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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2)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할 때에 성전 앞에 두 기둥을 세웠다. “두 기둥을 성전 앞에 세웠으니 왼쪽에 하나요 오른쪽에 하나라 오른쪽 것은 야긴이라 부르고 왼쪽 것은 보아스라 불렀더라”(대하 3:17)   오른쪽 것은 야긴이라 부르는데 ‘저가 세우리라’는 뜻이고, 왼쪽 것은 보아스라 부르는데 ‘그에게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각 기둥 위에는 그물이 있고 석류 이백 개 씩 달려 있다. 석류 열매는 풍요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셀 수 없음 정도로 많은 알갱이가 있다.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하나님의 성전 안으로 셀 수 백성들이 들어올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 땅에 세워진 교회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우신다.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께서 모퉁이 돌이 되셔서 하나님의 처소를 짓는 것이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2)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구약의 성전이나 신약의 교회나 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친히 세우신다. 그리고 셀 수 없을 만큼 구원받은 백성들이 많다는 것이다. 혹 구약의 성전을 다윗과 솔로몬의 의지로 세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다보니 신약의 교회도 사람의 의지로 세울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람은 죄 가운데서 태어나 죄악 덩어리입니다. 그래서 죄사함을 받아야 거룩함을 입을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선한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깊이 묵상을 하셔야 합니다. 우리 속담에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합니다. 서툴고 미숙한 사람이 치료를 해주다가는 사람을 죽이기까지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나 교회 앞에서 겸손하여야 합니다. 겸손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알아서 스스로 낮아지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기초석이 되시고

그들은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그들은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엡 4:19) 작금에 정치 지도자들의 수준을 보면 참으로 어이가 없다. 그러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국민들이 선택한 사람들이다. 결국에는 지도자의 수준이 국민들의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다. 왜 이러한 사람들을 택할 수밖에 없는가? 그것은 우리들의 탐욕을 채워줄 사람을 택한 것이 된다.   인간의 탐욕은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다. 탐욕을 쉽게 이해하기 위하여 배를 위한 것이라 한다.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 3:19) 배에 음식이 채워져 멈추면 몇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채워야 하는 것처럼 탐욕이 그와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쉽게 얻을 수 있는 방법은 탐욕이 가득한 정치인을 택하면 된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자들이 행하는 일이다. 즉 하나님의 계명을 알지 못하면 지키지 않는 자들이 행하는 것이다. 이 땅 위에 펼쳐지는 질서는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에 기초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진실이 보존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하게 사는 사람들이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나라의 정치 지도자를 선택하는데 나의 마음이 선택을 합니다. 내가 택한 지도자의 마음이 결국에는 나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의 계명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을 택할 것입니다.   여러분! 학연, 지연, 친지라서 투표를 하였더니 지금의 이러한 사태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어떠한 사람을 택하여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믿고 경외하며 두려워하는 사람을 택하셔야 합니다.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시 105:19) 건물의 기초나 나라의 근본이 흔들리면 착란(정신이 어지럽고 혼란한 상태)에 빠지어 복잡한 상황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믿음의 근본을 모르게 되면 자아도취(자기 스스로 황홀하게 빠지는) 상태로 나타난다.   올바른 성경관은 하나님은 주인이시고 주도권을 쥐시고 목적을 이루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 등장하는 사람들마다 각기 다른 이야기로 소개 된다.   본문의 말씀은 요셉에게 임하셨던 하나님의 주권을 소개하고 있다. 십칠 세의 소년에게 있었던 일이다. 누가나 청소년기가 되면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갖게 된다.   요셉 역시도 장래에 대한 꿈을 꾸었다. 꿈의 내용은 그의 부모와 형제들이 땅에 엎드리어 그에게 절하는 것으로 총리에 오를 것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꿈을 주시고 이루시는 방식은 이러하다. 형들에 손에 팔려서 애굽으로 가게 된다. 시위대장 보디발의 아내에게 억울한 누명을 당하여 감옥에 간다. 그곳에서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을 만나게 된다. 요셉은 감옥에서 관원장들의 꿈을 해석한다. 떡을 담당하던 관원장은 죽었고, 술 맡은 관원장을 다시 복직을 하게 된다.   바로 왕은 꾼 꿈으로 인하여 심기가 불편할 때에 술 관원장으로부터 요셉을 알게 된다. 요셉의 꿈 해석과 향후 계획에 대안을 제시함으로 인하여 애굽 총리의 자리에 임하게 된다. 그래서 양식이 없어서 굶어 죽게 된 부모와 형제들이 애굽에 내려온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도권을 쥐시고 목적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 이르시는 방식은 각 각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에 이르게 하십니다. 본문에 요셉도 감옥에서 손과 발이 묶이고 그의 혼도 쇠사슬에 묶이어 말씀에 순종하였다고 합니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시 105:18) 여러분! 나라는 개인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려는 믿음의 자세가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할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할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요 14:23) 하나님의 성품을 닮기 위해서는 그분의 계명을 지키면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명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보여 주셨는데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 아버지가 기뻐하시어 사랑과 인도와 보호를 해 주신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 15:10)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하늘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고 행함에 대한 것이다.   즉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행하는 자에게 거처를 삼으신다고 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할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요 14:23) 하나님과 날마다 동행하는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행함을 따르면 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랑은 거룩한 성품과 인격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을 할 때면 받기보다는 주는 것을 더 기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계속 주고 싶어서 안달(속을 태우며 조금하게 구하는 행위)이 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 되시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더 많이 주시려는 애끓는 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모세가 하나님의 율법을 받을 때에 그분의 영광이 나타났다. 돌 판에 새긴 말씀을 받을 때에 하나님의 영광을 받은 자가 되어서 얼굴에 광채가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받은 영광이 무엇인가? 즉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긴 자들에게는 어떠한 영광이 있는가이다. 모세 얼굴에 나타난 것처럼 밝은 광채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는다고 한다. 왜 그런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거처를 삼으시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생각할 때에 힘의 세기로 나타내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성품으로 능력을 나타내시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그분의 성품과 인격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은 자들에게 고난과 환난을 주신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와 말씀을 듣고 기도를 하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를 통하여 생각과 말하는 것, 성품을 배우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자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 나타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받은 사람들은 그분의 성품을 닮아 사랑, 자비, 양선, 긍휼이 나타납니다. 이것은 성령하나님이 역사하셔서 나타나는 것이기에 성령의 열매라 하는 것입니다.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 그래서 우리들이 찬송가 455장 ‘주님의 마음을 본 받는 자’ 찬양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그 맘에 평강이 찾아옴은 험악한 세상을 이길 힘이 하늘로부터 임함이로다  주님의 마음 본 받아 살면서 그 거룩하심 나도 이루리‘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도다

  “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 인내는 연단을 ,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도다 ”( 롬 5:3-4)   2021 년도 송년 예배이다 . 올 한 해도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이었다 . 그런데 본문의 말씀 가운데 “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 라고 하였다 . 무엇 때문에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려 한다 .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지혜를 밝혀야 한다 . 하나님께서 계시하시고 성취하시는 방식이 십자가의 도이다 .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이다 .   성령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가 임한다 . 즉 성령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연합을 하게 하시는 것이다 .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의를 전가 받음으로 인하여 의인이 된다 . 죄인이 의인으로 신분이 변화가 된다 . 이제는 성품의 변화를 위하여 환난을 주신다 . 즉 하나님의 성품을 닮게 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의 고난의 길을 가게 하신다는 것이다 .   그래서 환난을 통하여 인내를 , 인내는 연단을 ,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고 한다 . 영어 성경에서는 연단을 캐릭터 (Character) 라 한다 . 캐릭터는 성품이나 인격을 말한다 .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자라야 아버지께 사랑을 받고 쓰임을 받게 된다 .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2021 년도 한 해도 정말 힘들었습니다 . 그러나 그 고난이 우리들에게 유익함이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고난을 통하여 우리들의 캐릭터가 바뀌었습니다 . 점점 하나님의 성품을 닮고 있으며 그분을 만나려고 진지하게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 있습니다 . 우리들의 소망은 하나님을 늘 가까이 하는 것이고 . 아버지의 집에 한 걸음씩 매일 다가가는 것입니다 . 그리고 하늘 아버지와 영원한 처소에서 영광을 누리는 기쁨입니다 . 여러분 ! 2021 년 수고 많으셨습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 눅 2:10)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소식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는 자들이게 임한다 . 그 당시에 메시야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왕들이 있었지만 목자에게 임하였다는 것이다 .   하나님의 계시가 어떤 특정한 직분을 맡은 자에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쓰임을 받기 위하여 준비된 자에게 임한다함을 전하고 있다 .   “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 눅 2:9) 주의 사자가 곁에 이르고 천사들이 전하여 목자들이 알리어 요셉과 마리아와 함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을 한다 .   본문을 통하여 확인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가 나타날 때에 즉시 순종을 하여야 하며 기쁨으로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 전하여 한다는 것이다 .   계시를 받은 목자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 그들은 하나님께서 열심으로 이루시는 의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그래서 자기 양 떼를 놔두고 떠난다 . 그리고 천사에게 들은 것을 요셉과 마리아에게 전하므로 메시야임을 확신케 한다 . 그러므로 전하는 이와 듣는 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을 하게 된다 .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한 밤 중에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은 누구입니까 ? 그들은 메시야를 맞을 준비가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 하나님은 준비된 자들을 찾으시며 즐거이 쓰십니다 . 천사를 통하여 메시야가 이 땅에 왔음을 전할 때에 조금도 당황하거나 주저함이 없습니다 . 그리고는 즉시 자신의 양 떼를 뒤로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께 택함을 받은 제자들도 고기잡는 그물과 배를 놔두고 따랐습니다 . 그리고 가르침과 전함을 받은 것을 세상에 알리는 일을 기쁨으로 여기었습니다 . 성탄절을 맞이하며 생각하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누가 큰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까

성을 건축하는 자와 짐을 나르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건축하는 자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팔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

  “ 성을 건축하는 자와 짐을 나르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건축하는 자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팔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 ”( 느 4:17-18)   느헤미야와 유다 사람들이 성벽 건축을 시작을 하자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 그리고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치기로 하였다 .   그래서 파수꾼을 세우고 성벽 재건을 하고 건축하는 자와 짐 나르는 자들은 한 손에는 병기와 칼을 잡았다 . 성 벽을 쌓는 거리가 넓으므로 나팔부는 자를 세워 소리가 나는 곳으로 모이라 한다 .   나팔소리가 들리거든 그리로 나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오셔서 함께 싸우신다는 것이다 . “ 너희는 어디서든지 나팔소리를 듣거든 그리로 모여서 우리에게로 나아오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느니라 ”( 느 4:20)   나팔소리란 기도를 말한다 . 기도를 하기 전에 병기와 칼을 잡으라는 것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것이다 . “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 엡 6:11)   그리고는 “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 엡 6:18) 성령의 말씀 안에서 기도하라는 것이다 . 즉 약속의 범위 안에서 기도하여야 함을 말한다 .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마귀와 대적하기 위하여는 기도하시기 전에 진리의 띠를 띠고 ,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 평안의 복음이 분비한 신을 , 믿음의 방패를 , 구원의 투구 , 성령의 검으로 무장을 하여야 합니다 . 그리고 적국을 향하여 나가면 하나님이 함께 가신다는 것입니다 . 즉 우리가 준비하고 싸우러 나가면 하나님이 대신 싸우신다고 말씀합니다 . 그래서 나팔을 불어야 하고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

그 다음인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들의 주인들의 공사를 분담하지 아니하였으며

  “ 그 다음인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들의 주인들의 공사를 분담하지 아니하였으며 ”( 느 3:5)   느헤미야 3 장에서는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올라와 예루살렘 사람들을 독려함으로 인하여 성문을 복원하고 성벽을 재건하게 된다 . 대제사장에서부터 느디님 사람들 그리고 사업을 하는 사람들까지 함께 참여를 하였다 .   그런데 드고아 사람들이 참여하였지만 그 귀족들은 공사에 참여하지 않았다 . 왜 그런가 하면 성벽 재건을 방해하였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호른 사람 산발랏과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야 사람 게셀이 있었다 .   귀족들은 상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아라비야 사람 게셀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 게셀의 눈에 거슬리면 막대한 금전 손실이 올 것을 생각하여 예루살렘 성벽 재건에 참여하지 않았다 .   이와 같은 것에 대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하셨다 .   마음의 생각이 복잡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 “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 마 5:8)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가까이에서 말씀을 듣는다는 것을 말한다 .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성경은 재물을 부정하거나 천한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 재물은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 또한 열심히 성실하게 살 것을 요구합니다 . 그렇다면 무엇을 말하려하는 것입니까 ?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찬양하며 예배드리는 것을 우선시 하라는 것입니다 . 모든 순위에서 하나님을 찾는 일을 먼저 하라 합니다 . 오늘 본문에서 재물에 손해를 입을 것을 두려워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참여하지 못하는 부자들을 보았습니다 .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그가 성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내가 들어갈 집을 위하여 들보로 쓸 재목을 내게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

  “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그가 성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내가 들어갈 집을 위하여 들보로 쓸 재목을 내게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 ”( 느 2:8)   느헤미야가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하기를 모세를 통하여 약속하신 말씀을 따랐다 . 그 약속은 흩어진 백성이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회개하는 자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이다 . 그는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므로 인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선하신 하나님께서 형통의 길을 허락하신다 .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고 성문이 불탔고 남아 있는 사람들이 악인들에게 조롱을 당한다함을 듣고 그의 마음에 수심이 가득하였다 . 그의 얼굴을 본 아닥사스다 왕이 묻기를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묻는다 . 대답하기를 예루살렘을 다녀오기를 원한다 하여 다시 돌아올 날을 약조하고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 그때에 하나님의 선하신 손이 함께 하시사 성문과 성곽에 쓸 목재를 구하게 된다 . 그리고 강 서편에 있는 총독들이 안전에게 길을 열어 준다 .   예루살렘에 도착한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일어나 힘을 내어 여호와의 성벽을 건축하자고 독려를 한다 . 또한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담대함을 보여 준다 .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하나님의 선하심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확인하셔야 합니다 .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셔서 모든 일을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과정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움직이어 형통의 길을 허락하십니다 . 느헤미야가 하나님께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조서를 내려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 느 1:9)   느헤미야는 평신도 지도자이다 . 그는 수산 궁에서 왕의 술관원이었다 . 그가 형제들에게 예루살렘들의 형편을 불으니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을 불탔고 남아 있는 자들은 능욕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   그래서 느헤미야는 하늘의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며 기도하기를 “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 느 1:5) 하늘의 하나님은 주의 백성들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지켜 달라고 한다 .   주의 백성들이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않았지만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기억하시라는 것이다 .   언약의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 “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 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 느 1:9)   그리고 이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홍해를 건너게 하신 자손임을 기억하시라는 것이다 . 그러므로 사랑과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달라는 기도이다 .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약속의 하나님을 기억하고 기도한 자가 형통의 길을 갔음을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확인하였습니다 . 범죄한 자가 하나님 앞에서 돌아올 수 있고 회개할 수 있는 것은 약속의 말씀 때문입니다 . 그래서 느헤미야가 기도하기를 모세를 통하여 약속하신 것을 기억하시라고 합니다 . 그러면 약속의 하나님은 그 약속을 지키실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 느헤미야가 무엇을 근거로 기도를 하고 있는지를 확인하셔야 됩니다 .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 요 20:19)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강은 무엇인가 ? 그것은 그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을 찾아 오셔서 ‘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 하셨다 .   그리스도의 평강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얻은 아들의 영광이다 . 그것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사함의 은혜이며 , 하늘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시고 , 부활하여 얻으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시며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이다 .   그러한 그리스도의 평강을 하늘 아버지의 집에 가서 성령하나님을 통하여 주시겠다는 것이다 . “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행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 요 20:22)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혜사 성령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성령이 오시면 자신의 ( 그리스도의 ) 영광을 제자들에게 주시겠다고 하셨다 . “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 요 16:14)   그래서 성령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전하시고 성부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받게 하시기 위하여 구원받은 자들을 교회로 모이게 하신 것이다 .   그러므로 지금의 교회들은 이미 이 땅에 풍성한 은혜를 부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평강을 충만하게 드러내며 찬양과 영광을 올려야 한다 .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예수 그리스도의 평강이 무엇인지를 아시고 성탄절의 기쁨을 누리셔야 합니다 . 우리가 받았던 것들을 기억하며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 그분의 평강을 누리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 그러면 이 세상을 살면서 두려움이 없어지고 감사와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 눅 2:25)   성탄축하감사 주일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을 어떻게 축하를 하며 감사하는지를 살피려 한다 . 매년 이 때가 되면 습관적으로 크리스마스 장식을 달며 루돌프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정작 생각할 것과 감사한 것을 잊는다 .   성탄절을 어떻게 기다리며 즐기는 것에 대하여 본문에 등장하는 나이 많은 시므온을 통하여 알 수 있다 . 이 사람은 예루살렘에 살았고 경건한 사람이었으며 , 이스라엘의 구원을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방 땅까지 하나님 나라의 구원이 임할 것을 기다렸다는 것이다 .   성령이 시므온과 함께 하시므로 성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았고 , 아기 예수를 통하여 많은 사람이 폐하기도 하며 , 흥하기도 하며 , 고난과 비방을 받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다고 찬양을 하고 있다 .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각 사람의 생각을 드러내게 하실 것이라 하였다 .   즉 예수 그리스도가 기초적이 되어서 그분과 연합하는 자는 영생을 얻게 되고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걸림돌이 되어 넘어질 것이다 . 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참 신자와 거짓 신자의 생각이 드러난다 함을 말하고 있다 .   시므온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온 땅에 임할 것을 기다렸다면 오늘날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무엇을 기다리며 찬양을 하여야 하는가 ? 성령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평강을 기다리는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얻으신 영광이다 . 이 영광이 우리에게 임하므로 인하여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한 자가 되었고 , 아버지 집으로 가는 길을 알게 되었고 ,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해 주신다는 약속이다 .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평안을 약속하셨다 . “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 요 14:26)   이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아버지의 집으로 가시게 된다 . 그러면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 주신다 . 또 다른 보혜사는 성령하나님을 말하는 것이다 .   그런데 그분이 오시면 예수 그리스도의 평안을 주신다고 한다 . “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 요 14:27)   예수 그리스도의 평안은 세상을 이기는 것이고 , 세상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 즉 아무리 강한 로마의 군사정권에서도 얻을 수 없는 것들이다 .   성령을 주시는 이유가 있다 . 세상은 로마 정권이 주는 핍박만큼이나 고통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 그래서 성령을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 . 먼저는 나에게 주시는 평안이 있고 , 세상을 향한 평안이 있다는 것이다 .   나에게는 평안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늘 아버지와 함께 함을 말한다 . 성령의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신다 . “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 요 16:14)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는 성부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일을 하셨기 때문이다 . 나의 죄를 속량하여 주시고 나를 사망의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로 옮겨 주셨다 . “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 골 1:13-14)   성령의 사역은 진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깨우치게 하는 것이다 . 죄가 무엇인지를 , 의가 무엇인지를 , 심판에 대한 것을 확인시켜 주신다 .   이 문제에 대하여 확신이 있어야 평강을 얻을 수 있다 . 즉 하나님과 함께 하는 평안을 확인하게 되면 세상을 두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