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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산들아 땅의 견고한 지대들아 너희는 여호와의 변론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과 변론하시며 이스라엘과 변론하실 것이라

  “너희 산들아 땅의 견고한 지대들아 너희는 여호와의 변론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과 변론하시며 이스라엘과 변론하실 것이라”(미 6:2)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하셨다. 즉 순종을 하면 축복이요 불순종을 하면 저주의 복을 내리신 것이다. 그리하였더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만이 많았다.   본문의 말씀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무엇을 잘못하였는지 따져 보자는 것이다. “이르시기를 내 백성아 내가 무엇을 네게 행하였으며 무슨 일로 너를 괴롭게 하였느냐 너는 내게 증언하라”(미 6:3) 출애굽 사건과 광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하여 보라는 것이다. 특히 모압 왕 발락이 동방의 주술사 발람을 불러 이스라엘에게 저주를 내리게 하려 할 때에 축복으로 바꾸어 주신 것을 기억하라 하신다. 그리고 발락 왕은 거기서 멈추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을 음행을 하게끔 하여 패망시키려 할 때에 지켜 준 것을 알고 있느냐는 것이다. 즉 너희를 옳은 길을 가게끔 하기 위하여 지켜 주신다. 그러시면서 여호와가 너희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라 하신다. 그것은 공의를 행하시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 공의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나라에게도 적용이 된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저울추를 속이는 자들과 악행을 행하며 부자의 강포를 싫어하신다는 것이다. 그 악행을 행하는 자들에게 저주가 임하고 파멸의 길을 갈 수밖에 없음을 알리고 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에 무엇을 들고 갈까 고민을 하십니까? 값비싼 제물을 들고 나가면 좋아하실까요, 아니면 삶 속에서 말씀을 지켰던 공의로운 행위를 좋아하실까요? 즉 일상에서의 삶의 모습으로 예배에 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네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네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 5:2) 미가서 5장에서는 이스라엘은 더 이상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며 메시야를 통하여 완전하여질 것이라 한다. 이제 메시야의 탄생을 예고한다. 베들레헴 다윗의 집에서 태어나실 것이며, 메시야는 태초부터 영원히 계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메시야가 오기까지 임신한 여인이 산고의 고통을 겪어 아들을 얻는 것과 같이 이스라엘도 고난 가운데 있다가 기쁨을 얻음을 말한다. 메시야의 능력은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낸다. 즉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땅 끝까지 다스리신다는 것이다. 그의 통치의 원리는 세상의 무력이 아닌 평화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명령과 말씀을 따라 살지 아니하는 모든 열국에게 공의로 심판을 하실 것이다. “내가 또 진노와 분노로 순종하지 아니한 나라에 갚으리라 하셨느니라”(미 5:15)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이렇게 자세히 계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취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약의 말씀과 선지자, 성전을 가지고도 실패하였습니다. 실패한 이스라엘을 완전하게 회복시키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신대로 이방인들도 불러 구원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 은혜인 것입니다.

끝날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고 몰려갈 것이라

  “끝날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고 몰려갈 것이라”(미 4:1) 본문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 3:12절의 말씀을 살펴야 한다. “이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이온은 갈아엎은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이 되리라”(미 3:12) 이스라엘의 재판관, 제사장, 선지자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바벨론 포로로 잡혀갈 뿐 만 아니라 예루살렘은 불에 타서 없어지게 된다. 나중에 포로 후에 성전이 재건되었을 때에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가 성전이 되어 평강을 주리라는 약속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공생애 사역을 하실 때에 성전은 에돔 사람인 헤롯 대왕이 세운 것이다. 즉 무너진 성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루살렘에 세워진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전이 되셔서 교회를 세웠다. 이 성전이 세워진 날이 오순절 성령강림날이다. 이 날을 기점으로 성전 시대는 막이 내리고 교회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것에 대한 증거가 마가의 다락방에서 시작된 초대교회이다.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 2:9) 백이십 명이 모여 있는 그곳에 하나님의 나타나심으로 바람 소리와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내렸고 성령이 임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교회에 하나님이 계심을 말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메시야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각 나라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로 모여들었습니다. 모여든 사람들이 유대인들을 조롱하는 일이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많은 이방 사람들이 모여서 너를 치며 이르기를 시온이 더럽게 되며 그것을 우리 눈으로 바라보기를 원하노라 하거니와”(미 4:11)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충만히 임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불순종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일이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

내가 또 이르노니 야곱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아 들으라 정의를 하는 것이 너희의 본분이 아니야

  “내가 또 이르노니 야곱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아 들으라 정의를 하는 것이 너희의 본분이 아니야”(미 3:1) 미가서 3장에서는 이스라엘에 재판관 또는 지도자가 갖추어야할 덕목 중에 하나가 공의이다. 즉 백성들의 억울함을 판결하는데 있어서 공정하고 공평하게 행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공의로 책임을 지기 보다는 자기의 편리와 만족을 위해서 고의적으로 공의를 굽게 만들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저들은 알면서도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공의를 버리고 악을 행하기를 즐거워하였다. 민족의 지도자들이 공의를 버리고 불의를 행하므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함으로 결국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거짓 선지자이다. 이들 또한 먹을 주면 평안을 빌어주고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전쟁을 선포하여 백성들의 마음에 공포심을 주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대변하기보다는 오직 자기들의 만족만을 위해서 거짓말을 두려움 없이 내뱉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가 선지자는 두려움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였다 “오직 나는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아 능력과 정의와 용기로 충만해져서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미 3:8)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사람이란 하나님의 공의를 행하여 불의를 대항하여 싸우는 사명을 맡은 사람들입니다. 본문에서 재판관과 선지자들이 자신의 배를 부르게 하기 위하여 판결을 굽게 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돈이 많으면 인맥이 넓은 변호사를 선임하여 무죄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가난한 사람들은 억울함을 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에는 이러한 것들이 통하지 않습니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롬 2:5) 여러분 마지막 날에 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아신다면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믿음이 있으셔야 합니다.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빌 1:24)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다. 그곳의 환경은 부족한 것이 많아서 생활하는데 불편한 것이 많다. 더군다나 바울은 몸에 가시를 갖고 있음으로 인하여 건강이 좋지 못한 상태이다. 천국에 올라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믿음이 있으므로 죽기를 소망하고 있다. 그러나 본문의 말씀을 보면 빌립보 교인들을 위하여 더 살기를 원하고 있다. 왜 이런 말을 할까요? 첫째로는 하나님의 복음은 옥에 가둔다고 막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고, 둘째는 바울의 고난을 통하여 빌립보 교인들을 위로하기 위함이다. 즉 그리스도의 복음의 구원을 받은 자로서 합당한 모습을 보여 준다. 달리 말하면 그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주기 위함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그분의 마음과 성품을 닮게 된다. 그래서 신자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주신다고 약속을 하셨다.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빌립보 교인들이 좋은 친구를 사귀어라 그러면 너희가 선하고 착한 사람이 된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배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분쟁과 시기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화합하고 한 마음이 되라 한다.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빌 2:14)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택하여 구원의 은혜를 주심은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좋은 친구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좋은 친구를 사귀면 좋은 사람으로 변합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잠 27:17) 그래서 찬송가 가사에 여러 곳에서 예수님을 나의 참 좋은 친구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찬 369장 ‘죄짐 맡은 우리 구주’ 가사 중에 ‘죄짐 낱은 우리 주구 어찌 종은 친구지‘, 이런 진실하신 친구 찾아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빌 1:12) 사도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그것은 바울이 갇혀 있어도 하나님의 복음이 더 빛나고 진전이 있다는 것이다. 바울이 확인하여 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바울을 통하여 전하였는데 이제는 빌립보 교인들을 통하여 전하여지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래서 너희는 기뻐하라 너희에게 복이 임한 것임을 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복음은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전하여지고 있음을 확인한다. 그러니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다고 해서 낙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빌립보서 전체의 흐름은 이러하다. 복음은 시작하신 분이 완성을 하신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사람들처럼 행하라는 것이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왜 이러한 말씀을 하실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완성시킨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분쟁이 생기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믿음은 하나님의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필요합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교인들이여 하나님을 향한 열심에 지혜와 총명을 더하여 행하라고 합니다. 여호와를 알고 있는 바울은 그래서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환경과 고난이 있다고 할지라도 약속의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그 약속하신 것을 이루고 계심을 믿으셔야 합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롬 10:2)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받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그러면서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열심은 있으나 올바른 믿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그릇된 믿음은 무엇인가 하면은 자기들의 생각과 행위로 이스라엘이 회복이 되고 하나님 나라가 세워진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구약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불러야 구원을 얻음을 강조하고 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 또한 이사야의 글과 시편의 글을 통하여 기초적, 모퉁이 돌 위에 거룩한 성이 세워질 것을 알려 준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사 28:16)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듣고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롬 10:9) 그런데 그 당시의 대제사장이나 백성들의 장로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선지자라고 생각을 하였다.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그들이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마 21:46)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스라엘의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성경을 알지 못하여 엄청난 일을 저질렀습니다. 성경의 무지함으로 인하여 메시야로 오신 하나님을 십자가에 죽였습니다. 그리고 더 큰 무지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이 자기들로 세워진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을 모르면 하나님을 대적할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못을 박는 행위까지 하게 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나 장로들이 성경을 모르면 자신들의 열심으로 이루려 하는 오만한 죄를 범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일은 하나님의 의를 전가 받은 자만이 할

그들이 침상에서 죄를 꾀하며 악을 꾸미고 날이 밝으면 그 손에 힘이 있으므로 그것을 행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그들이 침상에서 죄를 꾀하며 악을 꾸미고 날이 밝으면 그 손에 힘이 있으므로 그것을 행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미 2;1) 이스라엘의 죄악상을 자세히 드러나고 있다. 경제적으로 부요한 자가 밤새도록 계획을 세우면 그 다음 날에 행동으로 옮긴다, 가난한 자의 밭을 빼앗고 빚진 자의 집들을 탐하여 차지한 것이다. “밭들을 탐하여 빼앗고 집들을 탐하여 차지하니 그들이 남자와 그의 집과 사람과 그의 산업을 강탈하도다”(미 2:2) 이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죄가 된다.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레 25:23) 그리고 저당 잡힌 물건은 해가 지기 전에 돌려주어야 한다.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출 22:26) 여호와께서 한탄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회중에서 분깃에 줄을 댈 자가 너희 중에 하나도 없으리라”(미 2:5) 그래서 앗수르에 망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다. “근래에 내 백성이 원수 같이 일어나서 전쟁을 피하여 평안히 지나가는 자들의 의복에서 겉옷을 벗기며”(미 2:8)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으며 하나님께서 이 일에 앞장을 서서 이루심을 약속하였다. “길을 여는 자가 그들 앞에 올라가고 그들은 길을 열어 성문에 이르러서는 그리로 나갈 것이며 그들의 왕이 앞서 가며 여호와께서는 선두로 가시리라”(미 2:13)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잘 살게 해 주었더니 오히려 악행을 하였습니다. 부요한 자들은 물질의 힘으로 악한 자들을 괴롭히고 약탈을 한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3:5) 하나님은 우리에게 돈을 살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셨습니다.

백성들아 너희는 다 들을지어다 땅과 거기에 있는 모든 것들아 자세히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증언하시되 곧 주께서 성전에서 그리하실 것이니라

  “백성들아 너희는 다 들을지어다 땅과 거기에 있는 모든 것들아 자세히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증언하시되 곧 주께서 성전에서 그리하실 것이니라”(미 1:2) 미가서를 기록한 미가 선지자는 이사야와 같은 시대의 사람이다. 미가 선지자는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에서 활동하였다. 그 당시의 국제 정세는 불안하고 사회적으로 혼란하였던 시기였다. 경제적인 부흥은 계층간 분열을 일으켰고 사회의 도덕적 부패로 이어졌다. 이러한 부정과 부패가 심판의 메시지를 자초하였다. 여호와는 정의와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미가 선지자는 범죄한 백성들 앞에서 벌거벗은 몸으로 행하며 들짐승같이 애통하였다. “이러므로 내가 애통하며 애곡하고 벌거벗은 몸으로 행하며 들개 같이 애곡하고 타조 같이 애통하리니”(미 1:8) 벌거벗었다함은 그 당시 죄인이나 노예의 복장으로 상징적인 행동을 취한 것이다. 즉 이러한 행동인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가 앞으로 처하여질 포로생활을 암시하였다. 이스라엘이 포로가 되면 주변에 있는 나라들에게 조롱을 당할 것을 아울러 전하며 머리털이 잘리어 대머리가 될 것이라 한다. 머리털은 능력과 권능을 상징한 것인데 대머리가 됨으로 인하여 무기력한 포로로 잡혀갈 것을 말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고 좋아하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나라에 경제부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로 인하여 계층 간에 분열이 더 켰습니다. 그리고 부자들은 오히려 악행을 함으로 인하여 시장경제를 불의로 가득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같은 상황임을 직시하여야 합니다.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욘 4:3) 요나 4장에서는 요나의 신앙적 불합리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것은 니느웨를 심판하지 않고 용서해 주신 것을 보고 자신의 불만을 토로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에 대한 불만이다. 즉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을 수 있지만 니느웨 사람들은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박넝쿨을 자라게 하여 머리에 쪼이는 해를 가려 주자 요나가 기뻐한다. 다시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그 박넝쿨을 갉아 먹게 하니 시들었다. 화를 내는 요나에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하루 밤에 말라 버린 박넝쿨을 아끼었거는 하물며 니느웨 사람을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할 수 있느냐 하고 반문을 하신다. 요나서를 통하여 확인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다. 누구도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키지 못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부르짖는 자들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이다.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신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통로가 되기를 바랐지만 그 사명을 거부하는 이스라엘의 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나라는 심판에 계획되었을 지라도 회개하는 자에게는 그 뜻을 돌이키신다. 요나서는 이스라엘과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교훈과 질책이다. 자신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을 좋아하지만 니느웨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것에 분노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요나의 불순종에는 커다란 잘못이 있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도 되지만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에는 분노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순종이라 합니다. 즉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알아야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욘 3:6)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였다. 그래서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니느웨 성은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큰 도시이다. 성의 둘레가 96Km이며, 좌우를 분간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 명이다. 그 당시 고대 도시 가운데 큰 성읍이다.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밀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욘 3:3) 요나가 삼일 길을 걸어서 외쳐야 하는데 하루 길을 길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더니 왕뿐만 아니라 가축까지도 금식을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셨다.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욘 3:9)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하셨다.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출 32:14)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대가 악하다고 하면서 요나의 비유로 말씀하셨다. 요나가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외쳤을 때에 놀랍게도 회개를 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는데 이 시대의 사람들이 조롱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마 12:41) 이와 같은 어리석음을 니느웨 사람들과, 남방 여왕이 심판 때에 이 시대의 사람을 정죄한다고 합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면서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교훈이다.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빌 1:10)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 사랑은 하나님의 율법의 완성이라 하였다. 그러니 이제 율법의 말씀을 생각하며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라 한다. 선한 일을 택하는 것은 마치 시험을 볼 때에 문제를 푸는 것처럼 하라는 것이다. 시험 문제에 답을 맞추기 위해서는 질문을 잘 읽어야 하며 그리고 보기에 있는 것들 가운데서 정답을 골라야 한다. 그렇게 진실하게 살라는 것이다. 언제까지 이 땅에 사는 동안과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날까지이다. 허물이 없다는 것은 티나 주름이 없음을 말한다. 즉 자신을 늘 정결하게 하고 타인 앞에서는 진실함과 정직함으로 행하라 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덕목이 사랑 희락 화평입니다. 이것을 지식으로 깨우치고 채운 사람만이 이웃에게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의 선함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오래참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용납하심과 같이, 타인의 실수를 용납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비는 타인의 마음 가짐에 예의를 표하며 관심과 이해를 갖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양선은 이웃에게 선을 행할 수 있는 신앙의 자세를 말합니다. 이러한 성령의 열매가 있으면 교회 안에 시기와 분쟁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