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싸움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꽃들이 싸우는 화투가 있고, 소들이 싸우는 투우 등을 들 수 있다. 꽃을 가지고 싸우는 자들은 마음이 황폐하여 피를 보며 멸망으로 빠트리고, 남의 것을 빼앗는 재미로 사는 사람들이다. 그럴싸하게 꽃과 소를 앞세우지만 그 뒤에는 인간의 부패된 마음이 작용을 하는 것이다.
 
신자들도 싸움을 한다. ‘믿음의 선한 싸움이다. 믿음의 선한 싸움은 이웃의 것을 빼앗거나 죽이는 싸움이 아니다. 나를 지키는 싸움이다. 세상의 나를 죄의 타락으로 끌고 가려하는 것을 물리치는 싸움이다. 싸움의 방법도 다르다. 상대방의 약점을 공격하거나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여 쓰러트리는 것이 아니라, 선한 싸움을 한다.
 
선한 싸움이란, 악을 선으로 물리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 싸움은 준비를 단단히 하여야 한다. 온 몸을 전투장비로 준비하여야 전쟁터에 나갈 수 있듯이,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기 위해서는 믿음의 진리를 알아야 한다.
 
믿음의 선한 싸움은 철병거나 마병을 동원하는 싸움이 아니다. 적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한 싸움이다. 나를 지키기 위하여 적군의 불화살이 소멸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는 적군에게 다가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불의를 제압하고 승리하는 싸움이다.
 
화투판에서 돈을 따기 위해서는 근성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기회가 오면 언제든지 상대방을 죽일 수 있는 독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차례가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음의 선한 싸움은 마지막에 상대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길로 인도한다.
 
나도 살고 적군도 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진리의 길을 알아야 한다. 진리로 가는 길을 모른다면 곤란하다. 예수님은 이것에 대한 비유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없다고 하셨다.
 
신자가 진리의 길을 가야 적군들이 싸움이라도 걸어오곤 할 터인데, 그 길을 가는 자가 없으니 신자나 불신자나 다름이 없다. 정작 싸워야 할 곳은 세상이고 마귀의 자식들과 싸워야 하는데 엉뚱하게 싸움을 하고 있다.
 
괜히 믿는 자들을 상대로 시비를 걸고 있는 집단들이 있다. 즉 신자만 골라 다니는 자들이 있다. 또 세상에서는 아주 순한 양인데 교회만 오면 늑대로 돌변하는 자들이 있다. 참으로 심각한 일이다.
 
교회는 싸우거나 다투는 곳이 아니다. 교회는 용서하며 화합하는 곳이다. 더 나아가 생명을 공급하여 살리는 곳이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싸우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기의 스트레스나 불만을 마음껏 토로하는 곳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자들은 양심에 화인을 맞은 자라 한다.
 
믿음은 없지만 눈치는 발달되어 명분으로 대신한다. 즉 돈으로 믿음이 있는 척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마음은 없지만 착한 행실로 커버를 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세상이나 교회나 구분이 없게 된다. 그래서 교회는 악을 철저히 대항하여야 한다. 그리고 물러가게 하여야 한다. 내어 쫓아내야 한다. 그래야 거룩함을 유지할 수 있다.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요이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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