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18의 게시물 표시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 옛 계명 ’ 과 ‘ 새 계명 ’ 의 차이는 무엇일까 ? 내용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다 . 그러나 수납방식은 다르다 .   ‘ 옛 계명 ‘ 은 돌판에 주셨고 ’ 새 계명 ‘ 은 마음에 주신 것이다 . 그 이유는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기 위함이다 .   구약과 신약의 약속의 내용은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 택함을 받은 백성들이 그의 나라의 계명을 잘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못함으로 인하여 ,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이방나라들 앞에서 더럽힌 것이다 . 그 더럽게 된 이름을 다시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또 다른 협력자 성령님을 보내 주신 것이다 .   그러므로 성령님이 함께 하는 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계명을 지키는 자만이 구원을 받은 자라는 것이 성경의 증언이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 선지자 노릇하고 , 귀신을 쫓아내고 , 많은 이적을 행하였다 하더라도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은 자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다 .   아버지의 뜻은 그의 계명을 죽기까지 순종하며 지키는 것이다 . 그의 계명을 지키게 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보내 주셨음을 믿어야 한다 .   “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 요일 2:5)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믿음생활이란 ? 하나님에게 붙잡혀서 운명이 변하고 삶이 바꾸어지는 것을 말한다 .   이것을 성경에서는 주인과 종의 관계로 말씀하고 있다 . 그래서 종의 신분은 누구의 사람으로 변하게 되고 , 주인의 음성과 손짓을 듣고 보며 살아야 한다 . 그러므로 믿음은 먼저 종속의 관계가 성립이 된다 .   종에게 금하여야 할 것은 자기의 꿈을 갖는 것이다 . 종은 죽는 날까지 주인에게 종속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 종은 주인의 증인으로 산다 . 즉 , 주인의 인격을 대변하는 사람을 산다는 것이다 .   결국에는 한 종이 고급한 인격을 갖춘 주인을 만나서 고급한 인격으로 바뀌었음을 증언하는 증인으로 살아간다 .   그러나 오늘의 교회에서는 반대 현상이 일고 있다 . 종이 주인에게 자기의 꿈과 요구 사항을 관철될 때까지 아우성을 치고 있다 . 종이 주인의 명령을 들으려 하지 않고 있다 .   성경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기의 꿈을 이루려다 결국에는 두 손 들고 항복을 한다 . 자기의 생각이 하나님의 뜻을 넘어설 수 없다는 고백으로 되어 있다 .   그들의 고백은 이렇다 . 하나님이 붙잡고 가시는데 이 종이 알 수 있도록 깨닫게 해 달라는 것이다 . 지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계신다 .   내 믿음이 올바른 믿음인가 ? 그것에 대한 답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하신 언약을 붙잡고 있는가를 확인하면 된다 . 즉 , 하나님의 것을 붙잡는 것이 믿음이다 . 내 생각을 들고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   또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가 ? 성령을 통하여 말씀하신다 . 성령은 성경의 말씀으로 역사하신다 . 그러므로 성경의 말씀을 묵상하여야 한다 .   죄인 하나를 택하셔서 의인을 만들기 위하여 오늘도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일하시고 계심을 명심하여야 한다 .   “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 떼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이 망한 것은 율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 그리고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야 하는 민족의 지도자들의 책임이 크다 .   그 당시 민족의 목자들은 양을 먹이고 돌보아야 하는데 오히려 양의 기름을 먹고 , 양의 털을 위하였다 . 자기의 배를 위하여 목자직분을 누린 것이었다 .   지금의 상황도 비슷한 것 같다 . 목사는 하나님의 약속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야 한다 . 약속의 말씀을 지켜 행하여야 복을 받을 수 있는 자리로 나가게 된다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 약속을 성취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율법과 명령을 지키기 위함이다 . 그 말씀을 지켜 행할 수 있도록 언약의 수납 방식을 바꾸셨다 . 우리의 마음에 성령을 주신 것이다 .   율법의 말씀은 가르치지 않고 인생의 성공과 번영의 축복만을 전하면서 자기 주머니를 두둑이 채우고 있다 . 부흥회를 다니는 목사 가운데는 수년 동안 같은 제목과 같은 내용으로 수년째 설교하는 목사도 있다 .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백성은 망하는 것이다 . 말씀을 따르지 않았던 백성들의 이야기가 구약 성경에 가득차 있고 ,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여 말씀을 따르게 하기 위한 신약 성경의 말씀으로 되어 있다 .   목사들은 선한 양심으로 하나님과 교인들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 성경적인 설교와 성경공부를 하여야 한다 .   “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 떼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 겔 34:3)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하지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말하되 익숙하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전쟁에 나가는 다윗에게 사울은 자신이 입던 옷을 벗어 주었다 . 그러나 다윗은 그 옷을 벗고 입고 있던 옷으로 나아가 골리앗을 물맷돌로 물리쳤다 .   다른 이의 성공 사례는 그 사람의 몫이다 . 간증하는 자의 은혜는 그 사람의 몫이었다 .   하나님의 은혜에는 객관적으로 이루어지는 죄에서의 생명으로 옮겨지는 은혜가 있고 , 이미 구원을 받은 자들에게는 주관적으로 은혜가 임한다 .   이러한 것을 구분하지 못하여 모든 사람에게 획일적인 은혜가 임하는 것처럼 간증을 하러 다니고 세미나를 개최한다 .   각 사람에게 맞는 옷이 있듯이 , 그 교회 그 목회 현장의 사정이 각각 다르다 . 자기의 성공 사례를 침 튀기며 강조하는 강사가 있다 .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   성공사례와 프로그램을 따르지 말고 성경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 . 삼위일체의 하나님 구원의 역사가 지금도 각 교회마다 , 각 사람에게 임하고 있다 .   하나님의 은혜는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어지듯 하는 것이 아니다 . 그 교회의 형편에 맞게 주시며 사람을 통하여 피조물을 통하여 영광을 나타내신다 .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며 , 그의 교훈을 따르면 된다 . 그리고 내게 맡겨 주신 양떼를 가르치고 먹이고 상처를 치료하고 싸매주는 일을 하면 된다 .   “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하지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말하되 익숙하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 삼상 17:39)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 마지못해 ’ 는 마음에 내키지는 않지만 사정에 따라 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 ‘ 선뜻 ’ 은 가볍고 빠르게 시원스러운 결정한다는 뜻이 된다 .   오늘은 거룩함을 받은 자들만이 지키는 주일이다 . 사모하는 했던 그분을 만나러 가는 날이다 .   ‘ 선뜻 ’ 나가되 화려한 화장과 사치스러운 옷을 입고 갈 것이 아니라 , 의와 거룩의 옷을 입고 마음을 청결하게 정리하고 가야 한다 .   예배당에 들어가기 전에 마음을 거울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기 전에 거울을 보고 옷매무새를 고치듯이 말이다 .   특히 마음속에 있는 타인을 향한 분노의 칼을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 . 피묻은 손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담을 수가 없다 .   내가 사모하는 그분은 이러한 옷을 입고 오는 자를 좋아하신다 . “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 ” 의 옷을 입고 “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는 ” 마음을 가진 자를 사랑하신다 .   이제 하나님께 예배드리려 가려 한다 . 샤워를 하고 내가 사랑하는 그분이 좋아하는 옷을 차례로 입고 , 깊은 숨을 쉬며 용서하는 마음만 남겨 두려 한다 .   내가 사모하는 그분이 나를 기다리고 계심을 생각하니 마음이 기쁘고 설레인다 . 이제 서둘러야겠다 .   “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 골 3:12)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앞으로는 ’ 교회 재활성화 ‘ 라는 세미나가 유행할 것 같다 . 일부의 목회자들은 교회가 정체기에 또는 쇠퇴기에 들었다고 한숨을 쉬면서 걱정을 하고 있다 .   그렇게 된 것에 대하여 목회자들의 책임이 크다 . 복음의 능력을 개인의 소원을 이루어준다고 전하였기 때문이다 . 그러나 그들이 원하는 만큼 물질의 부요와 성공과 명예를 얻지 못하였다 .   그래서 실망과 함께 교회를 떠났거나 이전의 신자들의 열정적인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   이제는 성경적인 교회 , 성경적인 설교를 하여야 한다 .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인 옛 약속 그리고 새 약속이 어떠한 내용으로 되어 있는지 살피어야 한다 .   그런데 오랫동안 기복 신앙에 젖어 있던 사람들은 성경의 말씀을 보거나 체계적인 공부를 불편해 한다 . 이것이 큰 문제로 작용이 된다 .   그래도 목사는 다시 성경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 성령께서 전하시려는 말씀으로 설교를 하여야 한다 . 더 이상 성령과 교인들을 속이면 안 된다 .   목회자들은 깊이 생각하여야 한다 . 이제 주님 앞에 서는 날에 그동안 설교하였던 내용과 성경공부로 전했던 내용으로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   또한 교인들도 깨어나야 한다 . 삯군 목사에게 붙잡혀 있으면 영혼이 피폐해진다 .   교회 재활성화는 성령께서 역사하셔야 된다 . 성령께서 역사하시기 위해서는 성령의 감동으로된 성경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 된다 .   “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 약 3:1)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율법을 거절하였음이니라

우리들의 아버지 세대가 그랬고 , 우리들도 그랬고 , 자식의 세대들도 ‘ 사춘기 ’ 를 겪는다 . 인생에 있어서 혼돈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   개인이나 사회나 혼돈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면 중요한 것이 가치관이다 . 어떠한 가치관을 갖고 있는가에 따라서 인생의 방향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   그래서 성경은 믿음의 조상들이 갔던 길을 가라고 한다 . 사람의 생각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 믿음의 선조들이 갔던 길은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이 있다 .   사람의 생각이 틀리다는 것이다 . 아담과 하와의 눈으로 선악과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나무가 된다 . 그러나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다 .   열두 정탐꾼 가운데 열 명은 사람의 생각으로 나머지 두 명은 하나님의 뜻으로 판단을 하였다 . 그 결과는 너무나 분명한 것이었다 .   세상 사람들은 자연과 과학으로 확인된 것만 믿으며 살지만 , 신자들은 진리를 몸에 담으시고 성육신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산다 .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초월적인 윤리 도덕의 회복이다 . 하나님의 공의의 말씀을 따라 저울과 추를 속이지 않고 정직하고 진실된 세상을 세워가는데 쓰임을 받는 일꾼이 되어야 한다 .   “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율법을 거절하였음이니라 ”( 렘 6:19)    

가는 베 관을 머리에 쓰며 가는 베 바지를 입고 땀이 나게 하는 것으로 허리를 동이지 말 것이며

’ 감성팔이 ‘ 란 말이 있다 . 본질을 외면하고 감성으로 호소하는 것을 말한다 .   강단의 설교가 감정에 호소를 한다면 문제가 있다 . 한 때는 감동적인 예배 , 감동적인 설교를 해야 한다는 운동이 있었다 . 그러나 성경에서는 근본적인 믿음의 자세를 지적하고 있다 .   제사장이 성전에서 땀을 흘리며 제사를 드렸다 . 그러나 그가 땀을 흘리며 정성을 다하여 제사를 드렸지만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였다 .   성경은 제사장의 믿음을 지적하고 있다 . 땀을 흘리며 제사를 드리고 있는 제사장이 술에 취하여 있고 ,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   감동적인 예배가 아니라 참 회개가 있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 . 감성팔이 하는 예배가 아니라 거룩의 근본을 알고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 .   이방의 종교들도 그들의 성전에 들어갈 때에 입을 헹구고 , 손발을 씻고 , 옷에 묻은 먼지를 터는 경건을 갖고 있다 .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가면서도 회개나 경건은 찾기가 힘들다 .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는 거룩의 근본을 알고 거룩으로 드리는 것이다 . 얄팍한 감성팔이로 드리는 예배를 경계하여야 한다 .   분위기와 음향으로 분위기를 조성하여 눈물을 내도록 하는 회개이다 . 거룩한 말씀을 깨닫고 자신의 부족함을 드리는 회개가 진정한 예배가 되는 것이다 .   “ 가는 베 관을 머리에 쓰며 가는 베 바지를 입고 땀이 나게 하는 것으로 허리를 동이지 말 것이며 ”( 겔 44:18)

내 처소가 그들 가운데에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신자의 믿음이 성장하려면 샤머니즘 ( 미신적 신앙 ) 을 제거하여야 한다 . 이것이 있는 한 믿음의 성장은 없다 .   샤머니즘 신앙은 마음의 욕구와 탐심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 즉 ,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하여 의지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   그래서 신을 내가 결정한다 . 더 나아가 내 마음의 탐심이 변할 때마다 신의 대상도 바뀌게 된다 . 이것을 우상숭배라 한다 .   마음에 탐심이 가득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다 . 그러나 그것은 성경적인 믿음이라 할 수가 없다 .   신자가 믿어야 하고 붙잡아야 할 약속이 있다 . “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 ” 는 믿음이다 . 즉 , 거룩하신 하나님이 거룩한 백성들로 세우시겠다는 것이다 .   하나님은 아브라함 , 모세 , 다윗을 통하여 일관되게 그 약속을 하셨다 . 그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성자 하나님이 이 땅에 성육신하신 것이다 .   그런데 오늘의 교회와 신자들은 약속과는 다른 것에 매달려 있다 . 물질의 축복 , 출세 , 명예를 위하여 하나님을 믿고 있다 .   이와 같은 기복신앙이 깊숙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바른 교훈을 전하기가 힘이 든다 . 성경적인 설교와 성경공부를 전하여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   기복신앙에 깊숙이 잠들어 있는 교회를 향하여 이단들의 공격이 만만치 않다 . 잠들어 있는 영혼들을 늑대가 물고 가고 있다 . 결국은 파멸의 길로 가는 것이다 .   하나님의 구원의 궁극적인 목적은 거룩이다 . 자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 새 언약을 성취하신 것이다 . 죄인들을 거룩하게 만드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으로 영광을 받으려 하신다 .   과거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깨끗이 씻어 주시고 백성을 삼아 주셨다 . 거룩한 백성들에게 말씀대로 살라고 성령을 보내 주셨다 . 성령을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셨다 . 그러나 그들은 언약의 내용을 지키지 않았다 . 그래서 언약의 내용은 같으나 방식이 다른 약속을 하셨다 . 그것은 새언약이다 .   새언약을 성취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이다 .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이유와 목적은 하나님과의 언약의 내용을 지키게 하려는 것이 된다 .   새언약을 맺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게 하기 위하여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셨다 . 그래서 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가 세례를 받으실 때에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셨다 .   그리하여 성령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마귀의 시험을 이기셨다 .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함은 결국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자가 되는 것이다 . 성령을 택한 백성에 마음에 두어 말씀을 기록하려 함이다 . 이것이 성경적인 믿음의 증거이다 .   그런데 신자들 가운데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목적이 각자마다 다르다 . 그 이유는 성경적인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소원을 이루기 위함이거나 거짓 교사의 가르침을 따르기 때문이다 .   성경적인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정경인 성경말씀에 기준하여야 한다 . 어떤 목사의 책이나 사상이 기준이 될 수 없다 .   “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 겔 36:37)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데 이유와 목적이 다르다 . 그 이유는 무엇일까 ? 자기의 소원을 이루기 위하여 믿기 때문이다 .   자기의 소원을 이루기 위한 종교를 샤머니즘 또는 우상숭배라 한다 .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왜 오셨는가 ? 새언약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오셨다 . 왜 새언약이 필요하였는가 ?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지키지 못하여 망하였기 때문이다 .   그래서 하나님은 율례와 법도를 지키게 하기 위하여 새언약을 맺으신 것이다 . 새언약을 성취하는 방식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성령을 통하여 역사하심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은 자에게는 부드러운 마음이 되어 하나님 말씀의 씨앗에 심기게 된다 . 즉 ,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새기어진다는 것이다 .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그의 백성으로서 계약의 관계를 맺은 자가 된다 . 그의 나라의 백성이 되면 왕께서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서 은혜 가운데 살게 하기 위함이다 .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지키지 못함으로 인하여 이웃 나라에게 포로로 잡혀간 것이다 .   이스라엘의 회복과 이방인의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언약을 이루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케 하기 위함이다 .   물질주의에 팽배한 현대 사람들에게는 자기의 소원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 내 소원이 아닌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 것이 기독교이다 .   이것을 깨닫고 이해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 한국교회나 이민교회는 이 문제에서 쉽게 벗어날 수가 없다 .   입술로는 고백을 한다 . ‘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 그러나 마음에는 말씀이 심겨지지 않은 고백이다 . 그 이유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 ’ 는 맥아더 장군의 유명한 명언이 있다 .   목사는 진리와 비진리 사이를 경계하는 파수꾼이다 . 이 경계가 무너지면 진리와 비진리가 혼잡하게 섞이게 된다 . 그러면 진리의 고유한 가치를 잃게 된다 .   경계를 서는 자가 낮선 사람을 보면 묻는 것이 있다 . 경계암호이다 . 불의가 거룩의 안으로 들어오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과 회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 그래야 통과할 수 있다 .   세상과 교회의 경계선은 십자가의 보혈과 회개이다 . 그런데 이 경계선이 무너졌다 . 그래서 교회는 혼잡한 것으로 가득차 있다 .   세상에서 얻지 못하는 직분을 돈을 주고 사는 곳이 되었다 . 세상에서도 통하지 않는 상식이 판치는 곳이 되었다 .   이 모든 것의 책임은 목사에게 있다 . 진리의 경계임무를 소홀히 하였기 때문이다 .   “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 벧전 4: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2018 년 새해가 밝았다 . 어떻게 살 것인가 ?   성경 속에 있는 인물들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을 알면 그것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 다윗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의지하였던 자이었다 .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하늘보다 높고 , 긍휼하심은 궁창보다 깊음을 알고 간구한다 . 그분은 당연히 그것을 나에게 주셔야 한다는 것이다 .   또한 이스라엘 주변의 땅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 그래서 그 약속의 말씀을 하신 하나님과 함께 전쟁에 나가면 이긴다는 믿음이 있었다 .   다윗은 믿음에 베짱이 있었다 . 하나님은 약속하신대로 성취하셔야 영광을 받으실 수 있다는 것이다 . 그러므로 다윗에게 영광을 나타내셔야 다윗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실 수 있음을 말한다 .   우리에게는 ‘ 임마누엘 하나님 ’ 이 계시다 . 하나님이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신다고 하셨다 .   하나님이 신자들에게 아버지가 되셔서 자녀들의 양육을 책임지신다 . 자녀는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 . 아버지의 뜻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을 이 땅에 이루게 하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이다 . 그러므로 그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야 한다 .   신자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 그는 토기장이시고 신자들은 진흙이 된다 . 그래서 그분의 주권에 순종하여야 한다 .   사람의 몸은 무엇인가를 채워야 살 수 있는 존재이다 . 그러므로 영육의 양식을 구하여야 한다 .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항상 조심하여야 한다 . 지적인 교만과 육체의 정욕 그리고 탐심이라는 우상숭배의 자리로 갈 수 있음을 기억하여 늘 절제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   악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말씀과 기도에 힘써야 한다 . 오직 피할 길은 하나님의 말씀 밖에는 없음을 기억하여야 한다 .   주님의 영광을 본 자는 그의 성품으로 변화된다 .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서 이웃을 사랑하는 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