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013의 게시물 표시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성경에 바리새인들이 등장을 한다 . 그런데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보편적으로는 바리새인들이 나쁜 쪽으로 표현을 하는데 인용을 한다 .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아주 경건한 자들이라 자부를 한다 . 그러나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 화있을 진저 ‘ 라며 나무라신다 .   바리새인들도 구약의 성경을 믿었다 . 그렇다면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 저들은 의로운 것을 좋아 한다 . 그래서 성경의 말씀도 어떻게 하면 의롭게 지킬 수 있는가로 해석을 한다 .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생각으로 옳고 , 그름으로 해석을 하였다 . 그래서 저들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병든 자와 귀신들린 자를 고치실 때에도 믿지 않았다 . 오히려 예수님을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이라 하였다 .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믿어도 자신들의 생각으로 믿는다는 것에 대한 비유가 회당장 야이로가 자기의 딸이 죽어 예수님 앞에 나올 때의 모습에서이다 . 그는 예수님 앞에 나아와 간절하게 구했다 .   야이로는 율법을 ‘ 맞다 , 아니다 ‘ 로 믿고 있었는데 막상 자신의 예쁜 딸이 어린 나이에 죽게 되자 예수님을 찾아 온 것이다 . 자신의 딸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율법의 ’ 맞다 틀리다 ’ 로 해결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 그래서 예수님 앞에 나아 왔지만 자신의 방법대로 주문을 한다 . 자기의 집으로 오셔서 딸의 몸에 손을 얹으시고 기도하여 주시면 살아나겠다는 것이다 .   회당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던 곳이다 . 그 곳에서 책임자로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더 잘 알았을 것이다 . 저가 예수님 앞에 나온 것은 놀라운 일이다 . 그래서 야이로의 믿음이 부족하였지만 어여쁘게 받아주셨다 . 그리고 믿음이 좋은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고 있었던 믿음이 좋은 여인을 보여 주시는 것이다 .   믿음이 좋은 백부장의 이야기가 있다 .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극찬을 하셨다 .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니

노래도 나이에 맞게 불러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 나이가 드신 어르신이 세월이 빠르게 흘러간다는 노래나 타령을 하게 되면 생생한 증언이 되는 것이다 . 그래서 군가는 군인이 불러야 어울리고 동요는 어린아이들이 불러야 아름답다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얻은 이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너무나 쉽다 . 신자답게 살면 된다 . 그렇다면 신자는 어떠한 자태를 취하여야 하는가에 관심을 가지면 된다 .   군인이 되면 암기하여할 것들이 있다 . 군인의 길 , 국군의 사명 같은 것들이다 . 이것을 암기하게 하는 이유는 자신이 군인이라는 정체성을 심어 주기 위함이다 . 군인이 되었으니 군인답게 되기 위한 정신교육이다 . 내가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도 알아야 한다 .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칠 수 있고 ,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하여 최전방에서 보초를 서는 것이다 .   신자가 되었는데도 정체성이 불확실하고 , 무엇을 하여야 하는지도 모르고 ,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는지도 모른다면 답답한 일이 될 것이다 . 신자들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 배워야 할 것들이 교리이다 . 그런데 신자들은 교리를 배우는 것을 싫어한다 .   바울이 에베소 지역에 전도를 하면서 일어났던 사건이 있다 . 하나님이 바울의 손을 통하여 놀라운 기적을 행하게 하시고 심지어는 몸에 있는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병든 자에게 얻으면 병 고침을 받고 악귀도 떠나는 역사가 있었다 .   이와 같은 장면을 보았던 자들이 자기의 돈벌이를 위하여 바울이 하였던 대로 따라 했다 . 그러자 악한 귀신도 가짜라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 악한 귀신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다 .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을 이기신 부활의 능력을 갖고 계신 분이기 때문이다 .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 가운데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은혜를 누리는 자는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 . 구원을 받은 자라면 구원을 받은 자의 증

요셉이 그들에게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요즘 많은 젊은이들이 좌절을 하고 있다 . 그들 앞에 너무나 커다란 장벽이 있기 때문이다 . 우선은 일자리를 잡지 못하는 것이고 , 무엇을 하여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 그런데 스티브 잡스가 스텐포드 대학 졸업식에 전한 연설이 그들에게 도전을 주고 있다 .   스티브 잡스가 연설을 하러간 스텐포드 대학은 미국에서 최고의 대학이다 . 그는 졸업생들에게 축하 연설을 하였다 . 그의 첫 연설 첫 부분은 대학을 중퇴한 이야기였다 . 그리고 연설의 전체의 줄거리는 성공담이 아니라 실패담을 들려주었다 .   그의 연설을 들었던 스텐포드 졸업생들은 그저 그렇게 여겼다 .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2008 년에 서브 프라임 몰게지 사건이 터지고 삶의 변화와 좌절을 맞게 되었다 . 그리고 스티브 잡스가 졸업식 초청 연설을 기억하고 있다 . 그의 연설이 졸업생들에게 새 힘을 주고 있다 .   최고의 명문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들에게는 희망의 빛이 비추고 있었다 . 그러다보니 스티브 잡스의 연설은 그저 웃음거리에 불과 했다 . 그들에게는 장밋빛 인생을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 그들에게 꿈을 꾸라는 연설을 한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고 만일 고난이 닥치면 헤쳐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심어준 것이다 .   그의 연설을 정리하면 인생의 역경과 고난이 있는데 , 그 고난이 언젠가는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 그리고 사랑과 열정으로 일을 하라고 한다 . 일을 하되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열정적으로 하라는 것이다 . 그의 주장은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아무렇지도 않게 넘길 수 있다고 하였다 .   또한 그의 연설 마지막 부분에 췌장암으로 수술을 받은 사실을 말하였다 . 그는 실제로 곧 죽음을 앞둔 사람으로서 마치 유언적인 연설을 한 것이다 . 세월이 흘러 기자가 다시 스티브 잡스에게 묻는다 . 다시 스텐포드 학교에 가서 연설을 한다면 어떤 것을 할 것이냐고 , 그의 대답은 똑 같은 내용으로 말할 것이며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세상의 사람들은 오늘도 도전하고 있다 . 저들의 야망은 세상을 바꾸어 보겠다는 것이다 . 자기들이 생각하며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 그래서 저들은 꿈 이야기를 많이 한다 . 꿈은 언제나 진행형이다 . 완료형이 아니다 . 그래서 언제나 아름답고 즐겁다 .   신자들의 믿음의 됨됨이를 열매로 비유한다 . 열매는 과정을 지나온 결과물이다 . 또한 어떤 나무인지를 확인시켜 준다 .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   꿈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인기가 많다 . 황당한 이야기가 아니라 실현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를 성공한 인물을 등장시키어 소개를 하면 누구나 귀를 솔깃하게 한다 . 그리고 꿈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는 꿈꾸는 자가 되고 나도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다 . 그러다보니 꿈을 꿀 수 있다는 자체가 행복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 그러나 꿈은 이루어진 것이 없다 . 그래서 꿈을 많이 꾼 자들이 겪는 증상이 파랑새 증후군이다 .   인류의 죄문제를 해결하시려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 . 오신 목적인 죄로 타락한 인간들을 고치시러 오신 것이다 . 세상의 정치제도나 환경을 고치시러 오신 것이 아니다 . 물론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게 된다 .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고치신다 . 죄 가운데 있던 자를 꺼내셔서 얼룩지고 흠이 있는 것을 깨끗하게 하시려 하는 것이다 . 죄인들 의인으로 변화시키시고 거룩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신다 . 그리고 거룩을 향하여 나아가는 자로 만드신다 .   신자들은 천국에 가는 것이 보장되어 있는 자이다 . 그곳을 가는 자이지만 오늘을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 왜냐하면 천국을 가기 위하여 지금부터 천국시민으로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 그러기에 지금의 삶에 절제와 연단의 시간이 있다 . 그래서 우리를 성화의 과정으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 그리고 열매를 통하여 판단을 하시겠다고 하셨다 . 그러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지난주에는 감자골을 떠나 시애틀을 다녀왔다 . 오랜 만에 반갑고 그리운 얼굴들도 만나고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갔다 . 나누는 이야기는 참으로 진지하고 재미가 있다 . 주고 대화의 내용은 목회의 현장에서 경험한 다양한 이야기이다 .   더 놀라는 것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다 .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상상도 생각도 할 수 없는 일들이다 . 목회는 외롭고 힘든 일이다 . 그래서 목사들은 자기만이 제일 어렵게 힘들게 생각을 한다 . 그러나 목회자들의 모임에 참석하여 보면 모두가 같은 상황에 처하여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 더 어려운 상황에 있는 목사님을 보면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낀다 .   감자골에서 시애틀까지는 500 마일이고 , 9 시간 정도가 걸린다 . 오고 가는 길은 참 유익하다 . 운전을 하며 아름다운 자연을 볼 수 있는데 , 같은 길을 가고 있지만 자연의 풍경은 매번 다르다 . 자세히 보면 365 일 그곳을 지키고 있는 산이지만 볼 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   봄에는 푸른 띠를 두르고 있고 , 여름에는 나무 잎으로 덮여 있고 , 가을에는 각 나무마다 저마다의 색깔을 뽐내고 있고 , 겨울에는 하얀 겨울 코트를 입고 있다 . 그러니 감동적일 수밖에 없고 , 운전대를 붙잡는 순간에는 기도의 시간이 되고 , 찬양의 시간이 된다 . 또한 아내와도 못 다한 이야기도 나눈다 . 그러다보니 가는 길은 설렘으로 가게 되고 , 오는 길은 은혜를 듬뿍 얻어서 온다 .   아이다호 주의 감자골은 미국사람들에게도 생소한 곳이다 .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어느 주 옆에 붙어 있는지를 모른다 . 어느 정도의 설명을 하면 감자밭 속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한다 . 그러나 그렇지 않다 . 예쁘고 조용하고 깨끗한 도시이다 . 특히 먹거리가 참 많은 곳이다 .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조크가 있다 . 아이다호 식당들 의자의 수가 아이다호 전체 인구보다 더 많다는 것이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어느 대중 가수가 부른 노래 중에 ‘ 네 박자 ’ 라는 노래가 있다 . 인생살이를 간단히 말하면 ‘ 희노애락 ’ 이라 한다 . 인생의 삶이 잘 작곡된 악보와 같다는 것이다 . 한 소절 , 한 소절이 이어져야 하고 계속 불러야 곡이 완성된다고 한다 . 별로 재미없는 일들이지만 리듬을 타면 즐겁다고 한다 .   한 소절을 충실하게 불러야 전체의 곡을 잘 부르는 가수에 비유하여 인생사의 삶을 그렸다 . 그러다보면 좋고 기쁜 날이 있다는 것이다 . 인생의 삶을 긍정적으로 낙관적으로 보는 시각이다 . 그래서 대부분의 대중가요의 내용은 낙관적이다 . 그러다보니 쓸쓸한 마음을 잠시나마 위로를 할 수 있다 .   신자들은 억지로 즐거운 노래를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니다 . 살다가 보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낙관론자들이 아니다 . 신자들은 택함을 받아 은혜와 책임으로 살아야 하는 자들이다 . 신세를 타령하는 자들이 아니다 . 우리들의 고난과 고통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는 사람에서 선명하게 나타나야 한다 . 고난과 환난을 대하는 태도에서 있다 . 불신자는 억지로 살아야 하는 인생이지만 , 신자는 고난 중에도 기뻐할 수 있다 .   요즘 전세계적으로 자살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다 . 고난과 환난이 닥쳤기 때문이다 .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 그러다보니 나의 삶을 내가 정리 하려 한다 . 그리고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   그런데 신자들이라 하면서 자살을 하는 자들이 있다 . 신자들의 환난과 고통 속에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신다 . 그러면 왜 적극적인 현상이 나타나지 않느냐는 질문이 이어진다 .   죄라는 것은 하나님과 분리되었음을 말한다 . 죄 가운데 있는 고통이란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을 때에 나타나는 것이다 . 즉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고통과 아픔을 알아야 한다 . 그래야 다시 죄의 자리에 가지 않게 된다 . 그리고 죄사함을 받기 위해서 예수 그리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 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Give and take’ 주는 것이 있으면 받아야 한다 . 이것은 동등한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 이방의 종교나 무속신앙은 제단 앞에 예물을 바쳐야 필요한 것을 얻는다고 한다 . 내가 요구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치성과 복채를 드려야 한다고 한다 .   바다에 풍랑이 잔잔케 하기 위하여 용왕이 좋아하는 것을 바다에 던져야 한다 . 그러면 용왕은 심술을 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 이것이 ‘Give and take’ 이다 . 이방의 종교나 무속신앙은 신과 신 앞에 서 있는 자가 동등한 관계에 있다 .   이방의 신을 섬겼던 자나 무속신앙에 깊이 빠졌었던 자들이 예수를 믿게 되면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믿는다 . 그러나 조심하여야 할 것은 하나님을 이방신을 섬길 때처럼 내가 드리면 주신다는 식으로 믿으면 아니 된다 .   기독교는 자비와 긍휼의 종교이다 . 피조물에 무엇을 받아야 움직이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다 . 죄인을 사랑하시는데 죄인이 있는 자리까지 오셨다 . 창조주가 사람인 피조물로 오셨다 . 죄인을 구하러 사람으로 오신 것이 성육신이다 .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긍휼을 구하여야 한다 . 하나님은 동물의 제물을 탐내시는 분이 아니다 . 하나님이 우리를 기다리시는 이유는 긍휼과 용서를 주시기 위함이다 . 죄인이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 상한 심령을 갖고 나와야 한다 .   죄로 인하여 온전하지 못한 우리의 심령 , 즉 죄에 억눌려서 낙심이 될 때다 .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화목의 관계를 유지하여야 한다 .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면 평강과 기쁨과 두려움이 없다 .   그래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나는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노라 함이 무엇인지를 배우라 하셨다 . 예수님께 예물을 드리고 내가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하여 나를 수단과 방법으로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 만일 그와 같은 심정으로 예배를 드린다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