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고대 철학자들 가운데 소피스트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사람들의 특징은 진리에는 관심이 없지만 논쟁에서의 승리만을 주장했던 사람들이다. 요즘 한국에서는 인문학 강의가 인기가 있다. 그래서 많은 철학자들이 강연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서도 소피스트들이 철학을 망치고 있다고 하는 외침이 있다.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선을 추구하였다. 왜냐하면 선의 끝자락에 진리가 있고 신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들 안에 있는 양심이라는 것을 따라서 진리를 분별하려고 고민하였다. 그러나 반면에 앞뒤가 맞지도 않는 궤변을 늘어놓는 자들도 있었다.
 
요즘 TV에서 인기 있는 토크쇼에 등장하는 참가자들 중에도 선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논쟁에 논쟁을 거듭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말을 잘하고 있는 것 같지만 진리가 없었던 소피스트들의 후예인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 강대상에서 외치는 설교마다 진리가 있는가를 따져 보아야 한다. 만일 진리가 없다면 소피스트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과는 상관이 없이 건물이나 크게 짓고 교인 수나 늘리면 된다는 생각이다.
 
우리 주님은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6:35)고 말씀하셨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6:54-55)라며 더 구체적으로 양식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다.
 
그러므로 주님이 피흘리시고 세우신 몸된 교회에서는 생명의 양식을 공급하여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자들을 거룩하게 하고 믿음을 성숙하게 하기 위하여 모이게 한 곳이 교회이다. 그렇다면 강단에서 주님의 살과 피가 공급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그런데 교인들은 왜 갈증을 느끼고 세상에 대하여 염려하고 고민하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을 때에 진리가 그를 자유롭게 한다는 것이다. 그분이 진리이어서 생명의 길로 갈 수 있다. 그 길이 고난의 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셨다. 신자들 역시도 고난의 길을 통과하여야 온전하여진다는 것이 성경의 약속이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에서는 주님이 지고 가신 십자가, 쓸개탄 신 포도주를 마시는 것에 대하여는 증거하지 않는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하여 오천명이 먹은 떡은 자랑하지만 주님의 십자가의 피흘림과 찢긴 살에 대하여는 외치기를 두려워한다. 만일 그렇다면 진리가 없는 외침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 주님이 하늘 보좌에 앉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고난을 반드시 통과하셔야만 했다.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거하셨다. 신자들 역시도 세상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사는 것이 고난이다. 그런데 그것에 놀라움이 있다. 고난 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셨다.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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