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 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나타내지 아니하면 피리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것을 횡설수설이라 한다. 본인도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듣는 사람도 무슨 뜻인지를 모르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것이 통하는데 있다. 무속신앙을 따르는 자들은 신비함이 있다고 하여 그저 굴복의 자세를 취한다.
 
사람들에게는 종교심이 있다. 그래서 관광지나 고적지를 방문하였을 때에 웅장한 자연물 앞에서 절을 한다. 합장을 하고 절을 한다. 마음을 모으고 몸을 낮춘다는 의미이다. 마음을 모으고 당신에게 경의를 표하였으니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몸과 마음의 가짐이다. 저들의 횡설수설은 신과 교접을 한다는 명목으로 한다. 다른 사람들은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를 알 수가 없다.
 
강단에서의 설교는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의 언어를 사용한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는지를 분명하게 들을 수 있다. 그 내용은 언약의 말씀을 선포하고, 어떤 내용과 의미인지, 약속의 복이 임하는 과정, 복을 받은 자들이 삶에서 어떻게 적용을 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성경은 구원의 약속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자신이 새로운 복을 만들어 주는 것처럼 설교를 하는 자들이 있다. 그리고 내용에는 일관성이나 통일성은 전혀 없다. 성경의 약속을 기준으로 한다면 횡설수설하는 것이다.
 
설교자가 자기가 한 말을 기억하지 못하고, 기도하는 자가 무슨 뜻을 구하였는지도 모른다면,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분명 주문을 외우거나 자기 최면술을 건 것이다. 우리는 분명히 기도의 대상이 있다. 또한 설교는 하나님의 뜻과 작정하심을 전하는 것이다.
 
자기의 감정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다. 말씀의 약속에 근거해서 나아간다. 엄숙한 분위기나 조형물에 압도되어서 머리를 숙이는 것이 아니다. 말씀의 거룩함을 깨닫고 경외함으로 머리를 숙이는 것이다.
 
또한 강단에서 전하는 말씀을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고 온전하게 사는 것을 전한다. 교양을 갖추어서 고급스럽게 살라는 것이 아니라, 죄와 허물을 벗고 살라는 것이다.
 
악기를 연주하는 자는 그 악기의 소리를 잘 내야 훌륭한 연주자이다. 피리를 부는데 거문고 소리를 낸다든가, 아니면 거문고를 타는데 피리 소리를 낸다면 곤란한 일이다.
 
올바른 설교자는 그 본문이 내는 소리를 정확히 내어야 한다. 만일 딴 소리를 낸 다면 그것은 설교자로서 자질이 부족한 것이다. 횡설수설하는 설교나 기도를 조심하여야 한다.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권투를 할 때도 상대를 보고 펀치를 날리고, 달리기를 할 때도 목표를 향하여 일직선으로 달려가야 한다.
 
혹 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나타내지 아니하면 피리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고전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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