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고 사랑이 없으며 매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 참 좋은 것이다. 사랑 없이 살 수 없다고 외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외치고 있다.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사랑이 없으면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다. 그들은 누구일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사랑으로 채워졌다. 그러니 당연히 사랑이 없으면 존재감이 없다. 그런데 그 사랑은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받을 수 있다.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이냐 하면, 죽은 자를 살린 사랑이다. 그러니 그 사랑을 받은 자는 당연히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사랑이 없는 구원은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신자들의 믿음에는 사랑이 함께 있다.
 
신자에게 사랑이 나타나지 않으면 죄가 되는 것이다. 죄란 하나님이 뜻에 어긋남을 말한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사랑이 없다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독생자 아들을 십자가 죽게 하시고 베풀어 주신 아버지의 사랑이다. 이 사랑이 성령님의 역사하시사 나에게 임한 것이다.
 
그러기에 내가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버지의 사랑이다. 사랑의 본질이 같다. 이 사랑을 가지고 있다면 원수를 용서할 수 있다.
 
교회 안에 있는 신자들은 사랑이라는 명분하에 입바른 소리를 습관적으로 한다.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너를 위하여 도움이 되는 바른 말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의 잘남으로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멸시하는 행위이다.
 
죄인들은 할 말이 없는 자들이다. 오직 선하신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 즉 유일하신 심판자가 되신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조금만 알면 심판자가 되려 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구원을 베푸시려 오신 것이다. 심판을 하려 오신 것이 아니다. 나를 구원하여 주실 때에 잘잘못을 가리지 않으셨다. 과거의 죄를 다 용서하여 주셨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런 것이다.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살려 주신 사랑이다.
 
세상이 말하는 사랑은 능력있는 자가 할 수 있다. 능력있는 자가 능력을 받아 줄 수 있는 자에게 한다. 그래서 조건을 따진다. 즉 내가 인정받고 자랑하기 위한 사랑이다. 또 어떤 이들은 돈으로 사랑을 사기도 한다. 자기만족과 욕심을 채우기 위함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한 것이다. 이웃이 잘되게 하는 사랑이다. 즉 내가 존재함으로 인하여 이웃이 잘되는 사랑이다.
 
사랑은 타령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것이다. 사랑이 많은 교회는 섬기는 자가 많다는 증거이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고 사랑이 없으며 매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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