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바알라 곧 유다에 속한 기럇여아림에 올라가서 여호와 하나님의 궤를 메어오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두 그룹 사이에 계시므로 그러한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았더라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바알라 곧 유다에 속한 기럇여아림에 올라가서 여호와 하나님의 궤를 메어오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두 그룹 사이에 계시므로 그러한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았더라”(대상 13:6)


대상 13장에서는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메어오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다윗 성으로 옮겨오지 못하고 웃사가 죽는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모이게 하고 여호와의 궤를 옮겨 올 것을 제안한다. 그러자 백성들이 좋게 여기므로 실행에 옮긴다.


옮기고자 하는 이유는 여호와의 궤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있고 권능과 영광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바알라 곧 유다에 속한 기럇여아림에 올라가서 여호와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두 그룹 사이에 계시므로 그러한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았더라”(대상 13:6)


여호와의 법궤는 레위 지파 고핫 자손들이 어깨에 메고 옮겨야 한다. “고핫 자손에게는 주지 아니하였으니 그들의 성소의 직임은 그 어깨로 메는 일을 하는 까닭이었더라”(민 7:9) 지성소 안에 있는 법궤는 수레에 실어 옮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를 주지 않았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신을 옮길 때에 사용하던 방식을 따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웃사와 아히오는 수레를 몰며”(대상 13:7)


기돈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에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들었더니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궤를 붙듦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치시매 그가 거기 하나님 앞에서 죽으니라”(대상 13:10)


다윗은 이 사건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법궤를 다윗 성으로 옮기지 않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간다. “다윗이 궤를 옮겨 자기가 있는 다윗 성으로 메어 들이지 못하고 그 대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가니라”(대상 13:13)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이방 잡신을 섬기는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방 잡신을 섬기는 것을 무속신앙이라 합니다.

그것에 기준에 내가 생각하는 좋은 것과 정성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치성(정성이 다다른다는 뜻)으로 드리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나갈 때는 그분의 명령하시고 약속하신 말씀대로 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로 우리들도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약속한 말씀으로만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나가지만 사람의 생각으로 나갑니다.

새 수레를 만들어서 법궤를 옮기려 하였습니다.

그 방식은 이방 신을 옮길 때에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는 고핫 자손들이 어깨에 메고 옮기라고 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좋은 일을 하려 했던 다윗은 하나님에 대하여 두려움을 갖게 되었습니다.

실패한 다윗은 하나님의 율법을 다시 살피고 법궤를 옮기는데 성공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고난과 실패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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