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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너희는 마음과 뜻을 바쳐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라 그리고 일어나서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여호와의 언약궤와 하나님 성전의 기물을 가져다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에 들이게 하라 하였더라

  “이제 너희는 마음과 뜻을 바쳐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라 그리고 일어나서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여호와의 언약궤와 하나님 성전의 기물을 가져다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에 들이게 하라 하였더라”(대상 22:19) 대상 22장은 다윗에 성전 건축을 위하여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는 내용이 있고, 솔로몬에게 성전건축과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키라 권면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솔로몬을 도와 성전 건축을 하되 온힘을 다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이제 너희는 마음과 뜻을 바쳐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라”하는 말씀은 생명을 바치되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바치라는 것이다. 즉 성전을 짓되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건축하라 하신다.   그리고 성전을 건축한 후에는 여호와의 언약궤와 하나님 성전의 기물을 가져다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에 들이라 한다. 성전은 하나님의 이름을 둔 곳이다. 그리고 언약궤가 있는 곳이어서 하나님과 백성 간에 맺은 약속을 선포하고 이행하여야 한다. 하나님 율법의 내용은 사랑과 정의가 공의롭게 펼쳐지게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목사에게 사랑이 없다고 하는데 어떠한 사랑을 말씀하십니까? 목사가 교인을 뜨겁고 열정적인 사랑하여 이미 교회가 절단이 났으니 이러한 사랑은 원하시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하나님 말씀을 따르지 않고 교회를 출석하지 않는 것도 눈감아주는 사랑입니까? 그런데 이것은 목사의 권한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과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것에 대한 심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목사가 여러분을 사랑한다 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을 수 있도록 설교와 성경공부를 인도함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에 함께 슬피 울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를, 죄가 아니라고 외쳐주기를 바라는 것을 사랑이라 하시면 심히 곤란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말씀드립니다.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본문에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믿음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실존적인 존재로 나타나셨을 믿어야 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육체 안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그리고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를 알아야 한다. 무엇을 하여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은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시는 분인 줄을 알고 행하는 것이다.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9:24) 그렇다면 말씀을 통하여 확인하여야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것이다.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친히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이루기 위함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의 은혜를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 주신다. 그렇게 되어 이 땅에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와 공의가 시행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들의 믿음을 깊이 생각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다’라는 믿음보다 더 나아가 왜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셨는지를 아셔야 됩니다. 하나님의 기쁨을 성취하시고 그 기쁨을 우리들에게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자들이 상을 받음을 본문에서 확인을 하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셀라)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셀라)”(시 62:8)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으로부터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시 62편을 기록하였다. 자신의 믿음을 후대 백성들에게 권고하고 있다. 믿음이 생기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인격적인 신뢰가 쌓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인격적인 신뢰를 보여 주시기 위하여 약속하시고 성취하심으로 나타내셨다. 그래서 다윗은 외치고 있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셀라)”(시 62:8) 무슨 말인가 하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고, 그 약속의 말씀에 의지하여 기도를 하면 반드시 구원의 은혜로 보호하여 주신다는 것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믿음을 보시고 병자를 고쳐 주신다. 맹인을 고쳐 주실 때에 믿음을 확인하시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을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마 9:27-28)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믿음의 내용에는 하나님의 모든 영광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 능력, 성품, 좋아하시는 것, 하시는 일들, 소원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병자를 고치시는 능력이 내게 임하면 내가 고침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주일 예배에 나오실 때에 이와 같은 믿음으로 나오셔야 합니다. 믿음이 성장하는 방식은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고, 그 말씀에 의지하여 기도하시면 반드시 이루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다윗이 백성들에게 권면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기도하라 그리하면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요 14:1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으로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하신다. 구약성경을 보면 큰 구원을 이루실 구원자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와서 뒤에 오실 메시야를 예비하였다. 그러나 어리석은 백성들은 구약성경의 말씀을 알지 못함으로 인하여 메시야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이 하나님이 보내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의 사건들을 통하여 깨닫게 한다.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온 사건을 이야기 하시면서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을 전하신다. 유대인의 초막절은 그들이 광야에서 생활하였을 때에 하나님의 영광을 기억하고 전하기 위한 것을 지킨다.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불기둥으로 인도하여 주시고, 반석에서 생수를 주셨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초막절에 유대인들에게 나타나셨다. 그들이 초막절 제사를 드리는데 실로암 못에서 물을 떠다가 올린다. 성전이 있고 제사를 드리고 있지만 너희들에게 필요한 생명의 생수가 필요함을 전하고 계신다. 내가 너희에게 온 것은 너희에게 영생을 주고 생명의 기쁨을 풍성하게 하기 위함임을 설득하신다. 만일 내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십자가에 죽고 부활한 사건을 보고 믿으라 하신다. 성육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살리실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강압적으로 믿으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은밀한 음성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속삭이십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믿으라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으면 생수의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십자가의 사건으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인 것과 그분께서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신 것들이 다 진실로 밝혀진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거나 전하셨던 말씀들이 거짓이었다면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지 않으므로 죽음

여호와의 천사가 갓에게 명령하여 다윗에게 이르시기를 다윗은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여호와의 천사가 갓에게 명령하여 다윗에게 이르시기를 다윗은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대상 21:18) 대상 21장에서는 다윗 왕이 크게 범죄하였다고 생각하는 인구조사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성전건축을 준비하게 된다. 이 사건의 시작은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대상 21:1) 사탄이 일어나 다윗을 충동하여 인구조사를 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사탄을 통하여 역사하신다고 증거하신다. 인구조사 사건으로 인하여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염병이 임하므로 인하여 칠만 명이나 죽게 된다. “이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염병을 내리시매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죽은 자가 칠만 명이었더라”(대상 21:14) 이 사건으로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려던 다윗 왕의 교만을 제거하고 겸손하게 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형벌을 내리신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어 세운 다윗에게 압살롬의 난과 세바의 난에 동참하였던 죄이다. 그리고 회개와 제사를 통하여 궁극적으로는 성전건축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사탄의 유혹 아래에 있는 자는 어떠한 충고를 하여도 듣지 않는다. 다윗은 요압의 충고에 아주 강압적으로 명령을 한다. 이러한 점에서 사탄이 하나님의 교회를 혼란에 빠지게 하기 위하여 교만한 자를 사용한다. 인구조사를 하나님이 좋게 보지 않으심으로 이스라엘을 치신다. 그러자 다윗은 “다윗이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대상 21:8)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던 다윗은 정직한 자이었다. 자신의 죄에 대하여 한 마디 변명도 없고, 타인에 대하여 책임전가도 없이 스스로 책임을 지려는 자세이다(17절). 죄악으로 인해 초래되는 가장 심각한 병폐를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 단절이다. 이제 하나님과 교통하기 위하여

다윗이 그 왕의 머리에서 보석 있는 왕관을 빼앗아 중량을 달아보니 금 한 달란트라 그들의 왕관을 자기 머리에 쓰니라 다윗이 또 그 성에서 노력한 물건을 무수히 내오고

  “다윗이 그 왕의 머리에서 보석 있는 왕관을 빼앗아 중량을 달아보니 금 한 달란트라 그들의 왕관을 자기 머리에 쓰니라 다윗이 또 그 성에서 노력한 물건을 무수히 내오고”(대상 20:2) 대상 20장에는 다윗이 암몬을 함락시키고 블레셋 군대의 용사들을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이 암몬의 랍바를 점령할 때에 있었던 일을 소개하려 한다. 본문에서 다윗이 그 왕의 머리에서 보석 있는 왕관을 빼앗고 자기의 머리에 썼다고 한다. 그런데 그 왕관의 무게가 금 한 달란트이다. 암몬은 밀곰 신을 따르고 있다. 그 왕관은 밀곰 신 머리에 있었던 것인데 무게가 35Kg이나 된다. 다윗이 왕관을 썼다고 함은 암몬 족속의 새 주권자가 자신인 것을 알리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조문 사절단에 하눈에게 당하였던 수치를 되돌려 주고 있다. “그 가운데 백성을 끌러내어 톱과 쇠도끼와 돌써래로 일하게 하니라 다윗이 암몬 자손의 모든 성읍을 이같이 하고 다윗이 모든 백성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니라”(대상 20:3) 다윗 왕국의 강성함을 나타내고 있다. 블레셋의 장대한 자들이 다윗과 그의 신하들의 손이 다 죽었다. “가드의 키 큰 자의 소생이라도 다윗의 손과 그 신하의 손에 다 죽었더라”(대상 20:8)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다윗 왕이 전쟁에 출정을 하면 승리를 합니다. 우리들도 마귀와의 영적인 전쟁을 하면 반드시 승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망과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하신 부활의 권세가 있습니다. 말씀을 따라 순종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 5:18) 그러면 마귀가 우리 몸에 손을 대지 못하고 물러갑니다. 여러분!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사는 자를 이길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주님이 말씀을 지키는 자와 항상 함께 하시기 때

너는 힘을 내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힘을 내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너는 힘을 내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힘을 내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대상 19:13) 대상 19장에서는 암몬 자손과 하눈이 은 천 달란트를 지불하고 아람의 군대를 용병으로 삼아서 다윗의 군대와 전쟁을 한다. 다윗의 군대가 암몬과 아람의 연합군대를 상대하는 것은 버거운 싸움이다. 저들의 병력은 “곧 병거 삼만 이천 대와 마아가 왕과 그의 군대를 고용하였더니 그들이 와서 메드바 앞에 진 치매 암몬 자손이 그 모든 성읍으로부터 모여 와서 싸우려 한지라”(대상 19:7) 그때에 다윗 군대의 군대장관 요압이 그의 아우에게 이르기를 “너는 힘을 내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힘을 내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기를 원하노라 하고”(대상 19:13) 적군에게 맞서라 한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마 19:17) 그래서 악에게 지는 것을 싫어하신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는 자에게는 당연히 승리를 주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직 선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만 나온다. 무슨 말인가 하면 오직 하나님 말씀만이 선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자들을 당연히 좋아하신다는 것이 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만 선한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주시기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마 19:18-19) 하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선한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기도를 할 때에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합니다. 그 기도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가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역경을 당하더라도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이기라고 하셨습니다(롬 12:21).

다윗이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다윗이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대상 18:6) 대상 18장은 시간적으로 볼 때에 17장보다 앞서 있었던 일들이다.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전쟁을 승리 하였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다윗은 오직 하나님만을 따랐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과 언약의 내용 가운데 이스라엘의 왕은 자기를 위하여 많은 말을 소유하지 말아야 한다. 전쟁에서 빼앗은 말들의 발의 힘줄을 끊었다 “다윗이 그에게서 병거 천 대와 기병 칠천 명과 보병 이만 명을 빼앗고 다윗이 그 병거 백 대의 말들만 남기고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대상 18:4) 그렇게 하였던 이유는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기 위함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약속한 땅을 차지하게 되었고, 다윗은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로 백성들을 재판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의 통치가 임한 것이다. 다윗 왕국이 세워지는 장면이다. 나라의 내각이 결정이 되고 백성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왕에게 보고하는 일들은 다윗의 아들들이 담당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경을 읽는 관점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여러 관점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로서 택한 백성들에게는 안식과 평안을 주십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는 곳에는 허무와 원망과 시비가 난무(함부로 나서서 마구 날 뛰는 것)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는 사람들은 말씀을 지키며 하나님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들의 생명의 풍성함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8)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 11:9) 성결 말씀을 어떤 관점으로 볼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넓게는 하나님 나라로 보아야 한다. 창세기에서 폭력과 칼의 나라에 맞서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하나님의 의와 도를 행하는 나라를 세울 것이라 하였다. 세상의 나라에서는 우리들의 귀한 아들을 데려다가 전쟁에 보낸다. “그가 또 너희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 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며”(삼상 8:12) 귀한 딸은 왕궁에서 시중드는 일을 맡긴다. “그가 또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이며”(삼상 8:13) 반면에 하나님 나라에서는 독생자를 보내어 사랑과 자비와 긍휼을 베푸신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아들로 삼아 주신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강하고 권력을 쥔 자가 득세하는 세상이다.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모인 곳이 교회이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의 사람과 정의와 공의를 배워야 하고 시행을 하여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성경은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9:24) 하나님은 이 땅에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시행하시는 분이라고 깨닫는 자를 기뻐하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기쁨을 소유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기쁨을 누리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면 내면에서 샘솟는 기쁨과 즐거움입니다.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는 이러한 기쁨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그가 영원히 하나님 앞에서 거주하리니 인자와 진리를 예비하사 그를 보호하소서

  “그가 영원히 하나님 앞에서 거주하리니 인자와 진리를 예비하사 그를 보호하소서”(시 61:7) 다윗의 시편 가운데 비탄의(몹시 슬퍼하며 탄식함) 시가 있다. 그가 비탄의 시를 기록할 때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그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는 사울 왕에게 쫓기는 때이고, 왕위에 올랐을 때에 압살롬에게 쫓기는 때이다. 무엇을 고발하려는가 하면 나라의 왕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죽이겠다는 것이다. 사울은 광야와 수풀과 동굴까지 찾아와 죽이려 하였고 압살롬은 요단강을 건너 마하나임까지 쫓아와 죽이려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다윗이 간구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와 공의가 펼쳐지는 나라가 임하게 해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 나라는 어린 아이가 사자를 끌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어도 괜찮다. 무슨 말인가 하면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피해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모든 곳에서는 해 됨이나 상함도 없다. 그 나라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한 곳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9:24), 하나님은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다윗의 후손을 통하여 세우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강한 자가 횡포를 부리지 않는 나라를 속히 이루어 달라고 탄식을 하며 기도를 하고 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다윗의 기도가 이미 이루어져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환경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통치가 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히 살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25) 내 몸 안에는 여러 개의 내가 있다. 나를 나타내는 것으로는 생각, 감정, 행동을 지배하는 의지이다. 이것이 진정한 나 자신이며, 나의 영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함은 나의 영혼이 그분과 연합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과 감정과 행동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바뀌게 된다. 생각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가 되고, 감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온유한 마음을, 행동은 성령의 역사하심이 함께 하게 된다. 이 문제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고민이 많았다. “내 속 곧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이 없노라”(롬 7:18)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문제를 해결하여 주셨다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 그렇게 되면 생명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생명의 기쁨이란 하나님의 기쁨이다. 그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섬겨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생명의 기쁨을 누립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합니다. 이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할 때만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너희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너희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눅 21:19) ‘오래 참음’은 성령의 열매 가운데 있다. 오래 참음이란 나의 의지로 버티며 견디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험이 왔는데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때까지를 말한다. 기도는 우리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주인의 뜻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시간까지를 오래 참음이라 한다.   그래서 우리의 걱정과 근심을 자꾸 주님께 아뢰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을 사셨을 때에 체험하신 것을 기도하는 자들에게 나타내신다.   반면에 세상 사람들은 억제를 한다. 누르고 누른다. 그러다 마침내 폭발을 한다. 그러다보면 주변에 있는 사람 여러 명을 잡게 된다. 신자와 세상 사람들이 마음에 편안을 잃었을 때에 해결하는 방식이 다르다. 세상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낸다. 그런 반면에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해결은 한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더러운 감정을 자신 보다 약한 사람들에게 퍼 붓는다. 그런 반면에 신자들을 예수 그리스도 앞에 고한다. 자신의 감정을 버리기 위해서는 감정의 쓰레기통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만만한 사람을 택한다. 그러한 사람을 사회적 약자라 한다.   교회 안에서도 감정의 쓰레기 통으로 연약한 자들을 대상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도 아니고 성숙한 인격을 소유한 사람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 사람의 됨됨이를 성숙하게 해서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쁨을 확인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람들이 왜 거짓말을 하시는 아십니까? 마음에 두려움을 느끼면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거짓말입니다. 달리 말하면 정직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시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게 되면 그분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 능력은 마귀를 물리치신 능력입니다. 마귀는 거짓의 아버지입니다. 그래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마귀의 자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8) 우리가 도로 위에서 운전을 할 때에 갑자기 옆 차가 끼어드는 떼가 있다. 그러면 무의식적으로 분노와 함께 욕설을 뱉게 된다. 왜 이와 같은 현상이 생기는가 하면 내 마음에 평정이 깨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은 늘 마음이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외부에서부터 무언가가 나에게 들어오면 마음이 흔들린다. 이것을 교인들은 시험이 든다고 한다. 즉 마음이 불안한 상태라는 것이다. 이러한 때에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면 흔들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땅에 사시면서 온갖 종류의 멸시와 수치를 당하셨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실 때는 하는 아버지에게도 잠시 외면을 당하셨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되면 멸시와 모욕을 당하더라도 참을 수 있다. 이때에 참을 수 있는 능력이 나의 본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들이 이 땅에 살면서 느끼는 것은 불안하다는 것입니다. 땅이 흔들리고 하늘이 번쩍번쩍하고 물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마음에 평안과 기쁨은 하늘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영원한 기쁨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에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모든 인간은 변하고, 발달하고, 성장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육체와 정신이 성숙하여 진다. 본문에서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즉 성장기에 있는 자녀들은 아직 미성숙한 단계에 있는 신체적인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생성된다는 것이다. 자존감은 내가 나를 스스로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내가 나를 평가할 때에 좋은 사람인가, 괜찮은 사람인가를 확인하게 되면 자신감이 생긴다. 자신감이 생김으로 인하여 성취감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그래서 자녀들의 자존감이 형성되는데 있어서 주의 교훈과 훈계로 하라는 것이다.   주의 교훈과 훈계에는 하나님의 성품과 인격이 담겨 있다. 그 말씀을 듣고 순종을 하면 그분의 성품과 마음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인생의 본질과 가치가 성경 안에 있다. 성경이 교과서(Text)가 되면 우리들의 상황(Context)을 잘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영육 간에 강건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죄인들에게 자존감을 건강하게 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거주하십니다. 그러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라 고백할 수 있습니다. 내 안에 그분에 계시면 자존감이 상승하게 자신감이 생기고 주님의 능력이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신자들이 세상 앞에서 당당하게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성품은 세상의 죄악과 조롱과 고난을 이기신 능력입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 10:28) 세상이 좌우로 나뉘어져 있다. COVID-19으로 인하여 Mask를 써야 한다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이 급기야 흉기를 들고 서로 싸우는 지경에 이르렀다. 또 백신이 효과가 없다고 하여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놀랍게도 미국에서도 전 인구에 반 정도이다. 더 나아가 음모론도 있다. 백신 접종이 개인의 자유를 통제하기 위함이란다. 전염병은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 간다. 그런데 사람의 생명을 놓고 정치적으로 이용을 하고 있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정치가들이 거짓으로 선동질을 할 때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내 생명은 내가 지켜야 하고 또한 타인의 생명도 귀하므로 내가 지켜 주어야 한다. 이것이 성경에서의 가르침이다. 즉 내가 불편해도 이웃을 위해서는 내가 마스크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웃이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내가 마스크를 써서 지켜 보호하여 준다는 생각을 가지면 서로 간에 감정이 상할 일이 아니다. 그러한 후에 나타나는 결과에 대해서는 남 탓을 해서는 안 된다. 잘못을 이웃에게 넘기려는 마귀의 전략이다. 자신의 생명은 자신이 지켜야 하는데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를 생각하여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육체의 죽임이 있듯이 영혼의 죽음도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영혼이 구원을 받아야 마지막 날에 생명의 부활로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영혼이 구원을 받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8-9) 우리의 영혼이 구원을 받으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말씀으로 풀어갈 수 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겔 36:37)   십자가의 구속 사역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이루신 사역으로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받은 자들로부터 영광을 받으신다. 이것에 대한 이해를 에스겔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택함을 받은 백성들이 이방 땅에서 우상을 섬기며 머리를 조아렸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방 땅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것이다. 더럽혀진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다시 거룩하게 하시는 사역이 십자가의 구속 사건이다.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아들이 아버지의 뜻에 죽기 순종하셔서 이루신 구속의 은혜를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죄인들에게 전가하여 주신다. 그 구속의 은혜를 받은 자들은 구속의 은혜와 하나님의 영광의 능력을 찬양하여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광이다. 이 구속의 은혜를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데 그 은혜를 구하라 하신다. 구하는 자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계획과 뜻도 모르고 기도도 안 하시면서 은혜를 받겠다는 것은 심히 곤란합니다. 기도를 하시는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찬양을 하십니까? 아니면 내 욕심만을 구합니까?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구하시며 기도하셔야 됩니다. 내 욕심을 구하는 것은 나의 영광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도는 응답이 없습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약 4:3)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시 60:10) 시편 60편은 다윗이 아람, 에돔 연합군과의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연합군에게 어려움을 당할 때에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를 하므로 전쟁에서 승리를 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셨다. 그러면 연합군과의 전쟁에서도 함께 하여 주셔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   그런데 다윗의 기도 내용에는 왜 우리 군대와 함께 나가지 않느냐고 항변을 한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시 60:10) 오늘 본문에서는 기도를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를 교훈한다.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하셨다. 그러면 어차피 이길 수밖에 없으므로 기도를 할 필요가 있는가에 대한 생각이 든다. 그런데 다윗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기도를 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 것도 십자가의 구속사역도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끝을 맺으신다. 즉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할지라도 너희가 구하여야 한다고 하셨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겔 36:37)   그래서 하늘 아버지가 아들에게 좋은 것으로 준다고 약속하였어도 구하여야 한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 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 그렇다면 어떠한 기도를 원하시는 것일까? 구원하여 주실 것을 믿는 믿음이다.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시 60:11) 오직 하나님의 능력만을 구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간구라고 합니다. 간구라고 함은 마음 깊은 곳에 문제를 해결하여 달라고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