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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 II

  꼼수란 ? 남을 속이기 위한 비열한 방법이다 . 원래 이 단어는 바둑에서 사용을 한다 . 정수와 꼼수가 있다 . 정수는 올바른 정석을 향한 것이라면 , 꼼수는 상대방의 실수를 유도하는 것이다 . 그래서 꼼수를 올바로 대처하지 못하면 커다란 위험에 빠지게 된다 .   악의 세력이 점점 득세를 하다가 보니 이제는 아주 대놓고 꼼수를 외치는 자들이 있다 . 꼼수의 대표자는 마귀이라 할 수 있다 . 그에게는 거짓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 그럴 것 같은데 자세히 살피면 거짓이란 말이다 .   거짓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고 부인하는 것이다 . 마귀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말고 자기 자신이 스스로 주인이 되어서 생각대로 살라고 한다 . 그러니 내가 잘 살기 위해서는 누구든지 다 속일 수 있다 . 그렇다보니 꼼수를 부리는 것이다 .   하나님의 생각은 이웃을 사랑하라고 한다 . 사랑을 하되 내 몸을 사랑하듯 하라 한다 . 그러니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당연히 거짓이 된다는 것이다 . 거짓이란 하나님의 생각과 반대되는 것을 말한다 . 그러므로 꼼수는 마귀가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다 .   나에게 유익이 되는 것 같은데 결국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 아담에게 다가온 마귀는 그의 서운한 부분을 이해하는 듯 했다 . 아주 귀하고 좋은 것은 하나님만 갖고 계시고 하찮은 것만 그에게 주는 것으로 속삭였다 . 그러나 선악과를 따먹지 않는 것이 복을 받는 길이었다 . 이것이 꼼수이다 . 그럴 것 같고 당연한 것 같은데 함정이 있다는 것이다 .   신자가 마귀의 꼼수를 물리치려면 올바른 길인 정수를 알아야 한다 .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 말씀을 깨닫데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   말씀을 믿음의 방패로 사용할 줄도 알아야 하고 , 내가 얻은 구원이 어떻게 임하였는지를 자랑할 줄도 알고 , 진리를 따라 흔들리지 말고 , 발길이 닿는 곳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초대교회에 구제하는 일로 인하여 분쟁이 있었다 . 그래서 사도는 말씀 전하는 일과 기도에 힘쓰기 위하여 집사 일곱을 택하게 된다 . 봉사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하여 집사를 세웠는데 이들이 큰 일을 벌이는 것을 볼 수 있다 .   스데반 집사는 공회에 붙들려가 대제사장 앞에서 외치고 있다 . 너희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 저들은 스데반의 외침에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았고 마침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쳐 죽인다 .   그뿐만 아니라 빌립집사도 있다 . 핍박을 피하여 사마리아로 가게 된다 . 그도 핍박 속에서 그리스도를 백성들에게 전파한다 .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므로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다 .   분명한 것은 봉사의 일을 하게 위하여 세웠던 집사들이었다 . 그런데 어떻게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가 ? 성경말씀에 관심이 있었던 신자들이었다면 궁금함을 갖았을 것이다 .   오늘날 교회 안에도 이러한 신자들이 있다 . 자기는 할 줄 아는 것이라곤 봉사의 일 밖에 모른다고 손사래를 치며 겸손한 자들이 있다 . 그런데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라 하면서 이런 믿음의 고백을 한다면 내 안에 감추어진 보배의 능력을 부인하는 것이 된다 .   내 안에 그리스도가 있다면 심히 큰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 달리 말하면 그 능력은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다 . 내 안에는 예수의 생명이 있다 . 이것은 주님이 부활하심으로 인한 새생명이다 . 즉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   그러므로 신자 안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으므로 인하여 “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 고후 4:8-10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한국이나 미국에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군사들이 있다 . 그들은 강인한 체력을 가지고 있음은 물론이고 그보다 더 한 것은 강한 정신력이다 . 그 일을 수행하는 동기와 목적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 그래서 군입대를 하면 가장 먼저 군인에 대한 정신교육을 시킨다 .   초대교회 교인들은 말씀을 듣고 깨달음을 얻어 회개하고 돌이키며 사람을 살았다 .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그들을 보고 그리스도처럼 산다고 하여 그리스도인이라 부름을 받게 되었다 . 오늘날 교인들 가운데에서 타인으로부터 그리스도인이란 소리를 듣기가 어렵다 . 오히려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처럼 사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시대가 되었다 . 즉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한 자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   주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하실 때에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셨다 . 그러나 모든 사람이 메시야로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 그들 가운데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 보관하는 서기관들과 민족의 지도자인 바리새인들도 있었다 .   그들은 하나님을 눈앞에서 보면서도 부인하였던 자들이다 . 많은 기적과 비유로 말씀을 전하였지만 오히려 돌로 치려하였다 . 그리고 끝내는 로마의 법정에 고발을 하였다 .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눈앞에 모시고도 왜 알아보지 못하였을까 ? 이 문제는 오늘날에도 심각하다 . 과거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그랬듯이 오늘날에도 똑같다는 것이다 . 그들에게는 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는 것이다 . 주님의 음성을 아무나 들을 수가 없다 . 성령의 거듭남의 역사가 있어야만 들을 수 있다 . 그러니 들어도 계속 딴 소리만 하게 된다 .   그리고 그들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마음이 없다 . 이미 자기의 생각으로 정한 것이 있다 . 즉 자기의 생각과 다른 것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 그러니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이 아니니 믿을 수 없다는 것이 된다 .   그 때에도 민족의 지도자들이 그랬듯이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 중직자들 가운데 말씀에 대적하는 자들이 많다 .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니라 하니

  찐빵에 앙꼬가 없다면 찐빵이 아니다 . 교회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으면 교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 교회에 큰 분쟁과 문제가 생기는 원인도 그리스도가 없기 때문이다 . 이와 같은 사례를 성경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 .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셨다 . “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 마 28;20) 는 것이다 . 그런데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보다 구제의 일에 더 관심을 갖다가 보니 교회 안에 다툼과 시기가 났다 .   그러자 제자들은 구제하는 일을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일곱 집사에게 맡기고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기로 한다 . 이 말씀을 통하여 교회가 무엇을 하여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   믿음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 즉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음으로 소망하는 것을 말한다 . 믿음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게 하는 통로이다 .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다 . 아들을 통하여 자신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 그리고 하나님이 이미 하늘에서 이룬 것들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셨다 .   신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사시면서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 즉 아버지의 뜻을 전하시고 그분이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셨다 .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 된다 .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비밀을 가르치는 곳이다 . 그런데 이러한 것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 믿음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들이다 .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게 하는 것이 교회 안에서 가르침이다 .   그리스도를 통한 가르침으로 하늘을 바라보게 하여야 한다 . 이 땅에 있는 것보다 하늘에 것에 소망을 두는 가르침이다 . 사기꾼이요 , 약탈자인 야곱이 믿음의 용사가 된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을 소유한 자이기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레시피 (Recipes) 가 무엇인지를 안다 . 그것은 음식에 필요한 재료 , 필요한 양 , 요리 순서를 말하는 것이다 . 그러나 모든 준비과정과 요리의 순서가 깔끔하고 섬세하다고 할지라도 맛이 없다면 그 모든 과정은 무의미한 것이 된다 .   성경에서 증거하는 사랑도 이와 같다 .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지식으로 알고 그것을 체험하고 맛본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 기독교의 사랑은 레시피 (Recipes) 만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다 . 열매의 맛을 본 자 , 즉 하나님의 사랑을 맛본 자들이 외치는 사랑이다 . 그러니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 안에서 맛본 자만이 증거할 수 있는 것이다 .   성경의 인물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자가 다윗 왕이다 . 그가 고백한 시편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하고 있다 . 그리고 그 은혜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다 .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맛으로 표현하고 있다 .   맛으로 표현하는 극치는 직접 경험하고 먹어보아야 하는 것이다 . 달리 말하면 다윗의 표현은 먹어보지 않고서는 그 맛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 오늘날 신자들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다 . 그러나 직접 맛을 보고 체험한 자는 얼마나 있을까 생각을 하게 된다 .   사도들이 각 교회에 보낸 서신서의 내용에도 같은 내용으로 담겨 있다 . 그 교회교인들을 위한 기도이다 . 그들이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지식으로 확인하고 그것을 직접 체험하여서 빛의 열매들을 맺어서 주님 다시 오시는 날에 열매를 들고 영광의 자리에 설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   그러면서 그 영광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부탁한다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명을 지키라는 것이다 . 왜 그런가하면 우리 주님도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시므로 인하여 기쁨이 넘쳤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약속이다 .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