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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가 그의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고

“ 지혜가 그의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고 ”( 잠 9:1)   많은 사람들이 집 짓는 그림을 그리면 지붕부터 시작을 한다 . 그러나 실제적으로 집을 짓는다면 기초부터 다져야 한다 .   믿음의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 기초보다는 드러내려고 하는 것들에 더 많은 관심이 있고 그것이 올바른 것이라 생각을 한다 .   믿음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말씀이다 . 만일 이것을 모르고 행함으로 가게 되면 바리새인과 같이 되는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알아야 믿음의 반석이 된다 . 그것을 구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와야 한다 .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일은 땅 속에서 보화를 찾듯이 수고를 하여야 한다 . 신자의 온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찾아야 한다 .   세상의 하찮은 초등학문을 위해서도 불철주야로 파며 노력을 한다 . 귀한 것을 찾으려고 학문을 파고 있는 것이다 . 하나님의 진리 그리고 지혜를 구하는데 있어서 대충은 없다 .   하나님 앞에서 간절함으로 구하고 , 찾고 , 두드려야 한다 . 온 힘을 다하여 두드려야 한다 . 그래야 얻을 수 있다 . 교회에 나오면 성령하나님께서 역사하시사 깨달음을 주셔서 감사와 찬양의 자리로 나가게 하신다 .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 값없이 전하는 복음이라 하여 쉽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 구원의 시작은 선물로 받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과정은 내가 순종하며 가야 합니다 . 믿음의 생활은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이고 그분의 뜻이 내 뜻이 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내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있어야 하고 ,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동원하여 순종을 하여야 합니다 .  

대저 지혜는 진주보다 나으므로 원하는 모든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음이니라

“ 대저 지혜는 진주보다 나으므로 원하는 모든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음이니라 ”( 잠 8:11)   지혜가 진주보다 낫다고 한다 . 무슨 말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세상이 자랑하는 물질보다 낫다는 것이다 .   성경에서 하나님이 약속하는 복은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자라 한다 . 하나님은 공의를 시행하는 자를 찾고 계시고 재물을 주시는데 곳간에 채워주신다고 하셨다 .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그분의 뜻을 깨달아 원하시는 대로 행하는데 있다 . 그 모든 것을 말씀하셨다 . 말씀이신 분이 사람이 되어 오신 것이 성육신이다 .   말씀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다 .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셨고 ,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지를 보여 주신 것이다 .   그래서 하나님의 지혜를 얻으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얻을 수 있게 된다 .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게 됨으로 인하여 지혜로운 자가 되는 것이다 .   지혜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인하여 자연의 생태를 익혀 가는 것이고 , 사람과의 관계에서 덕을 세우는 자가 되며 , 사회공동체에서는 정의를 세우고 공의를 실행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 우리들이 즐겨 부르는 찬양 가운데 ‘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 찬 94 장 ) 가 있습니다 . 하나님의 지혜를 얻은 자는 이 찬양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지혜를 얻게 되면 , 자연의 생태를 알게 되고 정치경제가 보이고 사람의 됨됨이가 보입니다 . 그렇게 됨으로 인하여 겸손하여 지고 하나님을 더욱더 경외하는 자리로 나가게 됩니다 . 성경 속의 인물 가운데 하나님의 지혜를 통하여 부자도 있었고 , 지혜로운 자들 그리고 정치가들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왜 그런가 하면 이 세상을 하나님이 통치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계명을 간직하라 내 계명을 지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

“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계명을 간직하라 내 계명을 지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 ”( 잠 7:1-2)   “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계명을 간직하라 내 계명을 지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 ”( 잠 7:1-2) 하는 이유가 있다 .   하나님의 말씀을 내 내면에 채우라는 것이다 . 만일 채우지 아니하면 마귀의 꼼수에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마귀에게는 매력적인 것이 있다 . 즉 ,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 또한 호리는 말을 갖고 있다 . 거짓을 사실인 것처럼 포장을 잘 한다 .   매혹적인 것에는 내 마음이 내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다가가고 , 그리고 호리는 말을 내 것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하는 힘이 마귀에게 있다 .   이러한 것들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내 내면이 하나님의 계명으로 채워져야 한다 . 그리고 그것이 내 마음에서 법이 되어야 한다 . 법을 넘어가게 되면 그것은 죄가 되는 것이다 .   우수한 시민은 그 나라의 법을 잘 지키는 자이다 . 하나님 나라의 좋은 백성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이다 . 그리하면 왕은 그 백성에게 상을 베푸는 것이다 .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 마귀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게 하는 일을 합니다 . 우리에게 접근하는 방식이 하나님을 멀리하게 하고 교회를 멀리하게 하는 짓을 합니다 . 교회를 생각하고 세우는 척하면서 결국에는 교회를 흩트리는 일을 합니다 . 그리고 명분을 내세우며 정의를 외치며 분노하게 하며 화를 내게 합니다 . 이와 같은 것들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에는 없는 것들입니다 .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내재되어 있으면 유혹과 호리는 말을 걸러낼 수 있게 됩니다 .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하여야 합니다 . 교회는 어떠한 명문이나 정의로 판단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 그리고 마귀는 천사처럼 나의 억울함이나 분함을 위로하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 잠 6:23)   잠언 6 장에서는 신자들이 삶에서 적용할 수 있는 교훈을 주고 있다 . 첫 번째로는 이웃의 빚보증을 서지 말라는 것이다 . 만일 빚보증을 섰으면 새가 그물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듯이 스스로 구원하라고 한다 .   빚보증을 서게 되면 우리에게 있는 자유를 구속받게 된다는 것이다 . 반면에 빚을 얻은 자는 법적인 책임이 없이 자유를 누린다 .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음식 한 그릇에 또는 명품 가방 하나로 바꾸지 말라는 교훈이다 .   게으른 자는 새로운 세계에 대하여 낮이 설은 자이다 . 낮이 설다고 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다 . 배움이란 낮이 설은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   말이 굽었다는 것은 자기를 자랑하는 자를 말한다 . 참 신자는 이웃을 위하여 덕을 세우는 자이다 . 그리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자이다 .   “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 잠 6:23) 하셨다 . 하나님의 명령은 길을 밝히는 등불이 되고 ,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 빛과 어두움이 분리되고 , 거듭되는 책망은 생명의 길을 가게 하기 위함이다 .   신자들이 가는 길은 생명의 길인데 , 마귀가 매력적으로 다가와 유혹을 한다 . 그리고 마귀가 쓰는 방법이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 마음의 욕정에 불을 붙여서 다 태워버리는 결과를 나타낸다 . 그래서 결국에는 모든 것을 잃고 사회적으로는 매장이 된다는 것이다 .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 마귀는 늘 우리 주변을 맴돕니다 . 그리고 우리들의 약함을 노리고 있습니다 . 어떻게 해서든지 사망의 길로 끌고 가려 합니다 . 그 길로 가게 되면 스스로 망합니다 . 그 길을 가지 않으려면 생명의 길을 가셔야 합니다 . 생명의 길이 무엇인가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 벧전 3:1)   성경은 신자들에게 순종에 관한 말씀을 여러 모양으로 설명을 하고 있다 . ‘ 아내들아 ’ 하며 순종을 하라 한다 . 꼭 아내들만 순종을 하여야 할까요 ? 그 당시 역사의 배경은 아내는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인 활동을 할 수 없어서 남편을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시대였다 .   아내라는 배역은 자발적인 순종을 나타내는 캐릭터라는 것이다 . 즉 , 순종을 설명하는데 아내의 역할 만큼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복 받은 사람들이 신구약 말씀 곳곳에 등장을 한다 . 사렙다 과부가 있다 . 그는 마지막 남은 음식을 이웃에게 베풀었다 . 자기 집을 찾아온 엘리야에게 선뜻 내어준다 .   그리하였더니 가뭄 중에 있었지만 “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 왕상 17:14) 지나가는 나그네를 맞이하고 음식을 대접하였더니 큰 복을 받게 된 것이다 .   순종을 하여야 복을 받게 된다 .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였다 .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를 사랑하신다 .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보호하시고 지키신다 .   믿지 않는 남편을 구원시키는데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거룩한 행실을 통하여 변화시켜야 한다 . 즉 , 이웃을 구원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착한 행실로 믿음을 증거하라는 것이다 .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하셨습니다 . 내가 알고 있다고 해서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행하는 자리로 나가야 복을 받습니다 .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 아시는 만큼 계명을 지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 요 17:17)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를 하신다 . 왜냐하면 사랑하는 제자들을 핍박과 유혹이 강한 세상에 남겨두고 가야하기 때문이다 .   기도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 시험에 들지 말게 하고 악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함 ” 이다 . 그런데 거룩하신 아버지의 이름에게 부탁을 하신다 .   왜 거룩하신 아버지의 이름에 부탁을 할까요 ? “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 요 17:17) 거룩하신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은 거룩하고 진리의 말씀이 된다 .   사도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떠나면서 그 교회 장로들과 영별을 하게 되었다 . 그 교회를 장로들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에 부탁을 하고 있다 . “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 행 20:32)   진리의 말씀을 따라야 세상의 핍박과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 . 성경 말씀을 따라 살게 되면 약속의 말씀을 따라 살게 되는 것이다 .   만일 교회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가 없으면 교회가 아니다 . 그것은 기도처에 불과한 것이다 . 즉 , 말씀이 없는 교회는 교회로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된다 . 그 만큼 말씀은 중요한 것이 된다 .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 그 말씀을 따라야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악한 마귀의 시험에 들지 않고 악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가운데도 ‘ 우리를 시험에 들데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 가 있습니다 . 마귀는 우리를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기 위하여

보라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준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내가 구하는 것은 너희의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부모가 어린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

“ 보라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준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내가 구하는 것은 너희의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부모가 어린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 ”( 고후 12:14)   우리가 살다가보면 뜻하지 않게 오해를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 그것도 교회의 일을 하다가 당하면 참으로 어이가 없을 때가 있다 .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면서 헌금을 착복하는 사람으로 오해를 받았었다 . 모든 정황을 입증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오해를 받았다 .   바울이 이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알게 되면 신앙생활에 많이 도움이 된다 . 물론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자이었다 . 좀 더 구체적이고 이해가 되는 말씀으로 소개를 하고 있다 .   미성숙한 고린도교회를 어린아이로 대하고 있는 아버지의 심정이다 .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의 영적인 아버지이다 . 그래서 영적인 문제에서는 아비의 마음으로 그들을 이해하고 있다 .   그리고 그들이 더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내가 아무리 옳다고 하더라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 그들이 깨달을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인내를 보여주고 있다 .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버지가 되십니다 . 그래서 모든 것을 아비의 심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 우리가 부족하고 투정을 부릴 때도 받아주시고 응답하여 주십니다 . 우리도 이와 같이 할 수 있습니다 .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아버지를 닮아 갈 수 있습니다 . 아비의 심정으로 이웃을 바라본다면 사랑과 관용을 베풀 수 있습니다 . 하늘 아버지가 우리를 사랑과 관용으로 대하여 주시듯 , 우리들도 이웃을 사랑과 관용으로 대하여야 합니다 .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 제자들 또한 그 길을 가면서 세상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 막 8:31)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십자가가 보인다 . 그 길은 하늘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원하시는 길이다 .   십자가의 길은 순종과 인내이다 .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과 인내를 하면 약속된 영광이 임하게 된다 .   십자가의 길에는 아버지의 뜻하심이 담겨 있다 . 그 길을 통과한 자들에게 영광의 은혜를 주신다 . 이 땅위에서 뛰어난 이름이다 .   후대 사람들에게도 본이 되고 , 천국에 있는 자들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자랑하시는 이름이 된다 .   십자가의 길은 아버지가 원하시는 길이다 . 그런데 그 길을 밝히 보면 수난과 고난과 죽음의 길이다 .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의 길을 따라 가야 한다 . 그리고 자기의 모든 것이 죽어야 하는 자리이다 . 그래야 하늘 아버지의 뜻하심의 영광이 나타난다 .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 지금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셨던 십자가의 길이 밝히 보이시나요 ? 그 길은 나의 소원을 이루는 길이 아니요 ,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길입니다 . 왜 그 길을 가라하실까요 ? 하나님의 아들답게 만드시기 위함입니다 . 거룩하신 하나님이 아들들을 거룩하게 만들기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의 길을 가라하십니다 . 자기의 고집을 다 내려놓고 버려야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 그래야 하늘 아버지를 아는 자가 되고 , 뜻을 이루는 자가 됩니다 . 내가 지어야 할 짐은 타인을 위한 짐이 아닙니다 . 내 안에 있는 나를 자랑하는 짐 , 불순종의 짐 , 나의 고집의 짐을 말합니다 . 무슨 말인가 하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 두 손 들고 항복하라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내 고집으로는 되지 않고 아버지의 뜻대로 할 때는 형통이 옴을 깨닫는 것이 십자가의 길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리라

“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리라 ”( 딤후 4:11)   마가는 바울의 1 차 전도여행에 함께 하였었다 . 그러나 고난의 역경을 견디기에 너무 힘이 들어서 중간에 포기하고 말았다 .   이 문제가 바울의 2 차 전도여행에서 문제가 되었다 . 마가를 동행시키자는 바나바와 언쟁을 하였고 결국에는 전도여행을 각각 떠나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다 .   시간이 지나고 지난 후에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면서 마가를 데리고 오라 한다 . 그를 데리고 오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하였다 .   마가를 데리고 오는 것이 왜 바울에게 유익한가 ? 바울은 왜 이렇게 말을 하였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   하나님의 은혜 방식은 은혜를 베푸는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 긍휼을 베푸는 자에게 긍휼을 베푸신다고 약속을 하셨다 . 그래서 바울이 마가를 용서를 하여야 바울도 하나님께 용서를 받게 된다 .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 하나님은 이웃의 죄를 용서하여 준 자에게 용서를 해 주십니다 . 이것을 아는 자만이 용서를 할 수 있습니다 . 믿음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이렇게 약속을 하셨는데 만일 약속한 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 하나님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시고 , 바울이 마가를 용서하는 장면을 통해서 우리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 열린문장로교회에 속한 믿음의 교우들도 믿음의 본을 따라서 용서하는 자리로 나가야 합니다 . 그래야 약속의 복을 받게 됩니다 .    

정의를 지키는 자들과 항상 공의를 행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 정의를 지키는 자들과 항상 공의를 행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 시 106:3)   깨끗하고 청결한 집과 더럽고 불결한 집의 차이는 무엇일까 ?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 본래 있어야할 자리에 있어야 한다 .   어느 집에서나 쓰레기가 나온다 . 그런데 이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모아 버리면 청결한 집이 된다 . 또한 불결한 것들 역시 즉시 분리하여야 한다 .   흘러가야 할 하수물이 정체 되어 있다면 썩은 내가나고 , 온 집안을 더럽게 하여 각종의 해충들이 모이게 된다 .   사람들이 모인 곳에도 질서가 없게 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된다 . 사람들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타인을 생각하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 .   하늘의 질서를 내가 깨달아 내가 있는 곳에서 질서를 세워야한다 . 이것이 신자들이 하여야할 책임이다 . 이웃 사랑이다 . 이웃에 대한 배려이다 .   하나님의 사람들의 공동체에서 행하여할 덕목은 이웃을 위한 사랑이다 . 만일 이것이 없게 되면 시기와 분열이 생기게 된다 . 하늘나라의 질서는 이웃을 위한 배려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 신자들이 모인 곳에 시기와 당파를 짓는 것이 있으면 안 됩니다 . 만일 이러한 것들이 들어오게 되면 즉시 버려야 합니다 .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의 질서는 하나님의 뜻에서 나오는 것인데 그것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뜻을 깨달아서 시행하여야 합니다 . 이것이 “ 정의를 지키는 자들과 항상 공의를 행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 시 106:3) 가 되는 것입니다 . 집안에서나 공동체 안에 불결한 것이 있게 되면 안식과 쉼을 얻지 못합니다 . 쾌적한 환경과 쉼이 있는 공동체에는 안식과 평화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