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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수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수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 59:21) 여호와의 구원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하지 못함은 여호와의 손이 짧아서가 아니라 그 사이에 죄악이 있어서 갈라놓았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사 59:2) 죄악에 빠진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중보자가 필요함을 말씀하신다.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가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공의를 스스로 의지하사”(사 59:16) 이제 약속하신대로 구원자를 시온에서 임하게 하신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의 자손 가운데에서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사 59:20)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중보자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는 것이다. 그분이 오심은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 있는 죄악을 용서하여 주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고 지키게 하기 위함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수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 59:21)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께 불순종한 백성들을 고쳐서 순종하게 하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았다면 여호와의 계명을 지킬 수밖에 없는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약속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창고에 다 넣을 수 없는 은혜가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라 하십니까? 지키는 자에게 약속한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을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공의를 행하여 그의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리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거워하는도다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을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공의를 행하여 그의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리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거워하는도다”(사 58:2) 이사야 58장에서는 하나님께 이사야를 통하여 전하시고자는 말씀이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이 아닌 다른 믿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스스로 거룩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으나 하나님 앞에서는 거룩하지 않음을 말씀하고 있다.   믿음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은 좋은 제물을 드리고 일주일에 두 번 씩 금식하고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는 것이라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함은 압제 당하는 자를 풀어주며 주린 자에게 양식을 나누어 주는 것이며 또한 친척의 어려움을 보면 도와주는 것이다.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7)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을 가진 자에게는 응답을 하시고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사 58:11) 이 약속을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말씀하셨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마 25:34)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을 가지셔야 합니다. 나를 스스로 의롭게 여기며 내가 생각하는 것은 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교만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계속 말씀을 전하여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크게 외치라고 하십니다. “크게 외치라 목소리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같이 높여 내 백성에게 그들의 허물을 야곱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사 57:15) 이사야 57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치시겠다고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몰렉 신을 섬기는 우상숭배를 하였다. 그래서 환난을 당하게 될 터인데 몰렉 신에게 구원을 요청하여 보라는 것이다. 죄인의 악한 마음은 탐심에서 나온다. 그래서 자기의 아들까지 재물로 바치며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한다. 또한 남이 잘되거나 부자가 되는 것에 몹시 분노하는 증상이 있다. 이러한 백성들을 고쳐 회복시키겠다는 것이다. 탐심하는 마음을 통회하고 겸손한 자로 만드시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는 겸손한 영을 통하여 이루시겠다고 한다. 겸손한 자의 영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게 되면 회개하는 마음과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온다. 왜 그렇게 하는가 하면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좋아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이나 지금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네가 누구를 두려워하며 누구로 말미암아 놀랐기에 거짓을 말하며 나를 생각하지 아니하며 이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나를 경외하지 아니함은 내가 오랫동안 잠잠했기 때문이 아니냐”(사 57:11)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인의 마음을 어떻게 고치려하시는지를 아셔야 합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예수를 믿으면서도 탐심이 가득한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탐심을 이르려 하는 자들에게 겸손한 마음과 통회하는 마음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은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 12:28)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게 사로 잡히고 귀신에게 압제 당하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육체는 살아 있으나 포로가 되어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본문의 말씀에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함으로 인하여 귀신을 쫓아내고 있다고 한다. 귀신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하거나 기도할 수 없고 예배를 드리러 나갈 수도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으면 바벨론의 압제나 귀신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러면 자유함을 얻어 하나님을 찬양하기도 하고 예배를 드릴 수 있다. 맹인이 눈을 뜨게 되고, 귀먹은 자는 듣게 되고, 혀가 굳은 자는 풀리게 되고, 걷지 못하는 자는 걷게 된다. 귀먹은 자와 말 못하는 자가 고침을 받자 하늘이 열리게 되어 찬양과 기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막 7:34) 또한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자를 고쳐 주었더니 성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다. 병 고침을 통하여 귀신에게로부터 구원을 얻은 자들의 영적인 상태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영안이 점점 밝아지고, 기도와 찬양에 감사와 찬양이 넘치고, 영혼의 근육에 힘줄과 단련이 되어 발과 발목에 힘이 넘쳐 교회를 뛰어오게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은 죄로부터 구원을 주시기 위함이 먼저입니다. 달리 말하면 병고침이 우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병 고침의 역사를 통하여 구원의 실체를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십자가의 구원의 증거와 역사를 보여 주기 위하여 병 고침의 역사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말씀에 확증을 주기 위한 사도바울의 고백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고 육체가 쇠하여 가지만 속 사람은 날로 더 새로워진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영안이 점점 밝아지고, 기도와 찬양이 깊어지고

주께서 일어나사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리니 지금은 그에게 은혜를 베푸실 때라 정한 기한이 다가옴이니이다

  “주께서 일어나사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리니 지금은 그에게 은혜를 베푸실 때라 정한 기한이 다가옴이니이다”(시 102:13) 시편의 기자는 바벨론 포로에서 심한 고통과 조롱을 당하고 있다. 개인의 고통을 말하지만 이스라엘의 고통과 수치를 전하고 하는 것이다. 심한 고통 가운데서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다. 이것은 개인의 희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근거이다. 바벨론 포로 칠십 년이 되어야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하셨다. 다시 돌아오게 하는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3하)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 그래서 새 언약을 약속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사함을 주시고 거룩한 백성으로 만드는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바벨론 포로라 함은 악한 사탄의 세력에 붙잡혀 있음을 말한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마귀에 사로잡힌 자라 한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 12:28) 예수 그리스도가 귀신에게 사로잡힌 자들을 고쳐 주심으로 인하여 하나님 나라의 권세가 임한 증거이다. 그래서 귀신들린 자들이 고침을 받게 되면 하늘 문이 열린다.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막 7:34)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 임할 것을 시편의 기자는 확신을 갖고 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선지자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알아야 고난과 환난 가운데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소망이라 함은 하나님께서 장래에 이루어질 것에 대한 기다림이다. 본문의 기자는 이와 같은 소망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소망은 믿음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행 4:19-20) 오순절날 성령강림으로 인하여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가 세워졌다. 사도들의 설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죽인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임을 증거하고 있다. 그분이 구원자가 되심은 너희가 십자가에 죽였지만 하나님께서 살리셨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살리셨다함은 하나님의 능력이 그분에게 함께 있음을 말한다. 그분의 이름을 믿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으면 새롭게 될 수 있다. 그래서 사십 년 동안 걷지 못하던 자를 일으켜 성전 안으로 들어가게 하셨다. 사도들의 설교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싫어하여 베드로와 요한을 잡에 옥에 가두었다.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대제사장의 문중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 제자들에게 심문을 한다.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고 묻는다. 대답은 간단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걷지 못하는 자는 걷게 하였다는 것이다. 이 일에 증인으로 남자 오천 명이나 생겨남으로 인하여 공회의 사람들이 제자들을 풀어준다. 풀어 주며 하는 말이 이 일에 대하여 더 이상 전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자 베드로와 요한은 오히려 저들에게 반문을 한다. 너희 말을 듣는 것과 하나님의 말을 듣는 것에 어느 것이 옳은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제자들이 보고 들은 것에 증인으로 살겠다는 고백을 하였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행 4:20)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것에 대하여 우리들이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구원받은 것을 이웃이 증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예

또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 또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 사 56:6)   여호와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라 함은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것과 영적 , 육체적 회복이며 언약의 갱신이 있기 때문이다 .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 거룩히 지키지 못하였다 . 이제 타락한 백성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전하게 하신다 .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백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게 된다 . 그래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종의 직무를 행하게 된다 .   이와 같은 구원의 은혜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임하게 됨을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다 . 즉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이스라엘의 특권과 우월성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   솔로몬도 성전 봉헌식을 하면서 이와 같이 기도를 하였다 . “ 또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자 곧 주의 이름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이라도 ”( 왕상 8:41)   성전에 이방인이 와서 기도를 하면은 “ 그들이 주의 크신 이름과 주의 능한 손과 주의 펴신 팔의 소문을 듣고 와서 이 성전을 행하여 기도하거든 ”( 왕상 8:42) 하나님께서는 들으시고 그들에게 만민에게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알게 해 달라고 하였다 .   “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이방인이 주께 부르짖는 대로 이루사 땅의 만민이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경외하게 하시오며 또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 ”( 왕상 8:43)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여호와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그분이 보내시는 메시야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아야 하며 , 주의 종이 되어 성전에서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 왜 그렇게 하시는가 하면 성전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사 55:2)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를 하였다. 그것들의 대표적인 신이 바알이다. 바알은 구름과 비와 바람을 주관한다고 믿는다. 즉 바알신을 섬겨야 땅에서는 나는 것들이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바람과 비와 바람을 주관하신 ’엘샤다이‘이시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짜 신인 바알에게 나아가 은을 바치며 풍성함의 복을 달라고 한다.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헛고생하지 말고 돌아오라는 것이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1)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도 의식주 문제에 대하여 언급하셨다.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하는 문제에 답은 이러하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택한 백성들에게는 ’여호와 로에‘로 약속을 하셨습니다. “여호와 로에” -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목자가 양을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고 모든 위험으로부터 지켜 주십니다.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사 54:5) 모세의 언약을 결혼언약이라고도 한다. 만군의 여호와는 신랑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신부가 된다. 그런데 이스라엘에 이방신들에게 머리를 숙이고 따랐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음행한 여인이라 비유하였다. 본문에서는 음행한 여인을 다시 받아들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이다. 즉 용서할 수 없는 여인을 용서하여 주신다. 이것을 하나님의 인자하심이라 한다.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사 54:8) 하나님의 인자하심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나타난다. 용서받을 수 없는 자를 용서하여 주셔서 의인으로 만들어 주셨다. 죄의 책임을 묻지 않으시고 죄 값을 대신 치루어 주셔서 죄와 사망에서 건져주시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자비하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타내셨습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자를 용서하여 주시고,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여 주시는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정의를 만족시키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온전하게 드러냅니다. 구약에서의 은혜와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완전하여 지는 것입니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사 53:11)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버지의 명령에 죽기까지 순종하셨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만족하며 기쁨으로 담당하셨다. 왜 아들은 아버지를 위하여 죽으셨을까? 그것은 아버지의 의로움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정의를 행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로 의롭게 한다. 그래야 의로우신 하나님을 세상에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롬 3:25) 십자가의 구속 사건은 하나님도 의로우시고 예수 안에 있는 자들로 의롭게 되는 은혜이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의를 지키는 백성들로 삼기 위함이다. 즉 율법을 지키는 백성을 삼기 위함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이렇게 하면은 율법에서 약속한 복을 받을 수 있다. 즉 회개하고 돌아온 자들에게 주시기로 한 복이다. 그 복은 믿음의 선조들보다 더 번성하게 하고 더 풍성한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네 조상들이 차지한 땅으로 돌아오게 하사 네게 다시 그것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또 네게 선을 행하사 너를 네 조상들보다 더 번성하게 하실 것이며”(신 30:5)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깊고 깊은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죄로 타락한 인류에게 의로움을 나타내시어 의로 통치하시려는 의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아버지에게도 영광이 되고 우리들에게도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

거짓을 행하는 자는 내 집 안에 거주하지 못하며 거짓말하는 자는 내 목전에 서지 못하리로다

  “거짓을 행하는 자는 내 집 안에 거주하지 못하며 거짓말하는 자는 내 목전에 서지 못하리로다”(시 101:7)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함은 죄와 무관하시며 악을 싫어하심을 말한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택함을 받은 백성들에게 정의와 공의로 나타내셨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정의와 공의로 나타나시면서 율법을 주셨다. 택한 백성들에게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 19:2) 거룩하신 하나님이 거룩함을 드러내시기 위하여는 먼저 죄인들을 구원하여 거룩하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도 의로우시고 예수 안에 있는 자들도 의롭게 하신다.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롬 3:26) 믿음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구원의 계획을 하나님의 계시로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면 감사와 찬양을 돌릴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하여 자신도 의롭고 예수 안에 있는 자들도 의롭게 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의로운 자로 삼아서 하나님의 의로움을 세상에 전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의로운 자를 만들어서 하나님의 율법으로 정의로 공의를 시행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구원의 계획이며 성취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며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내가 인자와 정의를 노래하겠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찬양하리이다

  “내가 인자와 정의를 노래하겠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찬양하리이다”(시 101:1) 성경에서 지혜서(욥기, 시편, 잠언, 전도, 아가)는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을 먹고 난 후에 토로하는 말씀이다. ’토로‘란 마음에 있는 모든 것들을 드러내는 말이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았을 때에 경험하였던 것들을 정직하게 고백하는 시이다. 다윗이 전하고하는 말씀이 있다. 그가 범한 죄를 숨기려 했다가 당한 고통과 아픔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밧세바와 동침을 한 것은 분명한 범죄이다. 율법에 남의 아내를 빼앗는 자는 돌로 쳐 죽이라 했다.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의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레 20:10) 또한 아들들의 범죄를 감추었다. 암논이 이복 동생인 다말을 강간한 사실을 알고도 율법의 말씀으로 징계하지 않았다. 감추인 죄가 다시 살인을 하게 된다. 압살롬은 암논을 죽이고, 아버지 다윗을 왕궁에서 쫓아내고 후궁들과 대낮에 동침을 한다. 압살롬도 요압의 단창에 찔리고 청년 열 명에게 쳐 죽임을 당한다. 이 모든 문제가 다윗에게 있었다. 자신과 아들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못하였을 때에 즉시 회개하기 보다는 감추려 했던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하여 전하고자 하는 진리는 회개하여 용서를 받지만 반드시 죄값을 치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윗은 용서를 받았지만 죄값으로 밧세바의 아들과 암논과 압살롬이 죽었다. 이것은 범죄와 거짓말의 결과이다. 그런데 다윗이 본문에서 찬양을 하고 있다. “내가 인자와 정의를 노래하겠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찬양하리이다”(시 101:1) 즉 용서받지 못할 자를 용서하시고 베풀어 주시는 은혜이다. 왜 다윗은 이와 같이 찬양을 하고 있을까요? 범죄한 인간들의 죄의 책임을 짊어지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의 은혜를 주셨다. 죄인들을 용서하여 주시고 죄의 책임을 대신하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행 3:16)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 앞에 있는 나면서 걷지 못한 자를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으키고 걷게 하여 성전으로 들어가게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공생애 사역을 하시면서 많은 병자를 고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오셨다. 그래서 이것이 먼저가 되고 병자를 고치는 것은 그 다음이 된다. 이적의 문제에 대하여 사도요한은 표적이라 하였다.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요 2:11). 무슨 말인가 하면 표적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제자들의 병고침에도 마찬가지이다. 나면서 걷지 못하는 자를 고친 후에 이어지는 설교에서 전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다.   설교의 내용은 이러하다. 걷지 못한 자를 일어서게 한 것은 우리들이 아니라 너희가 죽였던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던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의 능력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심을 전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으면 너희들이 보는 것처럼 온전한 자가 된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행 3:16) 너희는 영적으로 걷지 못하여 하나님께 나가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러니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러면 새롭게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행 3:19)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병 고침과 이적들을 표적이라 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병 고침에 뒤에 전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새롭게 될 수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0:38) COVID-!9으로 교회에 불출석하는 사람들에게 더 한 가지의 핑계가 생겼다고 한다. 그것은 자동차 기름 값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이리 저리 핑계를 대고 교회 불출석하는 사람들을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식당이나 마켓, 자식들과 친구들은 모두 만나고 다니면서 교회를 가면 바이러스에 전염이 된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하나님의 심판이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지연이 되거나 바뀔 수는 없다. 오히려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의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 뒤로 물러서는 믿음을 가진 자를 싫어하신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0:38)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은 믿음은 뒤로 물러가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역경을 뚫고 아버지에게로 날마다 날마다 나가는 믿음인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성질이 어떠함과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살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한 복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교회에 나오시면 ’여호와 라파‘,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면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출 15:26)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의를 행하며 모든 규례를 지키면 애굽 사람들에게 있는 질병이 하나도 없게 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은혜와 능력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1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의 기쁨이며 믿음이다. 그분들을 어떻게 무엇으로 알아야 하는가를 생각하여야 한다. 하나님을 상징하는 여러 이름들이 있다. 그런데 택한 백성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약속을 하시고 성취하셨다.   즉 택한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며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 되신다. 반면에 택함을 받은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야 약속한 복을 받을 수 있다. 이제 생각하여야 할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에게 약속한 복을 어떻게 주시는가를 확인하여야 한다. 그 복을 주시기 위하여 성자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다. 이 땅에 오시는 하나님은 임마누엘이시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복을 주시는 지혜와 능력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임마누엘 하나님이 되셔서 영원히 택함을 받은 자들과 함께 하신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이 영생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와 능력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심으로 인하여 약속한 복을 다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약속한 구원의 은혜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 복을 받거나 만나시려면 예수를 믿어야 하고 교회에 출석을 하셔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작정하신 것을 믿으시렵니까? 아니면 여러분 마음에 드는 가르침을 따라 믿으시렵니까? 성경적인 교회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으로 증명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따르는 도리를 전하여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 안에 하나님의 모든 지혜와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놀라운 은혜가 교회에서 전파되는 것입니다. 코비디-19 사태와 고유가 시대를 맞이하여 예배에 참석하는 수가 줄어들고 있다고 이야기들을 합니다. 그러나 택함을 받은 자들이라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일에 온 힘을 다하여야 됩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시 100:4)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의 백성으로 택함을 받았다. 택함을 받았다함은 그 백성들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언약 백성의 본으로 삼아 이방 나라 사람들도 성전에 들어가 예배하게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이나 이방인이나 언약 백성의 복을 받을 수 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근거와 이유가 된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시 100:5) 시편의 기자는 하나님 구원의 은혜를 깨닫고 확인한 자들만이 감사하며 성전에 나아가 감사하며 예배할 수 있다고 한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시 100:4)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들이 주님의 전에 나아가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다는 것은 그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임하였다는 증거입니다.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또한 예배를 드리러 나가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감사와 찬양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 4:23) 이것이 우리들을 구원하신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구원받은 자들에게 구원의 하나님이라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출 6:3) 하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씀하실 때는 중대한 일을 결정하셨을 때라고 살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그것에 대하여 자세히 증거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믿음 선조들에게는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셨지만 여호와의 이름으로는 알리지 않으셨다고 한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출 6:3) 이제 모세와 대화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신다. 즉 믿음의 선조들에게 약속한 것을 이루시기 위한 여호와라는 것이다. 여호와라고 할 때에는 택한 백성들과 약속을 이루시며 능력을 나타나실 때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는 것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세상에 알리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인 줄 너희가 알리라”(출 6:7-8) 거룩하신 하나님이 죄인들에게 주신 이름이 여호와 하나님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언제나 택함을 받은 자들과 함께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예수 안에서 영원토록 함께 하시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와 같은 진리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니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5:9)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택한 백성들에게 이루시기 위하여 임마누엘 하나님을 보내셨다. 임마누엘의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다‘입니다. 우리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