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 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Give and take’ 주는 것이 있으면 받아야 한다. 이것은 동등한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이방의 종교나 무속신앙은 제단 앞에 예물을 바쳐야 필요한 것을 얻는다고 한다. 내가 요구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치성과 복채를 드려야 한다고 한다.
 
바다에 풍랑이 잔잔케 하기 위하여 용왕이 좋아하는 것을 바다에 던져야 한다. 그러면 용왕은 심술을 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Give and take’이다. 이방의 종교나 무속신앙은 신과 신 앞에 서 있는 자가 동등한 관계에 있다.
 
이방의 신을 섬겼던 자나 무속신앙에 깊이 빠졌었던 자들이 예수를 믿게 되면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믿는다. 그러나 조심하여야 할 것은 하나님을 이방신을 섬길 때처럼 내가 드리면 주신다는 식으로 믿으면 아니 된다.
 
기독교는 자비와 긍휼의 종교이다. 피조물에 무엇을 받아야 움직이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다. 죄인을 사랑하시는데 죄인이 있는 자리까지 오셨다. 창조주가 사람인 피조물로 오셨다. 죄인을 구하러 사람으로 오신 것이 성육신이다.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긍휼을 구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동물의 제물을 탐내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다리시는 이유는 긍휼과 용서를 주시기 위함이다. 죄인이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 상한 심령을 갖고 나와야 한다.
 
죄로 인하여 온전하지 못한 우리의 심령, 즉 죄에 억눌려서 낙심이 될 때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화목의 관계를 유지하여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면 평강과 기쁨과 두려움이 없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나는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노라 함이 무엇인지를 배우라 하셨다. 예수님께 예물을 드리고 내가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하여 나를 수단과 방법으로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만일 그와 같은 심정으로 예배를 드린다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아직 모른다는 것이다.
 
내 생각대로 예수님을 동원하여 예배를 드리는 것은 올바른 예배가 아니다. 그러니 예배를 올바로 드리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올바로 알아야 한다. 즉 예수님이 원하시는 뜻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정성과 치성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의 죄사함을 받으러 가는 것이다. 죄의 문제를 들고 가지 아니하고 제물만 드리다가 망한 백성이 이스라엘 사람들이다. 죄를 들고 오는 자들에게 언제든지 용서를 해 주신다. 그 이유는 죄 가운데 있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죄로 고통을 받는 자들의 모습을 보셨고, 우리들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기에 아픔을 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것이다. 또한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 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9:13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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