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학교 폭력, 왕따, 금품 갈취로 인하여 피해자가 속출하는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트를 보았다. 그런데 그 속에 놀랍게도 어른의 정치구조가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이다. 서열이 있고, 세력을 모아서 권력의 힘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그 구조를 유지하다가 보니 삶이 편안하여 졌다.
 
하여서는 안 될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돈을 빼앗아 필요한 것을 사고, 자기의 사사로운 감정을 약한 자를 택하여 다 풀고, 하기 곤란한 일들은 서열이 낮은 아이들에게 시키면 된다.
 
어른들이 하는 일들이다. 이것을 조직적으로 드러내어 놓고 하면 조직폭력배가 되고, 교묘하게 지혜롭게 하면 정치와 권력이 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
 
어른들의 사회에서는 그와 같은 정치권력 구조를 갖고 있으면서 아이들에게는 하지 말라고 하면 과연 그것이 타당한가? 당연히 아니다. 아이가 성장한 것이 어른이다. 그러니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이 갖고 죄의 성품이 잠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은 부패된 성품을 갖고 태어났다. 그래서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죄의 성향으로 나타난 결과가 죄악이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이런 범죄에 자주 등장을 하게 된 것이, 죄악으로 가는 길이 많이 노출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기쁨을 만들 수가 없는 존재이다. 세상의 문제를 참고 또 참으면 우울증에 걸린다는 것이 연구결과이다. 외부에서 생긴 결과에 의하여 감정이 결정이 된다. 그러다보니 악한 생각으로 인하여 남을 괴롭히면서 쾌감을 얻는다. 그래서 악을 선으로 억재하기 위한 것이 도덕이고 철학이다.
 
그러나 사람은 스스로 선한 것을 생각할 수도 없고, 만들 수도 없다. 선하다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다. 절대적인 진리가 필요하다. 절대의 진리가 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왜냐하면 인간과 우주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즉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목적과 가치의 기준을 가지고 계신다. 그러니 하나님의 정하신 것이 선이고 악이 된다.
 
청소년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환경과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근본의 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 인간 안에 있는 부패된 성품, 썩은 마음을 새 것으로 창조되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고백을 하면 거듭난 자가 된다.
 
거듭난 자는 죄를 싫어한다. 죄가 다가오는 것을 거부한다. 죄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다. 개인의 죄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결코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남을 탓하고 있다. 학교 교육이 잘못되었고, 사회 환경이 변하여야 한다고 계속 반복적인 주장만하고 있다.
 
어두움에 있는 자들은 어두움 밖으로 나오기를 싫어한다. 왜냐하면 빛 가운데로 나오면 자신들의 더러움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거부한다.
어린 아이들도 어두움 가운데 있다. 빛 안으로 들어오게 하여야 한다. 그 길을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믿음뿐이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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