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니


노래도 나이에 맞게 불러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나이가 드신 어르신이 세월이 빠르게 흘러간다는 노래나 타령을 하게 되면 생생한 증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군가는 군인이 불러야 어울리고 동요는 어린아이들이 불러야 아름답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얻은 이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너무나 쉽다. 신자답게 살면 된다. 그렇다면 신자는 어떠한 자태를 취하여야 하는가에 관심을 가지면 된다.
 
군인이 되면 암기하여할 것들이 있다. 군인의 길, 국군의 사명 같은 것들이다. 이것을 암기하게 하는 이유는 자신이 군인이라는 정체성을 심어 주기 위함이다. 군인이 되었으니 군인답게 되기 위한 정신교육이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도 알아야 한다.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칠 수 있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하여 최전방에서 보초를 서는 것이다.
 
신자가 되었는데도 정체성이 불확실하고, 무엇을 하여야 하는지도 모르고,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는지도 모른다면 답답한 일이 될 것이다. 신자들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 배워야 할 것들이 교리이다. 그런데 신자들은 교리를 배우는 것을 싫어한다.
 
바울이 에베소 지역에 전도를 하면서 일어났던 사건이 있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을 통하여 놀라운 기적을 행하게 하시고 심지어는 몸에 있는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병든 자에게 얻으면 병 고침을 받고 악귀도 떠나는 역사가 있었다.
 
이와 같은 장면을 보았던 자들이 자기의 돈벌이를 위하여 바울이 하였던 대로 따라 했다. 그러자 악한 귀신도 가짜라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악한 귀신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을 이기신 부활의 능력을 갖고 계신 분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 가운데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은혜를 누리는 자는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 구원을 받은 자라면 구원을 받은 자의 증상이라든지 모습이 나타나야 한다. 입술로는 신자들 같은데 능력에 있어서는 아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행함의 능력에 있다고 하였다.
 
구원에 대한 감사와 찬양이 없다. 교회에 출석을 하는 것이 대단한 것이라 생각을 한다. 출석을 하더라도 목사를 위한 것이고 하나님을 위하여 출석해 준다는 태도이다. 그러니 출석교인들에게 감사하다고 머리를 숙여야 하는 시대이다.
 
우리의 믿음의 생활이 그저 흉내만 내고 있는지 생각하여 보아야 한다. 구원을 얻은 자에게는 생명이 존재한다. 그러니 생명이 있는 자는 성장하게 되어 있다. 또한 죄에 대한 아픔을 느껴야 한다. 이것이 생명이 있는 자의 건강한 모습이다.
 
영생이 없는 자는 믿음이 자라지 않는다. 죄가 꼬집고 때려도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니”(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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