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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여 하심이라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여 하심이라”(눅 4:18-19) 본문의 말씀은 이사야 61장 1-3절의 말씀인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실 때에 인용을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귀에게 잡혀 눌려 있는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하여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것이다. 마귀가 하는 일은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한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이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 2:2). 즉 마귀에게 지배당하고 있는 자들은 하나님께 불순종을 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마귀를 멸하시고 그 밑에서 지배당하고 있는 자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변하게 한다. 그렇게 되면 이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가 된다. 하나님께 순종한다고 함은 성경의 말씀을 따르며 사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길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보여 주셨다.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가 가셨던 길을 가야 한다. 그 길을 따라 가야 하나님 아버지의 집인 천국으로 간다. 그런데 자신의 생각으로 천국을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순종하는 방식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으로 오셔서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으로서 하나님 아버지에게 순종하신 것이 순종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순종하신 대로 따르지 않으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얻으면 불순종에서 자유를 얻어 순종의 자리로 오게 됩니다. 아직도 마귀에게 지배당하고 있다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도 마귀의 불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찬송하게 하소서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찬송하게 하소서”(시 21:13) 다윗은 전쟁에서 승리를 한 후에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하고 있다. 이웃 나라 암몬의 군대는 다윗의 생명을 빼앗으려 한다. 다윗의 생명이 하나님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받았다. 본문의 말씀이 전하고자 하는 것은 다윗이 이스라엘 백성의 대표가 됨으로 백성들도 동일한 은혜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이 하나님께 복을 받게 되면 그 백성들도 복을 받는다. 그런데 찬양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나라가 있음을 말한다. “그가 생명을 구하매 주께서 그에게 주셨으니 곧 영원한 장수로소이다”(시 21:4)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 은혜는 죄인들의 대속의 은혜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더 큰 은혜가 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한 왕이 되셔서 택함을 받은 백성들의 생명을 지켜 주신다. 그분이 이 땅에 오셨는데 이와 같은 은혜가 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러 하심이라”(요일 3:8) 마귀는 거짓말로 사람들을 유혹하여 사망으로 끌고 가는 자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일을 멸하러 오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에게 승리를 주셨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 5:18) 다윗이 전쟁에서 승리함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승리를 누렸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로 말미암아 그의 백성들도 함께 승리를 누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여러분! 이미 우리는 사망의 자리에서 생명의 영광을 얻은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더 이상 죄에게 종노릇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는 하나님 앞에 산 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이르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이르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계 19:1) 요한 계시록은 구원의 완성과 짐승들의 심판을 보여 줌으로 오늘의 삶을 고치는데 있다. 구원과 능력이 바벨론에게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계시록 19장에서는 구원의 완성과 의의 심판을 증거한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로 흰 세마포 옷을 입은 성도들이 승리한다. 즉 교회가 승리한다는 것이다. 이 일은 하나님의 지혜로 이루어졌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너희 가운데 지혜있는 자가 있느냐’ 하며 물었다. 즉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다 이루어짐을 말한다. 그러니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여 포기하지 말고 인내하며 참으라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통치하므로 승리할 수밖에 없음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서 천국에 임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하여 사단과 짐승이 멸망을 당한다. 즉 적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에 대한 심판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판을 하신다.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계 19:15) 그 때에는 짐승이나 거짓 그리스도가 힘을 쓰지 죽음을 당한다.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계 19:21) 계 19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을 심판하셔서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 주신 것이다. 그리고 계 20장에서는 저들에게 영원한 심판이 임하여서 불못 속으로 들어간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계 20:15)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성경 말씀에는 과거와 미래를 보여 주십니다. 왜 그렇게 할까요? 과거의 역사를 통하여 죄인들이 어떻게 불순종하고 심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신 5:3) 사람이 지켜야 할 법이 있다. 자연법과 도덕법이다. 이것은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주신 법이다. 자연법은 물고기는 물 안에서 살아야 한다. 만일 물 밖으로 나오면 생명을 잃게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 이다. 도덕법을 지키지 않으면 심판대에서 사망의 판결을 받는다. 창조주가 모든 피조물에게 주신 자연법과 도덕법이 십계명이다. 물고기도 하나님이 정하신 법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명령만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할 경우에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요즘 거짓말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만일 회개하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있음을 기억하여야 한다. 죄가 관영하는 세상에서는 하나님을 모른다. 그래서 십계명이 있는 줄도 모른다. 하나님의 명령과 질서를 다시 세우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십계명을 지키는 자리로 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언약적 의무이다. 그래야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나는 그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십계명은 하나님 앞과 사람들 앞에서 신자들이 지켜야할 법이다.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 공의로운 사회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십계명을 지키므로 상식적인 도덕과 윤리가 세워지고 평화로운 사회가 된다.   사랑하는 엘파소멸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택함을 받은 사람들은 그분의 명령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만일 명령을 따라 살지 않는 것은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사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이웃을 미워하지 말고, 거짓말하지 마시고, 이웃의 것을 빼앗지 말고, 마음에 탐심을 품으시면 안 됩니다. 오늘은 십계명을 기억하시면서 종이에 써 보시기를 권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것입니다. 그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감사’의 뜻은 고마움을 나타내는 것이다. 누구로부터 받았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를 전한다. 그래서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있고, 부모님, 형제 그리고 친지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한다. 감사의 조건이 많으면 그 만큼 은혜를 받은 것이 된다. 그런데 우리들이 감사한 것들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을 하면 감사할 조건이 없다. 내 손으로 하지 아니한 것들을 누리고 있다면 그것은 감사한 일이다. 만일 자동차를 내가 만들어서 타고 다녀야 한다면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깊은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돈으로 자동차를 사는 것이라고 당연히 여긴다. 그런데 돈으로도 자동차를 살 수 없는 상황이 닥치게 될 때에야 그 가치를 알게 된다. 사람들이 바쁘게 살다가 보면 그러한 감사한 것들을 잊고 살기에 감사를 기억하라고 감사절기를 주신 것이다. 달리 말하면 나 중심적인 삶을 살다가 이웃을 살펴보아야함을 말한다.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와 감사가 넘치는 추수감사절이 되길 소망합니다. 감사절을 맞이하여 감사의 조건 다섯 가지를 종이에 적어 보시길 권합니다. 2020년 한 해 동안 무엇이 제일 감사하였는가요? 이제 확인하셨다면 감사의 고마움을 전하셔야 합니다.

자기 가운데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자기 가운데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니라”(삿 10:16)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 죽은 후에 사사로 돌라와 야일이 있었다. 그들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의 상황은 온갖 종류의 잡신을 다 섬기었다. 이스라엘 자손의 범죄한 내용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리고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삿 10:6), 하나님께서는 요단 동편 길르앗 땅에 있는 땅을 암몬 자손의 손에 열여덟 해 동안 파셨다. 그뿐만 아니라 암몬은 요단 서편에 까지 올라와서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족속과 싸우므로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다. 그래서 여호와께 구원을 청하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섬기고 있는 신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왜 나에게 왔느냐고 꾸짖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범죄함을 알고 회개를 한다. 죄값은 받겠으니 다만 적군들의 손에서는 구원하여 달라는 간청이다. 그러면서 백성들이 섬기던 이방 신들을 치워버리고 여호와 하남을 섬기자 하나님의 마음이 변하신다. 이제 이스라엘 자손들이 암몬 사람들을 무찌르면 되는데 전쟁에 나갈 지도자가 없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 앞에 설만한 자가 없음을 말한다. 그래서 등장하는 인물이 ‘입다‘이다. 그는 기생의 아들이며 동네 건달들과 함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가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다함은 그 만큼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우상숭배의 죄가 심각하였음을 알 수 있다.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강하신 하나님은 회개 하는 사람에게는 약함을 드러내십니다.   우상숭배에 푹 빠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회개를 하자 마음을 바꾸시고 구원의 손길을 허락하십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용서를 구하면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셔야 합

아비멜렉이 그의 형제 칠십 명을 죽여 자기 아버지에게 행한 악행을 하나님이 이같이 갚으셨고 또 세겜 사람들의 모든 악행을 하나님이 그들의 머리에 갚으셨으니 여룹바알의 아들 요담의 저주가 그들에게 응하니라

  “아비멜렉이 그의 형제 칠십 명을 죽여 자기 아버지에게 행한 악행을 하나님이 이같이 갚으셨고 또 세겜 사람들의 모든 악행을 하나님이 그들의 머리에 갚으셨으니 여룹바알의 아들 요담의 저주가 그들에게 응하니라”(삿 9:56-57) 본문의 내용은 기드온이 죽은 후에 일이다. 기드온의 순종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에는 평온이 왔고, 그 백성들은 기드온의 집안을 후대하였다. 기드온에게는 여러 명의 아내가 있다. 그들 사이에서 난 아들이 칠십 명이었다. 그중에 아비멜렉은 첩의 아들이었다. 아비멜렉이 세겜 사람들에게 제안을 한다. 너희가 칠십 명의 왕과 한 명의 왕을 섬기는 것 중에 어느 것이 좋으냐고 묻는다. 당연히 한 명의 왕을 섬기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 이유는 세금을 덜 내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드온의 아들 칠십 명을 죽여야 한다. 그 일을 시행하기 위하여 바알 신전에서 은 칠십 개를 내어 건들거리는 사람들 사서 청부살인을 한다. 즉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이 악행을 하는데 함께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시어 서로 배반하여 싸움을 하며, 그들을 심판하신다. 그렇다면 심판은 누구에게 임하는가?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모두에게 임한다.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이 싸움이 시작된다. 세겜 사람들은 세겜 망대로 올라간다. 그러자 아비멜렉은 세겜 망대에 불을 놓아 태워 죽인다. 이번에는 아비멜렉이 죽는 장면이다. 데베스 망대로 피신한 그 성읍 백성들을 죽이기 위하여 세겜에서 쓰던 방법으로 죽이려 한다. 그런데 망대 위로 피신한 “한 여인이 맷돌 위짝을 아비멜렉의 머리 위에 내려 던져 그의 두개골을 깨뜨리니”(삿 9:53) 본 장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악행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보복하심이 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갚으셨다고 한다. “아비멜렉이 그의 형제 칠십 명을 죽여 자기 아버지에게 행한 악행을 하나님이 이같이 갚으셨고”(삿 9:56)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악인이 악행을 하면 피해를 당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7)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사람의 것으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영광을 돌려받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다. 사람은 피조물이다. 그래서 격이 다르다. 창조주는 피조물의 것이 필요 없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출 3:14상) 영광을 받으시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으신다. 이것은 이미 창세전에 계획을 하셨다. 무슨 말인가 하면 아들은 아버지에게 죽기까지 순종하면, 아버지는 구원의 능력으로 살리시어 영생을 주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하늘과 땅의 권세를 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을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순종한 것처럼 하여야 된다. 그래야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는 것이 된다. 주님을 따르라, 주님을 본 받으라 하는 이유이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본을 따르지 않으면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아니다. 이 부분에서 많은 사람들이 실수를 하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섬기는데 자기 생각과 마음대로 한다. 그런데 이것은 우상숭배가 된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우상숭배를 할 수 있다. 자신의 탐심으로 믿으면 그렇게 된다. 세상 사람들이야 그렇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이러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구원의 계시를 따르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제자들에게 가르침 가운데 아버지께 순종하는 것과 아버지의 집에 가는 길을 보여 주셨다. 그래서 ‘주와 함께 길 가는’ 찬송을 부른다. 만일 ‘주님이 가신 길’을 따르지 않는 믿음이라면 그것은 이방종교가 되는 것이다. 성경적인 믿음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 그분의 가르침과 본을 따르면 된다. 이것을 실종한 교회가 있고 신자들이 있다.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는데 예수 그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의 오른손의 구원하는 힘으로 그의 거룩한 하늘에서 그에게 응답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의 오른손의 구원하는 힘으로 그의 거룩한 하늘에서 그에게 응답하시리로다”(시 20:6) 다윗은 전쟁을 앞두고 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 앞에 번제와 소제를 드린 후에 간절한 기도를 드린다. 기도의 내용은 당연히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났더니 전쟁에서 승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전쟁은 여호와의 손에 있기 때문이다. 즉 전쟁의 승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주변 나라들은 강대국이다. 전쟁은 생명을 걸고 싸운다. 그런데 그 생명의 구원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깨달음으로 인한 고백이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역사를 시작으로 사사 드보라와 기드온이 이웃 나라와 전쟁을 할 때에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 철병거 구백 대와 만 명의 싸움에서도, 삼백명의 용사와 십삼만 오천 명의 싸움에서도 이스라엘이 승리를 하였다. 다윗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에게 승리를 주심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전쟁에 나가기도 전에 이미 승리를 확신하는 찬양을 하고 있다.   본문 6절에서 ‘이제 내가 아노니’라고 고백을 한다. 다윗은 무엇을 안다고 하는 것일까? 여호와 하나님은 구원의 능력을 나타내심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승리를 하게 된다. 그리고 구원을 받은 백성들은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한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신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나타내시고 의롭게 된 의인들에게 영광을 받으신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의 목적이 있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사 43:7).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신다. 영광을 받으시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였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을 창조하신 것이다. 그래서 성삼위 하나님이 하시는 삼위일체적 구원은 하나님의 영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계 18:2) 계시록 18장에서는 바벨론이 무너지는 장면을 자세히 말씀하신다. 그 성이 무너지고 그 안에 있는 자들의 죽음을 묘사하는데 시체를 먹는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다 한다. 큰 성 바벨론 사람들의 죄는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던 교만함이고, 물질을 의지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에 어긋나는 것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 피조물은 자신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여야 하는데 자기 자신을 영화롭게 한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이다. 또한 피조물은 창조주의 은혜를 따라야 하는데 물질로 인한 사치를 즐기는 것이 죄가 된다. 그래서 그것에 대한 심판이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함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는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라”(계 18:8). 한 순간에 잠깐 동안에 사라진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쓰나미나 산불을 통하여 한 순간에 사라지고 잿더미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지막 심판 때에도 이와 같다는 것이다. 지금도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이라서 고통을 받고 있는 신자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신다.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더라”(계 18:20). 신자들을 핍박한 자들을 위하여 심판을 하신다는 것이다. 심판은 마치 힘 센 천사가 바벨론을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짐과 같다. 그래서 그 성에서는 더 이상 사치의 향락이 없고, 신랑과 신부가 결혼하는 일이 없다. 그리고 의로운 자의 피가 그 성중에서 드러난다.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의로우신 심판을 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자들은 이 땅 위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그가 이르되 그들은 내 형제들이며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니라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만일 그들을 살렸더라면 나도 너희를 죽이지 아니하였으니라 하고

  “그가 이르되 그들은 내 형제들이며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니라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만일 그들을 살렸더라면 나도 너희를 죽이지 아니하였으니라 하고”(삿 8:19) 사사기 8장에는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나아와 크게 다투었던 내용과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냉대하였던 것과 미디안의 두 왕이 죽는 장면과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는 것을 소개하고 있다. 에브라임 지파는 불만이 많고 깐족거리는 사람들이다. 여호수아가 땅을 분배할 때도 적게 주었다고 하여 항변한 일이 있고, 본문에서도 이스라엘의 여러 지파 중에서 주도권을 쥐지 못하게 하였다고 해서 기드온에게 불만을 퍼 부었다. 이후에도 입사 사사 때에도 똑 같이 다투었다. 기드온의 겸손으로 에브라임 지파와의 갈등을 풀었다.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 행한 일이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지 낫지 아니하냐”(삿 8:2). 기드온이 전쟁에서 공을 세운 것보다 에브라임이 요단 나루터에서 미디안 군대를 죽인 일이 더 크다고 한 것이다. 기드온은 미디안의 두왕인 세바와 살문나를 잡으러 추격을 한다. 전쟁 중에 지쳐있는 백성들을 위하여 숙곳 방백들과 브누엘 사람들에게 떡덩이를 구한다. 그러나 저들은 거절을 한다.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돌아오는 길에 기드온이 숙곳 방백들과 장로 칠십 칠 명과 브누엘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다. 그 이유는 기드온이 미디안과 치루는 전쟁은 여호와의 전쟁이다.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에 함께 협력하지 않으므로 인하여 반역의 죄가 되어 죽임을 당한 것이다. ‘고엘’은 ‘보복하다‘라는 의미가 있다. 본문의 내용은 미디안의 두 왕이 기드온의 형제들을 죽였다. 그래서 죽은 형제들의 억울함을 대신 갚아 준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에서도 적용이 된다. 죄값으로 죄인들이 죽어야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갚아 주는 것이다. 그리고 기드온은 백성들에게서 금을 모아서 제사장의 옷인 에봇을 만들었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삿 7:2) 기드온과 삼백 용사에 관한 말씀이다. 본문을 살필 때의 주의 할 점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이방민족을 압제하는 데만 목적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오직 구원의 능력이 하나님께만 있음을 알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오게 하는데 있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에 관계를 회복시키는데 있다. 그 백성들이 이방 민족과 전쟁을 할 때에 사람의 수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깨닫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 사사기 3장 1절에서 “여호와께서 가나안의 모든 전쟁들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즉 전쟁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깨닫게 하신다는 것이다. 또한 두렵고 떠는 자들을 통한 영광은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자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자 삼백 병을 전쟁에 나가게 한다. 의심이 받아서 이미 세 번이나 하나님을 시험한 기드온에게 적군으로 내려가 미디안 군인이 하는 말을 들으라 하신다. 적군의 병사 입에서 “그의 친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그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더라”(삿 7:14) 기드온의 작전 전술로 이긴 전쟁이 아니다. 그는 이미 전쟁에 이길 것을 확신하고 적진을 향하여 나간 것이다. 미디안 군대의 파수꾼이 교대하는 시간에 나팔을 불고 항아리를 깨고 횃불을 비추니 난리가 났다. 파수꾼들이 서로 싸우고 그 소리에 놀란 미디안 군대에 자중지란(같은 편 안에서 일어나는 싸움)이 일어난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으로 승리하였음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전쟁 무기가 나팔, 횃불, 항아리이다. 그리고 용사의 수는 삼백 명이고. 미디안 군대의 수는 십삼만 오천 명이다.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주셨나이다 하니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주셨나이다 하니”(삿 6:13)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외면하고 바알에게 나아가 우상숭배를 하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칠 년 동안 미디안에게 넘기셨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산에서 웅덩이와 굴과 산성을 쌓고 살아야 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를 한다.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었으므로”(삿 6:7) 여호와께서 그 백성들에게 한 선지자를 보낸다.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고 전한다. 기드온이 여호와의 사자에게 항변을 한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는데 어찌 이와 같은 일이 생길 수 있냐는 것이다. 큰 용사로 부름을 받은 기드온마저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지 못하여 시험하는 장면이 나온다. 기드온의 믿음의 상태로 볼 때 백성들의 믿음은 우상숭배에 깊숙이 빠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여호와께서 바알의 제단을 허물고 아세라 목상을 찍어 불태우라 명령하신다. 제물로는 칠 년된 수소를 번제물로 드리라 한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미디안에게 칠 년 동안 압제를 당하고 있는데 그것은 우상숭배로 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상의 제단을 헐어버리면 그 백성들에게 구원의 은혜가 임할 것을 말씀하신다. 그 후에야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이 그의 뒤를 따라 부름을 받으니라”(삿 6:34) 하시고 기드온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려 하심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기드온은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고 계심을 믿지 못함으로 인하여 양털로 두 번이나 하나님을 시험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떠나신 적이 없다. 반면에 그 백성은 하나님을 떠나 아모리 사람들의 신을 섬겼다. 다시 여호

깰지어다 깰지어다 드보라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너는 노래할지어다 일어날지어다 바락이여 아비노암의 아들이여 네가 사로잡은 자를 끌고 갈지어다

  “깰지어다 깰지어다 드보라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너는 노래할지어다 일어날지어다 바락이여 아비노암의 아들이여 네가 사로잡은 자를 끌고 갈지어다”(삿 5:12) 드보라의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찬양의 노래이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왕 야빈에게 이십 년 동안 심한 학대를 받았다. 이십 년 동안 학대를 받은 상황을 “아낫의 아들 삼갈의 날에 또는 야엘의 날에는 대로가 비었고 길의 행인들은 오솔길로 다녔도다”(삿 5:6). 블레셋 군대와 가나안 군대가 무서워서 큰 길로 다니지 못하고 뒷길로 다녔다는 것이다. 그러한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여 납달리 자손과 스물론 자손 만 명을 데리고 전쟁터로 향한다. 하나님이 역사하시사 하늘에서 구름에서 비를 내리게 하셔서 시스라가 지휘하는 철병거 구백 대가 진흙탕에 빠져 움직일 수 없게 되어 승리를 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승리를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리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한다. 가나안과의 전쟁에서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과 에브라임에서 나온 자들, 베냐민 중에서, 잇사갈 방백들이 드보라와 함께 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을 치루는 동안 전혀 무관심한 지파가 있었다. 르우벤과 갓 지파 사람들은 양을 치며 피리를 불고 있었고, 단 지파 사람들은 상업에 열심이었고, 아셀 지파 사람들은 해변가에 머무르고 있다. 그래서 드보라는 바락에게 포로로 잡은 자들을 끌고 가라 한다. 함께 협력하지 않은 지파 사람들에게 외치고 있다. 너희가 함께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셨다고 찬양을 하고 있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하여 교회는 여러 가지 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데 고통에 함께 하지 않고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와중에도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악을 쓰는 자들이 있고 조금이라도 피해를 입지 않으려고 무관심 가운데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이 어려운 사태도 무난히 견디고 넘어갈 것이다. 그때에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영광을 찬양하게 된다. 만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