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초대교회에 구제하는 일로 인하여 분쟁이 있었다. 그래서 사도는 말씀 전하는 일과 기도에 힘쓰기 위하여 집사 일곱을 택하게 된다. 봉사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하여 집사를 세웠는데 이들이 큰 일을 벌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스데반 집사는 공회에 붙들려가 대제사장 앞에서 외치고 있다. 너희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저들은 스데반의 외침에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았고 마침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쳐 죽인다.
 
그뿐만 아니라 빌립집사도 있다. 핍박을 피하여 사마리아로 가게 된다. 그도 핍박 속에서 그리스도를 백성들에게 전파한다.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므로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다.
 
분명한 것은 봉사의 일을 하게 위하여 세웠던 집사들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가? 성경말씀에 관심이 있었던 신자들이었다면 궁금함을 갖았을 것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이러한 신자들이 있다. 자기는 할 줄 아는 것이라곤 봉사의 일 밖에 모른다고 손사래를 치며 겸손한 자들이 있다. 그런데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라 하면서 이런 믿음의 고백을 한다면 내 안에 감추어진 보배의 능력을 부인하는 것이 된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있다면 심히 큰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그 능력은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다. 내 안에는 예수의 생명이 있다. 이것은 주님이 부활하심으로 인한 새생명이다. 즉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그러므로 신자 안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으므로 인하여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8-10)라는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얻은 자들에게는 동일하게 있는 것이다. 그래서 봉사의 일을 하기 위하여 집사로 세움을 받았던 스데반과 빌립집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참된 신자라면 스데반과 빌립집사가 갖고 있는 복음전도의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이것을 부인한다면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는 아주 교만한 자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자가 된 것이다.
 
겸손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는 겸손은 일부러 하는 겸손으로 교만이 된다. 참된 겸손은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낮은 자세로 섬기는 것을 말한다.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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