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13의 게시물 표시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성경에는 나병환자 ( 한센병 ) 를 고치는 사건이 나온다 . 인간의 죄를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 . 죄인을 구원하시는 방법은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이다 . 그런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전까지 각 색 병자를 고치는 사건이 많이 나온다 . 그 이유는 무엇일까 ?   예수님은 이 땅에 스스로 오신 것이 아니라 , 아버지가 보내서 오셨다 . 그리고 자의로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일을 하신다 . 그런데 문제가 무엇인가 하면 예수님을 성경에서 약속한 메시아로 믿지 않는 것이다 .   예수님이 각 색 병자를 고치시는 것은 ,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하였음을 알리는 것이다 . 또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적인 능력이 있음을 제자들에게 백성들에게 알게 하였다 .   예수님은 산 위에서 제자들에게 훈련을 시키고 하산을 하고 계시는데 많은 무리가 따르고 있다 . 그런데 이때에 나병환자가 예수님 앞으로 나온다 . 그는 겸손하게 예수님께 절을 한다 . 그리고 예수님은 자기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분이라고 확신을 하고 있다 . 깨끗하게 해 달라고 요구한다 . 그러자 예수님은 손을 내미시고 기쁜 마음으로 깨끗하게 해 주셨다 .   나병은 살이 곪고 썩는 병이다 . 그리고 아픈 통증이 없다 . 손가락이 잘려 나가지만 아픔과 고통이 없다 . 마치 죄가운데 있는 자들이 죄를 지으면서도 아픔이나 고통이 없는 것과 같다 . 유대인들은 나병이 걸리는 이유를 죄의 악함과 진노로 인한 것이라 생각을 한다 .   나병환자가 되면 성 밖으로 나가서 살아야 한다 . 왜냐하면 부정함이 다른 사람에게 전염이 될 수 있다고 하여 정결법으로 정하였다 . 성 밖 쓰레기더미 위에서 살아야 한다 . 그리고 선거권이나 피선거권이 없고 , 백성이지만 권리나 의무가 없다 . 사람이지만 존재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과 같다 .   에덴동산에서 죄를 지어 쫓겨났던 아담과 같은 처지이다 . 하나님이 함께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에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으셨다 . 질문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 예수님의 대답은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하여 한 말이냐고 반문을 하셨다 . 다시 빌라도는 네가 유대인의 왕인데 왜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내게 넘겼는가 ? 어떤 잘못을 하였는지 말하라 하였다 .   그러자 예수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답하셨다 . 만일 세상에 속하였다면 제자들이 유대인들의 손에 넘기지 않고 싸웠을 것이라 하셨다 . 이 말씀을 이해 못한 빌라도가 또 질문을 한다 .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 이어 예수님의 대답이 나는 네가 말한 것과 같이 왕이다 . 나는 십자가에 죽기 위하여 태어났고 , 십자가에 죽기 위하여 세상에 왔다 . 그런데 이것이 진리이다 .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는다고 말씀하셨다 .   그러자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고 반문을 한다 . 진리를 모른다는 것은 참 불행한 일이다 . 진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 예수님의 말씀으로 죄에서 자유를 얻는다 . 그래서 예수님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고 하셨다 .   빌라도는 판결을 내려야 한다 . 진리를 택하느냐 아니면 백성들의 함성 소리를 택하여야 하는 고민에 서게 된다 .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잘못을 찾을 수가 없었다 . 그러나 다수의 백성들의 요구에 따라 예수님에게 십자가 사형을 언도한다 . 진리보다는 민심을 택한 것이다 .   오늘날 교회에서도 이와 같은 현상이 있다 . 교회의 정책과 방향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진리를 택할 것인가 , 아니면 다수의 의견을 택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 그 중간에 목사 서 있다 . 목사는 어느 의견을 주장할 것인가 ? 많은 목사들이 진리를 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은 하지만 , 다수의 의견을 따른다 .   다수라는 것은 세상의 나라가 결정하는 방법이다 . 그러나 이 방법은 온전하지가 않다 . 인간의 생각과 방법은 온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섭씨 영하 5 도 인데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면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 어제 타주에 계신 지인으로부터 날씨가 추운데 비가 내린다고 전해왔다 . 그럴 수도 있다고는 생각을 했지만 오늘 아침 직접 목격을 하니 실감이 났다 . 저 높은 하늘 위의 세계를 누가 감히 안다고 할 수 있을까 ? 천지만물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운행이 되고 있다 .   하나님의 지혜는 신비롭다 .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아니 된다 . 그 중에 하나가 교회이다 . 예수님이 십자가의 사역을 완벽하게 이루신 후에 하늘로 승천을 하시고 오순절날 성령이 강림하시고 이 땅 위에 교회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   하늘에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 교회에 대하여 알기를 원한다고 한다 . 세상의 나라에는 왕이 있다 . 왕은 나라와 백성들을 통치한다 . 저들에게는 세금을 거두어야 하고 , 자기의 말에 순종하게 하는 것이 고민거리이다 . 이와 반대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하여 교회로 나타나고 있는데 , 이곳에서는 택함을 받은 백성들이 감사한 마음으로 드리고 스스로 알아서 순종을 한다 .   세상나라의 백성들은 세금을 기쁨으로 자발적으로 드리려 하지 않는다 . 법적인 구속력을 행사하기에 두려움을 피하기 위하여 마지못해서 드린다 . 그러나 교회는 오히려 감사함으로 분에 넘치도록 드린다 . 그리고 봉사하는 일도 열심히 한다 .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 감사와 기쁨으로 한다 . 이것이 교회 안에 있는 신비로움이다 .   이와 같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하는 자만이 할 수 있다 .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라고 고백하는 자만이 감사함으로 할 수 있다 . 거듭난 자들이다 . 마음이 변화되어 회심한 자들이다 .   그런데 거듭나지 않는 세상의 왕들이 이 방법을 쓰려한다 . 그것은 왕을 신격화시키는 것이다 . 마치 왕이 우주만물을 통치하는 것처럼 행세를 한다 . 우둔한 백성들은 진실이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싸움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 꽃들이 싸우는 화투가 있고 , 소들이 싸우는 투우 등을 들 수 있다 . 꽃을 가지고 싸우는 자들은 마음이 황폐하여 피를 보며 멸망으로 빠트리고 , 남의 것을 빼앗는 재미로 사는 사람들이다 . 그럴싸하게 꽃과 소를 앞세우지만 그 뒤에는 인간의 부패된 마음이 작용을 하는 것이다 .   신자들도 싸움을 한다 . ‘ 믿음의 선한 싸움 ’ 이다 . 믿음의 선한 싸움은 이웃의 것을 빼앗거나 죽이는 싸움이 아니다 . 나를 지키는 싸움이다 . 세상의 나를 죄의 타락으로 끌고 가려하는 것을 물리치는 싸움이다 . 싸움의 방법도 다르다 . 상대방의 약점을 공격하거나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여 쓰러트리는 것이 아니라 , 선한 싸움을 한다 .   선한 싸움이란 , 악을 선으로 물리치는 것을 말한다 . 그런데 이 싸움은 준비를 단단히 하여야 한다 . 온 몸을 전투장비로 준비하여야 전쟁터에 나갈 수 있듯이 ,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기 위해서는 믿음의 진리를 알아야 한다 .   믿음의 선한 싸움은 철병거나 마병을 동원하는 싸움이 아니다 . 적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한 싸움이다 . 나를 지키기 위하여 적군의 불화살이 소멸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 그리고는 적군에게 다가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불의를 제압하고 승리하는 싸움이다 .   화투판에서 돈을 따기 위해서는 근성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 기회가 오면 언제든지 상대방을 죽일 수 있는 독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즉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차례가 오기 때문이다 . 그러나 믿음의 선한 싸움은 마지막에 상대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길로 인도한다 .   나도 살고 적군도 사는 것이다 .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진리의 길을 알아야 한다 . 진리로 가는 길을 모른다면 곤란하다 . 예수님은 이것에 대한 비유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없다고 하셨다 .   신자가 진리의 길을 가야 적군들이 싸움이라도 걸어오곤 할 터인데 , 그 길을 가는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 처세 ’ 와 ‘ 아부 ’ 는 다르다 . 처세는 사회생활에서 자기도 좋고 상대방도 좋게 하는 기술이다 . 그러나 아부는 자기만 살겠다는 생각이다 . 처세는 예의를 동반한 기술이다 . 왜냐하면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에 사회생활을 한다 . 사회생활에서 자신을 위한 기술이다 . 이것을 잘 사용하면 자기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이민교회는 이민사회가 연결되어 있다 .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 갑 ‘ 과 ’ 을 ‘ 의 관계로 볼 수 있다 . 그래서 ’ 을 ’ 의 입장에 있는 사람은 ‘ 갑 ’ 의 눈치를 봐야 한다 . 그러다보니 ‘ 갑 ‘ 이 교회를 다니면 ’ 을 ‘ 이 교회를 나오게 된다 . 이것을 우리는 쉽게 전도라고 한다 . 그러나 이것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기 위한 처세이다 . 권력자가 나가는 교회에 사람들을 자리에 앉게 했다가 시끄러운 적이 있었다 .   이민사회에서 소위 ‘ 사 ‘ 자로 끝이 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개척교회를 나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 많은 수가 대형교회에 출석을 한다 . 그 이유는 간단하다 .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 그것에 당연함을 헌금을 교회에 드리면 된다고 생각한다 .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을 하든 아니하든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은 교회를 나가고 있다 . 이것에 대한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 교회는 재정이 있어야 한다 . 그러다보니 안 되는 줄 알면서 묵인하게 되었다 . 그런데 이것이 지나쳐서 교회 안에 심각한 문제를 준다 .   ‘ 갑 ’ 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 을 ’ 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구속하려 한다 . 그리고 수를 모아 힘으로 세력으로 발전을 시킨다 . 이것을 교회 안에서도 자랑을 하고 있다 . 그래서 교회를 통제하려 한다 . 교회의 대표인 목사마저도 눈에 벗어나면 당장 그날로 쫓겨나게 된다 .   지금 이민교회 가운데 이 문제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회 , 목사가 너무나

또 그들은 게으름을 익혀 집집으로 돌아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쓸데없는 말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 등신 ’ 이란 “ 몹시 어리석은 사람을 낮잡아 일컫는 말 ” 이다 . 즉 기초적이고 상식으로 알아야 할 것들을 모르는 경우에 쓴다 . 요즘 기독교인들이 여기에 해당하는 것 같다 . 정작 알아야 할 것은 모르는 체 엉뚱한 곁길로 가기 때문이다 .   한 동안은 시스템이니 양육 프로그램이니 해서 난리를 쳤다 . 이것을 도입하지 않으면 교회부흥이 아니 되고 시대에 뒤떨어진 교회라는 말도 서슴없이 한 적이 있었다 . 그런데 얼마간의 세월이 지나니 별 신통한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   그 사이에 이단들은 세력을 더 늘려서 강해졌다 . 더 나아가 교회 건물이 경매로 나오면 이단들이 매입을 한다고 한다 . 교단 마다 권력 다툼에 자리싸움에 바람이 잘 날이 없는 것처럼 조용한 날이 없다 . 그러다보니 세상이 교회와 목사들을 향하여 아주 대놓고 욕을 한다 .   세상이 타령하고 있는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사랑을 도저히 구분을 하지 못한다 . 그러면서 교회 안에서 사랑 타령을 하고 있다 . 성질은 자기가 내면서 상대방에게 사랑이 없다고 공격을 한다 .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   교회 안에서 자리다툼과 영예에 욕심이 있다 . 믿음이 좋은 사람은 오히려 겸손하여 관심이 없다 . 그러나 사회에서 열등의식 속에 살다가 그 욕구를 교회 안에서 채우려 하는 자들이 있다 . 사회는 실력과 능력이 있어야 인정을 받지만 , 교회 안에서는 적당히 좋은 일에 돈도 내어 놓으면서 명분을 쌓아서 명예를 얻으려 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   교회 안에서의 직분을 하나님을 잘 섬기고 이웃에게 본을 보이고 덕을 세우라고 맡겼더니 , 이건 세상 권력을 쥔 자보다 더 심한 악질이 된다 . 심지어는 심방과 회의라는 명목 하에 개인의 사생활과 개인 정보까지 샅샅이 파헤쳐 공개를 한다 .   또한 심방이라는 구실을 대고 삼삼오오 때를 지어 다닌다 . 원래 심방이라는 것은 설교로서 상한 심령을 위로할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 맞담배는 1 년 선후배끼리만 , 형님을 부모로 동생을 자식으로 … ." 조직폭력단 ' 수유리파 ' 행동 강령 중 일부다 . 어느 누가 말하기를 이 세상의 집단들 가운데 의리를 지키는 유일한 집단이 조직폭력배들이라 하였다 . 간단하게 부르기를 조폭이라 한다 .   저들의 행동 강령을 보며 많이 들어본 것이고 익숙하다 . 성경 말씀 속에 있는 것이다 . 즉 신자들이 기억하고 행동강령으로 삼아야할 내용이다 . 이미 목사들 사이에서는 의리를 찾을 수가 없고 , 교인들들 끼리도 마찬가지이다 .   죄의 성품을 가진 죄인들은 묘하다 . 권력이나 세력 앞에서는 자기보다 몇 달만 앞서도 ‘ 형님 ‘ 이라고 부른다 . 부르라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알아서 한다 . 또한 나이가 적지만 돈이나 권력을 쥐고 있으면 ‘ 아우님 ’ 이라고 부른다 . 즉 권력이나 권세 앞에서 살아가는 처세술이다 . 저들의 좋은 표현으로는 능력이라 한다 .   외부로부터의 공격과 침략을 방어하기 위한 전략이다 . 형제끼리는 서로 빼앗고 때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 혈육의 피는 한 방울도 나눈 적은 없지만 , ‘ 형님 ‘ ’ 아우님 ’ 이란 호칭을 써서 보호받고 이용하려는 마음이다 . 그래서 아무나보고 형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객지에서 자기를 보호하려는 처세술이 뛰어난 사람이다 .   조폭들은 자기들이 필요한 것들을 힘을 모아 남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집단이다 . 불의를 일삼는 일에 혈육의 정을 이용한다 . 즉 돈벌이를 하기 위하여 혈육의 피를 한 방울도 나눈 적이 없지만 , 혈육의 관계로 집안 일이 되는 것이다 . 그러다보니 더 악착같이 대들고 싸운다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 자매된 자들이 있다 . 이들은 교회 안에 있는 자들이다 .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모인 자들이다 . 하나님이 주신 사랑은 자기의 외아들을 죽이고 우리에게 다가온 사랑이다 . 그래서 그 사랑을 받은 자들은 그와 같은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