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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인간은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한 점에 불과한 티끌과 같은 존재이다 . 그런데 이 티끌과 같은 존재가 영원하신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놀라운 비밀이 있다 .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 사건을 통하여 알 수 있다는 것이다 .   주님의 십자가의 사건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 . 독생자를 내어주시고 죄인들을 구속하여 주신 놀라운 은혜가 있다 . 즉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하여 놀라운 비밀이 밝혀지고 있다 .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십자가의 죽음의 길을 가신 것이다 . 왜냐하면 십자가의 죽음의 길이 아버지의 뜻이었기 때문이다 .   또한 하늘 아버지는 죽기까지 순종하여 십자가의 죽으신 아들을 살리심으로 인하여 예수님의 아버지가 되심을 증명하셨고 , 아들은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확인된 것이다 . 왜 이렇게 하셨을까 ? 우리들에게 믿음의 확신을 갖게 하시기 위함이다 .   그뿐만 아니라 , 우리 주님은 하늘로 승천하시고 성령하나님을 보내 주셨다 . 그 이유는 우리와 생명적인 연합을 하시기 위함이다 . 그리고 우리 안에 거주하심으로 인하여 아버지와 하나가 되게 하셨다 . 그리하여 아버지가 하시는 일에 하나가 되었다 .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심은 우리들의 죄사함은 물론이고 , 우리 안에서 거하시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하나님에 대하여 살게 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이다 . 더 이상 죄에 대하여 종노릇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우리 안에 함께 거하시고 계신다 .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라고 고백할 수 있는 자는 주님이 보내신 성령이 거하는 자만이 할 수 있다 . 즉 성령의 내재하심으로 인하여 그리스도를 구세주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   더 놀라운 것은 성령이 함께 하는 자들은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증거한다 .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죽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고대 철학자들 가운데 ‘ 소피스트 ‘ 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 이 사람들의 특징은 진리에는 관심이 없지만 논쟁에서의 승리만을 주장했던 사람들이다 . 요즘 한국에서는 인문학 강의가 인기가 있다 . 그래서 많은 철학자들이 강연을 하고 있다 . 그런데 그들 가운데서도 ’ 소피스트 ’ 들이 철학을 망치고 있다고 하는 외침이 있다 .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선을 추구하였다 . 왜냐하면 선의 끝자락에 진리가 있고 신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 그래서 그들 안에 있는 양심이라는 것을 따라서 진리를 분별하려고 고민하였다 . 그러나 반면에 앞뒤가 맞지도 않는 궤변을 늘어놓는 자들도 있었다 .   요즘 TV 에서 인기 있는 토크쇼에 등장하는 참가자들 중에도 선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논쟁에 논쟁을 거듭하는 자들이 있다 . 그들은 말을 잘하고 있는 것 같지만 진리가 없었던 ‘ 소피스트 ‘ 들의 후예인 것이다 .   그렇다면 교회 강대상에서 외치는 설교마다 진리가 있는가를 따져 보아야 한다 . 만일 진리가 없다면 ‘ 소피스트 ’ 가 되는 것이다 .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과는 상관이 없이 건물이나 크게 짓고 교인 수나 늘리면 된다는 생각이다 .   우리 주님은 제자들에게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 요 6:35) 고 말씀하셨다 . “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 요 6:54-55) 라며 더 구체적으로 양식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다 .   그러므로 주님이 피흘리시고 세우신 몸된 교회에서는 생명의 양식을 공급하여야 한다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자들을 거룩하게 하고 믿음을 성숙하게 하기 위하여 모이게 한 곳이 교회이다 . 그렇다면 강단에서 주님의 살과 피가 공급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가지 않겠노라 하였으며

  오늘날 교회가 신뢰를 잃어버리게 된 것은 근거가 없는 공약을 남발하였기 때문이다 . 달리말하자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는 것들을 진실이라고 외쳤다고 할 수 있다 .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자신의 욕망과 욕구를 채우기 위하여 거짓말을 밥먹듯이 행하였던 자들의 실체가 밝혀지고 있다는 것이다 .   하나님이 신자들에게 주시려 하는 것은 평강이다 . 즉 하나님과 화목하게 지내게 하기 위함이다 . 인간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이룰 수 없다 . 그래서 품안에 계신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시고 화목제물로 십자가에 달리시게 하신 것이다 .   하늘 아버지와 화목을 관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하여 교회를 세우셨다 .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자들이 모이는 곳이다 . 그리고 화목의 관계를 지속하고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노력을 하여야 한다 . 이것을 평강이라 한다 . 이 평강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는 길은 악인의 길이요 , 심판의 길이다 .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자가 가는 길은 평강의 길이다 .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인이 되었지만 죄인의 길을 가려하는 본성이 있다 . 그래서 교회에서는 말씀으로 옛성품을 버리게 하고 새사람의 성품을 입게 하는 일을 하여야 한다 .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선한 길을 가야 우리의 심령이 평강을 얻을 수 있다 .   바른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면 평강의 기쁨이 넘친다는 것이다 . 예수님께서 나귀의 구유에 성육신하실 때에 하늘의 천군천사가 찬양을 하였다 . “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 눅 2:14) 이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다 .   예수님의 첫 표적은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변하게 하여 포도주로 만든 기적이었다 . 포도주가 떨어져 절망과 낙심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하나님은 우리들을 사랑하신다 . 품안에 계시던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친히 못박으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다 . 즉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으실 만큼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는 것이다 . 하나님의 사랑은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사랑하시는 것이다 .   하나님의 지속적인 사랑이 펼쳐지는 곳이 교회이다 . 그런데 한 동안 작은 믿음으로 교회를 판단하였었다 .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제는 그 구원의 은혜를 다시 갚아야 한다고 헌신과 희생을 강요했었다 . 이와 같은 가르침에 주님의 몸된 교회는 세상 사람들도 돌을 던지는 곳이 되고 말았다 .   그리스도인이 구원을 받는 과정을 논리적으로 설명을 한다면 이렇다 . 성령께서 각 개인의 영혼을 거듭나게 하여야 구원이 임하게 된다 . 성령이 함께 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라고 신앙고백을 할 수 있게 된다 . 이와 같은 믿음이 있어야 세례를 받을 수 있다 .   세례를 받은 자들은 다음과 같은 믿음을 갖게 된다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죄사함을 받고 의롭다함을 받았음에 대한 상징이며 보증이 된다 . 세례를 받음으로 인하여 돌이킴의 생활을 선언하는 것이 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함을 나타내는 증거이며 보증이다 . 그리고 주님의 몸된 교회에 지체가 됨을 선언하는 것이 된다 .   그리스도인이 주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주님의 몸된 교회에 지체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함이다 .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 예수이시다 .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사랑하신다 . 독생자 아들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다 . 모든 만물을 주님의 발 아래에 두셨다 . 이와 같은 것들을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신 것이다 .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시는데 , 예수님을 사랑하신 것 같이 사랑하신다 . 그 방식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 삼음으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에게 임한 사랑과 권세가 우리에게도 임하게 하려 하는 것이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이 지체가 많으나 한 몸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고대사회에서 자신의 소속은 중요한 의미를 나타낸다 . 어느 나라에 속하였는가에 따라 지배하는 백성이 되고 지배를 당하는가를 알 수 있었고 , 주인과 종으로의 구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 즉 어디에 속하였는가에 따라서 자신의 신분과 정체성이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 .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는 것이 세례이다 . 성령의 역사로 거듭났기 때문에 세례를 받게 된다 . 그러므로 인하여 하나님 나라의 소속이 된 것이다 . 이전에는 어두움의 자식이었지만 이제는 빛의 자녀가 된 것이다 .   세례의 의미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의미가 있다 . 죄사함을 받고 의인이 되었다는 상징이며 보증이 된다 . 그리고 그리스도와 연합과 성령을 받았다는 인침이 된다 .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됨을 상징하는 것이다 .   즉 세례를 통하여 신분과 정체성이 확립됨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지혜를 알 수 있다 . 신자들은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다 . 그렇게 하시는 이유가 있다 .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그리스도를 사랑하신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려는 것이다 .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을 받으신 그리스도와 같이 우리도 살리시기 위함이다 .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 . 그 몸의 지체가 되는 자들은 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자들이다 . 그래서 이제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 순종하여야 한다 . 그러므로 교회의 제직들은 세례를 받은 교인들이어야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   이것이 영적인 복을 받는 방식이다 .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와야 하고 그 몸의 지체가 되어야 하고 ,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을 하여야 한다 . 달리 말하면 교회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 왜냐하면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 그리고 반드시 그 몸의 지체가 되어야 한다 . 제직이 되어서 명령에 따라 순종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   사도 바울이 찬양하고 있다 . “ 우리 가운데서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운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선지자들은 율법을 잘 해석해서 하나님의 뜻을 예언하는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 그래서 선지자들은 아무나 임명할 수가 없다 . 그러므로 선지자들의 영혼은 늘 하나님께 함께 하여야 하며 겸손하여야 한다 .   그들이 먼저하여야 할 것이 율법을 잘 알고 해석을 하여야 한다 . 이스라엘의 최초의 왕에게 기름을 부었던 사무엘 선지자가 있다 . 그는 은퇴를 하고 고향 라마에 가서 거처할 집을 지었다 . 그리고 생도들을 모아 가르쳤다 . 이것이 “ 라마라욧 “ 이다 . 즉 라마라는 곳에 기숙할 수 있는 거처가 있다는 뜻이 된다 .   오늘날에는 이 사명을 감당하는 곳이 신학교이다 . 그래서 그곳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겸손과 순종이 무엇인지를 알게 한다 . 그러므로 신학교에 오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과 열정이 있어야 한다 . 그리고 말씀에 순종하는 겸손이 있어야 한다 .   성경이 말하는 신학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가르치고 사역자의 자세와 인격을 배양하여야 한다 . 만일 그렇지 않으면 조롱을 당하게 된다 . 사울 왕이 사무엘과 다윗을 찾으러 라마에 온 적이 있었다 . 이 일로 인하여 속담이 생겼다 .   “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하니라 ”( 삼상 19:24) 고 하였다 . 즉 무슨 말인가 하면 ,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마음도 없는 자가 선지동산에 왔다는 뜻이 된다 . 하나님의 말씀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할 때에 쓰는 조롱이 된다 .   오늘날에도 신학교에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온다면 “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 하는 조롱을 받게 된다 . 그러므로 신학교에 들어왔다면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찾는 데에 게으르면 안 된다 . 사무엘 선지자가 세운 “ 라마나욧 “ 은 기숙을 하며 배움을 가졌던 것이다 .   신학교나 신학생들이나 성경적인 가르침으로 돌아가 사명과 책임을 찾아야 한다 . 개인의 명예나 이익을 위하여 신학교에 간다면 사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 II

  꼼수란 ? 남을 속이기 위한 비열한 방법이다 . 원래 이 단어는 바둑에서 사용을 한다 . 정수와 꼼수가 있다 . 정수는 올바른 정석을 향한 것이라면 , 꼼수는 상대방의 실수를 유도하는 것이다 . 그래서 꼼수를 올바로 대처하지 못하면 커다란 위험에 빠지게 된다 .   악의 세력이 점점 득세를 하다가 보니 이제는 아주 대놓고 꼼수를 외치는 자들이 있다 . 꼼수의 대표자는 마귀이라 할 수 있다 . 그에게는 거짓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 그럴 것 같은데 자세히 살피면 거짓이란 말이다 .   거짓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고 부인하는 것이다 . 마귀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말고 자기 자신이 스스로 주인이 되어서 생각대로 살라고 한다 . 그러니 내가 잘 살기 위해서는 누구든지 다 속일 수 있다 . 그렇다보니 꼼수를 부리는 것이다 .   하나님의 생각은 이웃을 사랑하라고 한다 . 사랑을 하되 내 몸을 사랑하듯 하라 한다 . 그러니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당연히 거짓이 된다는 것이다 . 거짓이란 하나님의 생각과 반대되는 것을 말한다 . 그러므로 꼼수는 마귀가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다 .   나에게 유익이 되는 것 같은데 결국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 아담에게 다가온 마귀는 그의 서운한 부분을 이해하는 듯 했다 . 아주 귀하고 좋은 것은 하나님만 갖고 계시고 하찮은 것만 그에게 주는 것으로 속삭였다 . 그러나 선악과를 따먹지 않는 것이 복을 받는 길이었다 . 이것이 꼼수이다 . 그럴 것 같고 당연한 것 같은데 함정이 있다는 것이다 .   신자가 마귀의 꼼수를 물리치려면 올바른 길인 정수를 알아야 한다 .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 말씀을 깨닫데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   말씀을 믿음의 방패로 사용할 줄도 알아야 하고 , 내가 얻은 구원이 어떻게 임하였는지를 자랑할 줄도 알고 , 진리를 따라 흔들리지 말고 , 발길이 닿는 곳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초대교회에 구제하는 일로 인하여 분쟁이 있었다 . 그래서 사도는 말씀 전하는 일과 기도에 힘쓰기 위하여 집사 일곱을 택하게 된다 . 봉사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하여 집사를 세웠는데 이들이 큰 일을 벌이는 것을 볼 수 있다 .   스데반 집사는 공회에 붙들려가 대제사장 앞에서 외치고 있다 . 너희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 저들은 스데반의 외침에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았고 마침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쳐 죽인다 .   그뿐만 아니라 빌립집사도 있다 . 핍박을 피하여 사마리아로 가게 된다 . 그도 핍박 속에서 그리스도를 백성들에게 전파한다 .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므로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다 .   분명한 것은 봉사의 일을 하게 위하여 세웠던 집사들이었다 . 그런데 어떻게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가 ? 성경말씀에 관심이 있었던 신자들이었다면 궁금함을 갖았을 것이다 .   오늘날 교회 안에도 이러한 신자들이 있다 . 자기는 할 줄 아는 것이라곤 봉사의 일 밖에 모른다고 손사래를 치며 겸손한 자들이 있다 . 그런데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라 하면서 이런 믿음의 고백을 한다면 내 안에 감추어진 보배의 능력을 부인하는 것이 된다 .   내 안에 그리스도가 있다면 심히 큰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 달리 말하면 그 능력은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다 . 내 안에는 예수의 생명이 있다 . 이것은 주님이 부활하심으로 인한 새생명이다 . 즉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   그러므로 신자 안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으므로 인하여 “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 고후 4:8-10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한국이나 미국에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군사들이 있다 . 그들은 강인한 체력을 가지고 있음은 물론이고 그보다 더 한 것은 강한 정신력이다 . 그 일을 수행하는 동기와 목적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 그래서 군입대를 하면 가장 먼저 군인에 대한 정신교육을 시킨다 .   초대교회 교인들은 말씀을 듣고 깨달음을 얻어 회개하고 돌이키며 사람을 살았다 .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그들을 보고 그리스도처럼 산다고 하여 그리스도인이라 부름을 받게 되었다 . 오늘날 교인들 가운데에서 타인으로부터 그리스도인이란 소리를 듣기가 어렵다 . 오히려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처럼 사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시대가 되었다 . 즉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한 자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   주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하실 때에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셨다 . 그러나 모든 사람이 메시야로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 그들 가운데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 보관하는 서기관들과 민족의 지도자인 바리새인들도 있었다 .   그들은 하나님을 눈앞에서 보면서도 부인하였던 자들이다 . 많은 기적과 비유로 말씀을 전하였지만 오히려 돌로 치려하였다 . 그리고 끝내는 로마의 법정에 고발을 하였다 .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눈앞에 모시고도 왜 알아보지 못하였을까 ? 이 문제는 오늘날에도 심각하다 . 과거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그랬듯이 오늘날에도 똑같다는 것이다 . 그들에게는 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는 것이다 . 주님의 음성을 아무나 들을 수가 없다 . 성령의 거듭남의 역사가 있어야만 들을 수 있다 . 그러니 들어도 계속 딴 소리만 하게 된다 .   그리고 그들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마음이 없다 . 이미 자기의 생각으로 정한 것이 있다 . 즉 자기의 생각과 다른 것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 그러니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이 아니니 믿을 수 없다는 것이 된다 .   그 때에도 민족의 지도자들이 그랬듯이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 중직자들 가운데 말씀에 대적하는 자들이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