게 하라 하였느니라 하니 이는 그 사람을 속임이라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게 하라 하였느니라 하니 이는 그 사람을 속임이라”(왕상 13:18) 여로보암 왕에게 하나님의 사람이 나타나 하나님의 말씀을 외친다. “하나님의 사람이 제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이르되 제단에 제단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아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서 제물로 바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고”(왕상 13:2). 즉 여로보암이 분향하고 있는 제단이 무너질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증표로 여로보암의 손이 말랐다가 다시 성하게 한다.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왕이 하나님의 사자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에 가서 쉬라 내가 네게 예물을 주리라”(왕상 13:7) 한다. 그러자 하나님의 사람은 “나는 왕과 함께 들어가지고 아니하고 이 곳에서는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8하). 하나님의 사람이 왕의 부탁을 거절하고 길을 떠난다. 하나님의 사람이 길을 떠나자 그 고을에 사는 나이가 많은 선지자가 그를 찾아가 만난다. 나이가 많은 선지자가 자기의 집으로 가서 쉬었다 가라 한다. 그러자 하나님의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집에 들어가지도 말고 음식도 먹지 말라고 하였다고 하며 거절을 한다. 그러자 나이 많은 선지자가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게 하라 하였느니라 하니 이는 그 사람을 속임이라”(왕상 13:18). 나도 선지자인데 여호와의 말씀이 당신을 데리고 집을 들어가서 먹을 주라 하였다고 거짓말을 한다. 나이 많은 선지자는 거짓 선지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처럼 하지만 거짓말을 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과 거짓을 전하는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