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행 4:19-20)


오순절날 성령강림으로 인하여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가 세워졌다. 사도들의 설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죽인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임을 증거하고 있다.


그분이 구원자가 되심은 너희가 십자가에 죽였지만 하나님께서 살리셨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살리셨다함은 하나님의 능력이 그분에게 함께 있음을 말한다. 그분의 이름을 믿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으면 새롭게 될 수 있다. 그래서 사십 년 동안 걷지 못하던 자를 일으켜 성전 안으로 들어가게 하셨다.


사도들의 설교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싫어하여 베드로와 요한을 잡에 옥에 가두었다.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대제사장의 문중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 제자들에게 심문을 한다.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고 묻는다.


대답은 간단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걷지 못하는 자는 걷게 하였다는 것이다. 이 일에 증인으로 남자 오천 명이나 생겨남으로 인하여 공회의 사람들이 제자들을 풀어준다.


풀어 주며 하는 말이 이 일에 대하여 더 이상 전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자 베드로와 요한은 오히려 저들에게 반문을 한다. 너희 말을 듣는 것과 하나님의 말을 듣는 것에 어느 것이 옳은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제자들이 보고 들은 것에 증인으로 살겠다는 고백을 하였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행 4:20)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것에 대하여 우리들이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구원받은 것을 이웃이 증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여야만 하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증인으로서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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