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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나라들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백성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들이 다 그를 섬기며 복종하리라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나라들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백성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들이 다 그를 섬기며 복종하리라”(단 7:27) 다니엘은 그의 침상에서 꿈을 꾸며 환상을 본다.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오는 계시이다. 이미 다니엘서 2장에서도 느부갓네살에게 환상을 보여 주셨다. 그 꿈에서도 네 짐승들이 등장을 하였었다. 다니엘 2장에서는 네 번 째 짐승인 나라가 손대지 아니한 돌에 의해 멸망할 것을 말씀하셨다. “또 왕이 보신즉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단 2:34) 2장과 7장의 계시는 이렇게 다르다. 2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여 세상의 나라를 이긴 것을 말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말하는 것이다. 반면에 7장에서는 네 나라가 멸망한 이후에 한 별이 나와서 적그리스도가 된다. 그래서 택함을 받은 성도들이 적그리스도에게 공격과 핍박을 받는 계시이다.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과 더불어 싸워 그들에게 이겼더니”(단 7:21) 즉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택함을 받은 백성들이 고난을 받는데 심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인하여 승리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나라들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백성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들이 다 그를 섬기며 복종하리라”(단 7:27)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다니엘서 7장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전하시고자 하는 메시지는 작은 뿔에 대한 계시입니다. 작은 뿔은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들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더라”(단 7:8하) 적 그리스도들은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만을 말합니다.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골 2:18) 그리고 사람을 유혹하는 말로 방탕과 헛된 것을 쫓게 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단 6:22) 디니엘서 6장에서는 역사의 배경이 바뀌었다. 바벨론은 멸망을 하고 메대와 바사 왕국의 통치시대이다. 그 나라의 왕인 다리오가 바벨론 지역의 행정 조직을 재정비하기 위하여 고관 백이십 명과 세 명의 총리를 세웠다. 세 총리 가운데 다니엘이 있다. 다니엘은 지혜로운 자이어서 다른 고관들에게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다리오 왕에게 금령(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여 내린 법)을 내리게 하였다. 그것은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 왕 이외에 다른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절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은 이것을 알고도 매일 세 번씩 예루살렘을 기도를 하였다. 이 일을 간신들이 다리오 왕에게 알리므로 인하여 사자굴에 던지게 되었다. 다리오 왕은 다니엘이 자기의 뜻대로 통치하는데 도움을 주는 자이므로 총애를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다니엘이 사자굴이 들어가는 것을 심히 괴로워하였다. “왕이 이 말을 듣고 그로 말미암아 심히 근심하여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그를 건져내려고 힘을 다하다가 해가 질 때에 이르렀더라”(단 6:14) 왕이 궁에 돌아가서 밤이 새도록 금식하고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 굴로 갔다. 그리고 다니엘에게 묻기를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였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다니엘이 대답하기를 나의 하나님이 천사들을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였다고 말한다.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단 6:22) 여기에서 생각할 것은 다리오 왕이 과연 하나님을 찬양하고 믿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는 다신론을 믿는 자로서 하나님을 신들 중에 한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아직도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아직도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단 5:22) 다니엘 5장은 시간적으로 느부갓네살 왕이 죽은지 이십사 년이 지난 후이다. 바벨론 왕은 느부갓네살(BC605-562), 에월므로닥, 네르갈사레셀, 라바시 말둑, 나보니더스, 벨사살(BC550-538)로 이어진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벨사살 왕을 통하여 나타내시고자 하는 뜻은 알면서 지은 죄의 무서움을 말하는 것이다. 이미 느부갓네살을 통하여 여호와가 어떤 분인지를 알고 있다. 그런데 벨사살이 예루살렘 성소에서 가져온 은 금 그릇으로 귀족들과 왕후들과 후궁들과 더불어 술을 마시고 쇠 나무 돌로 만든 신들에게 찬양을 하였다. 그때에 사람의 손가락들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석회벽에 글자를 쓴다. 그리하여 벨사살은 전국에 전쟁이와 지혜자들을 불러 해석을 하게 한다. 그러나 해석을 하지 못하자 왕비가 다니엘을 소개한다. 다니엘은 벨사살 앞에서 느부갓네살 왕이 여호와 앞에서 어떠한 일이 있었던 것과 하나님을 찬양하였던 것을 말한다. 벨사살은 마음이 교만하여 자신을 하늘의 주재보다 높이여 성전 그릇을 가져다가 술을 마시며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과시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손가락이 나와서 글을 썼다. “기록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단 5:25) 해석은 이러하다. 왕의 이대는 이미 끝났으며, 왕을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하기에 메대와 바사 나라에 준 바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날 밤에 벨사살은 죽임은 당하였고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게 되었다. “그 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단 5:30)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은 교만한 것을 싫어하십니다. 그 중에 더 악한 것이 알면서도 순종하지 않고 거역하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멸망은 전쟁 중에 멸망한 것이 아닙니다. 벨사살 왕이 교만을 떨면서 베푼 잔치 날에 망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순종과 겸손입니다. 성경 말씀이 이해가 안 된다고 거부하시면 곤란합니다.

이는 순찰자들의 명령대로요 거룩한 자들의 말대로이니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를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사람들이 알게 하려 함이라 하였느니라

  “이는 순찰자들의 명령대로요 거룩한 자들의 말대로이니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를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사람들이 알게 하려 함이라 하였느니라”(단 4:17) 다니엘 4장에서는 느부갓네살 왕이 두 번 째 꿈을 꾼다. 그 꿈도 역시 하나님의 사람인 다니엘이 해석을 한다. 그 꿈은 이러하다. 나라를 다스리는 자들을 다스리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땅의 중앙에 한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 하늘에 닿았고 열매를 많이 맺어 만민의 먹을 것이 되어 모든 것들이 그 나무 아래에 있다. 그런데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그 나무를 자르고 짐승과 새들을 쫓아내었다. 그 꿈의 해석은 느부갓네살에 대한 것이었다. “왕이여 이 나무는 곧 왕이시라 이는 왕이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창대하사 하늘에 닿으시며 권세는 땅 끝까지 미치심이니이다”(단 4:22)   즉 느부갓네살 왕의 교만함을 지적하는 것이며, 다스리는 자를 다스리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말한다. “왕이여 그 해석은 이러하나이다 곧 지극히 높으신 이가 명령하신 것이 내 주 왕에게 미칠 것이라”(단 4:24) 교만한 자인 느부갓네살이 받을 벌은 칠년 동안 들에서 짐승들과 함께 지내야 한다. “왕이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하늘 이슬에 젖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낼 것이라 그 때에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단 4:25)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에게 징계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곧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행하라는 것이다. “그런즉 왕이여 내가 아뢰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 하니라”(단 4:27) 그러나 교만한 왕은 다니엘의 말을 따르지 아니한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높인다.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진실로 의인들이 주의 이름에 감사하며 정직한 자들이 주의 앞에서 살리이다

  “진실로 의인들이 주의 이름에 감사하며 정직한 자들이 주의 앞에서 살리이다”(시 140:13)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자들을 그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라 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예수 그리스도는 이것에 대하여 비유로 말씀하셨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마 9:17) 즉 구원은 받은 자는 새 부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새 포도주인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담을 수 있는 자가 되었음을 말한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이렇게 교회들에게 전하고 있다. 너희는 심령이 새롭게 되었다.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엡 4:23) 그러니 이제는 하나님의 새 사람으로 세워 가는데 채워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4)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므로 인하여 거룩과 선함을 나타내야 됩니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안 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선한 말을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엡 4:25) 본문에서 거짓말하는 자들의 악함과 심판이 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죄악의 무서움을 알기에 죄를 거부하며 살 수 있게 하여 주신 주의 이름에 감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해 달라는 간구입니다.

여호와여 악인에게서 나를 건지시며 포악한 자에게서 나를 보전하소서

  “여호와여 악인에게서 나를 건지시며 포악한 자에게서 나를 보전하소서”(시 140:1) 시편 140편은 다윗의 시이다. 다윗은 악인들에게 핍박을 받고 있으며 그의 간구에는 탄식과 감사와 찬양이 함께 있다. 그의 기도는 전쟁 속에서도 생명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악인들에게는 하나님의 공의로 심판하여 주실 것을 간구한다. 그리고 의인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말씀을 지키며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확신한다. 시편에는 다윗의 시가 73편이나 된다. 그런데 언뜻 보면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기도하는 내용 가운데 신학이 있다. 다윗은 악인에게 핍박을 당하지만 여호와께 맡긴다. “여호와여 악인에게서 나를 건지시며 포악한 자에게서 나를 보전하소서”(시 140:1) 그리고 악인들의 악함을 보고 주의 이름으로 구원받은 것을 감사 찬양을 한다. “진실로 의인들이 주의 이름에 감사하며 정직한 자들이 주의 앞에서 살리이다”(시 140:13) 즉 다윗은 악인에 대한 형벌이 얼마나 무서운 것임을 알기에 주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자로서 찬양을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아 의인으로 사는 것에 대한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악인들에 대한 불의 심판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죄를 거부하고 두려워하는 믿음에 이르러야 합니다. 이제는 죄의 종이 아니라 의의 종으로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 6:13) 다윗의 신앙고백입니다. 의인이 되었으니 말씀을 따라 여호와 앞에 순종하며 살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며”(럼 6:17) 이것이 구원을 받은 우리들의 믿음이며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사도바울이 로마서를 쓰는 이유는 로마에 가기를 원했으나 가지 못함으로 인하여 꼭 전하여야할 내용을 전하는데 있다. 서신의 내용은 신자들이 구원을 받은 근거와, 하나님이 어떻게 구원을 얻게 하셨는지, 구원은 왜 안전한지, 이러한 내용을 확실하게 알게 하여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본문에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있다고 한다. 먼저 ‘의’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사람으로서 지켜야할 마땅한 도리이다. 죄로 타락한 인간들의 모습을 잘 정리한 단어가 있다. 그것은 인면수심이다. 사람의 얼굴을 갖고 있으나 동물의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쟁과 살인 그리고 시기와 질투가 자연스럽게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철학자들이 등장을 하였다. 공자는 ‘인’, 사람에 의한 사랑을 말하였다. 즉 사람이라면 스승을 경애하여야 하고, 친구에 대한 우정과 나라에 충성을 하여야 한다고 했다. 맹자는 인의예지를 강조하였다. 측은지심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수오지심 불의를 부끄럽게 여기며 착하지 못한 마음을 미워하는 것, 사양지심 겸손하여 남에게 양보하는 마음, 시비지심 잘잘못을 가릴 줄 아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철학자들이 말하는 ‘의’를 인간의 생각과 능력으로 찾으려하고 구하려 했지만 구할 수가 없었다.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고전 1:20)   그런데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를 거져 준다는 것이다. 이것이 좋은 소식이다. 이것은 그 당시의 철학자들이나 지혜자들에게는 놀라운 소식이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인면수심(사람의 얼굴을 갖고 있지만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빌 3:18) 사도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잘못된 열심히 오히려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절히 외치기를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갖고 이 세상을 마치는 날까지 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전하는 말은 하늘에 소망을 두라 한다. 이 땅의 것들은 마침의 날이 있지만 그리스도에 소망을 두고 사는 자들에게는 영광의 몸의 형체로 변하는 날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빌 3:21) 즉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자들은 부활의 몸을 가질 수밖에 없음을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올바른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들으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마지막 심판 때에 십자가의 복음을 듣지 못하였다고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롬 10:18)

형제들아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보라

  “형제들아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보라“(빌 3:17) 사도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나를 본받으라 하고 있다. 이것은 신자의 실천적인 삶이 주 안에서 기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 기뻐할 수 있는가? 구원은 성삼위 하나님이 이루어 가신다. 그래서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믿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이 나에게 임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믿음이라 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온전한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지혜를 알아야 한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빌 1:9) 빌립보 교회 교인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보다는 자신의 열정으로 그리스도를 섬기다가 좌충우돌한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경적인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알게 되면 마음에 기쁨이 생기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감옥에 있으면서 믿음으로부터 온 기쁨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아는 만큼 기쁨과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빌 1:20)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지만 복음에 대하여 어떤 자세를 갖고 있는지를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잘 나타낸다.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무엇에 최고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지를 확인할 수 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실천적인 삶을 살라고 한다. 그것에 첫 번 째는 기뻐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성도 간에 한 마음, 한 뜻을 이루어 교회를 섬기라 한다. 기뻐할 수 있는 것은 복음의 시작과 끝이 하나님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을 순종하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으라 하는 것이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빌립보 교인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보다는 자신의 열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섬겼던 교회입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우리 주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먼저 빌립보 교인들을 위하여 기도를 합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빌 1:9) 왜 그럴까요? 믿음은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을 받아들이고 믿는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 3:9) 신자가 의롭게 된 것은 율법을 지켜서 얻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의를 받은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 있다. 부정한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옷자락을 만지었을 때에 죄사함을 받고 고침을 받았다.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막 5:28) 구약의 정결법은 부정한 자가 만지게 되면 부정한 것이 된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하나님의 의가 있다. 그래서 구원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면 하나님의 의를 전가 받게 된다. 사도바울은 신자들이 구원을 받고 의인이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전하려 하는 것이다.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 3:9)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는 자들입니다. 오직 자랑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은 것을 알게 됨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무엇으로 갚으려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묻습니다. 사울 왕이여 여호와께서 제사와 순종 가운데 어느 것을 더 좋아하시는지 아십니까?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것은 순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