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어느 대중 가수가 부른 노래 중에 네 박자라는 노래가 있다. 인생살이를 간단히 말하면 희노애락이라 한다. 인생의 삶이 잘 작곡된 악보와 같다는 것이다. 한 소절, 한 소절이 이어져야 하고 계속 불러야 곡이 완성된다고 한다. 별로 재미없는 일들이지만 리듬을 타면 즐겁다고 한다.
 
한 소절을 충실하게 불러야 전체의 곡을 잘 부르는 가수에 비유하여 인생사의 삶을 그렸다. 그러다보면 좋고 기쁜 날이 있다는 것이다. 인생의 삶을 긍정적으로 낙관적으로 보는 시각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대중가요의 내용은 낙관적이다. 그러다보니 쓸쓸한 마음을 잠시나마 위로를 할 수 있다.
 
신자들은 억지로 즐거운 노래를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니다. 살다가 보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낙관론자들이 아니다. 신자들은 택함을 받아 은혜와 책임으로 살아야 하는 자들이다. 신세를 타령하는 자들이 아니다. 우리들의 고난과 고통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는 사람에서 선명하게 나타나야 한다. 고난과 환난을 대하는 태도에서 있다. 불신자는 억지로 살아야 하는 인생이지만, 신자는 고난 중에도 기뻐할 수 있다.
 
요즘 전세계적으로 자살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다. 고난과 환난이 닥쳤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그러다보니 나의 삶을 내가 정리 하려 한다. 그리고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그런데 신자들이라 하면서 자살을 하는 자들이 있다. 신자들의 환난과 고통 속에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신다. 그러면 왜 적극적인 현상이 나타나지 않느냐는 질문이 이어진다.
 
죄라는 것은 하나님과 분리되었음을 말한다. 죄 가운데 있는 고통이란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을 때에 나타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고통과 아픔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다시 죄의 자리에 가지 않게 된다. 그리고 죄사함을 받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느끼게 함이다.
 
낙관주의 자들은 네 박자의 흐름을 타지만,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한다. 세상의 흐름이 돌고 돌기 때문에 좋은 날이 또 온다고 하지만, 신자들은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는 자들이다. 세상 속에서 천국을 바라보며 사는 자들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았는데, 잘 살게 함에 목적이 있지 않다. 나를 정금과 같이 순수하고 단단하게 만드는데 목적이 있다. 즉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거룩한 자로 만들기 위함이다. 순도 99.9%의 정금을 만들기 위해서는 연단의 과정이 필요하다.
 
풀무불 속에서 하는 과정이다. 달구고 두드리고 불순물을 제거하고 그 후에 원하는 모양을 만든다. 우리를 거룩한 자로 만들기 위하여 오늘도 우리를 연단하시고 계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고집은 대단하시다. 그 고집이 영원하시기 때문에 영원하신 하나님이라 한다.
 
심지가 견고한 자들로 만들기 위하여 환난과 고통 속에서 훈련을 시키신다. 그래서 신자들은 은혜 입은 자의 책임으로 인내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벧전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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