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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암 6:4) 아모스 6장에서는 자만심에 빠진 지도자들에게 주어지는 선포이다. 여호와의 진노의 심판이 임하였는데도 자신들의 영달을 위하여 치장하고 있다. 그들은 호화로운 생활을 하며, 배불리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며 여흥을 즐기고 있지만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않는다. 즉 약속의 말씀대로 징계 받는 날이 옴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으므로 망한다. 그 일에 앞장을 선 사람들이 민족의 지도자들이다. 즉 맹인이 맹인을 인도한 격이 된다.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눅 6:39) 민족의 지도자는 백성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를 하여야 한다. 그런데 자연의 순리를 따라 피조물은 순종을 하여야 하는데 유독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말씀을 쓸개로 바꾸며 공의의 열매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민족의 지도자들의 타락으로 인하여 백성들이 골병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한 목자를 세우셨습니다.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겔 34:23) 한 목자가 예수 그리스도이셔서 선한 목자로 오신 것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 10:11) 선한 목자로 오셔서 아버지 앞으로 인도합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겔 34:24)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암 5:6) 북이스라엘이 살 길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그들의 죄는 자신을 위하여 벧엘과 길갈에 가서 제사를 드리고 있다. 그곳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형상으로 만들어 제사를 드린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다.“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암 5;22) 여호와께서 아모스 선지자를 통하여 여호와께 돌아오라고 하신다. 돌아오라 하심은 육체가 여호와 앞으로 나와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야 함을 말하고 있다. 북이스라엘은 “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며 공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암 5:7) 즉 하나님의 율법을 쓴 쑥으로 바꾸었다함은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았고 여호와의 명령을 하찮게 여겼다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은 살진 제물로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언약의 말씀을 지키는 것을 좋아 하신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 5:24)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교회 안에서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가정과 사회에서도 지켜야 합니다. 어느 곳에서든지 율법의 말씀을 기억하며 행하여야 됩니다. 우리들이 있는 곳과 발걸음이 향하는 곳에는 정의와 공의가 있어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우상이 망하는 날에 함께 망할 것이라 합니다. “너희가 너희 왕 식굿과 기윤과 너희 우상들과 너희가 너희를 위하여 만든 신들의 별 형상을 지고 가리라”(암 5:26) 여호와께서 택한 백성들이 다시는 우상을 섬기지 못하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안으로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신 것이요 우

그들의 입에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있고 그들의 손에는 두 날 가진 칼이 있도다

  “그들의 입에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있고 그들의 손에는 두 날 가진 칼이 있도다”(시 149:6)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백성들에게는 할 일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찬양하는 것이고 악한 마귀와 영적 싸움을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승리로 인하여 하늘과 땅의 권세를 얻으셨다. 그 갖고 계시는 권세를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도 주셨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 때에도, 느헤미야가 성벽 재건을 할 때도 그리하였다. “성을 건축하는 자와 짐을 나르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느 4:17)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마귀를 대적하는 권세를 주셨다.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 내되 너희가 거져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 10:8) 이와 같은 권세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나타난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는 순종하지 않으면서 귀신을 쫓으려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세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더러운 귀신아 나갈지어다‘ 하며 외치는 자들이다. 이러한 자가 성경에서 귀신들린 자에게 망신을 당하여 벌거벗은 몸으로 도망가는 일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흉내 내어 돈벌이를 하려던 사람들입니다.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행 19:13) 그리하였더니 마귀가 놀라서 조롱을 합니다. 마귀는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고 있는데 마술하는 유대인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행 19:15-16)

춤 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 소고와 수금으로 그를 찬양할지어다

  “춤 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 소고와 수금으로 그를 찬양할지어다”(시 149:3) 시편 149편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자라면 감사와 찬양을 하여야 한다. 감사를 최고의 기쁨으로 나타내는 것이 춤추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으면 주의 성령이 내재하셔서 생명의 샘물이 흐른다. 그러면 감사와 기쁨으로 춤을 추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찬양도 최고의 기쁨으로 소고와 수금과 함께 한다. 무엇에 대한 기쁨인가 다시 본향으로 돌아가는 기쁨이다. 이것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로 택함을 받은 백성들에게 허락하신 것이다. 다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서 이제는 악한 자를 물리칠 수 있는 권세도 주셨다. 그래서 찬양을 하며 한 쪽 손에는 창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영적인 권세도 주심으로 인하여 악한 마귀를 대적할 수 있는 능력도 주셨다.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 내되 너희가 거져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 10:8) 그래서 마귀와 싸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며 춤을 추는 것에 깊은 묵상이 있어야 합니다. 즉 기쁜 소식으로 인하여 춤을 추는 것과 음악 소리를 듣고 춤을 추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확인하고 기쁨을 춤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음악 소리를 듣고 춤을 추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도회 장을 가면 볼 수 있고 스포츠 센터에 가면 보입니다. 같은 몸동작을 할지라도 기쁨의 근원이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구원의 소식을 듣고 춤을 추고 있습니까 아니면 드럼과 기타 소리에 춤을 추고 있습니까? 무엇에서부터 잘못되었을까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빌립보서는 고난과 환난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서신을 보내고 있다. 보내는 이유와 목적은 고난을 견디며 이길 수 있는 진리를 전하기 위함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자들에게는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셨다. 그 과정 속에 환난이 닥친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도 기뻐한 것이다. 즉 구원은 성삼위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기 때문에 변치 않는다. 신자들이 고난이 다가오면 믿음이 흔들린다.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믿음의 방식을 구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으로 구하라 하신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요 14:13)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하여 범사에 감사하라 하신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아버지의 뜻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 구하면 알려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머리가 되시는 교회에서 배우고 들을 수 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 2;14)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떡이라 한다. 이 말씀으로 육에 속한 사람을 분별한다. 즉 구원을 얻은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은 자이다. 그렇다면 생명이 있다고 함은 생명의 양식을 먹게 된다. 반면에 육에 속한 자는 죽은 자이므로 양식을 먹을 수 없다. 오히려 양식이 짐이 되고 거북하다. 생명이 있는 자는 생명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은혜에 감사하고, 순종하는 자리로 나간다. 그뿐만 아니라 생명을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하는 우선순위를 생각하며 판단을 한다. 이러한 증상이 있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은 자들이다. 달리 말하면 생명이 있는 자만이 생명의 말씀을 먹고 듣고 찬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영적으로 산 자인지 죽은 자인지를 분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의 양식을 먹는지, 생명의 말씀을 듣는지, 손과 발을 움직일 수 있는 지로 확인합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요 6:55-56)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롬 7:7) 하나님의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즉 사망에서 생명의 자리로 옮겨오게 되었다. 율법을 통하여 의인은 하나도 없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자가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율법은 필요 없냐는 것을 묻고 있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입은 자들에게는 율법이 필요 없는 지를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답은 오히려 필요함을 말하고 있다. 즉 율법이 있어야 죄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롬 7:7) 율법을 통하여 선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지만 지킬 수가 없다. 그렇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자들은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 생명의 성령의 법이 함께 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 그리고 더 이상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을 정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이제 하나님의 율법을 깨우치며 순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은 율법을 온전히 지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니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3) 우리가 계명을 지키려 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쉽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 중의 성읍 무너뜨리기를 하나님인 내가 소돔과 고모라는 무너뜨림 같이 하였으므로 너희가 불붙는 가운데서 빼낸 나무 조각 같이 되었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너희 중의 성읍 무너뜨리기를 하나님인 내가 소돔과 고모라는 무너뜨림 같이 하였으므로 너희가 불붙는 가운데서 빼낸 나무 조각 같이 되었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암 4:11) 성경에서 진노의 심판 날을 경고하면서 소돔과 고모라가 자주 등장을 한다. 즉 여호와 하나님은 정의와 공의를 시행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라”(창 18:19) 즉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대로 공의를 시행하심을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통하여 보여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어긴 모든 자들에게는 공의의 심판이 있음을 깨닫게 한다. 이제 북 이스라엘에게도 공의의 심판을 하여 앗수르 나라에게 침략을 당하여 심판하시겠다는 것이다. “내가 너희 중의 성읍 무너뜨리기를 하나님인 내가 소돔과 고모라는 무너뜨림 같이 하였으므로 너희가 불붙는 가운데서 빼낸 나무 조각 같이 되었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암 4:11)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판단하거나 비판할 수 없습니다. 이것에 대하여 성경에서는 토기장이 비유로 설명을 합니다.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이와 더불어 다툴진대 화 있을진저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무엇을 만드느냐 또는 네가 만든 것이 그는 손이 없다 할 수 있겠느냐”(사 45:9) 즉 천지만물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관하게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분의 질서와 뜻을 따라야 합니다.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암 4:4) 북 이스라엘의 죄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로 여호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을 자신들의 마음대로 정하였고, 제사장은 레위 사람이 아닌 사람들을 세웠고, 여호와의 절기를 자신들의 마음대로 바꾼 것이다. 반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를 믿는 데는 특등이었다. 즉 약속의 말씀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생각으로 열심이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제사와 예배를 드리는 곳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거룩한 이름을 두신 곳이다.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신 12:5) 그런데 북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이 아닌 벧엘과 길갈에 가서 제사를 드리고 있다. 그리고 십일조도 매 삼 년 끝에 드리라 하셨다. “셋 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신 26:12)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약속한 대로 지켜 행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는 자신들의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심판 날에 자신의 죄를 부인합니다.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말 1:6하) 여러분 여호와의 약속의 말씀을 아는데 힘을 쓰셔야 됩니다.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함은 그가 명령하시므로 지음을 받았음이로다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함은 그가 명령하시므로 지음을 받았음이로다”(시 148:5) 시편의 기자는 하늘과 땅의 모든 것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음을 전하고 있다. 모든 피조물은 여호와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해와 달과 별들은 광명체로서 여호와의 영광과 위엄을 나타내고 있고, 하늘의 구름과 우박과 눈과 안개는 여호와의 신비하고 오묘함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광풍을 불게 하시며 제어하시는 능력을 보이신다. 척박한 사막과 광야에 사는 것들도 찬양을 한다. 즉 땅을 기는 것들도 찬양을 한다는 것이다. “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나는 새며”(시 148:10) 그뿐만 아니라 과실나무들과 푸르른 나무들도 찬양을 하고 있다. “산들과 모든 작은 산과 과수와 모든 백향목이며”(시 148:9) 땅의 존재고서 아무리 큰 권위를 가졌다고 할지라도 여호와를 찬양하여야 한다. “세상의 왕들과 모든 백성들과 고관들과 땅의 모든 재판관들이며”(시 148;11)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늘과 땅의 모든 피조물들은 여호와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사자는 용맹스럽고 우렁찬 목소리로 영광을, 소는 커다란 몸집과 음매하며 영광을, 사과나무는 색깔과 맛으로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으로 영광을 나타내야 할까요? 죄로 타락한 죄인을 의인으로 만드신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며 찬양을 하여야 합니다. 신앙인의 자태와 찬양으로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가 그의 백성의 뿔을 높이셨으니 그는 모든 성도 곧 그를 가까이 하는 백성 이스라엘 자손의 찬양 받을 이시로다 할렐루야

  “그가 그의 백성의 뿔을 높이셨으니 그는 모든 성도 곧 그를 가까이 하는 백성 이스라엘 자손의 찬양 받을 이시로다 할렐루야”(시 148:14)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사역은 삼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다. 성부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하실 계획을 세우시고 그의 아들을 통하여 이루신다.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엡 1:6) 성자하나님은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셔서 죄인들의 죄를 속량하여 주신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엡 1:12) 성령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의 약속을 보증하시며 성자의 영광으로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 구원의 은혜가 임하게 하신다.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 1:14)          이와 같은 계획은 이미 구약의 말씀에서 약속을 하셨다. 하나님의 영광에서 떠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영광을 받으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는 것이다.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사 42:6)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려 한다.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 42:8)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 받은 자들이 먼저하여야할 일은 구원의 권능에 대한 감사와 찬양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하면 십자가 사역 속에는 성부하나님의 약속과 지혜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자하나님은 우리들을 대신하여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기쁨으로 내어 주셨습니다. 성령하나님은 밤낮으로 쉬시지 않으시며 십자가의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확인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무엇으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롬 7:1) 하나님의 구원을 말씀하면서 율법에 대하여 앞 장에서 설명하였다. 즉 죄에 대하여는 죽고 하나님 앞에 산 자가 된 것이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롬 6:11) 이것에 대하여 남편을 비유하여 설명을 하고 있다. 이전에는 율법 아래에 있었다는 것은 전 남편 아래에 속하였다는 것이다. 남편이 죽으므로 인하여 다시 결혼을 하였는데 그리스도와 함께 한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롬 7:4) 즉 새로운 부부관계가 된 것이다. 전 남편 율법과 사별하고 새로운 남편 그리스도와 결혼을 하였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자들을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제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 정결함을 배워야 합니다. 달리 말하면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고후 11:2) 세상의 것들이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유혹하였던 뱀처럼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암 4:12) 아모스 4장은 북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경고이다. 여호와의 심판에 앞서 그들의 죄악상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 사마리아 여인들은 사치스럽고 남자들은 술에 취하여 힘없고 약한 자들을 짓밟는 악행을 하였다. “힘 없는 자의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고 연약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암 2:7)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자기들의 기쁨을 위한 것이었다.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제로 드리며 낙헌제를 소리내어 선포하려무나 이스라엘 자손들아 이것이 너희가 기뻐하는 바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암 4:5) 즉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제사를 드린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각으로 드렸다함을 말한다. 그리고 여러 가지 재앙을 내렸지만 결단코 회개하지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 경고를 하고 있다. 이제 네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라 하신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암 4:12)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마리아 사람들은 마실 물이 없어 비틀거리고, 먹을 음식이 없고, 전염병으로 인하여 썩은 재앙의 냄새가 나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아와 회개를 하거나 구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의의 하나님께서 진노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진노의 심판을 통하여 확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천지만물을 주관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너희만을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하셨나니

  “내가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너희만을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하셨나니”(암 3;2) 여호와 하나님의 보응의 심판은 언약을 근거로 한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는 친밀한 관계를 드러내셨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창 18:17) 그러시면서 선택한 이유를 말씀하셨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라”(창 18:19) 그리고 모세와 언약을 맺으며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로 여기셨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출 19:5) 특별한 소유란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 19:6) 그리하면서 언약의 조건으로 여호와의 율법을 주셨다. 언약을 지켜야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언약에는 지켜야할 규정들이 있다. 규정을 지켰을 때에는 축복이며 불순종하였을 때는 저주가 임할 것임을 아멘으로 약속을 하였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선지서를 묵상하시면서 무엇을 발견하십니까? 선지자가 주장하는 내용은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악에 물든 백성들은 율법을 지킬 수 없음을 구약의 역사를 통하여 확인합니다. 그래서 죄악의 성품을 가진 자들을 새롭게 창조하여 율법을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주시는 궁극적인 목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